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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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엇, 벌써 2010년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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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9일에는 장례를 치뤘다.

멀리서 하관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얼굴한번 뵙지 못한 분들께, 감사하다고.

한번도 뵌 적도 없고, 살아서는 안녕하냐는 인사조차 할 수 없었지만,

그런 당신들 덕분에 좋은 사람들을 이렇게나 많이 만날 수 있었다고,

참 감사하다고, 마지막 가시는 길에 인사를 드렸다.

노제를 지내려고 행진을 시작하자 거짓말처럼 눈이 내렸던 것 하며,

모란공원에 도착하자 또 거짓말처럼 눈이 그쳤던 것 하며.

그네들이 하루종일, 이 곁을 다녀가지 않으셨을까, 생각하며.

 

모란 공원 안에 있는 식당에서

엇그제 처음 본 전 위원장을 보면서,

차가운 감옥에서 나오자마자 아버지의 장례를 치루고, 다시 돌아가야 할

소년같이 맑은 얼굴을 한 사람에게 술을 받으며

참 평범한 사람들이라는 생각을 했다.

평범한 사람.

평범한 사람.

 

아마도 이렇게 거대한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만나기 힘들었겠지.

장례를 치루지 못했다면, 만나기 힘들었겠지.

 

 

장례가 끝나고는 쓰러져 뻗었다.

그래도 일어나야 한다.

아직 우리는 할일이 많이 남았으니까.

당신도, 나도.

마음 속에서 어떤 것들을 품고 있었던지 간에,

한번쯤이라도 용산에서 돌아가신 분들을 생각했던 사람이라면,

사람이 죽은 일이 대수롭지 않은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사람이라면,

어떤 종류의 마음의 조각이라도 차곡차곡 모으거나 또박또박 적어내려가야 할 것이다.

그렇게 스스로를 추스르는 시간이 필요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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삭발을 했다.

고등학교에 다닐 때부터 나름의 로망이었는데,

드디어 하게 됐다.

늘 연초에 결심하곤, 춥다고 여름으로 미루고선 못 밀곤 했는데,

이번 기회에 결심한 김에 하려고 후딱 밀어버렸다.

이제 내 머리카락들은 6mm밖에 안남았다.

내가 보기에는 슬램덩크의 강백호 같다.

용산 사람들의 반응은 좋다. 10살쯤 어려보인다나, 중딩같다나 ㅋㅋ

나도 생각보다 내 뒷통수가 예뻐서 초큼 놀랐다. 크크

머리통에 왕점이 있는 것도 처음 알았다.

왠지 삭발을 하고 나니 발가벗고 있는 느낌이 들어서 조금 부끄럽기도 하지만,

그리고 지금은 너무 추워서 머리에 꼭 뭘 쓰고 있어야 하지만

(귀와 이마와 목 뒤가 너무 너무 시렵다-_-;; 머리카락의 힘은 실로 위대했구나!)

조금 뿌듯하고 스스로가 대견스럽기도 하고.

아, 근데 삭발하면 하면서 뭔가 대단한 결의 같은걸 해야하지 않을까 생각했었는데-_-a

그냥 즐거운 마음으로 밀었다. 복잡해지지 말고, 산뜻해지자.

무겁지 말고 가벼워지자. 채우지 말고 비우자.

그렇게 살자. 스스로를 옭아매지 말고, 무겁게 가라앉지 말고.

뭐, 그래봐야 내 원래 성격을 한번에 버릴 수는 없겠지만;; ㅎㅎㅎ;

 

제일 재밌을 때는 사람들이 내 모습을 보고 깜짝깜짝 놀란 얼굴을 할 때.

흐흐흐

빨리 다른 사람들에게도 보여주고 싶네.

강백호같은 나의 모습을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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