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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r. 게임 오버'의 게임 오버

  • 등록일
    2010/04/20 17:20
  • 수정일
    2010/09/13 12:21

‘미스터 게임오버’ 에릭 가니에(Eric Gagne)가 은퇴했다고 한다.
 

1976년 1월 6일생으로 올해 서른 네 살이 된 가니에는, 최근 한 인터뷰에서 “더 이상 승부욕이 생기지 않는다(no longer has competitive drive for the game)”고 말했다. 아마도 운동선수에게 이 말보다 은퇴 이유를 더 잘 드러내는 표현을 없을 게다.

 

캐나다 몬트리올 출신으로 1995년 LA 다저스에 드래프트된 가니에가 처음 메이저리그 마운드를 밟은 것은 1999년 9월 7일이었다. 이후 3년간 주로 선발투수로 나서던 가니에는 신통찮은 성적을 보였지만(1999-2001, 11승 14패), 2002년 마무리 투수로 전환하며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홈 팬들로부터 “가니에가 등장했으니 이긴 경기”라는 의미의 ‘미스터 게임오버’란 별명을 얻은 것도 이 때부터다.

 

[사진] 다저스 시절의 에릭 가니에. 2003년 '세이브 성공률 100%'를 달성한 그에게 '미스터 게임오버'란 별명은 당연한 것이었다. 딱 봐도 위풍당당하지 않은가.

 

가니에의 전성기는 2002년부터 2004년까지로 볼 수 있다. 이 기간 동안 가니에는 전대미문의 ‘86 연속 세이브’ 기록을 달성하고, 2003년에는 55번의 세이브 기회를 맞아 55세이브(방어율 1.20)를 달성하며 내셔널리그 사이영상을 수상했다. 내서널리그에서 구원투수로 사이영상을 수상한 것은 가니에를 포함해 4명에 불과하다. 가니에는 2003년 82.1이닝을 던지며 137개의 삼진을 잡아내는 동안 고작 20개의 볼넷만을 허용했다. 피홈런 숫자도 2개 뿐이다. 가니에의 2003년 WPA(Win Probability Added, 승리공헌도)는 무려 6.6으로, 이는 다른 평균 수준의 투수가 가니에를 대체했을 경우 LA 다저스가 6.6승을 손해봤을 것이란 뜻이다.

 

2003년 가니에의 주무기는 직구와 체인지업. 당시 그는 평균구속 95.2마일의 패스트볼과 85.4마일의 체인지업을 각각 55.8%-30.8%의 비율로 구사하며 타자들을 요리했다. 똑같은 투구동작에서 10마일 이상의 속도차가 나는 공이 날아오니, 타자들로선 헛방망이질을 하기 십상이었다.

 

[사진]  이름 철자때문에 초창기 한국 해설자로부터 '개그니'란 개그스런 이름으로 불렸던 가니에.

 

선발투수 가니에가 마무리로 보직을 바꾼 것은 어찌 보면 운이었다. 1998년부터 다저스의 마무리를 맡았던 제프 쇼(Jeff Shaw)가 2000년 시즌을 끝으로 은퇴하자, 단장으로 새로 부임한 댄 애번스는 시장에서 쇼를 대체할 마무리 요원을 물색하기 시작했다. 애번스는 토론토 블루제이스의 빌리 카치(Billy Koch)를 영입대상으로 정하고 총력을 기울였으나 오클랜드에 빼앗기자, 맷 허지스(Matt Herges)를 대체요원으로 세울 요량이었다. 하지만 허지스마저 길레르모 모타(Guillermo Mota) 영입을 위한 트레이드 카드로 사용되자, 결국 ‘차차차선’으로 택한 것이 가니에의 마무리 전향이었다. 결과는, 잭 팟.

 

가니에의 패스트볼은 이듬해인 2004년 평균구속이 95.7마일까지 치솟았지만, 그게 끝이었다. 2005년 이후 팔꿈치와 엉덩이, 어깨부상에 시달리며 수 차례 수술을 받은 가니에의 성적은 갈수록 하향세를 면치 못했다. 2006년 12월 19일 텍사스 레인저스와 FA계약을 맺으며 재기를 시도했지만 여의치 않았다. 결국 텍사스에서 보스턴으로 트레이드된 뒤(2007) 이어 밀워키 브루어스(2008-2009)와 계약을 맺었지만, 2009년 3월 밀워키에서 방출된 뒤 캐나다 독립리그에서 선수생활을 이어갔다. 설상가상으로 2007년 12월 메이저리그 금지약물 조사 위원회 조사결과 ‘약물복용 선수 명단’에 이름을 올리며 윤리적으로도 구석에 몰리는 처지가 됐다. 2008년 밀워키 시절에는 ‘10세이브-3패-7블론세이브’, 방어율 5.44의 저조한 성적을 보였다. 급기야 밀워키 팬들로부터 “가니에가 등장했으니 진 경기”라는 의미의 ‘미스터 게임오버’란 치욕스런 별명을 얻은 것도 이 즈음이다.

 

[그림] 가니에의 '미스터 게임오버'란 별명이 '같은 발음이지만 다른 뜻'으로 쓰이게 된 것을 표현한 최훈 작가의 카툰.

 

가니에의 전성기는 짧고 굵었다. 불과 3년에 걸친 그의 전성기였지만, 이 기간 동안 그는 △한 시즌 55 세이브(내셔널리그 통산 1위) △86 연속 세이브(메이저리그 1위) △사이영상 수상 등 의미 있는 기록을 양산했다. 특히 구원투수가 선발요원에 비해 불이익을 받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는 시대에 ‘마무리 투수’의 사이영상 수상은 매우 의미 있는 현상이었다.

 

[사진] 100마일에 가까운 패스트볼과 80마일 중반의 체인지업을 스트라이크존 구석구석으로 섞어 던지는 그 앞에서 타자들의 배트가 한없이 초라해지던 그 시절. 등장음악인 'Welcome to the Jungle'이 울려퍼지는 가운데 가니에가 마운드를 향해 걸어올 때면, 상대편 선수들이 지레 짐을 싸기도 했다.

 

가니에는 캐나다인이다. 스스로도 “영어보다는 불어가 말하기 편하다”고 밝혔고, 아내와도 불어로 대화한다. 다저스 시절 그의 사물함에는 언제나 캐나다국기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따지고 보면 그 역시 이방인이었을지 모른다. (투약 당시에는 금지약물이 아니었지만) 약물복용 사실이 들통나며, 한 시절의 영예가 송두리째 ‘도둑질’로 각인된 그. 유난히 그의 은퇴가 쓸쓸하고 애처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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