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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10/11/09
    레디앙 연재 5 - 갈 수 없는 고향
    찌니
  2. 2010/10/27
    레디앙 연재 3 - 이세상 어딘가에
    찌니
  3. 2007/06/02
    박창근과 연영석(3)
    찌니
  4. 2007/04/17
    하니리포터 인터뷰 글 (2002년)
    찌니

레디앙 연재 5 - 갈 수 없는 고향

 

가고 싶지만 <갈 수 없는 고향>
[이은진의 노래이야기⑤] 상경한 여성노동자 현실 서정적으로 그려
 
 
 

84년 서클생활을 시작하고 처음으로 선배들과 같이 보러 간 공연은 애오개 소극장에서 열린 [가지꽃]이었습니다. ‘한돌의 노래야’라는 부제가 붙은 것처럼 한돌의 노래로 이야기를 엮고, 그것을 노래와 대사로 연결해 가는 형식이었습니다. 이대 한소리 출신의 79학번 박미선과 성대 76학번으로 민요연구회 창단 멤버이며, 노동자 노래단과 꽃다지 초대 대표를 지낸 김애영, 두 명이 등장하여 진행한 공연 [가지꽃].
 

   
  
가난한 시골에서 돈을 벌기 위해 서울로 상경한 여성노동자의 이야기인데 <초가을>, <소>, <땅>, <가지꽃>, <난 서울간다>, <휴무일>, <오늘만 넘기면>, <외사랑>, <갈 수 없는 고향> 등의 노래를 이어가며 한국사회의 구조적인 문제를 일상적 언어로 다룬 공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난 서울 간다... 오늘만 넘기면...

84년 학원 자율화 조치 이후 학내의 집회나 행사들이 상대적으로 자유로워졌습니다. 대학 내 대중 집회도 늘어났죠. 시위의 강도도 높아지고, 학도호국단 내에 학생운동 세력이 들어가 대학축제를 대동놀이와 같은 연행예술운동의 성과로 채운다거나 하는 일도 늘어났습니다.

비단 대학 내의 분위기만은 아니었습니다. 80년 광주항쟁의 충격과 패배감으로부터 학생운동을 비롯한 민민운동진영이 일정한 세력을 회복하고 각 이념서클이 조직적으로 회복하며 운동권의 수도 증가했습니다.

재야단체라고 불리는 민민운동단체들도 발족하게 됐지요, 83년 가을, 민주화운동청년연합을 시작으로 84년 4월 민중문화운동협의회, 84년 한국노동자복지협의회, 자유실천문인협의회, 민족미술협의회, 민주언론운동협의회, 한국출판운동협의회, 민주교육운동협의회 등 수많은 단체들이 만들어졌습니다.

85년 3월에는 이러한 민민운동단체들의 협의체적 연합인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이 발족되기에 이릅니다. 그러니 84년이야말로 80년대 초반의 패배를 딛고 상승하는 분위기의 최절정이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 중 민중문화운동협의회(이하 민문협)의 발족은 그 이전까지 수용자들에 의해 주도되던 노래문화를 본격적인 노래운동으로 이끌어가도록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70년대 탈춤, 마당극 운동을 주도하던 세대들이 중심이 되어 소극장운동, 소집단 운동으로 존재하던 문예운동이 그 소집단들의 협의구조인 민문협이라는 조직을 발족하게 되었는데, 당시 노래집단은 존재하지 않았던 터라 노래분과로 창립을 하게 됩니다.

 

80년대 초반 자유화의 최정점에서 생겨난 민문협

메아리와 한소리, 석화 등을 중심으로 교류를 해오던 70년대 말~80년대 초반 민중가요 세대들은, 일부는 현장으로 이전을 하였고, 일부는 문화운동에 남게 되었습니다. 이 중 문화운동으로 남은 집단이 바로 나중에 ‘새벽’이라 이름 붙여진 민문협 노래분과의 초창기 멤버들입니다. 문승현, 표신중, 이현관, 박미선, 이미영, 조경옥, 김광석이 주축이 되었고, 후에 문대현, 윤선애, 안치환 등이 결합을 하게 됩니다.

이들은 84년 봄 애오개 소극장에서의 한돌 노래이야기 [가지꽃]을 시작으로 [노래를 찾는 사람들 1집] 음반 발매(서라벌음반), 가을 [또 다시 들을 빼앗겨]라는 공연을 올리는 아주 활발한 활동을 벌였습니다. 그 시기에는 공연을 관람하러 가면 민민운동권의 대부분 선배들을 모두 볼 수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보러왔고, 서로 인사하고 뒤풀이를 하곤 했었습니다.

공연도 단순히 노래를 이어 부르는 방식이 아니라 마당극 운동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대부분 극적인 구조를 가지고 한국의 근현대사를 다루거나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다뤘습니다. 그 당시 민중가요 서클들의 정기 공연이나 대동제 공연이 대부분 노래극이었던 것을 보면 그 영향력은 아마 대단했던 것 같습니다.

대학 서클방에서 악보를 보며 조금씩 노래를 배우고 우리끼리 해석하여 화음을 만들어 부르던 것과는 다르게 어쩐지 전문적으로 보여지는 연주와 노래실력을 가진 선배들의 공연은 가슴을 울렸고, 그야말로 노래의 힘을 느끼게 해 주었습니다.

물론 초기 새벽의 활동이나, 노래들도 지식인들의 한계를 극복하는 데는 무리가 있었고, 후에 지식인 정서라든가, 소시민의 정서라는 일부의 평가를 받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갈 수 없는 고향> 역시 노동자들을 연민적 시선으로 그려낸 한계가 있긴 하지만 그 당시 실제 노동자 현실의 한 단면을 그려낸 서정적인 일상가요로 많은 이들에게 불린 노래입니다. 이 노래는 84년 제작된 [노래를 찾는 사람들 1집]에 박미선의 목소리로 수록되어 그 당시 느낌 그대로 감상하실 수 있을 거라 생각됩니다.

  

<갈 수 없는 고향>

한돌 작사, 작곡

1. 저 멀리 저 산 마루에 해가 걸리면 쓸쓸한 내 맘에도 노을이 지네
물결 따라 출렁이는 그리운 얼굴 어두운 강 내음이 내 맘을 적시네
갈 수 없는 그리운 그리운 내 고향 나는 가고 싶지만 내가 갈 수가 없네

2. 이따금씩 지나가는 기차를 보면 내 고향 산 마루도 그리워지네
뜨겁던 지난 여름날 더운 바람 속에 설레이던 가슴안고 서울로 서울로
갈 수 없는 그리운 그리운 내 고향 나는 가고 싶지만 내가 갈 수가 없네

(음원:[노래를 찾는 사람들 1집] 중에서 박미선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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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디앙 연재 3 - 이세상 어딘가에

 

부르면 울게 만든 그때의 노래들
[이은진의 노래이야기③] <이 세상 어딘가에>…서정적 가사에 노동자 삶 담아
 
 
 

제가 대학에 입학한 후 처음 접한 민중가요들은 아주 서정적이고 고운 노래들이었습니다. 같이 어깨를 걸고 목 놓아 부르는가 하면, 혼자 흥얼거리다가도 울컥하고 무언가 치솟아 오르는 그 노래들. 70~80년대 초반 민중가요라고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사실 행진곡 풍보다는 바로 이런 서정적이고 고운 노래들입니다.

 

서정적이고 고운 민중가요
오늘은 그 중 한 곡인 <이 세상 어딘가에>를 소개하려 합니다. “노동조합은 근로자들의 권리입니다. 막연한 분홍빛 꿈에서 깨어나 우리들 스스로 찬란한 미래를 만들어갑시다”라는 낯선 멘트와 함께 들었던 김민기 씨의 노래극 [공장의 불빛] 의 마지막 노래가 <이 세상 어딘가에>입니다. 오늘은 '메아리'의 목소리를 통해 <이 세상 어딘가에>를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음원 : 메아리 Origin2 중에서 (일천구백팔십년 여름 녹음, 98년 4월 복각)
<이 세상 어딘가에> (김민기 글, 곡)

 

 

필자가 대학에 입학하던 해는 1984년이었습니다. 학원자율화 조치가 있던 해죠. 즉, 그 이전까지는 대학 내에 기관원들이 상주하며 학생들과 같이 수업도 듣기도, 벤치에 앉아 잡담도 나누며 감시를 했습니다. 그러다 돌변해 친구를 연행해 가기도 했고요.
집회 한 번 하기도 쉽지 않았고, 늘 말과 행동을 조심해야 했습니다. 경계를 늦추지 않았어야 했겠지요. 아마도 그 시절부터 약자나 줄임말들이 운동권 생존을 위한 문화로 유행한 게 아닐까 싶네요.

 

기관원과 함께 수업 듣던 시절
하지만 제가 대학을 들어가던 그 해부터는 기관원들이 철수를 해서 대중 활동이 좀 더 자유로웠습니다. 학내 집회도 자주 열렸고, '민주'와 '민중'에 대해 목소리를 낼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 ‘혜택(?)’으로 저는 대학에 입학해 노래 서클에 가입하며 활동하게 됐습니다. 친구 따라 강남 가듯 시작된 서클 활동은 가히 '학과 공부를 하러 대학을 다닌 게 아니라 서클활동을 하러 다녔다’고 할 만큼 열성적이었습니다.

대학에서 처음 접한 민중가요들은 가사말도 낯설고, 멜로디도 대중가요와는 뭔가 다른 느낌이었지만 대체로 예뻤습니다. 그리고 참으로 서글펐습니다.

노래를 부르다 보면 왠지 마음이 짠했고, 술자리에서 부르면 괜스레 눈물도 흘렀습니다. <이 세상사는 동안>, <이 땅의 축복 위하여>, <친구>, <영산강>, <약수 뜨러가는 길>, <진달래> 등이 주로 그러한 노래였습니다.

 

   
  
그저 노래가 좋아서 매일매일 서클방으로 출석을 하던 어느 날, 이름도 없던 복제 테이프에 맞춰 상황극을 짜는 훈련을 했습니다. 나중에 알게 됐지만 그것이 바로 김민기의 노래극 [공장의 불빛]이었습니다.

동일방직 사건을 소재로 하여 78년 겨울에 만든 노래극 [공장의 불빛]은 서정적인 몇 곡의 노래들과 연극적 상황, 그리고 개사곡을 변주해서 만들어낸 작품입니다.

 

김민기 노래극 '공장의 불빛'의 파격

그 당시 대학가의 노래패 공연은 대부분 통기타 한두 대로 연주를 하며 노래에 단순 화음 정도를 넣는 것이었는데, 이 [공장의 불빛]은 신디사이저와 드럼을 파격적으로 사용했습니다. 공장에 들어와 저임금에 야근, 철야를 밥 먹듯이 하고, 그러다 산재를 당해도 보상 한 푼 받지 못하고 쫓겨 난 신세, 이들은 노동조합을 만들려고 하지만 사측의 음모와 탄압에 부딪혀 좌절하고 맙니다.

하지만 그래도 노동자들은 희망을 버리지 않고 다시 힘을 추스릅니다. [공장의 불빛]은 고향에 편지를 보내는 여공의 목소리로 시작해 야간 교대, 사고, 노조동합 결성, 음모, 선거, 해고 등 전체가 19장면으로 이루어진 40여 분짜리 뮤지컬인 셈입니다. 여기에 삽입된 노래는 <공장의 불빛>, <두어라 가자>, <돈만 벌어라>, <야근>이며 <이 세상 어딘가에>는 엔딩곡으로 불리게 됩니다.

노래극의 시작과 끝부분 멘트에서 노동자들을 교육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라는 걸 알 수 있지만, 그 속에서 접한 노동자 현실은 참으로 상상을 초월하는 이야기들이었습니다.

군대에서 불렸던 멜로디에 가사를 붙인 <야근>은 단순한 한 곡을 단조와 장조, 그리고 4박자와 3박자, 빠르기와 가창법 등을 달리해 마치 공연 한편을 보는 듯 한 느낌을 줍니다. 이 노래는 원래 ‘대령 중령 소령은 00000, 상사, 중사, 하사는 00000~~’ 하는 소위 ‘군대 사가’를 따서 변주한 곡입니다.

“서방님의 손가락은 여섯 개래요, 시퍼런 절단기에 싹둑 잘려서 한 개에 오만 원씩 이십만 원을 술 퍼먹고 돌아오니 빈털터리래… 사장님네 강아지는 감기 걸려서 포니타고 병원까지 가신다는데 우리들은 타이밍약 사다먹고요. 시다 신세 면할 날만 기다립니다.

그거야 순전히 댁 사정이죠 병 걸려 있으니까 그런 거죠. 묵묵히 참으면서 일만 하세요 윗분들이 다 알아서 해줄 거예요. 3년만 지내보면 알게 될 거다. 귀머거리 폐병쟁이 누구누군지…”(이 노래는 나중에 기회가 되면 들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민중가요에서도 타자화됐던 노동자
87년 이후의 노동가요는 구체적이고 진취적이며 또 강인한 노동자 상을 그려냈습니다. 하지만 당시 우리의 현실은 너무나 막막했습니다. 그렇기에 진취적이나 구체적인 희망과 투쟁을 이야기하기는 어려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 어딘가에>와 이 곡이 삽입된 노래극 [공장의 불빛]은 ‘다른 누군가에 의지하지 말고, 우리들이 스스로 만들어가자는 내용’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살며시 두 눈 떠봐요. 밤하늘 바라봐요. 어두운 넓은 세상. 반짝이는 작은 별. 이 밤을 지키는 우리, 힘겨운 공장의 밤. 고운 꿈 깨어나면 아쉬운 마음뿐, 하지만 이제 깨어요. 온 세상이 파도와 같이 큰 물결 몰아쳐온다. 너무도 가련한 우리. 손에 손 놓치지 말고, 파도와 맞서 보아요.” -<이 세상 어딘가에> 중에서

이렇듯 당시의 민중가요가 노동자의 이야기를 타자적 시각에서 이야기한데 반해 <이 세상 어딘가에>는 노동자의 입장에서 서술하고 있습니다. 서정적이면서도 감성적인 가사와 멜로디이지만 그 어떤 곡보다도 노동자 스스로의 의지와 각성을 강조합니다.

노동자 삶은 무조건 강한 비트의 멜로디와 직설적인 가사만으로 전달되는 것은 아닙니다. 마치 시를 쓰듯 부드럽고 아름답게도 말할 수 있는 거죠. 그런 의미에서 <이 세상 어딘가에>는 꼭 한 번 들어보면 좋은 곡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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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창근과 연영석

엊그제 전교조 대구 남부지회 직무연수 교육을 갔다.

내가 하는 건 늘, 노동자문화 아니면 민중가요 변천산데...

굳이 생각하자면 교사들 직무연수에 민가역사를 넣은 것이 좀 쌩뚱맞긴 하지만

작년부터 사이버노동대학 문화교육원 교육을 하기로해서 진행되고 있는 만큼

뭐, 그 연장선에서 받은 것일 수 있겠다 싶다...

하여간... 간만에 민가역사 교육을 하니 6,70년대 부터 시작해서 민가들을 쭉 뒤져보고 들어보고,

또 들려주고... 하게 되었다.

 

옛날 노래들... 나역시 옛 노래들을 들으면 참 감회가 새롭다.

내 인생에서 노래, 음악을 빼놓곤 이야기할 수 없을만큼...

노래 한 곡을 떠올리면 그 음악에 내 과거의 역사들이 다 배어있다.

무수히 많은 노래들로만 엮어도 내 인생 다큐멘터리가 될 수 있을 정도라고나 할까  ^0^;;

 

민가 이야기할 때 노래를 들려주기 전에 가사를 읊으며 먼저 불러주는 경우가 많은데

좀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난 항상 <무노동 무임금을 자본가에게> 라는 노래와

<다시 한 번 투사가 되어> 를 이야기할 때 아직도 목이 메인다...

<다.투.사>는 박창수 열사 추모곡이니 그럴 수 있다쳐도 그놈의 <무.무.자.> 는 왜 그런지 참...

 

그런데 이번에 내가 강의 마직막 부분에 최근 솔로가수들의 이야기를 하면서

박창근의 노래를 들려주었는데 노래를 따라부르다말고 울컥하더라는 거...

 

요즘 인천노동문화제 기획공연때문에 고민을 하고 있는데

최근 노래들로 87이야기를 반추해보려하니 자연 요즘 솔로활동하는 노동가수, 민중가수들 노래말들을 꼼꼼히 분석하게 되는데 특히 꽂히는 게 연영석과 박창근 이더라고.

물론 전부터 그들 노래와 활동, 사상을 좋아했고, 그 외의 솔로가수들도 무지좋아하지만서두

87년으로 부터 20년이 지난 지금 무엇이 바뀌었고,

노동자문화운동에서 고민해야 할 공존, 소통,

그리고 신자유주의에 대항하는 유연하고 형체없는 전선을 생각하면 특히나 와닿더라는 거지.

 

마침 오늘 창근이가 올라와 홍대 앞 클럽 '빵'에서 공연을 한다하고

또 연영석이 게스트로 나온다니 작품 구상을 하러 가봐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네

그런 김에 노래가사 두개... 떠올리는데

두 노래가 잘 들어보면 비슷하다는 거지, 아니 일맥상통하다고 할까...

나만 그렇게 생각한다고 해두 뭐... 상관없스~~~

 

 

이런 생각 한번 어때요? (박창근 글, 곡)

 



이런 생각 한번 어때요?

햇볓 따사롭던 어느 날 모든 것이 평온 해보이는 소녀 손에 쥐어진 소세지

그 녀석의 삶은 우리완 다르지 어떤 오감의 반응도 인정받지 못해

인간이 예쁜 입으로 공존을 이야기 할 때

그들은 오늘도 산채로 매달려 껍질이 벗겨지곤 하지


후라이드 치킨 좋아하세요? 생구이 삼겹살은 또 어떤가요?

멋진 그녀와의 데이트 화려한 조명아래 스테이크

오늘도 그대는 남의 살을 몇 점이나 삼키셨나요?

또 그대는 남의 젖을 몇 통이나 마셨나요?

의심 없이 통용되는 주저 없이 허락되는 이 모든 행위가 이 모든 가능이

오히려 당신에긴 악영향을 준다면 어떠하시겠어요?


나의 삶이 너의 삶과 맞물려 있고 인간의 불행 또한 다른 생명체의 불행을 먹고살죠

진정한 평화를 원하세요? 행복한 그대 삶을 꿈꾸나요?

파괴 없는 삶을 원하세요? 전쟁 없는 삶을 바라나요?

주어진 만큼만 누리는 것 나눠진 만큼만 갖는 것

필요한 만큼만 먹는 것 허락된 만큼의 욕망


간절히                              연영석 글, 곡


1. 누구는 뺏고 누구는 잃는가 험난한 삶은 꼭 그래야 하는가

앞서서 산 자와 뒤쳐져 죽은 자 그 모든 눈에는 숨가쁜 눈물이

왜이리 세상은 삭막해 지는가 아 나는 오늘도 간절히 원하지

**간절히 간절히 간절히 간절히 아- 음-간절히 간절히 간절히 간절히

아 나는 오늘도 간절히 원하지 간절히 간절히 간절히 간절히 아--


2. 거리로 내몰린 수많은 사람과 오늘도 여전히 불안한 사람들

모두들 제각기 제 길을 가지만 난 아직 오늘도 간절히 원하지

내 할 수 있을 때 일하는 세상 내 일한 만큼만 갖는 세상

** 반복


3. 누구를 밟고 어디에 서는가 왜 같은 우리가 달라야 하는가

살아남기 위해 그렇다 하지만 그 모든 눈에는 고독한 눈물이

왜 이리 갈수록 지쳐만 가는가 아 나는 오늘도 간절히 원하지

** 반복

내 마음만큼 일하는 세상 내 일한 만큼 갖는 세상

내 마음만큼 일하는 세상 내 마음만큼 갖는 세상을

** 반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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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니리포터 인터뷰 글 (2002년)

하니리포터 > 문화

 


찌니의 노래이야기①

 

90년대 대학을 다녔던 사람은 민중가요 노래책 '희망의 노래'를 기억할 것이다. 그때 많이 불려졌던 민중가요와 더불어 고전으로 불리는 명곡들을 빼곡이 담고 있던, 말 그대로 '희망의 노래' 책 말이다. 이 노래책은 도서출판 민맥에서 그 당시 노동가요 노래패 '꽃다지' 대표였던 이은진씨 이름으로 출판되었다. 그런데 96년에 국가보안법의 올가미가 '희망의 노래'에도 씌워졌고, 결국은 이은진씨와 출판사 대표였던 원용호씨가 구속되는 사태에까지 이르렀었다. 그 당시 선거와 임금인상 시기에 맞추어 진행된 듯한 인상을 주어 말도 많았던 이 사건이 잊혀지지 않는다.

 

이은진씨는 그 후로 노동문화운동에 앞장서 왔다. 최근에는 노동문화정보정책센터 홈페이지'클릭 사이버문화'에 '찌니의 노래이야기'를 개설해서 인터넷 방송을 진행하고 있다. 벌써 6회를 기록한 이 방송은 민중가요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민중가요 판에서 잔뼈가 굵은 이은진씨가 노래에 대해 설명해주기 때문이다. 그녀의 경험에서 묻어난 이야기는 노래와 함께 진실되다. 그리고 민중가요가 갖는 의미를 역사적으로 정리할 수 있을 정도로 풍부한 내용을 담고 있다. 또 '찌니의 노래이야기'는 단순히 민중가요를 틀어주는 것에 그치지 않고 노동자들의 근황도 알려주기 때문에 노동계 정보창구 역할도 톡톡히 하고 있다.

 

요즘 '찌니의 노래이야기'와 그 외 강연 등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이은진씨와 이메일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내용이 많아 2회로 구성한다. 짐작 가능하듯이 '찌니'는 이은진씨의 아이디이다.

 

- 방송에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고 했는데, 최근에 어떻게 지내시고 계십니까?

 

꽃다지에 있으면서 계속 가져왔던 고민들, 즉 유통에 대한 고민들을 노동문화 기획과 교육으로 풀어보려고 하고 있습니다. 노동문화정책정보센터 운영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월례문화마당 세상만사'를 매월 셋째 금요일에 진행하고 있고, 메이데이 행동위원회 기획, 6월 말경으로 예정된 민중가요Festival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일상적 노동문화기획의 소통체계인 기획자 네트워크를 활성화해 노동가요 창작기금 사업을 하려고 고민중이고요.

한편으로는 교육방송을 지향하는 인터넷 방송을 하고 있고, 가끔씩 노동조합이나 문화패, 대학문화패 등에서 요청이 있으면 노동문화 일반, 혹은 노래에 대한 강의를 나가고 있습니다. 노동교육센터를 준비하고 있는 선배님들(김진순, 신재걸 - 전국노동조합협의회, 민주노총에서 교육과 문화를 담당했던 분들입니다.)과 노동문화 일반에 대한 교육내용 정리를 같이 하기로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꽃다지 10주년 사업에 함께 하고 있지요. 작년부터 시작하려던 일인데, 작년에는 고민만 많았고 본격적인 진행을 못했기 때문에 올해는 좀 빡빡하게 살아보려고 합니다.

 

- 방송이 민중가요를 교육적인 목적으로 하나씩 정리해 나간다는 느낌이 듭니다. '찌니의 노래이야기'를 하게 된 연유는 무엇입니까?

 

노래패 '삶의 노래 예울림' 시절에 서울지역노동자문예운동단체협의회(서노문협)에 소속되어 활동을 했었는데 대중문예교육이라고 하는 영역이 노동문화에 중요한 한 측면이라고 생각해왔습니다. 직접 강습도 하고 강의도 했지만 일정하지 않아서 교육체계나 교육내용이 정돈되지 못했고, 이전에 비해 많이 줄었습니다. 꽃다지로 통합한 뒤에도 노동문화예술 교육체계에 대한 고민을 계속했는데, 강사들을 모아서 해보려고 몇 가지 시도를 했었는데, 잘 되지 않더군요. 혼자 정리하려니 너무 방대한 작업이라 작년 6월부터 방송을 진행하면서 내용을 정리하자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런데, 작년에 계속 고민만 했고, 올해부터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대중적인 방송이라기보다는 84년부터 노래운동을 하면서 느낀 것,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것, 그리고 교육을 다니면서 했던 내용들을 천천히 정리하는 게 우선 입니다. 굳이 방송을 택한 것은 책임성과 객관성을 좀 더 갖기 위한 것이랄까? 그를 통한 교육효과도 한 편으로 기대가 됩니다.

또 굳이 제가 직접 하는 건, 아무도 안하고, 또 제가 정리해야 할 내용이라고 생각해서이고, 정리해서 다른 사람에게 진행하라고 하려니 그게 더 어렵고 해서입니다. 원래 남들하고 같이 일하는 것보다는 혼자 하는 게 손쉽잖아요. 좀 가볍게, 손쉽게, 편안한 마음으로 해보고 싶었습니다.

 

- 지난 3월 30일 '신자유주의에 반격을 선언하는 연합공연'은 어땠습니까? 그날 비가 온 것으로 알고 있는데 진행에 무리는 없었는지요? 그리고 공연을 평가하신다면?

 

한동안 가물고 황사가 심해 비나 한 번 좍좍 내렸으면 하고 바랬지만 그래도 공연날 올 줄은 몰랐습니다. 일기예보를 계속 확인했거든요. 덕분에 진행에 무리가 많았습니다. 일단 비 때문에 노동자들과 발전노조동지들, 가족들이 많이 못 오신 것 같습니다.

민주노총이라고 하는 대중조직이 주최를 하면서 공연이라는 형식을 가진 것도 처음 있는 일이고, 내부적인 결의도 꽤 높았습니다. 발전투쟁을 통해 많이 고무되어 있기도 했고요. 공연을 준비하는 사람들은 아무리 비가와도 세팅부터 리허설까지 준비하고 공연을 진행했습니다.

이번 공연은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모든 사람들이 그 의미에 동의하고 직접·간접적으로 결합해서 판을 만들어 가는 대중적인 문화집회였습니다. 기획과정에서 민예총(한국민족예술인총합)이라고 하는 조직이 공동주최로 선 것에 대해 민예총이 신자유주의 반대투쟁에 무엇을 해왔냐는 문제제기가 있었습니다만 저는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투쟁은 노조라고 하는 조직만이 하는 것이 아니라 동의하는 모두를 포함시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각자가 본연의 역할을 할 수 있는 판을 만드는 것이 올바른 기획이 아닐까 싶거든요.

작품의 측면에서는 그 동안 해왔던 연합공연(89년부터 저는 거의 같이 해왔습니다.)에 비해 아주 잘 엮어진 작품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연합공연에서 실패하기 쉬운 새로운 양식에 대한 실험과 장르별 발전전망을 모색하도록 하는 데에 연출단이 신경을 많이 썼고, 그만큼 성과가 있었다고 봅니다. 그래서 더더욱 이런 좋은 작품을 보다 많은 사람들이 보지 못한 점, 그리고 비가 너무 많이 와서 연극장면을 뺀 점이 무척 아쉽습니다. 또 하나, 공연에서 노동조합 조직을 믿으면 안 된다는 이야기를 불식시키지 못한 점. 정말 못 믿을 곳이고 앞으로는 이런 사업을 같이 하면 안되나 하는 반복된 실망감에 괴롭습니다.

 

- 학생운동이 많이 약화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일반학생들은 취업 때문에 더욱 개인주의적인 성향을 보이고 있습니다. 과거 민주주의를 위해 큰 역할을 했던 대학과는 많이 다른 모습으로 다가오는 게 사실입니다. 지금의 대학사회를 어떻게 보십니까?

 

한총련 등의 학생운동 조직이 계속되는 탄압과 신자유주의 전략들 속에서 전처럼 조직력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학생운동, 진보적인 지식인 운동이 주축이었던 시기도 있었지만 현재는 노동자, 빈민, 농민을 비롯하여 장애인, 이주노동자, 여성 등 다양한 층위의 대중조직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학생운동의 빈자리가 작게 느껴질 겁니다. 하지만 대학은 끊임없이 사회인을 배출하는 공간이고 그 속에서 자신의 세계관을 정립해 나오게 됩니다. 건강한 대학문화와 학생운동 풍토가 살아있어야 합니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현재의 대학사회는 기성사회와 다를 것이 전혀 없습니다. 젊은이로서의 패기나 열정, 그리고 실험정신, 진보적인 사고들이 망가져 가고 있습니다. 이것도 역시 신자유주의 문화전략인데, 대학생들, 그리고 우리들 스스로가 이런 측면을 너무 소홀히 여기고 있는 것이 문제입니다. 상업적인 기성의 문화 중에서 어떤 것을 선택하기보다는 스스로의 독자적인 문화를 만들어내고 그것을 통해 주체성을 찾아가려는 노력들이 대학 내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 대학 내 노래패들이 제대로 활동을 하지 못하거나 아예 사라지기도 하는 요즘입니다. 노래패들이 풀어야 할 문제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어떤 동아리는 스스로 민중가요라는 이름을 붙이길 거부했다고도 합니다. 대중창작과 비전문집단의 전문성에 대한 이야기를 곧 방송에서 다루겠지만 이 두 측면은 노래패 활동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지점입니다. 그런데 '화려한 기교, 익숙한 음악이 신나는 음악, 재미있는 음악이다.'라고 사고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록이라는 양식을 좋아하는 대학생들이 이미 많을 텐데, 그 언어를 통해 자신들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훈련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집단성의 힘을 느끼도록 해주는 것도 중요하고요.

선배들도 신입생이 들어오면 억지로 투쟁가요를 부르게 할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재미를 붙이고, 의미를 알아가도록 이끌어 줘야 합니다. 알아서 판단하도록 열어두고 말입니다. 제대로 접할 수 있는 기회를 많이 제공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 대선 이야기가 빠질 수 없겠습니다. 노무현 후보가 일으키는 바람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리고 진보정당이 이번 대선에 어느 정도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보십니까?

 

젊고, 패기 있고, 경력도 깨끗하고 정치개혁을 이루어낼 주자로 노무현씨가 국민들 정서에 어필하는 것은 인정합니다. 그런데 진보진영에서 노무현씨를 공식적으로 지지하고 연합전술 등을 운운하는 것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노무현씨가 대통령이 되어도 조만간 신자유주의 구도를 완성하는데 앞장을 설 것이고, 그런 약속이 실현되지 않는다면 아마 아무리 인기를 끌어도 당선약속은 미국으로부터 못 받아낼 겁니다. 그렇다면 우리 삶은 하나도 달라질 것이 없는데, 한두번 속아온 것도 아니면서 왜 들러리를 서려하는지 이해가 안 간다는 겁니다. 특히 민주노동당 안에도 '노사모' 회원이 많다는 것이 말입니다.

진보정당은 이미 너무 기성 정당 흉내를 내고 있어서 그때까지 제대로 후보전술을 구사해 낼 지 의문입니다만 저는 개인적으로는 진보정당에서 후보를 단일화해서 낸다면 썩 내키지 않아도 그 사람을 찍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차피 이후를 볼 수밖에 없으니까요. 그렇지 않고 누구를 밀어주면서 정책연합을 펼치니 뭐니 한다면 무효표를 만들거나 거부를 하겠지요. 아마도 운동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저처럼 생각할 겁니다.(노무현 지지자들 빼고) 진보정당은 상반기 노동자 민중의 생존권 투쟁에 더 긴밀하게 결합하면서 후보전술을 구사했어야 합니다. 그랬다면 아마도 지금보다는 훨씬 더 관심을 집중시킬 수 있을 겁니다.




찌니의 노래이야기②

 

20세기 최고의 명저 중의 하나로 꼽히는 「계몽의 변증법」(아도르노, 호르크하이머 공저)에서는 문화산업을 '계몽의 종점'이라고 표현한다. 즉 "문화 산업은 후기 자본주의 사회가 사회 구성원을 남김없이 자신 가운데로 포섭해 들이기 위해 자신이 제시하고 있는 도식적 규범들을 사회 구성원 개개인들의 내면 가운데 정착시키는 것을 궁극의 목표로 한다. 문화 산업의 목적은 사회 체계 아래로 인간을 완전히 포섭해 들이는 것"이라고 말이다. 철저히 계산된 상업적인 목적만이 판을 치는 2002년 대한민국의 가요계에 그대로 적용되는 말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찌니의 노래이야기' 두 번째를 시작하면서 위와 같이 말한 이유는 민중가요의 저항성을 상기시키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런 민중가요는 일반 방송에서 쉽게 접할 수조차 없다. 그래서 노동문화정책정보센터클릭! 사이버문화는 소중하다. 쉽게 구할 수 없는 노래들과 더불어 최근에 발표된 민중가요까지 이곳에서는 다양한 노래를 접할 수 있다. 또한 민중가요의 역사와 의미를 되새길 수 있다. '찌니의 노래이야기'를 적극 권한다. 아래는 첫번째 글에 이어 나눈 인터뷰 내용이다. 인터뷰에 응해주신 이은진 님에게 지면을 빌어 감사드린다.

 

- 방송에는 찾아보기 힘든 옛 앨범들의 노래들도 나오는데요, 개인앨범을 사용하고 계신 건가요? 그리고 방송은 어디에서 녹음이 됩니까?

 

84년부터 걸어 다니는 노래 책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을 만큼 노래를 많이 알고 있고, 또 잘 외웁니다. 필요한 노래에 대한 정보가 다른 사람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다고 할까요. 오랜 기간 활동을 하다보니 소장하고 있는 음반도 좀 되고요. 그렇지만 빌려주고 못 받은 것도 많아서 아직은 들려드리고 싶은 음악을 올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어떤 음반에 그 노래가 있는지는 아는데, 음반의 상태가 너무 안 좋거나 아직 못 받은 경우, 민중가요 사이트 자료실에서 가끔 다운 받아 사용하기도 합니다.

방송 녹음은, 첫 회는 '꽁알방송실'에서 했습니다. 근데 상태가 별로 좋지 않은 듯하고 작업시간이나 동선의 문제도 있어 그냥 제 사무실에서 밤에 녹음을 합니다. 전문적인 음악방송이 아니라, 교육방송을 지향하고 있기 때문에 기술적인 부분에 신경을 쓰다보면 작업이 늦어질 것 같아서 그냥 질은 담보가 안되지만 올리는 것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있지요.

 

- 민중가요에서 장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대중과 어떻게 교감을 하는 게 더 중요하다라고 하셨습니다. 최근 민중가요에 힙합과 랩을 도입한 ZEN의 활동은 어떻게 바라보십니까?

 

ZEN은 아직 뭐라고 섣부르게 판단할 수 없습니다. 계속 지켜보면서 동지로서 잘 할 수 있도록 밀어주는 단계입니다. ZEN의 음악은 우리한테나 대중들한테나 새로운 음악은 아닙니다. 이미 방송에서 질리도록 보고들은 것이고 그들에 비해 별로 뛰어난 팀도 아닙니다. 그리고 힙합 댄스, 랩이라고 하는 장르가 아직은 우리 것으로 언어화되지 않았기 때문에 신기한 어떤 것 정도로 보는 사람들이 많을 겁니다.

한 편으로는 그들이 워낙 열심히 파업현장을 돌아다니니까 고맙기도 하고요. 스스로 노동자대중과 함께 하고자하는 사람들은 프락치나 우리를 이용해 먹으려는 수작이 아니라면 우린 동지로 포용해야 합니다. 그리고 ZEN의 음악이 집회나 파업시기 노동대중들에게 수용이 되는 것은 그만큼 그들 안에 새로운 것에 대한 욕구가 높아져 있다는 것입니다. 새로운 것은 근거 없이 전혀 다른 무엇이 아니라 우리들 안에 쌓여 있는 것들입니다. 그 동안 우리가 쌓아놓은 성과를 무시하거나 폄하 하면서 등장해서는 안 되는 것이지요.

예전에 몇몇 새로운 시도를 했던 집단이 80년대의 성과를 폄하 하고 무시하면서 관심을 끌려고 했다가 실패를 했었어요. 그 지점을 노동대중이나 조합 간부들, 음악 하는 사람들이 중요하게 봐야 합니다. 다양한 실험들, 그리고 그것을 꾸준히 자신들의 문화로 싸안고 가는 노력들이 병행이 되어야 합니다. 아직은 ZEN은 그 단계일 뿐이라는 겁니다. 음악이 문제가 될 순 없고, 다만 어떤 마음으로 얼마나 치열하게 고민하고 그것을 음악에 반영시키며, 대중과 교감을 하는가 이니까요. 다만 아직 2집은 못 들어 봤지만 이전에 해온 <파업가>나 <그날 그 자리에서>, <동지> 등을 음반에 수록하지 않았다는 것이 좀 아쉽습니다. 무엇으로 대중들에게 평가를 받으려고 하는 지 노파심이 좀 들더군요.

 

- 인터넷에서 라디오 방송을 하고 계십니다. 이것도 하나의 문화게릴라 운동이겠는데, 이런 문화운동이 앞으로 가져야 할 지향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저는 전에 장애인 문화권에 대한 강의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 때도 느낀 것이지만 노동문화의 개념은 억압되고 소외된 자들의 의식을 바꾸고 그들이 당당해지며, 그들의 문화를 주체적으로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할 수 있는 다양한 방식을 차용해서 개발해야 합니다. 특히 소통체계가 거의 없기 때문에 다양한 소통체계를 만들어 가야겠지요. 유통구조가 제대로 서야 창작도 활성화하고 재생산도 잘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방송에서도 이야기했듯이 주객이 전도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고요.

 

- 민중가요의 구조를 확대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갈수록 좁아지는 유통체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이 '혹시' 있을까요?

 

유통은 사실 대중과 창작자, 대중과 대중이 만나는 접점입니다. 이전에는 우리음악이 집회나 파업현장, 거리, 소모임이 대부분이었고, 그런 접점들이 줄어들기 시작하자 만들어 낸 접점들이 공연, 음반, 거리공연 등입니다. 일단은 대중운동의 흐름과 같이해온 민중가요, 노동가요이기 때문에 대중운동이 활발한 때에 더 많이 유통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상입니다.

그 외에 일상적인 접점들을 만들어 가는 방안은 운동으로 풀어야 합니다. 그저 활동을 열심히 하면 만나지는 노래, 집회 몇 번 참석하고, 공연 몇 번 봐서 익숙해지고 좋아하게 된 노래가 아니라 그런 문화를 목적 의식적으로 접하고 만들어내고 주변을 조직하여 일정한 블록을 구축하는 것이라는 운동적 마인드가 있어야 합니다. 80년대 후반 '서노문협(서울지역노동문화단체협의회)'에서는 전노협(전국노동조합협의회)과 함께 노동자 문화패와 전문단체의 위상과 역할에 대해 정리를 하면서 노동문화운동의 3주체를 전문단체, 노조 문화부(정책단위로서), 노동자 문화패(수용자이면서 대중창작을 하는)로 정리를 한 바 있습니다. 지금은 그 의미가 확장되어 생산, 유통, 수용(향유) 전과정이 구조를 포함하는 개념이 되었기 때문에 수용자 주체의 운동이 매우 중요한 한 축입니다. 음악을 듣고 좋아하는 차원을 넘어서서 스스로가 개입하고, 적극적으로 운동을 해야만 구조를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그것이 다시 창작단위와 소통을 하면서 영향을 주고, 창작에 반영이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현재도 많이 있긴 하지만 예전에 그 많던 전문활동가들이 이 판을 떠나게 된 것은 먹고사는 문제만이 아니라 도구적인 발상이 팽배한 곳에서 비전을 찾을 수 없다는 판단 때문이었습니다.

  노래를 도구로 사고하는 것이 아니라 문화로 바라보면서 자신의 문화운동으로 만들어 가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그들이 일정한 토대를 형성하는 방법이 유일하면서도 가장 올바른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 인터넷상의 엠피쓰리 문제는 어떻게 접근을 해야할까요? 민중가요도 나오자마자 엠피쓰리로 유통되는 등 그 문제점이 드러나고 있는 실정입니다. 민중과 향유를 해야한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창작자로서의 저작권문제도 분명 있을 겁니다.

사실 저작권이라는 개념은 우리 것으로 가져와서는 안 되는 개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개념을 설정하는 순간 노래의 소유자가 저작권자가 되면서 CF에 팔려가든, 공익광고에 팔려가든 개인의 문제로 떨어져 버리고 최근과 같은 현상이 벌어지게 될 때 아무런 힘도 갖지 못하게 되는 겁니다. 오히려 창작자들의 생계와 활동, 재생산을 보장하고 지켜내는 개념으로 바뀌어야 그 음악의 권리를 모두가 같이 가질 수 있는 것이지요. 바로 전 질문에 대한 답변처럼 말입니다.

민중가요는 무조건 민중의 것이라고 공짜로 들으려고 한다면 당연히 창작자 입장에서는 저작권을 따질 수밖에 없는 것 아닐까요? 그렇게 라도 주장해야 자신의 활동기반이 유지가 되는 현실에서 말입니다. 엠피쓰리는 저작권보다는 음원의 소유권 문제인데, 이 역시 엠피쓰리가 음반시장을 잠식하고 있다고 보여지지는 않습니다. 음악을 정말 좋아한다면 엠피쓰리로는 듣는 것보다는 음반으로 듣게 될 겁니다. 오히려 문제가 되는 것은 그 음원을 가지고 만드는 짜깁기 음반이겠지요.

대중음악의 음반시장이 이 때문에 망가져 가고 있고, 우리 역시도 엠피쓰리 보다는 짜깁기 음반이 주는 폐해가 더 심각합니다. 스스로 선택을 하는 것도 아니면서 조합에서 일방적으로 선곡한 곡들을 부르는 사람과 단체에 상관없이 한 음반에 실어 무료로 배포하고 있는 것은 그 음반을 듣는 사람에게 이것이 노동가요의 전부인 것 같은 생각을 들게 하고 단지 집회 때, 파업 때만 듣는 음악으로 생각하게 하니까요.

그렇지만 현재 엠피쓰리를 무분별하게 올려놓고 마구 배포하는 사람들의 생각에도 문제가 많습니다. 자신들이 그렇게 하는 건 무조건 곡 하나를 누구나 들을 수 있도록 하고, 보다 많은 사람들이 들을 수 있도록 하자는 생각에서겠지만 그 결과는 앞서 이야기한 것 같이 될 겁니다. 그러니까 어떤 의미이든 더 많은 사람이 듣기 위해 광고에도 팔 수 있는 것 아닌가요? 노래가 창작자의 몫이 아니라 대중의 몫이라는 의미는 그 노래가 만들어질 때 창작자의 의도보다는 불려지면서 대중과 함께 만들어지는 질감과 정서가 그 노래의 성격을 규정한다는 것 때문입니다. 민중가요가 민중의 것이고, 노동가요가 노동자, 민중의 것이라면 그 노래를 그렇게 돌릴 수 있는 사람 스스로가 민중이고, 노동자로서 과연 올바르게 살아가고 있는지 물어보고 싶군요. 그리고 정말 노동문화운동으로 민중가요를 노래문화로 사고하고 이 후 발전 전망에 대해서 계획을 갖고 있는지도 물어보고 싶고요.

 

- 방송 중 어려운 점은 없는지요? 방송과 관련한 에피소드가 있으면 들려주십시오.

 

아직까지는 내용을 구성하는데 어려움은 없습니다. 제가 이야기하고 싶은 게 많아서 그런 것이지 모르겠네요. 하지만 이것도 방송이라고 약간은 단어 선택이나 해설에 난감할 때가 있습니다. 경험을 공유하지 않은 사람들한테 잘 전달이 될까하는 고민도 되고요. 저 혼자 녹음하면서 목이 메어오기도 하고 울컥 흥분하기도 하는데, 생방송이 아니니까 다시 녹음하고 편집하고 하니까 좀 밋밋한 감도 있습니다. 기술적인 부분은 차차 되는 만큼 하자는 생각이어서 별로 욕심은 없습니다. 단지 제 컴퓨터가 좀 구식이라 용량이나 처리 속도 때문에 너무 시간을 많이 잡아먹는 게 좀 속상하고 갑자기 편집을 하다가 다운되고 작업해놓은 것이 날라 갈까봐 조마조마 하는 것을 빼면요.

녹음을 사무실에서 하다보니까 잡음이 많습니다. 이 동네가 좀 시끄럽거든요. 바로 앞에 아파트 건설현장이 있고, 옆 사무실에 왔다 갔다 하거나 바로 앞에 있는 화장실에 사람들 오가는 소리를 피해야 합니다. 그래서 대부분은 저녁 늦게 창문을 꼭꼭 닫아놓고 녹음을 하는데, 기차지나갈 때, 위층 화장실 물 내릴 때 녹음을 하다 중단을 하고 그 소리가 다 멎을 때까지 기다립니다. 그리고 편집을 하고, 음악을 받아서 붙이고 뭐 그런 거지요. 사무실을 같이 쓰는 남편과 조민제 군이 협조를 잘 안 해주지만(어떤 날에는 늦게 까지 바둑을 두면서 안나가고 방해를 합니다.) 그럭저럭 잘 적응하고 있습니다.

 

- 각 시대마다 민중가요의 조류가 있었습니다. 2000년 초에 살고 있는 지금, 민중가요는 어떤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대중가요가 민중가요가 되기도 하고 민중가요가 상업적인 음악이 되기도 합니다. 과거에도 그럴 소지는 많았고, 현재는 더 합니다. 저는 교육을 다니면서도 대중가요를 듣지 말라고 이야기를 하지는 않습니다. 스스로 자신의 의미로 노래를 해석해서 받아들이고 문화와 구조를 비판의식을 갖고 바라보라고 할뿐입니다. 대중가요 그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니까요. '꽃다지'가 만든 음악이라고 무조건 좋은 음악이고, 당연히 노동가요가 되어야 한다는 법은 없습니다. 어차피 선별해서 부르게 되지요. 상대적으로 애정을 가지고 바라보고 비판하고, 동지로서 그의 시각과 방식을 인정하는 것이고요. 사람도 다 각각이고 취향도 제각각, 살아가는 모습이 다양하다고 이야기를 하지만 사실 엄밀히 따지면 듣는 음악도 비슷하고 입는 옷도 비슷비슷하고 먹는 거, 말하는 거, 이미 대중매체를 통해 익숙해 진 것들뿐입니다.

자본이 항상 '너만 특별해, 너를 위한 차, 너만을 위한 옷, 당신만의 독특한 삶의 형태' 이렇게 이미지를 만들어 주지만 그건 다 대량생산되는 상품일 뿐인 것처럼 노래도 어쩌면 비슷비슷한 수준으로 듣고 부르고 하는 것 아닐까요? 굳이 시대적으로 보자면 대중운동의 중심 축이 움직임에 따라 변화해 온 것은 있습니다. 음악형식이나 가사 말 등도 그렇게 약간씩은 변화해 왔고, 대부분은 투쟁가요를 보면서 그 흐름을 구분합니다. 지금은 일상 속에서 다름을, 일탈을 꿈꾸어야 할 때인 것 같습니다. 노동운동 안에도 차별이 존재하고 노조운동 내 대다수를 차지하는 대기업 정규직 중심이어서 문화 역시 그들에게 의존을 하고 있는 것이 컸습니다. 지금은 비정규직, 이주, 장애인, 여성 등 각각은 소수이고 그 안에도 여러 갈래가 존재하지만 이러한 불안정 노동과 함께 하는 음악, 그들과의 접점을 만드는 구조가 필요합니다. 그러자면 지금보다도 더 기성의 관념을 깨는 예술이 나와야 할겁니다. 예술활동을 하는 사람들은 과거 역사에서도 늘 비정규, 불안정 노동이었고, 늘 일탈적인 삶을 살아왔고, 늘 경제적으로 어려웠습니다. 그런 면에서 자신의 삶과 일치시켜 그들과 더불어 사는 방법을 알 것 같은데......

노동가요는 더 다양해져야 하고, 한 노래로 전체를 아우르기보다는 각각의 이야기를 따로 따로 하는 그런 노래들이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이야기를 스스로가 당당하게 할 수 있도록 하는 것, 그래서 그 이야기를 다른 기준의 전문성을 가지고 창작하는 것, 그런 음악들이 많아져야 합니다.

 

- 앞으로의 방송도 노동·민중가요에 대한 전문적인 내용을 담을 예정인가요?

 

주로 그럴 생각입니다. 제가 그 동안 고민해왔던 것들, 경험한 것들을 다 정리하려면 아직도 20-30회 정도는 계속해야 할 것 같습니다. 주관적일지라도 일단은 제가 알고 있는 모두를 정리하려고 합니다. 아직은 이론화작업도 부실하고 어느 누가 학교를 만들어 그 내용을 정리하게 될지 요원한 상태에서 더 늦기 전에 제 기억 속의 모든 것을 쏟아내고 객관화 해놓은 것 그 자체로 의미를 두고 있고, 그것이 다시 어디선가 활용되고 재구성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교안이 먼저 정리된 채 진행되는 것이 아니니까 이슈가 되는 이야기가 있다면 그것을 다루면서 융통성 있게 진행을 할 예정입니다. 그 이후엔 아직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만 기능적인 부분의 교육 내용을 정리할 수도 있겠지요(이 부분은 혼자는 어렵겠지만).

 

- 개인적으로 특별히 좋아하는 민중가요가 있는지요? 아니면 최근에 많이 듣는 노래가 있다면 추천해주십시오.

 

저는 어릴 때부터 피아노와 성악 공부를 했기 때문에 고급음악도 무척 익숙하고 편합니다. 그리고 나서 대중가요와 외국의 팝송이라는 걸 접했고, 민중가요는 대학에 와서 접하게 되었지요. 사실 어떤 음악이든 다 좋아합니다. 나름의 맛이 있으니까요. 그리고 저는 모든 음악에 제 삶을 연결시켜 상상하고 느낍니다. 그래서 특히 더 모든 음악을 좋아하지요.

그래도 음악이라고 하는 전문분야를 통해 노동문화운동을 하는 사람이니까 노동가요, 민중가요를 더 많이 접하고 더욱 좋아합니다. 사연이 있는 노래를 좋아하는 데 가장 좋아하는 건 <행복한 인생>이라는 노랩니다. 그 전에는 비장한 노래들을 더 좋아했었는데 96년 구속되었을 때, 바깥세상과 단절된 상태에서 하루에 한 번 면회 오는 남편을 통해 매일매일 진행되는 꽃다지 식구들의 탑골 앞 거리공연과 농성 이야기, 그 자리에 참여한 사람들의 이야기 그리고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여러 사람들의 편지를 받으며 거의 매일 입가를 맴돌던 노래이고, 매일 눈물을 흘리며 부르던 노래입니다.

최근 특별히 많이 듣는 음악이라고 할 만한 건 없는데, 일단 새로운 음반이 나오면 대체로 노래를 외울 수 있을 정도로 자주 듣는 편입니다. 요즘은 비전문집단에서 만든 음반이 몇 개 있는데 그 음반이 참 재미있고 풋풋한 게 좋습니다. 천지산업 노래패 '노래벗', 인천의 '세 여자' 음반, 그리고 발매된 건 아니지만 오철수 시인의 시에 곡을 붙인 노래들을 모아 놓은 음반이 있고, 정세현(범능스님)의 먼 산이라는 음반. 대중가수 중에서는 이상은의 최근 곡들을 즐겨듣고, 자우림 1, 2집, 윤도현, 안치환, 강산에 등을 좋아하고 언제든지 꽃다지, 서기상, 윤미진, 연영석, 박창근, 유정고밴드 노래는 다 좋아하죠. 너무 많은 걸 좋아하고 즐겨듣나요. ^^

 

- 지금 밖에 비가 오는데, 이런 날 어울리는 민중가요가 있다면 무엇이 있을까요?

 

지금 나오고 있는 범능 스님의 [먼 산] 에 수록된 <푸른 학으로>와 서기상 1집 [세상속으로] 중에서 <새2>를 권하고 싶네요. 듣고 나면 비오는 날 더 궁상맞다고 하실 지 모르겠지만 원래 구질구질한 날은 더 궁상맞은 느낌으로 오히려 빠져드는 것이 좋거든요.

 

<푸른학으로> 청학스님 작사/ 범능 작곡 / 박문옥 편곡
사색을 먹고사는 눈 푸른 운수 납자 구름에 쌓여 노는 인간사 속진을 떠나
나 여기 한 마리 꾸밈없는 푸른 학으로 무심천을 날아가리
뜬구름 같은 인생 청산을 닮아가며 자연의 순리 따라 한 삶을 살으다가
어느 날 문득 지는 석양에 내 모습을 불태우리니

 

- '찌니의 노래이야기'를 듣는 청취자들에게 한마디?

 

편하게 일하면서 듣는 방송이 아니라서 죄송합니다. 이야기도 많이 낯설고 개념도 어려운 말이 좀 많지만 그것도 같이 익숙해지면 뭐 괜찮더라고요. 일단 제가 알고 있는 것을 제 맘대로 정리하는 거지만 적극적으로 참여해 주시면 더 잘 해보렵니다. 많이 참여해 주세요.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들어요. 6회 방송을 하면서 정말 20년 가까이 활동하고도 할 수 있는 이야기, 할 수 있는 방법이 이 정도밖에 안되나 싶어 반성도 되고 열심히 하고자 하는 많은 후배들에게 미안하고 하네요.

노동가요를 나의 문화로 생각하고, 제대로 알고 들을 수 있으면 좋겠고 그런 면에서 제가 도움이 된다면 좋겠네요. 그리고 주변에도 많이 이야기를 해주세요. 제 방송을 이야기해달라는 게 아니라 그런 이야기를 같이 나눠보시라는 겁니다. 그렇게 자꾸 같이 이야기를 해야 좋은 방안도 나오고 할겁니다. 원래 낯선 건 무섭고 거부감이 들고 재미없지만, 뭐든지 알면 알수록 재미있고, 잘하면 잘할수록 더 하고 싶다니까요.

 

하니리포터 김재호 http://my.dreamwiz.com/yit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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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동자문화와 노동가요에 대한 생각과 자료를 예전 것부터 그 때 그 때 생각날 때마다, 혹은 발견할 때마다 올려볼까 하는데... 쩝~~ 맨날 바쁘다는 핑계로 관리가 안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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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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