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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6/03
    인천인권영화제 6월 정기상영회 <하얀정글>보러오세요~
    넝쿨
  2. 2011/05/03
    공부방 다큐..(2)
    넝쿨
  3. 2011/02/10
    [자동 저장 문서]
    넝쿨
  4. 2011/01/25
    2011/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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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2011/01/23
    2011/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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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2010/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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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기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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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2010/11/21
    2010/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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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2010/11/19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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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2010/11/11
    어떻게 살아야 할끄나?
    넝쿨

인천인권영화제 6월 정기상영회 <하얀정글>보러오세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올만의 불질이네요.

 

인천인권영화제 정기상영회!

 

6월에는 <하얀정글>로 찾아뵙니닷!

 

상영장소는 영화공간 주안(1호선 주안역 8번 출구 100M 메인프라자 7층) 입니다!

 

영화보고,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으면 좋겠네요+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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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방 다큐..

 

132,133번 테잎을 보니 매우 느낌이 좋다.

가르치고 배우는 선생-학생이라는 건조한 관계 이외의 어떤 모습들이,

실제로 가르치고 배우는 틈 사이로 조금씩 비죽이 나오는 장면들이 눈에 띈다.

윤쌤에게 제주도에 살았다는 이야기를 하는 ☆☆이의 모습에서는

윤쌤의 서투름 같은 것이 보이는 것 같다.

윤쌤도 툴툴대고, ☆☆도 툴툴대는 성격이지만,

이런저런 일상을 겪으면서 그 안에서 관계를 만들어나간다는 느낌이 든다.

한글을 좀 늦게 깨우친 편인 △△이가 국어 문제를 한개밖에 안 틀린건 어찌나 기특하던지.

자기 자신도 뿌듯해 하는 얼굴이 참 귀엽다.

 

126번 테잎에서도 느꼈지만.

나는 이 즈음부터 아이들에게 현장 인터뷰 같은 것을 시도했었다.

음. 정말 제대로 된 인터뷰가 거의 없다.

 

132,133번 테잎에도 아이들 인터뷰가 잠깐 있다.

나는 ■■에게 끈질기게 물어보는데, 계속 내가 질문하고 싶은 것들에 다가가지 않는다.

나는 무엇을 질문하고 싶었는지도 잘 몰랐던 것 같다.

그저 조금 더 그 질문에 다가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실패했던 것이었다.

 

촬영할 때는 못 알아들었던 중요한 단서들이 들린다.

♤♤가 ■■형네 집앞에 지나갔더니 방에는 불이 꺼져있고 거실에만 불이 켜져있었다.

방에 아무도 없었다는 이야기를 하자

■■가 그건 "엄마 혼자 밥 먹을 때"라고 말한다.

물론, 이 맥락상 ■■가 엄마랑만 산다는 건 전혀 알 수 없다.

 

엄마랑만 산다거나, 아빠랑만 산다거나, 할머니나 할아버지 혹은 할머니 할아버지하고만 산다는 것.

아이들에게 그것을 스스로의 입 밖으로 내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솔직히 나는 잘 모르겠다.

 

나는 선생님들에게 아이들의 가정환경에 대해 대충 들었지만,

그런 삶을 상상할 수는 없었다. 그것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몰랐다.

그리고 심지어, 부끄럽게도, 그것을 모른다는 것조차, 몰랐다.

사실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노력하지 않았던 것 뿐이었다.

 

추석즈음의 촬영분에는 아이들에게 친척집에 가는지, 용돈을 받는지,

내 딴에는 그런 '소소한 질문들'을 했다.

⊙⊙이와 ♧♧이는 친척네 가고, 용돈을 받는다고 했고,

■■는 안간다고 했고, 이번에 핸드폰을 잃어버려서 엄마가 화가나서 용돈을 안 주실 거라고 했다.

곧 해맑게 웃긴 했지만 장난치는 분위기였는데도 ■■는 잠시 표정이 좋지 않았다.

 

그리고 내가 생각했던 그런 '소소한 질문들'을 던질 때 묘하게 불편했던 선생님들의 표정과 분위기들.

 

 

나는 촬영을 하면서 한번도 아이들 스스로에게 자기들의 가정환경에 대한 이야기를 제대로 들어본 적이 없다.

(아, 딱 한번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놓쳤다. 물론, '제대로' 들었는지는 의문이다.)

 

소위 말하는 '정상가족'의 범주에 들어있지 않은 아이들.

가난한 아이들, 가난한 동네의 아이들.

아이 키우는 것의 대부분을 가족단위가 책임을 지는 한국 사회에서

가족이 아닌 다른 사람들의 돌봄을 받는 아이들.

어쨌든 한국사회에서 '복지'라는 행위가 갖는 시혜적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공부방에 다니는 아이들' 이라는 점을,

나쁜 한국사회를 유지하는 나쁜 말들 중에 핵심인 가족주의의 정곡을 찌르는 이야기라는 점을,

 

이 아이들이 바로 한부모 가정의, 조손 가정의 아이들이라는 사실을,

이 아이들이 바로 (비꼬며 말하자면)'복지혜택' 속에 있는 아이들이라는 사실을,

이 선생들이 바로 그것을 연결하고, 감싸고, 행위하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그렇게 중요한 현실이 여기 들어있다는 사실을,

나는 너무나 크게 간과하고 있었다.

그리고 도피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의 촬영본은 헐겁고 가볍다.

어떤식으로든 그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생각이 드는데도,

현재 촬영본만으로는 그 이야기를 절대 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래서 편집도 다시 도피의 연속이다.

핵심을 찌르지 않고 간다.

 

나는 이렇게 저렇게 부딪치면서 일상을 지내고 있는

공부방의 선생님들과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만을 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나는 한국 사회에 이 사람들이 놓여져 있는 위치와 그것이 가져오는 차별과 상처들,

그리고 그것을 극복하는 방법 중 하나에 대해,

그리고 더 잘하고 싶어하는 이유들에 대해 이야기 하고 싶은 것이다.

 

아아. 그런데 그것을 이야기하는 방식에 대한 고민이,

너무나 협소하고 짧았고 너무 적었다.

그렇다. 이것을 말하는 방식에 대한 고민, 말하기 방식에 대한 고민이....

 

아마도 그냥 열심히 했다면,

아이들에게 다가가서 그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것을 도피했던 것이다. 핵심으로 다가가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았던 것이다.

지금은 그런 이야기가 너무나 적어서, 그리고 너무 위험한 방식으로 전개될지도 몰라서,

이 상태에서 어떻게 진전시켜야 할지 모르겠어서,

안절부절하거나, 맥 없이 다른 이야기들을 만지작대고 있다.

 

내가 이 아이들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이해하려고 하지도 않았다는 충격.

타인에 대해 '말하는 사람'으로서 말하기 방식에 대한 어떤 지식도, 지혜도 없다는 것에 대한 충격.

 

아. 충격의 연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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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류님의 [고민] 에 관련된 글.

 

철거현장(과 철거의 과정)에서 벌어지는 폭력들에 대한 대처와

계약관계에서 나타나는 현실적인 문제 해결에 대한 대처는

분리될 수는 없겠지만 분리해서 봐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으으

 

더 깊이 생각해볼 수 있으면 좋으련만,

딱히 뭐라고 할 수가 없네.

다만 뭐라도 끄적거려놔야 되겠다 싶어서..

아님 링크라도 걸어둘라고;;;;

 

 

여튼.

나중에,

어떤 결과가 나오더라도 어떤 결과가 나온 상황에서

'우리는 무엇을 위해 싸웠나' 라는 생각을 했을 때,('우리'가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가장 열심히 몸과 마음을 보탠 사람들이

허무해지거나 '역사의 한 페이지' 같이 너무 멀리 점프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물론 역사의 한 페이지도 중요한 일이지만,

스스로도, 함께한 사람들도 같이 다독일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

 

 

어떤 결과가 나오더라도 공간의 상실을 전제로 하는 투쟁은 조금 서글프다.

상실을 전제로 했다는 것 자체가 오류일까?

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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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25

 

녹취를 할 수록 그런 생각이 든다.

이 작업은 어렵고 힘든 작업이다.

그러니까 내게는 조금 버거운 일이다.

근데 왜 그렇게 괴로운줄 잘 모르고 있었다. 그러니 난리를 쳤지.

 

누군가는 다큐멘터리가

인간을 이해해야하는 일이라고 했던 것 같다. 맞다.

그런데 주인공들을 이해하기에 나는 폭이 너무 좁았다.

근데 그렇다고 무턱대고 들이댈만큼 용기는 없고.

어쩌면 철딱서니 없는 컨셉으로 무턱대고 들이댔어야 했는지도 모른다.

괜히 그럭저럭 세상이치 아는 척을 하다가 이제서야 혼이 나고 있다.

물론. 더 혼이 날테고, 잘못한 것이 이것만은 아니겠지만ㅠ_ㅠ

 

김pd는 나한테 테잎을 보며 스스로의 부족함에 머리를 찧을때가 종종 있을거라고 했는데,

아마 그동안 내가 지랄발광을 했던건,

스스로 좁다는걸 인정 못하고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

아니, 동물적으로는 뭔가 크게 비어있고, 부족한 것이 느껴지는데

그걸 남탓을 해가며 잘못 해석하고 있었던 거 같다.

 

촬영기간에 언뜻 스치며

뭔가 이런걸 더 생각해봐야하나? 라고 생각했던 것,

이건 모르겠는데, 라고 생각했던 것들을

멍청하게 그냥 흘리고 말았다!

그걸 공부하고 토론하고, 정리를 했더라면,

지금처럼 넋놓고 있었다는 후회를 하진 않았을텐데;;;

S의 말마따나 나는 스스로 무엇을 갖고있는지 없는지, 어떤 상태인지

이런 것들을 감각적으로는 캐치했던 듯.

그러니까 근데 그걸 왜 안했니............

아니, 하려고 노력을 했던 적은 좀 있었던 거 같긴 하다.

적극적으로 하지 않아서 그렇지... 역시 용기가 부족한겅믜-_-a;;

 

수많은 사람들이 그동안 도닥이며 해줬던 위로의 말이며, 뭔가를 알려주려했던 거하며 이거저거가 

다 뒤섞여서 쓰나미처럼 몰려오는구나-_-;;

 

다큐멘터리는 관계를 만드는 것이기도 하지만,

어떤 부분에 있어서는 입장이나 시각을 만드는 것이기도 한 것 같다.

특히나 지금 하고 있는 작업에서 내가 만들어야 했던 부분은 그것이었다.

관계를 만드는 것도 중요한 일이긴 하지만,

스스로도 누누히 말했듯이 1~2년 본다고 뭔가 깊숙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

또, 주인공들은 또래도 아니니 급작스럽게 친해질 수 있는 뭔가를 가진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엄마뻘, 이모뻘, 언니뻘들이었죠...-_-;;)

그리고 사실은 어쩌면 친해지고 안친해지고는 별로 중요한 일이 아니었을 수도 있다.

 

어떻게 보면 사회를 향한 발언이라는 측면에서

오히려 시각을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친해질 수가 없어서 어렵다, 라는 핑계는 정말로 핑계였고.

오히려 친해지고말고가 문제가 아니라,

스스로 시각을 세울 수 있었어야 했다.

 

전혀 모르다시피 한 분야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만들면서,

그것의 사회적 구성,의미, 스스로는 어떻게 바라봐야 할 것인가에 대해

전혀. 전~~~~~~~~혀 공부하지 않았다-ㅁ-;

말하자면 입장조차 없이 그냥 카메라를 들이대고 있었다.

 

멍청이-_-;;

 

지금 생각해보니 이 다큐멘터리를 만들겠다고 결심 했을 때의 핵심은 그것이었다.

모르는 것에 대해 시각,관점을 갖는것.

근데 잘 모르는거니까, 관심이 별로 없으니까. 하고 넘겨버렸으니-_-

이거 뭐 어쩔;;;

 

아마도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작업에서 많은 부분은,

구체적인 것에 대한 시각을 만드는 것, 이 아닐까.

만약 내가 계속 다큐멘터리를 만들게 된다면, 그렇게 되지 않을까.

근데 왜 난 공부를 하나도 안했을까. 공부를 하고, 묻고, 질문하고, 답했어야 했다. 정답이 나오지 않더라도.

철학까진 아니더라도 적어도 발을 디디려고 하는 곳이 어떻게 생겨먹었는지 정도는 알았어야 했다.

멍청이짓을 많이 했지만, 이건 정말 대박 멍청이짓이다.

1년을 날린 멍청이짓 중의 멍청이짓이다.

아오.

 

책을 파고 공부를 한다고 해서

주인공들의 깊이를 파악할 수 있는 건 아니겠지만,

'시각'을 갖는건 최소한의 것이었다.

그래봐야 타인의 깊이에 또 좌절하긴 했겠지만, 그래도 절망할 때 밑바닥에 받침대정도는 되줬을텐데...

 

암튼 이 멍청이짓을 회복하려면 엄청난 노력이 필요할듯...-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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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23

 

나는 오만해지기 쉬운 인간이다.

아니, 참으로 오만하기 짝이 없다.

어찌보면 당연한 말들이 진리처럼 떠받들어지는데는 이유가 있다.(물론 상황과 맥락에 따라 다르지만)

 

남 눈의 티끌은 보여도, 내 눈에 대들보는 안보인다더니,

내가 딱 그짝이었다.

 

지난 시간을 후회해봐야 무엇하리.

만회하려면 이제 그저 열심히, 폭을 넓히고 진심을 다 해서 하는 수밖에 없겠다.

 

그렇게 타인을 탓하고 다니면 역시 제일 안 좋은건 스스로라는걸 잘 알게 됐다.

나는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정말 알고 있었던걸까?

아니었나보다,라고 생각하게 됐다.

왜 꼭 멍청하게 겪어봐야만 아는 것일까. 쯧.

 

불로그에 끼적이기 저어했던 것도, 잘 모르는 사람에게 말하기 꺼렸던 것도,

모두 다 그게 스스로에게 부끄러운 일이라는 것을 은연중에 알았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남탓을 해봐야 별로 좋을게 없다.

 

어쩌면 지난 1~2년의 시간이 스스로에게 독이 된 것 같다고 느낀건,

계속 남탓을 하고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건 이래서 망했고, 저건 저래서 망했고, 이건 누구 때문에 힘들고, 저건 누구 때문에 힘들고.

알고있다.

그렇게 자꾸 망했다고 생각하는 건 스스로 노력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미숙했기 때문에, 부족했기 때문에, 방법을 몰라서 방황한 것도 한켠에 존재한다.

하지만 스스로의 방황을 남의 탓으로 돌리면 그 중요했던 시간들은 허망한 것으로 색이 바래기 마련이다.

방황도 중요한 과정 중 하나겠지만.

나는 방황없이 처음부터 완벽한 사람이고 싶었나보다.

 

나는 아무것도 안하지는 않았다.

나는 무언가를 했다.

그런데 무엇을 했는지 명확히 보지 못했을 뿐이다.

망한건 사건 자체나 상황 자체가 아니라 내 마음이다.

마음이 황량해졌을 따름이다.

이론이 필요한걸까? 치유가 필요한걸까? 아직은 잘 모르겠다.

 

어쨌든 비난과 끙끙거림을 오가는 사이에 오만은 지구를 한바퀴쯤 돌만큼 커졌다.

어디서 이런 못된 버릇을 배웠을까.

어른이 되는 과정인가봐 하고 핑계를 댄 것도 한몫했다.

뭐, 어른이라기 보다 꼰대가 되는 과정인가부다 했던거긴 하지만.

그렇지만 꼰대는 되지 말아야 된다. 경계하고 살아야지.

왜 당연히 그게 되고 있다고 생각했을까-_-;;;

 

스스로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무엇과 연결되어 있는지 보아야 한다.

우습지만 긍정의 힘을 믿는 수 밖에 없다. 부정의 힘이 나를 얼마나 갉아먹었는지 알았으므로.

다른 곳으로 어떻게 확장할 수 있는지는 미지수다.

 

인생이 계속 재미없다고 느낀건 스스로가 날린 비난의 화살이 스스로에게 돌아오지 않도록

어깨에 힘을 빡 주고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남탓은 하다보면 거짓말처럼 계속 불어나서 어느순간 자기가 제어하지 못할만큼 커져있었다.

못난 자신을 변명하기 위해 남 탓을 키우고, 키우고 하다보니

다른 사람은 악마가 되어있었고 나는 악마를 키우는 사람이 되어있었다.

 

싸우는 아이들을 혼낼 때 공부방 선생님의 대사 중 이런 말이 있다.

"혼자만 잘못해서 싸우는 법은 없다고 했지!"

"XX이 잘못한 거 말고, 니가 잘못한걸 묻고 있는거야, 니가 잘못한건 뭐인거 같니?"

 

 

 

 

난 참 쉬운 방법을 택하고 싶어하는 사람이다.

난관에 부딫혔을 때 스스로 방법을 찾으려고 노력하기 보다는,

이런 저런 고민을 벌써 했을법한 사람에게 달려가 조언을 구한다.

물론 그런거야, 어떤 순간에는 도움이 되겠으나,

조언을 들은 것을 마치 자신의 경험인양 착각하면 큰일이다.

 

제작년과 작년의 공허하고 바랜, 새카매진 마음도 어떤 과정을 지나고 어느 순간이 되면

성장통이었다고 생각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려면 지금부터가 더 중요하겠지.

과거와 과정을 독으로 만들지, 약으로 만드는지는

스스로가 그 무게를 무엇으로 어떻게 지고가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독이 되는 것은 폭이 좁아지는 것이다. 본질을 피하는 것이다.

 

어떤 폭력의 순간 이외에 인간과 인간의 관계에서 일방적인 것은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특히나 스스로가 깨림찍해 지는 순간은 그런 것일게다.

 

아.. 하지만 아직도 방황의 나날은 멀고도 먼 것 같다.

더 많이 부딪히고 깨지겠지. 적어도 서른까지는 사춘기에 머물고 있지 않을까.

아니, 서른이 넘어서도 그럴지도...;;;

잘 헤쳐나갈 수 있으면 좋겠다.

좁은 프레임에 갇히지 않는 것, 본질을 파악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

그걸 계속 해야겠지.

오만함과 거들먹거림과 아는척과 남탓은 적당히 해야겠다.

아예 안하는건 못하겠지-_-;;;; 이기적인건 내 본성 중 하나인 것 같다-_-a..

그것이 스스로를 가두는 것인지 아닌지를 빨리 파악하고 판단해야겠지.

쩝.

 

 

작년에 사이비 같던 사주쟁이의 말이 생각난다.

2009년이고, 2010년이고 내 상태가 굉장히 썩어있는 사주라고. 굉장히 나쁜 상태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언가를 하는 건 주변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산적인 대화를 생산해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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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2/06

 

낮에 쩔은 목소리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GM대우 정문 아치 위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 농성을 하고 있는 사람이었는데,

이 사건이 잘 알려지지 않고 있어서 고민이 많다고 했다.

누군가는 매일 촬영을 하고, 편집을 해서 올리고 있느라 피곤에 쩔어있고,

턱이 덜덜 떨리는 날씨에 농성장과 아치위를 지키고 있는 사람들도 좀 되는 모양이다.

 

어떻게 해야할까.

나는 그저 몸 잘 챙기라는 말 밖에는 해주지 못했다.

 

멍하니 앉아있는 동안 이런저런 생각들이 머릿속을 굴러다녔다.

자세한 건 모르지만 87년 노동자대투쟁과 민주노조운동의 상승 등등.

그런데 (이렇게 말하면 노동운동 하시는 분들 섭섭하실지 모르지만) 이제 노동운동은 사그러들고 있고,

나 같은 젊은 애들은 스스로에게 당면한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서 도망가고 싶어한다.

운동한답시고 깝치는 나도, 노동운동에는 별 관심이 없다.

그리고, 소위 말하는 그 '운동문화'에 거부감을 갖고 있다.

노동운동과 지나간 운동문화를 직접적으로 연결시키는데는 무리가 있을지 모르지만,

아무래도 운동, 운동문화의 상징은 아직까직는 노동운동이지 않을까.

무튼. 노동운동은 해야한다. 뭘 어떻게 해야하는건지, 잘 모르지만.

심지어 어디에 속해있는 노동자라고 말하기도 민망한 상태이지만,

어쨌든 노동자로서의 의식은 있어야 한다.

스스로에게 가장 부족한 것이 그거 아닐까. 사실 활동가들은 잘 쉬지도 못하잖아-_-;;;;(이건 쫌 딴얘기;)

암튼 그러면 노동운동을 해야한다면, 연대해야한다고 생각한다면,

내 방식대로 어떤 것을 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나?

내가 무언가를 한다고 해서 도움이 되는지는 차치하고서라도,

무엇인가를 할 수 있는 상황이나 되나? 그런 고민을 하는건 그저 용기 없는 것 뿐인걸까?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는 밥을 먹으며 빅뱅이론을 보고 킬킬거리고 있었다.

 

사무실로 나오는 버스 안에서는 울컥거림이 짜증으로 바뀌었다.

 

생각해보면 인간이라는 존재로 살아가고 있는 것 자체가 죄악인 세상이다.

구매자로서 소비하고 있는 생산품들에는 어느 것 하나 착취라는 단어가 들어가지 않은 것이 없다.

다큐멘터리 <꿈의 공장>이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아마도 그것이었을 것이다.

모든 소비에는 착취가 들어있다.

당신이 메고 있는 콜트콜텍 기타,

내가 지금 쓰고 있는 이 컴퓨터 하드웨어의 어떤 것은

삼성전자에서 누군가가 백혈병으로 죽어가며 만든 칩이 있을 것이고,

지금 마시고 있는 커피는 남미의 어느 농장 노동자를 착취한 초국적기업이 내 놓은 상품이다.

농장 노동자 뿐만 아니라 가공에서, 유통에서, 어떤 단계에서든, 무엇이든 이루어졌겠지.

그런 세상 아닌가.

 

딜레마는 여기에 있다.

내가 아는 어떤 사람은 이런 저런 이유로 롯데 상품을 불매하고 있는데,

그것을 남에게까지 강요하지는 못한다.

당신들 전부 롯데 제품 쓰지 마시오! 왜냐면 롯데는......!!

이라며 줄줄줄 설명할 수는 있지만 모든 소비자에게 그걸 강요할 수는 없다.

하지만 만약, 롯데가 정말로 어떤걸 시정하길 바란다면,

그 상품을 소비자가 구매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그러나 계속 말했지만, 강요할 수 없다. 물론 설득도 잘 안된다.

정부에게 압박하는 것이 아니라면 기업은 무엇으로 변화시키나?

하물며 정부도 왠만하면 끄떡도 안하는데. 뭐, 비슷한 이치긴 하지만.

GM대우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지금 아치위에서 사측과 용역이 휘두르는 낫의 위협을 받으며

농성을 하고 있소. 그러니 이들이 정규직화 될 때까지 GM의 제품을 쓰지 마시오!

라고 했다 치자.

그런데 나는 오늘 정말 GM의 물건을 하나도 안 썼나?

혹은 GM대우 노동자들이 농성을 한 근 3년 이상의 시간동안 단 한번도 GM의 물건을 안쓸 수 있었나?

ktx 여승무원들이 파업할 때도 ktx를 타야 했었다. 물론 빨리 가니까 타고 싶기도 했었다.

 

어쩔 수 없이 해야할 뿐만 아니라 하고 싶은 마음도 있는 것이다.

 

특정 기업의 매출을 보장해주면서도, 그 기업이 변화하길 기대할 수 있을까?

다른 방법이 있는지 잘 모르겠다. 방법이 있다면 알고 싶다.

 

주기적으로 위기가 닥쳐오고 있다고 해도,

어쨌든 자본주의가 이룩해 놓은 것은 이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인간은 이미 너무나 많은 상호작용 속에서 살아가야만 한다. 그리고 그것이 일정정도 편리를 가져왔다.

도시에서 사는 내 입 속에 들어오는 쌀 알갱이, 옥수수 알갱이 하나라도,

일반적으로 '시장'을 통하지 않으면 사용조차 할 수 없고

미세한 단위까지 시장이라는 것을 통해서 인간은 얽히고, 얽혀있다.

그리고 중간과정에는 거의 언제나 모든 것에 (경제학적으로가 아니라)인간적으로 참을 수 없는 착취가

도사리고 있다.

그건 단순히 이익을 올리고 싶은 자본가의 검은손 따위뿐 아니라,

당연하게도 그 상품을 싸게 구입하길 원하고 있는 구매자가 있기 때문이다.

마치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 하에서 2008년 이명박 정부를 찍었기 때문에

지금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사람들이 이명박 정부의 통치를 받아야 하는 것 처럼.

(심지어 내 손가락이 그를 찍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억울할지도 모르지만 그건 너무 유치한 변명이다.)

돌고 돌고 돈다. 뫼비우스의 띠 같다. 그리고 책임은 결코 남에게만 있지 않다.

 

그럼 직접 벼 농사를 지으면 되지! 직접 스웨터를 짜서 입으면 되지!

라고 누군가 반짝이는 눈망울로 말한다면 목을 조르고 싶을 수도 있겠다.

 

혼자 산 속에 원두막을 짓고 산다고 치더라도 이런 죄의식에서 벗어날 수 있는건 아니다.

점프를 많이 하자면,

불만이 있다면 말하고 변화시키라는 자유민주주의가 수많은 트릭을 가지고 그런 '자유'를 줬기 때문이기도 하다.

개인의 자유와 공동의 책임이라는 것이 동시에 공존하기 때문에.

하지만 어쨌든, 현재의 모든 불공정한 상황에 대해 어느 누구도 '나는 아무짓도 않했어요. '라고

이노센트한 표정을 지을 수는 없다. 당연히 나를 포함해서. 갓 태어난 아기 조차도.

 

 

 

너무 머리를 많이 굴렸더니 내가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머리가 아프기도 하다.

죄의식에서 벗어나려는 발버둥이었을까.

아직 아무것도 안했는데 벌써 지친다.

게다가 죄의식은 사라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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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기분

 

#

아무리 어제 새벽차를 타고 들어갔다고 하지만,

출근 목표 시간은 1시였다.

근데 6시에 출근하다니..-_-;;;;

뭥믜ㅠ_ㅠ 오늘도 밤에 일햄ㅠ_ㅠ

 

리뷰를 마치고 구성회의를 하기로 한 날짜가 얼마 남지 않았는데도,

아직 별로 긴장감이 없다.

마치 시험공부하는 것 같다.

책은 읽어도, 읽어도, 읽을 때마다 새로운 것을 알게 되고,

그러니 언제고 공부를 끝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게다가 실제로 저렇게 읽고 또 읽는 것은 짧은 시험기간에 별로 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평소에 잘' 하라는 말이 있겠지만;

평소에고 시험기간에고 책을 잘 안들여다 보긴 하지만,

시험기간에는 시험보는 범위만이라도 열심히 이해해보려고 한다.

음...

물론.

여유를 갖고 시작하면 좋겠으나,

도서관에 짐을 풀어두는건 일주일 전 부터라고 해도,

실제로 공부하는건 시험보는 전날 단 하룻밤 뿐이다.

그리고 그날 밤, 당연히 시험 범위를 다 못 보고 헐레벌떡 시험을 보러 간다.

그리곤 후회하지, 좀 더 일찍 시작할 껄. 할 때 집중해서 할껄!!!

 

지금이 딱 그짝이다.

분명 봐야할 분량은 방대하다.

그리고 구성회의는 일주일이 조금 넘게 남았다.

근데 이게 왠 탱자탱자냐-_-;;

아마도 시험 전날 울상을 지으며 빨리 시작할껄.. 이라고 후회한 것과 똑같이 후회하게 되지 않을까-_ㅠ

다만 다른건 책임의 정도. 그리고 이건 최종 기말고사는 아니라는 심정.

 

쩝.

두문분출하고 일만 해야하느뎅 킁.

 

#

새벽차를 타면 생각이 많아진다.

졸리고 부스스한데도, 이런저런 생각들이 머릿속을 굴러다니며 잠들지 않도록 도와준다.

안타까운건, 자고 일어나면 무슨 생각을 했는지 잘 기억이 안난다는 것;;

은근히 사람이 많은 새벽 버스에는,

술에 취한 채 머리를 가누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바알간 얼굴에 출근하는 것 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꽤 많다.

내가 본 사람들은 대부분 중년 즈음이거나 조금 넘은 듯한,

약간은 가무스름한 얼굴의 남자들이었다.

혹은 그보다 훨씬 나이가 많아 보이는 여자들이거나.

 

그들 사이에 끼어 보았던 창밖은 어둑했다.

그리고 오늘 출근하면서 보았던 하늘도 어둑했다.

요즘 내 기분은 새벽즈음이라기보단 저녁즈음이다.

곧 더 많이 어두워질 것이다.

그리고 밤은 길 것이다.

 

자, 일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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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1/21

 

요즘 다시 센씨티브해졌나.

갑자기 막 울컥울컥한다.

 

두리반에 갔다가 신나게 공연보고 진이 빠져서

터덜터덜 맥주를 한 캔 사들고 들어왔다.

일 하려고 넷북을 켰는데 눈 앞에 들어오는 분신 소식에 움찔했다.

 

생명에는 지장이 없을거라는 기사를 읽었지만,

분신이라는 행위 자체의 충격은 잘 가시지 않는다.

마음이 벌렁벌렁...

 

다시 찔찔이가 되려나.

그래도 무조건 찔찔 짤 수만은 없는 법.

정신 차려야 한다.

하지만 압박적이지 않게, 강박적이지 않게, 날카롭지 않게.

 

난 언제나 현재의 내가 좋다.(<-갑자기 이건 뭥믜;;;)

그래도 언젠가는 자기의 역할과 위치를 잘 알고 있는 어른이 될거야.

자기의 위치를 잘 알지만, 계속계속 쎈씨티브한 어른, 꿈을 꾸는 꿈을 계속 꾸는 어른,

조언과 강요의 차이를 알고 있는 어른. 본인의 오만을 알고 있는 어른.

혹은 타인이 그것을 말 할 수 있게끔 하는 어른.

 

흠. 어렵다.

어른이 되는 건 어렵군.

그래도 분신은 하지 말아야지. 꼭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안될 것 같아도, 하지 말아야지ㅠ_ㅠ. 철렁하니까.

아, 왠만하면 단식도 하지 말아야지-_-a 아, 건강을 위한 단식은 좀 필요하려나?-_-;;;;;;;;;;;

 

 

노인 미디어 교육을 하면서,

'노인'이란, 그 시간을 살아온 것 만으로도 대단한 사람들이라는 생각을 하곤 했다.

그/그녀가 청계천을 찬양하든, 625전쟁에서 한국군인으로 이름을 떨쳤든,

몇십년 동안 공항의 소음피해에 맞서 싸웠던 사람이든,

그 어떤 사람이든, 어쨌든 70-80년의 시간을 살아왔다는 것에는 경의로움이라는 것이 들어있는게 맞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했다.

음. 어른이 되는 건 어렵다. 아마도 엄마나, 할머니가 되는 것도 어렵겠지.

그 생각이 맞았던 것 같다. 그렇다고 모~든 어른이 다 경의롭고, 꼭 존경스럽기만 한 것은 아니다.

아마도 삶의 깊이, 자기의 위치와 역할, 그리고 영향에 대해 '인간적으로(맞는 표현일지 모르겠다)'

고민을 더 많이 한 사람일수록, 그 앞에서 숨을 더 깊게 쉬게 되지 않을까.

 

어쨌든 어른을 얕잡아 보면 안되겠다.

필연코 어른이 되어야만 한다는 사실에 직면하니, 쉽지만은 않구나.

 

음.

굳이 어른이라고 안하고 '사람'이라고 표현해도 되는데,

'어른'이라는 표현을 쓰는건, 그런 사람에게 기대되는 역할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일게다.

그리고 나이를 많이 먹어도 젊은이들과 함께 있고 싶다는 자..작은 소망?;;;;

지금 내가 왠만한 '어른'들을 별로 안좋아해서 일지도....-_-;;

나중에 남들도 날 싫어하면 어쩌지..;; 하는 불안감?;;

사회적으로 귀감이 될만한 '어른'의 부재는 단절을 의미하는 것 같다.

왠만하면 '어른'이란 단어는 좀 부정적인 느낌. 나만 그런걸까...-_-;

자수성가해서 돈 잘버는 어른, 대기업 어른, 어버이 연합 어른, 이런 어른들 말고.

인간적으로 존경할 수 있는 어른.

물론 어딘가에 계시겠으나 잘 모른다. 그런건 어릴 때 좀 갈켜줘야 하는 거 아님?

이 사람은 이렇게저렇게 살아왔었더랬더라.(돈 많이 벌었다더라, 부지런했다더라 말고..;;)하고.

뭐, 들었어도 구리다고 생각했겠지.

변하는게 맞을테니.

 

어. 왜 갑자기 이런 얘길 하고 있지?-_-;;

 

암튼 오늘 두리반 공연은 재밌었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게 했던.

어느 밴드의 보컬이 "몸은 자본주의에 묶여있지만 정신만은 그러지 말자"라는 멘트를 쳤는데,

멘트를 들을 때는, 당장 목구멍이 포도청인데 어떻게 그럴 수 있나. 라는 생각을 했었다.

자본주의에 묶이지 않도록 하자! 고 해야하는거 아님? 이라고.

근데, 사실 그 보컬의 멘트도 맞는 말이라는 생각이 든다.

무너져가는 건물의 꼭대기층에서 스*디킹 음료를 들고 자본주의 타도! 를 외치는 것이,

현재의 우리의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스*디킹은 안 먹을 수도 있지만;

현존하는 이 질서에서 완전히 벗어나는게 불가능하다면,

영혼이, 정신이 자유로운 것도, 맞다.

그것으로부터 무엇인가 새로운 삶의 형태가 나타나게 되겠지.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리게 된다 할지라도.

 

오늘 왜이리 주저리.

아 영화제 얘기를 쓸라고 했는데 이 뭥믜. 졸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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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

이런 시간에 참세상 같은 페이지를 보면,

뉴스를 열심히 들여다보지 않아도 머리가 띵하고 뭔가 울컥한다.

새벽엔 보지 말아야지-_-;;;;;

 

#

요즘 오전중에 일어나는 것을 스스로에게 미션으로 주고 있다.

딱히 규칙적으로 생활하게끔 강제하는 것이 없기 때문에

스스로 그렇게 하지 않으면 오전 시간을 쓸 수가 없다.

가뜩이나 아침잠도 많은데..

근데 이건 아침도 아니야-_-;;

정말, 일찍 일어나보고 싶다=_=;;

할 일도 많은데-_-;;;;;;;

 

내가 일을 다 못하고 있는건,

일을 잘 못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시간을 잘 못쓰고 있기 때문인 것도 있는 듯;;

아-ㅁ-;;;

일 못한다고 말하고 보니 생각났는데,

인권영화제에서 4대강관련 영화들을 상영하는데,

GV를 기획해야한다.

이제 일주일 쪼큼 넘게 남았는데 아직 섭외도 못했다=ㅁ=!!!!!!!!!!!!!!!!!!!!!!!!!!!!!!!!!!!!!!!!

어쩔ㅠ_ㅠ

팔당의 농민분들을 모시면 어떨까 싶은데 어찌 연락을 해야할지 란감-_-a;;

그리고 팔당 농민분들과 4대강 사업 전반에 대해 설명(?) 해 주실 수 있는 분이 계셨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흠............. 이것도 고민고민...

암튼 이건 낼 아침에 인나서 생각해보자-_-;;

생각해보니 두리반도;;;ㅠ_ㅠ

나 왜 아무것도 안하고 있었을까-_ㅠ;;

 

아무것도 안하고 있었다기 보다는, 뭘 해야할지 모르고 허둥대고 있었던 것이 맞을 것이다.

영화제 일이라는건 처음 해보는 일이니.. 영화제를 다 치뤄보면, 대략 알게 되지 않을까.

게다가 생각보다 할게 많다. 할거라기보단 챙겨야 할거라고 해야하나. 그게 그건가?-_-;;

쵸큼 복잡시렵기도-

 

근데 복작복작 모여서 노는 듯 일하는 듯 하는 건 참 좋다.

난 역시 이런게 체질인듯-_-;;;;

다큐는;;;;;;;;;;;;;;;;;;

 

 

#

오늘 동암역에서 했던 GM대우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한 인천지역 문화제에 정말 잠깐 다녀왔다.

GM도, 기륭도.

한번도 노동자들을 만난 적은 없었다.

한번도 집회나 문화제에 가서 힘내시라는 형식적인 말조차 해 본 적이 없었다.

뭐, 오늘이라고 뭘 했다는 건 아니다. 그냥 가서 삐댄거지-_-;;;

 

음.....

'1000일이 넘는' 혹은 '00일째' 라는 타이틀이 있는 어떤 사안들은,

그 시간만으로도 압도되곤한다.

100일, 1000일이 너무 길어서, 혹은 너무 짧아서가 아니라,

너무 당연하게도, 그 시간을 통과해온 사람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무거워 보인다.

예전에 '용산픽쳐스'에서 단식농성자를 위한 일일지지단식을 하는 1인을

코믹하게 찍어서 올린 영상이 있었는데 그게 갑자기 생각나네.

제목이 뭐였더라-_-a;

기억이 안난다;;;

암튼, 동조단식은 한끼인가 두끼인가를 굶는 거였는데,

단식 몇 분 후 부터 단식이 끝나고 빵을 먹을 때까지를 보여줬던 것 같다.

그 영상을 보면서는 엄청 킥킥대고 웃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그렇게 웃은건 참 무서운 일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왜냐면, 한두끼 굶는거, 정말 어려우니깐.

쫌 오바한 구석이 있긴 해도, 그 영상에 나왔던 표현들이 맞다.

몇 시간 단식하니 입에 침이 마르고.. 어쩌고 저쩌고..

그리고 먹을걸 보면 허겁지겁 먹게 된다.

그것이 삼시 세 끼 밥먹도록 길들여진 지금의 사람들에게 당연한 이야기이다.

그래서 사실은 '00일째 단식중' 같은 말은,

사실은 굉장히 무서운 말이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 고생하십니다. 라는 말로 때워도 될 것 같은 때도 있었다.

너무나 흔하고 흔해서. 흔하디 흔하게, 몇십일씩 단식을 하고, 농성을 하고,

몇 백일씩, 몇 천일씩 투쟁을 하니까,

어느 순간, 그 시간을 지나온 사람들의 얼굴이 흐려진다.

사람의 얼굴이 있었나, 싶은 생각이 들도록.

 

사람이 죽어도 세상이 변하지 않는걸 보더니, 불감증에 걸렸나보다.

나 그래도 나름 센시티브한 인간이었는데. 쯧.

 

 

시간이란 그래도, 모든 곳에 있다.

모든 인간, 모든 생명체, 무생물들, 혹은 그 무엇이든간에,

신비롭게도 모든 것은 "어떤 시간"들을 버티고 있다.

어버이협회같은 보수단체의 어떤 사람도 인간의 삶이란 시간을 지나고 있을것이고,

정치인도, 어느 그룹의 회장도, 혹은 자기는 세상 일에는 무관심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그리고 3년이 넘게 거리에서 투쟁을 하는 사람들도,  고맙다고, 여러분 덕분이라고 인사하는 사람들도,

대법원 판결 결과를 보고 쓰러지는 사람들도, 그 판결을 내리는 사람들도.

 

그래,

망원경을 쭉 빼서 멀리서 세상를 보면,

어쩌면 미군기지 확장 반대 투쟁 같은거, 강제 철거 반대 투쟁 같은거, 비정규직 철폐 투쟁 같은거.

아옹다옹 그냥 인간사의 하나 처럼 보일 수도 있겠다.

gs건설 사장도 사람, 용산에서 죽은 사람도 사람, 이것도 사람, 저것도 사람.

다 같은 사람인데 왜 이럴까 정말.

인간을 미워하면 안돼겠지-_-a;

 

 

시간은.

모든 곳에 있지만, 별로 공평하진 않은 것 같다.

 

나 무슨말을 쓰고 싶었던 걸까-_-;;;

주저리주저리.

몰라.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되다니....

오전중에 일어나야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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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살아야 할끄나?

 

 

요 며칠 새 마음이 안정되면서 급(!) 끓어오르는 걱정;;;

(마음이 안정되면 편할 새 없이 걱정을 해야하는 타입이로고...-_-;;)

어떻게 살아야 할까.

흐르는대로 사는 것도 좋지만,

이제는 약간의 결단이 필요할 때인 것 같다.

내년 2월이면 졸업을 하고, 6월 즈음이면 지금 하고 있는 작업이 끝날 것이다.

졸업을 한다는건, 별로 의미 없는 일 같이 보여도

근 20년간 갖고 있었던 '학생'의 정체성을 버리는 것이고,

(요 3~4년은 그 정체성이 희미하긴 했지만;;)

작업이 끝난다는 것은 변화한다는 뜻이고

무언가 잠정적으로나마 결정해야한다는 뜻이다.

 

#

어떻게 살까?의 질문에는 이런게 포함되어 있다.

"어떻게 먹고살까?"

 

흠..

지금 상황에서는 그냥 회사에 취직해서 살 것 같지 않다.

왜 이 가능성은 늘 가장 끄트머리에 있는걸까ㅠ_ㅠ

회사에 다니거나 안정적(물론 비정규직이겠지만 지금보다 정기적으로 임금이 나온다는 측면에서 안정적)인

직장을 다니는 것도 그리 나쁜 일은 아니라규ㅠ_ㅠ

이것도 비중을 좀 두란 말이야!!!

 

-_-;;;

 

암튼, 회사나, 어떤 조직, 혹은 단체에 속해서 일하는건 못하지 않을까-_-;;;;;

안한다기보다는 못하는 것이............;;;;;;;;;;;;;;;;;;;;;;;;

어떤 직위, 직책을 갖는 것에 대한 부담이 있다.

포지션을 갖는 이름을 다는 것이 무섭다. 책임을 회피하고 싶은건지도.

 

암튼. 단체나 이미 있는 큰 조직(?)에 속하는 것도 내 계획 속에서 상위권은 아니다.

 

문제는 상위권이 없다는 것이 문제-_-;;;;;

 

아마도 미디어 교육이나, 영상 알바 같은걸 하면서 살게 되지 않을까?

그렇다면 어떻게 삶을 담보할 수 있을까?

이건 주위 사람들과 더 이야기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축복이겠지.

 

이 시대에는 당연하게도 '먹고사는 것'은 아마도 '직업'과 비슷한 말이 아닐까.

그런 측면에서 앞으로의 활동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된다.

흠. 뭉뚱그려서 활동가라는 '직업'을 갖는 것이 아마도 제일 많이 생각하고 있는 삶의 형태가 아닐까.

근데 뭔가 리스트가 좁은 것 같은 이 기분은 뭘까-_-;;

 

어떤 활동을 해야할까?

아무래도 역시 미디어운동을 하게 되지 않을까.

정확하게 뭘 할진 알 수 없지만.

그건 다큐멘터리를 만든다는 말이 될 수도 있지만 꼭 동의어는 아니다.

지금은 이렇게 다큐멘터리를 만든다는 것, 다큐멘터리스트라는 이름을 갖는다는 것이

나에게 맞는 일인지 좀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는 중이다.

물론 이건 당장 결정해야 할 문제는 아닐 것이다.

지금 작업을 마치고 몇 십년 동안 작업이라고 불릴만한 건 하나도 안하다가,

어느날 갑자기 카메라를 들고 싶어질 수도 있다.

혹은 프로듀싱, 연출, 조연출, 촬영, 편집 뭐 이런식으로 나눠진 역할,

역할이 나눠졌다고는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한두사람, 두세사람이 거의 맡아서 작업을 다 해야하는

환경의 문제일 수도 있다. 그 중 어느 하나에 큰 재미를 느낄 수도 있지..

음. 근데 지금은 잘 모르겠다.

꼭 그렇게 하고싶은 일인지, 잘 할 수 있다고 느끼는지, 내가 해야하는 일이라고 느끼는지...

정말로 하고 싶다고 하더라도, 나는 준비가 더 필요하지 않을까.

근데 다큐멘터리 작업이란걸 하고 싶긴 한거야? 그것도 잘 모르겠다.

욕구가 솟아오르지 않는다.

 

다큐멘터리스트로서 카메라를 든다는건,

단순히 감독이라는 이름을 갖는것이 아니라,

어떤 기술이 뛰어나야 한다뿐 아니라,

더 많은 것을 요구한다는 생각이 든다.

결국은 카메라 앞에 서 있는 사람과, 스크린 앞에 앉아있을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인간이라는 생각이 든다.

결국은 인간과 사회와 관계를 맺는, 하나의 인간이라는 거다.

그래서 더 많은 통찰이 필요하고, 마음속에 더 많은 공간이 필요하다. 고 느낀다.

음. 근데 지금의 나는 너무 비좁고, 비좁고, 비좁다. 시야도, 통찰도, 마음도.

그래서 불안하다.

왠지, 생각보다 엄청난 일에 뛰어든 것 같은 느낌.

무엇을 하더라도 그렇게 느껴지긴 하겠지?

늘 스스로를 닦아야 하고, 채우고 비워져 있는 스스로가 발휘되는 순간이 바로 기쁨의 순간일 것이다.

흐흐흐-_- 채울 곳은 텅 비었고, 비울 곳은 너무 꽉 차있구나. 쩝.

 

 

#

어떤 태도로 살아야 하냐는 질문도 같이 나온다.

 

지금 촬영하고 있는 공부방 선생님들에게도 영향을 받고 있고,

주변의 사람들에게서도, 다큐멘터리 영화들에서도 영향을 받고 있다.

 

인디보 사람들은 꿍짝꿍짝 맹꽁이 탈도 만들고 있고,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사람들은 각자의 현장에서 마음을 다 하는 것 같다.

장기투쟁하던 몇 곳의 사업장은 협상 타결이 됐고, 몇 곳은 여전히 싸우고 있다.

누군가는 죽은 이를 그리고 있고, 누군가는 살아갈 이들을 그리고 있다.

누군가는 치열하게 전선을 긋고 앞에서 싸우고 있고,

아마도 나처럼 헤메고 있는 사람도 있을테지.

물론 지금 이 시간에 빙하도 녹고 있다.

 

너무나 많은 일이 한꺼번에 일어나고 있고,

나는 고작해야 내가 하고 있는 한두가지 일에 집중하는 것 밖에 못한다.

심지어 뉴스도 잘 안본다.

 

난 원래 타인에게 별로 관심 없는 인간-_-;;;

 

어떤 태도로 살아야 하냐는 질문은, 어떤 사람이 되고 싶냐는 질문과도 비슷하다.

혹은 어떤 활동을 하고 싶냐는 질문과도 비슷하고.

삶 전반을 꿰뚫는 어떤 것.

아마도 나중 나중에 발견하게 되겠지.

죽을때까지 발견하지 못할 수도 있겠다.

그래도 괴로워하면서 살고 싶지는 않다.

 

스스로에게, 자신이 하는 일에 의미부여를 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그 의미부여가 온전히 자기자신만을 향해서는 곤란하다.

 

이 1년이 당황스러웠던 것은,

자기자신에게만 의미부여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는게 아닌가, 하는 의문을 품었기 때문이었을거다.

 

문정현 감독의 <용산>을 보고, 뭔가 퍼뜩했다.

뭔가 영화와는 별로 상관 없는 것 같은 깨달음 같기도 하지만;;;

스스로에게 했던 문제제기에, 스스로가 품었던 의문에 대한 대답이 언뜻 스쳤기 때문이다.

 

결국 나는 나를 가장 중심에 놓고 살 수밖에 없다.

나란 인간이 작고 비좁은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당연히도 나는 나의 행복을 추구하며 살고 있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 것이다.

그러나 그것만은 아니다.

 

내가 사회를 '위한' 어떤 일을 한다는 것은 아니다.

'대의에 희생하는 숭고한 나'를 설정하고 싶지 않다.

그것은 여전히 유효하다.

희생따위 개나 줘버려.(개 미안 ㅠ_ㅠ)

누군가의 희생을 통해서 오는 의미는 더 이상 '대의'가 아니다.

 

그러나 자기 자신을 위해서 산다고 해도,

그것 이상의 어떤 것을 당연히 만들어낼 수 있다.

간단한 사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니깐?;;

 

스스로와, 주변과, 커다란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며 살고 싶은가.

모든 것을 다 할 수 없다면 한계와, 우선순위는 어떤 것이 될 것인가.

 

내가 좀 더 성장하고, 삶의 태도에 대한 고민이 좀 더 명확해졌으면 좋겠다.

"00한 태도를 가져야 해!" 라며 확정한다는 뜻이 아니라.

 

나침반이 있었으면 좋겠다.

잘 가고 있다는 신호를 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

아마도 변하지 않는 나침반 같은건 종교에서나, 신에게서나 받을 수 있겠지.

 

뭐, 가끔은 신이 필요할 때도 있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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