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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하는 소리만 쏙쏙~ 소리와 과학의 만남

원하는 소리만 쏙쏙~ 소리와 과학의 만남 [제 900 호/2009-04-10]
지구온난화, 수질 오염, 미세 먼지의 증가 등 환경오염으로 인한 피해가 갈수록 늘어가고 있다. 그중에서도 소음 공해는 인체에 직접적인 해를 끼치는 중요한 공해요인 중의 하나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어린이 1백 명 중 12명이 소음성 난청을 겪고 있다는 충격적인 보고를 내놓은 바 있다. 세계보건기구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소음으로 인한 질병을 앓고 있는 사람은 1억 2천만 명이 넘는다.

현대사회에서는 아파트 주거가 보편화되면서 층간 소음은 이제 이웃 간에 분쟁을 일으키는 원인이 되었고, 휴대전화, MP3 플레이어, DMB 등 휴대용 전자 기기가 널리 보급되면서 거리에서도 공공장소에서도 타인 혹은 자기 자신이 만들어내는 소리에 더 많이 시달리게 되었다. 귀를 눈처럼 감을 수도 없는 일. 그러니 우리의 귀는 듣지 않아도 될 소리를 듣느라 피곤하고, 들어야 할 소리를 듣기 위해 더욱 애를 써야 하는 난처한 처지에 놓였다.

우리의 귀를 못살게 구는 대부분의 기기는 과학 기술의 발전 덕분에 나온 것이다. 휴대전화, MP3 모두 집어던지고, 사람과 문명의 이기가 없는 숲 속으로 들어간다면 귀는 새들이 재잘거리는 기분 좋은 소리만 들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도시에서 지하철을 타고, 거리를 걷고, 휴대전화도 사용해야 한다면 우리의 귀를 편히 쉬게 해줄 대안 역시 과학 기술에 있다.

과학자들은 각종 전자 기기에서 발생하는 소음을 줄이기 위해 노력하는 한편, 발생하는 소음을 사람들에게 ‘들키지 않게’ 하기 위해서도 애써왔다. 이미 발생한 소음을 어떻게 없앤다는 것인가? 발생한 소음을 소음으로 덮는 방법을 쓸 수 있다. 이는 능동소음제거(액티브 노이즈 캔슬러 Active Noise Canceler) 기술이라 불리는데, 소음에 대항하는 반 소음 신호를 생성해 소음을 없애는 방법으로 소리의 간섭현상을 이용한 것이다. 소음으로 소음을 제거한다니 더 시끄러워지지 않을까 생각하기 쉽지만 능동소음제거 기술은 이미 생활 곳곳에서 다양하게 사용되고 있다.

엔진에서 엄청난 소음이 발생하는 항공기가 이 기술을 이용해 소음을 줄이고, 조용한 승차감을 강조하는 고급 승용차도 엔진이나 바퀴와 지면 사이에서 발생하는 소음을 줄이기 위해 이 기술을 쓴다. 최근 출시되는 냉장고는 확실히 이전 세대의 것보다 조용하다. 윙~하고 가동되는 특유의 소리가 아주 없진 않지만, 거슬릴 정도로 크진 않다. 가전제품 중 능동소음제거 기술이 사용되는 대표적인 사례다. 그 밖에 공사 현장, 공업 현장, 발파 작업 등 소음 발생이 많은 악조건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위해서도 광범위하게 사용할 수 있다.

그렇다면, 무수한 소음 속에서 듣고 싶은 것만 들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인파로 가득한 명동 한복판에 있어도 또렷한 통화음, 술집에서도 도서관이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잡음 제거 능력을 자랑하는 휴대전화들이 출시되고 있다. 과장된 광고인가, 가능한 일인가? 최근 출시된 휴대전화에 장착된 잡음 제거 기능은 컴퓨터가 자동차 진동소리, 열차 지나가는 소리 등 규칙적인 잡음을 자동으로 분리해 통화하는 사람의 목소리만 부각시키도록 하는 것이다. 이러한 기능을 가진 국내 출시된 ‘알리바이폰’ ‘허시폰’ 등은 미 벤처기업 오디언스가 개발한 기술을 사용한 제품이다.

뿐만 아니라 이미 녹음된 소리에서 듣고 싶은 소리만을 골라 들을 수도 있다. 독립영화 최고의 흥행을 일으킨 ‘워낭소리’, 이 영화를 보면 때로는 소에 매달린 워낭소리가 크게 들리고, 때로는 라디오 소리가 크게 들린다. 어떤 방식으로 녹음한 것일까? 녹음 기술이 아니라 녹음한 것을 지우는 기술이다. 녹음한 소리는 소음이 차단된 스튜디오 세트에서 녹음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자동차 소리, 바람 소리, 사람들의 말소리 등 여러 가지 소리가 섞여 있다. 따라서 녹음한 소리에서 필요한 것은 키우고 잡음이 섞인 부분은 반대로 줄이거나 지우게 되는데 이는 사람이 들을 수 있는 소리 주파수인 20∼2만 헤르츠(Hz)의 소리만 편집하면 된다. 예를 들어 영화의 특정 장면에서 소의 목에 매단 방울(워낭)의 소리를 크게 만들고 싶다면, 그 소리가 포함된 1000헤르츠(Hz) 부분만 볼륨을 높여주는 것이다. 이렇게 특정 주파수 대역을 빼는 방법은 영화 음향 편집에서 흔히 쓰이는 소음 처리 기술로 노이즈 리덕션(Noise Reduction)이라 한다. 단, 균일하지 않은 소리일 경우 처리하기 어렵다.

이런 방식으로 최근에 인터넷에서 화제가 된 ‘누드 MP3’를 만들 수 있다. 누드 MP3는 가수들의 노래에서 반주 부분인 MR을 제거한 것. 목소리에 해당하는 헤르츠(Hz)를 제외한 나머지를 제거하는 방법으로 시중에 유통되는 동영상 플레이어를 이용해 만들 수 있다. 직접 제작하는 것이 번거롭다면, 클릭 한번으로 비슷한 효과를 낼 수도 있다. 오디오 플레이어 중 사람의 음성만을 강조해서 들을 수 있는 메뉴를 제공하는 것들도 있기 때문이다. 이 메뉴를 선택해서 음원을 들으면 반주 음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지만 가수의 목소리 부분만을 강조해서 들을 수 있다. 반주와 노래가 합쳐진 음원에서 반주를 분리하려는 시도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MR 파일만을 필요로 하는 수요 위주였다. 노래방 반주기에 없는 곡을 찾으려는 네티즌들 사이에서 MR 파일을 자체적으로 만드는 일들이 종종 있었기 때문이다.

듣고 싶은 소리만 듣게 하는 기술은 의학계에서도 유용하게 쓰인다. 휴대전화 잡음제거기술을 보유한 국내 업체인 비손에이엔씨는 본래 의료기기인 청진기를 만드는 회사였다. 청진기로 신체 내부 기관의 소리를 제대로 들으려면 폐와 심장, 간 등 각 기관의 소리를 구별해서 들을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폐의 소리를 들을 때는 주변 기관의 소리를 낮추는 기술이 필요했다. 또한 심장의 부위별 소리를 제대로 들을 수 있으면 심장의 기형이나 종양의 위치 등도 파악할 수 있다. 이런 기술을 개발하는 중에 휴대전화에 사용 가능한 잡음 제거 기술을 개발하게 된 것이다. 이처럼 한 번에 섞여서 들리는 여러 가지 소리를 구별해서 들을 수 있게 되면 효용 가치가 높아진다.

과학과 소리의 만남은 어떤 식으로 전개될까? 어쩌면 듣고 싶지 않은 소리만 쏙 골라서 지워주는 기기가 탄생할지도 모른다. 아기의 울음소리는 아빠보다 엄마 귀에 더 자극적으로 들린다. 생존을 위한 본능적인 장치다. 만약 아기 울음소리가 아빠 귀에 더 자극적으로 들리도록 소리의 파장을 바꾸는 장치를 개발한다면, 갓난아기를 둔 엄마들은 잠을 깨지 않고 더 편안한 밤을 보낼 수 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미래에는 교실에서 수업하는 선생님에게 아이들이 떠드는 소리가 들리지 않도록 하는 ‘모두가 모범생’ 소리 세트나, 아내가 잔소리할 때만 소리를 제거해 묵음 상태로 만들어 주는 기기가 탄생할지도 모르겠다.

과학으로 현대인의 생활은 점점 더 시끄러워지고, 점점 더 조용해지기도 한다. 귀 입장에서 보자면 그야말로 병 주고 약 주는 셈이다.

글 : 이소영 과학칼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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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평한 그러나 차별대우 받는 태양광

공평한 그러나 차별대우 받는 태양광 [제 898 호/2009-04-06]
경제가 침체하면 사람들은 우선 외식과 외부 활동을 줄이게 된다. 따라서 이에 따른 에너지 소비도 준다. 우리는 대부분의 에너지를 외국에서 수입해서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고유가, 고환율이 되면 이는 실물 경제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게 된다. 이럴 때면 우리도 석유로 대표되는 에너지가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지만, 이는 현실적으로 기대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어떤 방법으로 우리가 에너지 수출국이 될 수 있을까.

에너지원으로 우리가 가장 흔히 가질 수 있는 것은 바로 태양이다. 지역적으로 차이는 있지만 태양은 세계 어느 곳이든 공평하게 자신의 몸을 불태우며 지구 전체를 밝혀주고 있다. 사람들은 태양의 힘이 강하다는 것을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실제로 지구가 태양으로부터 1시간 동안 받는 에너지는 현재 전 세계가 1년 동안 소비하는 에너지에 달할 정도로 엄청난 양이다.

문제는 지구에 도달하는 태양에너지의 밀도가 낮다는 데 있다. 따라서 이를 효율적으로 흡수하고 전환하는 기술이 필요하게 되었다. 흔히 우리가 말하는 태양에너지는 그 자체를 이용한다기보다는 이를 전기적으로 환원하여 사용하는 것을 말한다. 이때 발생되는 전력이 바로 광기전력(光起電力, photoelectro-motive force)이다. 말 그대로 빛에 의해 발생하는 전기의 힘을 의미한다.

이러한 광기전력효과는 170여 년 전 프랑스의 앙투안 앙리 베크럴이 처음 발견하게 되었다. 전해질 속에 담긴 금속전극에 빛을 비추면 전력이 증가하는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이를 상업적으로 발전시킨 것은 1954년 미국에서 금속전극 대신 반도체를 활용하여 태양에너지를 전기로 변환하는 태양전지를 개발하기 시작하면서부터이다. 태양전지는 보통 P형 반도체와 N형 반도체를 접합해서 사용하는데, 태양빛이 내리쬐면 광에너지에 의해 전자와 양공(전자가 빠져나간 뒤 남은 구멍으로 양의 전하를 지닌 자유입자)쌍이 생기고, 이 둘이 이동하면서 전류가 흐르는 광기전력 효과가 발생해 전력을 발생하는 것이다.

작년 전 세계 전기 소비량 가운데 태양전지가 차지하는 비중은 1% 내외로 아직은 미미하다. 그러나 최근 5년의 성장 증가추세를 고려할 때 2030년쯤 태양전지 비중이 10%로 크게 늘어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시장 규모도 연간 3000억 달러를 웃돌 것으로 전망된다. 전 세계 반도체 시장 규모에 버금가는 엄청난 규모다.

반세기 전 우주선 전원으로 활용되기 시작한 태양전지는 전자제품, 주택, 자동차, 산업기기 등 실로 다양한 분야에서 친환경 청정에너지원으로 활용될 것이다. 이제 친환경이란 말은 환경보호자만의 외침이 아니라 전 세계 기업들이 소비자를 유인할 마케팅 용어가 된 만큼 대표적인 청정에너지인 태양에너지는 앞으로도 주목을 받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현실은 어떨까. 독일 포톤컨설팅에 따르면 2006년 세계 태양광 시장 규모는 총 200억 달러에 달했는데, 이때 우리의 점유율은 1% 정도였다. 2007년 매출규모는 약 4000억 원 정도였으나 2009년에는 6%대에 근접할 전망이다. 특히 고무적인 것은 눈에 보이는 매출보다는 기술력에 있다. 태양광산업협회 관계자의 말에 의하면 “매출 규모는 작지만 기술력은 독일, 미국, 일본 등과 비교했을 때 약 80% 가까이 올라섰다.”라고 한다.

최근 국내 연구진은 비스무스철산화물(BiFeO3)이 전하 수송 특성과 광기전력 효과가 있음을 발견했다. 이는 사이언스지에 실린 연구 결과인데, 이런 특성을 이용해 보다 효율적이고 흡수력이 높은 태양전지를 만들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우리 정부도 태양광 산업을 차세대 산업으로 육성할 것으로 밝혔고, 이에 대한 지원도 앞으로 더 많아질 것이다. 특히 대기업의 참여와 기술력을 확보한 중소기업의 출현으로 앞으로의 업계 전망도 좋다.

그러나 장밋빛 미래만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기술 유출 문제가 아직도 많고, 태양광 전지의 원재료인 폴리실리콘의 가격이 지금의 반도체처럼 가격이 시장 상황에 의해 널뛰기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공급이 부족할 때는 kg당 400달러까지 치솟았지만, 2010년에는 공급 과잉 심화로 kg당 100달러까지 떨어질 것이란 전망이 있기 때문이다.

앞서 말했듯 태양은 공평하다. 문제는 누가 이 공평한 태양의 힘을 보다 효율적으로 활용하는가에 있다. 우리처럼 에너지 소국이 대국이 되기 위해서는 태양광산업의 발전은 필수다. 따라서 더 많은 기술개발과 시장 선점을 위한 노력을 통해 ‘관대한 태양의 힘’을 우리 것으로 만들어야 할 때다.

글 : 임성아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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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락치기에도 비법이 있다

벼락치기에도 비법이 있다 [제 897 호/2009-04-03]
국민 여배우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배우 나향기 씨. 빼어난 미모와 내밀한 감정 연기, 폭넓은 연기세계, 게다가 명석한 두뇌까지! 빠지는 게 없다. 그녀와 함께 일했던 영화감독들은 다들 그녀의 탁월한 기억력에 감탄을 금치 못한다.

“의학 분야나 사극처럼 전문용어, 고어가 난무하면 아무리 연기라고 해도 대사 외우는 게 쉽지 않은데, 향기 씨는 어떤 역을 맡겨도 걱정이 없죠. 전문직, 사극 캐스팅 1순위는 항상 나향기 씨입니다.”
“부끄러운 얘기지만, 촬영 1시간 전에 ‘쪽 대본’이 나와도 걱정이 없었습니다. 나향기 씨라면 완벽하게 소화를 해내니까요.”

까칠한 영화감독들이 입을 모아 칭찬하는 나향기 씨의 이 탁월한 기억력의 비결은 무엇일까? 신은 왜 이 사람에게 빼어난 미모와 천재적인 기억력을 동시에 주신 것인가? 나, 과학기자는 오늘 이 문제를 짚고 넘어가보려 한다.

“향기 씨,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오늘은 이미 영화계에 소문이 자자한 향기 씨의 뛰어난 기억력에 대해서 얘기를 나눠보려고 합니다. 탁월한 기억력의 비결을 알려주실 수 있을까요?”
“호호. 과장된 소문이에요. 제가 급한 대사를 잘 외우는 편이지만 평소 기억력은 형편없어요. 사람 이름도 잘 외우지 못하고, 뭐든 잘 잊어버리는 걸요. 대사 외우는 건 학교 다닐 때 벼락치기 하는 거랑 비슷해요. 연기하고 나면 금방 다 잊어버리죠. 방금 녹화하고 온 대사도 지금 기억 안 나는 걸요.”

과학 기자는 ‘벼락치기’라는 말에서 번쩍하고 머릿속에 불이 켜졌다.
“그거야말로 제가 궁금한 것입니다. 다들 시험을 앞두면 벼락치기를 하지만 사람마다 효과는 다르지 않습니까? 혹 남들과 다른 벼락치기 비법이 있지 않습니까?”

“저도 학교 다닐 때는 벼락치기 잘하지 못했어요. 성적에는 크게 관심이 없었죠. 연기는, 곧 카메라가 켜지고 대사를 제대로 외우지 못하면 NG가 난다는 긴장감 때문인지 집중력이 좋아지더군요. 배역에 감정이 이입된 상태라서 무심결에 외워지게 되는 것도 같아요. 하지만 잔뜩 긴장해서 대사를 외우고 나면 엄청나게 피곤해요. 한 페이지 넘어가는 긴 대사가 있는 촬영을 하고 나면 속도 쓰리고. 연기 생활 덕분에 만성 위궤양을 앓고 있어요. 의사는 스트레스 때문이라고 하더군요. 저 말고도 배우 중에 위궤양 앓는 사람들이 많아요.”
‘벼락치기와 스트레스라…’

과학기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른바 ‘마감 증후군’이다. 글을 쓰거나 시험을 볼 때 막판에 몰리면 교감신경활성도가 올라간다. 즉 스트레스와 유사한 상태가 된다. 이 상태에서는 뇌가 각성하면서 일시적으로 집중력이 올라간다. 일정 정도의 스트레스가 긍정적인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이다. 벼락치기 상황이 되면 우리의 뇌는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한다. 공부를 하든 대사를 외우든 최고의 능률을 올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배우들은 감정을 이입해서 대사를 외우는데, 감정을 자극하면 더 잘 외워진다. 두려움을 느끼는 등 감정을 자극하면 편도체가 반응한다. 편도체는 소리나 자극에 반응하여 정서가 기억되는 역할을 하는 대뇌부위다. 이 편도체에 정보를 저장하고 기억하는 기관 ‘해마’가 붙어 있다. 그래서 감정이 이입되면 편도체와 해마의 상호작용에 의해 해마가 자극을 받아 더 쉽게 기억되는 것이다.

벼락치기로 외웠다면 쉽게 잊어버리게 되는 것도 당연하다. 뇌는 해마에 의해 학습한 정보 중 기억해야 할 것만 대뇌피질로 보낸다. 이때 신경세포들 사이에 새로운 회로망이 생성된다. 입력된 정보가 장기기억 되려면 ‘반복’이 꼭 필요한 것이다. 벼락치기로 습득한 정보로는 장기기억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게다가 스트레스 상황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인 코티졸은 장기기억을 방해한다. 부신에서 분비되는 코티졸은 해마의 신경세포들을 줄어들게 해 기억력을 둔화시킨다. ‘네이처’ 지에 실린 캘리포니아대학 신경생물학센터 연구 결과에 따르면 건강한 사람에게 코티졸을 투여했더니 기억력이 현저히 떨어졌다고 한다. 어느 정도의 스트레스는 기억력에 도움이 되지만, 스트레스가 과도해지면 해마가 코티졸 때문에 수축하면서 오히려 기억력이 떨어지게 되는 것이다.

대사는 잘 외우지만, 평소 기억력은 형편없다는 나향기 씨의 얘기는 확실히 설득력이 있다. 장기기억력을 높이려면 벼락치기를 하는 습관을 버려야 한다. 하지만 이미 벼락치기에 익숙해진 사람들에게 그런 말은 소용이 없다. 나, 과학기자만 해도 마감이 임박해야 간신히 글을 쓰지 않는가? 사람들은 왜 벼락치기의 유혹을 떨치지 못할까? 쾌락을 담당하는 핵심 부위인 측좌핵은 벼락치기를 할 때 ‘도파민’이 분비되는 곳이다. 도파민은 기쁨을 느끼게 하는 신경전달물질로 경마나 도박, 마약 등 중독에 관여하는 호르몬이다. 고통을 받다가 그 순간이 끝나고 얻는 보상심리와 만족감은 실로 크다. 담배나 술뿐 아니라 시간에 쫓기면서 일을 하는 것도 중독이 된다.

과학기자가 생각에 잠겨 있는 사이, 나향기 씨가 생각났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대사를 외우는 저만의 노하우랄까 그런 게 있긴 한데요. 징크스 같은 거랍니다. 전 급한 대사를 외울 때 항상 빨간색 옷을 입어요. 처음 사극 할 때 붉은 치마를 입은 날은 대사가 더 잘 외워지고 푸른 색 치마를 입은 날은 신통치가 않더라고요. 그때 생긴 버릇이지요.”

이럴 수가! 과학 기자는 무릎을 쳤다.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 경영학과 루이 주 교수팀은 최근 사이언스지에 빨간색이 단기 기억에 도움이 된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연구진은 빨강과 파랑 배경에 적힌 36개의 단어를 2분 동안 208명에게 보여 주고 20분 뒤 이를 기억하는 정도를 알아봤는데 빨간 바탕에 쓰인 단어를 본 사람들은 36개의 단어 중 20~21개를 외웠지만 파란 바탕에 적힌 단어를 본 사람들은 그보다 적은 6~17개를 기억했다.

“혹시 대사 외울 때 단 음료도 드시나요?”
“아니, 그걸 어떻게 아세요?”
“단맛을 내는 당 성분은 세포 내의 여러 과정을 거쳐 글루코스를 만듭니다. 뇌 세포는 글루코스만을 사용해 살아가죠. 글루코스가 뇌 속에서 순환하면서 기억력을 활성화시키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설탕을 섭취하면 기억력이 좋아지는 현상이 일어난다고 합니다. 설탕이 함유된 음료가 최소 24시간 동안 단기 기억력을 향상시킨다는 또 다른 연구결과도 있습니다.”
“그럼 제가 저도 모르게 과학적인 방법으로 대사를 외우고 있었던 것이로군요? 이거 참 재미있는데요. 호호.”

글 : 이소영 과학칼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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