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대한민국 과학자들의 한(恨)을 풀다… 쇄빙선 아라온호 [제 937 호/2009-07-06]

“오늘 날씨는 참 따뜻해요. 그곳은 춥지 않죠? 포근한 곳에서 잘 지내시길 바랄게요.”

2003년 12월, 고무보트를 타고 탐사활동을 벌이다 남극 바다에 빠져 숨진 고 전재규 대원의 추모 홈페이지엔 아직도 네티즌들이 추모의 글을 올리고 있다. 당시 사고를 당한 대원 5명 중 4명은 구조됐지만, 전재규 대원은 결국 차가운 바닷물 속에서 숨져 시신으로 돌아왔다.

“쇄빙선 한 척만 있었더라면….”

전재규 대원 이야기가 나오면 해양 과학자들은 한숨을 내쉬며 이런 말을 하곤 했다. 얼음 바다를 부수며 항해할 수 있는 쇄빙선은 우리나라 극지 연구자들의 ‘한’ 이었다. 남극에 상주기지를 운영 중인 20개국 중 쇄빙선이 없는 나라는 우리나라와 폴란드, 단 두 곳뿐이다.

쇄빙선이 꼭 필요한 날만 하루 8,000여만원을 주고 러시아 등에서 빌려 사용하고 있는데, 그나마 빌릴 수 있는 기간이 제한돼 가고 싶은 곳을 마음껏 다니기 어려웠다. 연구하기에 적합한 시기인 11월부터 다음 해 2월까지는 다른 나라들도 쇄빙선을 사용하고 있어 빌리는 것조차 어렵다.

<진수를 마친 아라온호가 바다로 나아가고 있다. 종합시험 항해를 거쳐 11월 말부터 본격적
으로 활동하게 된다. 사진제공 극지연구소>

그러나 이런 한이 풀릴 날이 성큼 다가왔다. 지난 6월 11일은 우리나라 극지 연구자들로서 기념할 만한 날일 것이다. 국내 최초의 쇄빙선 아라온호가 바닷물 위로 떠 오른 날이기 때문이다. 정식 출항까지는 시간이 남아있지만, 국내 최초의 쇄빙선이 드디어 물위에 떠오른 사실 만으로도 한 많았던 과학자들에겐 감격스런 날로 기억 될 것이다.

쇄빙선이 왜 이렇게 중요한 것일까? 아라온호의 완성은 단순히 배 한 척 확보한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이미 세계 각국에서도 우리나라를 극지연구에 관한한 선진국 반열에 올라섰다고 평가하고 있다.

쇄빙선이 있으면 남, 북극기지를 새로 건설하거나 운용하기가 한결 수월해진다. 현재 우리나라의 남극기지는 세종 기지 한 곳 뿐으로 미국의 3개, 영국·호주의 4개에 비해 적다. 더구나 세종기지가 있는 킹조지섬은 남극 치곤 꽤 따뜻한 곳이다. 남극점에서 상당히 멀리 떨어져 있어 여름에는 풀이 돋을 때도 많다. 조류나 생태연구에는 적합하지만 진정한 극지연구를 하기엔 무리가 있다.

결국 극지연구소는 총 700억 원을 들여 두 번째 기지를 건립할 계획을 발표하고 지난 해 부터 본격적인 탐사에 들어갔다. 이런 계획도 우리나라의 쇄빙선 제작이 확정된 다음에야 결정될 수 있었다. 쇄빙선 없이는 물자를 보급할 수도, 실험기자재를 옮겨 놓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아라온호에는 어떤 특징이 있는 것일까? 먼저 살펴봐야 할 것은 남, 북극의 혹한 지역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탁월한 쇄빙능력이다. 아라온호는 두께 1m의 얼음을 깨며 3노트(시속 5.5km)로 운항할 수 있는 능력을 갖췄다. 얼음이 없으면 16노트(시속 30km 정도)까지 속도를 낼 수 있다.

이런 성능의 비결은 아라온호만의 독특한 구조 덕분이다. 선저(배의 아랫부분)에는 얼음을 자르며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아이스나이프가 달려 있다. 뱃머리 부분은 해군의 대형상륙함 독도함보다 2배나 두꺼운 4cm의 강철판으로 만들어졌으며 선체에 칠하는 도료도 돌덩이처럼 단단하다. 딱딱한 얼음에 배가 파손되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다. 갑판이 얼어붙는 걸 막기 위해 갑판 전체에 열선도 깔려 있다.

극도로 추운 날씨에선 배 주위에 있던 바닷물까지 얼어붙곤 한다. 쇄빙선이라도 이런 상황에선 얼음위로 점점 밀려 올라가기 때문에 오도가도 못하는 신세가 되기도 한다. 이럴 때를 대비해 아라온호는 배를 좌우로 흔들어 얼음을 깨는 기능도 갖추고 있다.

선체 앞머리를 최대 5m까지 들어 얼음을 짓눌러 깰 수도 있다. 아라온호의 바닥에는 300톤에 달하는 물을 싣고 있는데, 이 물을 옮겨 가며 배 자체의 무게중심을 마음대로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얼음을 깨기 위해서는 배 자체의 무게도 중요하기 때문에 다른 배보다 훨씬 무겁게 만들어졌다. 총 무게 6,950톤으로 2000~3000톤 정도인 일반 연구선보다 훨씬 무겁다.

다른 배의 3~4배에 달하는 압도적인 힘도 자랑거리다. 아라온호에는 6,800마력에 달하는 대형 엔진 2개가 장착돼 있어 보통 배의 3~4배가 넘는 힘을 낸다. 웬만한 얼음은 그대로 부수면서 전진할 수 있는 충분한 힘이 있는 것이다.

앞 쪽의 얼음이 너무 두꺼워 더 이상 전진하기 어려운 경우에는 아예 피하는 기능도 갖췄다. 아라온호는 길이 막히면 그대로 후진하거나, 좌우로 수평 이동할 수 있다. 후미에 달린 2개의 프로펠러가 360도 회전하기 때문이다.

<진수식 직전 추진기와 함께 후미의 프로펠러가 설치되고 있다. 아라온호의 프로펠러는 360도
회전이 가능하다. 배 앞쪽에도 보조 프로펠러 2개가 장착돼 있다.>

아라온호가 각광받는 또 다른 이유는 남, 북극 기지를 충분히 지원할 수 있는 수송선이라는 점이다. 아라온호는 길이 110m, 폭 19m가 넘는다. 한번 보급을 받으면 70일간 약 2만해리(약 3만7,000km)를 항해할 수 있으며, 배 뒷편에는 25톤 크레인이 달려있어 자체 하역까지 가능하다. 대형컨테이너나 트럭 같은 물건도 배에 올리고 내릴 수 있어서 어지간한 물자는 모두 아라온호 만으로 보급이 가능하다.

대형 헬리콥터 착륙장과 격납시설을 갖추고 있는 것도 큰 장점이다. 배로 접근하기 어려운 극지 내륙지역까지 물자와 인력을 보내 줄 수 있는 셈이다.

아라온호가 얼음을 부수며 보급업무만 하는 것은 아니다. 영하 30도에서 영상 50도까지 견딜 수 있어 극지와 적도를 전천후로 누빌 수 있다. 또 본격적인 연구 장비를 갖추고 있기 때문에 언제, 어디서든 해양연구를 수행할 수 있는 역량을 갖췄다. 말 그대로 움직이는 해양연구소이다.

아라온호는 진동을 최소화하기 위해 디젤엔진을 사용하지 않고, 전기엔진 2대를 이용한다. 떨림이 적고 조용해 바다 위에서 연구를 하기에 적합하며, 자동위치유지장치 덕분에 해류가 흐르거나 바람이 불어도 배가 정해진 위치에 그대로 떠 있을 수 있다. 바다 위에서 안정적으로 연구활동을 수행하기 위한 조치다.

총 탑승인원 85명 중 60여명이 과학자며, 첨단 연구장비만 해도 60가지가 넘는다. 입체 현미경 등 총 48개 실험장비를 갖췄으며, 바닷물 성분을 확인하는 CTD 등 해양, 생물용 연구장비가 다수 실려 있다. 대형 지질, 지구물리 연구장비와 함께 기후 연구를 위한 기상, 대기, 모니터링 장비까지 설치돼 있다. 이런 역량 덕분에 선진국들로부터 공동협력 제안도 이어지고 있다.

아라온호는 선박 내부를 단장한 뒤 이르면 9월말 인천에 있는 극지연구소에 인도되며, 11월 말에 과학자들의 한을 모두 털어내고 남극으로 출항하게 된다. 이후에는 각종 시험 항해를 거쳐 2010년부터 본격적인 탐사와 연구활동에 나설 계획이다.

사람들이 남, 북극 연구에 열을 올리는 이유는 석유와 천연가스가 가득한 자원 보고이기 때문이다. 세계 강대국들이 40여 척의 쇄빙선을 운용하는 목적이기도 하다. 11월 다가올 아라온호의 첫 항해가 우리나라를 자원강국으로 만드는 첫 걸음이 되길 기대해 본다.

전승민 동아사이언스 과학전문기자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게임도 하고 건강검진도 받고 [제 936 호/2009-07-03]

2010년 초여름. 깔끔한 정장에 옆이 살짝 올라간 중절모까지 쓰고 한껏 멋을 낸 김갑수 노인이 거울 앞에 섰다. 아무리 뜯어봐도 한 점 흠 없는 노신사다. 만족감에 ‘씨익’ 웃음을 짓는 김 노인. 그러나 집을 나서면서 그의 자존심은 여지없이 무너진다. 지난해 뇌졸중을 앓으면서 오른쪽 팔다리에 마비가 오는 바람에 지팡이에 의존해야만 하는 것이다.

김 노인이 도착한 곳은 고향친구 박민수 노인의 칠순잔치가 벌어지고 있는 한 한정식 전문점. 식당 안에는 벌써 고향 친구들이 자리를 잡고 김 노인을 기다라고 있다.

“어이, 친구들 잘 있었는가?”

“갑수 오나? 늦었구먼. 지금 민수 아들내외가 칠순 선물을 꺼냈는디, 뭐가 들었을까나?”

“옷 아니면 여행상품권이겠지 뭐.”

그러나 아들 내외가 꺼낸 선물은 다름 아닌 ‘게임기’였다! 순간 좌중이 술렁이더니, 여기저기서 우레와 같은 박수소리가 터져 나온다.

“역시 민수 아들이 효자는 효자여. 저게 TV화면을 보면서 네모난 판에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그 위피트인가, 아래피트인가 하는 그 게임기잖여.”

<일본 닌텐도 사의 가정용 게임 소프트웨어 ‘위핏(Wii Fit)’.>

“애들도 아니고 체신머리없이 뭔 게임기여?”

“이 친구 몰라도 한참 모르는구먼.”

말인즉 이랬다. 이 게임기를 만든 일본 기업 닌텐도는 사용자가 게임판 위에서 게임을 하는 동안 자연스럽게 자신의 건강정보를 담고, 인터넷을 통해 이 데이터들을 자동으로 보건지도사에게 보내는 ‘원격건강지도시스템’을 개발했다는 것.

다시 말해 이 게임판이 측정기 역할을 해서 체중 변화와 몸의 밸런스, 일정시간 동안 걸을 수 있는 걸음 수, 기초체력 등의 정보를 모은 다음 자동으로 건강관리 전문가에게 전달한다. 그리고 ‘체중을 얼마 줄여야 한다’, ‘균형 있는 몸매를 만들기 위해 어떤 운동을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다’ 등의 의견을 보내오면, 사용자는 TV화면에 뜬 전문가의 의견을 참고해 건강을 지켜나간다는 것이다. 게임기 사용자와 건강관리 전문가가 질문과 답변을 주고받을 수 있어 평상시에도 아주 간단하게 건강관리를 할 수 있다고 한다.

“요즘 저 게임기가 최고의 효도선물이여. 센스 있는 자식들은 벌써 다 사드렸댜. 부럽구먼 부러워. 우리 애들은 생각도 못하고 있는 것 같든디.”

“아직 칠순잔치 안 했잖여. 그때 선물하겄지.”

“하긴, 그럴라나?”

그때 잔치를 진행하던 사회자가 두 번째 선물을 꺼내들었다.

“게임기가 끝이 아닙니다. 오늘 박민수 어르신 자제분께서는 칠순잔치 건강 선물 삼종세트를 준비하셨다고 하는데요. 두 번째가 바로 이 휴대전화입니다. 이 휴대전화는 적외선 통신을 이용해서 집에 있는 체중계, 혈압계, 만보계 등에 기록된 어르신들의 건강정보를 자동으로 수집하는데요. 그렇게 수집한 정보는 보건소에 전달돼 원격 건강검진에 활용됩니다.

연세가 들수록 건강검진은 자주하는 게 좋다는 거 다 아시죠? 우리 어르신들, 하루하루 건강이 다르다는 푸념도 자주 하시잖아요. 그런데 굳이 신경 쓰지 않아도 전화기가 알아서 매일 건강정보 수집해 줘, 보건지도사가 개인별 정보를 분석해서 건강 관리해 줘, 거기다 건강에 도움 되는 전문적인 조언까지 휴대전화로 날려주니까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을 겁니다. 자, 박민수 어르신, 이 휴대전화로 지금의 건강 100세까지 지켜가세요.”

사회자의 넉살좋은 언변에 여기저기 웃음과 박수가 터져 나온다. 그러나 이런 서비스가 있다는 걸 처음 안 김 노인은 눈이 휘둥그레진다.

“아니, 이런 서비스가 언제부터 있었던겨?”

“이 친구가 아들 따라서 외국 몇 달 댕겨오드니 아무 것두 모르네. 일본에서는 작년 그러니께 2009년 2월부터 이 서비스가 실시됐구, 인천 송도 시에서도 이미 휴대전화를 이용한 원격 건강검진 서비스를 하고 있잖여.”

“아, 그랬어?”

“아이구, 조용히 혀 봐. 지금 세 번째 선물 푸는 모양인디? 아니, 그 유명한 똑똑이 화장실아녀? 민수 아들이 참 속이 깊어. 멀리 사는 부모님 건강관리 할라고 저거까지 준비하고 말여.”

<다이와(大和)하우스공업과 토토(TOTO)가 공동으로 개발한 재택
건강시스템인 ‘인텔리전스 화장실’. 동아일보 자료사진>

세 번째 선물상자 속에서 나온 화장실 시스템은 김 노인도 탐내는 제품이었다. 일명 ‘인텔리전스 화장실’. 소변을 보는 것만으로 요당치, 혈압, 체지방, 체중을 측정할 수 있어 2005년 판매되자마자 세간의 관심을 주목시킨 제품으로, 2008년 12월 판매를 시작한 ‘인텔리전스 화장실 II’는 요 온도(심부 체온)와 BMI(체질량지수)까지 측정할 수 있어 더욱 인기다.

새로 첨부된 요 온도 측정 기능은 수시로 체온을 확인할 수 있게 해서 감기 같은 병에 걸린 사실을 빠르게 알 수 있게 해주고, 여성의 경우 특유의 호르몬 밸런스를 알려줘 월경 시기나 배란일도 예측할 수 있게 해준다. 또 BMI 측정 기능은 건강관리에서 체중보다 훨씬 더 중요한 체질량지수를 하루에도 수차례 알려줌으로써, 사용자로 하여금 게을러지지 않고 꾸준히 운동할 수 있도록 경각심을 불러 일으켜 준다.

“우리 옆집에 이 노인 있잖여. 그 건강염려증 환자라는 사람. 그 사람도 작년에 저 똑똑이 화장실 사고부터는 건강걱정이 한층 덜해졌다고 하드라고.”

“그려. 나두 이참에 하나 살까혀.”

“난 말여, 자네 작년에 뇌졸중 걸린 것도, 저 원격 건강관리 게임기나 휴대전화, 그리구 똑똑이 화장실 같은 걸로 매일매일 건강을 관리했으믄 어쩌면 막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도 들어.”

“다 지 복이지 뭐.”

말은 그렇게 했어도 김 노인의 얼굴빛은 어두워졌다. ‘수시로 건강을 체크하고 상담 받을 수 있는 이러한 시스템을 미리 알고 잘 갖춰뒀더라면’ 하는 후회였다. 김 노인의 눈에는 마비된 오른쪽 반신을 지탱해주는 지팡이가 유난히 크게 보였다. 그러나 이내 김 노인의 표정은 미소로 바뀌었다.

‘그려, 나는 좀 늦었지만 첨단 과학기술 덕분에 우리 애들하고 손주 녀석들은 언제 어디서나 건강관리를 받을 수 있는 유비쿼터스 의료 환경 속에 살 수 있게 됐고, 덕분에 큰 병으로 고생할 가능성이 훨씬 줄어들었으니께 얼마나 좋은감. 요즘엔 평균수명이 100살은 될 거라니께 나도 앞으로 30년은 그 덕을 볼 것이고 말이여. 살면 살수록 과학기술은 참으로 고마운 것이여.’

글 : 김희정 칼럼니스트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한국의 우주관문, 나로우주센터 탄생기 [제 935 호/2009-07-01]

우리나라 최초로 우주발사체(로켓)을 쏘아올릴 나로우주센터가 6월 11일 공식적인 준공을 마치고 첫 출항을 준비하고 있다. 나로우주센터는 우리나라 첫 우주발사장으로서 우리나라 위성을 우리 땅에서 발사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매우 크다.

우주선진국으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인공위성 및 발사체 자력개발 능력, 그리고 자국 내 발사장 구축 등 3박자가 갖추어져야 한다. 현재 우리나라 우주개발 프로그램의 궁극적인 지향점이 바로 이러한 3박자를 모두 갖춰 우주개발의 자주성을 확보하는 것이다.

우주기술 선진국들은 지난 50여 년 동안 수천 개의 위성을 발사해 왔다. 이들의 우주개발 역사에서 중요시 되는 것이 바로 각 국의 발사장, 즉 우주센터다. 우주센터가 우주개발을 수행하기 위한 전초기지이기 때문이다.

세계적으로 발사장을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는 나라는 미국으로 1949년 설립된 플로리다의 ‘케이프 케너버럴’ 발사장을 비롯해서 현재 10개의 우주센터를 가지고 있다. 신흥 우주강국 중국의 추격도 만만치 않다. 유인우주선 선저우호 발사로 유명한 주천발사장을 1958년 설립한 데 이어 총 3곳을 운영하고 있으며, 현재 또 다른 발사장 한 곳을 건설하고 있는 중이다. 일본도 1963년 건설된 가고시마 발사장을 비롯하여 현재 3번째 발사장을 구축하고 있다.

1990년대 들어 우주개발을 시작한 우리나라는 우리별위성, 무궁화위성, 아리랑위성 등 우리의 위성을 보유하면서 우리 위성의 자력 발사를 위한 소형위성발사체(KSLV-I) 개발사업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우주발사체 개발은 물론 독자적인 우주개발과 우리 기술 보호를 위해 우리나라 안에 우주센터를 건설해야 한다는 필요성이 대두되다 1998년 과학기술장관회의를 통해 우주센터 건설이 확정됐다.

<나로 우주센터가 들어설 전남 고흥 외나로도 전경. 동아일보 자료사진>

우주센터를 만들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어디에 세우느냐’이다. 우주발사체가 대기권을 벗어나 정상적으로 궤도에 진입하기까지 보통 2단계 이상의 단 분리가 이루어진다. 우주발사체 비행궤적에 인구가 많은 지역이나 다른 나라의 영공을 비행하는 경우에는 안전이나 외교적인 문제를 야기할 소지가 있다.

나로우주센터를 세울 때도 그랬다. 우주센터 건설자문위원회에서 11개 후보지를 선정했고, 이어서 지방자치단체가 추천한 인사가 포함된 우주센터추진위원회가 각각의 후보지를 정밀 검토했다.

비행궤적과 각 단 낙하지역의 안전영역을 우선 고려하여 일본이나 중국을 지날 수 있는 동해와 서해 지역은 제외했으며, 전남 고흥과 경남 남해 두 곳이 후보지역으로 압축됐다.

이렇게 대상이 압축되면 다시 종합 검토에 들어가야 한다. 나로우주센터도 발사장 주변 안전영역, 발사각도, 건설 용이성 및 주민 이주보상 등 종합적인 검토를 거쳤다. 발사대 중심으로 최소 2km 이내에 사람이 거주할 수 없기에 이주대상이 적은 곳을 찾았다. 발사장 및 부대시설 건설이 용이하고 도로, 항만, 전기, 용수 등의 기반시설이 확보되어 있는지 여부 그리고 해당 지역의 자치단체 및 주민의 의견도 수렴했다.

그 결과 최종적으로 전라남도 고흥군 외나로도가 우주센터 건설부지로 선정됐다. 고흥군은 우주발사체를 발사할 수 있는 각도가 다른 후보지보다 최대 4배나 높다는 장점도 있었다.

우주센터 건설이 시작되면 ‘부지 넓이와 목적에 맞는 설계’가 중요해 진다. 외나로도 동남단 지역을 중심으로 총 부지면적 약 500만㎡, 시설부지 약 37만㎡ 규모를 갖춘 우리나라 최초의 우주센터인 나로우주센터는 2007년 상반기에 주요시설 건설공사를 마무리하고, 우주발사체 발사에 필요한 다양한 추적 및 통제장비들의 구축도 완료했다. 모의비행시험을 통해 모든 장비 간 통합운용시스템도 구축 완료된 상태이다.

우주센터를 운용하는데 필요한 필수 시설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나로우주센터의 주요시설로는 우주발사체의 성공적인 발사를 지원하기 위한 발사대시스템을 비롯해 발사통제동, 위성시험동, 발사체종합조립동, 고체모터동, 추적레이더동, 광학장비동, 우주과학관 등이 설치돼 있다.

우주기지에서 반드시 필요한 두 가지 시설이 있다. 로켓의 발사상황을 한눈에 살펴보고, 모든 상황을 지휘 할 수 있는 ‘발사지휘소’와 로켓의 상황을 속속들이 통제할 수 있는 ‘발사통제센터’가 그것이다. 대개 발사체 통제센터는 발사장 인근 지하에, 발사지휘소는 이보다 떨어진 위치에 짓는 것이 관례다. 발사체는 강한 폭발력을 지닌 연료를 갖고 있는 데다 발사 순간 섭씨 3000도가 넘는 열을 뿜어내기 때문에 통제센터는 보통 발사대 인근 지하에 벙커를 만들어 세워야 한다.

하지만 나로우주센터는 발사체 통제센터와 발사지휘소가 발사통제동에 함께 있다. 같은 건물에 두가지 기능을 합쳐 설계한 경우는 나로우주센터가 세계에서 처음이다. 발사통제동은 발사대에서 2km나 떨어져 있는데, 먼 곳에서도 전자제어장비와 실시간 화상으로 모든 업무를 처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뛰어난 IT 기술이 이룩한 성과라고 할 수 있다.

<완공된 나로우주센터 로켓 발사대. 동아일보 자료사진>

그 외에 우주기지에 필요한 시설은 어떤 것이 있을까? 우주발사체의 비행정보를 수신하고조종하기 위한 추적시스템이 필요하다. 일단 발사된 로켓이 어디로 날아가고,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판단해 조작해야 하기 때문이다.
추적시스템에는 레이더와 원격자료수신장비, 광학추적장비 등 첨단장비가 동원된다. 이런 시설은 나로우주센터 및 제주추적소에 만들어진다. 또 순조로운 발사 운용에 필요한 각종 기상 데이터를 확보하기 위한 기상관측소가 우주센터 인근 마복산에 위치하고 있다.

한국의 우주개발 역사는 미국, 러시아, 유럽연합, 일본, 중국, 인도 등에 비하여 매우 짧다. 비록 후발주자이지만, 지금껏 자체적인 우주센터를 보유하지 않은 상황에서도 우주기반기술 확보에 있어서 비약적인 성과를 이뤄 왔다. 이번 나로우주센터 준공과 첫 위성발사를 통해 앞으로 우리나라의 우주기술 개발이 훨씬 더 탄력을 받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우주를 향한 대한민국의 꿈이 우리 위성에 실려 우리 땅에서 우리 발사체로 출항을 알릴 역사적 순간이 이제 멀지 않았다. 남해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우리의 땅에서 우리의 기술력이 생산해 낸, 태극마크 선명한 우주발사체 KSLV-I이 붉은 빛을 내뿜으며 힘차게 도약하는 장관을 그려본다.

글 : 민경주 한국항공우주연구원 나로우주센터장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