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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NA 이중나선에 얽힌 드라마틱한 이야기 [제 824 호/2008-10-15]

"곧 나의 시대가 온다."
다윈의 진화론으로 인해 세상이 떠들썩할 때, 유전법칙을 발견한 멘델이 한 말이다. 멘델은 이미 자신이 얼마나 대단한 일을 해냈는지 간파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자신감에 차 있을 정도였으니…. 그러나 진정한 천재는 생전에 그 천재성을 인정받을 수 없다고 했던가. 그는 곧 차가운 주검이 되었다.

천재의 삶은 경탄스럽다. 그러나 때로는 이렇듯 가슴 아픈 천재성도 있다. 더구나 얼마나 많은 여성 천재가 뛰어난 재능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는가를 생각하면 안타깝기 짝이 없다. 과학계의 그런 대표적 인물은 로잘린드 프랭클린(Rosalind Elsie Franklin, 1920~1958)이다. 그녀는 DNA 이중나선 구조의 진실에 가장 먼저 다가간 과학자였지만 노벨상의 영광에는 근처에도 가지 못했고 역사에서도 이름이 지워질 뻔했다. 그러나 사후지만 다행히 페미니스트 역사가들 덕분에 지금은 널리 알려지게 됐다.

1953년 4월 25일, 과학저널 <네이처>에 20세기 생명과학계의 최대 사건인 DNA 이중나선의 구조도가 실린 날이다. 이중나선 구조 발견의 주인공은 미국의 제임스 왓슨(James Dewey Watson, 1928~)과 영국의 프랜시스 크릭(Francis Harry Compton Crick, 1916~2004)이다. 본문은 1페이지밖에 안 되는 짧은 분량이었지만, 20세기 최대 생물학적 성과로 아직도 보존되고 있다. 유전학 연구는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유전정보를 담은 DNA는 생체 안에서 보통 이중나선을 이루고 있다. 나선의 등뼈는 인산과 당이고, 나선 안쪽으로 4가지 염기(아데닌, 구아닌, 시토신, 티민)가 달려 있다. 이 염기의 순서가 바로 생명체의 유전 정보다. 한쪽 가닥에 달린 염기가 다른 쪽 가닥에서 나온 염기와 수소결합을 통해 손을 잡듯 결합한다. 이것이 염기쌍이다.

DNA 1g에는 염기(A, T, G, C)가 1021개 들어 있다. 이를 메모리로 환산하면 10억테라비트(Tb, 1Tb=1012b)에 해당하는 엄청난 정보량이다. 생명에 대한 모든 정보는 DNA 속에 담겨 있다. DNA가 모여서 유전자를 만들고, 이 유전자가 우리 몸속에서 필요한 명령을 내린다.

그러나 DNA 구조 발견의 그 이면에는 생명의 비밀을 독점하려는 학자들 사이의 경쟁심과 명예욕, 선두다툼, 우정과 반목이 뒤엉킨 인간드라마가 숨어 있다. DNA 구조 발견의 역사적 무대는 1951년 영국 케임브리지대의 캐번디시 연구소이다. 당시 DNA의 비밀을 캐기 위한 경주에는 여러 연구자들이 각축을 하고 있었다. 제임스 왓슨과 프랜시스 크릭, 그리고 당대 최고의 과학자로 칭송받던 미국의 물리학자 라이너스 폴링, 영국 런던의 킹스 칼리지에서 일찍부터 X선 회절 사진을 통해 DNA를 연구하던 모리스 윌킨스와 로잘린드 프랭클린 등이 선두를 다퉜다.

그 중 왓슨과 크릭은 DNA 연구에서 가장 뒤떨어진다고 평가받던 인물이다. 쟁쟁한 과학자들의 경쟁에 왓슨과 크릭 같은 애송이가 끼어들 틈이 없어 보였다. 왓슨은 시카고대학 졸업 3년 만인 1950년에 인디애나 대학에서 동물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지 1년밖에 안 된 젊은 청년이고, 크릭은 런던의 유니버시티 칼리지 출신으로 왓슨보다 12살이나 많았지만 학위도 없었고 경력도 신통치 않았다.

또한 왓슨과 크릭이 함께 일한 케임브리지대 캐번디시 연구소는 DNA 구조 연구의 후발주자였다. 2차 대전 후 물자가 부족했던 영국에선 두 개의 대학이 같은 연구를 하는 것이 용납되지 않았고, DNA 구조 연구는 로잘린드 프랭클린이 속한 킹스 칼리지 몫이었다. 그럼에도 왓슨과 크릭이 최후의 승자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당시 과학자들은 이미 유전정보의 비밀이 DNA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왓슨과 크릭은 생물학과 물리학을 바탕으로 각종 데이터를 분석하며 DNA의 비밀을 밝혀나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문제는 DNA가 어떤 구조를 가지고 있느냐를 밝혀내는 일이었다. DNA 구조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실제 세포의 핵 속에 DNA가 어떤 모양으로 들어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X선으로 사진(회절 무늬)을 찍어야 한다. 당시 여성 과학자 프랭클린이 찍은 DNA의 X선 회절사진은 이중 나선구조를 확신하는 결정적인 자료가 됐다.

이 자료를 왓슨과 크릭에게 제공한 사람은 다름 아닌 킹스 칼리지의 프랭클린 동료 윌킨스이다. 프랭클린과 사이가 좋지 않았던 윌킨스는 수시로 캐번디시 연구소를 방문해 프랭클린이 찍은 DNA X선 사진을 보여주고, 논문으로 출판되지 않은 데이터들을 제공했다. 더욱이 왓슨과 크릭은 프랭클린이 연구비 지원기관(의학연구위원회·MRC)에 비공개로 제출한 보고서를 은밀히 입수하기까지 했다.

왓슨은 미모의 여동생을 시켜 윌킨스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할 것을 권하였으나 이것은 윌킨스가 그녀에게 완벽하게 빠지지 않아 실패했다. 그러나 동료인 프랭클린과 앙숙관계였던 윌킨스는 자연스레 왓슨과 친해졌고, 왓슨은 윌킨스를 통해 프랭클린의 X선 사진을 보게 된 것이다. 여러 면에서 캐번디시 연구소보다 앞서 있던 킹스 칼리지가 경쟁에서 실패한 원인 중 하나가 바로 공동 연구자였던 윌킨스와 프랭클린 사이의 불협화음이었다.

윌킨스는 프랭클린의 사전 허락도 없이 회절사진을 분석했고, 프랭클린이 찍은 X선 회절사진에서 결정적 단서를 얻은 왓슨과 크릭은 곧 나선형 모형을 만들었다.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DNA 이중나선 구조 모형이다. 1953년 왓슨이 과학저널 <네이처> 논문을 통해 DNA 이중나선을 밝힌 나이는 불과 25세다.

제임스 왓슨, 프랜시스 크릭, 모리스 윌킨스 세 사람은 1962년 12월, 스웨덴 스톡홀름의 노벨상 수상대에 나란히 섰다. DNA의 이중나선 구조를 밝힌 것이 수상 이유다. 이때 프랭클린이 함께 노벨상을 받지 못한 것은 암 선고를 받고 1958년 38세라는 젊은 나이에 유명을 달리한 탓도 있다.

물론 왓슨과 크릭에겐 창의적인 직관이 있었다. 그러나 그 직관을 자극한 실험 데이터는 분명히 윌킨스가 사적으로 보여 준 프랭클린의 사진이었다. 왓슨과 크릭은 이 사실을 공개적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영원한 비밀은 없다’라는 말처럼 잊혀질 뻔했던 이 사실은 역설적이게도 왓슨이 그의 연구를 정리한 저서 <이중나선>을 계기로 밝혀졌다. 그 후 왓슨과 크릭은 “프랭클린의 영광을 도둑질했다.”라는 연구업적 가로채기의 비판을 받았고, 왓슨은 나중에 <이중나선>에 후기를 덧붙여 프랭클린의 연구업적을 높이 평가했다.

프랭클린은 ‘여성 과학자 차별의 희생자’라는 여성 차별의 대표적 사례로 꼽히기도 한다. 프랭클린은 여자에게는 학위를 주지 않았던 시절 대학을 다녔고, 여교수에게 식당 출입을 제한하는 시절 대학에서 연구했다. 이런 환경에서도 그녀는 당당하고 열정적이었으며 완벽주의자였다. 영국 정부는 이 비운의 여성과학자를 기리기 위해 ‘로잘린드 프랭클린 상’을 제정해 해마다 우수하고 업적이 탁월한 여성 과학자들에게 상을 수여하고 있다. 진실의 역사가 살아난 것이다.

지금까지의 내용으로는 왓슨과 크릭은 다른 사람의 자료를 이용해 성공한 치사한 사람으로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일부 사람들은 이들의 성공을 ‘운이 좋았다’거나 ‘도둑질’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미국 템플대 심리학과 로버트 와이즈버그 교수는 이들의 연구가 창의적이라고 해석한다. 왓슨과 크릭은 연역적으로 추론할 관점, 즉 직관이 있었기에 다른 사람보다 더 빨리 성공할 수 있었고, 또 창의성이 있었기에 생명의 비밀을 밝힌 주역으로 지금까지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DNA 이중 나선 구조가 밝혀진 후 생명과학은 말 그대로 폭발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생명 현상을 분자 수준에서 이해하고 응용하려는 분자 생물학의 총아로 떠오른 것은 물론 각종 생명 현상의 비밀들이 하나씩 풀려가기 시작했다. 호박만 한 토마토를 만들 수 있는 것도, 유전자를 분석해 범인을 잡는 것도 다 DNA의 구조를 밝혀냈기 때문이다.

그러나 왓슨과 크릭의 발견은 완성된 것이 아니라 지금도 진행되고 있다. A, T, G, C라는 단지 4개의 문자로 이루어진, 어찌 보면 참 간단하고 어떻게 보면 한없이 복잡한 DNA 생명 세계. 그 추적은 끝나지 않았으며 21세기에도 끝없이 이어질 것이다.

글 : 김형자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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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리콥터의 무한도전은 계속 된다 [제 823 호/2008-10-13]

헬리콥터 없는 세상을 상상할 수 있을까? 아파치처럼 전투가 일어나는 현장에서 적군에게 접근 탱크를 파괴하는 작전을 수행할 때만 헬리콥터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명절 연휴 때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귀성행렬의 사진촬영, 육로로 접근이 불가능한 지역으로의 물자나 인원의 수송, 화재 현장에서의 소화와 구난작업, 농약살포 등에는 어김없이 헬리콥터가 등장한다. 이는 헬리콥터가 일반 비행기로는 할 수 없는, 호버링(공중정지), 전후진 비행, 수직 착륙, 저속비행 등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 헬리콥터를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비밀은 로터(회전하는 부분을 통틀어 이르는 말)에 있다. 비행체가 뜰 수 있는 양력과 추진력을 모두 로터에서 동시에 얻기 때문이다. 로터에는 일반적으로 2~4개의 블레이드(날개)가 붙어 있다. 이 블레이드를 자세히 보면 작은 비행기 날개와 비슷하게 생겼다. 빠르게 회전하는 각각의 블레이드에서 비행기 날개와 같은 양력이 발생하는데 헬리콥터는 이 양력 덕분에 무거운 몸체를 하늘로 띄울 수 있다. 비행기 역시 엔진의 추진력에 의해 몸체가 점점 앞으로 빨리 날 때 양쪽 날개에 발생하는 양력을 이용해 공중에 뜨게 되는 것이므로 사실 헬리콥터의 비행원리는 비행기와 다르지 않다.

다만 비행기는 일단 공중에 뜨고 나면 앞쪽 날개의 조향장치와 꼬리날개의 수직날개를 좌우 방향을 틀면서 방향을 잡아가는 데 비해, 헬리콥터는 블레이드가 이 역할까지 한다는 게 차이라면 차이다. 블레이드 각을 조정하게 되면 상하 양력의 크기를 조정할 수 있기 때문에 이착륙이 가능해진다. 블레이드 각이 크면 상승하는 양력이 발생하고 각이 수평으로 낮아지면 힘이 약해져 하강하는 성질을 이용하는 것이다. 그리고 공중에 뜬 헬리콥터는 로터의 각을 조정하여 기체를 앞뒤 좌우로 움직인다. 로터를 앞으로 각을 세웠다, 뒤로 각을 세웠다 하면서 전진 후진을 조정하며, 이는 좌우로 움직일 때도 마찬가지다. 한마디로 로터 하나에서 양력, 추진력, 조향방향을 동시에 얻는 것이다.

하지만 이 로터가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도 있다. 헬리콥터가 비행기의 추진력과 같은 조건으로 양력을 얻기 위해 블레이드를 회전시킬 때 엄청난 반동이 발생하는데, 이로 인해 블레이드가 회전하는 방향으로 기체 몸통도 따라 같이 돌아가게 된다. 공중에 떠 있는 헬기가 팽이처럼 계속 돌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 때문에 몸통이 돌아가려는 방향과 반대되는 방향으로 힘을 균등하게 나눠 주는 장치가 필요해진다. 가장 일반적인 단식 주회전날개 헬리콥터는 꼬리부분의 작은 로터가 균형을 잡아주는 역할을 한다.

미국 해군에서 사용되는 수송기 시나이트는 서로 반대방향으로 회전하는 회전날개를 기체의 앞뒤 끝에 각각 배치한 탠덤(Tandem)방식을 이용한다. 이 밖에도 서로 반대방향으로 회전하는 회전날개를 기체의 좌우에 배치한 쌍회전날개(Side by Side)방식, 2개의 회전날개를 접근시켜 배치하고 서로 교차시켜서 회전하는 동축반전(Coaxial)방식, 추력을 증가시키기 위한 보조장치를 부착한 복합형(Compound)방식 등으로 헬리콥터의 균형을 잡아준다.

헬리콥터가 갖고 있는 또 하나의 단점은 속도를 높이는 데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현재 운용되고 있는 헬리콥터들은 최대 순항 비행속도가 대개 시속 300km 내외에 머물고 있는데, 이는 수십 년 전에 비해서도 크게 나아진 것이 없다. 제트비행기의 발전 속도에 비하면 거의 발전이 없는 것이다. 이것은 로터시스템의 기본적인 한계 때문이다. 회전날개를 무조건 빨리 돌릴 경우 날개가 부러지거나 로터 시스템이 파괴될 수도 있기 때문에 속도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물론 이를 극복하기 위한 다양한 아이디어들이 등장했다. 착륙할 때는 회전날개를 사용하고 순항 중에 방해가 되는 회전날개를 접거나 동체 속에 넣는 방식도 고려되고 있다. 하지만 이럴 경우 헬리콥터 고유의 기능인 호버링, 수직 착륙, 저속비행에서 기동 등에서 많은 제약이 가해진다.

이런 가운데 2008년 8월, 미국의 헬리콥터 생산업체인 시콜스키가 ‘세상에서 가장 빠른 헬리콥터’의 프로토콜타입 X2를 공개하고 시험비행에 나서 관심을 끌고 있다. X2는 동일한 수직축에 서로 반대로 회전하는 두 개의 로터를 단 것이 특징이다. 이 방식으로 비행하면 이론적으로는 최고 시속이 464km를 넘어설 수 있다. 사실 X2에 사용되는 로터 방식이 새로 나온 것은 아니다. 2개의 로터를 역방향으로 회전시키는 ABC로터(Advancing Blade Concept)가 나온 것은 197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러나 당시로써는 로터의 소재적 한계와 엔진의 출력부족으로 인해 실용화되지 못했다. 그런데 X2에는 다양한 복합재료, 새로운 엔진과 트랜스미션 등 다양한 신기술들이 적용되면서 이야기가 달라졌다. 높은 출력대중량비 트랜스미션, 주로터에서 후방 추진기로의 연속적인 추진동력 전환, 능동형 진동제어 등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물론 X2는 어디까지나 실험기이며 이 자체를 실용화하기까지는 가야 할 길이 멀다. 하지만 개발이 순탄하게 진행된다면 기존의 헬리콥터와 같이 호버링, 수직 착륙, 저속비행에서 기동할 수 있으면서도 고속 비행이 가능한 헬리콥터가 등장하는 것이 먼 미래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글 : 유상연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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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리콥터의 무한도전은 계속 된다 [제 823 호/2008-10-13]

헬리콥터 없는 세상을 상상할 수 있을까? 아파치처럼 전투가 일어나는 현장에서 적군에게 접근 탱크를 파괴하는 작전을 수행할 때만 헬리콥터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명절 연휴 때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귀성행렬의 사진촬영, 육로로 접근이 불가능한 지역으로의 물자나 인원의 수송, 화재 현장에서의 소화와 구난작업, 농약살포 등에는 어김없이 헬리콥터가 등장한다. 이는 헬리콥터가 일반 비행기로는 할 수 없는, 호버링(공중정지), 전후진 비행, 수직 착륙, 저속비행 등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 헬리콥터를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비밀은 로터(회전하는 부분을 통틀어 이르는 말)에 있다. 비행체가 뜰 수 있는 양력과 추진력을 모두 로터에서 동시에 얻기 때문이다. 로터에는 일반적으로 2~4개의 블레이드(날개)가 붙어 있다. 이 블레이드를 자세히 보면 작은 비행기 날개와 비슷하게 생겼다. 빠르게 회전하는 각각의 블레이드에서 비행기 날개와 같은 양력이 발생하는데 헬리콥터는 이 양력 덕분에 무거운 몸체를 하늘로 띄울 수 있다. 비행기 역시 엔진의 추진력에 의해 몸체가 점점 앞으로 빨리 날 때 양쪽 날개에 발생하는 양력을 이용해 공중에 뜨게 되는 것이므로 사실 헬리콥터의 비행원리는 비행기와 다르지 않다.

다만 비행기는 일단 공중에 뜨고 나면 앞쪽 날개의 조향장치와 꼬리날개의 수직날개를 좌우 방향을 틀면서 방향을 잡아가는 데 비해, 헬리콥터는 블레이드가 이 역할까지 한다는 게 차이라면 차이다. 블레이드 각을 조정하게 되면 상하 양력의 크기를 조정할 수 있기 때문에 이착륙이 가능해진다. 블레이드 각이 크면 상승하는 양력이 발생하고 각이 수평으로 낮아지면 힘이 약해져 하강하는 성질을 이용하는 것이다. 그리고 공중에 뜬 헬리콥터는 로터의 각을 조정하여 기체를 앞뒤 좌우로 움직인다. 로터를 앞으로 각을 세웠다, 뒤로 각을 세웠다 하면서 전진 후진을 조정하며, 이는 좌우로 움직일 때도 마찬가지다. 한마디로 로터 하나에서 양력, 추진력, 조향방향을 동시에 얻는 것이다.

하지만 이 로터가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도 있다. 헬리콥터가 비행기의 추진력과 같은 조건으로 양력을 얻기 위해 블레이드를 회전시킬 때 엄청난 반동이 발생하는데, 이로 인해 블레이드가 회전하는 방향으로 기체 몸통도 따라 같이 돌아가게 된다. 공중에 떠 있는 헬기가 팽이처럼 계속 돌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 때문에 몸통이 돌아가려는 방향과 반대되는 방향으로 힘을 균등하게 나눠 주는 장치가 필요해진다. 가장 일반적인 단식 주회전날개 헬리콥터는 꼬리부분의 작은 로터가 균형을 잡아주는 역할을 한다.

미국 해군에서 사용되는 수송기 시나이트는 서로 반대방향으로 회전하는 회전날개를 기체의 앞뒤 끝에 각각 배치한 탠덤(Tandem)방식을 이용한다. 이 밖에도 서로 반대방향으로 회전하는 회전날개를 기체의 좌우에 배치한 쌍회전날개(Side by Side)방식, 2개의 회전날개를 접근시켜 배치하고 서로 교차시켜서 회전하는 동축반전(Coaxial)방식, 추력을 증가시키기 위한 보조장치를 부착한 복합형(Compound)방식 등으로 헬리콥터의 균형을 잡아준다.

헬리콥터가 갖고 있는 또 하나의 단점은 속도를 높이는 데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현재 운용되고 있는 헬리콥터들은 최대 순항 비행속도가 대개 시속 300km 내외에 머물고 있는데, 이는 수십 년 전에 비해서도 크게 나아진 것이 없다. 제트비행기의 발전 속도에 비하면 거의 발전이 없는 것이다. 이것은 로터시스템의 기본적인 한계 때문이다. 회전날개를 무조건 빨리 돌릴 경우 날개가 부러지거나 로터 시스템이 파괴될 수도 있기 때문에 속도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물론 이를 극복하기 위한 다양한 아이디어들이 등장했다. 착륙할 때는 회전날개를 사용하고 순항 중에 방해가 되는 회전날개를 접거나 동체 속에 넣는 방식도 고려되고 있다. 하지만 이럴 경우 헬리콥터 고유의 기능인 호버링, 수직 착륙, 저속비행에서 기동 등에서 많은 제약이 가해진다.

이런 가운데 2008년 8월, 미국의 헬리콥터 생산업체인 시콜스키가 ‘세상에서 가장 빠른 헬리콥터’의 프로토콜타입 X2를 공개하고 시험비행에 나서 관심을 끌고 있다. X2는 동일한 수직축에 서로 반대로 회전하는 두 개의 로터를 단 것이 특징이다. 이 방식으로 비행하면 이론적으로는 최고 시속이 464km를 넘어설 수 있다. 사실 X2에 사용되는 로터 방식이 새로 나온 것은 아니다. 2개의 로터를 역방향으로 회전시키는 ABC로터(Advancing Blade Concept)가 나온 것은 197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러나 당시로써는 로터의 소재적 한계와 엔진의 출력부족으로 인해 실용화되지 못했다. 그런데 X2에는 다양한 복합재료, 새로운 엔진과 트랜스미션 등 다양한 신기술들이 적용되면서 이야기가 달라졌다. 높은 출력대중량비 트랜스미션, 주로터에서 후방 추진기로의 연속적인 추진동력 전환, 능동형 진동제어 등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물론 X2는 어디까지나 실험기이며 이 자체를 실용화하기까지는 가야 할 길이 멀다. 하지만 개발이 순탄하게 진행된다면 기존의 헬리콥터와 같이 호버링, 수직 착륙, 저속비행에서 기동할 수 있으면서도 고속 비행이 가능한 헬리콥터가 등장하는 것이 먼 미래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글 : 유상연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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