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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라의 나이는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미라의 나이는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제 896 호/2009-04-01]
저울이 없는 현대문명을 생각할 수 있을까? 시장에서 식료품이나 물건을 사거나 금이나 은과 같은 귀중품을 거래할 때 우리는 저울의 도움을 받는다. 아기가 태어나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이 무게를 재는 일이고, 건강을 확인하기 위해서 사람들은 규칙적으로 저울 위에 올라선다. 몸이 아플 때 먹는 약의 성분을 밝히고 불순물의 양을 체크하는 일에도 정밀한 저울이 사용된다. 따지고 보면 아르키메데스가 금관 속에 섞여 있는 구리의 양을 밝힐 수 있었던 것도 물과 함께 저울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뿐 아니다. 최근에는 과거의 비밀을 푸는 데도 저울은 없어서는 안 될 필수품으로 자리 잡았다. 건축물의 나이를 밝히고, 유적지에서 출토된 유물의 나이가 얼마나 되는지 척척 알아내는 것은 물론이고, 유명화가가 그린 미술품의 진위를 밝히는 데도 ‘저울’이 사용된다. 범죄수사나 재판에서도 특별한 저울이 사용될 수 있다. 서류가 언제 작성됐는지가 관건이 됐을 때도 저울로 시기를 판정할 수 있다. 그뿐 아니다. 인류가 기록을 남기기 훨씬 전인 시대에 이집트나 안데스 산맥, 알프스 산맥에서 발굴되는 미라의 연령을 알아내는데도 저울이 쓰인다.

무게를 측정하는 저울로 어떻게 과거를 볼 수 있을까? 물론 일반 저울로는 불가능하다. 대신 극미량의 방사성 동위원소를 정확하게 잴 수는 가속기 질량분석기(AMS:Accelerator Mass Spectrometer)라는 ‘특별한 저울’이 필요하다. AMS은 각 분자의 무게는 각자의 고유한 값을 갖고 있다는 성질을 이용해 무게를 잰다. AMS은 크게 측정 또는 분석할 시료를 이온화시켜 그것을 가속화시키는 부분인 이온원(ion源)부분과 그 이온을 질량에 따라 분리 분석하는 분석부분과 분리된 이온을 검출 측정하는 검출부분의 세 부분으로 되어 있다.

측정하는 방식은 이렇다. 극미량의 원소들의 질량을 재기 위해서는 우선 물질에 양(+)전하나 음(-)전하를 부여하여 기체 상태의 이온으로 만들고, 전기장이나 자기장에 넣어준다. 질량이 작은 분자는 전기장이나 자기장 내에서 재빠르게 움직이고 질량이 큰 분자는 천천히 움직이게 된다. 또한 이온은 전하를 띠고 있으므로 전기장이나 자기장 속을 지날 때 진행방향이 바뀐다. 같은 전하를 가진 이온은 질량이 클수록 경로가 적게 휠 것이다. 질량분석기는 이 성질을 이용하여 입자를 질량에 따라 분리하여 질량스펙트럼을 만든다. 시간에 따라 도착하는 이온을 줄 세우고 같은 시간에 도착한 이온들을 세어주면 어떤 물질이 얼마나 포함되어 있는지 분석할 수 있고, 정확한 질량을 파악할 수 있게 된다.

과학자들은 이 AMS에서 방사성 탄소 동위원소(14C, 희귀탄소)의 양을 측정하는 방식으로 유물의 나이를 알아낼 수 있다. 일반적으로 탄소(12C, 일반탄소)는 양성자 6개와 중성자 6개로 이루어져 있지만, 유물의 연대 측정에 쓰이는 탄소는 중성자가 8개인 ‘희귀한’ 탄소(14C)다. 희귀탄소(14C)는 중성 대기 중 질소(N-14)가 우주에서 날아오는 방사선과 반응해서 만들어지는데, 일반적으로 1조 개의 탄소 원자 중 1개 정도가 존재할 정도로 희귀하다.

지구 상에 살아있는 식물이나 동물은 대기를 호흡하기 때문에 체내에서 일반탄소(12C)와 희귀탄소(14C)의 비율이 일정하게 나타난다. 탄소가 산소와 결합을 해, 이산화탄소(CO2)가 되더라도 그 비율은 변하지 않는다. 그런데 동식물이 죽고 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호흡을 하지 못하게 되면 일반탄소(12C)는 거의 변함이 없는 데 비해, 방사성 원소인 희귀탄소(14C)는 붕괴돼 점점 줄어들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방사성 동위원소의 경우 원자핵과 중성자로 구성된 원자가 방사선을 내놓으면서 새로운 원자로 바뀌게 된다. 이때 원자 중에 붕괴되지 않고 살아남은 원자 개수가 처음의 반이 될 때까지 걸리는 시간을 ‘반감기(半減期)’라고 부른다. 반감기는 원소에 따라서 천차만별이다. 100분의 2초에 불과한 것도 있고, 수십만 년이 걸리는 원소도 있다. 희귀탄소(14C)의 경우, 양이 절반으로 줄어드는 데 걸리는 시간(반감기)은 5,730년이다.

이런 성질을 이용하면 유물의 나이를 파악할 수 있게 된다. 즉 희귀탄소(14C)의 양을 측정한 다음, 1/1조이라는 기준 비율보다 얼마나 줄어들었는지를 계산을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땅속에서 찾아낸 유물이나 미라의 샘플에서 그 속에 포함된 희귀탄소(14C)의 양을 측정한 결과 일반탄소(12C)에 대한 농도가 1/2조이 나왔다면, 그 유물의 나이는 5,730년이라고 추정할 수 있다. 즉 희귀탄소(14C)는 당연히 있어야 할 농도의 절반으로 줄어든 것으로 볼 수 있고, 이는 1번의 반감기를 거친 것이고, 5,730년 전 붕괴를 시작한 것이다. 만약 희귀탄소(14C)의 농도가 1/4조 비율만큼 나왔다면, 이 유물은 약 1만 1,460년 전의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1950년 이후로는 1년 단위로 연대 추정이 가능해졌다. 1년 단위로 희귀탄소(14C)의 감쇄 비율을 정확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탄소 동위원소 측정법은 고고학에서 3만~4만 년 정도까지 절대 연령을 측정하는 데 많이 활용하고 있다. 모든 생명체나 유기물에는 탄소가 포함돼 있어 검출이 쉽다는 점도 유물이나 문화재의 나이를 측정할 때 희귀탄소(14C)를 이용하는 또 다른 이유다.

하지만 희귀탄소(14C)가 무한대의 과거를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연대가 7만 년이 넘어가면 희귀탄소(14C)로는 유물의 연대 측정은 어려워진다. 반감기를 수차례 거치면서 희귀탄소(14C)가 거의 남아나지 않기 때문이다. 이때는 희귀탄소(14C)보다 반감기가 훨씬 긴 베릴륨(10Be)과 알루미늄(26Al)을 이용해, 나이를 측정한다. 베릴륨(10Be)은 반감기가 160만 년이고, 알루미늄(26Al)은 70만 5,000년 정도다. 실제로 수백만 년에서 수억 년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 공룡 알, 공룡 발자국 화석 그리고 암석의 나이 등을 추정할 때는 탄소 대신 베릴륨(10Be)이나 알루미늄(26Al) 동위원소를 활용한다. 어떤 원소를 이용하든, AMS으로 방사성 동위원소의 질량을 측정한 다음 나이를 찾아낸다는 원리는 똑같다.

기원전 4천~5천 년 경에 이집트에서 처음 천칭(天秤)이 등장했을 땐, 단순히 곡식의 무게를 재는 도구에 불과했을 것이다. 하지만 과학자들은 원자단위의 극미량의 질량을 잴 수 있게 만들었고, 저울은 이제 인류가 존재하지 않았던 과거까지 거슬러 올라가 그 비밀을 꺼낼 수 있는 도구로 발전했다. 과학기술의 발전은 저울의 또 다른 변신을 기대해도 좋을 것이다.

글 : 유상연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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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생 200주년 - 다시 보는 다윈

탄생 200주년 - 다시 보는 다윈 [제 895 호/2009-03-30]
역사상 가장 위대한 과학자를 뽑으라면 누굴 들 수 있을까? 물론 이외에도 훌륭한 업적을 남긴 과학자들이 많기 때문에 누구를 최고의 과학자로 뽑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과학계와 사회 전반에 큰 영향을 끼친 업적을 남겼을 뿐만 아니라 오랜 세월 논쟁에 휘말리는 과학자를 뽑으라면 단연코 다윈이 뽑힐 것이다. 올해로 다윈 탄생 200주년을 맞아 다윈의 업적과 함께 진화론도 부각되고 있다. 그렇다면 다윈의 진화론은 왜 그렇게 논쟁에 휘말리게 된 것일까?

찰스 로버트 다윈(Charles Robert Darwin)은 1809년 2월 12월 영국의 슈루즈버리에서 여섯 형제자매 중 다섯째로 태어났다. 다윈의 어머니 수산나는 웨지우드 도자기의 창업자인 조시아 웨지우드의 딸로 매우 부유한 집안 출신이었다. 어머니와 누나들은 독실한 유니테리언 교도였고, 이러한 집안 분위기는 다윈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아버지는 어머니만큼은 아니지만 슈루즈버리에서 존경받는 의사로 형편이 넉넉한 편이었다. 어린 시절 다윈은 딱정벌레를 잡거나 조개껍데기, 광물 등을 수집하는 것은 좋아했지만 착실하게 수업을 듣는 편은 아니었다. 또한 수학실력은 별로였으며 과제를 싫어하여 시 짓기 숙제를 베껴 낼 정도로 평범한 학생이었다.

다윈은 16살이 되던 해에 가장 유명한 의대가 있었던 에든버러 대학에서 형과 함께 공부를 하기 위해갔다. 다윈의 아버지는 형의 말벗도 할 겸 다윈이 의학 공부를 하기 바라며 같이 보냈던 것이다. 하지만 다윈은 의학이 자신의 길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당시에는 마취를 하지 않고 외과 수술을 하였는데, 다윈은 어린 아이의 수술 장면을 보고 다시는 수업을 들으려 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다윈은 살아있는 낚시 미끼도 끼지 못할 정도로 겁이 많았기 때문에 의학이 적성이 맞을 리 없었던 것이다.

다윈이 의학에 관심이 없다는 것을 안 아버지는 다윈을 성직자로 만들기 위해 케임브리지 대학에 보냈다. 하지만 여기서도 다윈은 성서 공부보다는 딱정벌레 잡기와 분류에 열중했으며, 식물학자인 헨슬로와 친하게 지냈다. 헨슬로와 친하게 지낸 덕분에 다윈은 비글호에 탑승할 기회를 얻었고, 자신이 원하던 탐험을 떠날 수 있게 되었다. 우린 흔히 다윈이 진화론을 떠올린 곳으로 갈라파고스를 이야기하지만 사실 다윈은 갈라파고스의 지층에 더 관심이 많았다. 이는 헨슬로에게서 받은 찰스 라이엘의 <지질학 원론>을 너무 감명 깊게 읽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다윈은 갈라파고스를 떠난 후 2년 동안이나 그 섬에서 관찰한 핀치새의 다양한 부리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알지 못했으며, 귀국 후 다윈은 생물학자가 아니라 지질학자로 명성을 얻었다.

지질학자로 명성을 얻은 다윈은 가족들의 격려에 용기를 얻어 <비글호 항해기>를 출판했고, 저자로서도 유명해진다. 이후 다윈은 자신이 수집해온 자료들을 정리하면서 진화론으로 한 걸음씩 다가가게 된다. 하지만 다윈은 1859년까지 자신의 생각을 출판하지 않았는데, 이는 남들과 극도로 부딪히기 싫어하는 그의 성격 때문이었다. 다윈은 자신의 진화론이 어떤 파문을 몰고 올지 잘 알고 있었고, 라마르크와 같이 진화론을 잘못 주장했다가 동료로부터 조롱거리로 전락한 과학자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다윈이 진화론 발표를 주저하던 중 다윈은 월리스라는 자연학자도 자신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물론 다윈이 월리스보다 먼저 진화론에 대해 생각을 하고 있기는 했지만 다윈은 자신이 월리스의 생각을 훔쳤다는 비난을 피하기 위해 월리스와 공동으로 논문을 발표했다. 논문 발표 후 다윈은 요약본인 <자연선택>을 출간하고, 흔히 <종의 기원>으로 알려진 <자연 선택에 의한 종의 기원, 혹은 생존 경쟁에서 유리한 종족의 보존에 대하여(On the Origin of Species by Means of Natural Selection, or the Preservation of Favoured Races in the Struggle for Life)>라는 긴 제목의 책을 출간하게 된다.

<종의 기원>은 출간되자마자 교회와 과학계에 많은 논쟁을 불러 일으켰다. 논쟁을 싫어한 다윈은 책의 어느 곳에도 인간이 원숭이로부터 진화했다는 말을 하지 않았지만 <종의 기원>을 읽은 사람들은 어렵지 않게 그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당시 한 성직자의 부인은 “이것이 사실이 아니길 바랍니다. 만약 사실이라면 널리 알려지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러한 에피소드에서 알 수 있듯이 다윈의 책은 인간이 하나님에 의해 창조된 특별한 존재라는 지위를 박탈한 엄청난 내용을 담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충격은 마치 코페르니쿠스에 의해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 하나의 평범한 행성으로 그 지위가 강등된 것에 비견할 수 있었다.

오늘날에는 누구도 코페르니쿠스의 주장에 이의를 달지 않는다. 하지만 진화론은 아직도 논쟁이 진행 중이다. 이는 코페르니쿠스의 주장은 관측을 통해 그 사실을 증명할 수 있는데 반해 진화론은 그것을 증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주장에 대해 다윈은 다양한 화석자료를 통해 진화의 증거를 제시했다. 물론 이러한 화석 자료들이 다소 불완전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화석의 생성원리상 완전한 화석이 발견되기는 어렵다.

생물학에서 진화론이 차지하는 위치는 물리학에서 에너지 보존법칙의 위치와 비슷하다. 그러나 어느 이론도 아직은 명확하게 정론이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다. 다윈 탄생 200주년을 맞아 건설적인 논쟁을 통해 생물학 분야에 있어서 발전해나갈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글 : 최원석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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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뿐인 나만의 손수건 만들기

하나뿐인 나만의 손수건 만들기 [제 894 호/2009-03-27]
한참 크레파스로 정여사와 함께 도화지에 그림을 그리던 채원이가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나비가 아주 예쁘게 그려진 거 같아요. 그런데 이 그림 내 손수건에도 그려 넣으면 좋을 것 같은데 손수건에다 그려도 돼요?”
“음~ 글쎄 손수건에다 크레파스로 그림을 그리기가 쉽지 않을 것 같구나.”
“내 손수건에도 이렇게 예쁜 나비 넣고 싶은데…”

아쉬워하는 채원이를 보고 고민하던 정여사에게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그래그래 채원아. 우리 손수건에 예쁜 나비 그림을 그려 볼까?”
“정말요? 그럼 어서 빨리 그려요.”
“아~ 그런데 손수건은 천으로 되어 있어서 직접 크레파스로 그리기가 어려워. 그러니까 우리 여기 사포에다 그림을 그린 뒤 손수건에 그림을 넣어보자.”

“까칠까칠한 사포에다 그림을 그려요? 사포에다 그림을 그리고 어떻게 손수건에 그림을 옮겨요?”
“일단 엄마랑 같이 그려보자. 엄마가 마술을 부려 볼 테니까.”
채원이는 정여사와 함께 사포에 예쁜 나비 그림을 그린 뒤 사포 위에 손수건을 올리고 나서 전기다리미로 가열하기 시작했다.

10여 분 정도 다리미로 가열한 뒤 뜨거워진 손수건이 다시 차갑게 식자 정여사는 손수건을 조심스럽게 사포에서 떼어냈다. 그러자 손수건에는 채원이와 정여사가 그렸던 나비와 똑같은 그림이 손수건에 찍혀 있었다.

“와~ 엄마 어떻게 하신 거예요? 엄마 완전 마술 같아요!”
“그렇지. 어때? 채원아, 예쁘게 나왔지. 이 손수건은 이 세상에 하나뿐인 채원이 만의 손수건이란다.”
“맞아요. 이건 내가 그린 그림으로 채워진 손수건이니까요. 이 손수건 친구들에게 자랑할래요.”
“그래. 그런데 크레파스가 묻었으니까 예전처럼 닦거나 그러기는 어려울 거야. 나만의 손수건이라는 기념으로 보관하는 것이 좋을 것 같구나.”

그런데 손수건을 들고 친구들에게 자랑하러 나간 채원이를 물끄러미 보던 현민이가 정여사에게 물었다.
“엄마. 그 마술 어떻게 하신 거에요? 저도 좀 알려 주세요. 너무 신기해요.”
“그래 알았다. 이 마술의 비밀은 바로 크레파스에 있어.”
“크레파스요?”

“응. 크레파스는 색을 내는 안료에다 왁스나, 야자유, 파라핀 등을 섞어서 분쇄한 다음 65~75℃의 온도에서 약 20여 분간 녹인 다음 우리가 사용하는 이런 막대 모양의 형틀에다 주입시킨 뒤 냉각시킨 것이란다. 크레파스는 딱딱하지 않은 부드러운 왁스나 파라핀을 사용하기 때문에 색칠이 진하면서 부드러워지고 혼색이나 덧칠이 가능한 특징이 있단다.”

“크레파스가 무언지는 알겠는데 사포에 그린 그림이 어떻게 손수건에 찍힌 거예요?”
“성질도 급하기는. 이제 엄마가 알려줄게. 사포 위에 크레파스로 그림을 그리면 사포의 거친 표면에 부드러운 크레파스 조각들이 달라붙게 되겠지. 그런 다음 사포 위에 손수건을 올려놓고 다리미로 가열하면 어떻게 될까?”

“글쎄요. 사포랑 손수건이 뜨거워 지지 않을까요?”
“그래 사포랑 손수건이 뜨거워지겠지. 그런데 아까 엄마가 크레파스는 65~75℃ 사이에서 녹여 만든다고 했잖아. 그런데 그 온도보다 더 높아지면 고체로 된 크레파스는 어떻게 될 것 같으니?”
“당연히 녹겠죠!

“그래 맞아. 사포 위에 그려진 크레파스가 다리미로 인한 높은 열 때문에 녹게 되면 기름 성분의 왁스나 파라핀이 면 성분의 손수건에 잘 옮겨지겠지. 그렇게 다리미로 녹인 다음 식히면 사포에 그린 그림이 손수건에 판화처럼 찍히게 되는 거란다.”
“엥 그게 다에요? 너무 간단하잖아요. 난 뭔가 멋진 비밀이 숨겨 있는 줄 알았는데…”

“원래 마술도 비밀을 알고 보면 간단한 원리잖니. 그래도 크레파스에 대해 조금 더 알게 되었으니 튀어나온 입술은 다시 넣는 것이 어떨까?”
“알았어요. 그럼 엄마 나도 한번 그려 볼래요.”
“그래 알았다. 이번에는 어떤 그림을 그려 보는 것이 좋을까?”

얼핏 보면 어린아이 장난 같은 실험이지만 이번 실험은 크레파스의 성질과 특성을 알아볼 수 있는 가장 간단한 실험이기도 하다. 이번 주말에 집에 있는 자녀 또는 조카들과 함께 실험하면서 크레파스에 대해 설명을 해 준다면 과학에 대한 아이들의 호기심이 조금은 더 커지지 않을까 싶다.

[실험방법]
준비물 : 크레파스, 사포, 다리미, 면 손수건, 신문지, 수건, 그림도안
(사포의 거칠기가 클수록 선명한 그림을 찍어낼 수 있다)
[실험순서]
1. 그림 도안을 보고 사포 위에 그림을 그린다.
   사포 특성상 세밀한 부분의 묘사는 힘들다. 큰 형태의 그림을 그리는 것이 좋다.
사포위에 그림을 그린 뒤 손수건에 찍어내면 좌우가 거꾸로 되기 때문에 좌우를 구분해야 할 그림은 거꾸로 그려야 한다.
2. 사포 위에 그림을 다 그렸으면 가열을 위해 신문지를 깔고 그 위에 사포를 놓는다.
3. 사포 위에 면 손수건을 잘 펴서 올린 뒤 수건을 한 장 깐다.
갑자기 강한 열을 내면 사포 위에 녹은 왁스나 파라핀이 다리미에 달라붙을 수 있기 때문에 처음에는 수건 위에서 가열한다.
4. 다리미로 수건 위를 전체적으로 누르며 가열한다.
다리미 온도 조절기는 면이나 마 정도에 놓거나 150℃로 조정한다.
5. 어느 정도 가열이 되었으면 수건을 걷어내고 바로 손수건 위에서 다시 가열한다.
6. 약 10분 정도 다리미로 가열한 뒤 녹은 왁스가 굳어질 수 있도록 그대로 둔다.
7. 손수건이 차갑게 느껴지면 조심스럽게 사포에서 손수건을 걷어 낸다.

[실험 Tip]
- 세밀한 그림을 그리고 싶으면 고운 사포를 이용하면 되지만 거친 사포에 비해 그림이 선명하게 찍히지 않는다.
- 무른 크레파스 대신 단단한 크레용을 사용할 경우 세밀한 그림을 그리기는 좋으나 사포에 크레파스가 조금 남게 되므로 선명한 그림이 나타나지 않는다.

글 : 양길식 과학칼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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