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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피의 법칙은 우연이 아니야 [제 790 호/2008-07-28]

세상일은 대부분 안 좋은 쪽으로 일어나는 경향이 있는데 이를 ‘머피의 법칙’(Murphys law)이라고 한다. 버터를 바른 면이 항상 바닥을 향해 떨어진다거나 하필 내가 선 줄이 가장 늦게 줄어든다거나 하는 것이다. 머피의 법칙은 세상을 비관적으로 바라본다는 부정적인 측면도 가지고 있으나, 다른 한편으로는 법칙이라는 말을 통해 사람들은 자신에게만 일어나는 현상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일어나고 있는 보편적인 현상이라는 사실을 깨달음으로써 다소의 위안을 얻는다.

머피의 법칙은 미공군 엔지니어였던 머피가 수행한 어느 실험 과정에서 유래된 이후, 수없이 많은 버전으로 파생되고 발전되어 왔다. 머피의 법칙은 그냥 재수 없는 현상으로 치부되기 보다는 심리적이거나 통계적으로 또는 과학적으로 설명될 수 있는 것들이 많으며 다음과 같이 세 가지 경우로 분류하여 논리적 근거를 제시할 수 있다.

첫째, 서두르고 긴장하다 보니 자신이 실수를 해서 실제로 일이 잘못될 확률이 높아지는 경우이다. 긴급한 이메일을 보내려 할 때 멀쩡하던 네트워크가 다운된다거나, 중요한 데이트를 앞두고 잘 차려 입은 옷에 음료를 쏟는다거나 하는 것이다. 머피의 법칙을 연구하던 소드(Sod)는 1000명을 대상으로 경험에 의존한 여러 가지 현상들에 관하여 설문조사를 실시하였다.

결과적으로 긴급하고, 중요하고, 복잡할수록 일이 잘못될 확률이 높아지는 것을 발견하고 이를 수식으로 표현하였다. 사람들은 일이 잘못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아는 순간, 평소와 다르게 행동하며 실수할 확률이 높아진다. 일이 잘못 되면 치명적일 수 있다고 생각하면 더욱 긴장하게 되고 정서적으로 불안하게 된다. 따라서 이러한 일들을 줄이기 위해서는 아무리 급해도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컴퓨터에게도 자신이 급하다는 사실을 절대 눈치 채게 해서는 안된다. 그럴 때일수록 태연하게 행동하고 평상심을 유지해야 한다.

둘째, 실제 확률은 50%지만 심리적 기대치가 높아서 잘못될 확률이 높게 인식되는 경우이다. 이것은 한편 인간의 선택적 기억에 기인한다. 일이 잘된 경우에 받은 좋은 기억은 금방 잊혀 지지만, 일이 잘못된 경우에 받은 안 좋은 기억은 머릿속에 오래 남는다. 또한, 다른 한편으로는 기대 섞인 비교대상의 선정에 기인한다. 예를 들어 정체된 도로에서 자신이 속한 차선이 정체가 심하다고 느끼는 것은 앞서가는 옆 차선 차량과의 비교에 의한 것으로 과학적으로 근거가 있는 얘기이다.

내차와 옆 차선의 차가 그림 1과 같이 20초를 주기로 섰다 갔다를 반복하는 경우를 생각해 보자. 두 차의 속도는 위상차를 갖고 주기적으로 변하며 평균속도는 10m/s로 동일하다. 이 때 주행거리는 속도그래프를 적분한 아래 면적에 해당된다. 아래 그래프에서 보는 바와 같이 두 차량은 동일 지점에서 시작해서 섰다 갔다를 반복하는 동안 동일한 거리를 주행하게 된다. 그러나 주행 과정을 비교해 보면, 옆차에 비하여 내차가 항상 뒤처져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내차가 앞서가는 시간은 1주기 20초 중 5초에 불과하다. 나머지 15초는 옆차가 내차 보다 앞서서 달린다. 그러니 그 차와 비교하면 내가 선택한 차선에 불만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내가 비교 대상으로 삼던 옆차 대신 그 차와 같은 차선에서 약 50m 뒤를 따라오고 있는 차를 비교 대상으로 삼는다면 상황은 거꾸로 된다. 그래프에서 가는 선으로 나타난 바와 같이 그 차는 항상 나보다 뒤에서 달리고 있다. 그 차 운전자 입장에서는 내차를 보면서 머피의 법칙을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즉 비교대상을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따라서 ‘머피의 법칙’이 될 수도 있고 ‘샐리의 법칙’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셋째, 실제 확률은 50%가 아닌데, 사람들이 50:50일 것으로 잘못 착각하는 경우이다. 이 경우도 과학적으로나 통계학적으로 설명이 가능하다. 예를 들어 태양이 동서남북 어디서든지 뜰 수 있는데 왜 하필 동쪽에서만 뜨는가 하고 불평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렇게 되기로 결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를 결정론적 문제라고 한다. 반면, 바람이 어느 방향에서 불어올 것인가 하는 것은 다소 무작위적이다. 뉴턴은 천체의 운동이나 물체의 움직임에 관한 과학적 법칙을 연구하여 자연현상을 모두 결정론적으로 설명하려고 하였다. 반면 예측이 불가능하고 무작위적인 것을 일명 ‘카오스’라고 한다. 실제의 자연현상은 결정론적인 것과 무작위적인 것이 복합되어 나타난다. 일상용어로 표현하면 우연과 필연이 공존하고 있는 것이다.

대표적인 머피의 법칙으로 돌아가서 버터 바른 빵이 식탁에서 떨어지는 예를 생각해 보자. 축구경기에서 선공을 정할 때 동전을 던지는 것과 달리 이 경우에는 앞뒷면이 결정되는 확률이 50%가 아니다. 여기에는 우리가 제대로 인지하지 않고 있는 가정과 조건이 여럿 숨어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식탁의 높이가 약 75cm이고, 빵의 크기가 약 15cm라는 가정, 지구 중력장의 크기가 9.8m/s2라는 조건, 그리고 빵과 식탁 사이의 마찰계수가 일정 범위 내에 있다거나, 주위에 공기유동이 거의 없다거나 하는 등의 가정들이 주어져 있는 것이다. 게다가 초기조건으로 버터 바른 면이 식탁위에 있을 때 항상 위를 향하고 있다는 가정도 있는 셈이다. 버터를 발라서 접시에 업어놓는 경우는 거의 없을 테니까.

이러한 조건하에서 빵이 식탁에서 떨어지도록 가해진 외력(외부에서 주어진 힘)이나 떨어지는 순간 빵과 식탁사이의 마찰력에 의하여 회전력 즉 토크가 발생된다. 이 토크에 의하여 빵은 자유낙하하면서 일정 회전각속도를 갖고 돌게 된다. 결국 바닥에 닿을 때까지 몇 바퀴를 회전할 것인가 하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물론 엎어져서 떨어진다는 것이 꼭 정확하게 180도를 회전한다는 것은 아니다. 회전각도가 90-270도 사이로 떨어지면 버터 바른 면이 바닥을 향한다.



그림 2는 빵이 떨어지는 과정을 시뮬레이션 한 결과이다. 물론 떨어지는 과정에서 주변 조건에 따라서 약간씩 교란이 일어날 수 있다. 예를 들어, 식탁이 흔들린다거나, 손으로 세게 쳐서 떨어지게 된다거나, 바람이 갑자기 분다거나 하는 등 외부 교란 변수에 따라서 회전각이 다소 바뀔 수는 있으나 270도를 넘거나 90도에 못 미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즉 우리에게 주어진 조건 (식탁의 높이, 빵의 크기, 중력의 세기 등) 하에서는 버터 바른 면이 바닥을 향하는 것은 재수 없는 우연이 아니라 그렇게 되게끔 결정되어 있는 필연인 셈이다.

머피의 법칙은 뉴턴의 법칙이나 케플러의 법칙과 같이 완전한 과학법칙의 범주에 들지는 않을지라도 심리적, 통계적 현상이 복합되어 나타나는 일종의 과학 법칙이다. 또 나에게만 일어나는 재수 없는 법칙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일어나는 보편적 법칙인 것이다.

글 : 한화택 교수(국민대학교 기계공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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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눗방울로 만든 북경 올림픽 수영경기장 [제 788 호/2008-07-23]

“엄마, 저거 꼭 새둥지 같아요!”
초등학교를 마치고 소파에 벌렁 누워 TV를 보던 주형이가 외쳤다. 다음 달에 열릴 베이징 올림픽을 다룬 프로그램에서 주 경기장에 대한 소개를 하고 있었다. 거대한 철근을 아무렇게나 포개어 놓은 듯 보이지만 불규칙한 각도 속에도 안정감이 있도록 설계했다는 걸 녀석은 알까. 건축도 과학인데.

“에게… 어떻게 비눗방울로 수영장을 만들어~”
안 그래도 요즘 건축가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워터큐브(국립수상경기센터)’가 주형이에게는 시시한가보다. 나는 그냥 지나칠 수 없겠다 싶어 아들 주형이를 위해 나 건축씨는 한 가지 제안을 했다.

“주형아 우리 나가서 비눗방울 놀이 해볼까?”
“에이 비눗방울은 금세 터져버리잖아요. 약해서 재미없어요.”
“비눗방울의 감춰진 힘을 모르는 사람들은 그렇게 말할 수도 있겠지.”
“비눗방울의 감춰진 힘이라고요?”
“그럼, 비눗방울 구조로 건물도 지었는걸.”

그제야 TV에서 눈을 돌리는 주형이에게 나 건축씨는 철사를 이리저리 구부려 정사면체 모양의 철사 틀을 만들어 내놓는다.
“자, 이 철사 틀을 비눗물에 담갔다 빼면 어떤 모양이 될까?”
“각 면에 비누막이 생기겠죠. 아닌가요?”
머리를 갸우뚱하면서 난감해하는 주형이를 보고, 껄껄 웃으며 나 건축씨는 비눗물에 구부린 철사를 담갔다가 뺀다.
“자, 정사면체 모양의 비누막 안에 또 뭔가가 만들어졌지? 이때 모든 모서리를 따라 생긴 비누막은 최소의 넓이를 가지고, 정사면체 내부에 굽어진 작은 정사면체 모양을 만들어낸단다. 이걸 벨기에 물리학자의 이름을 따서 플라토 문제(plateau’s problem)라고 하는 거야."

"플라토 아저씨가 비눗방울 구조로 건물을 만들 수 있게 했어요?”
“녀석 성마르긴, 플라토는 비눗방울의 감춰진 물리학적, 수학적 매력을 알게 해준 사람이란다. 사실 어떤 면이 만들어내는 최소면적이 어떤 것인지에 관한 문제는 이탈리아 태생의 프랑스 수학자 라그랑주(Joseph Louis Lagrange)가 제기했는데, 이를 플라토가 비눗방울 실험으로 풀었지.”

“그럼 어떻게 건축에 쓰인 거예요?”
“이후 과학자들은 비눗방울에 더욱 관심을 가졌고,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된단다. 플라토의 비눗방울 실험에서 생긴 비눗방울 선을 따라 건축을 하면 아주 가늘면서도 압축과 장력에 잘 견디는 구조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지. 최소한의 힘으로, 최소의 부피로, 최대의 강도를 지닌 구조를 만들게 되었으니 정말 신기하지? 1993년 영국의 물리학자 웨이어(Denis Weaire)와 펠란(Robert Phelan)은 어떤 공간을 최소한의 표면적으로 덮을 수 있는 가장 작은 단위 즉, 셀(cells) 구조를 만들어 냈단다. 이를 웨이어-펠란 구조(Weaire-Phelan structure)라 한단다. 그리고 이 구조를 이용해서 2008년 북경올림픽 수영장을 지었지.”

“와! 그러고 보니 수영장과 비눗방울은 정말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그렇지? 아빠도 그렇게 생각한단다. 게다가 웨이어-펠란 구조는 물 분자 구조와 유사하단다.”
“그런데 아빠! 수영장 건물 표면이 왜 저렇게 쭈글쭈글해요?”
“웨이어-펠란 구조를 탄생케 하는 근원을 제공한 것은 영국의 물리학자인 켈빈경(Lord Kelvin)이야. 그는 최소 표면적을 만들어 내는 형태를 6각형과 4각형으로 구성된 단일 형태로 제안했는데, 웨이어-펠란은 두 종류의 다른 형태의 기포가 섞이면 전체 표면적이 더 작은 구조가 만들어진다는 것을 보여주었단다.”

“어떤 모양을 섞는 건데요?”
“14면체와 12면체를 합친 건데, 14면체(마주 보는 6각형 2면, 나머지 12면은 5각형) 3쌍과 12면체 1쌍이 결합하여 하나의 기본형태가 되고, 이것을 반복하면 어떤 공간의 표면이라도 최소의 표면적을 만드는 거품막이 완성되는 거지. 너한테는 좀 어려울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좀 더 자세히 설명하자면, 이 기본 형태는 4가지의 구조와 4가지의 절점의 반복되는 패턴을 이루고 있으며, 각 절점은 물 분자 구조의 결합각인 104.5°와 유사하단다.”

“아빠, 역시 21세기는 하이브리드 시대인가 봐요?”
“요 녀석, 하이브리드는 또 언제 들어봤누. 허허허”
“목욕탕에 비누거품 만들어 줘요, 거품 놀이하게요~”
“나가서 안 놀고?”
“비눗방울 놀이는 목욕탕이 제격이죠.”하면서 벌써 주형이는 목욕탕으로 돌진하고 있다.

글 : 이재인 박사(어린이건축교실 운영위원)

※ 경기장 사진을 보시려면 여기로 가세요
☞ National Aquatics Center 1
☞ National Aquatics Center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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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컴퓨터에 부는 녹색 바람 [제 787 호/2008-07-21]

2008년 5월 26일 새벽 3시 30분, 뉴욕 주 포킵시에 있는 IBM 연구소와 뉴멕시코 주의 로스 알라모스 국립연구소에서 동시에 환호성이 터졌다. 2002년 시작된, 세계 최초의 페타플롭스(PetaFlops) 슈퍼컴퓨터 개발 프로젝트가 마침내 성공했기 때문이다. 페타(Peta)는 1015, 플롭스가 1초에 1번의 실수연산을 의미하므로 페타플롭스는 1초에 1015번의 연산, 즉 1,000조 번의 연산이 수행됨을 의미한다. 1초에 1조 번의 연산이 가능한 테라플롭스 컴퓨터가 등장한 지 11년 만에 새로운 이정표가 세워진 것이다.

미국 에너지부(DOE)의 지원으로 뉴멕시코 주의 로스 알라모스 국립 연구소에 설치된 이번 시스템의 이름은 미 남서부와 멕시코 일대에 서식하는 새의 이름을 따 로드러너(roadrunner)로 지어졌다. 땅 위를 질주하며 뱀을 잡아먹는 로드러너의 이미지는 실리콘 기판 위에서 이루어지는 고속의 컴퓨팅 과정과 일맥상통하는 바가 크다. 로드러너 시스템은 IBM에서 개발된 셀 프로세서 12,960개와 AMD의 듀얼코어 프로세서 6,948개를 함께 사용한 하이브리드 방식으로 고성능이면서 동시에 에너지 효율이 높은 것이 장점이다.

이처럼 과학자들이 초고속 슈퍼컴퓨터를 개발하기 위해서 애쓰는 이유는 무엇일까? 컴퓨터 모의실험의 정밀도를 높일 필요성이 점점 커지고 있고, 분석해야 할 데이터의 양도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계산에 필요한 정밀도를 10배 올리면 이에 필요한 계산시간은 1천 배에서 많게는 1만 배 이상으로 늘어난다. 이번에 개발된 로드러너 시스템은 기후변화, 해양 연구, 지구과학, 천체물리, 입자물리, 플라스마, 나노 과학, 재료공학, 생명공학, 단백질 동역학, 의학, 비즈니스 과정 최적화 등 다양한 문제를 푸는 데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슈퍼컴퓨터의 성능향상을 위한 치열한 경쟁이 이루어지는 한편, 이 무대의 뒤에서는 많은 전문가들의 연구가 수행되고 있다. 성능향상을 위한 새로운 CPU의 개발은 물론이고, 이들을 연결하는 방식, 데이터교환방식, 새로운 알고리즘의 개발, 새로운 프로그래밍 모델의 개발 등등. 그런데 이 중에서 가장 골치 아픈 문제는 뜻밖에도 ‘에너지 절약’이다. 슈퍼컴퓨터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적게는 수십 개에서 많게는 수십~수백만 개의 프로세서를 연결해야 한다. 2007년 IDC 보고서에 의하면, 다른 모든 문제보다도 전력과 냉각이 컴퓨터 업계의 가장 중요한 이슈로 조사되었다. 실제로 몇 년 전까지는 컴퓨터 관련 학회나 행사에서 그리드가 가장 인기 있는 용어였지만, 최근 2-3년 사이에 계산에 투입되는 에너지를 절약하자는 그린컴퓨팅(green computing)이 그리드를 능가하는 인기 용어로 떠오르는 추세다.

사실 IT 분야는 다른 산업에 비해 매우 깨끗해 보이는, 즉 환경친화적으로 보인다. 그러나 실제로 IT 산업이 환경에 미치는 악영향은 적지 않다. 생산과정에서 이미 막대한 에너지가 소모되고 사용되고 폐기물이 생성될 뿐 아니라, 이를 사용하는 과정에서도 거대한 환경비용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미국에서 쓰이는 컴퓨터와 백색가전이 사용하는 전력비용은 1년에 160억 달러에 달하는데, 이는 발전소 30개에서 생산되는 전력에 해당된다. 또 이 같은 전력 사용량은 1억 5천만 톤의 이산화탄소가 배출됨을 의미한다. 미국의 컴퓨터와 가전제품들이 차량 3천만대가 1년간 배출하는 이산화탄소와 동일한 양을 배출하고 있는 것이다.

초기에는 컴퓨터 자체를 구동하는 데 드는 전력이 대부분이었지만, 이제는 이보다도 컴퓨터 냉각과 각종 주변장치에 쓰이는 전력의 비중이 더 커진 상태다. 인터넷 검색업체인 구글의 경우, 매일 5천대의 서버를 새로 도입하고 있다. 이처럼 큰 데이터센터를 운영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전력과 냉각의 확보가 필수적이다. 그 때문에 구글은 수력발전소와 컬럼비아 강에서 가까운 곳에 새로운 데이터센터를 짓고 있다고 한다. 마이크로소프트와 야후 역시 가장 싼 가격에 전력을 얻을 수 있는 곳으로 데이터센터를 옮기고 있다.

한편 CPU의 성능 개선이 전체적인 에너지 절약에 기여하는 바가 거의 없다는 점도 지적되고 있다. 오히려 데이터통신에서의 에너지 효율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전문가들이 늘고 있다. 예를 들면, 3.0GHz의 인텔이나 AMD 프로세서의 경우, 실제 연산에는 0.03와트의 에너지밖에 소비되지 않는다. 반면에 데이터통신에는 11와트가 사용되고 있어서, 실제 계산의 경우보다 3~400배 많은 에너지를 사용하고 있다. 데이터 컨트롤러가 많은 전력을 사용하면서도 5%의 시간에만 실제 데이터 전송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도 이 같은 비효율의 한 원인이다.

이외에도 전문가들은 컴퓨터 운용에 필요한 에너지를 절약하기 위해 다양한 제안을 내놓고 있다. 전혀 새로운 패러다임의 CPU와 컴퓨터를 제작해야 한다는 주장은 물론이고, 인내력을 좀 키워 컴퓨터를 재활용해가면서 가능한 한 오래 사용하자는 주장도 있다. 컴퓨터와 태양전지를 투명하고 얇은 필름 형태로 제작하여 건물의 외벽을 둘러싸자는 기발한 제안도 있다. 실제로 이런 장치가 가능하다면, 200미터 높이의 건물 1채가 IBM에서 제작되는 슈퍼컴퓨터 BlueGene/L 1대를 구동시킬 수 있다고 한다. 이보다 더 엉뚱한 제안으로는 슈퍼컴퓨팅센터를 추운 극지방으로 옮겨서 추가적인 에너지를 사용하지 않고서 냉각문제를 자연스럽게 해결하자는 것, 그리고 컴퓨터에서 나오는 열을 난방 등에 재활용하자는 제안 등이 있다.

슈퍼컴퓨팅에 환경적 요소를 고려해야 한다는 녹색열풍이 일순간의 유행으로 그칠 것 같지는 않다. 페타를 넘어서 2019년으로 예상되는 엑사컴퓨팅이 현실화되기 위해서는 성능과 경제성, 환경을 모두 고려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등장이 필요하다는 데에 전문가들은 입을 모으고 있기 때문이다.

글 : 이식 박사(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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