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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팔트 먹는 박테리아 [제 807 호/2008-09-05]

엄마는 내가 어렸을 때부터 밤하늘을 보면서 과학 이야기를 해주시곤 했다. 엄마가 얘기해주는 과학 이야기는 정말 실감 나고 흥미진진했기 때문에 나는 얼른 밤이 오기를 기다린 적도 있다. 어느 날 엄마는 나에게 세상엔 눈으로 볼 수 없는 생물도 있다는 이야기를 말씀해 주셨다.

“요즘도 학교에서 우유 잘 먹고 있니?”
“응. 그런데 가끔 깜박하고 안 먹으면 다음 날 우유에 건더기가 생겨. 왜 그런 거야?”
“상해서 그렇단다. 바로 우유 속에 있는 세균 때문이지.”
“세균? 우유 속에? 난 못 봤는데… 막 꿈틀거려?”
“아니~ 세균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아. 그래서 미생물이라고 그러기도 해.”

“눈으로 볼 수 없는 생물?”
“그렇지. 눈으로 볼 수 없을 만큼 작은 생물.”
“어디에 있어? 지구에 있어?”
“지구에는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환경 외에도 다양한 자연환경이 존재한단다. 예를 들면 남극 기온은 영하 60도 이하로 내려가고 심해저 열수분화구 주변의 수온은 100도가 넘거든. 이렇게 춥고 뜨거운 곳에는 생명체가 살 수 없다고 생각하지만 생명이 없는 곳은 없어.”

“으아~ 생각만으로 춥고 뜨겁다! 그냥 안 춥고 안 뜨거운 곳에서 살면 안 돼?”
“그 생물들은 그들이 있는 환경이 최적이라고 느끼는 거겠지. 80도 이상 되는 고온 환경에서만 잘 자라는 초고온균 얘길 해줄까? 초고온균이 생산하는 단백질은 100℃에서도 변하지 않기 때문에 중온성 미생물이 고온에서 오염되는 단점을 극복할 수 있단다. 그러면서도 중온균이 생산하는 효소와 동일한 기능을 가지고 있어. 하지만 중온균 효소들이 변성을 일으키는 극한 환경에서 안정하기 때문에 신기한 것이지.”

“음… 좀 신기한 균이네?! 다른 종류 또 있어?
“신기하지? 세균은 원래 중성(pH 7)에서 잘 자라는 성질이 있어. 그런데 호산성균이라는 세균은 산성 환경을 좋아하고, 호염균은 알칼리성 환경을 좋아해서 소금 농도가 아주 높은 곳에서 살아.”

“잠깐! 종류가 많으니까 헷갈려~”
“이렇게 생각하면 돼. 심해저에서 서식하는 호압균의 경우, 압력을 좋아하니까 호압균이라고 부르는 거야. 이 균은 수심 6,500m에서 650기압이 되는 높은 압력을 좋아하는데, 650기압이라면 1㎠ 크기에 650㎏의 무게가 실리는 것과 같거든. 정말 대단하지? 그럼 퀴즈 하나 내볼까? 암석에서 사는 균을 뭐라고 할까?

“암석에서 사는 균? 그럼 호암석균인가?
“으하하~ 반은 맞았다. 암석 안에서 자라는 암석균이 있고, 독성물질이 있어야 사는 내독성균도 있어. 건조내성균은 생명의 필수요건이라는 물이 거의 없는 곳에서만 사는 미생물이고. 다 외우려고 하면 어려워. 이해하는 게 중요하지. 지금도 계속 이런 미생물들이 발견되고 있거든.”

“그러면 이 생물들을 다 미생물이라고 부르는 거고 세균은 안에 포함되는 거야?
“천천히 설명해줄게. 이렇게 극한 환경에서 사는 미생물의 발견이 늘어나자 미생물의 분류방법도 바뀌게 되었단다. 즉 핵막과 기관이 없다는 점에서는 세균(박테리아)과 비슷하지만 세포막의 구조나 DNA와 단백질을 합성하는 방법은 진균류(곰팡이)와 비슷해. 그래서 극한미생물을 아키아(Archaea)로 따로 분류하게 되었어. 이제 미생물에는 세균, 아키아, 진균이라는 세 개의 도메인이 있는 것이라고 보면 돼.”

“응. 세 개의 도메인이라…”
나는 밤하늘을 쳐다보면서 머릿속으로 분류해 보았다.
“새로 발견된 다른 미생물이 있는지 인터넷에서 같이 찾아볼까?”
엄마는 냉장고에서 간식을 가져오시면서 나를 컴퓨터 앞으로 부르셨다. 나는 미생물에 대해 점점 관심이 깊어졌다. 엄마는 미생물에 대한 기사를 검색하시다가 나를 향해 반갑게 소리치셨다.

“이것 봐. 미국 로스앤젤레스 도심 한복판에 있는 2만 8천 년 된 타르에서 박테리아가 발견됐대!”
“엄마. 타르가 뭐야?”
“타르란 물질을 태울 때 발생되는 모든 형태의 점액질을 지칭하는 대명사야. 목재에서 휘발성 물질을 제거하고 남은 물질을 나무 타르라고 하고 담배가 탈 때 생기는 점액물질을 담배 타르라고 하지. 그리고 석유나 석탄에서 휘발성 물질을 제거하고 남은 찌꺼기를 콜타르(Coal Tar)라고 하는데 이것이 아스팔트로서 도로포장에 사용되거든. 로스앤젤레스 도심에 있는 타르는 바로 도로포장에 쓰이는 아스팔트야. 그동안 이 거대한 타르에서 무수히 많은 동식물 화석이 발견되었단다.

“어떻게 발견한 거야? 지나가는 사람들이 발견했나?”
“하하. 도심이라고 하니까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구나. 이 중유 찌꺼기인 타르에서 거품이 일어나는 것을 몇몇 과학자들이 관찰했대. 기사에 따르면 리버사이드 캘리포니아 대학의 환경과학자 데이비트 크롤리 교수와 그 연구팀에서 박사 후 과정을 밟고 있는 한국인 김종식 박사가 함께 관찰했다고 하는구나. 연구팀이 거품의 정체를 추적한 결과, 거품은 아스팔트를 먹고사는 박테리아가 배출하는 메탄가스임이 밝혀졌지. 타르 구덩이에서 박테리아 수백 종을 발견한 거고.

“우웩, 아스팔트가 맛있을까? 그걸 먹고살게~”
“덕분에 우린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됐잖아. 이 아스팔트를 먹는 박테리아의 DNA 염기서열까지 해독하게 되었으니 말이야. 연구팀은 아스팔트를 먹는 박테리아에서 석유를 분해하는 효소 세 가지를 발견했대. 이 효소들을 이용해 토양이나 해양에 유출된 기름으로 인한 오염을 제거할 수 있어. 그리고 신약을 발명하고 바이오연료를 제조하고 석유 회수율을 높이는 등 다양한 용도로 쓸 수 있을 거야.

“음… 그렇게 사람들이 앞으로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된다면 다른 박테리아도 더 많이 발견됐으면 좋겠다!”
“맞아. 이 박테리아와 마찬가지로 다른 극한미생물들도 우리의 삶을 바꿀 수 있는 아이디어를 제공할 수 있어. 어쩌면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어딘가에 있을지도 모르지.
“엄마, 앞으로는 어떤 신기한 박테리아가 우리 앞에 나타날까? 생각만으로 가슴이 두근거린다~ 그렇지?”
“응, 나도 그래.”

글 : 이정모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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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너스 하이 [제 806 호/2008-09-03]

“내가 저 나이에 달리기에 맛 들였으면 어쩔 뻔했나? 불쌍한 청년! 나보다 최소한 20년은 더 달리고 살아야 하다니. 어쩌자고 저리 젊은 나이에 달리기를 몸에 댔단 말인가!”

시인 황인숙은 남영동 대로에서 멋들어지게 조깅하는 외국인 청년을 보고 이렇게 안타까워한다. 그녀 자신도 헬스클럽 다니느라 인생을 탕진한다는 런닝머신 매니아다. 달리기는 중독이라는 게다. 담배도, 술도, 마약도 아니고 ‘지루한’ 달리기에 중독이라니? 모르는 소리, 달리기가 바로 마약이다. 좀 달려봤다는 사람들은 안다. 달리기에 왜 중독되는지.

30분 이상 달리면 몸의 가벼워지고 머리가 맑아지면서 경쾌한 느낌이 드는데 이를 ‘러너스 하이’(runners high) 혹은 ‘러닝 하이’(running high)라고 한다. 이때에는 오래 달려도 전혀 지치지 않을 것 같고, 계속 달리고 싶은 마음이 든다고 한다. 짧게는 4분, 길면 30분 이상 지속되기도 한다. 이때의 의식 상태는 헤로인이나 모르핀 혹은 마리화나를 투약했을 때 나타나는 것과 유사하고, 때로 오르가즘에 비교된다. 주로 달리기를 예로 들지만 수영, 사이클, 야구, 럭비, 축구, 스키 등 장시간 지속되는 운동이라면 어떤 운동에서든 러너스 하이를 느낄 수 있다.

그렇다면 운동 중에 러너스 하이는 왜 오는 걸까? 과학자들이 러너스 하이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캘리포니아대 심리학자인 아놀드 J 맨델이 1979년 정신과학 논문 ‘세컨드 윈드(Second Wind)’를 발표하면서부터다. 그 뒤 러너스 하이를 경험할 수 있는 운동 시간과 강도, 방법 등에 대한 연구와 행복감의 메커니즘을 밝히려는 노력이 이어졌다.

일부 학자는 운동시에 증가하는 베타 엔돌핀의 영향이라고 말한다. 베타 엔돌핀은 우리 몸에서 생성되는 신경물질로 구조와 기능이 마약과 유사하다. 베타 엔돌핀은 운동시에 5배 이상 증가하는데, 그 효과는 일반 진통제의 수십 배에 달한다. 과학자들은 운동을 할 때 생기는 젖산 등 체내 피로물질과 관절의 통증을 감소시키기 위한 보상작용으로 그런 현상이 일어난다고 추측해왔다. 그러나 러너스 하이를 입증할 직접적인 증거가 없었고, 학자들 사이의 의견차가 커 명확한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최근 러너스 하이와 엔돌핀의 관계를 증명할 수 있는 연구 결과가 발표되었다. 뮌헨공과대학(TUM) 핵의학 헤닝 뵈커(Henning Boecker) 교수팀은 운동 중 생성되는 엔돌핀의 존재를 처음으로 증명했다. 뵈커 교수팀은 10명의 육상선수를 대상으로 2시간 장거리달리기 전후에 양전자방출 단층촬영(PET)으로 뇌를 조사했다.

교수팀은 뇌 속에서 진통물질 수용체와 결합하는 엔돌핀과 억제하는 방사성물질 18F디프레노르핀(‘18F’FDPN)을 사용했다. 뵈커 교수는 뇌 속에서 엔돌핀 생산량이 많아지면 주입한 억제제와 뇌 속의 엔돌핀이 직접 길항하기 때문에 18F디프레노르핀과 진통물질 수용체의 결합은 줄어든다.”고 설명했다. 2시간 정도 달리기 전과 후의 영상을 비교하자 18F디프레노르핀과 진통물질 수용체의 결합이 현저히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장거리를 달리면 체내 진통물질의 생산량이 증가한다는 사실이 입증된 것.

또한 이때 영향을 받은 뇌의 영역이 감정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전두엽과 변연계에 있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달리기를 한 뒤 행복감과 만족감이 높아지는 것 역시 엔돌핀과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의 뇌는 신체가 고통을 잊고 오랫동안 달리게 하기 위해서 엔돌핀을 분비하게 되는데, 도를 지나치면 이 엔돌핀이 주는 쾌감을 못 잊어 몸이 피곤하더라도 달리기를 계속 하게 되는 것이다.

한편 장거리 달리기가 우울증을 줄이는 증거를 찾는 과학자들도 있다. 대뇌에서 생성되는 모노아민 가운데 특히 노르에피네프린이 결핍되면 우울한 기분을 유발시키기 때문이다. 운동을 일정시간 지속하면 노르에피네프린의 분비가 증가하면서 우울증이 완화된다는 것이다.

통증과 우울증을 달리기로 날려버릴 수 있다니, 평소 이 증상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희소식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이 러너스 하이를 느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조금 힘겹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너무 느리거나 빠르지 않게 달려야 한다. 심장 박동수는 1분에 120회 이상은 되어야 한다. 보통은 30분 정도 달리면 느낄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초보자가 러너스 하이를 겨냥해 처음부터 무리하게 달리는 것은 금물이다. 달리는 거리와 시간을 조금씩 늘려가는 것이 중요하다.

기쁨을 느끼는 것도 좋지만 자칫 마약에 빠지는 것처럼 러너스 하이에 중독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러너스 하이를 느껴본 사람은 그 상태를 느끼고 싶어 자칫 운동 중독에 빠질 수 있다. 하루라도 달리지 않으면 불안해하거나 짜증을 내게 되고 무리하게 달리다가 인대가 손상되거나 근육이 파열되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명심해야 할 것이 있다. 지나치게 긴장하고 스트레스를 받고 있을 때 러너스 하이는 오지 않는다. 마라톤 선수들도 올림픽이나 대회 등 다른 선수들과 치열한 경쟁을 벌여야 할 때는 러너스 하이를 결코 느끼지 못한다고 한다. 러너스 하이는 여유 있는 마음으로 달리기에 몸을 맡길 때 찾아오는 매혹의 순간이다.

글 : 이소영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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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능형 방수, 생각대로 하면 되고~ [제 805 호/2008-09-01]

성서를 보면 노아는 대홍수를 피하기 위해 만든 거대한 방주에 물이 스며들지 않도록 역청(pitch)을 칠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덕분에 비가 내리는 수개월 동안에도 물을 퍼내지 않고 버틸 수 있었다. 역청에서 시작한 방수재료는 합성고무, 아크릴수지, 폴리우레탄수지 등으로 발전했고 더 완벽한 방수기능을 구현할 수 있게 되었다.

1976년 미국 고어텍스사가 라미네이트 기술을 개발하면서 방수기술은 한 단계 더 진화를 하게 된다. 인체 내에 땀은 증발시키면서도 완벽한 방수기능을 재현한 투습방수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린 것이다. 기존의 방수소재가 비옷을 입을 때처럼 후덥지근한 것이라면, 투습방수 소재는 땀을 배출하기 때문에 뽀송뽀송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투습방수 기능은 수증기의 크기(0.0004μm)와 빗방울이나 물방울의 크기(100~3,000μm)가 크게 다른 점을 이용한다. 일반적으로 폭우 때 물방울은 3,000μm, 보통 비는 2,000μm, 이슬비는 500μm, 안개는 100μm 정도의 크기를 갖고 있다. 이에 비해 수증기는 빗방울이나 물방울의 크기보다 훨씬 작은 0.0004μm의 크기를 갖고 있다. 따라서 소재의 표면에 물방울보다 작지만 수증기보다는 큰 구멍(0.2~10μm)을 무수히 많이 만들면 땀은 원활하게 배출하되 뛰어난 방수기능을 동시에 실현할 수 있다.

현재 투습방수 재질은 기술적으로는 초극세섬유를 사용해 고밀도 직물로 가공하는 방법, 견직물에 투습방수성수지를 코팅하는 방법, 미세한 다공질 막을 라미네이트(laminate : 접착)하는 방법 등이 있다. 이 중에서 코팅 방식은 무엇보다 가공비용이 저렴하다는 장점이 있다.

코팅 방식을 이용한 대표적인 것으로 일본에서 나온 엔트란트가 있다. 엔트란트는 우레탄계열의 수지 75%와 불소계 발수제 25%로 만들고 있는데 구김에 강하고 세탁을 하는데도 편한 이점을 가지고 있다. 라미네이트 방식과 비교해도 방수 방풍 성능은 엇비슷하다. 하지만 투습성이 떨어지는 단점을 갖고 있다.

라미네이트 방식는 무수히 많은 얇은 다공질 필름을 나일론 같은 소재에 접착하는 것이다. 이 방법은 생산 공정이 복잡해 직접 코팅에 비하여 제조원가가 비싼 것이 단점이다. 하지만 원단 본래의 촉감을 거의 해치지 않고 높은 수압에서도 방수가 되는 소재를 만들기 쉽다는 장점이 있다. 이 때문에 전 세계적으로 고어텍스(Goretex), 심파텍스(Sympatex) 등 고가의 투습방수원단은 대부분 라미네이트 방식을 적용하고 있다.

예컨대 고어텍스의 경우, 폴리사플루오르에틸렌(PTFE)으로 만든 고어텍스 멤브레인(GORE-TEX membrane)을 사용한 직물이다. 고어텍스 멤브레인에는 ㎠당 14억 개의 미세한 구멍이 있다. 고어텍스의 구멍 크기는 직경 0.2μm 정도이며 물방울 입자의 2만분의 1에 불과하기 때문에 외부의 비나 눈 그리고 바람을 막아준다. 반면 수증기 입자보다는 700배가 넓어 신체활동에 의해 발생한 땀 등 내부의 더운 습기는 쉽게 배출한다.

고어텍스는 화학약품에 안정적이고 피부에 부정적인 반응을 일으키지도 않는다. 화학적으로 안정하다는 의미는 다른 화학물질과 반응하여 쉽게 다른 물질로 변환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때문에 방진복이나 유전 작업복 등 기능성 옷뿐만 아니라 의료용으로 몸속에 삽입하는 인공혈관 등 보조기구, 전선의 피복제, 관 연결 틈새를 막아주는 개스킷 등으로 이용범위가 확대되고 있다. 또 뷰렛의 꼭지부분, 테프론 테이프, 비교적 저온 반응장치, 저장용기의 마개 등 과학실험실에서도 널리 애용되고 있다.

최근에는 물이나 기름을 완벽하게 차단하면서도 이들 액체를 통과시킬 수 있는 소재가 나와 관심을 끌고 있다. 미국 위스콘신 매디슨 대학의 연구팀은 폭이 400μm 정도 되는 실리콘 못을 빈틈없이 배열하여 액체를 차단하는 방수소재를 개발했다. 실리콘 못을 이용한 이 방수소재로 표면처리를 하면 액체가 표면에 물방울처럼 맺혀 있게 된다.



특히 실리콘 못 방식은 물이나 기름 외에도 다양한 종류의 액체를 모두 차단할 수 있다. 이런 특성을 이용하면 극한 상황에서의 방수 기능에 폭넓게 활용될 수 있다. 대표적인 것이 헬리콥터의 날개인 로터 블레이드다. 즉 헬기는 고도를 높일수록 로터 블레이드에 결빙이 되기 때문에 위험성이 커지는데 실리콘 못의 완벽한 방수-방유 기능을 활용하면 높은 고도에서도 헬리콥터의 안전한 운항이 가능해진다.

실리콘 못은 차단했던 액체를 다시 흘려보내는 것도 가능하다. 실리콘 못으로 차단된 상태에서 전기를 흘려주면 실리콘 못의 간격이 벌어지고 실리콘 못 사이로 액체가 흘러내리는 것이다. 이처럼 원하는 대로 방수에서 투과로 성질이 바뀌는 특성을 갖춘 데다 생산 공정이 라미네이트나 코팅 방식보다 간단하기 때문에 다양한 용도로 활용될 것으로 전망된다. 작은 칩 위에서 각종 화학실험을 수행하는 랩 온 어 칩(lab on a chip)의 소재로 활용되는 것도 그 중의 하나다. 역청에서 시작된 방수 소재의 진화는 지금도 지속되고 있다.

글 : 유상연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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