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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가 열리는 자리, 스위트 스팟 [제 813 호/2008-09-19]

스위트 스팟(Sweet Spot)은 스포츠 분야에서 나온 용어로 야구 배트나 테니스 라켓 등이 공을 맞힐 때 특별한 힘을 가하지 않고도 가장 멀리 가장 빠르게 날아가게 만드는 부분, 즉 공을 맞히는 최적지점을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 마케팅에서는 소비자가 기업에 대한 친밀감이 극대화되는 순간인 소비자 심리 타점을 일컫기도 하고 건축에서는 콘서트홀과 같은 곳에서 가장 소리가 잘 들리는 자리를 말하기도 한다.

이처럼 스포츠, 마케팅, 건축에서 다양하게 쓰이는 스위트 스팟은 단순히 적절한 위치라는 의미만을 나타내지는 않는다. 이번 북경 올림픽에서 이승엽 선수가 친 홈런들을 생각해 보라! 체구가 큰 서양의 야구선수들과 달리 이승엽 선수는 큰 힘을 들이지 않고 자연스러운 스윙으로 손쉽게 홈런을 만들어내어 우리 한국 팀에게 승리를 안겨 주었다. 바로 이승엽 선수의 배트가 투수가 던지는 공을 작용과 반작용이 가장 잘 일어날 수 있는 위치에 맞게끔 궤적을 그리며 회전하기 때문이다.

건축음향설계에서도 이승엽 선수의 배트에 맞는 공처럼 소리가 가장 잘 반사되는 위치들이 있다. 음향설계에 있어서 어쩌면 가장 이상적인 것은 음원에서 전해지는 직접음을 듣는 것일 수 있지만 실내공간이 되면 이는 도저히 바랄 수 없는 이상이다. 과거 그리스의 극장들이 다 외부라는 사실을 상기해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기둥 하나만 세워도 벌써 멋진 가수의 목소리를 감아 왜곡을 시키는데 벽이랑 천장까지 생기면 진정한 라이브의 묘미는 물 건너갔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건축음향설계를 할 때 벽이나 천장에 반사음을 효과적으로 활용하여 객석 전체에 충분한 음압을 고르게 분포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림 1>은 건축음향설계의 하나의 예로서 음원에서 나가는 직접음과 반사음이 골고루 객석에 전달되는 음선을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이 정도로 건축음향설계가 끝났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만일 직접음과 반사음이 객석에 도착하는 시간이 다르다면 이것도 아주 곤란한 문제를 일으키게 된다. 바로 소리의 간섭효과로 소리가 불분명하게 들리는 것이다. 또한 이들 음이 적정한 잔향시간을 확보하지 못해도 똑같은 문제가 생겨나게 된다. 이를 해결하는 곳은 객석의 측벽이다.

객석의 측벽은 음의 반사효과뿐만 아니라 음을 풍부하게 하는 확산효과와 적정실내잔향을 유지하기 위한 흡음성능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래서 콘서트홀의 경우 무대 쪽 전면의 경사진 측벽은 천장처럼 완벽한 반사재를 선택한다. 중간과 후면의 측벽에는 보통 사각뿔 형태의 구조물을 벽체의 중간높이를 중심으로 적절하게 설치하여 음을 확산시킨다. 콘서트홀의 맨 뒤쪽 벽은 유해한 에코 현상을 방지하기 위해서 넓은 주파수에 걸쳐 흡음성을 가지도록 처리한다. 이것으로 최적의 소리를 만들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콘서트홀은 필연적으로 관객이 앉을 수 있는 의자들이 있기 마련이다. 극장이나 음악당을 가면 우리는 푹신한 천으로 된 의자에 앉게 된다. 모르는 사람들은 관객들이 편하게 앉아 감상할 수 있게 쿠션을 넣어 만들었다고 착각할 수 있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그것은 사람이 없을 때 의자의 바닥이 올라져 있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들려져 있는 의자의 바닥은 흡음을 위해 타공이 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의자를 천과 쿠션으로 만든 것도 같은 이유이다. 만일 이 의자들이 소리를 반사하게 되면 멋진 소리를 귀에 닿기 위해 공들인 천장과 벽이 아무 소용없게 되기 때문이다. 이처럼 천장과 벽 그리고 의자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조화로운 역할을 조금만이라도 못한다면 그 공연장은 연극, 뮤지컬, 연주회 등에서 나오는 진정한 소리를 들을 수 없게 된다.



<그림 2>는 한스 샤로운(hans scharoun)이 설계한 베를린 필하모니 음악당이다. 자유로운 지붕의 형태는 음악당에서 작용하는 소리의 궤적을 따라 모든 객석이 최적의 스위트 스팟이 될 수 있도록 설계된 것이다. 이승엽 선수는 멋진 홈런 한 방을 만들 수 있는 스위트 스팟을 찾기 위해 하루에 천 번의 스윙을 연습한다고 했다. 정말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최적의 음향을 위해 무수히 많은 경우의 수를 생각해야 하는 건축가의 일 또한 그에 못지않을 것이다.

글 : 이재인 박사(어린이건축교실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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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기 베네치아 화가들의 화려한 비밀 [제 812 호/2008-09-17]

16세기 초의 베네치아는 요즈음의 파리나 뉴욕이 그렇듯 미술의 메카였다. 당시 베네치아에는 근대 회화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티치아노, 풍부한 색채감의 화가 지오반니 벨리니, 수수께끼의 상징성으로 점철된 그림 ‘폭풍’을 그린 지오르지오네 등이 활동하고 있었다. 당시 베네치아 화가들은 다른 유럽지역의 화가들보다 훨씬 더 다양한 색상과 재료를 사용했고, 그 결과 베네치아 화가들은 유럽의 회화를 선도하는 화가군으로 활동할 수 있었다.

이 당시 베네치아 화가들의 활동과 관련된 흥미로운 연구 결과가 미국화학회 소식지에 실렸다. 16세기 베네치아 화가들이 사용했던 환상적인 색상에 과학적인 비밀이 숨어 있었다는 것이다.

소식지에 따르면 당시 베네치아에는 벤데콜로리(Vendecolori)라고 불리는 물감 판매업자들이 성업하고 있었다. 벤데콜로리는 다양한 색상의 염료, 착색제, 물감 등을 직접 제작하고 판매하는 일종의 도매상이었다. 화가들은 벤데콜로리의 상점에서 물감을 구입하는 것은 물론이고 동료 화가들을 만나서 새로운 기법이나 재료에 대한 정보를 얻어갔다. 말하자면 벤데콜로리의 상점은 가게뿐만이 아니라 베네치아 화가들의 살롱 역할까지도 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탈리아 또는 다른 유럽 국가들에는 이 같은 벤데콜로리가 없었던 것일까? 당시 대부분의 유럽 화가들은 물감을 약방에서 구해다 썼다. 벤데콜로리처럼 종합적인 화방이 있는 도시는 베네치아 외에는 없었다. 때문에 이탈리아 전역의 화가들이 벤데콜로리에서만 판매하는 다양한 물감과 재료를 구하기 위해 베네치아를 찾아왔다고 한다.

해상무역의 중심지였던 16세기 베네치아는 유럽과 아시아, 아프리카 등 세계 각국과의 무역을 통해 막대한 부를 쌓고 있었다. 이러한 해상무역로를 확보하고 있었던 벤데콜로리들은 다양한 물감과 그림 재료들을 어렵지 않게 수입할 수 있었다. 즉, 무역 강국이던 베네치아의 위치가 미술의 전성기를 이끄는 일등 공신 역할을 했던 것이다.

16세기 화가들이 사용한 안료, 염료, 착색제 등의 생산과정은 화합물 추출, 유기반응, 무기반응, 유기금속 반응, 산화환원 반응 등을 포함하는 종합화학이었다. 벤데콜로리들은 이 화학 반응을 잘 이해하고 있었고 화가들은 벤데콜로리의 도움을 받아 새로운 재료와 기법을 회화에 적극적으로 응용할 수 있었다.

16세기 베네치아 화가들의 화려한 화풍에는 또 다른 비밀도 있었다. 유리와 도자기 제품들은 베네치아의 전통적인 특산물인데 이는 16세기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당시의 화가들이 유리 세공의 기법과 재료를 정통 회화에 응용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 역시 벤데콜로리의 역할이 컸다. 벤데콜로리는 유리세공에서 필수적으로 쓰이는 재료인 분쇄한 모래도 판매하고 있었다. 베네치아 화가들은 당시 유화에는 사용되지 않았던 유리질의 착색제를 도입해서 한층 빛나고 생생한 색채감을 내는 데 성공했다. 또 당시 화가들이 물감이 마르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 탄산칼슘이나 유리를 사용한 데 비해 베네치아 화가들은 물감에 분쇄한 모래를 섞어 덧칠했다.

베네치아 출신으로 이탈리아에서 활약한 화가 로렌조 로토는 물감을 덧칠할 때 투명한 효과를 주기 위해 레이크 안료를 사용했다. 로토의 그림을 엑스선으로 분석해보면, 연한 백색과 주홍색을 섞어 만든 핑크색 물감층과 투명한 적색 레이크 안료층이 교대로 칠해져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화학자들이 형광현미경으로 그의 그림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그림 표면에 최소한 5개 층 이상의 투명한 적색 레이크 안료층이 덧발라져 있다고 한다. 이와 더불어 황화비소로 만든 특이한 오렌지색상과 아프가니스탄에서 수입한 군청색 역시 베네치아 화가들이 즐겨 구사한 색상들이다.

로토가 사용한 기법은 베네치아 화가들이 즐겨 사용했던 방법이다. 즉, 투명한 색상과 반투명한 색상의 유화물감을 번갈아 덧칠해서 특별한 효과를 얻는 것이다. 베네치아의 화가들은 여러 새로운 안료를 시험한 끝에 각각의 물감층이 스테인드글라스처럼 아래층의 색상을 가리지 않으면서 새로운 색감을 내는 안료를 찾아낼 수 있었다. 벨리니는 하늘의 푸른빛에 노란빛이 나는 오렌지색을 조금씩 덧칠해서 미묘한 색감의 변화를 내기도 했다. 엑스분석법과 광학현미경 사진을 통해 화학자들은 벨리니가 사용한 주황색 물감이 안티몬과 철을 포함한 실리케이트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당시의 베네치아 화가들은 그림을 그리는 데 있어서 무엇보다 색채감을 중요시했기 때문에 좋은 빛깔을 나타내기 위해서 다양한 시도를 했다. 그 가운데 과학적 노하우가 반영된 고유한 화법이 작품에 적용되었다. 그러한 노력이 마침내 예나 지금이나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베네치아의 미술문화를 꽃피우는 원동력이 된 것이다.

글 : 이식 박사(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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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올라이트 없애고, 세제 찌꺼기도 없애고! [제 811 호/2008-09-15]

빨래를 하다 보면 여러 번 헹궈도 뿌연 물이 계속 나올 때가 있다. 도대체 세탁이 제대로 된 건지, 깨끗하게 헹궈진 건지 찝찝한 느낌이 들면서도 딱히 어쩔 도리가 없다. ‘아무래도 기계로 세탁을 하면 손으로 빨래를 하는 것보다는 때가 깔끔히 빠지지 않겠지…’하는 막연한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문제는 세제다. 세제 속의 제올라이트(Zeolite)라는 성분은 불용성 물질이기 때문에 물에 완전히 녹지 않는다.

제올라이트는 물속에 있는 칼슘과 마그네슘 이온을 공극 안에 포집하여 센물을 단물로 만들어 주는 역할을 한다. 이를 바로 경수연화 작용이라 한다. 제올라이트는 환경에 대해서도 안전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하수에서의 퇴적량은 무시할 수 있을 만큼 적고 하수처리 과정에서 방해가 되지 않으며 활성오니(活性汚泥) 처리단계에서 오니에 흡착·제거되어 수중생물에 대해서도 나쁜 영향이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제올라이트는 다공성의 결정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많은 액상성분을 함유하게 함으로써 분체가 잘 흐를 수 있도록 하고, 분말 입자끼리 엉키지 않도록 하여 세제가 단단하게 굳어지는 것을 막는다. 이와 같은 다양한 역할을 하기 때문에 제올라이트는 분말 세제에 있어서 필수적인 원료이지만 반면 문제점도 가지고 있다.

제올라이트의 미세입자가 물에 녹지 않고 분산되어 있어 헹굼과정에서 완전히 빠져나가지 않아서 소비자들은 여러 번 헹구게 되는 불편을 겪고 있으며, 미처 못 헹궈진 제올라이트는 건조 후 미세한 먼지로 작용하게 된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으로 세제제조 회사에서는 제올라이트의 함량을 점차 줄여 왔으나 완전히 없앨 수는 없었다. 세계적인 세제 회사인 독일의 헨켈에서도 의류에 잔류물로 남는 제올라이트를 줄이기 위해 2004년부터 노력해 왔지만 아직도 완전히 제거하지 못한 상태였다.

그런데 얼마 전 세계최초로 국내 세제제조 회사에서 제올라이트를 대체하는 새로운 소재를 개발하여 이러한 문제를 말끔히 해결하였다. 단순히 대체 소재를 개발하는 것뿐만 아니라 제조 프로세스까지 바꿔 제품화에 성공하는 쾌거를 이뤄냈다. 제올라이트가 없으면 분말 세제를 만들기가 어렵기 때문에 기존의 제조 프로세스도 바꿔야 했던 것이다.

새로운 소재는 고분자전해질로써 물에 쉽게 녹아 물속에 있는 +2가 이온인 금속이온(주로 칼슘, 마그네슘 이온)들과 먼저 이온결합을 하여 음이온 계면활성제가 +2가 금속과 이온결합 하는 것을 막아준다. 이렇게 되면 음이온 계면활성제는 금속이온과 결합하지 않게 되어 본래의 기능인 계면장력을 낮추는 역할을 충분히 하게 되고 계면장력이 낮아지면 잘 섞이지 않는 물과 기름 성분이 잘 섞이게 된다. 즉, 옷에 있는 때가 잘 빠지고, 빠져나온 때는 물과 잘 섞이게 되는 것이다.

연구팀은 고분자전해질을 이온 강도가 높은 성분으로 물에 쉽게 녹게끔 만들어 물과의 친화성을 높였다. 또한 적절한 혼합 모노머를 사용해서 이들의 비율과 분자량의 조절을 통하여 물속에 있는 이온들과 잘 결합하도록 만들었다. 이렇게 하여 제올라이트보다 경수연화 효과가 2~8배까지 좋아졌고 제올라이트 양의 1/8로도 충분히 제올라이트의 역할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더불어 고분자전해질은 드럼세탁기의 열교환기에 생길 수 있는 스케일의 발생을 방지해준다. 열교환기는 온도가 높은 조건에서 빨래를 하는 드럼세탁기에 부착되어 물의 온도를 높이는 기능을 하는데, 이때의 온도 변화로 인해 열교환기 표면에 스케일이 발생되는 것이다. 이 스케일은 물에 있는 칼슘, 마그네슘과 같은 성분과 세제에 있는 성분들이 결합하여 탄산칼슘, 황산칼슘과 같은 물질을 만들고 이 물질은 물에 녹지 않고 열교환기 표면에 단단하게 부착되어 만들어진다. 이렇게 스케일이 누적되면 열교환기의 효율을 떨어뜨려 과열과 에너지 낭비의 원인이 되며 세탁기 고장으로 이어질 수 있다.

제올라이트 대신 고분자전해질이 첨가된 세제를 사용함으로써 우리는 옷이 말끔히 헹궈지도록 하고 세탁기를 보호하는 효과를 동시에 가질 수 있다. 이제는 뿌옇게 나오는 헹굼물을 보면서 찝찝해하지 않고 안심해도 되는 것이다. 깨끗이 세탁하는 방법! 이것은 앞으로도 세제를 만드는 회사나 소비자들이 끊임없이 고민하는 과제이며, 더 좋은 세탁 세제가 개발되기 위한 필수적인 조건이다.

글 : 오영기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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