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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한 팩에 맛나게 들어있는 것, 누룽지였다. 누룽지가 어찌나 얇은지 바삭바삭한것이 고소하고 맛이 그만이다. 그래서 어느새 나는 식후나 배가 출출할 때 누룽지를 찾는 누룽지 매니아가 되어버렸다.
몇 주전도 그렇게 아무런 생각없이 누룽지에 손이 간 순간 왕언니가 하는 말이 "그건 특별한 음식이야...신부님이 아침에 먹는 거니깐 ..."
그나저나 요즘은 신부님이 밖으로 돌아다녀서인지 누룽지가 꽉 차있다...
'손이가요 손이가~ㅠㅠ' 오늘은 신부님이 먹을 누룽지를 낼름낼름 먹었다...
낼름낼름 먹으니 더 맛있다...
누룽지 넘 좋다~촛불집회 가야겠다~^^
어느새 놀이방 문 연지 2주차다. 매일 10시에서 12시, 점심식사 후 1시 30분부터 3시 30분까지 1반에서 3분까지 출퇴근하는 나는 요즘 출퇴근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매일 지각하는 나에게 아이들은 지각한다며 놀이방 문 열기를 종용하는데 문을 여는 기분도 참 좋다. 매일 평풍 사무실에만 있다가 놀이방을 시작한 후 오매가매 산책하 듯 다니니 기분도 상쾌하니, 흙 밟는 느낌이, 약간 볼이 시리게 다가오는 바람이, 가볍게 목례하거나 손을 흔들며 만나는 주민들이 정겹다.
어제 아침 출근하는 길에 3반 재활용센터 바로 위에 있는 집에서 샤시며 문짝을 떼가는 걸 보았다. 이미 집은 내부가 훵하니 보이고 현관문 뗀다고 휘두르는 헤머소리는 저 멀리까지 들렸다. 난 웬 고물상 주인인가 왜 남의 집을 부수나 하고 말을 걸어 확인해 보니 바로 오늘 아침까지 이 집에서 먹고 살던 집주인들이였다.
아니 세상에 이럴수가 있을까. 비록 협의매수해서 이사간다고는 하자만 멀쩡한 집을 부수고 가는지 해도 너무 한다 싶었다. 그러나 집주인들은 새로 집을 지어서 문짝이며 샤시를 거기에 달려고 한다고 사정을 얘기해 오죽 어려운 상황이면 이러겠나 싶기도 하고 집이나 깨끗이 청소하고 가라고 하고는 놀이방으로 출근했다.
출근한 후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앗다.종이접기를 하는데도 튤립 접다가 금붕어 접다가 계속 들려오는 집 부수는 소리와 전기톱 돌아가는 소리에 아직 마을에 살고 있는 사람에 대해 전혀 배려없는 태도가 더욱 안절부절하게 만들었다.
아이들이 그 집 앞에서 놀다가 유리에 베이면 어떻하지? 아이들은 이사간 집에 맘대로 드나들며 구경하고 주운 물건을 놀이방으로 가져오기도 하는데 그걸 '빈집탐험' 이라고 부른다. 거실에 있던 커다란 창이 떨어지고 여기저기 잡동사니가 널부러져 있는 집은 호기심이 가득한 아이들에게 약간의 공포를 동반하니 더욱 즐거움을 준다.
처음엔 연필조차도 충분하게 구비해 놓지 못한 놀이방에 버리고 간 샤프심이며 인형을 주워 오는게 반가웠다. 아이들은 크고 돈되는 진주목걸이나 비디오, 오디오세트보다는 손바닥만한 자동차, 몽당연필을 좋아한다.
그런 곳을 다니면서 왜 우리 동네는 점점 빈집이 늘어나는지, 마을이 점점 부서지고 있는지 궁금하다. 며칠전에는 '저주받은 집'에 다녀와서는 왜 ㄱ은 전학갔냐고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냐고 묻는 ㄴ에게 나는 군사기지가 들어선다는 이유로 정부에서 집과 땅을 빼앗고 주민들을 내쫓아서 이사가는 거라고 설명한다. 이런 현실에서 전차와 칼, 총과 벗하여 노는 아이들에게 놀이방에선 싸우지 말고 무기경쟁과 적자생존을 학습하는 게임보다 자연과 함께 공존의 지혜를 발휘하자는 얘기가 차마 입에서 떨어지지가 않는다.
국제관계란 힘쎈 나라가 힘없는 나라에 ‘까라면 까’라고 하는 거라지만 그러면 국가란 뭐지? 교과서에선 차마 대추리에 관한 얘기가 통 없으니 국가라는 이름으로 풀뿌리민중을 모욕하고 착취하고 뭉둥이로 때리고 그것뿐인가. 아이들의 반응을 보면서 요즘 마을에서 벌어지는 일이 예사롭지 않음을 느낀다.
어른들이 이사가면서 마을을 부수는 걸 똑똑히 본다. 오후에는 ㄷ,ㄹ과 냉이를 뜯으러 가다가 다시 그 집앞을 지나쳤다. 마당에는 이미 두동강이 난 샤시가 쌓여있고 창문의 유리가 다 깨진 상태로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어쩜 자기가 살던 집에 집주인이 직접 이런 몹쓸 짓을 하는지 그 사람의 마음이 궁금해서 말을 걸었다. '아까는 새로 지은 집에 달기 위해 뗀다더니 아주 전기톱으로 자랄버리셨네. 사실 이렿게까진 얘기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당신들 밥숟가락 하나까지 다 보상받고 나가면서 왜 국유재산을 훼손하냐고 불법행위인지 모르냐'고 얘기했다. 그러자 '당신이 뭔데 떼가라 마라냐. 떼어가도 된다고 해서 떼어가는 거니까 고소하려면 고소하'란다.
'고소도 고소지만 여기가 당신 혼자 사는 마을 아닌데 아이들이 무서워서 밤에 지나가기나 하겠냐고 귀신나오겠다고, 당신 눈에는 고철로 보일지 몰라도 사는 사람이 살고 있다'고 소리를 질렀다. 사실 무서운건 아이들만이 아니다. 낮에도 그집앞을 지나가려면 등골이 스산함을 느끼고 누군가 사는 것만 같다.
아저씨는 필요한 거 떼어가도 된다고 했다는 그 사람이 누군지 대답하지 않고 계속 뜯는다. 아니 필요한 걸 얻기위해서라기 보다 집을 일부러 훼손하는거 같다. 더 많이 때려 부시고 다시 누군가 들어가서 살지 못하게 만들어 빈집프로젝트를 훼방하려는 음모로 보인다. 며칠전부터 빈집프로젝트를 조직적으로 방해하는 장면이 눈에 띄인다. 이번 주 일요일에는 메이의 집에 전주인이 찾아와 유리를 다 깨고 싱크대와 수도모터를 떼어갔다.
자두네는 전에 살던 노부부의 아들이 다녀갔고 놀이방으로 이용하는 집의 전주인도 아직 마을에 살고 있는 매형에게 그 집을 부셔 버리라고 했다고 한다. 쳇, 집에 남기고 간 쓰레기 다 치우고 커튼달고 바닥 닦아 이제 다시 쓸만하게 해놨더니 다시 들어와서 현재 사람이 살고 있는 집을, 게다가 자기가 살던 집을 부수나 난 정말 이해가 안된다.
나쁜 몇몇이 들어왔다기 보다 국방부에서 조직적으로 부추기거나 사람들에게 미끼를 던졌을 가능성이 높다.이게 요즘 우리 마을 moda다. 이사갈 때 할 수 있는 만큼 철저하게 부숴라. 부수고 깨는대로 너희들에게 돌아갈테니 마을을 양껏 망가뜨려라. 사람이 살 수 없도록, 무서워서 갈 수 없도록
부순 기억은 금방 사라질테니 행정수도 연기군으로 오세요. 땅값이 얼마나 많이 올랐는지 와 보면 안다니까요. 자~ 이사를 가세요. 등 떠밀 때 모르는 척하고 가세요. 어차피 당신도 떠날테니까.
우리 놀이방에도 moda가 있다. 얼굴 그릴 때 코 안그리는 게 유행인데 ㅁ만 유일하게 입도 안 그린다. 아이들은 느낀다. 대추리 주민으로 느끼고 산다. '사는 것이 저항'이라는 '인생의 별' 사장 말처럼 마을을 고철덩이로 보는 사람들에게 소리치자. 소리내는 것이 저항이다. 내 재산이니 부수든 말든 상관하지 말라는 사람들에게 그러면 왜 니 쓰레기는 남기고 가냐고, 깨버린 유리며 니 쓰레기 다 청소할 때까지 자리 비우지 말고 지키자.
어제 빈집이 하나 생겼다. 재활용품 창고를 지나서 지킴이네로 가는데 어디서 망치질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소리가 나는 곳으로 달려가 보니, 협의매수를 했던 집에서 한 아저씨가 알루미늄 섀시 문짝을 뜯고 있었다. 다른 쪽에서는 집주인과 가족들이 이삿짐을 나르고 있었다. 드디어 오늘 이사를 나가는구나. 그 집 아주머니와는 안면이 있는 사이였지만, 조금도 서운하지가 않았다. 이삿날에 이웃은 보이지 않고, 고물상이 와서 멀쩡한 집을 쇠망치로 부수는 광경은 대추리에서 새삼스럽지 않은 일. 저녁에 다시 그 집 앞엘 가보니 집은 아주 흉가가 되어 있었다. 떼어낸 문의 유리는 모두 깨져 있고, 문손잡이까지 뽑아가버린 집안에는 쓰레기들만 뒹굴고 있었다. 개 한마리가 안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폐가의 마당을 어슬렁거렸다.
자기가 살던집을 사람이 다시 살 수 없도록 부수고 나가는 것. 그것이 국방부와 토지공사에서 협의매수에 응한 자들에게 내린 지침이다. 지킴이네 집의 유리창을 깨라는 말들도 암암리에 돌고 있다고 한다. '빈집 프로젝트 음해 공작'이 진행 중인 것이다. 그런식의 해코지는 지킴이네에 입주할 때부터 예상했던 바이다. 앞으로는 토지공사의 움직임이 점점 바빠지겠지. 머릿속으로만 생각했던 일들이 하나씩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길을 가다가 빈집 담벼락에 기대 놓은 나무 판넬을 보거나, 버려진 문짝을 보면 칫수를 재곤 한다. 문으로 쓸만한 게 없나 두리번거리면서 다니다보니, 동네 구석구석을 자세히 들여다보게 된다. 녹이 슬면서 생겨난 철판 위의 무늬들, 오래되고 무거운 종이 걸린 천주교 공소, 색색의 양철판을 이어 붙여서 만든 창고 벽... 그리고 동네 곳곳의 양지바른 자리에 웅크려 앉은 고양이들, 구기자와 개나리 덩쿨 위의 참새떼, 쑥새, 박새, 붉은 머리 오목눈이... 세월의 흐름이 묻어나는 것들, 생명의 작은 움직임들을 마주칠 때마다 기운이 난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함께 일하고 이 마을을 지킬 사람이 필요하다. 지금 대추리는, 빛을 하나씩 잃어가는 크리스마스트리의 유리전구 같다. 빛이 꺼진 자리에 반딧불이처럼 내려 앉을 사람들이 필요하다. 마을에 생겨나는 어둠이 너무 무섭다.
* 죽은 햄스터 두 마리를 빈집 마당에서 발견했다.
여섯번째 솔부엉이 라디오도 웹에 올리고 작은 아르바이트도 하나 마무리 짓고 나니 오늘은 조금 한가하네요. 늦게 잠이 들고서 아침에도 늦게 일어났습니다.
모처럼 한가한 하루가 시작되었습니다.
대추리 이웃지도 확장판을 들고서는 떠난집들을 체크하고 소문만 듣고 미처 확인하지 못한 집들을 찾아 다녔습니다.
4반뜸은 명확히 확인하진 못했지만- 현재 대추리를 떠난 집들은 27가구 정도로 추정합니다.
국방부에서는 기존 협의매수를 한 가구들에게 2월 20일경까지 집을 비우라고 했답니다.
어제 이사를 나간 집에 집 주인이었던 사람과 낮선이들이 왔습니다.
아직 지은지 얼마 안된, 자신이 바로 어제까지 잠자고 밥먹고 살던 집의 창문을 다 깨트리고 샷시를 떼어갔습니다. 마을분들 몇분이 찾아오고 아이들과 냉이를 캐러나가던 놀이방 원장님은 할말을 잃어버렸습니다.
이제 그 집은 떠난 이의 집도 아니고 국방부의 집도 아니고 마을에 사는 사람들의 집인데
떠나는 이(이미 떠난이는)에게는 傲氣만 남아 있는 듯 했습니다.
빈집에 문을 만들어서 달려고, 버려진 목재를 가져다가 톱질을 했다. 문짝 얘기를 꺼냈더니 사람들은 각목으로 틀을 짜서 비닐을 대는 것이 좋다, 나무로 와꾸를 짜서 합판을 대라 이런 저런 조언을 해주었지만 내가 생각하는 문은 이미 머릿속에서 구상이 끝난 상태. 재활용품 창고에서 가져온 톱으로 미리 재 온 칫수에 맞게 두꺼운 나무를 톱으로 잘랐다. 겨우 두꺼운 각목 하나를 잘랐을 즈음 전화가 왔다. 이장님 댁에 저녁밥을 먹으러 가자고 평화바람이 전화를 한 것이다. 얼씨구나, 하고 작업을 마무리 지었다.
도두리벌에 저녁 안개가 깔리고, 해는 구름 속에 잠겼다. 도두 2리 이장님 댁으로 걸어서 갔다. 논바닥에는 살얼음이 끼고, 논두렁은 미끄러웠다. 논두렁 길을 걸으며 유심히 땅을 살폈다. 오래전에 이곳은 갯벌이었고, 어쩌면 조개 껍질을 주울 수 있을 지 모르니까. 내내 땅을 보고 걸은 덕분인지, 동네에 이를 즈음에는 색깔과 무늬가 다른 조개 껍질 조각 몇 개를 손에 쥘 수 있었다. 이 조개가 언제 살았던 것인 지를 알아 낼 방법은 묘연하지만, 민물조개가 아닌 것만은 일단 확실하다. 부안에서 만났던 '조개 박사' 아저씨가 문득 떠올랐다. 그 분이라면 작은 조개 껍질만 보고도 많은 설명을 들려 주실텐데.
역시 살림집에서 먹는 밥은 맛이 다르다. 굴이 들어간 무생채, 콩나물 무침, 조기찜, 해물탕, 돼지고기 수육, 구운김, 동치미와 김치... 전에는 채식주의자였고, 대추리에서는 '육식자제 주의자'가 되었지만 오늘은 반드시 돼지고기를 먹으리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하지만 돼지 고기를 먹지 않고도 단백질 섭취는 목표치를 초과 달성하였고, 미네랄이 풍부한 굴까지 먹었으니, 작업을 일찍 마친 보람이 있었다. 내일 아침밥까지 먹고 가라고 하시길래, 아주머니 말씀을 따라 밥 두 그릇을 먹고나서 인사를 드리고 밖으로 나왔다. 사방은 이미 어두웠다. 팔공 아저씨 트럭을 타고 대추리로 돌아왔다.
내일도 해야할 일이 아주 많다. 손수레 끌고, 톱질하고, 망치질 하고, 빨래 하고, 밥 먹고, 잠깐씩 놀이방 아이들과 놀고... 그러다 촛불 행사를 다녀오고 찻집에 들러서 차를 한잔 마시고 나면 하루가 저문다. 지킴이네에 와서 책을 펼치고 앉으면 잠이 쏟아진다. 낮에 일하고 밤에 공부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감기 기운이 떨어질 때까지는 밤에 편안한 마음으로 그냥 쉬었으면 싶지만... 찻집에 앉아 난롯불을 쬐며 노닥거리다가 '팽성은 우리땅' 블로그가 문득 생각이 나서 숙소로 달려와 일기를 적는다. 아, 이런 걸 왜 만들었지? 아까운 휴식 시간을 컴퓨터 앞에서 흘려보내다니! 컴퓨터는 누가 만들었을까? 시 한 편을 읽고도 마음과 몸이 움직이던 시절이 있었을 텐데...
아, 그만 자러 가자!
찻집을 열었다~11일날 기자회견을 맞춰 부랴부랴 연 감이 없지않아 있지만 조금씩 그모습을 갖춰가고 있는 것을 보면 마음이 뿌듯하다.
찻집에 얽힌 글이나 사진등을 올려서 공유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또 다른사람들이 이랬으면 좋겠다라고 하는 찻집이 되길 바라면 이곳을 통해서건 어디서건...
찻집은 차가 맛있고 차로 사람을 끌어야 한다.
찻집은 차가 맛있고 독특해야지 않을까? 이곳에 가서만 마시고 느낄 수 있는 차가 있다는 것...그것은 사람들을 꾸준히 찾게 하는 가장 중요한 것 중에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어렵고 돈이 들지만 굳이 국화차, 장미차 메밀차 등과 같은 차를 내는 것도 그 이유 중 하나이다...조만간 이슬차도 한 번 메뉴에 넣을려고 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차값이 싸거나 공짜라는 인식이 강해서인지...아님 내가 맛을 잘 못 우려낸건지
ㅡㅡ;;후자에 가까운가? 한번먹고 안먹는 그런 경우가 많다...ㅠㅠ 그 아까운 것을...그럴때마다 피눈물이 송글송글 맺힌다
내가 원하는 찻집은 사람들이 많이 참여를 할 수 있는 찻집이다.
인테리어를 장식하던 무엇을 하던 나의 손떼가 찻집에 묻거나 찻집을 통해 무언가를 할 수 있다면 이 찻집에는 많은 사람들이 즐거운 마음으로 계속 오지 않을까?
이 찻집에 가면 작은 책깔피를 만들 수 있어 좋다라던지 목걸이를 만들 수 있다던지 ...
차 한잔 마시고 나만의 책깔피나 목걸이 등을 만드는 재미가 사람들을 불러모으는 큰 힘이고 많은 사람들이 이 찻집이 타인의 공간만이 아니라는 걸 느꼈으면 한다...
이 곳에 가면 나의 공간을 찾고 더불어 우리의 공간을 찾을 수 있는 찻집...난 그런 찻집을 원한다...
그래서 정말 준비 중이다....책깔피나 목걸이(?) 이야기는 좀 더 사람들과 해봐야지만...
주말교실 같은 걸 열어서 만화교실이나 목판화 교실 등 예술문화인들을 불러 찻집에서 사람들이 함께 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도 좋을 거 같다...음!
모두가 자기가 나누고 싶은 걸 바리바리 들고 와서 돗떼기 시장처럼 서로 왁자지껄하게 공유 할 수 있는 공간...주는자 받는자가 뚜렷하게 구분되지 않은 모두가 참여해서 모두가 주고 받는 ...그런 공간이 이 곳 대추리에서 생겼으면 한다...
찻집에 관한 단상~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지킴이집에서 파티를 여는 이유가 있다. 아이들에게 놀이방의 존재를 알리는 것과 아이들의 입을 여는 것이다. 어른들이 만들었지만 아이들이 자율적으로 운영하는 놀이방을 생각해 보자. 강요가 아닌 아이들의 자유의지로 잘 조직되고 프로그램도 아이들 눈높이에 잘 맞을 것이며 얼마나 자랑스러운가. 기자회견에서도 놀이방 얘기를 하면 아마 사람들은 놀랄 것이다. 평택미군기지 확장저지 싸움에서 아이들도 마을주민으로써 마을을 지켜내고 있다는 것을 푸하하하
일단 효정씨가 고구마전과 김치전을 부치고 밥과 지선은 매떡범벅을 준비했다. 음료는 다산인권센터에서 남기고 간 토마토쥬스와 오렌지쥬스. 자 이 정도면 아이들의 입이 저절로 열려질 것이다. A양은 10시에 언니의 뾰족구두를 신고 와서는 아직 문 안 열었냐고 재촉을 하고 B, C는 각각 '쟈키쟈키'를 하나씩 가지고 와서는 이것저것 참견을 한다. 상을 차리는 중, C가 대사치기를 '이런건 여자들이 잘 하는데' 하길래 여자들이 나서서 '이런 건 C도 잘 할 수 있어'라고 격려해줬다.
사실 요리를 먹기 전에 회의를 먼저 하려고 했지만 학원 다니는 D, E를 기다리며 지친 아이들을 생각해 준비한 음식을 풀었다. 내가 먹기엔 5배정도 더 매워야 진정 매떡범벅이라 할 수 있겠지만 아이들은 맵다고 몇 젓가락 먹고 물배를 채웠다. 가장 인기가 있었던 건 '고구마전'이였다. 효정씨가 손이 바쁠때 아이들이 서로 뒤집는다고 군침을 흘렸으리라. 역시 자기가 직접 만든 음식은 왠지 손이 가고 더욱 맛있게 느껴지는 것이다.
자신이 먹은 그릇과 젓가락, 물컵을 각자 치우고 자기소개, 놀이방이름 정하기, 다음날 하고 싶은 일, 별명 정하기, 빈집에 얼쩡거리는 사람들의 질문에 대답하지 말고 어른들에게 신고하기, 규칙 정하고 내일 일정 공지하는 내용의 회의를 시작했다. 일단 자기소개를 시작하고 나니 E와 F는 까불기 시작하는데 절대 집중 불가 상태에 이른 것이다. 난 그때부터 목소리가 40데시벨 이상으로 높아지고 뱁새눈을 하고는 계속 회의진행을 강행했다. 놀이방 이름을 정하는 시간은 그나마 열의를 가지고 참여하는 모습이였다.
모두 6가지 이름안이 나왔는데 -생각을 키우는 놀이방(2), -보리밥 -꿈을 이루는 놀이방 ,- 우리가 만드는 놀이방, -즐거운 놀이방 ,- 행복이 넘치는 놀이방(5) 이 나왔는데 2표와 5표를 얻은 '생각을 키우는' 과 '행복이 넘치는'을 두고 2차투표에 들어갔는데 예상과 다르게 두표를 얻었던 생각을 키우는 놀이방이 당첨됐다. 나처럼 둘다 맘에 안들어서 손 안 든 사람들 때문에 어부지리 반전행각이 벌어진 것이다. 규칙정하는 시간엔 아무 생각없이 세상살기를 다 포기한 듯한 충격고백들이 나왔다.
-어지르지 않기,- 싸우지 않기, -뛰어 다니지 말기, -소리 지르지 말기, -음식 먹은거 자기가 정리하기, -도와주기 등등 규칙의 필요성에 공감하기 보다는 그 시간을 모면해 보려는 분위기인 것같아 필요할 때마다 정하기로 하고 5시 30분에 헤어졌다. 아~ 진이 빠지고 다리가 후둘거린다.
지선씨 힘내고 내일 아침 10시 다시 만나자.
밤새 싸락눈이 내렸다. 날이 아주 푹하다.
'지킴이 안내소'의 개소식을 앞두고, 평택 지킴이와 평화바람은 요즘 한창 바쁘다.
안내소 안에 마련될 몇 개의 코너들...
법률 사무소와 찻집, 사진관, 헌옷 가게에 사용 될 물건들을 옮기고, 간이 버스 정류소를 만들고, 간판을 달면 오늘의 노동이 그럭저럭 끝날 것이다.
저녁에는 밀가루 풀과 페인트로 얼룩진 잠바를 빨아야 겠다.
대추리 찜질방에 가서 몸을 좀 지지고, 어떻게 주변 사람들을 꼬드겨서 술이라도 한 잔...
며칠 전에 동네 순찰을 돌다가 4반 뜸의 골목길에서 아주 순하게 생긴 개 한마리를 만났다.
털이 누른빛을 띄고, 발은 하얗다. '하얀 발'이라고 이름을 붙여 주었다.
한가롭게 양지바른 곳에서 '하얀 발'이랑 한참 동안 시간을 보냈다.
'하얀 발'을 길들여서 친구로 삼아야 겠다.
조용한 오후...
빈집은 흔하고 어디 숨어서 낮잠이라도 잤으면 싶지만 정신을 차리고 어서 일하러 가야지!
나는 미군기지 확장 이전 예정 지역인 평택 팽성읍 대추리에서 살고 있다. 2005년 11월 23일에 팽성 지역의 땅에 대한 강제 토지수용 재결 결정 소식을 들었고 이틀 후 대추리에 왔다. 지금은 인간 방패가 되어 강제 토지수용에 몸으로 저항할 날을 준비하고 있다.
이라크 전쟁에 파병을 한 나라의 국민으로서 나는 전쟁과 군대가 완전히 사라져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이미 민간인 희생자만 3만 여명에 이르는데도 미국과 한국을 비롯한 참전국가의 정부는 전쟁에 대한 어떠한 반성의 태도도 보이지 않고 있다. 준 식민 국가로서 세계 최강대국 미국과 함께 한다면 전쟁 범죄와 진실 왜곡에 대한 책임마저도 면제 되는 것일까?
지난 2004년 겨울에 대구에서 열린 '이라크 전쟁 피해자 증언대회'에서 만났던 살람 아저씨를 나는 기억한다. 김선일 씨를 살리려고 미군에 의한 무차별 폭격이 가해지던 팔루자로 곧장 달려갔던 그는 '총이 아니라 꽃을 들고 오는 사람', '우리와 함께 슬퍼해줄 사람'을 기다린다고 말했다. 살람 아저씨의 불안에 잠긴 두 눈을 기억하는 내가, 뼈가 드러날 때까지 살을 태우는 백린탄으로 사람을 죽이는 미군을 지지하며 파병을 강행한 전범 국가의 국민임을 잊지 못한다.
헌법 5조에 명시된 ‘평화주의 원칙’을 무시하고 이라크전에 참전했던 국가가 미국에 군사기지를 제공하기 위해서 또다시 국민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 특등과 일등미가 생산 되는 땅. 가을에 수확한 햅쌀을 내다팔아 정부미를 사 먹으면서, 삶은 국수를 도시락에 싸서 다니며 농사를 지었던 분들의 피땀이 밴 땅. 미군기지의 확장으로 뭍에서 바닷가로 내몰린 주민들이 가래와 지게로 흙을 져 나르면서 일궈 낸 땅. 원앙, 솔부엉이와 황조롱이가 날아들고 가을철에는 논으로 메뚜기가 몰려드는 땅. 이 땅을 지키려고 전국을 돌면서 '미군기지 확장 반대'를 외쳤던 팽성 농민 분들을 2005년 6월에 처음으로 만났다. 그분들이 나눠준 유인물에는 주먹 쥔 손으로 눈을 가리고 우는 할아버지의 사진이 실려 있었다. 나는 팽성 농민들의 육성과 울음을 잊을 수가 없었다.
문학을 공부하는 나는 '이야기는 약자의 기억'이라는 고모리 요우이치의 발언을 염두에 두고 있다. 전쟁으로 죽어가는 사람들, 미국의 군사 기지 때문에 삶의 터전을 빼앗기게 된 사람들, 국가로부터 소외 당한 채 '가난과의 전쟁을 맨몸으로 치렀던' 사람들의 목소리를 기억하는 것이 나의 의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단지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기억하는 것에서 그칠 수가 없었다. 양심을 결박 당한 채로 무기력감 속에서 구경만하고 있을 수 없었다.
나는 보다 직접적인 행동으로써 무고하게 죽어간 이라크 사람들에게 사과를 하고 싶었다. 살상을 위한 군대를 반대하고, 자연과 인간이 공생하는 생명의 땅으로 팽성 들판을 지켜내고 싶었다. 그리하여 나는 대추리에 와서 살고 있다. 국방부 소유의 번듯한 집에서 거주하며 빈집에서 주운 옷을 빨아서 입고 주민들이 가져다 준 쌀을 먹는다. 빈집들을 다니며 수집한 그릇과 이불을 옮기고, 청소를 하고, 전기를 연결해서 <평택 지킴이 네>에 입주하던 날. 노인정 할머니들한테서 따뜻한 팥죽을 대접 받았고, '평화바람'은 직접 만든 현판을 대문 옆에 걸었다. 그러고 나서 채 몇 시간이 지나지 않아 두 장의 계고문이 현관문에 나붙었다.
국방부는 '국유재산법'을 들먹이면서 강제 토지 수용을 반대하며 빈집을 점유한 이들에게 경고하였다. 국민의 평화적 생존권과 자기결정권, 자치권 보다도 국유 재산의 보호와 미국이 추진하는 GPR에 대한 원활한 협조가 정부한테는 더욱 중요한 사안임을 계고문에서 밝히고 있었다. 평택에 '평화 신도시'를 건설하고, 용산에는 '민족,역사 공원'을 건립하겠다는 정부 발표에서도 드러나는 것처럼 이 나라의 '평화', '민족', '역사'란 수백 억 혹은 수십 조의 돈을 퍼부으면 보전이 가능한 무엇이다. 전범 국가의 내면은 천박한 물신주의와 강자 숭배 의식으로 만연해 있다. 정의와 양심에 따른 어떤 판단도 국가로부터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슬픔을 나누고, 생명을 가꾸고, 기억을 간직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 국가의 파렴치함을 나는 기억할 것이다. ‘전범 국가’의 국민이라는 오명 아래서 언제까지나 국가의 만행을 묵인하지 않을 것이다. 이곳은 나에게 '양심의 해방구'이다. 다가오는 봄에도, 내년 봄에도 황새울 들판에 연둣빛 모가 자라나길 꿈꾸며 미군기지 확장을 저지하는 그 날까지 이곳에서 싸울 것이다.
2006년 1월 2일
평택 팽성읍 대추리에서, 마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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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추리에 들어와서 살아야지, 잠시라도 좋으니 머물러야지,
라고 생각하신다면 연락주세요.
요 블로그도 좋고
메일(keeper@jinbo.net)도 좋고 전화(018-608-4839 / 031-691-2056)도 좋아요.
사는 동안 함께 할 수 있는 일들을 기획하고 만들었으면 합니다.
우선 제가 알고 있는 일들로는
조약골님이 주말마다 대추리에서 노래를 부른다고 했고,
메이님은 작은 찻집을 생각하고 있고,
누가 할지는 모르겠지만 재활용센터를 만들자는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아! 그리고
노을이 아버지는 사진관 문을 연다고도 했고,
아무개씨는 어린이 놀이방을 한다고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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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럼 추가
pink님은 애니어그램
그리고 필요한 일들 중에 한가지 추가
그것이 무엇이냐 하면...
사람들이 이사를 가면서 키우던 강아지들을 버리고 가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한두마리 어슬렁 돌아다니더니
인제는 그런 개들이 대여섯 마리는 족히 되는 듯 해요.
개들도 불쌍하고 또 들개처럼 되어서 애들을 물을까 걱정도 되어요.
그래서
강아지 사육장도 만들었으면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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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힘을 다해 불을 밝히고 반딧불이 될께요.부가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