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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합시다

영 엉터리로 한다고, 말도 안되는 짓을 한다고, 너무 나대지 맙시다. 실력을 기릅시다. 그리고 그 전에, 내가 이 일을 왜 해야 하는 것이라고 스스로를 살핍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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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의 무능력을 걱정함

예상보다 더 무능력하다. 회사, 그것도 건설회사 하듯이 나라를 운영하려고 하니 당연히 이런 결과가 나온다. 내가 그럴 줄 알았다는 '후견지명'의 소리에다, 무식하고 이기적인 국민들이 자초한 일이라는 소리까지 차고 넘친다. 조금 더 나가 다시 진보 혹은 개혁(?) 세력에 기회가 있을 것이라는 '흥분'도 있다.

 

그런데 그게 문제다. 진지하게 새로운 비젼을 구상하고 나누는 움직임은 너무 미약한 대신, 쉽게 과거로 되돌아가는 기미가 역력하다. 대안이 아니라, 조각조각 비판과 지적으로 반응하는 방식 말이다. 때로는 우울도 필요하건만, 쉽게 잊고 벌써 너무 발랄하다. 그러니 평가와 반성을 찾기 어렵고, 새로운 전망도 만들어질 틈이 없다. 

 

새로운 프레임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만들어진 프레임에 갇히면 미래는 없다. 나아가 대중이 수용할 수 있는 대안세력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한, 비주류적 취향을 가진 동호인 이상이 되기 어렵다. 다시 말하지만, 이명박의 실패가 곧 진보의 가능성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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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부가 걱정이다

이 정부가 하는 일이 갈수록 걱정스럽다. '규제 완화'와 '시장에 맡긴다' 이외에는 무엇을 하려는지 알 수가 없다. 그리고 나머지는 전형적인 공사판 스타일이다. 이게 터지면 이걸 막고 저게 문제면 저것을 지적하는 방식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것도 큰 그림을 봐 가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지엽말단을 붙들고 우왕좌앙이 다반사다.

 

'보수'라는 것이 본래 이렇다면 할 말은 없다. 그러나 결국 험한 꼴은 힘없는 사람들 차지다.  

 

문제의 핵심은 이명박에게 있다. 대통령제 하에서 이 책임은 불가피하다(이는 어떤 조직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장차관 이하 모든 관료가 대통령의 관심과 흥미를 따라갈 수밖에 없다. 그래서 대통령은 함부로 말해서 안되며 눈길 한번 주는 것에도 주의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현재 이명박은 본인이 전체 그림이 없는 데다가 배울 의지와 능력이 전혀 없는 것처럼 보인다("내가 너무 많이 알고 있어서 공무원들이 피곤할 것이다"라는 발언이 그 증거다).

 

게다가 개인적인 관심사와 흥미를 즉흥적으로 내뱉는 치명적인 결함을 갖고 있다. 전봇대, 톨게이트, 영어, 남북관계 등 모든 것이 그렇다. 관료들이 이 관심사를 쫓아 갈 수밖에 없는 한, 제대로 된 정책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사실, 해결책이 무엇인지는 막막하다. 기껏 행운을 빌고 있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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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언론이 문제다

이명박의 미국 방문 소식은 온통 보도자료 뿐이다. CNN에도 나오지 않는 주말의 공동 기자회견. 웃기지도 않는다. 이야기 했다는 건 온통 소설이다.  

 

청와대나 정부, 그 쪽이야 그렇다 치고, 언론의 역할은 구역질 난다. 초보적인 해설도, 어디에나 따라 붙는 품평도 없다. 어차피 '취재'는 없을 것으로 예상했지만, 대서사 내지는 속기사 노릇만 하고 있으니 돈이 아깝다.  

 

능력도 정성도 없는 언론. 사실 문제는 방향도, 무엇을 해야 하는 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런데 대안도 없으니 더욱 한심하고 처량하다. 세상은 이들이 잡고 있으니. 웈...  욕지기가 치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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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주의의 무차별적 공습 앞에...

예상되었던 것이지만, 시장주의 무차별 공습이 이어진다. 교육이 그렇고, 언론이 그렇다.

 

문제는 이에 대한 대응이다. 여전히 과거의 틀을 벗지 못하고 있다. 소위 문제점 지적 방식이다. 혼란이 예상된다, 부작용이 크다, 양극화가 심화될 것이다.... 그러나 이런 식의 반론을 꺾는 것은 어렵지 않다. 혼란은 차차 줄어들 것이고, 부작용은 보완하면 된다. 이미 대중은 시장주의에 매몰 내지 포획되어 있으므로 이런 이야기는 오히려 시장주의의 '매력'을 각인시킬 뿐이다.

 

프레임을 깨는 대응방식이 필요하다. 시장주의 내지 시장 만능주의의 야만성, 승자독식, 배제, 차가움과 냉혹함에 대응하여 따뜻함, 사회적 연대, 보살핌과 받아들임, 배려의 가치를 강조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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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하고 싶은 것이 있는가

요즘 생각을 지배하고 있는 물음이다. 정말 무엇을 하고 싶은가. 그리고 왜?

 

지식으로는 안다. 대부분의 희망과 의지가 결국 허무하다는 것을. 인생 전체를 관통하는 그 무엇이라도 결국은 죽음으로 귀결되지 않는가. 일상의 소소한 즐거움, 정의, 역사 발전, 이웃에 대한 사랑... 이 모든 것들이 죽음을 맞으면 무로 돌아간다. 그렇다. 이 것이 삶의 유한함이다.   

 

그런데도 왜 사람은 움직이는가. 관성인가 아니면 본능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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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대문 화재와 신자유주의의 재앙

숭례문이지만 남대문으로 그냥 쓰자.

 

얼른 생각하면 기막힌 사고다.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러나 또 조금만 생각하면 그리 이상할 것도 없다. 현재까지 드러난(혹은 그럴 가능성이 높은) 이유만 꼽으면 방화의 가능성에다 관리 소홀이 우선이다. 서로 다른 이야기일 수 있지만 그게 그거. 그러나 방화 가능성은 어디에나 있으니 길게 말할 필요가 없다. 어느 사회나 그런 위험은 있고 어느 때나 그렇다(그런 점에서 여기에 초점을 맞추는 언론의 태도는 전형적인 선정주의다).

 

문제는 관리 소홀. 구체적으로 거론되는 것들은 여러 가지지만, 공통적인 지적은 인력, 시설, 화재 대비태세, 초기 진화 등 모든 것이 부족하거나 미흡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 원인은 여기에서 더 들어가야 한다. 관리 주체가 문화재청이든 중구청이든, 혹은 서울시든 왜 모든 것이 부족하고 미흡했을까. 공무원들이 게으르고 무능해서? 관료주의의 화신이라서?

 

천만에, 그것이 진짜 원인일 가능성은 없다. 이미 약간씩 언론보도에 나타나고 있지만, 인력과 예산 부족은 만성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개방된 국보 1호에 야간에는 상주 인원도 한명 없을 정도에다 불에 강하다는 방염제 처리도 예산부족으로 제대로 못했다고 한다. 뭔가 익숙한 이야기 전개인 것 같지 않은가. 그렇다. 많은 사고, 재해, 재앙과 비슷한 모양이다. 최근 진행된 공공부문 인력 감축의 경과를 보건대, 여기 인원을 빼는 것이 가장 만만했을 것이다. 예산도 마찬가지다. 남대문에 방염제 처리를 할 예산을 삭감하는 것이 쉬운 쪽이었으리라.

 

남대문 불에서 신자유주의의 깃발을 보는 것은 결코 유쾌하지 않다. 그러나 이게 진실이다. 개발과 경제, 성장, 시장이 우선되는 사회. 안전, 환경, 문화, 건강과 복지는 배부른 자들의 헛소리로 치부되는 정부. 이 것이 계속되는 한, 문화재뿐 아니라 사람의 안전도 오직 우연에 맞겨야 하는 신세를 면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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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부처 개편의 정치

일단, 여성가족부, 통일부, 해수부, 과기부 등의 정부부처가 사라지게 되었다. 인권위, 방통위는 대통령 직속으로 바뀐다고 한다. 과기부는 조금 다른 해석이 필요하지만 나머지 부처가 사라지거나 위상이 '격하'된 데에는 이명박의 본능적인 정치감각,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이념이 숨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여성, 통일, 해양수산, 인권, 언론 등의 문제는 규범적이거나 마이너리티와 불가분의 관계를 가진다. 대신 먹고 사는 문제와는 조금 멀다. 보수화된 대중의 심리는 진작 이런 문제들에 대한 부담을 벗어 던지기 시작했다. 한 마디로 '까놓고' 해보자는 것이다. 이명박은 본인이 그런 생각을 하는 데다 대중의 속 생각이 그걸 지지할 것이라는 사실을 간파하고 있다.

돈, 경제, 성장, 먹고 사는 문제보다 더 중요한 가치는 없기에, 없어지는 부처들이 되살아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그런데 이런. 더 철저하게 해야 하는데. 나같으면 농림부를 없앤다. 이제 농업문제를 포기해도 대중은 수용할 가능성이 크다. 그런 점에서 시장주의와 대중의 결합은 아직 불완전하다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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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업화된 종교

민망하다. 그러나 어디 절뿐이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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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용주의가 숨기고 있는 것

정파를 막론하고 실용이 대유행이다. 중국의 흑묘백묘론에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속담까지 참고문(?)도 많다.

 

그러나 실용의 가치는 명백한 범위 안에서만 존재한다. 이념과 방향이 먼저 있고, 이것을 이루는 데 실용이 쓰일 뿐이다. 하위개념이란 이야기다.

 

그레서 실용을 마치 가장 위에 있는 가치인 것처럼 이야기하는 것은 무엇인가를 숨기고 있는 것이다. 무얼 숨겼냐고? 너무 뻔해서 답할 가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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