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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물도 머리를 쓴다 [제 801 호/2008-08-22]

건축에 있어 경제와 사회는 불가분의 관계이다. 예컨대 제1차 오일쇼크는 자연광을 받을 수 있도록 경사 유리로 덮는 아트리움을 전 세계적으로 유행시켰고, 제2차 세계대전은 전후 복구를 목적으로 도미노 시스템으로 크게 나뉘는 콘크리트 박스형의 군더더기 없는 건축물을 탄생시켰다. 현재 연일 치솟는 유가 폭등은 가히 제3차 오일쇼크를 방불케 한다. 그래서 현대의 건축가들에게 건축물의 에너지 절약은 가장 큰 난제라 할 수 있다.

부잣집에서 딸 셋에게 쌀을 한 말씩 주고 한 달을 살라고 했다는 옛 이야기가 기억난다. 한 달 후 가장 지혜로운 방법으로 쌀을 많이 남겨온 딸은 누구인지 한번 시험해 보고자 했던 것이다.
첫째딸은 굶었다.
둘째딸은 한 달 동안 쌀을 아껴서 조금씩 먹었다.
셋째딸은 그 쌀을 받자마자 떡도 해먹고 하인과 배불리 먹고 나가서 일했다.

과거 건축물의 에너지 절약 방법이 무조건 안 쓰는 첫째딸 형이었다. 반면, 현대의 소비자들은 이야기 속 셋째딸이 더 나은 이익창출을 위해 머리를 쓴 것처럼 좀 더 편리하게 생활하는 쪽을 택한다. 이는 무한대로 무상, 공짜로 공급되는 자연에너지를 벌어서 쓰는 방법이다. 가장 대표적인 방법이 널리 알려진 태양열 에너지다. 그러나 이 방법은 위도가 맞아야 한다는 문제와 미학적 문제 등을 안고 있다. 다음은? 풍력이다. 그런데 바람의 문제는 불 때도 안 불 때도 있으며 혹은 불더라도 세기가 일정치 않다는 결정적 단점을 지니고 있다. 그렇다면 에너지원으로 빵점이다.

그러나 소극적으로 바람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바람을 만든다면 이야기는 달라질 수 있다. 예컨대, 건물 사이에 늘 존재하는 극간풍은 골칫거리였다. 난류를 형성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위기를 기회로 즉 난류를 역으로 이용할 수 있다면 언제나 안정적인 바람을 공급받을 수도 있다.

또 건물을 아예 빙글빙글 돌려 바람을 만들어 낼 수도 있다. 건물이 빙글빙글 돌아서 어지러울 거라고 여긴다면 그건 오산이다. 두바이 dynamic architecture의 경우 건물을 완전히 한 바퀴 도는 데 걸리는 시간은 약 90분 정도이니 건물의 거주자들이 느끼지 못할 정도일 것이다. 또한 건축물의 회전은 층과 층 사이에 마치 배의 노와 같이 생긴 날개(scoop)가 바람의 직진 운동을 회전력으로 바꿔주는 기능을 하여 가능하게 하였다.

일반적인 풍력장치는 날개가 수직이며, 보통 1-1.5메가와트의 전력을 생산한다. dynamic architecture의 수평 풍차는 0.3메가와트의 전력을 생산하며, 총 48개의 풍차가 건물바닥에 설치되어 있다. 풍차 1개당 50가구가 사용 가능한 전력을 생산하는데 이 건물에는 200가구가 거주하고 있어 나머지 44개 풍차에 의해 발생 전력은 주변 빌딩에 공급할 계획이다.

이 움직이는 건물을 설계한 이탈리아 출신 건축가인 데이비드 피셔(David fisher)는 “옳은 것은 무엇이든 좋지만, 좋은 것이 항상 옳진 않다.”라는 말로써 건축가들에게 현재의 방식이 옳다고 안주할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새로운 방식을 찾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에 건축가들은 각각의 장점을 혼합한 형태의 새로운 방식을 내 놓았다. 예를 들어 태양열과 풍력을 동시에 이용하는 방법인데 현재 지름 29m의 풍차와 4,000개의 광 패널을 통해 바람과 태양열을 동시에 사용하도록 설계된 두바이 국제 금융센터(DIFC)가 대표적이다.

건축에서 바람(wind)은 미래의 바람(wish)이 되고 있다. 과학자들이 난색을 표명하던 풍력을 이용한 초고층 건물의 현실화는 이제 대체에너지로서 바람의 이용을 선택이 아닌 필수 요소로 바꾸어 놓았다. 그래서 나는 태양에 반짝이는 바람개비를 하나씩 달고 있는 미래의 건물들을 상상해 본다.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Form follow function).”라는 미스 반 데 로에(Mies van der Rohe)의 모더니즘 미학은 현대 건축에 있어서 “형태는 환경을 따른다(Form follow environmental).”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글 : 이재인 박사(어린이건축교실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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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릴레이 종교재판의 진실 [제 800 호/2008-08-20]

근대 물리학의 아버지, 근대 과학의 아버지, 과학의 아버지 등으로 칭송되며 뉴턴과 아인슈타인과 더불어 가장 대중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는 갈릴레오 갈릴레이. 갈릴레이는 그 인기만큼 널리 알려진 이야기도 많지만 그 이야기 중 많은 것이 사실과 다르거나 과장되어 있다. 과학의 역사를 통틀어 갈릴레이만큼 사실과 다른 이야기가 신화가 되어 사실로 널리 받아들여진 경우는 드물다. 그렇다면 갈릴레이의 이야기에 이렇듯 과장이나 거짓이 많은 이유는 무엇이며 과연 이야기의 진실은 과연 무엇일까?

갈릴레이는 셰익스피어와 같은 해인 1564년에 이탈리아 피사의 몰락한 귀족인 빈센초 갈릴레이의 아들로 태어났다. 다재다능했던 갈릴레이는 음악가였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류트와 오르간 연주에 재능을 보였으며, 문학에 대한 논문을 쓸 정도로 학식이 풍부했다. 또한 미술에는 당시 뛰어난 화가들도 그의 실력을 인정할 만큼 조예가 깊었다. 이렇게 다방면에 뛰어난 재능이 있었던 갈릴레이가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선택한 것은 수학 개인교사의 길이었다. 갈릴레이는 피사 대학에 다니는 동안 다른 사람들과 논쟁을 즐겼기 때문에 논쟁꾼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러한 성향은 결국 그를 종교재판에 이르게 만든다.

흔히 갈릴레이가 천동설을 부정하고 지동설을 주장했기 때문에 종교재판에 회부되었다고 알려져 있지만, 문제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즉 갈릴레이의 종교재판이 교회와 과학과의 갈등에 의한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이다. 만일 그랬다면 코페르니쿠스주의를 주장한 갈릴레이보다는 코페르니쿠스가 종교 재판에 회부되는 것이 더욱 타당할 것이다. 비록 코페르니쿠스의 책이 금서가 되기는 했지만 그는 종교재판에 회부되지 않았다. 심지어 교회 지도부 내에서도 갈릴레이의 생각에 동조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었다. 따라서 갈릴레이가 종교재판에 회부된 이유를 진실에 대한 교회의 탄압이라고 보는 견해는 지나치게 사건을 단순화시켜 그 본질을 왜곡시킨 것이다.

역사적 추론에 의하면 갈릴레이는 예수회의 음모에 빠지게 되었거나 단순히 그의 책 표지에 있는 돌고래 문양이 오해를 받아 종교 갈등의 수렁 속으로 빠져들게 했을 수도 있다. 돌고래를 뜻하는 돌핀(dolphin)은 프랑스의 황태자를 가리키는 도핀(dauphin)을 뜻하기도 했다. 당시 프랑스는 신교를 지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구교를 지지하는 예수회 입장에서는 그 그림을 반역으로 보았던 것이다. 돌고래 문양은 단지 갈릴레이의 책을 출판한 회사의 심벌마크였을 뿐인데 신교도와 구교도가 대립했던 시대적 상황으로 인해 그런 오해가 생겼을 것으로 보인다. 여하튼 갈릴레이의 책이 자신의 체면을 손상시켰다고 생각한 교황 우르바누스 8세는 그를 종교재판에 회부시키게 된다.

종교재판에 회부된 갈릴레이는 고문과 화형의 위협 속에서 자신의 주장을 철회했으며, 갈릴레이는 재판장을 나오면서 “그래도 지구는 돈다.”라고 속삭였다고 널리 알려져 있다. 하지만 교회는 70살의 병든 늙은이였던 갈릴레이를 고문하지 않았으며, 단지 암시적인 고문의 위협만 가했을 뿐이다. 고문과 화형의 위협에 의해 병들고 늙은 갈릴레이가 굴복한 것으로 보이게 만든 것은 이야기꾼들이 이 사건을 교회와 과학의 갈등으로 보이게 하기 위해 과장한 것이다. 또한 갈릴레이는 재판과정에서 자신의 주장을 스스로 철회했기 때문에 저 유명한 대사를 내뱉지 않았으며, 이런 위험한 말을 함부로 할 만큼 갈릴레이는 무모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갈릴레이는 지극히 정치적이고 실용적인 인물이었다. 그는 망원경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 듣고 직접 망원경을 만들었다. 망원경을 원로원에 제출하여 멀리서 들어오는 배를 먼저 발견하는 데 사용할 수 있다고 주장하여 많은 상금을 받았다. 또한 자신의 망원경으로 관측하여 출간한 ‘별의 메시지’라는 뜻의 라는 책을 자신의 제자인 메디치가의 코시모 2세에게 바쳤다. 이 책에서 갈릴레이는 자신이 발견한 목성의 위성 4개에 ‘메디치의 별’(물론 오늘날에는 갈릴레이의 이름이 붙여졌지만)이라고 이름 붙였으며, 화려한 문장으로 헌정의 말을 적었다. 이 헌정사를 읽어 보면 갈릴레이는 아부의 지존이라 해도 손색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갈릴레이에 대한 과장된 전설은 이뿐 아니다. 역사상 가장 유명한 과학실험인 피사의 사탑 실험도 그가 했을 가능성이 거의 없다. 갈릴레이는 물체의 무게에 상관없이 모든 물체는 동시에 낙하한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1590년 피사의 사탑에서 공개 실험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렇게 중요한 실험에 대한 기록이 갈릴레이의 저서 어디에도 남겨져 있지 않다. 다만 공개 실험이 있은 지 거의 50년이나 지난 1638년 출간된 갈릴레이의 저서 <신과학의 대화> 속에 100m 높이에서 포탄과 총알을 같이 떨어뜨리면 1스판(약 20cm) 정도로 거의 동시에 떨어진다는 기록이 전부이다. 실제 이러한 실험을 한 사람은 네덜란드의 물리학자인 사이먼 스테빈(Simon Stevin)이다. 1586년 스테빈은 10m 높이의 2층 창에서 무게가 다른 두 물체를 떨어뜨린 실험을 했다.

이 이야기는 갈릴레이를 너무나 존경했던 제자 비비아니(Vincenzo Viviani)가 스테빈의 실험을 스승의 것으로 포장해 갈릴레이의 전기 속에 넣었던 것으로 보인다. 즉 피사의 사탑 실험은 스승에 대한 지나친 존경심이 빚어낸 과장된 이야기인 것이다. 또한 진자의 등시성에 얽힌 이야기도 비비아니의 각색에 의한 것일 가능성이 크다. 비비아니에 의하면 당시 19세였던 갈릴레이는 피사대학에서 예배를 보는 것을 지루하게 느끼고 있었는데, 때마침 천장에 매달려 있던 샹들리에가 흔들렸다. 이 흔들린 샹들리에를 보고 자신의 맥박을 이용해 진자의 등시성을 알아냈다고 한다. 하지만 성당에 샹들리에가 설치된 때는 갈릴레이가 19세였던 해로부터 4년 후인 1587년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생각했던 것과 달리 갈릴레이의 신화가 무너진다고 해서 그의 업적을 폄하할 수는 없다. 오히려 이러한 일련의 사건으로부터 우리는 신화화된 영웅이 아니라 인간적인 모습에 한층 더 정을 느끼게 된다.

글 : 최원석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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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 한국은 내가 지킨다. 차세대 소총 XK-11 [제 799 호/2008-08-18]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를 보면 영화 초반에 노르망디 해변에 상륙한 미군들이 잘 구축된 독일군의 진지에서 쏘는 기관총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장면이 나온다. 항공기나 탱크 그리고 대포와 같은 화력지원이 없는 상황에서 이와 같은 전선을 돌파하려면 많은 군인의 희생은 불가피하다. 그리고 이런 상황은 현재 전장에서도 크게 다를 바 없다. 과거보다 분대나 소대에 소형 로켓 무기나 유탄 발사기와 같은 중화기가 보급되긴 했지만 그 보유 수량이 많지 않을뿐더러 소모성이 크기 때문에 아직도 이렇게 잘 구축된 진지를 돌파하려면 비행기나 기갑장비, 포병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하지만, 가까운 미래에 우리나라 군인들은 중화기의 도움이 없는 상태에서도 효과적으로 적을 제압할 수 있게 되었다. 바로 우리나라가 세계 최초로 실용화에 성공하고 일선 부대에 배치를 시작한 한국 차세대 소총인 XK-11 때문이다.

소총은 예나 지금이나 군인들의 기본 무기로 전장의 최전선에서 사용된다. 하지만, 소총의 발전과 그 운용의 패러다임은 1940년대나 현대나 크게 다르지 않다. 이는 소총이 노리쇠의 후퇴전진으로 총알을 발사하고 이때 나오는 폭발의 힘으로 탄피의 배출과 재장전이 된다는 기술적인 개념과 적을 향해 정밀 조준으로 한발의 총알을 발사한다는 운용개념이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소총의 개념 때문에 앞서 강력하게 구축된 적의 진지나 시가지에서의 소총을 통한 전투는 필연적으로 많은 사상자를 발생하게 한다. 숨어 있는 적을 공격하려면 조준사격이 필요한데 5.56~7.62mm 정도 되는 총알로 제압하기란 쉽지 않다. 이 때문에 많은 나라에서 기존 소총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기본 소총에 주·야간 정확한 사격을 할 수 있는 조준장치를 부착하고 20mm 유탄을 발사할 수 있는 기능을 부여한 이중총열복합소총(OICW-Objective Individual Combat Weapon)개발에 힘을 쏟고 있다.

OICW의 우수성은 미군에서 실시한 모의 전투에서도 증명되었다. 미국의 차세대 OICW소총을 가진 군인과 기존 M16 소총을 가진 군인의 모의 전투 결과 OICW는 무려 69:1이라는 압도적인 차이로 위력을 과시했다. 그 이유는 향상된 조준 기능과 소총 탄환보다 넓은 범위를 공격할 수 있는 20mm 유탄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개발된 OICW의 경우 무게가 8~30kg 정도여서 병사 한 명이 운용하기에는 너무 무거운것이 문제였다. 그런데 올해 7월 한국국방과학연구소에서 최신 나노기술과 특수 금속을 사용해 총의 무게를 6.1kg으로 줄여 일반 군인이 무리 없이 사용할 수 있는 차세대 소총인 XK-11을 개발했다. 이로써 보병들에게 꿈이라 말할 수 있는 차세대 소총을 한국에서 최초로 실용화하고 운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XK-11의 특징은 5.56mm 소총과 20mm 공중폭발탄 발사기를 하나로 결합시키고, 그 위에 정밀 조준 장치를 장착했다는 것이다. 특히 XK-11의 20mm 공중폭발탄은 기존 20mm 유탄이나 40mm 유탄에 비해 비교할 수도 없이 정밀하게 조준 되어 목표의 머리 위에서 폭발하여 살상력을 극대화하기 때문에 XK-11의 위력은 매우 놀랍다. 예를 들어 건물 뒤에 숨어 있는 적이나 참호 속에 있는 적의 경우 기존 소총이나 유탄발사기로는 효과적인 제압이 어려웠지만 XK-11의 경우 공중폭발탄을 정확하게 적의 머리 위에서 폭발시킬 수 있기 때문에 공중폭발탄 한발로도 적을 단번에 제압할 수 있다.

20mm 공중폭발탄은 그 자체로 위력이 크지만 정확한 조준 시스템이 적용되지 않는다면 무용지물이다. 적의 머리 바로 위에서 정확하게 폭발해야지만 공중폭발탄의 위력이 제대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XK-11의 조준장치에는 최신의 기술이 들어 있다.
XK-11의 조준장치는 야간투시와 거리측정 그리고 탄도 계산을 통한 정확한 조준점 유도가 가능하다. 최신예 전차의 사격통제장치와 동일한 기능이 소총에 달려 있는 셈이다.

이런 XK-11의 기능들이 실제로 운용될 때 어떤 식으로 적용되는지 차례대로 설명하자면 우선 XK-11을 가진 병사는 목표물을 먼저 조준하게 된다. 이때 주간이라면 상관없지만 야간이나 적이 연막탄을 터뜨리면 열 영상 야간 조준경을 통해 조준하게 된다.
조준 됨과 동시에 XK-11안에 들어 있는 컴퓨터는 레이저 거리 측정기를 통해 목표물과의 거리를 측정하고 조준위치를 정한다. 5.56mm 탄이 거의 직선에 가깝게 발사되는 반면 공중폭발탄의 경우 포물선으로 날아가기 때문에 이런 오차를 고려해야 원하는 곳에 정확하게 맞출 수 있다. 목표물의 거리와 조준위치가 계산되면 알아낸 거리를 바탕으로 공중폭발탄의 자폭거리 설정도 이루어진다. 자폭거리는 총열을 감싼 유도코일을 통해 자기장의 형태로 공중폭발탄의 신관에 전달하여 설정된다. XK-11의 공중폭발탄도 최상의 명중률을 얻기 위해 회전하면서 발사되는데 총탄의 총구초속, 단위 시간당 회전수를 토대로 원하는 거리까지의 회전수를 산출하여 그 회전수만큼 회전하면 폭파되도록 자폭거리를 설정하는 방식이다. 자기장 유도코일을 이용하여 정보를 교환하는 이러한 자기감응 방식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교통카드에서도 쓰이고 있다.

이 모든 과정은 XK-11에 내장된 컴퓨터를 통해 순식간에 이루어지게 되고 병사는 방아쇠를 당기기만 하면 장전된 20mm 공중폭발탄이 날아가 목표 상공 3~4m에서 폭발해서 최소 6m 살상반경에 파편을 흩뿌리게 된다. 이 공중폭발탄의 신관은 목표물의 성격에 따라 목표에 충돌 시 즉시 폭발하는 착발, 목표를 관통 후 약간의 시간이 지난 후 폭발하는 지연폭발로 조정할 수도 있다. 또한, 공중폭발탄은 사수의 안전을 위해 25m 이상 날아가야 폭발하므로, 이 거리 내에서는 공중폭발탄을 쓸 수 없다.

이처럼 XK-11은 현재 소총의 개념을 뛰어넘은 차세대 소총이라 말해도 부족함이 없다. 그리고 XK-11의 진정한 진가는 네트워크 중심 전쟁에서 드러난다. 네트워크 중심 전쟁이란 전투 지휘관이 스타크래프트 같은 실시간 전략시뮬레이션 게임을 하는 것처럼 스크린을 통해 휘하 부대는 물론 전장의 상황을 일목요연하게 파악하고, 가장 합리적인 명령을 내림으로서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것을 말한다. 네트워크 중심 전쟁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그 시스템 중심에 인터넷과 같은 전자 네트워크가 있어야 하며, 시스템의 최말단에는 보병 개개인이 소지한 컴퓨터와 센서, 그리고 XK-11과 같은 차세대 소총이 있어야 된다. 지휘관은 이런 기기들이 얻은 정보를 토대로 신속 정확한 지시를 내릴 수 있으며 XK-11과 같은 휴대용 보병 무기로 적을 효과적으로 제압할 수 있게 된다. XK-11이 주목받는 이유는 이 총이 단순히 ‘공중에서 터지는 총알을 쏘는 소총’이 아니라, 기존의 소총과는 패러다임부터가 다른 디지털 군대의 기본화기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쟁을 좋아하는 사람은 그 누구도 없겠지만 전쟁은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고 앞으로 우리나라에도 어떤 위협이 다가올런지 모른다. 이런 상황에서 적국보다 더 좋은 무기와 효과적인 대응체계를 가지고 있다면 전쟁의 위협은 어쩌면 조금 더 줄어들지 않을까? 비록 사람을 살상하는 무기이지만 우리나라의 평화를 위해 열악한 상황 속에서도 세계 최고 수준의 무기를 개발한 국방과학연구소에 찬사를 보낸다.

글 : 이동훈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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