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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들의 진실게임 - 그 법칙은 내꺼야! [제 822 호/2008-10-10]

이곳은 과학수사대입니다. 저 과학탐정은 과학사에 여러 억울한 일들을 바로잡겠다는 각오로 오늘도 열심히 수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억울한 일을 당한 과학계의 여러 분이 저를 찾아오시지요. 어찌나 억울한 일을 당하신 분들이 많은지 잠시도 쉴 틈이 없답니다.

“똑똑”

“아, 또 오셨군요. 이제 상담을 시작해야겠습니다. 그럼 이만.”

“내 이름은 찰스 휘트스톤(Charles Wheatstone)이라오.”

“아~ 휘트스톤 경이라면 영국의 물리학자가 아니십니까?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흠흠. 과학을 좀 아는 친구로군. 그렇다면 얘기하기가 쉽겠어.”

“워낙 유명하신 분이니까요. 전기학이론 ‘휘트스톤 브리지’의 발명가이시고, 3차원 입체 영상을 관측하는 데 쓰이는 장치를 개발하셨죠. 그야말로 과학자로 발명가로 종횡무진 공이 많으시니까요.”

“으흠, 내가 온 것도 그 때문인데. 내가 좀 욕심쟁이로 비칠까 걱정이 되긴 하네만, 그래도 잘못된 것은 바로잡아야지 싶어서. 자네 혹시 플레이페어 암호(playfair cipher)라고 아는가?”

“영화 ‘내셔널 트레저:비밀의 책’에 나오는 바로 그 암호 기법이 아닙니까? 그건 왜요?”

“실은 그걸 내가 발명했다네. 1854년의 일이지. 날짜도 똑똑히 기억하고 있네. 1854년 3월26일이었지. 그런데 어이없게도 이름은 플레이페어 경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어. 이름을 바로 잡을 방법이 없겠나?”

“그런데 어쩌다 플레이페어 경의 이름이 붙게 된 겁니까?”

“내 암호법은 너무 복잡하다는 이유로 사용되지 않았네. 2차 보어전쟁이나 세계 1차 대전에서 이 암호가 널리 쓰이게 된 것은 플레이페어 경의 공일세. 이상한 것은 플레이페어가 이 암호법을 공표했을 때, 원래 내가 발명했다고 밝혔는데도 이름은 플레이페어 암호가 되었어. 참 이해할 수 없는 일이네.”

“참 이상하고, 애석한 일이네요. 하지만 플레이페어 암호를 휘트스톤 경이 만들었다는 진실만큼은 세상이 알고 있으니, 이름이 그렇게 된 것은 너그러운 마음으로 이해해주셔야 하지 않을까요? 사실 이 과학사의 세계에선 휘트스톤 경보다 훨씬 억울한 일을 당한 과학자도 많답니다.”

그렇다. 자신이 이룩한 업적에 본인의 이름을 걸지 못하고 사라져간 과학자들이 얼마나 많은가? 자신의 과적인 업적에 스스로의 이름을 붙이는 것은 과학자가 영원한 생명을 얻는 방법이다. 하지만 과학법칙의 이름이 처음 그 법칙을 발견한 사람의 이름으로 붙여지지 않는 경우는 너무나 많다. 심지어 시카고대학의 통계학 교수인 스티글러는 ‘어떤 과학상의 발견도 원래의 발견자 이름을 따서 명명되지 않는다.’라고 천명했다. 바로 스티글러의 명명법칙(Stigler’s law of eponymy)이다.

가우스분포라고 불리는 정규분포는 1733년 드무아브르가 처음으로 발표했고, 1812년 라플라스가 그 결과를 확장해서 발표했다. 물론 가우스도 이 법칙에 공헌한 바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는 실험 오차가 정규분포를 따른다는 가정하에 최소제곱법의 정합성을 증명해냈다. 하지만 그것은 드무아브르의 첫 발표가 있고 나서도 한참 뒤인 1809년의 일이다.

예는 이뿐이 아니다. 식중독균인 살모넬라 엔테리카는 1885년에 발견되었다. 이 박테리아의 이름은 발견된 실험실을 운영하던 다니엘 엘머 살몬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는데, 실제로 그는 이 발견에 기여한 것이 없다. 실제 발견자는 티오발트 스미스라는 젊은 연구원이었다. 더 유명한 과학자에게 덜 알려진 학자의 공까지 몰려가는 현상이 벌어진 것이다.

더 나쁜 경우도 있다. 게하르트 아르마우어 한센은 1873년 박테리아를 발견했다. 나병이라 불리던 한센병의 원인이 되는 박테리아였다. 그는 하지만 이 박테리아를 배양하거나 실제로 나병과 어떻게 연관되는지는 입증하지 못했다. 한센은 환자들로부터 채취한 많은 샘플을 알베르트 네이서에게 주었는데 네이서는 이 박테리아에 대한 생체 염색을 수행해 1880년 나병의 원인을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한센은 이 소식을 듣고 자신이 1870년 이후 수행한 연구에 대한 긴 논문을 발표했다. 결국 학계는 한센의 공로를 인정하고 네이서는 비난을 받게 되었다.

19세기 말의 수학자이자 천문학자인 사이먼 뉴컴은 작은 숫자로 시작하는 숫자들이 9나 8로 시작하는 숫자들보다 자주 나타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실생활에서 사용되는 숫자들에게 각 숫자가 첫 자리에 나오는 빈도를 계산할 수 있는 수학적 법칙을 만들었다. 이 논문은 1881년에 발표되었다. 이로부터 무려 57년 뒤에 물리학자 프랭크 벤포드가 첫 자리 숫자의 특이한 빈도 분포에 대해 발표했다. 벤포드는 뉴컴의 논문은 알지 못했다고 한다. 최초의 발견자는 뉴컴이었지만, 법칙은 벤포드의 이름을 따서 만들어졌다.

이처럼 과학 법칙에 최초의 발견자가 아니라, 그 발견의 가치를 높인 후대의 과학자의 이름을 붙이는 경우가 빈번하다. 최초의 발견이 있은 지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 이름이 붙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동시대에 명명되더라도 더 유명하고 지위가 높아서 눈에 잘 띄는 사람의 이름을 따는 경우가 많다. 전구의 발명가는 에디슨이라고 알려졌지만 실은 에디슨이 전구를 발명하기 1년 전에 영국의 물리학자 조셉 윌슨 스완이 최초의 전구를 발명했다. 에디슨은 상업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전구를 발명했다.

“과학탐정, 자네 얘길 듣고 보니 연구 성과에 자기 이름을 걸지 못하는 과학자가 한둘이 아니겠군. 앞으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할 방법이 있겠는가?”

“하하. 어려운 일입니다. 사실 비슷한 시기에 유사한 연구 결과가 쏟아져 어떤 사람이 최초의 발견, 발명자인지를 구분하기 어려운 경우도 많습니다. 다윈의 ‘종의 기원’으로 널리 알려졌지만, 적자생존의 개념을 최초로 발표한 논문은 종의 기원이 나오기 1년 전 1858년 러셀 월러스가 발표한 논문이었습니다. 표절이라는 설도 있지만, 동시에 연구가 진행되었을 가능성도 있지요. 열역학 제1법칙에 해당하는 에너지 보존법칙 역시 로베르트 마이어, 헬름홀츠, 제임스 줄 등에 의해 1840년대에 동시다발적으로 발견되었습니다. 이렇게 비슷한 시기에 유사한 발표가 있으면 발견자의 이름을 따서 공평하게 법칙의 이름을 정하기란 어려워집니다.”

“오호, 그런 경우는 법칙에 사람 이름을 넣을 수가 없겠군. 마이어-헬름홀츠-줄 에너지 보존법칙은 너무 길어서 곤란하겠지.”

“네, 게다가 과학적인 발견은 아무도 그 가치를 알아보지 못하고 오랜 시간을 묻혀 있는 경우가 많지요. 아시다시피 멘델의 유전학 연구는 발표된 지 34년이 지난 뒤에야 그 가치를 인정받았습니다. 후대에 법칙의 이름이 정해질 경우 원래의 최초의 발견자가 누구였는지를 꼼꼼하게 따져보지 않으면 잘못된 이름을 붙이기 십상이지요. 누구든 이름을 정하는 사람은 인류의 역사와 함께 갈 과학사의 발견들이니만큼 신중하고 또 신중하게 이름을 붙이길 빌 수밖에요.”

글 : 이소영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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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과 함께 음악을 마셔요 [제 821 호/2008-10-08]

춘추전국시대의 일화다. 제나라 위왕이 순우곤의 업적을 치하하는 주연에서 그의 주량이 얼마나 되는지를 물었다.

“그대는 얼마나 마시면 취하는가?”
“신은 한 되를 마셔도 취하옵고 한 말을 마셔도 취하나이다.”
“허, 한 되를 마셔도 취하는 사람이 어찌 한 말을 마실 수 있단 말인가?”
“예, 경우에 따라 주량이 달라진다는 뜻이옵니다.”

이렇게 답한 신하 순우곤은 고관대작들이 지켜보는 어려운 자리나 나이 드신 근엄한 친척들이 모인 엄숙한 자리라면 두렵고 어려워 한두 되의 술에도 취하지만, 옛 벗을 만나 회포를 풀면서 마신다면 대여섯 되까지는 마실 수 있다고 아뢴다. 또 집 안에 등불이 꺼질 무렵 안주인이 손님들을 돌려보낸 뒤 옅은 속적삼의 옷깃을 풀어헤칠 때 색정적인 향내가 감돈다면 그때는 한 말이라도 마실 수 있다고 순우곤은 위왕에게 솔직히 고백을 한다.

이렇게 술은 분위기와 마시는 상대에 따라 취하는 정도와 흥이 다르지 않나 싶다. 그뿐만 아니다. 술집의 음악 소리의 크기에 따라서도 마시는 술의 양이 달라진다. 언뜻 보면 둘의 상관관계가 그리 있어 보이지 않을 듯하지만, 보이는 것만 믿는 것은 금물. 이들의 관계를 자세히 파고들어가 보면 나름대로 함수관계가 존재한다. 술집의 음악 소리가 클수록 혹은 빠를수록 사람들이 술을 더 빨리, 더 많이 마신다고 한다. 술집들이 마주 보고 앉은 이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을 정도로 음악 소리를 높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프랑스 남 브르타뉴-쉬드대학 행동과학과 니콜라스 게강 교수팀은 술집의 음악 소리가 클수록 손님은 많은 양의 맥주를 마시며, 과음할 위험이 더 커진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교수팀은 3주에 걸쳐 토요일 밤, 젊은이들에게 인기가 있는 술집 두 곳을 방문하여 틀어주는 음악의 음량 크기를 조절해 가면서 사람들의 행동을 관찰하고, 생맥주(250㎖)를 마시는 데 걸리는 시간과 맥주 주문 양을 조사하여, 음악 소리가 큰 곳에서는 많은 양의 술을 급하게 마신다는 것을 밝혀냈다. 음악을 크게 틀어놓은 술집의 손님들이 술을 더 빨리 마시고, 벌컥벌컥 마신다는 것이다.

교수팀은 18~25세 남성 40명을 두 그룹으로 나눠 한 그룹은 ‘상당히 시끄러운’ 음악(88dB)이 나오는 술집에서 맥주를 마시게 하고, 다른 한 그룹은 ‘보통 크기’의 음악(72dB)이 나오는 술집에서 맥주를 마시게 했다. 그리고 두 그룹이 맥주를 마시는 양과 속도가 얼마나 다른지 살폈다. 이들의 관찰 결과, ‘음악을 크게 틀면 술 마시는 양과 속도가 늘어난다.’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구체적으로 시끄러운 음악이 나오는 술집에 있던 사람들의 경우 평균 3.4잔의 맥주를 마신 반면, 시끄럽지 않은 음악이 나오는 술집에 있던 사람들은 평균 2.6잔의 맥주를 마셨다. 또 시끄럽지 않은 음악이 나올 땐 맥주 1잔을 마시는 데 14.5분의 시간이 걸렸으나, 시끄러운 음악이 나올 땐 11.5분이 걸려 3분가량 빨라졌다.

큰 음악 소리가 알코올 소비를 늘리는 이유는 분명치 않지만, 적당히 시끄러운 음악 소리는 술안주와 같은 효과가 있는 것 같다. 게강 교수는 맥주 한 잔 마시면서 자기가 좋아하는 노래가 나오면 흥얼흥얼 조금씩 따라 부르기도 해 깨어 있게 되고, 시끄러운 음악 소리 때문에 각성되어 술에 잘 취하지도 않고, 함께 있는 친구들과 의사소통이 잘 안 되어서 술을 더 많이 마시게 되는 것으로 보고 있다.

또 음악을 틀면 사람들이 그 술집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나기 때문에 맥주병으로 손이 더 갈 수밖에 없을 게다. 한마디로 시끄러운 음악 소리가 사람의 음주 조절능력을 무디게 한다. 따라서 호프집의 음악이 크면 맥주 판매량이 그만큼 높아지는 셈이다. 그러므로 과음을 피해야 한다면 조용한 술집에 가는 것이 좋다.

이처럼 음악은 술의 양을 더 마시게도 할 뿐만 아니라, 음악은 또 와인의 맛을 60%까지 더 높여 주기도 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와인과 음악 사이에도 궁합이 있어서 와인을 마실 때 듣는 음악에 따라 와인 맛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 영국 해리엇-와트 대학의 에이드리언 노스 교수팀은 음악과 와인 맛의 상관관계에 대해 연구를 하여, 음악이 와인의 맛에 영향을 준다고 밝혔다.

노스 교수팀은 250명의 성인을 대상으로 각자 다른 방에서 네 가지 종류의 음악을 들으면서 와인을 마시게 한 뒤 맛을 평가하는 실험을 했다. 그 결과 사람들은 특정 음악을 들었을 때 해당 와인의 품질을 높게 평가했다. 노스 교수는 음악을 들으면서 와인을 마시게 되면 음악이 뇌의 특정한 부분들을 자극해 다른 감각들을 인식하는 데 영향을 주기 때문에 와인의 맛을 다르게 느끼게 된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어떤 와인과 어떤 음악이 궁합이 잘 맞는 것일까.

어떤 와인의 경우, 힘차고 무거운 음악을 들으면서 마실 때가 그렇지 않을 때보다 60% 이상 더 강렬하고 감칠맛을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테면 카베르네 소비뇽 와인은 웅장한 클래식 음악, 샤르도네 와인은 생동감 있고 경쾌한 곡이 나올 때 높은 점수를 얻었다. 그러나 음악을 정반대로 들려줬을 경우 만족도가 25%가량 떨어지기도 했다.

최근 주목 받는 칠레나 스페인 등의 제3세계 와인의 경우, 가벼운 재즈 음악이나 리듬감이 있는 스윙을 들을 때 더욱 감칠맛을 느낀다. 예를 들어 냇 킹 콜의 ‘Jazz On Cinema with Nat King Cole’과 브라이언 페리의 ‘As time goes by’는 가벼움과 강함이 동시에 공존하는 칠레와 스페인 와인의 특징을 잘 느낄 수 있도록 도와준다.

프랑스 폼므롤 지역의 ‘비유 샤또 세르탕 1970년’의 경우, 요한 세바스찬 바흐의 ‘첼로를 위한 콘체르토 C 마이너’와 강한 생명력과 투명한 에너지의 표현이 일맥상통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프랑스 등지의 정통적인 와인 생산국과 달리 대중적인 입맛을 강조한 미국, 호주의 신세계 와인은 세련된 R&B 음악으로 그 맛과 향을 더욱 음미한다. 조던의 ‘Flight to the Denmark’와 ‘Maxwells Urban Hang Suite’는 정통 기본 와인에 길든 입맛을 누그러뜨려 주는 역할을 한다. 화이트 와인의 경우에는 비트가 강하지 않은 하우스나 레이브 음악으로 싱그러운 아로마 향을 즐길 수 있도록 도와준다.

그러나 무엇보다 와인의 맛을 높이는 데는 즐기는 마음이 우선이다. 와인은 즐거움이다. 와인을 마시는 순간을 즐기고, 와인과 함께 듣는 음악, 그리고 와인을 마시면서 나누는 마음을 즐겨야 한다. 그래야 와인은 그것을 즐기는 기쁨을 유혹하듯 흩뿌릴 것이다.

여러 악기의 조합으로 완성되는 음악은 수많은 장르를 가지고 있을뿐더러 서로 합쳐져 새로운 음악을 탄생시킨다. 이러한 음악의 특징은 다양한 재료의 혼합으로 미묘한 맛을 창조해내는 칵테일과도 닮아 있다. 음악의 믹싱과 칵테일의 블렌딩, 이것이야말로 음악과 칵테일이 조화를 이룰 수 있는 이유다.

음악 속에는 희로애락, 삼라만상이 모두 들어 있다. 그래서 우리 몸은 음악에 반응한다. 특히 뇌가 음악과 ‘화음’을 맞춘다. 오늘 하루, 칵테일이나 와인 한 잔을 마시며 가을바람에 실려 오는 아름다운 음악에 취해 호사를 누려보는 것은 어떨까.

글 : 김형자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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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신의 뜻을 알 수 있을까? [제 820 호/2008-10-06]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는 9월 10일 인간이 만든 커다란 기계인 거대강입자가속기(LHC, Large Hadron Collider)를 가동했다. 95억 달러라는 엄청난 예산과 14년이라는 긴 세월에 걸쳐서 만들어진 LHC는 아쉽게도 며칠 만에 고장으로 실험이 연기되기는 했지만, 역사 이래 최대의 과학 쇼로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그렇다면 왜 물리학자들은 LHC의 가동에 그렇게 관심을 가지는 것일까?

데모크리토스와 같은 고대 그리스 철학자로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람들의 궁금증 중의 하나는 과연 물질이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느냐는 것이다. 데모크리토스는 이것을 더 이상 나눌 수 없다는 뜻의 원자(Atom)로 불렀다. 그로부터 2000년 후 돌턴은 근대적인 원자론을 제창했고, 이를 바탕으로 화학은 급격히 자리를 잡게 된다. 하지만 원자 내부에 전기를 띤 전자가 있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원자가 쪼개지지 않는다는 신념에 금이 가기 시작했고 궁극의 알갱이를 알아내기 위한 머나먼 여정이 다시 시작되게 되었다.

이 여정에서 첫 번째 성과를 올린 사람은 러더퍼드였다. 그는 알파 입자 산란 실험을 통해 원자핵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밝혔는데, 오늘날 입자가속기에 비한다면 그의 실험은 겨우 원자를 살짝 두드려 보는 정도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는 이 실험 결과에 대해 “화장지에 대포알을 쏘았더니 튕겨 나왔다.”라는 말로 그 놀라움을 표현했다.

오늘날에는 원자는 물론 원자핵을 구성하고 있는 핵자를 깨트려 그 속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이 가능해진 것은 입자를 빠른 속력으로 가속하여 충돌시켜 그 내부를 확인할 수 있는 장치를 입자가속기(particle accelerator)있기 때문이다. LHC는 강입자의 하나인 양성자를 가속시키는데, 전기장으로 양성자를 빛의 속도에 가까운 빠른 속도로 가속시킨다.

양성자를 더 빠르게 가속시키는 것은 더 높은 에너지를 가진 입자를 발견하기 위해서이다. 빠르게 가속되는 입자는 잡아두기 위해 둘레가 27km나 되는 거대한 가속기를 만든 것이다. LHC에는 지구 자기장의 약 10만 배나 되는 초전도 자석으로 빛의 속도에 가깝게 움직이는 양성자가 궤도를 탈선하지 않게 한다. 이번에 LHC의 고장 난 부분도 바로 초전도 자석의 연결 부위라고 한다. 이 연결 부위에서 초전도 자석을 만드는데 필요한 액체 헬륨이 새어 나와 안타깝게도 가동이 중단되었다.

LHC는 양성자를 7TeV(테라전자볼트)까지 가속시키는 것이 가능하며, 양쪽에서 7TeV씩 정면충돌시킬 경우 14TeV의 에너지로 실험할 수 있다. 하지만 14TeV라는 에너지가 어느 정도인지 쉽게 와 닿지 않을 것이다. 양성자 하나와 중성자 하나로 이루어진 중수소의 경우 핵자 결합에너지는 2.2MeV(메가전자볼트) 정도이다. 1MeV의 에너지는 온도로 환산하면 백억 도에 해당하기 때문에 용광로에서 아무리 가열한다고 하더라도 2.2MeV의 결합에너지를 가진 핵자를 분리해 내지 못하는 것이다. 따라서 오늘날에도 핵자를 쪼갤 때는 온도를 높이는 것이 아니라 입자를 빠르게 가속시켜 충돌시키는 방법을 선택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엄청난 능력을 가진 기계로 무엇을 할까? LHC를 통해서 우리는 미니 블랙홀을 만들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일부에서는 미니 블랙홀이 지구를 삼킨다고 걱정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LHC는 중력에 의해 형성되는 거대한 블랙홀과는 달리 질량이 1.67×10-27kg밖에 안 되는 양성자에 의해 만들어진 수명이 기껏해야 10-12초밖에 안 되는 미니 블랙홀밖에 만들지 못한다. 따라서 이 미니 블랙홀이 지구를 삼켜버릴 가능성은 없는 것이다.

또한 LHC는 빅뱅 직후의 초고온 고밀도였던 우주를 모습을 재현해 낼 것으로 기대했다. 우주는 지금으로부터 137억 년 전 빅뱅이라고 하는 거대한 폭발로부터 시작되었다고 믿어진다. 빅뱅 후 10-43초 후 우주의 온도는 무려 1032℃나 되었으며, 이렇게 초고온인 상황에서는 모든 것이 서로 뒤엉켜 존재했다. 빅뱅 후 1초가 지나자 온도가 1012℃로 내려가고 양성자와 중성자가 만들어지고, 3분이 지나자 최초의 원자핵이 생겼다는 이론을 실험으로 재현해 보려는 것이었다.

LHC 실험의 가장 큰 목표이자 ‘신의 입자’인 힉스 입자는 무엇일까? 중학교 과학 시간에 물체가 자신의 운동 상태를 유지하려고 하는 성질인 관성에 대해 배운다. 즉 모든 물체는 가속도 운동에 저항하는 성질인 관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우리는 관성을 쉽게 배우지만 아쉽게도 물체들이 왜 관성을 가지고 있는지는 밝혀내지 못했다.

힉스 입자의 발견은 바로 이 근본적인 질문에 대한 대답을 찾기 위한 것이다. 즉 우주는 힉스장이라고는 하는 바다 속에 잠겨 있는데, 물체를 움직이려고 하면 물체가 힉스장과 입자를 교환하면서 저항을 느끼게 된다. 따라서 광자가 질량이 없는 것은 힉스장에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기 때문이며, 쿼크의 질량이 다양한 이유 또한 힉스장과의 다양한 상호작용에 의한 것이라는 설명이 가능하다. 이와 같이 모든 물질에 질량을 부여하는 것이 힉스장이며, 힉스장을 매개하는 것이 힉스입자이기에 이를 ‘신의 입자’라고 부르는 것이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LHC의 고장으로 내년 봄까지 가동 중단 예정이라고 하니, 힉스 입자의 발견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힉스 입자가 발견되지 않을 경우에는 자연을 가장 잘 묘사하고 있다고 평가받는 표준모형의 대대적인 수정이 가해지고 그 자리를 다른 이론들이 차지하게 될 것이다. 지금도 일반상대성이론을 포함시키지 못하는 표준모형에 대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초끈이론이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

어떤 결과가 나오든 LHC의 실험은 아인슈타인의 꿈이었던 ‘모든 것의 이론(Theory of Everything)’에 도달하기 위한 시도라 할 수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물질들은 우주에서 단지 5%밖에 되지 않으며, 나머지는 25%의 암흑물질과 70%의 암흑에너지로 구성되어 있다. 하지만 LHC가 정상가동 되어 실험결과를 쏟아낸다면 이 궁금증을 풀 단서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과연 우린 신의 뜻을 조금이나마 알 수 있을까?

글 : 최원석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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