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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를 배운 사람은 가방끈이 짧다 [제 783 호/2008-07-11]

가방끈은 짧아야 좋다.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의아해하는 분들이 있을 것이다. 가방끈이 짧다는 건 학벌이 낮다는 관용표현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선 그 얘기를 말하는 게 아니다. 가방끈을 짧게 하면 무거운 책가방을 가볍게 들 수 있다. 그리고 군인들이나 등산가들은 배낭을 가볍게 하기 위해 모포와 같이 가벼운 것을 배낭 아래에 두고 무거운 것은 위쪽에 둔다. 그렇다면 가방끈을 짧게 하는 것이나 무거운 물건을 위쪽에 두는 것은 그 반대 경우와 어떤 차이가 있을까?

가방끈을 짧게 한다고 해서 가방의 무게가 가벼워지는 것은 아니다. 또한 배낭 속에 물건을 어떻게 배치하건 배낭의 무게가 변하는 것도 아니다. 가방끈과 물건의 배치는 질량에 영향을 주는 것은 아니며, 질량이 같다면 작용하는 중력의 크기도 같다. 하지만 어깨에 작용하는 힘의 크기는 가방끈의 길이와 배낭 속 물건의 위치에 따라 달라진다. 가방끈은 어깨를 심하게 조이지 않는 한 가방이 등에 밀착되게 짧게 매는 것이 좋고, 배낭은 무거운 물건이 위쪽이나 등쪽이 붙도록 배치하는 것이 좋다. 이렇게 하면 가방의 질량에는 변함이 없지만 가방을 메고 다니기 한결 쉬워진다. 흔히 끈을 짧게 하는 것을 간단히 지레의 원리로 설명할 수 있다.

사람을 비롯해 지상의 모든 물체는 쓰러지지 않고 안정된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무게 중심의 수직선이 발 사이에 위치해야 한다. 사람의 경우 무게 중심은 발바닥으로부터 약 58%인 배꼽 근처에 있는데, 이 지점의 수직선이 발 사이에 위치해야만 쓰러지지 않고 서 있을 수 있게 된다. 따라서 발을 벌리고 서게 되면 발 사이의 면적이 증가하기 때문에 붙이고 서 있는 것보다 안정되게 되며, 이러한 이유로 네발 동물이 인간보다 잘 넘어지지 않는다.

임산부나 비만인 사람과 같이 배가 많이 나온 경우 무게 중심이 앞쪽으로 쏠리게 되어 쓰러지지 않기 위해 몸을 뒤쪽으로 젖히는 자세를 하게 되어 허리에 부담을 주게 된다. 가방이나 배낭을 멜 때도 마찬가지로 무게 중심이 변하게 되고, 쓰러지지 않기 위해 몸을 앞으로 약간 숙이게 된다. 이때 가방이 무게 중심보다 높은 위치에 있을 때는 허리를 조금 숙이는 것으로 새로운 안정된 자세를 유지할 수 있다. 즉 허리를 조금 숙이는 것만으로 새로운 무게 중심의 수직선을 발 사이에 오게 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가방의 위치가 낮을 때는 어깨가 감당해야 하는 가방의 무게가 증가하게 된다.

가방의 위치가 위쪽일 때는 허리가 가방 무게의 일부를 바로 다리로 전달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어깨에 부담을 줄여주는 역할을 한다. 가방이 무게 중심선의 수직선상에 있어 가방의 무게가 바로 다리로 전달되는 것이다. 하지만 가방의 위치가 허리보다 아래에 있을 경우에는 가방 무게의 대부분이 어깨에 걸리기 때문에 어깨에는 더 큰 힘이 걸리게 된다. 또한 허리를 조금 구부리기 위해서는 엉덩이를 뒤로 조금 내밀게 되는데, 이때 가방이 엉덩이 부근에 있다면 가방은 엉덩이를 밀어 넣는 방향으로 힘을 작용하게 되어 결국 근육이 감당해야 할 힘의 크기가 증가하게 된다. 극단적으로 생각해서 가방이 엉덩이 아래까지 내려올 정도로 길다면 가방의 무게는 끈을 통해서 고스란히 어깨에 전달된다.

가방이 엉덩이 위에 있게 되면 가방이 진동하는 문제도 발생한다. 걸어가면서 좌우로 엉덩이가 움직일 때마다 가방이 흔들리기 때문에 어깨에 지속적으로 흔들림이 전달된다. 가방을 흔들릴 때 발생하는 역학적 에너지는 결국 사람이 엉덩이를 통해 가방에 일을 해주었기 때문에 생겨난 것으로 이만큼의 에너지 낭비가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가방을 메는 것과 마찬가지로 한쪽 발을 들고 외발로 서는 경우 무게 중심의 수직선을 한쪽 발아래에 두기 위해 상체를 발을 든 쪽과 반대쪽으로 구부리게 된다. 또한 한쪽 손에 물건을 들고 있는 경우에도 이와 마찬가지로 허리를 구부리게 된다. 따라서 물건을 한쪽에 드는 것보다는 양쪽에 나누어 쥐는 것이 팔에도 무리를 적게 줄 뿐 아니라 허리에 부담도 들어주게 된다. 이러한 이유로 팔을 한쪽 잃어버린 사람의 경우에 무게 중심을 맞추기 위해 원래 팔 무게와 비슷한 인공팔을 착용하게 된다. 그렇지 않은 경우 지속적으로 허리 근육을 긴장시켜 허리 통증으로 이어지거나 심하면 척추가 뒤틀리는 경우도 발생하기 때문이다.

가방을 바른 자세로 메는 것뿐 아니라 물건을 바른 자세로 드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무릎을 구부리지 않고 허리를 60° 정도 구부린 채로 20kgf의 물체를 들어 올리게 되면 요추에는 300kgf 이상의 힘이 걸리게 된다. 허리에 이렇게 큰 힘이 걸리는 것도 바로 지레의 원리에 의한 것이다. 요추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힘이 작용할 경우 힘점이 받침점에서 멀수록 더 큰 힘이 작용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큰 힘이 작용하게 된다. 따라서 물건은 허리로 들어 올리는 것이 아니라 무릎을 구부려 들어 올려야 하는 것이다.

한때 가방을 길게 메는 것이 유행했던 적이 있다. 하지만 직접 체험을 해보면 가방끈을 길게 메는 것보다 짧게 메는 것이 훨씬 가볍다. 패션이나 유행도 좋지만 이왕이면 과학적 원리를 이용해 편리한 생활을 누리는 게 어떨까.

글 : 최원석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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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만달러 종이비행기 [제 781 호/2008-07-07]

종이비행기를 우주에서 날리면 어떻게 될까? 우리가 늘 보던 것처럼 종이비행기는 너울거리며 잘 날아갈 수 있을까?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종이비행기는 공기가 없는 우주공간에서는 날아갈 수 없다. 종이비행기는 공간을 채우고 있는 기체를 미끄러지며 비행하기 때문에 기체가 없는 우주공간에서 이러한 비행은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 동경대학교 항공우주공학과 스즈키 신지 교수는 우주정거장에서 종이비행기를 날려 지구로 귀환하도록 하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이 연구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진다면 우주선을 더 가볍게 만들 수 있는 기본적 연구 자료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스즈키 교수의 연구에 대하여 일본항공우주개발연구소(Japan Aerospace Exploration Agency)는 올해 미화 30만 달러를 연구비로 제공하기로 결정하였으며 미국 NASA의 허가가 있으면 2008년 안에 일본인 우주인이 우주정거장을 방문할 때 종이비행기를 날리려고 계획하고 있다.

스즈키 교수가 진행하고 있는 연구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고도 400km에서 음속의 20배(마하 20)의 속도로 궤도를 도는 우주정거장에서 우주인이 우주유영을 하는 동안 종이비행기를 던지면 지구 중력에 이끌려 비행기가 지구로 재진입하기 시작한다. 이때 종이비행기의 형태는 일반 우주선보다 공기저항을 많이 받기 때문에 음속의 20배의 속도로 지구 대기권에 돌입하더라도 지상 100km 정도의 고도에서 속도가 음속의 7배까지 감속된다. 이 과정에서 종이비행기는 대략 200℃ 정도의 열을 받게 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따라서 종이비행기를 단열 재질로 특수 코팅하여 이 온도에서 타지 않도록 한다면 종이비행기가 생존하여 지구로 돌아올 가능성이 매우 커진다.

난관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불에 타지 않고 무사히 지구권 안으로 진입한다고 하여도 지구 상공에는 예측하지 못한 기류의 변화와 여러 가지 기상요인 때문에 비행기의 착륙지점을 예측하여 종이비행기를 회수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잘못하면 히말라야 산맥의 에베레스트 산 정상이나 태평양 한가운데 있는 바다에 내릴 가능성도 있다. 스즈키 교수는 종이비행기에 여러 종류의 언어로 평화의 메시지와 회수를 부탁하는 말을 적어 놓아 회수 가능성을 높이려 하고 있다.

우리는 얼마 전 한국인 최초 우주인 이소연 양이 우주정거장에서 지구로 귀환할 때 매우 큰 어려움이 있었던 것을 기억한다. 소유즈 캡슐로 우주에서 귀환할 때 발생했던 탄도비행 재진입도 자세히 알고 보면 종이비행기 연구에서 해결하여야 하는 문제와 동일하다. 우주선이 지구로 재진입할 때 대략 음속 20배 정도의 속도를 갖는다. 이때 공기의 온도는 고도 100km에서 영하 80℃ 정도이다. 그러나 우주선에 부딪히는 초고속 공기의 운동에너지가 모두 열로 변환되는 공력가열(aerodynamic heating) 현상 때문에 우주선 표면의 온도는 2,000℃ 이상의 고온으로 변한다. 이 온도에서는 공기 분자는 해리되어 전자 막을 형성하기 때문에 전파가 통과하지 못하며 이런 이유로 지상과의 교신이 불가능해 진다.



우주선을 보호하기 위해 고온의 열을 우주선 안으로 전달되는 것을 차단하며 견딜 수 있는 특수재질의 단열 타일을 사용한다. 보통 단열 타일은 기화할 때 열을 흡수하기 때문에 특별한 냉각장치를 사용하지 않아도 표면에서 형성되는 고온의 열을 흡수하여 우주선이 견딜 수 있는 온도를 유지하도록 되어 있다. 그런데 이소연양이 귀환할 때는 원래 계획된 비행궤적보다 좀 더 급한 각도를 이루며 대기권으로 진입했기 때문에 진입 속도가 훨씬 빨라졌고 따라서 공력가열에 의한 온도도 더 높았을 것으로 보인다. 이런 경우 우주선을 설계할 때 예상했던 온도보다 훨씬 더 높았다면 우주선은 모두 불타버렸을 것이다. 그림 1은 우주왕복선이 대기권 재진입 할 때 나타나는 공력가열을 그린 가상도이다. 우주왕복선의 밑바닥은 내열타일로 덮여 있으며 착륙 후 다시 새것으로 교체한다.

이번 연구에서 사용하는 종이비행기도 대기권으로 재진입할 때 공력 가열이 발생하므로 온도가 얼마나 상승할 것인지에 관한 예측과 적절한 대책이 필요할 것이다. 스즈키 교수는 지난 1월에 길이 7cm 축소형 종이비행기를 초음속 풍동(supersonic wind tunnel)에 장착하여 음속 7배의 속도로 공기를 10초 동안 통과시키는 실험을 진행하였다. 이 실험에서 공력 가열에 의한 최고 온도는 대략 200~300℃ 정도임을 확인하였으며 특수 단열재로 코팅된 종이비행기는 불에 타지 않았다. 그러나 앞서 지적한 것처럼 종이비행기가 대기권으로 들어오는 각도가 예상보다 큰 경우에는 비행기가 불타버릴 가능성이 있다. 이런 우려에 대하여 스즈키 교수는 “과학이란 시도하는 그 자체만으로 이미 많은 교훈을 얻는다.”라고 연구에 자신을 나타냈다. 그림 2는 초음속 풍동 실험에 사용된 종이비행기가 장착된 모습이다.

실제 종이비행기는 비행에서 만날 수 있는 가혹한 환경을 고려하여 일반 종이가 아니라 사탕수수 나무의 섬유로 만들며 고온 환경, 물 그리고 혹독한 바람에도 견딜 수 있게 특수 코팅을 하게 된다. 실제 제작되는 비행기의 크기는 20cm x 30cm 정도로 우주왕복선 모양을 모방하였고 무게는 30g이다.

많은 과학자들은 이번 시도가 매우 참신한 아이디어임에도 불구하고 종이비행기가 지구 표면 어디에 착륙하는지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과학적 탐구를 진행하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스즈키 교수도 이점을 염려하여 초소형 전파 추적장치를 장착한 종이비행기를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구의 71%가 물로 덮여 있기 때문에 육지로 착륙할 확률은 29%밖에 되지 않지만, 어느 날 아침 출근하는 차량으로 꽉 막힌 도로 위에 종이비행기가 살랑살랑 내리면 사고 위험을 무릅쓰고 차를 세우고 비행기를 잡기 위해 내려야 할지, 아니면 그냥 무시하고 지나야 할지 고민이 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세상 모든 일이 확률로만 설명되지 않듯이 스즈키 교수의 간절한 마음이 아주 크다면, 혹시 그 집 앞에 종이비행기가 착륙할 수도 있지 않을까. 과학적 연구에도 신의 가호가 필요한 부분이 있는 듯하다.

글 : 이창진 교수(건국대 항공우주공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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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요 속 동물들의 진실 찾기 2탄 [제 780 호/2008-07-04]

아, 글쎄. 나한테 토끼 같은 아들딸이 하나씩 있는데, 어느 날 갑자기 뛰어 들어오면서 묻기를, 산토끼는 알밤을 어디에 담아서 오냐고 하는 거야. 별안간 무슨 말인지 싶어 자초지종을 물어보니까 그 귀여운 입으로 종알종알 산토끼 동요를 부르더라구. 난 아차 싶었지! 명색이 수의사인데 깜박하고 지나칠 뻔했구나! 무슨 얘기냐 하면~

산토끼 노래를 불러봐. “산토끼 토끼야 어디를 가느냐? (중략) 산 고개고개를 나 홀로 넘어서, 토실토실 알밤을 주어서 올 테야.”라고 하잖아. 이 노래에서, 토끼가 어떻게 밤톨을 주워 올 수 있는지 정말 의문이 가더라구. 다람쥐나 청설모 그리고 원숭이라면 입안에 먹이주머니(협낭)가 있어 얼마든지 넣어 올 테지만 토끼는 그것이 있는 것도 아니거든. 그렇다고 캥거루처럼 새끼주머니(육아낭)를 가진 것도 아니고. 그것참!

토끼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동요 중에서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건 또 있어. “새벽에 토끼가 눈 비비고 일어나, 세수하러 왔다가 물만 먹고 가지요.” 상식적으로 그 토끼는 분명히 산토끼일 텐데, 산토끼라면 보통 야행성 동물로 분류해. 그러면 혹시 세상을 거꾸로 사는 특별한 얼리버드형 혹은 주행성인 신종 산토끼라도 발견하였을까?

내가 너무 예민하게 반응한 건가 싶지만, 같이 한번 생각해보면 의외로 이런 동요가 많더라니까. 우리들이 설날만 되면 부르는 노래도 그래. “까치 까치설날은 어저께고요. 우리 우리설날은 오늘이래요.” 이 노래 알지? 그런데 왜 까치의 설날은 어저께일까? 궁금해서 찾아보니 몇 가지 설이 있더군. 어느 역사학자는 신라 소지왕 때 까치가 왕의 목숨을 구했다는 설화에서 유래했다고 하고, 어느 국어학자는 옛날에 까치설이라는 말이 작은 설을 가리켰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주장하는데… 그것도 속 시원치 않단 말이야. 혹시 까치가 겨울을 나기 위해 우리보다 일찍 설빔으로 갈아입는 것(깃갈이)을 보고 그런 가사를 지어내지 않았는지.

어릴 적 술래잡기를 하며 불렀던 동요 기억나? 술래가 된 한 친구가 담에 기대앉으면 다른 친구들은 주위에 둘러서서 “여우야 여우야 뭐하니~ 밥 먹는다. 무슨 반찬 개구리 반찬, 죽었니, 살았니?”를 부르잖아. 그러다가 술래가 살았다고 외치면서 아이들을 잡고, 또 그 아이가 술래가 되는 놀이 말이야. 그럼 왜 여우의 밥상에 하필 개구리가 등장할까? 사실 여우는 잡식동물이라 개구리를 비롯해서 쥐나 꿩을 잡아먹지만 유독 개구리를 좋아하진 않거든. 일본에서 유래한 놀잇말이라고 하는데 그럼 일본 여우는 특별히 개구리를 잘 먹나? 정말 알쏭달쏭해.

개구리 얘기가 나와서 하는 말인데, “개굴개굴 개구리 노래를 한다. 아들, 손자, 며느리 다 모여서…”라는 노래 들어 봤지? 그런데 개구리는 무리를 지어서 생활하지도 않고, 또 수컷 개구리만 운다는데, 웬 며느리까지 울고 난리법석을 피울까? 정말이라면 진짜 해외토픽감인데.

아이들과 즐겁게 부르던 동요들이 과학적 사실에 근거하고 있진 않지만 문학은 과학을 뛰어넘어 그 자체로서도 예술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 나름대로 과학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면 좋겠지만… 음, 헷갈린다 헷갈려.

글 : 최종욱 수의사(광주우치동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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