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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며칠 새 마음이 안정되면서 급(!) 끓어오르는 걱정;;;
(마음이 안정되면 편할 새 없이 걱정을 해야하는 타입이로고...-_-;;)
어떻게 살아야 할까.
흐르는대로 사는 것도 좋지만,
이제는 약간의 결단이 필요할 때인 것 같다.
내년 2월이면 졸업을 하고, 6월 즈음이면 지금 하고 있는 작업이 끝날 것이다.
졸업을 한다는건, 별로 의미 없는 일 같이 보여도
근 20년간 갖고 있었던 '학생'의 정체성을 버리는 것이고,
(요 3~4년은 그 정체성이 희미하긴 했지만;;)
작업이 끝난다는 것은 변화한다는 뜻이고
무언가 잠정적으로나마 결정해야한다는 뜻이다.
#
어떻게 살까?의 질문에는 이런게 포함되어 있다.
"어떻게 먹고살까?"
흠..
지금 상황에서는 그냥 회사에 취직해서 살 것 같지 않다.
왜 이 가능성은 늘 가장 끄트머리에 있는걸까ㅠ_ㅠ
회사에 다니거나 안정적(물론 비정규직이겠지만 지금보다 정기적으로 임금이 나온다는 측면에서 안정적)인
직장을 다니는 것도 그리 나쁜 일은 아니라규ㅠ_ㅠ
이것도 비중을 좀 두란 말이야!!!
-_-;;;
암튼, 회사나, 어떤 조직, 혹은 단체에 속해서 일하는건 못하지 않을까-_-;;;;;
안한다기보다는 못하는 것이............;;;;;;;;;;;;;;;;;;;;;;;;
어떤 직위, 직책을 갖는 것에 대한 부담이 있다.
포지션을 갖는 이름을 다는 것이 무섭다. 책임을 회피하고 싶은건지도.
암튼. 단체나 이미 있는 큰 조직(?)에 속하는 것도 내 계획 속에서 상위권은 아니다.
문제는 상위권이 없다는 것이 문제-_-;;;;;
아마도 미디어 교육이나, 영상 알바 같은걸 하면서 살게 되지 않을까?
그렇다면 어떻게 삶을 담보할 수 있을까?
이건 주위 사람들과 더 이야기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축복이겠지.
이 시대에는 당연하게도 '먹고사는 것'은 아마도 '직업'과 비슷한 말이 아닐까.
그런 측면에서 앞으로의 활동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된다.
흠. 뭉뚱그려서 활동가라는 '직업'을 갖는 것이 아마도 제일 많이 생각하고 있는 삶의 형태가 아닐까.
근데 뭔가 리스트가 좁은 것 같은 이 기분은 뭘까-_-;;
어떤 활동을 해야할까?
아무래도 역시 미디어운동을 하게 되지 않을까.
정확하게 뭘 할진 알 수 없지만.
그건 다큐멘터리를 만든다는 말이 될 수도 있지만 꼭 동의어는 아니다.
지금은 이렇게 다큐멘터리를 만든다는 것, 다큐멘터리스트라는 이름을 갖는다는 것이
나에게 맞는 일인지 좀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는 중이다.
물론 이건 당장 결정해야 할 문제는 아닐 것이다.
지금 작업을 마치고 몇 십년 동안 작업이라고 불릴만한 건 하나도 안하다가,
어느날 갑자기 카메라를 들고 싶어질 수도 있다.
혹은 프로듀싱, 연출, 조연출, 촬영, 편집 뭐 이런식으로 나눠진 역할,
역할이 나눠졌다고는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한두사람, 두세사람이 거의 맡아서 작업을 다 해야하는
환경의 문제일 수도 있다. 그 중 어느 하나에 큰 재미를 느낄 수도 있지..
음. 근데 지금은 잘 모르겠다.
꼭 그렇게 하고싶은 일인지, 잘 할 수 있다고 느끼는지, 내가 해야하는 일이라고 느끼는지...
정말로 하고 싶다고 하더라도, 나는 준비가 더 필요하지 않을까.
근데 다큐멘터리 작업이란걸 하고 싶긴 한거야? 그것도 잘 모르겠다.
욕구가 솟아오르지 않는다.
다큐멘터리스트로서 카메라를 든다는건,
단순히 감독이라는 이름을 갖는것이 아니라,
어떤 기술이 뛰어나야 한다뿐 아니라,
더 많은 것을 요구한다는 생각이 든다.
결국은 카메라 앞에 서 있는 사람과, 스크린 앞에 앉아있을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인간이라는 생각이 든다.
결국은 인간과 사회와 관계를 맺는, 하나의 인간이라는 거다.
그래서 더 많은 통찰이 필요하고, 마음속에 더 많은 공간이 필요하다. 고 느낀다.
음. 근데 지금의 나는 너무 비좁고, 비좁고, 비좁다. 시야도, 통찰도, 마음도.
그래서 불안하다.
왠지, 생각보다 엄청난 일에 뛰어든 것 같은 느낌.
무엇을 하더라도 그렇게 느껴지긴 하겠지?
늘 스스로를 닦아야 하고, 채우고 비워져 있는 스스로가 발휘되는 순간이 바로 기쁨의 순간일 것이다.
흐흐흐-_- 채울 곳은 텅 비었고, 비울 곳은 너무 꽉 차있구나. 쩝.
#
어떤 태도로 살아야 하냐는 질문도 같이 나온다.
지금 촬영하고 있는 공부방 선생님들에게도 영향을 받고 있고,
주변의 사람들에게서도, 다큐멘터리 영화들에서도 영향을 받고 있다.
인디보 사람들은 꿍짝꿍짝 맹꽁이 탈도 만들고 있고,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사람들은 각자의 현장에서 마음을 다 하는 것 같다.
장기투쟁하던 몇 곳의 사업장은 협상 타결이 됐고, 몇 곳은 여전히 싸우고 있다.
누군가는 죽은 이를 그리고 있고, 누군가는 살아갈 이들을 그리고 있다.
누군가는 치열하게 전선을 긋고 앞에서 싸우고 있고,
아마도 나처럼 헤메고 있는 사람도 있을테지.
물론 지금 이 시간에 빙하도 녹고 있다.
너무나 많은 일이 한꺼번에 일어나고 있고,
나는 고작해야 내가 하고 있는 한두가지 일에 집중하는 것 밖에 못한다.
심지어 뉴스도 잘 안본다.
난 원래 타인에게 별로 관심 없는 인간-_-;;;
어떤 태도로 살아야 하냐는 질문은, 어떤 사람이 되고 싶냐는 질문과도 비슷하다.
혹은 어떤 활동을 하고 싶냐는 질문과도 비슷하고.
삶 전반을 꿰뚫는 어떤 것.
아마도 나중 나중에 발견하게 되겠지.
죽을때까지 발견하지 못할 수도 있겠다.
그래도 괴로워하면서 살고 싶지는 않다.
스스로에게, 자신이 하는 일에 의미부여를 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그 의미부여가 온전히 자기자신만을 향해서는 곤란하다.
이 1년이 당황스러웠던 것은,
자기자신에게만 의미부여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는게 아닌가, 하는 의문을 품었기 때문이었을거다.
문정현 감독의 <용산>을 보고, 뭔가 퍼뜩했다.
뭔가 영화와는 별로 상관 없는 것 같은 깨달음 같기도 하지만;;;
스스로에게 했던 문제제기에, 스스로가 품었던 의문에 대한 대답이 언뜻 스쳤기 때문이다.
결국 나는 나를 가장 중심에 놓고 살 수밖에 없다.
나란 인간이 작고 비좁은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당연히도 나는 나의 행복을 추구하며 살고 있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 것이다.
그러나 그것만은 아니다.
내가 사회를 '위한' 어떤 일을 한다는 것은 아니다.
'대의에 희생하는 숭고한 나'를 설정하고 싶지 않다.
그것은 여전히 유효하다.
희생따위 개나 줘버려.(개 미안 ㅠ_ㅠ)
누군가의 희생을 통해서 오는 의미는 더 이상 '대의'가 아니다.
그러나 자기 자신을 위해서 산다고 해도,
그것 이상의 어떤 것을 당연히 만들어낼 수 있다.
간단한 사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니깐?;;
스스로와, 주변과, 커다란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며 살고 싶은가.
모든 것을 다 할 수 없다면 한계와, 우선순위는 어떤 것이 될 것인가.
내가 좀 더 성장하고, 삶의 태도에 대한 고민이 좀 더 명확해졌으면 좋겠다.
"00한 태도를 가져야 해!" 라며 확정한다는 뜻이 아니라.
나침반이 있었으면 좋겠다.
잘 가고 있다는 신호를 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
아마도 변하지 않는 나침반 같은건 종교에서나, 신에게서나 받을 수 있겠지.
뭐, 가끔은 신이 필요할 때도 있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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