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글 목록
-
- 일본땅에 울리는 노동가요~(5)
- 찌니
- 2011
-
- 비익~~~ 뉘우스!!!! 화가 최병수 결혼...
- 찌니
- 2011
-
- 레디앙 연재 24 - 겨울 그리고 사랑노래
- 찌니
- 2011
-
- 레디앙 연재 23 - 공장
- 찌니
- 2011
-
- 레디앙 연재 22 - 강
- 찌니
- 2011
3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 현대중공업 골리앗 투쟁의 상징 <철의 기지> | |||||||
| [노래이야기⑭] 노래패 '새벽'의 변화…대중 속 민중가요의 변화 | |||||||
|
이번에 소개할 노래는 노래모임 ‘새벽’의 <철의 기지>입니다. 이 곡은 현대중공업 투쟁을 형상화한 노래인데, <저 평등의 땅에>, <선언 1, 2>, <노동자의 노래> 등을 작곡한 류형수의 곡입니다. 류형수는 85년부터 메아리 활동과 새벽활동을 같이 했고, 새벽 후반부에 꽤 비중있는 역할을 했으며 ‘노래를 찾는 사람들’에서도 활동을 했습니다.
노래모임 ‘새벽’이 84년에 제작한 합법음반 노래를찾는사람들(이하 노찾사) 1집을 모태로 하여 전문노래단체를 결성하여 합법적 대중공간으로의 적극적 진출을 모색하였었고, 87년 10월 첫 공연을 성공리에 치루면서 노찾사는 본격적인 활동을 하게 됩니다.
민중가요, 민중 속으로 가수나 연주자들도 새벽 출신들이 중심이었고, 주요 레퍼토리도 기존 새벽의 창작곡이면서 대학가 인기곡이었던 <솔아 푸르른 솔아>, <광야에서>, <잠들지 않는 남도>, <그날이 오면>, <이 산하에>, <사계>, <대결> 등과 공연용으로서는 좋은 기존 노래인 <오월의 노래>, <부서지지 않으리>, <맹인부부가수> 그리고 새로이 창작된 <저 평등의 땅에>, <뒤돌아 보아도> 등이었습니다.
이들 노래는 노찾사로 인해 인기를 모으면서 민중가요의 풍부한 모습을 만들어 냅니다. 이 연장선상에서 <지리산, 너 지리산이여>와 같은 새로운 인기곡을 만들어내기도 했지요. 노찾사는 그 후 몇 년간 공연이 성공을 하였고, 89년 발표한 2집 음반은 50만장 이상 판매되었을 뿐 아니라 대중가요 인기차트 7위권 안에 들기도 했답니다. 이런 흐름은 서울만이 아니라 전국에서도 활발히 전개됩니다. 다양한 노래집단들이 생겨나 그 지역의 특성에 맞게 활동을 펼칩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서울에 비해서는 양적 역량이 떨어지고, 또 지역 간 편차도 많은 실정이었지요. 마산 ‘소리새벽’, 안양 ‘새힘’, 부산 ‘노래야 나오너라’, 광주 ‘친구’, 인천 ‘노래선언’ 등은 대개 노동자 대중을 대상으로 하는 활동을 하였으며, 창작곡으로는 소리새벽 김봉철의 <들어나봤나>, 새힘 이건의 <달동네의 부푼 꿈>, 희망새 김민하의 <아침은 빛나라> 등이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변화를 꾀한 민중노래패들 특히 광주 노래패 ‘친구’, ‘우리소리 연구회’의 성과는 상당히 독특합니다. 서울에서는 찾기 힘든, 민요의 적극적 계승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대중적으로 호응을 얻었습니다. 그 외에도 개인들의 활약이 돋보이기도 했는데, 대학가의 인기 창작자로 윤민석과 박종화를 들 수 있습니다. 윤민석은 <반미출정가 1>, <어머니>, <전대협진군가>, <결전가>, <백두산>, <애국의 길>, <전사의 맹세1,2> 등의 많은 노래를 창작하여 당시 결성된 전대협을 중심으로 엄청난 인기를 얻었고, 박종화 역시 광주를 중심으로 <지리산 2>, <바쳐야 한다>, <파랑새>, <투쟁의 한 길로> 등이 인기를 얻어 전국적으로 불리고 있었습니다. 특히 이 시기 빼놓을 수 없는 흐름 중 하나가 노래모임 새벽의 변화입니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87, 88년 노동자 대투쟁 시기에 지식인들을 중심으로 한 노래운동 진영은 예측과 대응을 하지 못했고, 혜성처럼 나타난 김호철의 창작곡들이 노동자 대중들에게 광범위하게 불리는 것을 보면서 당혹감을 금치 못했습니다. 그 시기까지 노래운동을 주도하고, 이끌어오던 중요한 주체로서 노래모임 새벽은 내부적으로 많은 고민을 했겠지요. 87년까지 <이산하에>, <그날이 오면>, <벗이여 해방이 온다>, <만주출정가>, <솔아 푸르른 솔아> 등의 창작과 비합법 테이프 제작으로 민중가요의 흐름을 주도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일꾼의 합창>, <내일의 노래> 등으로 노동자 대중으로의 대중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던 노래모임 새벽의 흐름이 88년에 들어서면서 급격히 변화하게 됩니다. <너를 위하여>, <선언 1>, <선언 2>, <오월의 노래 3>, <노동자의 노래>, <불꽃이 되어>, <철의 기지>, <바리케이트>등을 발표하면서 민중가요의 폭을 넓히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노동자대중들의 음악적 취향과 관행들에 부합하지 못했고, 따라서 당시에는 현실적으로 노동자 대중, 학생대중이 향유할 수 있는 대중적인 노래가 되지는 못했습니다.
'새벽'의 자기 변화와 음악적 모색 90년에 들어 노동가요의 경향이 완전히 정착하자, 자신들의 창작곡이 대중적이지 못하다는 판단을 하면서 새벽은 기존 노동가요의 경향을 대폭 받아들인 <해방을 향한 진군>, <다시 또 다시>등을 창작하여 발표하기도 했답니다. 지식인적이라는 한계가 있긴 했으나 80년대로부터 90년대 초반까지 노래운동의 중심에서 이렇듯 끊임없이 자기 변화와 음악적 모색을 해왔던 노래모임 새벽의 활동과 창작곡들은 가히 업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철의 기지>
무쇠바람부는 울산의 하늘아래선 육천의 전사들이 태어났다.
* 음원 출처 : 주간노동자신문 주최 노래한마당 공연실황 [우리노동자] (1989년) 중에서 노래모임 ‘새벽’ 합창 |
|||||||
오랜만에 대학 동아리 후배들을 만났다.
중간에 88학번 후배가 다리를 놔서...
그니까 올해 대학에 입학한 친구들이 10학번인데,
84학번인 나하고는 26년 차이가 난다. 헉!!! @.@
그러니 누군가 중간에서 브릿지를 해주지 않으면
대화도 잘 안될 거 같았다.
그리하여 88학번 후배와 같이 09학번, 06학번들을 만났는데
이 친구들이 80년대 이야기를 듣고 싶단다.
왜 노래동아리에 들어왔냐고 하니까
노래가 좋아서, 그리고 어릴 때 부모님이 공연을 같이 보러다녔다고...
요즘은 신입생 때 노래동아리에 들어와 활동하다가
대학 2학년에 집행부를 맡고,
3학년이 되면 취업을 위한 자기 스펙쌓기에 들어가느라
동아리 활동은 모두 정리할 수 밖에 없다는 친구들.
열심히 공부해도 취업은 하늘의 별따기 만큼이나 어렵워서
최대한 졸업을 늦추거나, 대학원에 진학하거나, 유학을 가거나 한다.
그러나 그 후에도 기다리는 건 대부분이 비정규직의 삶이라는 것을 아는지...
90년대 중후반에 대학을 다닌 세대들이
80년대 학생운동을 했던 우리세대가 부럽다는 이야기를 했었다.
자신들은 그 시대에 대학을 다닌 게 저주받은 거 같다고...
그런데 이 친구들은 90년대 후반 세대들과는 또 다른 것 같다.
아직은 구체적으로 무엇이 어떻게 다른지 잡히지는 않지만
이들의 부모세대가 나랑 비슷하거나 나보다 약간 윗세대일 것이다.
그래서일까? 부모세대의 영향을 받은?
이 친구들이 7, 80년대 민중가요의 역사와 동아리의 역사
그리고 그 속에서 살았던 선배들의 삶의 이야기가 듣고 싶단다.
흠... 뭘 이야기해야 할까?
선배랍시고 나서서 그 당시 그 엄혹했던 시절에도 노래가 있어 힘이 되었고
아직도 그 힘으로 살아가고 있다고 이야기하면
그게 공감이 갈까?
일제시대 만주에서 개타고 말장수하던(우린 이렇게 써먹었었다.) 전설이나
1.4 후퇴 때 피난내려간 소설같은 이야기로 듣지 않을까?
날짜를 잡고, 계속 고민만 맴돌았다.
당일 날은 10학번부터 05학번까지 열 두어명이 모였다.
민중가요라는 노래문화가 시작된 시절의 역사와 활동
긴장의 연속이었고 과도하게 비장했던 80년대 학생운동 시절의 이야기
그리고 그 이면에 얽혀있던 수많은 에피소드들을 이야기했다.
1시간 40분을 혼자 떠드느라 노래는 몇곡 듣지도 못했고,
또 명색이 노래패인데 같이 노래한곡도 제대로 못부르고 서둘러 뒷풀이로 향했다.
휴우~~ 이 친구들이 어떻게 느꼈을까? 걱정이 된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각자 고민하고 서로 함께 나누며 풀어가야겠지 싶었다.
뒷풀이 때도 이런 저런 질문을 계속해온다.
그러다보니 뒷풀이에서도 또 혼자 떠드는 꼴이 되어버렸다.
85학번 후배들과 90.91학번 후배들이
그래도 선배가 나섰다고 지원을 와주었다.
삼삼오오 붙잡고 서로 고민을 나눈 거 같다.
뒷풀이비도 감당해줬다. ㅎㅎ
그런데 담에 한 번 더 이야기를 해달란다.
내가 살면서 가장 마음에 와닿았던 노래는 무엇인지
그에 대한 이야기를 해달란다.
살짝 부담스럽긴 했지만 이렇게 똘망똘망한 눈빛으로
자신의 삶을 찾아가고자 하는 이들을 어떻게 거절할 수 있으랴.
25년, 딱 한 세대를 넘어 공감이 되는 걸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약간 취했을 때 문득 든 생각 하나.
대학에 들어가 학생운동을 하고 엄혹했던 80년대를 지내면서
존재가 이미 대학생, 기득권층인데, 노동자민중의 삶을 어찌 이해하고 함께하냐고,
얼마나 많이 아파하고 괴로워하고 갈등하며 울부짖었던가...
생각해보면 나는 대학을 졸업하면 엄청나게 높은지위에 올라가는 줄 알았던거다.
아마도 대학을 나오면 모두 자본가가 되는 거라 여겼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그렇게 괴로워했지,
졸업을 하고도 결국 대부분이 비정규직 노동자가 되는 걸 알았다면
그렇게 괴로워하지 않았을텐데...클클클~~~
그래도 그 시절은 참 순수하고 열정적이었으니
우리 후배님들도 열정을 품고 치열하게 함께 고민하면서
무엇을 하며 살것인가보다는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해답을 찾아가길 바란다.
한반도가 아열대성 기후로 바뀌고
게릴라성 폭우와 눅눅한 날씨가 절정을 달하던 2010년 8월 13일.
오랜만에 꽃다지가 콘서트를 올렸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콘서트가 오랜만이었던 것이 아니라
소극장 규모의 극장에서 정식(?)으로 공연을 올린것이 아주 오랜만이라는 의미이다.
그럼 그동안 꽃다지가 공연을 안했냐하면 그건 아니다.
꾸준히 신곡창작 작업을 하고 1년에 한두번 정도의 소규모 공연을 홍대앞 작은 클럽에서 열긴 했었다.
하지만 꽃다지 활동은 점점 더 위축되어 갔고,
공연도 점점 더 소규모화 되었고, 그러다보니 홍보도 수세적으로 밖에 하지 못했다.
전국에서 파업과 투쟁은 여전히 매일매일 계속되고 있고, 또 장기투쟁도 아주 징하게 길게가는 현실인데도,
파업현장, 노동자 집회현장에서도 노동가요를 부르는 일은 아주 의례적인 일일 뿐
그 자리에서 함께하는 이들이 주체적으로 자신의 문화로 선택하고,
스스로 즐기며 부르는 건 드문 일이 되어갔다.
이런 현상들은 꽃다지만의 문제는 아니다.
전반적인 노동문화운동의 침체 내지는 정체현상이 2003~4년 이후부터 계속되어왔고,
노동문화를 향유하는 주체들은 과연 있는지,
노동문화운동집단이 구분되어 존재는 하고 있는지
이에 대한 문제제기라도 제대로 하고 있는지,
아니면 이 문제를 받아 같이 논의할 단위는 있는지...
불확실한 세월은 계속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이번에 열린 꽃다지 콘서트는 그야말로 나름대로의 대 성황이었다.
모처럼 많은 이들이 함께하며, 홍보도 잘 되었고,
과거에 꽃다지를 아끼던 분들도 많이 모였다.
2000년대 초반부터 과거의 명성에 기대 그나마 명맥을 유지하던 꽃다지가
지금의 멤버들의 힘으로 스스로 다시서기에 성공했다고나 할까?
정말 그런 느낌이었다.
두 시간을 내내 서서 공연을 봐야했지만 하나도 힘들지 않고,
하나하나 공들여 만든 공연을 보면서, 그리고 그자리를 가득메운 사람들을 보면서
뭔가 다시 시작되고 있음을 느꼈다.
물론 그 사이에 꽃다지가 활동을 게을리 했다거나, 쉬었던 적은 없지만
다른 이들에게 꽃다지가 아직 있냐?는 질문은 많이 받아온 나로서는
꽃다지가 보다 존재감 있게, 자기색을 갖고 활동하길 기대했었다.
이제 꽃다지는 자신들의 존재감을 확인시켜줬고, 또 한걸음 한걸음 나아갈 것임을 다짐했다.
꽃다지 민정연 대표에게 용기를 준 네오의 말은
'꽃다지는 존재자체로 아직 충분히 사람들에게 사랑받을 이유가 있다.' 였다고.
꽃다지 노래들은 나에겐 더 말할 것도 없지만,
많은 이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었고, 때론 위로가 되어주었고,
때론 단결의 무기로, 투쟁의 무기로 함께 해왔다.
꽃다지 선배로서가 아니라 꽃다지의 활동에 기대를 거는 친구로서
또, 과거의 노래부터 현재의 노래까지 꽃다지의 노래를 사랑하는 팬으로서,
꽃다지가 스스로 주체가 되어 활발하게 활동하기를 늘 기대해왔던 바이다.
물론 꽃다지 활동 방식에 무조건 동의하는 것도 아니고,
음악에 있어서도 확실한 자기 정체성과 지향이 부족함에 아쉬워하면서도 말이다.
하지만 이제 꽃다지가 주변에 이렇게 많은 이들이 지지해주고, 응원하는 것을 마음으로 느끼고,
좀 더 치열하면서 한편으로 여유있게,
미래를 향한 계획과 삶에 대한 고민을 음악으로 풀어가길 기대해본다.
그럼, 이제 우리가 할 일은?
바로 꽃다지 음반 사전 구매운동을 적극적으로 조직해주는 일이겠다.
팬들도 이제는 그냥 공연을 보러오는 팬이 아니라,
꽃사람에도 가입하고, 음반 사전 주문도 해서
노동가요를 지켜가는 주체가 되어야 할 때인 것 같다.
예전에 민중가요, 노동가요를 유기농에 비유해서
다품종 소량생산방식이나 주문생산방식으로 가는 것이
우리문화를 지켜가는 거라고 이야기한 분이 있는데,
그말에 동의하던 안하던 간에 음반 사전구매운동을 통해
꽃다지가 좀더 좋은 음악을 생산해내고,
오래오래 더 많은 자리에서 활동할 수 있도록 지지기반이 되어주었으면 좋겠다.
아~~ 끝은 광고로 마무리
음반 사전 예약은 http://ihopesong.tistory.com/ , http://ihopesong.tistory.com/203
민정연 대표에게 010-4190-6600 / 트위터 @ditsela_
최근 댓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