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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에서 찾기놔만의 일기장+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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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5/24

#

요며칠, 열이 나고 잠이 쏟아졌다.

열이 난 줄은 모르고 그냥 잠이 쏟아지는 건줄 알았는데, 몸살끼가 있었나보다.

등이 흠뻑 젖어서 깨어난 다음에 열이 났었다는 걸 알았다. 

3일을 먹고자고 농땡이 치고 땀빼고 잤더니 왠지 깨운하고 기분이 좋다.

대신 지난 주에 했어야 하는 일들 중 큰 건을 몇 개 그냥 지나쳐버렸다.

하나는 멍청한짓을 하다가가 멍청하게 놓치고, 하나는 그 멍청한짓 때문에 포기한거였는데 결국 멍청한짓이 멍청한짓을 부른 꼴이 되었다. 아 멍청이.... 그 외에도 소소하게 멍청이 짓을 참 많이 했지만 패스...

 

#

열다섯쪽이 안되는 기획 초안은 왜이렇게 보기 싫지-_-;;;

나는 보통 내가 쓴 글을 보며 좋아하는데, 이건 당췌 보고싶지가 않아..

다시 꼼꼼하게 보고 수정하고 덧붙이고 오리고 해야하는데 말이다.

이렇게 해서는 아무데서도 제작지원을 못받겠지... 허허허. 근데 난 왜 이렇게 놀고있는가...

 

#

내가 경험했던 '현장' 이라는 곳들은 대개, 사고방식에 큰 변화를 가져오거나, 지식을 많이 알게 하지는 않았다. 내가 현장에서 필요한 공부를 안해서 일 수도 있지만;; 

현장에서의 '공부'는 학교 다니며 책보며 해왔던 '공부'와는 좀 다른 느낌이다.

넓게 보면 '공부'라는 것을 구분하기는 어렵지만,

사회의 잘못된 구조라던가 그것의 철학적 함의라던가 정치학적 진단이라거나(굉장히 한정적인 의미이지만) 이런건 오히려 정말로 책을 보는 것이 훨씬 능률적이었던 것 같고..(그 한정적인 공부를 안해서 이러쿠나. 큼.)

현장에서 배우게 되는 것은 대부분 '태도'에 관한 부분, 그리고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치는 부분은 나의 관계지형이 바뀌는 것이었다.

특별히 무슨 사상으로 무장했다거나, 무슨 대 혁명이 일어나길 바라거나/일으키길 바라거나 하는 것도 아니고, 애매모호하게 대충 이런건 좀 아니지 않나... 이건 좀 심하지 않나... 정도의 태도로 근근히 활동을 이어오고 있는 내가 아직도 어물쩡 이 동네를 기웃거리고 있는건 '친구들이 다 여기 있어서...' 이기도 한 것이다. 아는 사람 전부가 운동권인건 별로 안좋다고 생각하지만;; 고민을 터놓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고, 찾아서 물어볼 수 있고, 의견을 나눌 수 있는 그런 사람들이 공부를 하거나 적극적으로 어떤 운동을 하거나 작품을 하고 있다는 것은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물론 '운동'이 '건강'을 보증해주지는 않는다.) 

근근히 이동네를 떠돌다보니 아는 사람들도, 좋아하는 사람들도 대부분 이 동네에 있다. 험한 동네에서 운 좋게도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어서(누군가의 말마따나 온실 속 화초는 전혀 아니었으니, 깊은 산속 옹달샘 안이었달까...) 좋은 기억도, 여전히 좋아하는 마음들도 많다. 이렇게 형성된 주변지형이 나를 계속 이렇게 머물게 하는 동력이기도 한 것 같다. '좋아하는 사람들로부터 멀어지고 싶지 않다' 라는 마음이. (쓰고 보니 진짜 별로다)

순수한 기대라거나, 끌어모을 수 있는 간절함의 최대치, 쏟아부울 수 있는 열정, 식지 않는 분노 같은 이름을 붙인 병은 애저녁에 동이 났다. 그런건 이제 없어서 도대체 뭘로 그렇게 나를 불태웠던건지 이제는 알 수가 없게 됐다. 그리고 별로 꿈꾸는 것도 없고, 게으름을 피우고, 그저 그렇게 목숨을 붙이고 사는 내가 왜 계속 이 험한 동네를 맴도는가를 생각해보면 그 이유밖에 안남는 것이다. 아니라고 항변하고 싶어서 지금 이 작업을 하겠다고 한건지도 모르겠다. 

 

물론 꿈꾸는 것은 있다. 냉소하게 되어서 그렇지.

물론 기대하는 것도 있다. 점점 더 개인적인 열망으로 차오르게 되서 그렇지.

 

음.. 이렇게 냉소하려고 쓰기 시작한게 아닌데 왜이랴...

아무튼, '활동가의 삶'과 '장기투쟁의 삶'은 당연히 다르고, 그리고 '장기투쟁'을 설명할 다른 언어들이 많이 있지만, 이 '관계지형의 변화'에 대한 부분은 비슷한 지점이 있다는 생각이 들고, 어떻게해서든 꼭 넣고싶다는 생각.

이 생각 때문에 이 글을 쓰기 시작한건데 왜 이렇게 된거지...ㅇ-<-<...

오래 투쟁한다는 것은 특히나, 이전에 살았던 삶과 단절되면서 새로운 관계가 생겨나고 주변이 바뀌게 되는데, '투쟁'이라는 험난한 길을 갈 때 이렇게 구성되는 주변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효율이나, 투쟁의 승리 같은 면이 아니라 인간적인 관계의 측면, 일상적인 생활인의 측면에서도 말이다.

어떤식으로 표현할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이 '관계지형의 변화', 그리고 그 관계의 중요성 같은걸 다큐에 꼭 집어넣고 싶다. 그리고 이것으로 '이해할 수 없을 정도의 긴 투쟁'의 일부는 설명된다고 생각한다. 내 다큐의 목적이 장기투쟁 이해하기도 아니고, 그렇게 될 수도 없지만, 자연스럽게 그런 이야기가 담길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얄팍한 위로나 얕은 동정심 같은걸로 설명하게 되면 스스로를 저주할 듯....-_-;;

 아무튼, 돌아보고 지금의 좌표를 확인하는 것, 그리고 방향을 정하고 고개를 똑바로 드는 것. 이 이 작업의 목표. 아, 거창하다.  

여긴 또 왜이렇게 거창하고 발랄해...

조울인가...-_-;;;

 

또 쓸데없이 긴 글이 되었다. 핵심은 구성안에 '관계지형의 변화'에 대해 쓰자 였는데. 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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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4/29

등터진 새우,

마음 속 폭풍,

꺼지지 않는 의심의 눈초리,

놀기와 놀아남,

죄의식.

갈팡질팡.

노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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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3/16

스크롤 기능이 없어 글을 마무리 짓지 못하고 이렇게 올려야 하다니 흑흑. 모바일에서 작성하는건 역시 힘들구만.

------------

 

1. 소소하게 즐겁고, 소소하게 기분이 나쁘고, 소소하게 기쁘고 소소하게 짜증이 난다. 아무것도 없는 일상도 그렇게 매일의 기복이 조금씩 존재한다. 오늘도  무의미해보이는 기복들로 하루를 살았다.

2. 나는 참 자기중심적인 인간이고, 안으로 향해있는 인간이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의 안부에 관해서는 아주 특별히 주의를 기울여서 신경쓰고 있어야만 '알고있는 상태'가 된다. 대부분 다른 사람의 상태에 대해 잘 모르고 잘 신경쓰지도 않는다. 그리고 그렇게 안부를 신경쓰는 것은 나에겐 좀 힘든 일이다. 일상적으로 타인을 향해있고, 남들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에 나는 간단해보이는 그걸 하려면 엄청 곤두서 있어야하는 것이다. 그래서 가끔 그게 잘 되는 사람을 보면 신기하기도, 부럽기도. 그 사람들도 열심히 신경쓰는 거겠지..-_-;;

 

 

 

3. 외국에 나가서 살면 어떨까, 같은 도피적인 생각이 요즘 좀 드는데, 그런 비현실적인 상상은 항상 굉장히 구체적으로 하게 되서 큰 걱정을 하게 됐었다.

오랜시간 비행기를 타야할텐데, 랄라를 어떻게 데려

 

가야하냐는 문제였다. 듣자하니 수화물로 처리되 따

로 간다는데 그건 정말 불안할 것 같다. 그럼 랄라가

고양이별로 돌아갈 때까지는 난 외국에선 못살겠구

나. 하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기내에 같이 탑승 할 수

있다는 포스팅들을 죽- 봤다. 나도 모르게 또 진지하

게 정독함.ㅎㅎ

 

외국으로 도망가봐야 할줄 아는게 없으니 삶은 거기서 거기일테고, 오히려 더 외롭고, 은근한 인종차별을 당하며 억울하고 힘들게 지낼지도 모른다. 근데도 외국으로 튀기만 하면 인생이 달라질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은 정말 느낌일 뿐이겠지. 후줄근했던 흑역사를 싹싹 지우고 털어 새출발하고 싶다는 욕망인 것 같다. 이번 생은 망했으니 포기하고 아무것도 아닌 일상들을 살아야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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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1/01

불안이 지나치면 공포가 되고 공포가 지나치면 무기력을 가져온다.
불안과 공포를 모두 스치듯 지나치고 무작정.
타로는 내게 무작정 뛰어들라고 말한다.
너의 미숙함을 탓하지 말고 인정해버리고, 너 자신에게 함몰되지 말고,
눈을 들어 다른이들을 보라고. 타인을 배려하는 법을 배우라고.
그렇지만 너는 강하니까 괜찮다고.
그래 괜찮아괜찮아 무작정 가면 괜찮아. 
근데 겁많아서 무작정이 안된다. 으어흐유

미숙하기 때문에 지금 머뭇거리면 더 후회하거나 힘들게 될거야.

이것도 저것도 괜찮지만, 아마 지금은 그냥 달려보는게 낫지 않겠니.

체력도 지구력도 용기도 부족하다.

근데 타로가 한결같이 '나아가라' 고 말해서 힘내야할 것만 같은 이 기분.

어쩌면 필요한 것은 용기.

뛰어들 용기.

그렇게나 갖기 힘든 것이었나, 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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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2/19

 

#

정말 큰 의심이 생겼는데,

저 오늘의 방문객 수는 믿어도 되는걸까...?

쓰지도 않는 불로그를 대체 누가, 왜, 어떻게 17명이나 들어올 수가 있는거지...?;

허허허...

어쨋든 묘한 공간이다. 

한창 블로그가 잘 나가던 때,

오프라인에서 알던 사람들이 쓰는걸 따라서 쓰다가 온라인에서 알게 된 사람들로 이어진,

뭔가 하나의 원을 그리며 완성되었던 것 같은 느낌의.

 

페이스북처럼 누가 봤는지, 좋아하는지 아닌지는 덧글을 남겨야만 알 수 있고.

뉴스피드가 빨리빨리 올라가지 않고, 

고정된 페이지에 머물러 있으니 감정의 잔상이 남는다.

빨리 소모되지 않았으면 좋겠는,

그리고 누군가가 보았으면 좋겠지만 또 그렇지는 않았으면 좋겠는,

그야말로 '블로그'다.

휴대폰으로 쓸 때 에라가 좀 안나면 참 좋겠지만,

사실 진득하게 생각을 풀어나가려면 앉아서 쓰는 것이 좋겠지.

휴대폰 타자 답답하기도 하니까.

 

#

괴롭고 답답할 때에 블로그를 찾는 것 같다.

쓸데없는 말을 많이 뱉고 싶을 때에도, 

그리고 예전에 반짝거리던 나를 찾고 싶을 때에도.

확실히 그런 이야기들은 블로그가 찾기 쉬워. 

나에 대한 기록은 블로그에 하는게 맞지 않을까.

왜 자꾸 불로그 찬미가 되지...??

 

아무튼.

연말이고 분위기에 휩쓸리는건지 어쩐지.

아직 들여다보지는 않았지만 왠지 예전 글들을 찾아보고 싶은 마음.

예전에 썼던 이야기들을 보면서 아 그래 옛날에 참 괜찮았었지 하고 자기 위한을 하면 되는건가?

나아진게 하나도 없고 오히려 후퇴했군! 하면서 반성을 해야되나.

약간 갈팡질팡.

예나 지금이나 자아찾기는 여전히 어렵고 잘 안보여서,

어쩌면 자아찾기는 평생 하고 죽기 직전에나 스치듯 알 수 있거나 죽어도 모르게 되지 않을까 싶기도.

태도는 좀 달라진 것 같긴 하다.

전에는 자기 자신의 실체를 찾기 위해 안달을 했었다라면, 지금은 그렇게 매달리지는 않고,

심지어 정말 가끔만 생각한다.

난 늘 항상 내가 나 자신을 찾는데 언제나 최선을 다 할 줄 알았는데.

아니었군.

어쨌든 예전에는 자아찾기를 할 때, 뿌연 안개속을 걷고 있는 기분이었고, 커다란 바위를 향해서 가고 있다는 느낌이었던 것 같다. 그 바위에는 분명히 뭐라고 중요한 말이 쓰여있을테고, 그게 전부는 아니더라도 글귀를 보는 것이 자아찾기의 무언가를 '해냈다!'고 느끼게 될 것 같았다.

그런데 지금은 그 돌이,

아주 깊은 바닷속 심연에 잠겨있는 것 같아.

너무 숨이 막히고, 괴로운데, 드넓어서 찾을 수 조차 없다. 왠지 포기하게 되는.

바닷속 풍경이 아름다울 수는 있겠네. 자아찾기 따위 그만두고 수영이나 할까, 이런 생각이 드는.

 

#

이런 것도 터지고 저런 것도 터지고 세상은 너무 시끄러운데,

나는 별로 관심이 없다.

공부나 고민을 꾸준히 하지도 않아서 특별히 할 말이 없기도 하고,

뭔가 주장하기에는 아는게 너무 없기도 하고. 

정리가 안된다는 말 보다는 정말로 아는게 없다는 것이 맞을 듯.

진짜 신문기사 한줄을 안보는구나. 원래 신문 잘 안보지만 더 심한듯.

 

대신 그렇다.

페북 중독자처럼 계속 뉴스피드에 올라오는 것들을 챙겨본다.

좋아요도 꼭꼭 누르고, 너무 계속 붙들고 있어서 새로운 뉴스피드도 없는데 계속 계속.

사람들이 있다.

집회하고 있는 사람들, 한겨울 길바닥에서 비닐한장 덮고 자는 사람들, 경찰에 두둘겨 맞는 사람들, 고통에 자살을 기도하는 사람들, 어버이연합집회에 방해 받는 사람들... 등등. 하여튼 괴로운 일들이 사방천지에 널리고 널렸다. 오늘은 뭔가 재미있는 논쟁도 구경.

하여튼,

이러저러한 것들을 쳐다보면서,

심신이 지친다.

지겨워.

'사람인 까닭에' 앞머리에 그런 구절이 있다.

인간은 고통스럽고싶지 않기 때문에 타인의 고통을 알고 싶지 않은, 그래서 옆자리를 놔두고 먼 자리로 돌아 들어가서 앉고 싶어하는 자기를 본다고.

정확하진 않지만 대충 이런 맥락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정말 박수를 치며 맞장구를 쳤다. 타인의 고통이 전이되는 것도 괴롭고, 가식떠는 내 위선도 짜증나고, 겹겹히 쌓이는 감정들. 감정들.

고통을 견디는 일은 결국 고통 속에서 그 고통을 나누고 있는 사람들의 얼굴을 쳐다볼 때에야 가능해진다. 

라고 생각한다.

언제나 한복판에 있을 때는 힘들지 않다.(는건 거짓말이지만) 옆에 항상 누군가 있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지금의 혼란과 괴로움은 아마도 한발 떨어져서 비참을 보고 있기 때문일거다. 다른 종류의 힘듦이겠지. 전자가 삶을 지속하고 밀고나갈 수 있는 고통이었다면, 후자는 감정을 절망으로 밀어내는 고통인 듯.

쯧.

 

#

바보, 멍청이가 되어간다. 아니, 이미 되었다. 그리고 심해지고 있네.

처음에 점프해서 뛰어드는 것은 굉장한 용기가 필요한 일이지만 차라리 좀 편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어떻게 지속시킬 것인지, 숨도 쉬고, 방향을 맞춰서 나아가기도 해야하고, 풍광을 잊지 않으면서, 그러니까 너무 여러가지 것을 동시에 하면서 살아가야한다. 그래서 지친다. 다들 어떻게 사나몰라.

좋은 사람이 되겠다는 꿈은 참, 개뿔.

깨지는 것에 붙인 이름이 욕망의 최정점이라니. 참.

 

#

그러고보니 바보 증명의 최고는 그거인듯.

'좋아서 시작한 일' 이 '일'이 된 것. 

배경은 없고 업무만 남아버린 것.

이러니까 바보멍청이가 되어간다. 

돌고 도는구만.

에너지원을 찾아야 한다.

 

#

오늘은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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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2/12

 

#

오우. 오늘 12.12네=_=;;;

제목을 글 쓴 날짜로 한다고 했더니 이런 날짜가 걸릴 줄이야!

 

#

뱉지 못한 말.

삼키면 안에서 가시가 되어 심장을 찌르는 말들 때문에 괴롭다.

언제쯤 뱉을 수 있을까. 곧 뱉어낼 수 있기를.

 

#

이런 저런 글들을 읽으면서 내가 만났던 사람들이 다들 대단한 사람들이구나 싶다.

그들이 지금도 현실에 눈을 돌리지 않고 있는 상황을 보면 특히.

어쩌면 가장 중요한 것은 그런 용기일지도 모른다.

 

#

와구 와구 바쁘지 않으니 갑자기 외로움이 덥친다.

늘 부족한 것은 애정, 관심 같은 것들.

그러니 공부하자. 별로 채워질 것 같지 않아으엉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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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23

 

나는 오만해지기 쉬운 인간이다.

아니, 참으로 오만하기 짝이 없다.

어찌보면 당연한 말들이 진리처럼 떠받들어지는데는 이유가 있다.(물론 상황과 맥락에 따라 다르지만)

 

남 눈의 티끌은 보여도, 내 눈에 대들보는 안보인다더니,

내가 딱 그짝이었다.

 

지난 시간을 후회해봐야 무엇하리.

만회하려면 이제 그저 열심히, 폭을 넓히고 진심을 다 해서 하는 수밖에 없겠다.

 

그렇게 타인을 탓하고 다니면 역시 제일 안 좋은건 스스로라는걸 잘 알게 됐다.

나는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정말 알고 있었던걸까?

아니었나보다,라고 생각하게 됐다.

왜 꼭 멍청하게 겪어봐야만 아는 것일까. 쯧.

 

불로그에 끼적이기 저어했던 것도, 잘 모르는 사람에게 말하기 꺼렸던 것도,

모두 다 그게 스스로에게 부끄러운 일이라는 것을 은연중에 알았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남탓을 해봐야 별로 좋을게 없다.

 

어쩌면 지난 1~2년의 시간이 스스로에게 독이 된 것 같다고 느낀건,

계속 남탓을 하고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건 이래서 망했고, 저건 저래서 망했고, 이건 누구 때문에 힘들고, 저건 누구 때문에 힘들고.

알고있다.

그렇게 자꾸 망했다고 생각하는 건 스스로 노력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미숙했기 때문에, 부족했기 때문에, 방법을 몰라서 방황한 것도 한켠에 존재한다.

하지만 스스로의 방황을 남의 탓으로 돌리면 그 중요했던 시간들은 허망한 것으로 색이 바래기 마련이다.

방황도 중요한 과정 중 하나겠지만.

나는 방황없이 처음부터 완벽한 사람이고 싶었나보다.

 

나는 아무것도 안하지는 않았다.

나는 무언가를 했다.

그런데 무엇을 했는지 명확히 보지 못했을 뿐이다.

망한건 사건 자체나 상황 자체가 아니라 내 마음이다.

마음이 황량해졌을 따름이다.

이론이 필요한걸까? 치유가 필요한걸까? 아직은 잘 모르겠다.

 

어쨌든 비난과 끙끙거림을 오가는 사이에 오만은 지구를 한바퀴쯤 돌만큼 커졌다.

어디서 이런 못된 버릇을 배웠을까.

어른이 되는 과정인가봐 하고 핑계를 댄 것도 한몫했다.

뭐, 어른이라기 보다 꼰대가 되는 과정인가부다 했던거긴 하지만.

그렇지만 꼰대는 되지 말아야 된다. 경계하고 살아야지.

왜 당연히 그게 되고 있다고 생각했을까-_-;;;

 

스스로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무엇과 연결되어 있는지 보아야 한다.

우습지만 긍정의 힘을 믿는 수 밖에 없다. 부정의 힘이 나를 얼마나 갉아먹었는지 알았으므로.

다른 곳으로 어떻게 확장할 수 있는지는 미지수다.

 

인생이 계속 재미없다고 느낀건 스스로가 날린 비난의 화살이 스스로에게 돌아오지 않도록

어깨에 힘을 빡 주고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남탓은 하다보면 거짓말처럼 계속 불어나서 어느순간 자기가 제어하지 못할만큼 커져있었다.

못난 자신을 변명하기 위해 남 탓을 키우고, 키우고 하다보니

다른 사람은 악마가 되어있었고 나는 악마를 키우는 사람이 되어있었다.

 

싸우는 아이들을 혼낼 때 공부방 선생님의 대사 중 이런 말이 있다.

"혼자만 잘못해서 싸우는 법은 없다고 했지!"

"XX이 잘못한 거 말고, 니가 잘못한걸 묻고 있는거야, 니가 잘못한건 뭐인거 같니?"

 

 

 

 

난 참 쉬운 방법을 택하고 싶어하는 사람이다.

난관에 부딫혔을 때 스스로 방법을 찾으려고 노력하기 보다는,

이런 저런 고민을 벌써 했을법한 사람에게 달려가 조언을 구한다.

물론 그런거야, 어떤 순간에는 도움이 되겠으나,

조언을 들은 것을 마치 자신의 경험인양 착각하면 큰일이다.

 

제작년과 작년의 공허하고 바랜, 새카매진 마음도 어떤 과정을 지나고 어느 순간이 되면

성장통이었다고 생각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려면 지금부터가 더 중요하겠지.

과거와 과정을 독으로 만들지, 약으로 만드는지는

스스로가 그 무게를 무엇으로 어떻게 지고가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독이 되는 것은 폭이 좁아지는 것이다. 본질을 피하는 것이다.

 

어떤 폭력의 순간 이외에 인간과 인간의 관계에서 일방적인 것은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특히나 스스로가 깨림찍해 지는 순간은 그런 것일게다.

 

아.. 하지만 아직도 방황의 나날은 멀고도 먼 것 같다.

더 많이 부딪히고 깨지겠지. 적어도 서른까지는 사춘기에 머물고 있지 않을까.

아니, 서른이 넘어서도 그럴지도...;;;

잘 헤쳐나갈 수 있으면 좋겠다.

좁은 프레임에 갇히지 않는 것, 본질을 파악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

그걸 계속 해야겠지.

오만함과 거들먹거림과 아는척과 남탓은 적당히 해야겠다.

아예 안하는건 못하겠지-_-;;;; 이기적인건 내 본성 중 하나인 것 같다-_-a..

그것이 스스로를 가두는 것인지 아닌지를 빨리 파악하고 판단해야겠지.

쩝.

 

 

작년에 사이비 같던 사주쟁이의 말이 생각난다.

2009년이고, 2010년이고 내 상태가 굉장히 썩어있는 사주라고. 굉장히 나쁜 상태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언가를 하는 건 주변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산적인 대화를 생산해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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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2/06

 

낮에 쩔은 목소리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GM대우 정문 아치 위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 농성을 하고 있는 사람이었는데,

이 사건이 잘 알려지지 않고 있어서 고민이 많다고 했다.

누군가는 매일 촬영을 하고, 편집을 해서 올리고 있느라 피곤에 쩔어있고,

턱이 덜덜 떨리는 날씨에 농성장과 아치위를 지키고 있는 사람들도 좀 되는 모양이다.

 

어떻게 해야할까.

나는 그저 몸 잘 챙기라는 말 밖에는 해주지 못했다.

 

멍하니 앉아있는 동안 이런저런 생각들이 머릿속을 굴러다녔다.

자세한 건 모르지만 87년 노동자대투쟁과 민주노조운동의 상승 등등.

그런데 (이렇게 말하면 노동운동 하시는 분들 섭섭하실지 모르지만) 이제 노동운동은 사그러들고 있고,

나 같은 젊은 애들은 스스로에게 당면한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서 도망가고 싶어한다.

운동한답시고 깝치는 나도, 노동운동에는 별 관심이 없다.

그리고, 소위 말하는 그 '운동문화'에 거부감을 갖고 있다.

노동운동과 지나간 운동문화를 직접적으로 연결시키는데는 무리가 있을지 모르지만,

아무래도 운동, 운동문화의 상징은 아직까직는 노동운동이지 않을까.

무튼. 노동운동은 해야한다. 뭘 어떻게 해야하는건지, 잘 모르지만.

심지어 어디에 속해있는 노동자라고 말하기도 민망한 상태이지만,

어쨌든 노동자로서의 의식은 있어야 한다.

스스로에게 가장 부족한 것이 그거 아닐까. 사실 활동가들은 잘 쉬지도 못하잖아-_-;;;;(이건 쫌 딴얘기;)

암튼 그러면 노동운동을 해야한다면, 연대해야한다고 생각한다면,

내 방식대로 어떤 것을 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나?

내가 무언가를 한다고 해서 도움이 되는지는 차치하고서라도,

무엇인가를 할 수 있는 상황이나 되나? 그런 고민을 하는건 그저 용기 없는 것 뿐인걸까?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는 밥을 먹으며 빅뱅이론을 보고 킬킬거리고 있었다.

 

사무실로 나오는 버스 안에서는 울컥거림이 짜증으로 바뀌었다.

 

생각해보면 인간이라는 존재로 살아가고 있는 것 자체가 죄악인 세상이다.

구매자로서 소비하고 있는 생산품들에는 어느 것 하나 착취라는 단어가 들어가지 않은 것이 없다.

다큐멘터리 <꿈의 공장>이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아마도 그것이었을 것이다.

모든 소비에는 착취가 들어있다.

당신이 메고 있는 콜트콜텍 기타,

내가 지금 쓰고 있는 이 컴퓨터 하드웨어의 어떤 것은

삼성전자에서 누군가가 백혈병으로 죽어가며 만든 칩이 있을 것이고,

지금 마시고 있는 커피는 남미의 어느 농장 노동자를 착취한 초국적기업이 내 놓은 상품이다.

농장 노동자 뿐만 아니라 가공에서, 유통에서, 어떤 단계에서든, 무엇이든 이루어졌겠지.

그런 세상 아닌가.

 

딜레마는 여기에 있다.

내가 아는 어떤 사람은 이런 저런 이유로 롯데 상품을 불매하고 있는데,

그것을 남에게까지 강요하지는 못한다.

당신들 전부 롯데 제품 쓰지 마시오! 왜냐면 롯데는......!!

이라며 줄줄줄 설명할 수는 있지만 모든 소비자에게 그걸 강요할 수는 없다.

하지만 만약, 롯데가 정말로 어떤걸 시정하길 바란다면,

그 상품을 소비자가 구매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그러나 계속 말했지만, 강요할 수 없다. 물론 설득도 잘 안된다.

정부에게 압박하는 것이 아니라면 기업은 무엇으로 변화시키나?

하물며 정부도 왠만하면 끄떡도 안하는데. 뭐, 비슷한 이치긴 하지만.

GM대우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지금 아치위에서 사측과 용역이 휘두르는 낫의 위협을 받으며

농성을 하고 있소. 그러니 이들이 정규직화 될 때까지 GM의 제품을 쓰지 마시오!

라고 했다 치자.

그런데 나는 오늘 정말 GM의 물건을 하나도 안 썼나?

혹은 GM대우 노동자들이 농성을 한 근 3년 이상의 시간동안 단 한번도 GM의 물건을 안쓸 수 있었나?

ktx 여승무원들이 파업할 때도 ktx를 타야 했었다. 물론 빨리 가니까 타고 싶기도 했었다.

 

어쩔 수 없이 해야할 뿐만 아니라 하고 싶은 마음도 있는 것이다.

 

특정 기업의 매출을 보장해주면서도, 그 기업이 변화하길 기대할 수 있을까?

다른 방법이 있는지 잘 모르겠다. 방법이 있다면 알고 싶다.

 

주기적으로 위기가 닥쳐오고 있다고 해도,

어쨌든 자본주의가 이룩해 놓은 것은 이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인간은 이미 너무나 많은 상호작용 속에서 살아가야만 한다. 그리고 그것이 일정정도 편리를 가져왔다.

도시에서 사는 내 입 속에 들어오는 쌀 알갱이, 옥수수 알갱이 하나라도,

일반적으로 '시장'을 통하지 않으면 사용조차 할 수 없고

미세한 단위까지 시장이라는 것을 통해서 인간은 얽히고, 얽혀있다.

그리고 중간과정에는 거의 언제나 모든 것에 (경제학적으로가 아니라)인간적으로 참을 수 없는 착취가

도사리고 있다.

그건 단순히 이익을 올리고 싶은 자본가의 검은손 따위뿐 아니라,

당연하게도 그 상품을 싸게 구입하길 원하고 있는 구매자가 있기 때문이다.

마치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 하에서 2008년 이명박 정부를 찍었기 때문에

지금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사람들이 이명박 정부의 통치를 받아야 하는 것 처럼.

(심지어 내 손가락이 그를 찍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억울할지도 모르지만 그건 너무 유치한 변명이다.)

돌고 돌고 돈다. 뫼비우스의 띠 같다. 그리고 책임은 결코 남에게만 있지 않다.

 

그럼 직접 벼 농사를 지으면 되지! 직접 스웨터를 짜서 입으면 되지!

라고 누군가 반짝이는 눈망울로 말한다면 목을 조르고 싶을 수도 있겠다.

 

혼자 산 속에 원두막을 짓고 산다고 치더라도 이런 죄의식에서 벗어날 수 있는건 아니다.

점프를 많이 하자면,

불만이 있다면 말하고 변화시키라는 자유민주주의가 수많은 트릭을 가지고 그런 '자유'를 줬기 때문이기도 하다.

개인의 자유와 공동의 책임이라는 것이 동시에 공존하기 때문에.

하지만 어쨌든, 현재의 모든 불공정한 상황에 대해 어느 누구도 '나는 아무짓도 않했어요. '라고

이노센트한 표정을 지을 수는 없다. 당연히 나를 포함해서. 갓 태어난 아기 조차도.

 

 

 

너무 머리를 많이 굴렸더니 내가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머리가 아프기도 하다.

죄의식에서 벗어나려는 발버둥이었을까.

아직 아무것도 안했는데 벌써 지친다.

게다가 죄의식은 사라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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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기분

 

#

아무리 어제 새벽차를 타고 들어갔다고 하지만,

출근 목표 시간은 1시였다.

근데 6시에 출근하다니..-_-;;;;

뭥믜ㅠ_ㅠ 오늘도 밤에 일햄ㅠ_ㅠ

 

리뷰를 마치고 구성회의를 하기로 한 날짜가 얼마 남지 않았는데도,

아직 별로 긴장감이 없다.

마치 시험공부하는 것 같다.

책은 읽어도, 읽어도, 읽을 때마다 새로운 것을 알게 되고,

그러니 언제고 공부를 끝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게다가 실제로 저렇게 읽고 또 읽는 것은 짧은 시험기간에 별로 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평소에 잘' 하라는 말이 있겠지만;

평소에고 시험기간에고 책을 잘 안들여다 보긴 하지만,

시험기간에는 시험보는 범위만이라도 열심히 이해해보려고 한다.

음...

물론.

여유를 갖고 시작하면 좋겠으나,

도서관에 짐을 풀어두는건 일주일 전 부터라고 해도,

실제로 공부하는건 시험보는 전날 단 하룻밤 뿐이다.

그리고 그날 밤, 당연히 시험 범위를 다 못 보고 헐레벌떡 시험을 보러 간다.

그리곤 후회하지, 좀 더 일찍 시작할 껄. 할 때 집중해서 할껄!!!

 

지금이 딱 그짝이다.

분명 봐야할 분량은 방대하다.

그리고 구성회의는 일주일이 조금 넘게 남았다.

근데 이게 왠 탱자탱자냐-_-;;

아마도 시험 전날 울상을 지으며 빨리 시작할껄.. 이라고 후회한 것과 똑같이 후회하게 되지 않을까-_ㅠ

다만 다른건 책임의 정도. 그리고 이건 최종 기말고사는 아니라는 심정.

 

쩝.

두문분출하고 일만 해야하느뎅 킁.

 

#

새벽차를 타면 생각이 많아진다.

졸리고 부스스한데도, 이런저런 생각들이 머릿속을 굴러다니며 잠들지 않도록 도와준다.

안타까운건, 자고 일어나면 무슨 생각을 했는지 잘 기억이 안난다는 것;;

은근히 사람이 많은 새벽 버스에는,

술에 취한 채 머리를 가누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바알간 얼굴에 출근하는 것 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꽤 많다.

내가 본 사람들은 대부분 중년 즈음이거나 조금 넘은 듯한,

약간은 가무스름한 얼굴의 남자들이었다.

혹은 그보다 훨씬 나이가 많아 보이는 여자들이거나.

 

그들 사이에 끼어 보았던 창밖은 어둑했다.

그리고 오늘 출근하면서 보았던 하늘도 어둑했다.

요즘 내 기분은 새벽즈음이라기보단 저녁즈음이다.

곧 더 많이 어두워질 것이다.

그리고 밤은 길 것이다.

 

자, 일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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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1/21

 

요즘 다시 센씨티브해졌나.

갑자기 막 울컥울컥한다.

 

두리반에 갔다가 신나게 공연보고 진이 빠져서

터덜터덜 맥주를 한 캔 사들고 들어왔다.

일 하려고 넷북을 켰는데 눈 앞에 들어오는 분신 소식에 움찔했다.

 

생명에는 지장이 없을거라는 기사를 읽었지만,

분신이라는 행위 자체의 충격은 잘 가시지 않는다.

마음이 벌렁벌렁...

 

다시 찔찔이가 되려나.

그래도 무조건 찔찔 짤 수만은 없는 법.

정신 차려야 한다.

하지만 압박적이지 않게, 강박적이지 않게, 날카롭지 않게.

 

난 언제나 현재의 내가 좋다.(<-갑자기 이건 뭥믜;;;)

그래도 언젠가는 자기의 역할과 위치를 잘 알고 있는 어른이 될거야.

자기의 위치를 잘 알지만, 계속계속 쎈씨티브한 어른, 꿈을 꾸는 꿈을 계속 꾸는 어른,

조언과 강요의 차이를 알고 있는 어른. 본인의 오만을 알고 있는 어른.

혹은 타인이 그것을 말 할 수 있게끔 하는 어른.

 

흠. 어렵다.

어른이 되는 건 어렵군.

그래도 분신은 하지 말아야지. 꼭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안될 것 같아도, 하지 말아야지ㅠ_ㅠ. 철렁하니까.

아, 왠만하면 단식도 하지 말아야지-_-a 아, 건강을 위한 단식은 좀 필요하려나?-_-;;;;;;;;;;;

 

 

노인 미디어 교육을 하면서,

'노인'이란, 그 시간을 살아온 것 만으로도 대단한 사람들이라는 생각을 하곤 했다.

그/그녀가 청계천을 찬양하든, 625전쟁에서 한국군인으로 이름을 떨쳤든,

몇십년 동안 공항의 소음피해에 맞서 싸웠던 사람이든,

그 어떤 사람이든, 어쨌든 70-80년의 시간을 살아왔다는 것에는 경의로움이라는 것이 들어있는게 맞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했다.

음. 어른이 되는 건 어렵다. 아마도 엄마나, 할머니가 되는 것도 어렵겠지.

그 생각이 맞았던 것 같다. 그렇다고 모~든 어른이 다 경의롭고, 꼭 존경스럽기만 한 것은 아니다.

아마도 삶의 깊이, 자기의 위치와 역할, 그리고 영향에 대해 '인간적으로(맞는 표현일지 모르겠다)'

고민을 더 많이 한 사람일수록, 그 앞에서 숨을 더 깊게 쉬게 되지 않을까.

 

어쨌든 어른을 얕잡아 보면 안되겠다.

필연코 어른이 되어야만 한다는 사실에 직면하니, 쉽지만은 않구나.

 

음.

굳이 어른이라고 안하고 '사람'이라고 표현해도 되는데,

'어른'이라는 표현을 쓰는건, 그런 사람에게 기대되는 역할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일게다.

그리고 나이를 많이 먹어도 젊은이들과 함께 있고 싶다는 자..작은 소망?;;;;

지금 내가 왠만한 '어른'들을 별로 안좋아해서 일지도....-_-;;

나중에 남들도 날 싫어하면 어쩌지..;; 하는 불안감?;;

사회적으로 귀감이 될만한 '어른'의 부재는 단절을 의미하는 것 같다.

왠만하면 '어른'이란 단어는 좀 부정적인 느낌. 나만 그런걸까...-_-;

자수성가해서 돈 잘버는 어른, 대기업 어른, 어버이 연합 어른, 이런 어른들 말고.

인간적으로 존경할 수 있는 어른.

물론 어딘가에 계시겠으나 잘 모른다. 그런건 어릴 때 좀 갈켜줘야 하는 거 아님?

이 사람은 이렇게저렇게 살아왔었더랬더라.(돈 많이 벌었다더라, 부지런했다더라 말고..;;)하고.

뭐, 들었어도 구리다고 생각했겠지.

변하는게 맞을테니.

 

어. 왜 갑자기 이런 얘길 하고 있지?-_-;;

 

암튼 오늘 두리반 공연은 재밌었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게 했던.

어느 밴드의 보컬이 "몸은 자본주의에 묶여있지만 정신만은 그러지 말자"라는 멘트를 쳤는데,

멘트를 들을 때는, 당장 목구멍이 포도청인데 어떻게 그럴 수 있나. 라는 생각을 했었다.

자본주의에 묶이지 않도록 하자! 고 해야하는거 아님? 이라고.

근데, 사실 그 보컬의 멘트도 맞는 말이라는 생각이 든다.

무너져가는 건물의 꼭대기층에서 스*디킹 음료를 들고 자본주의 타도! 를 외치는 것이,

현재의 우리의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스*디킹은 안 먹을 수도 있지만;

현존하는 이 질서에서 완전히 벗어나는게 불가능하다면,

영혼이, 정신이 자유로운 것도, 맞다.

그것으로부터 무엇인가 새로운 삶의 형태가 나타나게 되겠지.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리게 된다 할지라도.

 

오늘 왜이리 주저리.

아 영화제 얘기를 쓸라고 했는데 이 뭥믜. 졸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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