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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권석 할아버지

 

#목요일

 

목요일에는 집에 내려갔다.

아직 정신을 온전히 찾은 건 아니지만,

일반실로 올라간 삼촌을 보러 엄마가 서울로 올라가야 한다고 했다.

엄마가 서울에 다녀가는 동안, 가게를 보러 내려갔다.

 

동네는 조용했고,

가끔 술 취해 비틀거리는 손님들이 소주를 사갔고,

약간 어려보이는 남자가 담배를 사갔고,

어린 아이들이 와서 새콤달콤이나 뿌셔뿌셔를 사갔다.

 

아빠는 막일을 나갔다고 했다.

 

저녁에 가게로 돌아온 아빠에게서 흙냄새가 났다.

오랜만에 본 아빠는 더 늙어있었다.

그래도 나는 콧속으로 들어오는 아빠의 흙냄새가 좋았다.

당뇨라 몸도 안좋으면서 막일은 왜 다니는지.

철딱서니 없이 그저 그런 생각만 들었다.

두 달 전에 난 상처가 낫질 않는다며

걱정 시키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러곤 곧 동네 아저씨들과 놀러 나가버렸지만.

 

#금요일

 

전날 언니랑 엄마랑 술을 또 진탕 마셨다.

아빠가 한잔 먹고 남긴 고량주를 전부 마셔버렸더니 속이 쓰리고 토할 것 같았다.

가게로 해장국을 시켰는데 30분이 지나도 오지 않자

애꿎은 엄마한테 막 짜증을 냈다.

엄마에게 나를 확인 받는 방식은 늘 그런것이었다.

속 쓰린데 밥도 못 먹고 가겠네.

이렇게 스스로를 자학하는 걸 보여주면 엄마가 약간 떨떠름한 표정으로

그렇게 빨리 가야 되? 밥은 먹고 가야지.

라고 말한다.

언제나 엄마가 오바하지 않으면서 나를 걱정하는 것에 불만이 있었다.

왜 좀더 격정적으로 나를 걱정해주지 않는거야? 하며.

 

해장국을 기다렸다.

밥은 먹고 가고 싶었으니.

 

니*에게 카메라를 주러 새 대추리로 갔다.

팬션촌처럼 예쁘게 지어놓은 집들 사이로 콩쥐놀이를 하는 니*와 마리*가 보였다.

길에서 마주친 노영희 할머니댁에 놀러갔다.

"마리* 화장실 가고 싶대요!"

라는 말을 하고.

 

할머니네 집은 다른 집들에 비해 작은 편이었다.

뭐, 작은 집들이 꽤 많긴 했지만.

 

아직도 대추리를 생각하면 억울하고 분하다고 하셨다.

대출받아서 지은 집이라 마음이 편치 않다고,

돈 많은 사람들이야 모르지만 내년에 공공근로도 끝난다는데,

그 이후에 어떻게 먹고살지 막막하다고.

데모라도 해야겠다고 하셨다.

그 때 너희들도 다 와~, 다 와서 도와줘야해?

 

나는 어찌할 바를 몰라 헤실헤실 웃기만 했다.

니*는 애인이 있다고 뻥쳤고, 할머니는 얼렁 시집가라고 성화셨다.

아직도 이런데 다니냐? 직장다니면서 돈벌어야지!

 

쇼파에 앉아서 주름진 얼굴로 보*의 안부를 물으셨다.

나는 그이는 잊지도 않아. 꼭 이렇게 기억나.

 

보*은 대추리에 있을 때, 들소리에서 미디어교육을 했는데,

노영희 할머니와 함께 영상을 만들었다.

아마도 그 때의 기억이 각인되었나보다. 각인될만한 기억이었을거라 짐작한다.

 

어디를 돌아다녀볼까 하고 헤메다가 김영녀 할머니댁에 놀러갔다.

들소리 애들이 왔다고 하니 엄청 기뻐하며 반겨주셨다.

할머니 얼굴에는 주름이 는 것 같았고,

다리가 불편하신데, 이제는 운동도 잘 안나가신다고 하셨다.

이리로 이사하고 나서는 한번도 밖에 안나갔어.

 

이제는 왠지,

 

 

김영녀 할머니 댁에 나와서 나는 인천으로 가야했다.

머무를 시간이 별로 없었다.

 

마을 입구에서 강권석 할아버지와 한대수 할머니를 만났다.

한대수 할머니는 마당을 쓸고 계셨고, 강권석 할아버지는 오토바이를 타고 밭에 다녀오시는 길이셨다.

지금 왔어요?

아뇨, 좀 전에 왔는데 지금 가요;;;

가만있어봐, 버스 시간이..

지금 바쁘게 가면 저기 삼거리 있는데서 버스 탈 수 있겠네.

네 감사합니다. 안녕히 계세요.

내일 올거죠?

네? 네.. 내일올게요

뻥쳤다. 내일은 못온다.

 

길을 나서려 하자 강권석 할아버지가 오토바이를 태워주신다고 했다.

버스타는데까지 가려면 바쁘게 가야한다며.

나도 급하기도 해서 좀 민망하지만 할아버지 오토바이 뒷자석에 앉았다.

 

삼거리에서 10분쯤 기다렸는데 버스가 오지 않았다.

이번 버스는 놓쳤겠거니, 20분 후에 있다는 버스를 타야겠거니 생각하고 있었는데,

강권석 할아버지가 오토바이를 타고 내달려 오셨다.

아무래도 버스가 간거 같애, 객사리까지 데려다줄게요.

 

다시 할아버지 오토바이 뒷자석에 앉았다.

내일 오지요?

네, 내일 올게요.

 

삼거리로 나올 때였나, 객사리로 나올 때였나.

할아버지가 한번 더 확인을 하셨다.

나는 아마 지킴이 명단에서 제명당하고도 더 큰벌을 받을 거다.

 

추운데 오토바이를 타고 가려니 달달 떨렸다.

할아버지도 '빔' 이라고 써진 캡모자를 다시 눌러써야 했다.

근데 참,

우리가 무엇이라고, 내가 뭐라고.

찬바람을 맞으며 이 사람의 등짝을 보고있노라니,

오토바이라 춥지만, 밭일하고 온 터라 운동화는 꺽어 신었지만,

바래다 주시겠다는 마음이 너무 좋아서,

그게 너무 좋아서 왠지 미안해졌다.

 

할아버지에게서도 흙냄새가 났다.

내 몸에서도 흙냄새가 날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객사리까지는 가지도 않았는데 추팔공단을 지나자 3번 버스가 옆에 섰다.

대로에서 갑자기 버스 문을 두들겨 버스에 올랐다.

급하게 버스에 타느라고 할아버지께는 인사도 제대로 못드렸다.

못난년.

 

 

 

#일요일

 

토요일에 있었던 마을잔치에 다녀온 니*가 집에 왔다.

마을잔치가 어땠는지, 백서가 어떻게 나왔는지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

물론 좋은 얘기는 별로 없었다.

분위기는 싸-했다고 한다.

좋을턱이 있나.

쫓겨나서 빛져서 새 집 지으면, 집이 깨끗하다고 좋은가? 뭐.

노영희 할머니 댁 화장실에서 봤던,

쌔삥에 삐까리한 집과 어울리지 않게 있었던 놋대야가 생각났다.

 

지금와서 대추리를 기억하는 것은,

쫓겨나와야 했던 당시에는 너무나 슬펐지만,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생각하게 한다.

나는,

어떤 순간이고, 어떤 투쟁이고, 어떤 공간이고.

꼭 함께하는 사람들을 생각해야지.

물론 그 와중에 당연히 상처받는 사람은 생기겠지만.

언젠가 누군가에게 들었던 말처럼,

애도하는 것, 생채기 난 이후 그 상처를 보듬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라는걸,

잊지 말아야지.

 

 

아, 근데 지킴이 명단에서 제명당하면 안되는데.. 어쩌지.. 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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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21

 

#

알바 때문에 어떤 감독을 만나러 갔다.

 

이런 저런 일 얘기를 하고,

점심때가 되서 밥을 먹자고 하길래 같이 밥을 먹었다.

 

 

인사치례처럼 감독님은 뭐 작업하고 있는게 있냐고 물어봤다.

일단 먹고사느라고 바쁘긴 한데,

오랫동안 작업 해오던 것을 계속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조용하고 차분해보였던 그 사람은 이렇게 말했다.

"제 생각에는요, 다큐멘터리는 이것저것 하는 것 보다 한 두가지를 집중해서 오랫동안 하는게 좋은거 같아요.

 이렇게 하다보면 언젠가는 좋은 작품이 나오겠죠."

 

방송국에서도 오랫동안 일했고, 꽤나 오랫동안 작업해왔을 사람에게

"언젠가는 좋은 작품이 나오겠죠" 라는 말을 듣다니,

왠지 충격 받았다.

 

그리곤 돌아오는 지하철 안에서 갑자기 우울해졌다.

 

나는 얼마나 편협한 인간이던가.

얼마나 얕은 시선으로 사람을 가볍게 판단하려 하는가.

 

내게 있던 껍데기들을 벗기고 보니

가장 안 쪽에 웅크리고 있는 괴물같은 욕심이 보였다.

 

그래.

다큐멘터리가 완성되면,

그래서 영화가 나오면,

잘 했다고 칭찬받고 싶다.

상도 받고 싶고, 훌륭하다고 인정받고 싶다.

 

그런데,

그것밖에 없다.

 

어떤 때는 그런 욕심이 좋은 자극 중에 하나가 되기도 한다.

근데 지금은 그것밖에 없어.

앞도, 뒤도, 관계도, 아무것도 없이.

다른것은 안중에도 없고,

오로지 그 욕심밖에 없다.

 

바닥을 치는 순간이다.

나라는 인간은 얼마나 더럽고 위선적인가.

 

촬영할 때 종종 느끼는 외로움은 나의 껍데기 때문인 것 같다.

 

아직도 스스로를 내몰고 있는 것은 이 '욕심들' 때문이 아닌가.

 

어쩌면 그냥 인정받고 싶고, 칭찬받고 싶은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어쨌든 상을 받는다는 것, 그런 방식으로 칭찬 받고 싶은건,

남들 위에 서고 싶다는 뜻인거다. 경멸스럽게도.

 

그런 욕심이 강했다. 강하다.

 

그런데, 그걸 버리고 나면,

무엇으로 작업을 계속하지.

 

난 원래 이런 인간이었던가.

 

웃기게도 내가 아니라 주위의 모든 것이 증오스럽다.

정말로 사춘기다.

나아지질않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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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17

 

#평범한 삶의 진리.

 

오늘 인천노동문화제에서 생각했던 것.

 

내가 촬영하고 있는 공부방은,

그냥 보기에 정말 평범하고도 평범한 사람들의 무리이다.

 

물론 지역에서 탁아소-어린이집-공부방-지역아동센터로 변화한 곳으로,

(실제로 이 공부방이 이전에 탁아소나 어린이집을 운영하진 않았지만, 인물들의 면면이 그것을 경험하고 지나왔다)

어떤 '지역운동' 이라는 것과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는 않다.

 

근데 사실,

그건 있다.

종일 공부방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정말로 아이들이 와서 공부하고, 선생님들은 공부를 봐주거나 밥과 간식을 준비한다.

생협 물건을 쓴다는 것 말고는 딱히 뭔가 특별해보이지 않는 곳이다.

 

음.

그래서 스스로에게 계속 질문할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해야하나? 하고.

 

투쟁이 이뤄지고 있는, 혹은 이뤄졌던 곳의 (기록)다큐멘터리가 작업자의 자기 동력을 생성하면서도 힘들다고 느끼는 것은,

실제로 계속 급박한 일이 벌어지고,

지금의 투쟁의 의미들이 계속 확장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종의 '동지적 관계'로서 스스로도 그 투쟁에 집중하게 되기 때문에 평정을 잃기가 쉽상이다.

쉽상이라기보다는, 처음부터 평정따위는 없다고 보는 것이 맞을지도.(물론 내 경우지만;;)

그래서 거리두기가 참 힘들다.

그러나 그 다큐멘터리가 세상에 태어나야만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물론, 디테일한 부분에서 헷갈리는 부분들은 많겠지만-)

그건 소위 '감독'이라고 불리는 사람, 그 작업자 또한 그 사건, 그 사람, 혹은 무엇이든간에 어쨋든 '그것'에

이미 푹 마음담그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말하지 않으면 안되는 어떤 것.

 

지금 작업을 하면서 나는 사실 꽤 오랫동안 고민을 해왔고, 여전히 하고 있다.

이 곳에서, 이 사람들과 함께 '말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은 무엇일까? 하고.

 

오늘 노동문화제에서 공연을 구경하는 선생님들과, 아이들을 보면서 그런 생각이 조금씩 다시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평범하게 '잘' 사는 방법에 대한 것.

그 '평범하게 잘 사는 것'과, 공부방은 어떻게 연관 지을 수 있는지,

그리고 평범하게 '잘' 사는 것이 과연 무엇인지?

그 숙제를 풀지 못하면 영화는...

 

평범하게 살면서, '잘' 사는 방법.

지금 떠오르는 것은 '편견을 갖지 않는 것', 밖에 생각이 안난다.

선생님들이 은연중에, 생활중에 던지는 한두마디에 녹아있는 그것.

그래서 잡기 힘든 그것들 말이다.

 

음..

근데 사실, 선생님들은

중학생들에게 학생인권운동을 하라고 말하지도 않는다.

고등학생, 이제는 졸업해서 사회인이 된 사람들에게도

어떻게 살아야 한다고 강요하지는 않는 것 같다.

(예를 들어, 회사에 들어간 사람이 있으면 노조에 들라던지....근데; 지금 내가 아는 선에서는 안정적인 '직업'을 가진 청년층은 주변에 없다. 나는 고민하고, 방황하는 청년들만을 알고있을 뿐이다.)

 

흠..

 

편견없이 사는 것, '잘' 사는 것이,

꼭 '투쟁'하는 삶이어야만 하는 것일까?

아니라면 어떤 삶이어야 하는 것일까?

어떤 '태도' 여야 하는 것일까?

 

나는 행동/저항하지 않으면 삶이 바뀌지 않는다고 믿는 사람이다.

아이들에게 더 강력하게(!) 말하지 않는 선생님들을 어떻게 봐야할 것인가.

 

뭐.. 그래도 중요한 것은 역시 '태도' 겠지만..

너무 두루뭉실하고 어렵다-_-;;;;

흠........... 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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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극

 

#

부산 영화제에 다녀왔다.

영화는 단 두 작품 밖에 보지 못했다.

예매 안했더니 올매진이라-_-;;;;

표를 구할 수가 없드만-_-;

뭐 그리 사람 많음;

인천인권영화제도 매진행렬ㅋ원츄ㅋ

 

아무튼, 부산은 여러가지 측면에서 내게 자극적이었다.

 

# 두 편의 영화, 감독과 주인공들

<종로의 기적>, 그리고 <꿈의공장>

두 편의 영화 모두, 내게 감동을 줬던 것은

감독들과 함께 서 있는 수많은 주인공들이었다.(물론 영화도 좋았다)

각 감독들이 그 주인공들 사이에서 웃고 떠들거나 심각한 이야기를 할 때마다,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아마도 영화를 잘 만드는 것은, 그런 것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이 계속 서로를 함께 봐주고, 서로를 밀어주면서,

작품이 탄생한다는 것이 감독 하나의 고뇌, 몇 스태프의 험난했던 여정이 아니라,

그렇게도 많은 사람들이 함께 했고,

내가 컴퓨터 앞에서 마우스를 잡지는 않았어도,'내 영화'라고 생각하게 하는 것.

 

감독이 아니라 영화에게,

세상에 태어나줘서 고맙다고 말 할 수 있는 그런 영화 말이다.

 

캬~

내가 썼지만 감동적인 멘트야!!...........;;; 물론 너무 낭만적이긴 하다-_-a

 

어쨌든

그래서 나는 다시한번 스스로에게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나의 주인공들에게 솔직한가.

그녀들/그들과 어떤 공통의 '지향'이나 '꿈'에 대해서 '함께' 말할 수 있는가?

 

...

 

잘 모르겠다.

 

일단 나는, 나를 계속 압박해 왔던 사실,

그것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앞뒤 없이

"나는 영화를 찍기 위해 당신들을 만나러 왔소"

라며 그렇게 관계를 맺었다는 압박 말이다.

 

지금 작업에서 나의 시작은

"내가 이야기 하고 싶은 것이 있다. 그런데 그것을 당신들과 함께 이야기 하고 싶다"

가 아니었다.

정말로 장편 다큐멘터리를 찍어보고 싶어서, 프로필에 감독이라는 타이틀이 들어가면 멋질 것 같아서,

집도 가깝고 마침 학교도 가기 싫고. 그랬던 차라서.

그래서 생전 안면도 없는 사람들에게 가서 얼굴을 보자마자 불쑥 카메라를 들이댔다.

 

내 생각에 난 참 싸가지가 없는 것 같은데,

왠일인지 주인공들은 참 친절하기 그지없다.

왜 나한테 이렇게 잘해주는거지?-_-;;;;;;

 

암튼,

그래서인지 저래서인지.

마음속에 압박이랄까, 강박이랄까. 그런것들이 항상 있었다.

잔뜩 움츠러들어있고, 경계하고 있고. 긴장하고 있었다.

 

마음을 좀 놔도 되고, 좀 쉬어도 된다고, 편하게 생각하자고.

밤바다를 바라보면서 나를 그렇게 다독였다.

 

 

영화에서 무슨 얘기를 할지, 나는 사실 아직도 갈피를 잡지 못했다.

흠.

그러고보니 관계맺는 법, 유지하는 법에 대해 주인공들에게 물어나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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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에 오다.

 

 

<용산 337가지로 표현하기>가 대만의

SHOOTING LEFT ASIA '10

이라는 작은 영화제에 초정되어서 대만에 왔다.

지금은 대만.

근데 기분이 이상하다.

공항에서부터 S와 함께 오고,

대만에 와서도 한국말 잘~하는 대만 사람이랑 계속 한국어로 얘기하니깐,

별로 대만같지가 않다;;;

 

간판들이 한문인거 빼면 한국과 거의 비슷하다.

야시장을 지나서 오는데,

셔터를 내린 시장 골목 안쪽을 들여다보니 정말 한국과 비슷.

 

Shooting Left Asia 에서는 이번에 한국에 포커스를 맞춰서 한국 영화들을 상영한다.

상영작은

<경계도시2>

<레즈비언 정치 도전기>

<외박>

<용산 337가지로 표현하기>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

<대추리에 살다>

<땅의 여자>

 

이렇게 7작품이다.

 

<용산 337가지로 표현하기> 와 <대추리에 살다>

상영 후 이야기 시간에 같이 이야기를 나누기로 했다.

 

철거지역을 돌아다니면서 야외 상영을 한다고 한다.

아직 영화제와 관계된 사람은 한명밖에 만나보지 못했다.

(오늘 밤에 왔으니깐념.☞☜...)

 

어떤 사람들을 만나게 될지, 궁금하다.

대만에 대해서는 저~엉말로 아는게 없는디-_ㅠ;;;

 

무슨 복인지 용산 덕분에 외쿡에 두번이나 다니게 됐다.

근데 사실 내가 와도 되는건지 원..

대만도 엄청나게 재개발이 진행될거라고 한다.

타이페이만 400군데라고 했던가?;

그래서 용산의 상황을 (영상을 통해서) 보고,

철거 투쟁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힘을 얻고자 한다는 설명을 들었다.

그러니 이거 뭐 잘 할 수 있을까요;;

쵸큼 걱정되지만...

 

날씨는 조금 후덥지근 하다.

 

아직 뭐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건지 정확하게 아는 건 없지만-_-;;;

일단 내일을 기대해본다.

험난할지도 모르는 대만 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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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9/26

 

#

스킨을 바꿨더니 좀 좋군.

두리반 스킨 이쁘당ㅋ

 

#

역시 뭔가 자극을 받았을 때,

생각이 났을 때 글을 써야 하는데,

정말 금방 그 끈을 놓아버리기 때문에

이런데서 게으르면 대책이 없다.

역시 전미네 토론회 다녀온 이야기를 썼었어야 했었었다능.

이제 기억도 제대로 안나-ㅁ-;;

게다가 이제 생각도, 글도 잘 정리가 안된다. 안써버릇해서-_-;

 

#

요즘 가장 자극이 큰 건 오겡끼데스까. 내가 얼마나 상태가 안 좋은가를 가장 잘 깨닫게 해주는 프로그램;;;

그래서 이거도 좀 후기 같은 것도 좀 잘 남기고 하면 좋을텐데-_-a;;

느므 안된다-_-;; 안 해놓으니 다 날라가는 것 같아;;

 

#

요즘에 나는 계속 과거에 갇혀 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과거 속에서 허부적, 허부적.

스스로 재미없는 인간이라고 느끼는 이유는 아마도 그것 때문일지도.

사람들은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데, 혼자 과거 속에 묻혀살고 있으니.

 

물론 과거의 일을 잘 정리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그것은 늘 현재화 할 때 의미있는 일이 될 것이라고.

나는 아무래도 오만해지기 쉬운 타입이다.

 

그리고 눈 앞에 닥친 것부터 좀 해봐..;;;

 

#

관계의 밀도가 아주 높은 상태.

집약된 에너지의 순환.

응축되고 압축된 의미들의 폭발순간.

 

그런 것들을 지나고 나면 인생이 허무해지는 걸까?

그럼 그런 것들을 한번도 겪지 않은 사람의 인생은 그 자체가 허무하게?-_-;;

아니, '그런 것들'의 정의는 무어란 말이냐!

눈을 떠야 한다.

 

#

상태가 안좋은건 안좋은건데,

안좋다는 건 알겠고 그건 그만 얘기하고 싶고-_-;;

스스로도 징징거리는거 지겹다.(이 말이 몇 번째야 이게 더 지겨워-_ㅠ;;;)

그럼 뭘 해야하나.

진단이 필요한가, 처방이 필요한가.

이상이 필요한가, 현실이 필요한가.

스스로에 대해 생각해야 하는가, 주변에 대해 생각해야 하는가.

 

헷갈리는 건 그거다.

 

잘해나가지 못하고 있다는건 확실하다.

왜냐면 내가 상태가 계속 나쁘니깐-_-;;

잘 하고 있으면 상태가 좋겠지, 혹은 좋으면 잘 하려고 이미 머리를 굴리려고 하고 있겠지.

 

필요한 것을 찾아야 한다.

이 그지같은 상태를 탈피할 무엇인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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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9/15

 

#

외삼촌이 교통사고를 당해서 병원에 입원했다.

의식불명이다.

남들한테만 일어나는 일인 줄 알았더니 바로 내 눈앞에서도 벌어졌다.

사실 좀 얼떨떨하다.

뭐 어떻게 해야하는지도 모르겠고.

 

삼촌은 사십대 중반이 되도록 결혼도 안했다.

못했는지 안했는지. 아무튼.

옆에서 지키고 돌봐줄 부인이나 자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 이모들과 엄마가 더 마음을 조린다.

 

의식불명이라길래 드라마에서 본 것 처럼

가만히 숨도 안 쉬듯이 있을 줄 알았더니

다리를 꿈적거리고 손을 꽉 쥐길래 깜짝 놀랐다.

그래도 손을 꼭 쥘 수 있어서 조금 기뻤다.

맥아리 없이 축 늘어진 손을 봤으면 정말 포기해버렸을것만 같다.

 

중환자실이라 한명씩밖에 면회를 못했다.

나중에 나와서 이모에게

"삼촌이 다리를 막 움직였어!"

라고 얘기했더니

아파서 그런거라고 한다.

의식이 없어도, 마약투여 수준으로 진통제를 놔도,

몸을 비틀어야할만큼 고통스러운가보다.

 

엄마도, 이모들도, 친척언니들도 팡팡 울었다는데,

나는 찔끔. 하고 말았다.

뼈가 다 부스러진 얼굴을 보니 마음이 덜덜거릴 뿐이었다.

 

.

 

담배를 피우고 싶은걸 한참 참았다.

이모들과 헤어지고 멀리 지하철을 타러 가서

며칠만에야 담배를 피울 수 있었다.

왠지 담배는 쓰고 맛이 없었다.

 

삼촌이 눈을 떴으면 좋겠다. 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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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가 복잡한데, 할 일이 쌓여있다.

왜 이런거지?-_-;; 왜 난 일을 제때제때 안 해놨을까-_-;; 한숨부터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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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튼 오늘은 인천인권영화제 정기 상영회 날.

<대추리에 살다> 상영한다.

7시 반, 영화공간 주안(주안역 8번 출구에서 직진).

푸우푸우-

GV사회를 맡았다. 잘해야할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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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찾겠음ㅠ_ㅠ

 

예전에 불로그에서는

어느 불로거의 글을 보던지간에

내가 등록한 즐겨찾기가 상단에 떠 있어서

바로바로 다른 블로거의 글로 이동했던 것 같은데...

 

열심히(?) 찾아보고 있는데..

 

없어! 없어!없어!!!!

못찾겠어;ㅁ;

바로바로 내가 즐겨찾기 한 불로거들의 글을 보고싶다규ㅠ_ㅠ

어디있는겅믜..

 

도와주셈'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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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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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인지 알 수 없게 마음이 휘청거린다.

 

어딘가 지면이 아닌 곳에 계속해서 발을 헛디디는 느낌.

그래서 무엇인지 모르게 불안하다.

 

#

웅크리고 잘 때 커다랗고 따뜻한 고양이가 있었으면 좋겠다.

보송보송하고 보드라운 털로 나를 다 감싸주는.

 

이제 바람이 좀 차졌다.

아침엔 너무 추워서 이불을 둘둘 말고 잤다.

 

#

어제밤부터 불안하고 둥둥 떠있는 마음은 진정이 되질 않고

왠일인지 모든 것이 낯선 곳에 와 있는 것 같다.

 

 

부산에 다녀온 여파가 있는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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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8/31

#

우왕ㅋ

오랜만에 진보넷에 들어왔더니 뭔가 많이 바뀌었다-_-;;

기념으로 일기 좀 써볼까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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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턴쉽 신청을 하느라 학교에 다녀왔다.

교수님께 지금 하는 일이 어떤 것들이고, 얼마나 했고, 얼마나 할 것인지

간단하게 설명하고 승낙받았다.

 

일주일에 한번씩은 인권영화제에서 한 일과 관련한 짧은 보고서를 내야한다.

그리고 기말에는 단순한 느낌모음이 아닌, 이 일, 이 활동이 일반화 될 수 있는 지점을 포착할 수 있는

리포트를 요구하셨다.

 

느티에서 담배를 태우며,

역시 학교는 날 옥죄어..........

라고 생각했다.

 

#

전미네에서 메일이 왔다.

부산에 간다.

 

#

영화는 이리 흐르고 저리 부딪히고 잠깐 멈추기도 하고 훅 나가기도 하면서,

이렇게 저렇게 흘러가고 있다.

이제 더이상은 의미없는 이야기, 재미없는 이야기를 만들면 어떡하지?

라고 조급해하지 않는다.

물론, 완전히 그런 것은 아니고, 또 다른 의미의 조급함이 여전히 존재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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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만들고 있는 다큐멘터리, 인천 인권영화제, 그리고 전미네까지.

(뭐 그것 말고도 기타등등..)

지금 하고 있는 이 모든 일들이.

그래왔다는 생각이 든다.

 

나에게 흘러들어오지 않았다.

스스로 아무 의미들도 흘러들어오지 못하도록, 막아두고 있었다.

고 느껴졌다.

 

'활동' 혹은 '운동' 이라고 부를 수 있었던 이전의 나의 행동들은,

어떤 사건들, 혹은 사람들이 너무나 따갑도록 나에게 스며들어와서,

마음을 던지고 상처를 받고 부딪히면서도,

온 몸을 움추리고서라도 뚜벅뚜벅 열심히 걸어왔었다고 생각한다.

물론 돌아보면 나는 한숨도 안나올만큼 왕바보였던 적도 많고,

너무나 어리석었던 적도 많았지만,

마음을 다하지 않은 적은, 없었던 것 같다.

(물론 완전히 그렇진 않았겠지만 대체적으로는....;)

 

그 쓰라림, 그 따가움들, 그 고독과 괴로움들은

내가 그만큼 마음을 다했기 때문이었다고, 그렇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한참 지나고 난 뒤에 어이없이 눈물을 팡팡 쏟기도 하고,

영양가가 있든 없든, 말이 입안에서 뱅글거릴 새 없이 터져나오기도 했던 것이라고.

 

그런데 올해는 무슨 마가 꼈던걸까.

나는 더이상 울지 않았다.

무엇이든 내가 온 마음을 다 쏟아도 모자란 일일텐데도,

아무것도 마음으로 흘러들어오지 못하게, 막았던 것 같다.

물론 올해 만나는 것들이 유난히 낯선 것들이 많아서, 경계했던 것일 수도 있겠지만,

더이상 상처받지 않으려 방어기제가 작동한 것일 수도 있겠지만.

 

나는 계속, 제3자의 시선을 놓지 않았다. 타인을 타인으로만 보았다.

그래서 만족스럽지 않았던 것이 비판이 아니라 비난이 되었다.

그것이 지금은 좀 쓰라리다.

 

강은 강처럼 흐르게 하라는 말이,

지금 나에게 더 쓰라린 것은

마음은 마음대로 흐르게 하고, 서로는 서로에게 흐르게 해야한다는 마음이 들어서일게다.

나름의 반성이랄까.

이미 내 마음에는 대운하가 만들어져 있었엉 엉엉ㅠ_ㅠ

이명박을 욕할게 아니야 엉엉, 아니 그래도 다른 차원에서 욕은 좀 하겠지만-_-;;

 

모든 것이 그렇겠지만,

특정한 관계/상황에서 괴롭거나 짜증나는 것은 어떤 측면에서는 결국 나의 문제다.

나의 상태의 문제.

 

그리고....

지금 한번, 반성한다고 해서,

한꺼번에 무언가가 확 바뀌진 않을 것이다.

그런 성격의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점점 나이를 먹고 있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무엇을 해야하는지를,

단순하고 뭉뚱그려진,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꿈이 아니라

현실의 조건에서 발을 딧고 고민해야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어쩌면 어른이 되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물론 긍정적인 의미의 어른이 되려면 턱없이 모자라지만,

그 처음을 밟고 있어서 뱅글뱅글 어지럽고 울렁증이 오는,

자꾸만 넘어지고 걷는 것 조차 서투른 상태.

그런 상태이기도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물론, 무엇이든 마음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을, 이제는 알고 있다.

하지만 역시, 마음이 핵심이라는 건, 버릴 수 없다.

 

편견으로 가득 차 있는 나를 만나는 일은,

참으로 괴롭고 부끄럽다.

아마도 살면서 계속 그렇게 되겠지.

그런데 그 깨달음의 속도가 점점 느려지는 것 같아서 두렵기도 하다.

나는 너무나 좁은 마음을 갖고 있다.

더 많이 열어두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내가.

완벽한 사람이 되기를 바라지 않았으면 좋겠다.(물론 늘 욕망하는 것이긴 하지만;;;)

마음을 다 하면 무엇이든 될 것이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따뜻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늘, 계속 가지고 있고,

점차 그렇게 되어가고 있다고 느끼게 되었으면 좋겠다. 오류에 빠지지 않으면서.

 

생각해보면 나는 주변에 참 좋은 사람들이 많이 있다.

내가 꼿꼿이 잘 서 있을 수 있다면,

아니,

내가 소리치면,

언제라도 달려와서 때려주거나, 붙잡아주거나, 다독여 줄 사람이,

주변에 많이 있다.

내가 잘 서 있을 수 있게 해주는 사람들이 있다. 많다.

무려 때려줄 사람도 좀 많은 듯.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그것이다.

나는 언제나 나의 편견과 마주치게 되겠지만,

편견을 깨닫는 순간을 만드는 것은 나의 몫이고,

내가 온갖가지 편견에 둘러쌓여 있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그 편견을 깨달았다고 말을 하면

나를 떠나지 않고, 나의 말을 들어줄 사람이 있을 거라고.

그것을 믿는 것.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그것이다.

 

 

 

음..

솔직히 말하면 이런 글을 올리는 것은 용기가 필요하다. 공개로 할까 비공개로 할까 계속 고민중-_-;;

왠지 아는 사람은 다 볼 것 같은 진보넷 불로그에다가

이런 부끄러운 짓거리를 공개한다는 것이-_-;; 게다가 실명거론하며...;

아직도 좀 껄끄럽기는 하다;;;

 

음..

그래도,

말을 시작한다는 것은,

부끄러움을 말한다는 것은 말의 시작임과 동시에 마음의 시작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말을 해 놓으면,

내가 나태해지려고 할 때 더 많이 부끄러워져서

안그럴려고 하지 않을까...? 뭐-_-;; 반대로 아예 마음을 닫고 막가버리거나 할 수도 있지만;;;

음...... 그러면 역시 와서 때려줄 사람이 있겠지-_-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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