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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8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안녕하세요. <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 <차베스, 미국과 맞짱뜨다> 저자 임승수입니다.
제가 마르크스 <자본론>의 기본적인 내용을 설명한 100분짜리 동영상 강연을 제작했습니다.
필요하신 분은 얼마든지 퍼다 사용하세요.
화질이 좋은 원본 동영상도 있습니다.
원본 동영상 파일이 필요하신 분은 저에게 자세한 내용을 담은 메일을 주시면 답장으로 보내드리겠습니다.
제 메일 주소는 reltih@nate.com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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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은 Junge Welt 2010년 5월 6일자 1면 기사를 (바쁜 관계로 대략) 옮긴 것이다. 원문은 다음에서 볼 수 있다. http://www.jungewelt.de/2010/05-06/059.php
반란의 그리스
(Hellas im Aufstand)
Von Heike Schrader, Athen
(06.05.2010 / Titel / Seite 1)
수요일 그리스 의회 앞: 경찰이 인민에 대항해 “인민대표”를 보호하다. (Foto: dpa)
3명의 죽음이 수요일 그리스 총파업을 그늘지게 했다.
소방대원의 진술에 의하면, 두 명의 여자와 한 명의 남자가 데모대가 화염병으로 공격한 아테네 Marfin 은행의 한 지점 건물에서 질식사했다. 이 비극적인 사건을 고려해서 언론인들은 오후에 파업참여를 중단했고, 보도를 진행했다.
전체적으로 그리스는 어제 신자유주의적 “위기극복”의 시작 이래로 가장 크고 거대한 저항을 경험했다.
이 나라의 모든 도시에서 대규모 시위가 보고되었다. 수많은 곳에서 경찰과의 전투적 충돌이 있었다.
총파업 하루 전 이미, 파업하는 행정노동자들에 의해 아테네와 다른 도시들의 시청이 점거되었다.
수요일 그리스로 오고 가는, 그리고 그리스 내의 비행이 취소되었고, 선박은 항구에, 기차는 역에 묶였다.
학교와 관공서도 문을 닫았다.
병원은 응급실만 운영했다.
아테네 중심지는 완전히 데모대의 수중에 떨어졌다.
수만의 임금생활자들이 공산주의 지향의 노조전선인 PAME에 의해 조직되고 평화롭게 진행된 저항행진에 함께했다.
행렬의 선두가 그리스 의회에 도달했을 때, 아직도 행렬의 끝은 약 1킬로미터 떨어진, 시작집회를 했던 광장에 있었다.
거기에서 Giorgos Perros는 모인 노동자들에게, 합의된 수십억의 대부에 대한 정부의 말에 어떤 신뢰도 보내지 말 것을 호소했다.
그 PAME 노조활동가는 “그들이 나라의 구제를 위한 법안이 중요하다고 말한다면, 그들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이전의 모든 지원법안에 의해 유일하게 이득을 보았던 기업가, 은행, 선박소유주의 보조를 위한 법안입니다.” Perros는 또한 두 개의 거대 당인 PASOK[역자: 당명은 전(全)그리스 사회주의운동이나 내용은 사회민주주의이며, 2008년부터 불붙은 대중적 저항에 힘입어 2009년 10월 4일 총선에서 300석 중 160석을 획득해 절대 다수당이 되었고, 현 수상을 배출했다.
이 PASOK가 신자유주의적 구제프로그램과 개혁프로그램을 선도하고 있다.
여기서 의회주의(형태)와 사민주의(내용)의 한계를 동시에 추측해 볼 수 있다.]와 Nea Dimokratia[자유-보수당]에 의해 통제되는 노조연합(Gewerkschaftsdachverbände)인 GSEE와 ADEDY를 비판했다.
“그들은 PASOK와 Nea Dimokratia가 자신들의 인민적대적인 기업정책을 노동자에게 가져올 때 쓰는 벨트를 이룹니다.”
공산주의자들만 이런 견해를 공유하는 것이 아니다.
PAME로 조직되지 않은 하부 노조활동가 대부분도 수요일 GSEE와 ADEDY 집회와 떨어져 집결했다.
여기서 연설은 없었으나, 마찬가지로 수만의 저항들 중에서 저항의 형태와 조직 문제에 대한 활기찬 토론이 있었다.
하부 노조, 비의회 좌파(außerparlamentarische Linke) 조직, 무정부주의 그룹의 행진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국제 체인 상점과 은행을 공격했다.
의회에 도착했을 때, 분노한 인민에 대항해 “인민대표”의 건물을 방어하는 경찰 기동부대와 데모대 사이에 전투가 벌어졌다.
GSEE와 ADEDY는 그들의 집회에서, 대중 대신에 유럽의 고위 사민주의적 노조대표자를 보여주지 않을 수 없었다. [역자: 대중이 없었기 때문에, 그나마 볼만한 것은 유럽 노조대표자밖에 없었다는 뉘앙스] 연대 성명을 위해 특히 유럽노조연합 대표 John Monk와 DGB(독일노총) 대표위원 Claus Matecki가 왔다.
동시에 유럽의 다양한 곳에서 그리스 투쟁과 연대하는 저항행동이 벌어졌다.
베를린에서 지구화비판 네트워크인 아탁(ATTAC)이 데모를 벌였고, 유럽 좌파당(Europäische Linke)과 GUE/NGL(Vereinte Europäische Linke/Nordische Grüne Linke[유럽좌파연합/북유럽녹색좌파]: 유럽의회 내 사회주의-공산주의 당 연합) 당원들이 브뤼셀 유럽의회 앞에서 저항했다.
* 보도에 의하면, 구제 프로그램은 그리스에 3년에 걸쳐 1100억 유로를 지원할 예정인데, EU가 800억 유로를(독일은 224억 유로), IMF가 300억 유로를 지원한다고 한다.
이러한 보조를 받기 위해 그리스 정부는 3년 간 300억 유로를 긴축하고, 국가적자를 14%에서 3%로 줄이며, 세금인상, 공공서비스에서 임금삭감, 연금수령연령 인상 등을 추진한다고 한다.
EU, IMF, 그리스 정부의 황당한 “위기전가” 대책에 치를 떨고 있는데, 아니라 다를까 그리스, 유럽 노동자, 민중의 저항이 폭발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서, “노동자 인터내셔널 위원회”(Komitee für eine Arbeiterinternationale) 소속 독일 그룹인 “사회주의적 대안”(Sozialistische Alternative)은 다음과 같은 제안을 내 놓았다.
원문은 다음에서 볼 수 있다. http://www.sozialismus.info/?sid=3657
노동자운동의 반(反)위기 프로그램을 위한 우리의 제안
* 긴축법안, 임금삭감, 사유화, 해고 반대! 위기의 원인제공자와 위기에서 이득을 보는 자가 지불해야 한다!
* 투기자와 은행에 대한 이자상환과 부채상환 중지 - 우리의 삶에 대한 금융시장의 독재 거부
* 노동하는 인민에 의해 선출된 대표자들의 관리와 민주적 통제 하에서, 독일과 그리스의 모든 은행의 국유화
* 유럽에서 수백만의 일자리의 창출을 위한, 충분한 임금보상과 직원조절을 동반한 근본적인 노동시간단축!
* 은행과 대기업의 이윤, 백만장자의 사유 자산으로 향하자 - 환경, 사회(복지), 교육, 건강 영역에서의 지출프로그램의 재정지원을 위해, 수익과 자산에 대한 중과세
* 은행과 대기업의 유럽에 대한 반대 - 유럽에서의 자발적인 사회주의적 동맹을 위해!
분열하지 말자 - 지금 국제 연대와 저항을!
- 만화 : 공공노조 애니매이션지부 류재운지부장
☞ 여기를 클릭하세요. 만화소책자를 pdf파일로 보실수 있습니다.
노동자들의 생활과 조건이 다들 같은것은 아니지만 버스 동지들의 현실이 참으로 힘들더군요.
그래서 만들었습니다.
2010.03.29.월요일 정치불패 Schizo
대통령 이명박 (면제)
나라꼴 잘 돌아간다 ㄲㄲ "전쟁나면 미국으로 ㅌㅌ 하면 됨ㅋ 우왕ㅋ굳ㅋ" 이러고 있었을듯... |
이런 개 쓰발놈들을 봤나! 나도 면제지만 나는 그 때 키 174cm, 몸무게 42kg에 폐결핵말기에 반신불수였기에 장애인으로 면제 받았다.
이런 놈들이 무슨 대책회의를 한다고 설치고 있다냐?
한준위는 그렇다치고 죽은 어민과 실종된 어민들은 어떻할거야 이 새끼들아!
‘좌파 타령’ 안상수와 드라마 추노의 명언
[기자칼럼]"한번 변심한 자는 동지들을 더 매섭게 몰아 붙인다"
KBS 인기드라마 ‘추노’의 주인공 중 한명인 정승 이경식(김응수)은 조정을 쥐락펴락하는 막후 실력자이다.
그는 추노꾼 대길이(장혁)와 조선최고의 무장 송태하(오지호)와 대립각을 형성한다.
이경식은 송태하와 같은 편이었던 조선비를 이용해 송태하 쪽 인사들을 하나하나 처단한다.
이경식이 드라마에서 전한 얘기는 의미심장하다.
"한번 변심한 사람은 자기 동지들을 향해 더 매섭게 몰아붙인다"는 내용이었다.
자신의 과거를 의심하는 이들에게 신임을 받기 위해서라도 더 철저히 ‘배신자’의 길을 걷는다는 주장은 현실 정치에도 적용될 수 있는 의미심장한 분석이다.
최근 여권은 각종 설화(舌禍)로 몸살을 앓고 있다.
말을 옮기기에도 저속한 ‘큰집 조인트’ 논란은 대한민국 방송계의 수장 중 하나인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의 입에서 나왔다.
이명박 정부 우산 아래 떵떵거리며 권력을 누리던 인물들의 그릇을 살필 수 있는 사건이었다.
결국 김우룡 전 방문진 이사장은 자리에서 물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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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BS 드라마 '추노'의 한 장면. ⓒKBS
여권이 ‘큰집 조인트’로 궁지에 몰려 있을 때 한나라당 원내대표인 안상수 의원은 연타석 병살타로 친정을 울렸다.
좌파정부 성폭력 유도 발언 논란으로 입방아에 오르더니 이번에는 종교장악 논란의 주인공으로 떠올랐다.
2009년 11월13일 서울 프라자호텔에서 자승 조계종 총무원장을 만나 서울 강남 대표 사찰인 봉은사 주지 명진 스님 교체 문제와 관련해 ‘압력’을 행사했다는 게 의혹의 내용이다.
이 자리에는 김영국 조계종 불교문화사업단 대외협력위원과 고흥길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장도 있었다.
안상수 원내대표는 명진 스님이 누구인지 모른다면서 발뺌을 했고, 외압 논란은 사실 무근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명진 스님은 “강남 부자 절에 좌파 스님을 그대로 나눠서야 되겠느냐”고 안상수 원내대표가 말했다면서 자신의 말이 사실과 다르면 승적부에서 이름을 지우겠다면서 배수진을 쳤다.
안상수 원내대표의 해명은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거짓말 논란에 휩싸였다.
11월13일 자리를 주선했던 김영국 대외협력위원이 “명진 스님의 발언은 모두 사실이다”라는 내용의 기자회견을 했기 때문이다.
안상수 원내대표는 궁지에 몰렸지만 “앞으로 일체 대응하지 않을 것”이라고 무대응 원칙을 밝혔다.
상황은 안상수 원내대표와 한나라당에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다.
야권에서는 ‘안상수 원내대표는 우리 편’이라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안상수 원내대표가 지방선거를 앞둔 여당에 정치적 부담을 안겨준 것은 분명해 보인다.
안상수 원내대표의 연이은 설화는 관행적인 ‘좌파 타령’이 원인이라는 분석도 있다.
권력을 주체할 수 없을 만큼 힘을 지닌 인물은 자신의 권한을 과신해 함부로 칼춤을 추는 경우가 있는데 어느새 그 칼이 자신을 향할 때도 있다.
안상수 원내대표가 친이명박계 핵심 인사이자 여당 원내대표라는 자신의 권한을 과신해 조계종에 부적절한 입김을 행사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물론 안상수 원내대표나 조계종 쪽은 “외압은 없었다”고 부인하고 있지만, 얼마나 많은 국민 동의를 이끌 수 있을지는 지켜볼 일이다.
흥미로운 대목은 안상수 원내대표 과거 행적을 보면 드라마 추노의 정승 이경식이 전한 ‘명언’이 떠올려진다는 점이다.
안상수 원내대표는 ‘좌파 타령’으로 입방아에 오르고 있지만, 그의 과거 행적은 참 한나라당답지 않은 경험의 연속이었다.
안상수라는 이름 석자가 유명해진 이유는 1987년 박종철군 고문치사사건 진상폭로의 주인공이었기 때문이다.
1975년 사법시험에 합격해 검사의 길을 걸었던 안상수 원내대표는 젊었을 때부터 할 말은 하는 인물이었다.
1965년에는 한일회담 문제로 9일간 단식을 했고, 1967년에는 6·8 부정선거규탄시위를 주도하기도 했다.
박종철군 고문치사사건을 폭로한 이후 변호사의 길을 걸었던 안상수 원내대표는 1991년 환경운동연합 지도위원, 경실련 입법위원, 박종철기념사업회 운영위원을 역임했다.
신문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기도 했다.
흥미로운 점은 보수 성향 신문이 아닌 경향신문과 한겨레라는 점이다. 안상수 원내대표는 1992년 경향신문 객원 논설위원으로 활동했고, 한겨레 시평을 게재하기도 했다.
학생운동, 시민사회 운동, 진보·개혁성향 언론 필진 활동 등을 경험한 안상수 원내대표의 젊은 시절은 그가 말하는 ‘좌파 활동’과 다른 것일까. 물론 안상수 원내대표의 활동을 ‘좌파 활동’이라고 부를 수는 없다.
문제는 안상수 원내대표가 생각하는 ‘좌파’가 무엇인지 헛갈린다는 점이다.
안상수 원내대표가 좌파라고 지목했다는 명진 스님은 4대강 사업에 반대하고 무료급식에 찬성하고 용산참사 유가족을 위로한 인물이다.
자신과 정치적 뜻이 다르면 좌파인가, 이명박 대통령에게 불편한 인물은 좌파인가.
‘좌파 타령’의 가장 큰 의문점은 좌파에 대한 개념 규정 없이 일단 ‘좌파 딱지’를 붙이는 관행이다.
명진 스님은 지난 22일 MBC 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과 인터뷰에서 안상수 원내대표가 자신을 좌파라 불렀다는 것을 황당해하면서 이런 얘기를 전했다.
“안상수 원내대표가 좌파주지 운운했다 소리를 그렇게 하더라고요. 그 사람은 좌파 좌파 하는데 내가 왜 좌파인가 모르겠다. (안상수 원내대표는)징집영장이 나오면 이리저리 도망 다니면서 피해가지고 결국은 고령으로 군대를 안 갔거든요.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나는 우리 아버지도 육군병장으로 제대하셨고 저도 육군병장으로 제대했고 군 복무 중에는 제가 맹호부대로 월남까지 갔다 왔는데, 그리고 내 동생은 스무 살에 해군에 자원입대해서 훈련 받던 중에 순직을 해서 지금 동작동 국립묘지에 이렇게 묻혀 있는데 내가 왜 좌파….”
김문수나 이모기도 안상수와 비슷한 동물임
하토야마 유키오 일본 정부가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고 제조업체에 대한 파견을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파견법 개정안을 각료회의에서 의결했다.
국회에서 이 법이 통과되면 앞으로는 일이 있을 때만 한시적으로 고용하는 ‘등록형 파견’이 금지되고, 26개 전문업종을 제외하고는 파견 노동자를 상시 고용해야 한다.
계약 기간 2개월 이하 파견이 금지될 뿐만 아니라 제조업체 파견도 원칙적으로 금지되고 장기 고용인 경우에만 허용된다.
언론이 이를 두고 “24년만의 파견법 대수술로 일본 재계가 발칵 뒤집혔다”고 호들갑을 떠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우리나라에서 파견법이 제정되던 90년대 후반에 벌어졌던 일이 떠오른다.
그 무렵 열렸던 파견법 관련 공청회에 일본의 파견법 제정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던 일본 법학자가 참여했다.
그 노학자는 “일본은 노동자 파견법을 졸속으로 도입한 뒤 큰 후회를 하고 있다.
한국은 그 전철을 밟지 않기 바란다.”고 말했다.
일본이 졸속으로 도입했다던 파견법 제정을 논의한 기간이 무려 15년이다.
우리나라는 파견법 도입이 논의되기 시작한 지 3-4 년만에 “선진국에 다 있는 필수불가결한 제도”라면서 서둘러 법을 제정했다.
당시 한 법률가 단체가 국회에 제출할 파견법 제정에 대한 의견서를 작성하는 과제가 우리 연구소에 맡겨지는 바람에 자의반 타의반으로 외국 노동자 파견 제도에 대해 공부할 기회가 생겼는데, 살펴보니 선진국에서 제정한 파견법의 취지는 대부분 기업의 노동자 파견 행위를 엄격하게 규제하거나 파견 노동자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것들이었고 거의 유일하게 일본의 파견법이 노동자 파견을 조장하는 내용을 갖추고 있었다.
우리나라 재계와 정부는 일본의 법 체제를 모방해 도입하면서 “선진국에도 다 있는 제도”라고 주장했던 것이다.
그 뒤 기업의 이익을 대변하는 학자들은 꾸준히 “고용 증대를 위해 파견 관련 규제를 풀고 있는 것이 세계적 추세”라며 파견업종 확대가 마치 당연한 순리인양 주장해왔다.
그러나 그 사람들은 세계화 바람이 급격하게 불던 90년대에 비정규직 노동자 규모를 확대했던 많은 나라들이 2천 년대에 들어서 비정규직 노동자 수를 줄이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이 세계적인 추세라는 점은 애써 외면했다.
일본의 파견법 대수술 역시 과거 공동 여당인 자민당과 공명당 내부에서 논의돼왔던 것들이다.
노동자를 파견하는 회사 뿐 아니라 파견 노동자가 일하는 기업에 대해서도 고용 책임을 명확히 하는 방안을 검토했고 파견 계약 만료 이전에 계약을 해지할 경우 다시 일자리를 알선하는 것을 의무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법안을 준비하기도 했다.
당시 야당이었던 민주당은 이에 호응하는 한편 독자적 파견법 개정안을 추진해 오늘에 이른 것이다.
일본은 파견법 제정 뒤 파견 가능 대상 업종을 점차 확대하다가 1999년에 이르러 파견을 원칙적으로 자유화했다.
그 뒤 파견 노동자가 크게 늘어 2002년 43만 명에서 2008년에는 140만 명이나 됐다.
더 이상 견딜 수 없게 된 하토야마 정부는 이번 법 개정으로 고이즈미 내각의 신자유주의 정책을 뒤엎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우리나라 정부와 기업은 여전히 과거의 일본을 따라가고 있다. 파견 규제를 완화하고 파견 대상 업무를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파견 노동 확대가 실업 해소 및 고령자와 여성의 취업에 기여한다고 억지를 부린다.
기업 인건비 줄이자고 노예 노동을 합법화할 수는 없다. 나라 경제와 기업경쟁력에도 해로운 일이다.
“파견법 시행 12년, 인신매매 12년”이라는 말은 과장이 아니다.
<경향신문> 2010-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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