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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주소 지금 이사 준비 중 - IPv6 [제 862 호/2009-01-12]

아침에 일어나 지하철 출근길에 스마트 폰으로 새로 사고 싶은 물건을 인터넷 서핑하고, 외근할 때나 친구와의 저녁약속 장소를 찾을 때도 스마트폰으로 위치를 확인한다. 낯선 장소에서 커피숍이나 맛집을 찾는 것도 문제없다. 스마트폰으로 IP 주소를 통해 인터넷에 접속하면 가게 검색에서 예약까지 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머지않아 IP 주소가 고갈될 위기가 다가옴에 따라 우리는 또 다른 해답을 찾아 나서게 되었다.

우리가 흔히 접하는 인터넷은 정보통신기술 중 가장 핵심 인프라라고 할 수 있다. 인터넷은 TCP/IP 통신프로토콜의 개발로 시작되었으며 그 성장은 인터넷프로토콜(Internet Protocol: IP)의 발전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단순히 IP라고 하면 주로 IPv4(IP 버전 4)의 인터넷주소체계를 의미한다. 이는 2의 32승 개의 자연수로 이루어진 주소체계이며 우리의 집 주소와 비슷한 의미를 가진다. 인터넷을 이용하는 모든 컴퓨터나 단말기는 반드시 인터넷주소를 하나 이상 가져야만 다른 컴퓨터나 인터넷과 소통할 수 있다.

그러면 2의 32승 개의 IP는 도대체 몇 개의 주소인가? 이는 약 43억 개의 고유한 주소를 표현할 수 있는 규모이며 전 세계의 인구보다는 다소 적지만 거의 1인당 1개 정도의 주소를 가질 수 있는 규모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이러한 인터넷주소를 이용하여 약 3400만 명이 이미 인터넷이용을 하고 있으며 전 세계적으로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인터넷을 이용하고 있다.

하지만 인터넷주소는 컴퓨터만 부여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 앞으로의 큰 문제점으로 대두된다. 즉 전 세계에 필요한 IP 주소는 무궁무진하여 중국, 인도와 같은 엄청난 인구를 보유하고 있는 국가에서 현재 폭발적인 인터넷인구의 증가로 실질적으로 인터넷주소의 부족현상이 심화되고 있으며 APNIC(아태지역 인터넷주소관리기구)의 보고서에 따르면 2010년 말이나 2011년 이후에는 부여할 수 있는 주소는 모두 고갈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이러한 문제를 IETF(국제 인터넷 표준화 기구)와 같은 표준화기구에서 미리 예견하고 IPv4를 대신할 수 있는 차세대인터넷주소체계인 IPv6(IP 버전 6)을 이미 1996년경에 표준화과정을 모두 마쳤다. 지금 우리가 쓰고 있는 IPv4의 주소의 표시는 134.75.255.255이고, 앞으로 다가올 IPv6의 주소의 표시는 2001:0320:0000:010a:3afe:0000:3afe:0001로 바뀐다.

자릿수가 늘어나고 2진수에서 16진수로 변화했지만 어떻게 보면 집 주소가 좀 늘어난다 해서 우리가 실생활은 별로 변화될 게 없어 보이니 똑같아 보인다. 단순히 주소가 길어지는 것이지만 이 변화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엄청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숫자의 길이가 표현할 한계는 과장되게 표현하면 전 세계의 모래알과 모든 사물에 IP를 할당해도 남을 정도라는 사실이다.

즉, IPv6에서는 단순히 2의 128승 개의 주소체계가 늘어난 것이 아니라 그간의 모든 문제가 한방에 다 해결된다는 의미가 있다. 실제로 인터넷의 목표인 우리가 꿈꾸고 계획했던 전 세계가 하나의 네트웍으로 연결되고 언제 어디서나 1:1로 전 세계 누구와도 네트워크가 가능한 세상이 IPv6로는 가능하다는 얘기이다. 요즈음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는 휴대전화나 모바일 기기 특히 스마트폰과 같은 단말기는 대부분 IP 주소를 사용하고 있으며 향후에 전개될 이동성 개인 단말기도 대부분 IP 주소를 통해 통신할 수 있다.

그럼 우리 컴퓨터나 통신을 잘 모르는 사람에게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사례에는 무엇이 있을까? IPv6가 보편적으로 이용되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엄청나게 활성화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P2P(Peer to Peer)가 P2G(Peer to Grid)형태로 패러다임이 이동할 것이며 지금보다 엄청난 위력이 될 것이다. P2P란 지금은 항상 서버를 경유해야 되는 형태지만 앞으로 P2G는 언제라도 고정된 IP를 가질 수 있는 것이다. 고정된 IP를 주소처럼 알려주고 어느 한 디렉토리에 공유시켜 파일 리스트업 정보를 업데이트시켜놓는다. 그다음에 검색할 프로토콜을 서로 맞추고 서로 허가된 PC 정보를 갖고 있으면 거의 무한대로 전 세계의 PC를 돌며 검색하는 것이 가능하다.

이것은 IPv6의 주요 특성인 변하지 않는 IP를 항상 유지할 수 있다는 것에서 전제되는 것이다. 지금은 늘 서버도 바뀌고 다운로드받는 PC도 변화하니 링크가 중간에 가다가 다음 서버를 못 찾아 깨질 수밖에 없지만 IPv6에서는 변하지 않는 주소로 계속 찾아다니는 것이 가능하다.

또한 지금처럼 인터넷 웹하드란 서비스 자체가 의미가 없게 되고 서로 합의하에 일정한 저장장치를 공유하여 쓰는 것도 가능하다. 한 사람의 하드용량이 부족하니 다른 사람에게 얼마 할당해주면 트래픽을 얼마 제공하겠다던가, CPU를 몇% 쓰는 것을 허용하겠다와 같은 서로서로 간의 일정한 거래 같은 것도 지금 온라인게임에서 아이템 거래하는 것처럼 수시로 가능해지고 활성화가 될 것으로 생각된다. 물론 서로 믿는 세상이 된다는 전제가 있어야겠지만 IPv6에서는 자신이 집 주소를 공개하는 것처럼 확연히 드러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보안과 신뢰문제는 의심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국내에서는 2001년부터 IPv6포럼코리아를 주축으로 IPv6 발전을 위해 매진하고 있다. 2007년까지는 다양한 분야에서 IPv6를 체험하고 시험할 수 있는 시범서비스를 전개하여 그 활용가능성을 시험하였다. 2008년부터는 공공부문의 IPv6 전환확산을 위하여 NIDA(한국인터넷진흥원)와 KISTI(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가 공동으로 15개 공공기관 및 대덕특구 연구기관에 실질적인 IPv6 전환을 지원하여 각 개별기관이 IPv6로 전환했을 때의 문제점을 도출하고 안정적이고 효율적인 IPv6 전환가이드라인 발굴 및 배포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또한 많은 한국의 과학자들은 ITU(국제 전기통신연합)와 IETF 같은 국제통신 표준화기구에 IPv6 표준문서 발간 등 괄목할만한 성과를 도출하고 있다. 하지만 현시점에서 중요한 것은 이와 더불어 다각적인 정부의 지원 정책 및 공공, 민간부문 등의 자발적인 전환 움직임이다. 이제 곧 노트북이나 스마트폰 등에 곧 차세대인터넷주소가 자동으로 부여되고 언제 어디서나 이동성이 보장되는 세상의 중심에 당신이 활동하게 된다. 기관뿐만 아니라 개인의 자발적인 노력만이 새로운 IPv6 시대의 도래에 현명한 대처 방법일 것이다.

글 : 김승해 선임연구원(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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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장군아 물러가라! 몸짱이 나가신다~ [제 861 호/2009-01-09]

현대 사회에서는 몸을 움직일 기회가 점점 더 적어진다. 교통 기관의 발달은 물론이고, 많은 업무를 책상 위에서, 컴퓨터를 통해 처리할 수 있는 것이 현실이다. 게다가 식생활의 서구화까지 더하고 나니 이제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별도의 운동을 해야 한다는 것은 상식이 되어버렸다. 따로 스포츠센터 등을 찾아다니지는 않더라도 가벼운 달리기나 정기적인 산행을 하는 사람들이 눈에 띄게 늘었다.

하지만 조금만 깊이 생각을 해보면 무조건 힘들게 몸을 움직인다고 해서 건강에 좋은 영향만 미치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의 신체는 주변 환경과 밀접한 연관을 갖고 움직이도록 되어 있다. 몸 자체가 환경을 극복하고 거기에 적응해 온 진화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몸 안의 에너지를 소모하는 활동인 운동 역시 기후, 습도 등의 외부 상태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사계절의 변화가 비교적 뚜렷한 우리나라에서는 한여름과 겨울철의 운동 방법에 대해서 신경을 써야 한다. 그중에서도 특히 겨울 운동을 하면서 주의할 점을 알아보자.

겨울에는 기온이 뚝 떨어지며, 심지어는 영하 10도를 밑돌기도 한다. 이럴 경우 무릎, 어깨 등 관절부 인대와 근육이 긴장하며 수축되고 유연성이 떨어진다. 따라서 몸을 격하게 움직이기에 앞서 스트레칭이나 준비 운동을 함으로서 어느 정도의 유연성을 확보해야 한다. 최소한 10~20분가량의 스트레칭은 필수라고 봐야 할 것이다.

날씨가 추우면 이처럼 물리적인 제약, 즉 근육의 수축만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 몸은 하나의 거대한 화학공장이다. 이 화학공장은 기본적으로 외부로부터 에너지원을 섭취하고 일정한 화학반응을 통해 그로부터 활동하고 살아 움직이는 동력을 얻는다. 그리고 여분의 에너지원을 변형시켜 몸 안에 저장한다. 이러한 화학반응의 반응속도에 영향을 주는 물질을 촉매라고 하며, 특히 생물체 안에서 촉매 역할을 하는 단백질을 별도로 효소라고 부른다.

이 효소는 온도에 따라 반응 활성도가 크게 좌우된다. 일반적으로 효소가 가장 활발하게 작용하는 온도는 섭씨 35~45도 정도이다. 이보다 낮은 온도에서는 당연히 효소의 작용이 둔화되며, 너무 높은 온도 상에서는 효소의 단백질 구조가 변형되어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 이런 이유 때문에 겨울철에는 효소 활동성이 떨어지고 에너지의 수급이 지장을 받아 운동 능력이 떨어진다. 이 상태에서 상온일 때와 마찬가지로 운동을 시작하면 다칠 위험이 크다. 따라서 가벼운 움직임으로부터 시작해 서서히 강도를 높여가는 것이 좋다. 일종의 예열 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다음으로 추운 날의 새벽 운동은 가급적 피하는 것이 좋다. 새벽은 하루 중 기온이 가장 낮은 시간이다. 우리 몸이 급작스럽게 저온에 노출될 경우 팔과 다리에서 손발 끝까지 혈액을 공급해 주는 혈관, 즉 말초동맥이 수축되고 그 결과 혈압이 올라갈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당뇨병, 고혈압, 고지혈증, 뇌혈관 질환 등이 있는 사람은 새벽 운동을 피하고 운동 시간을 오후로 바꾸는 것이 좋다. 오후로 바꾸는 것이 어렵다면 적어도 해가 뜬 후, 즉 오전 10시 이후에 운동하는 것이 좋다.

새벽 시간을 피한다 해도 체온관리에 신경을 써야 한다. 안 그래도 추운 겨울에 운동을 하면서 체온을 지키지 못할 경우 심하면 저체온증을 일으킬 수도 있다. 저체온증이란 체온이 섭씨 35도 이하로 내려가는 상태를 말한다. 중심 체온이 35도 이하로 떨어지면 심장, 폐, 뇌와 같은 주요 장기들의 기능이 저하되기 시작한다. 저체온 상태가 오래 유지되면 운동장애가 일어나며 심한 경우 사망에 이르기도 한다. 물론 일반적인 상황에서 운동을 할 경우 이처럼 치명적인 상태에 이르는 경우는 없겠지만, 특히 실외에서 도보나 달리기로 운동할 경우 신체가 더욱 빨리 냉각된다는 점을 잊지 말자. 바람이 불면 그 정도가 더욱 심해진다.

따라서 실외 운동을 시작하기 전에 적절한 옷차림을 준비하는 것이 좋다. 체온이 가장 많이 빠져나가는 신체부위는 머리, 목, 귀 등이므로 모자와 목도리를 챙기면 좋겠다. 가장 바깥쪽에 걸칠 옷은 바람과 냉기를 차단해주는 것으로, 피부와 직접 닿는 옷은 땀을 잘 흡수하는 것으로 고르자. 얇은 옷을 여러 겹 입으면 옷 사이의 공기가 보온을 돕지만 너무 두껍게 입는 것도 좋지 않다. 옷이 너무 많으면 운동 중에 쉽게 땀이 나고 운동 후 이 땀이 증발하면서 체온을 빼앗아가기 때문이다.

시작할 때에도 서서히 예열했듯이 운동을 끝낼 때에도 갑자기 멈추기보다는 마무리 운동으로 끝을 맺는 것이 좋다. 심하게 운동을 했다면 순간적으로 체내 면역력이 떨어져 감기에 걸릴 수 있으므로 샤워를 하거나 수건으로 얼른 땀을 닦고, 마른 옷으로 갈아입도록 해야 한다. 날씨가 춥더라도 웅크리지만 말고 꾸준한 운동으로 약해지기 쉬운 면역력을 키워 생활습관에서 오는 각종 질병들을 예방하자.

글 : 김창규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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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모니아 합성법의 두 얼굴 [제 860 호/2009-01-07]

미국 맨하탄프로젝트의 수장이었음에도 원폭 투하 후 참회의 인생을 살았다는 오펜하이머, 그와 함께 맨하탄프로젝트에 참여했던 세계 물리학계의 거장 닐스 보어의 이야기를 들으면 과학은 누가 어떻게 이용하느냐에 따라서 이중적 모습을 보이는 야누스의 얼굴이라 할 수 있다. 산업혁명 후 인구 증가에 의한 식량 부족을 해결하고 동시에 제1차 세계 대전 때 독일을 위해 독가스 개발에 참여했던 과학자 프리츠 하버 또한 그러했다.

19세기 유럽의 폭발적인 인구 증가는 자연스레 유럽에 기존 농업 방식으로는 해결하지 못한 식량문제를 야기했다. 땅속의 질소 화합물은 식물이 자라는 데 필수요소인데, 식량이 더 필요할수록 자연스레 질소 화합물의 양은 줄어들게 된다. 그 시기 이를 대신할 질소화합물은 칠레산 초석이었으나 대부분 수입에 의존했고 그나마도 고갈되어 가고 있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선 과학자들은 산화질소라는 화합물을 만들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번개가 칠 때 우연히 산화질소(NO)가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즉, 전기를 이용하면 질소 화합물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때 필요한 전기 스파크 온도가 2,000도~3,000도의 고온이었기에 현실성이 없었다.

이때 과학자들은 공기의 약 80%를 차지하는 질소를 수소와 반응시켜 암모니아로 합성하는 방법을 그 대안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많은 연구가 있었지만 공기 중의 질소를 이용해 비료를 만드는 방법은 대부분 개발한다 해도 경제성이 없거나 실현 불가능한 것들이었다. 다른 한 편에서는 질화 칼슘과 수소를 고온에서 반응시켜 암모니아를 생산해 내는 방법이 연구 중이었지만 투입되는 양에 비해 생산량이 너무 적어 이 또한 큰 반향을 얻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1905년 하버가 1,000도에서 철을 촉매로 사용해 질소와 수소로부터 암모니아를 합성하는 데 성공했다는 것은 대단한 발견이었다. 처음에 하버도 산화질소를 만드는데 관심을 가졌다고 한다. 그런데 그 방법이 앞서 말했듯 현실성이 없어서 암모니아를 만드는 쪽으로 선회한 것이다.

하버는 암모니아를 만들 때 높은 압력을 가하는 방법을 사용했다. 이는 ‘르 샤틀리에의 법칙’에 따른 것이다. 어떤 반응이 진행된 후 평형상태에 도달하면 더 이상 반응은 일어나지 않는데 이 평형상태에서 어떤 교란 요소를 가미하면 그 교란 작용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반응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압력이 증가하면 반응은 압력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일어난다. 이때 질소와 수소가 차지하는 부피가 암모니아가 점유하는 부피보다 2배가 더 크다. 그러므로 반응은 부피를 줄여서 압력을 줄이는 방향 즉 암모니아가 생성되는 방향으로 일어나게 된다. 즉 높은 압력을 가해서 암모니아의 생산량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을 하버가 생각해 냈다.

이런 결과에 대해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부단한 연구 끝에 촉매를 오스뮴 가루로 바꿔 1,000도에서 500도로 생성 온도를 낮춰 암모니아를 생성할 수 있게 되면서 하버는 경제성과 현실성 있는 암모니아 합성법을 완성시켰다.

이에 힘입어 하버는 한 비료회사와 합작해서 하루 20t 이상의 암모니아를 생산하기에 이르렀고 그에게는 인간의 식량난을 해소한 위대한 과학자라는 칭호도 따라 붙었다. 그 공로를 인정받아 1918년에는 노벨 화학상을 수상했다. 물론 그에게는 부도 따랐다. 엄청난 기술료를 비료회사로부터 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암모니아 합성법은 또 다른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바로 무기 개발에 활용된 것이다. 핵이 원래는 인류를 위해서였지만 핵폭탄으로 인간에게 해를 주듯 암모니아 합성법도 그러했다.

제1차 세계대전이 길어지자 독일은 탄약 원료인 니트로글리세린이 부족하게 되었다. 이때 하버의 암모니아 합성법을 활용해 대량의 질산을 생산함으로써 그 문제를 해결한 것이다. 전쟁이 나자 하버는 전쟁을 지원하는 화학부서의 책임을 맡아 무기 개발 연구를 시작했다. 그의 부서에는 TNT 원료와 고성능 수류탄 연구, 탄약의 원료인 질산염 연구 등 다방면에 걸친 연구가 진행되었다. 말 그대로 살상용 무기를 만드는 과학자로 변신을 하게 된 것이다.

즉, 인류의 식량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던 암모니아 합성법이 오히려 인간에게 해를 주는 살생용 무기로 탈바꿈한 것이다. 하버는 이에 그치지 않고 염소를 이용해 독가스를 개발했는데 그에게 ‘독가스의 아버지’라는 오명은 여기에서 기인한 것이다. 독가스 사용은 고착 상태에 빠진 전쟁을 전환하려는 수단으로 독일이 생각해 낸 악수였다. 물론 이 독가스 개발에도 하버의 능력과 조직이 필요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염소는 독성이 강한데다 널리 퍼뜨릴 수 있고 영하 32도가 되어야 액체로 변하기 때문에 추운 날씨에도 투입이 가능한 강력한 무기다. 이후 하버의 연구진은 포스겐과 비소, 청산을 함유한 유기화합물을 독가스로 활용했는데 이는 염소보다 독성이 훨씬 강했다.

이러한 독가스로 인해 연합군 병사들은 무수히 죽어갔고 전쟁의 향방은 독일의 승리로 매듭짓는 듯했다. 그러나 독일의 바람대로 되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연합군 측에서도 이에 대응하는 독가스와 보호 마스크를 개발하여 전투에 임했기 때문이다. 결국 독가스 전쟁은 양측 모두에게 큰 피해를 가져다주었다.

암모니아 합성법이 두 얼굴을 가진 것과 마찬가지로 개발자인 프리츠 하버 또한 두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원래 유대인이었다. 그러나 그는 유대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버리고 독일인보다 더 독일인답고 싶어 했다. 유대인이라는 사실이 출세에 장애가 된다는 이유로 기독교도가 되었고 독일 국민임을 스스로 자부하며 살았다. 그러나 이러한 과정에서 그의 아내는 자살을 했고 향후에는 자신이 그토록 사랑했던 독일로부터 배신을 당하기도 했다. 또한 ‘독가스의 아버지’ 답게 향후 전범자 명단에 올라 숨어다니기까지 했다.

결국 그는 스위스의 어느 초라한 호텔방에서 심장마비로 생을 마감했다. 엄청난 부와 명성, 명예를 얻은 과학자이자 노벨상 수상자인 프리츠 하버의 말로는 초라했다. 제1차세계대전 이후 하버는 전범으로 이름이 올랐고, 인류의 기아를 해결한 위대한 과학적 발견의 공은 전쟁이라는 그늘에 묻혀버렸다. 두 얼굴의 과학자 프리츠 하버의 일생은 우리가 과학을 어떻게 이용해야 하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한다.

글 : 임성아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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