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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디앙연재 16 - 민들레처럼

 

인기 노동가요 1위곡은?
[노래이야기⑯] <민들레처럼> 행진곡풍 퇴조와 서정성 선호
 
 
 

95년 가을, 민주노총 출범을 앞두고 노동가요 공식음반을 만들기로 하였습니다. 민주노총의 건설 경로에 대한 몇가지 이견이 있었지만 어찌되었던 민주노총 출범을 앞두고 있었지요. 그런 상황을 보면서 몇몇 기획자들과 문화활동가 안에서 이 시기 노동가요를 한 번 정리하고 갈 필요성이 제기되었고, 전노협 문화국과 함께 전문가들로 '노동가요 공식음반 제작위원회'가 구성이 되었습니다.

 

노동가요 공식음반 제작위원회

곡 선정을 위해 내부에 선정위원회가 꾸려졌고, 기존의 곡 중 설문을 통해 선정된 노래 반, 공모를 통해 수집된 신곡 반, 이렇게 방향을 잡았습니다. 신곡은 창작공모를 통해 심사하여 음반에 수록한다는 조건이 있었지만 대중적 공모와 함께 기존 노동가요 작곡자들에게 노동가요 전망에 대한 고민과 더불어 곡 작업을 요청하기도 하였습니다.

한편 기존 곡에 대한 설문은 노동자 대중들에게 인기 있는 노래 100곡을 우선 선정한 뒤, 노동자들의 집회현장에서 무작위로 배포한 뒤 수거된 800여부의 내용을 수렴하였지요. 설문의 항목은 예시로 제공된 100곡 중에서 가장 많이 알고 있는 노래, 가장 많이 불린 노래, 가장 좋아하는 노래, 가장 즐겨 부르는 노래, 이런 항목들로 다양하게 조사를 했습니다.
 

   
  ▲ <민들레처럼>은 꽃다지 1집 앨범 수록곡이다
그 결과 가장 많이 알고 있고, 또 불린 노래로는 <단결투쟁가>와 <철의노동자>가 공동 1위를 했고, 가장 좋아하는 노래는 <민들레처럼>과 <누가 나에게 이 길을...>, 그리고 가장 즐겨 부르는 노래는 <민들레처럼>과 <전화카드 한 장>이었답니다.

물론 이 설문 결과만으로 선곡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시기 활발하게 활동을 했던 노동운동의 주체들이 필요에 의해 즐겨 부르고, 또 그 당시 직접 접하면서 인기를 얻은 노래들을 중심으로 답변할 수밖에 없는 한계를 내포한 설문조사였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선정위원회에서는 낮은 순위를 차지했더라도 80~90년대 초반 노래운동과 노동문화운동에서 역사적 의미가 있다고 평가되는 <노동의 새벽>, <고백>, <불나비> 등을 포함해서 대표곡들을 선정하게 되었답니다.

 

상처와 패배 그리고 반성

그런데 이렇게 설문결과로 나온 인기 순위나 인지도면에서 높은 순위를 차지한 노래들은 대부분이 80년대 말과 90년대 초반 노래들인데, 그 중 서정가요라고 분류되던 노래들이 아주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대부분 노동가요는 흔히 투쟁의 현장이라고 하는 집회나 파업을 통해 불려 보급되었기 때문에 많은 이들이 투쟁가를 중심으로 노동가요를 이해했고, 또 인기곡으로 선정된 이러한 서정가요들이 나오게 된 배경은 상처와 패배, 반성이었다는 면에서 보면 의외일 수 있다는 거지요.

앞서 몇 차례 언급한 것처럼 87, 88년을 시작으로 전국적으로 조직된 민주노조와 노동운동 진영의 급성장은 이에 위기의식을 느낀 자본과 권력의 엄청난 물리적 탄압과 이데올로기 공세에 주춤하기 시작합니다.

현대중공업의 골리앗 투쟁이 육해공군 상륙작전이라 표현되듯 군사력을 동원한 탄압에 80여일 만에 내려오고, 한진중공업 박창수 열사의 의문의 죽음을 보면서 참으로 충격적이고 당혹스러웠습니다. 그 이전까지도 많은 탄압이 있긴 했지만 공권력 투입, 대량구속, 자본철수, 공장이전 등 노동운동의 탄압이 정말 엄청나기도 했고, 또 미처 예상치 못한 상황이라서 더욱 그랬던 것 같습니다.

노동가요에 있어서도 91년 상반기부터는 이전과 같은 엄청난 호응을 동반한 인기곡이 사라지고, 행진곡이 주춤하게 됩니다. 특히 전술적 행진곡의 퇴조가 뚜렷해지고, 일상가요도 별로 재미가 없어지는 현상이 벌어졌습니다.

 

가장 많이 불린 노래들, '철의 노동자, 단결투쟁가' 등

워낙 긴밀하게 결합해서 활동을 했기 때문에 노동운동의 상황에 민감하게 반응을 하게 되는 것이었겠지요. 단결, 투쟁, 총파업 등의 주장을 담은 선 굵은 투쟁가의 호소력이 떨어지고, 또 가볍고 즐거운 낙관적 일상가요를 부르기에는 상황이 너무 어려웠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 중에도 많이 불린 노래는 <철의 노동자>, <단결투쟁가>, <진짜 노동자 2> 등인데, 이들 노래는 구체적인 투쟁의 주장보다는 당당하고 멋진 노동자의 인간상을 그려냈다는 점이 공통적일 수 있습니다. 그러자 노동가요 창작자들은 91년 하반기부터 노래의 내용과 정서를 의도적으로 만들어 생산하게 됩니다.

주로 슬픔과 절망에 대한 위로, 노동자로 살아가는 자신의 삶, 지나간 2~3년 동안 투쟁을 반추하면서 성숙하게, 어려운 시기를 버텨나가는 의지적인 노동자의 모습을 부각시키는 노래를 만들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전에 비해 투쟁가요들이 바로바로 반응을 보일 수 있는 장도 줄어들어, 창작자들은 노동자의 에너지에서 곡에 대한 소스를 받기보다는 이제는 스스로들이 노동자들의 정서를 북돋아 가고자 했습니다.

매일을 파업과 집회현장에서 보내다가 상대적으로 시간 여유도 생겨 연습실에서 함께 술을 먹으며 토론을 하기도 하고, 같이 아파하기도 하면서 창작을 했습니다. 그렇게 다들 창작에 몰두하다보니 연습실에서 집단 합숙을 하는 일도 잦았습니다.

그런데 화장실이나 샤워시설이 부실한 연습공간에서 살다보니 다들 머리에 떡을 이고 있거나(머리를 오래 감지 못했을 때 기름기에 의해 머리가 달라붙는 현상을 말함), 양말을 세우는 진기록들을 수립하기도 했답니다. 또 부엌 전체를 맥주병으로 빽빽하게 메우는 설치미술 작품이 탄생하기도 했고요. 그 당시 단체들은 대부분 공동체 생활을 했고, 작업을 할 때는 서로가 서로의 문선대 겸 술 친구가 되어주곤 했던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개인 느낌 강해지고, 내면으로 깊숙이
그렇게 해서 탄생한 노래들이 <민들레처럼>, <사람이 태어나>, <동지들 앞에 나의 삶은> 등이고, 또 그 외에도 <희망의 노래>, <누가 나에게 이 길을 가라하지 않았네> 등이 그 시기에 창작된 대표적인 노래들입니다. 이런 노래들은 이전의 노래들보다는 더 개인의 느낌이 강해지고, 개인의 내면으로 깊숙이 들어왔으며, 더 섬세해진 감정을 표현하고 있다 하겠습니다.

이 중에서 가장 즐겨 부르고, 가장 좋아하는 노래로 꼽힌 <민들레처럼>을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아마 이 노래가 자신의 애창곡이라고 이야기하시는 분들이 무척 많으시리라 생각됩니다. 흥얼흥얼 따라서 같이 불러 보시기 바랍니다.

민들레처럼

                                           박노해 시, 조민하 곡

민들레꽃처럼 살아야 한다. 내 가슴에 새긴 불타는 투혼
무수한 발길에 짓밟힌대도 민들레처럼
모질고 모진 이 생존의 땅에 내가 가야할 저 투쟁의 길에
온 몸 부딪히며 살아야 한다. 민들레처럼
특별하지 않을지라도 결코 빛나지 않을지라도
흔하고 너른 들풀과 어우러져 거침없이 피어나는 민들레
아~ 민들레 뜨거운 가슴 수천 수백의 꽃씨가 되어
아~ 해방의 봄을 부른다. 민들레의 투혼으로

 

* 음원 출처 : [노동가요공식음반](95년 발매, 노동가요공식음반제작위원회) 중에서 꽃다지 가수 곽경희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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