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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룡이 살아 있다 - 한반도의 공룡들

공룡이 살아 있다 - 한반도의 공룡들 [제 903 호/2009-04-17]
“우와, 신기하다.”

막내 왕궁금이가 눈이 휘둥그레지며 소리쳤다. 가족들과 봄나들이 삼아 공룡 박물관을 찾은 왕박사 씨는 아이들이 너무나도 재미있어하는 모습에 뿌듯했다. 이곳저곳을 둘러보다가 프로토케라톱스(Protoceratops)의 실물 모형을 본 왕박사 씨는 문득 얼마 전에 본 뉴스가 떠올라 아이들에게 얘기해주었다.

올해 초에 경기도 화성시 전곡항에서 이 프로토케라톱스의 화석이 발견되었다고 하는구나. 프로토케라톱스는 백악기에 살았던 초식 공룡인데 이번에 발이랑 꼬리뼈 화석이 우리나라에서 처음 발견되면서 한국 공룡 연구에 아주 중요한 자료가 된 것이지.”

“아빠! 백악기가 몇 년 전을 얘기하는 거죠? 학교에서 배웠었는데…”
“요 녀석~ 그러게 복습을 하랬잖아. 백악기는 1억 4,000만 년에서 6,600만 년 전을 가리킨단다.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백악기 시대의 공룡들의 흔적이 발견되고 있어. 고생대에 한반도와 중국, 일본은 하나의 대륙이었는데 중생대 쥐라기에 대보조산운동이 일어나 중생대 초기 백악기의 한반도에는 거대한 호수들이 생겼지. 한반도의 온화한 날씨에 호수 주변의 식물과 먹이가 풍부했기 때문에 공룡들이 살기엔 안성맞춤인 환경이었어. 당시 호수가 있었던 경상도와 전남 지역에 공룡들의 흔적이 분포되어 있단다. 그중에서도 1982년에 1천 8백여 개의 공룡 발자국이 발견된 경남 고성은 미국 콜로라도 주, 아르헨티나 서부 해안과 함께 세계 3대 공룡 발자국 화석지로 유명하지.”

“그렇군요. 우리나라가 세계 3대 화석지 안에 꼽힌다니 왠지 뿌듯한 걸요. 음… 프로토케라톱스는 어떤 공룡이었어요?”
“그래. 공룡 화석은 무엇보다 중요한 유물이지. 그렇기 때문에 우리 후손에게 잘 물려 주어야겠지. 프로토케라톱스는 처음으로 뿔을 가진 초식 공룡이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야, 이 공룡의 화석은 과거에 몽골에서 발견되었는데 이번에 우리나라에서 발견되면서 서식지가 몽골에서 우리나라까지 이어졌다는 걸 알 수 있게 되었어.”



“와! 굉장해요. 우리나라에 살았던 다른 공룡들 얘기도 해주세요~”
“먼저 타르보사우루스(Tarbosaurus)에 대해서 설명해볼까? 저기 보이는 티라노사우루스와 크기가 10~12m 정도로 비슷하고 친척관계에 있다고 추정되고 있어. 아, 마침 한반도의 공룡들만 따로 전시해 놓았구나. 타르보사우루스는 두 발로 걷고 육식을 한다고 해서 이족보행 육식공룡이라고 불리는데 앞발이 짧고 연약해서 먹이의 뼈를 발라 먹지 못하고 통째로 먹는대. 저기 보이듯이 앞발이 너무 작지?”

“아하~ 정말로 머리나 몸집에 비해 앞발이 작네요. 뒷발은 걷거나 뛰어다녀야 하니까 어쩔 수 없이 먹잇감을 바로 입으로 재빠르게 낚아채야 했겠네요.”
“맞아. 초원에서 타르보사우루스가 초식동물을 잡아먹는 장면이 상상이 되지? 엄청난 굉음을 지르는 소리도 들리는 것 같고 말이야.”

“아빠, 저도 힘센 공룡 친구가 하나 있었으면 좋겠어요.”
“하하~ 네 몸집에 비해서 너무 큰 거 아닐까? 타르보사우루스보다는 벨로키랍토르(Velociraptor)가 네 친구로 더 적당할 것 같구나.”
“벨로키랍토르요? 키가 얼마나 되는데요?”

“벨로키랍토르의 키는 1.8m 정도야. 주둥이가 길고 좁은 형태이고, 꼬리가 얇고 길어서 시속 60km까지 달릴 수 있었지. 시조새랑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돼. 날카로운 갈고리 모양의 발톱이 있어서 먹잇감의 급소에 치명상을 입히는 방법으로 사냥했을 거라고 추정된단다. 벨로키랍토르라는 이름도 날쌘 도둑이라는 뜻으로 작은 몸에 비해 날카로운 이빨과 발톱을 가졌으며 공격력이 강해 잔인하고 사악한 육식공룡으로 알려져 있지. 주로 우리나라를 비롯해 몽골, 중국, 러시아에 분포되어 서식했어.”

“저 큰 공룡 이름은 뭐에요? 벨로키랍토르 옆에 있으니까 훨씬 더 커보여요!”
“테리지노사우루스(Therizinosaurus) 말하는 거니? 키는 10m 정도인데 70cm가 넘는 긴 발톱이 있어. 2족 보행 초식 공룡이고 긴 발톱을 사용해 상대를 공격했지. 이름도 ‘큰 낫 도마뱀’이라는 뜻이야. 이 공룡 역시 우리나라, 몽골 등지에서 발견되었어. 큰 몸집에 걸맞게 알도 45cm로 큰데, 지금까지 발견된 공룡알 중에서 가장 큰 크기란다.”



“약간 거북이를 닮은 것 같기도 해요.”
“응. 맞아. 그래서 1940년대 후반에 몽골과 러시아의 연합 화석 탐험대에 의해 발견되었을 때는 거북을 닮았다는 뜻의 첼로니포르미스(cheloniformis)라 불리다가 1954년에 러시아의 고생물학자 말리브에 의해서 지금의 이름이 붙여졌지.”

“정말 알면 알수록 더 알고 싶은 걸요~ 점심 먹고 중생대 전시장도 가요!”
“그래. 우리 왕궁금이가 재미있어하니까 아빠도 즐겁구나. 점심 맛있게 먹고 마저 보자꾸나.”

글 : 이상화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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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억의 붉은빛 - 호프 다이아몬드

2,000억의 붉은빛 - 호프 다이아몬드 [제 902 호/2009-04-15]
신부들이 결혼 예물로 가장 받고 싶어하는 보석은 아마도 ‘영원’을 상징하는 다이아몬드일 것이다. 지금까지 ‘절대 아름다움’의 상징으로 여겨져 온 다이아몬드의 명칭은 ‘정복할 수 없다’는 뜻의 그리스 어인 아다마스(Adamas)에서 유래되었다. 다이아몬드는 탄소 원자가 정팔면체 형태로 배열돼 만들어지는데, 경도가 10으로 모든 광물 중에서 가장 높다. 다이아몬드에 견줄 만한 경도를 가진 물질은 아직 없으므로 거의 영구불멸하지 않을까 싶다.

가격 또한 만만찮은 보석이다. 세계에서 가장 비싼 보석은 추정가가 약 2,000억 원이나 된다. 그 주인공은 비운의 전설로 유명한 호프 다이아몬드(Hope Diamond)다. 호프 다이아몬드는 45.52캐럿(9.1g)의 무게에 가로 2.56cm, 세로 2.58cm, 높이 1.2cm로 대단히 큰 블루(청색)다이아몬드다. 이 블루다이아몬드는 소장자였던 헨리 필립 호프(Henry Philip Hope)의 이름을 따서 호프 다이아몬드로 명명되었다.

호프 다이아몬드의 원석은 1600년대 중반 인도에서 처음 채굴되었는데, 당시는 112캐럿짜리의 청색 다이아몬드였다. 이것을 프랑스 국왕 루이 14세가 사들여 67캐럿짜리로 조각해 소유했다. 그런데 프랑스 혁명기에 사라졌다가 지금의 45.52캐럿짜리로 발견돼 현재 스미스소니언 박물관에서 특유의 매혹적인 빛과 광채로 관람객들의 눈길을 사로잡고 있다.

호프 다이아몬드만큼 비운의 전설적 역사를 가진 보석도 없을 것이다. 이 다이아몬드를 소유한 사람들은 모두 비극적 운명을 맞이했기 때문이다. 루이 14세는 단 한 번 착용했음에도 불구하고 천연두로 사망했고, 이것을 이어받은 루이 16세도 프랑스 혁명 때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졌다. 1792년 9월에는 왕실의 이 호프 다이아몬드가 강탈당했다가 어느 날 다시 좀 작아진 크기로 런던 거리에 나타났다. 그것을 1830년 영국의 은행가인 헨리 호프가 구입했다. 하지만 런던의 부호였던 그 역시 몇 년 뒤에 파산하면서 가족이 모두 비극적 운명을 맞이했다. 불행이 너무나도 줄줄이 이어지자 1958년에 세계적으로 유명한 보석상 해리 윈스턴이 구입하여 이것을 스미스소니언 박물관에 기증함으로써 영구 보관하게 되었다.

‘희망’이라는 뜻의 ‘호프’ 다이아몬드는 전설로 보면 ‘저주’와 더 친숙한 느낌이다. 하지만 비운의 전설은 이야기에 그칠 뿐, 실제 호프 다이아몬드 자체는 신비로움을 지닌 보석이다. 호프 다이아몬드는 어떤 보석도 가지지 못하는 자기만의 독특한 색의 빛을 낸다.

보통 다이아몬드는 주성분인 탄소 속의 불순물 차이 때문에 다른 색깔을 띤다. 다이아몬드를 무색투명한 아름다움의 대명사라고 하는데, 사실 광산에서 채굴되는 다이아몬드는 대부분 옅은 노란색이나 갈색을 띤다. 다이아몬드가 노란색을 띠는 이유는 질소 때문이다. 다이아몬드는 99.95%의 탄소와 0.05%의 불순물로 이루어져 있다. 순수한 탄소로 이뤄진 다이아몬드는 빛을 100% 반사해 무색으로 보인다. 다이아몬드가 아름답게 보이는 이유는 다이아몬드로 들어온 빛이 모두 반사돼 그대로 나가기 때문이다. 그런데 0.05%의 이 미량의 불순물이 다이아몬드의 색상을 결정해 내보낸다. 즉, 탄소 대신 다른 원자가 섞여 있으면 다른 색이 나타난다는 얘기다. 미량의 불순물이 특정 파장의 색을 흡수하기 때문이다.

다이아몬드는 대부분(98%) 불순물 중 질소를 함유하고 있다. 다이아몬드가 만들어질 때 땅속에 풍부한 질소가 탄소와 자리바꿈을 하면서 결정 구조에 차이가 나타난다. 그리고 질소가 포함된 양에 따라 다이아몬드의 색이 바뀌어 노란색이나 갈색을 띠게 되는 것이다. 천연 다이아몬드는 지각 아래에서 오랜 시간에 걸쳐 천천히 성장하기 때문에 이물질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 따라서 무색투명한 천연 다이아몬드는 그만큼 희소성이 높은 셈이다.

그런데 아름다운 청색을 나타내는 블루다이아몬드, 즉 호프 다이아몬드에는 질소가 아닌 붕소가 함유되어 있다. 붕소는 땅속에 적게 분포해 다이아몬드 결정에 드물게 포함된다. 결국 불순물이 컬러 다이아몬드를 만들어내는 비결인 셈이다. 대개 보석 속의 불순물은 특정 파장의 빛에 반응하여 색의 효과를 나타낸다. 예를 들어 루비는 루비에 섞여 들어간 크롬에 의해 붉은색을 띠게 된다. 사파이어는 철이나 티탄이 포함되어 황색, 녹색, 자청색 등의 여러 가지 색을 나타낸다. 에메랄드에 포함된 크롬은 루비와 달리 에메랄드를 녹색으로 빛나게 한다. 이는 루비와 에메랄드의 결정 구조 차이에 의해 크롬이 흡수하는 파장이 다른 데서 기인한다.




어둠 속에서 자외선을 비추면 원래는 아름다운 청색의 블루다이아몬드가 몇 분 동안 붉은 인광(phosphorescence)을 발한다. 이것은 다이아몬드 속의 전자가 자외선의 에너지를 흡수하여 가시광선으로서 그것을 방출하기 때문이다. 인광은 자극이 멎은 뒤에도 계속 빛을 내는 것이고, 형광은 자극이 작용하고 있는 사이에만 발광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청색의 호프 다이아몬드가 자외선을 쪼이면 선명한 붉은 인광을 발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660nm(나노미터)의 빛이 훨씬 많기 때문인 것으로 밝혀졌다. 스미스소니언 박물관의 제프리 포스트 박사팀과 해군연구소의 연구에 따르면, 45.52캐럿짜리 이 호프 다이아몬드에 백색광을 쪼이면 푸른빛을 내고 자외선을 쪼이면 붉은빛을 스스로 내는데, 붉은빛을 낼 경우에는 660nm 파장의 빛이 강했다고 한다. 블루다이아몬드에서 붉은 발광이 일어나는 현상은 아주 드문 일이다. 그래서 66개의 다른 블루다이아몬드에도 자외선을 쬐어 보았더니 미세하지만 저마다 다른 푸른빛이나 핑크빛을 나타냈는데, 이때는 500nm 파장의 빛이 더 강했다고 한다.

연구팀은 블루다이아몬드가 내는 이런 빛의 특성은 다이아몬드를 하나하나 구별하는 데 일종의 ‘지문’처럼 쓸 수 있다고 말한다. 또한 인공적으로 만든 가짜 다이아몬드를 찾아내는 데에도 한몫한다. 인공적으로 만든 블루다이아몬드는 인광과 같은 현상이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컬러 다이아몬드는 비싸게 거래되기 때문에 다이아몬드에 인공적으로 색을 넣기도 한다. 천연 다이아몬드에 방사선을 쏘여 결정 구조를 조금이라도 뒤틀리게 하면 색을 띠게 된다. 이런 다이아몬드를 간혹 천연 컬러 다이아몬드로 착각하기도 한다.

숯과 다이아몬드는 그 원소가 탄소로 구성돼 원소기호(C)가 똑같다. 그 똑같은 원소가 하나는 아름다움의 상징인 다이아몬드가 되고, 다른 하나는 보잘 것 없는 검은 덩어리에 머물러 있다. 그 이유는 탄소 원자의 완전히 다른 배열과 결합 방식에 있다. 같은 원소를 가지고도 전혀 다른 물질을 만들어내는 과학 원리가 참 신기하면서도 우리의 삶과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삶은 다이아몬드라는 아름다움을 통째로 선물하지 않는다. 단지 가꾸는 사람에 따라 다이아몬드가 될 수도 있고 숯이 될 수도 있는 씨앗을 선물할 뿐이니 말이다.

글 : 김형자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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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받을 수 없는 과학자, 멩겔레

용서받을 수 없는 과학자, 멩겔레 [제 901 호/2009-04-13]
얼마 전 브라질의 칸디도 고도이(Candido Godoi)라는 독일인 마을에서 여성 5명이 임신을 할 경우 그중 1명이 금발에 푸른 눈을 가진 쌍둥이를 출산한다는 뉴스가 나왔다. 이와 관련해 영국 일간지 텔레그래프가 나치 과학자 요세프 멩겔레의 실험 결과가 아니냐는 주장을 내놓았다. 평균적으로 여성 80명이 임신할 경우 그중 1명이 쌍둥이를 출산하는 확률에 비하면 꽤 놀라운 쌍둥이 출생률이다. 도대체 요세프 멩겔레가 누구기에 한 마을의 쌍둥이 출생률을 높였다고 추측할만한 위력을 지닌 걸까?

요세프 멩겔레(Josef Mengele, 1911~1979) 박사는 독일 친위대 장교이자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Auschwitz-Birkenau) 나치 강제 수용소의 내과의사였다. 그는 수용소로 실려온 수감자 중 누구를 죽이고 누구를 강제노역에 동원할지를 결정하였으며 수용소 내에서 수감자들을 대상으로 생체실험을 하였던 것으로도 악명이 높다. 그가 유대인에게 했던 생체실험을 보면 혀를 내두를 정도로 너무나 악독해서 인간의 행동이라고 도저히 믿을 수 없을 정도다. 그러한 그의 별명은 ‘죽음의 천사(Angel of Death)’로 알려져 있다.

당시 히틀러로부터 나치독일을 위한 완벽한 인종을 만들라는 임무를 받은 멩겔레는 금발에 푸른 눈을 가진 순수 독일혈통 아리안족의 출생률을 높이기 위해 유전학적으로 쌍둥이를 출산하는 방법을 연구했다. 이른바 우생학과 나치 국가주의 이념에 그가 흥미를 느끼기 시작한 것은 뮌헨에서의 학창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1930년 귄츠부르크 김나지움(고등학교)을 졸업한 그는 뮌헨 대학(University of Munich)에서 약학과 인류학을 공부하였으며, 1935년 유대인 하층민들의 인종적 차이점에 대한 논문을 작성, 인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프랑크푸르트 대학(Frankfurt University)의 유전 생물학 및 인종 위생학 연구소에서 또 다른 나치 과학자 오트마 폰 페르슈어(Otmar Von Verschuer)와 함께 연구를 진행한 그는 1938년 ‘갈라진 입술과 구개에 관한 가족사 연구’라는 논문으로 약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나치 우생학에 대한 그의 관심은 이 시기의 그의 논문에서도 찾아볼 수가 있었다. 그러나 뮌헨 대학과 프랑크푸르트 대학은 전후 1964년 그의 학위를 취소하였다.

그는 학업도 우수했고 외모도 출중한데다가 냉철한 머리를 가지고 있어서 장래가 촉망되는 인텔리였으나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리면서 끔찍한 학살자로 변했다. 충성심과 출세욕이 강했고 뮌헨 대학에서 약학과 의학, 인류학을 공부하면서 우생학에 깊은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나치가 주장하는 게르만족의 우월성과 우생학 연구에 맹목적으로 뛰어들었던 것이다.

히틀러의 유대인 대량 학살은 우생학과 정치 이데올로기가 만난 최악의 사건이었다. 그 선두에 있었던 멩겔레는 비르케나우 강제수용소에 있는 동안 수감자들을 이용하여 그의 유전학에 대한 연구를 지속하였다. 그는 특히 쌍둥이들에 대한 관심이 많아서 이들을 선별하여 특별 병영에 따로 수용하였다. 멩겔레는 또한 어린이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던 수암(Noma)이라는 질병을 연구하였으며, 수암의 원인은 밝혀내지 못하였지만 이 질병이 영양실조 등으로 면역체계가 무너진 아이들에게 주로 발병하여 홍역과 결핵 등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멩겔레는 수암이 인종적 열성요소 때문에 발병한다는 것을 증명하고자 하였지만 이 또한 실패하였다.

아우슈비츠에 있었던 동안 멩겔레는 여자 수감자들을 대상으로 실험을 하기도 하였다고 한다. 이것 역시 우생학적으로 순수 독일혈통의 쌍둥이 출생률을 높이기 위한 연구였다. 영국 텔레그래프지에 따르면 전후 독일 내에서 가명을 쓰며 숨어지내던 멩겔레는 남미로 도주했지만 그곳에서도 실험을 멈추지 않았고, 1960년대 초반 칸디도 고도이를 정기적으로 방문해 여성들을 대상으로 의료행위를 하였다는 것이다. 이 마을에는 독일인들이 고향을 떠나 함께 모여 살았는데 멩겔레가 여성들에게 새로운 약품을 먹이는 등의 의료행위를 하면서 이곳의 쌍둥이 출생률이 상승한 것으로 보인다고 이 신문은 주장했다.

사실 나치가 유대인을 대량학살한 홀로코스트 사건 때문에 우생학이 나치로부터 시작되었다고 알고 있는 사람이 많지만 우생학은 1883년 영국의 프랜시스 골턴이 창시한 학문이다. 골턴은 1874년 ‘본성(nature)과 양육(nurture)’이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유전학적으로 인류를 개량할 것을 목적으로 하고 우수한 소질을 가진 인종을 증가시키고 열악한 소질을 가진 인종을 감소시키는 것이 목적이다. 지금은 그 맥락이 끊겼지만 과거 우생학에 기초하여 정신분열증 등의 유전성 정신병이나 유전성 기형을 가진 환자들을 임의로 단종시키는 우생법안이 여러 나라에서 시행되었고, 미국에서는 알코올중독 환자나 범죄자까지 범주에 포함해 강제로 단종시키는 단종법이 존재하였으나 다수의 안전과 복지 추구에 어긋난다는 결론을 내려 1970년대에 시행을 중단하게 되었다.

본성 대 양육 이론은 인간의 행동이 유전에 의한 본성에 의해 결정된다고 믿는 이론과 양육 환경에 의해 결정된다고 믿는 이론 간의 논쟁이다. 초기에는 철학자들에 의해 논쟁이 이루어졌으나 다윈이 펴낸 종의 기원에서 인간 본성에 관한 보편성이 입증되면서부터 극단으로 치달았다. 특히 20세기 들어서면서 공산주의의 양육옹호론과 나치주의의 본성옹호론으로 대립되었고 현재에도 인간 게놈 프로젝트와 관련되어 논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멩겔레는 남미로 도주한 이후 아르헨티나를 거쳐 1959년 브라질로 이주하였으며 사고로 익사했다. 멩겔레가 나치 정권 아래에서 유대인을 대상으로 저지른 만행은 우생학 연구라는 자신의 의학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라고 하기엔 너무나 잔인하고 비열한 짓이었다. 과학이라는 이름하에 인간의 존엄성을 헤치는 일은 결코 용납될 수 없다. 그가 우리에게 남긴 것은 눈이 먼 명분을 가진 과학은 결코 인정받을 수 없다는 교훈이다.

글 : 김형근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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