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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 번역 2-3 (1)

이 번역은 1942년 갈리마르에서 출간된 L'étranger를 원본으로 삼으며, 때로 이휘영, 김화영, 이기언, 김예령, 이정서 번역을 참고한다.

 

한국에서 L'étranger 원본의 저작권은 소멸했다. 이 번역본은 무료로 배포 가능하다. 단, 영리 목적 사용은 불가능하며, 일부나 전부를 어떠한 형태로도 가공 내지 수정할 수 없다. 어차피 카뮈의 간결함을 한국어로 살려본답시고 내 멋대로 의역한 부분이 많아서 그렇게까지 신뢰할 만하진 않다.

 

 

제2부

 

III

 

이듬해 여름이 어느새 지난여름을 대신한 셈이었다. 더위가 서서히 찾아오면서 무언가 새로운 일이 급작스럽게 벌어지리란 걸 알았다. 내 사건은 중죄법원 마지막 개정기 때 다뤄질 예정이었다. 마지막 개정기는 6월 안에 끝난다. 심리가 시작되던 날, 바깥은 햇살로 가득했다. 변호인은 이삼일이면 심리가 끝날 거라 장담했다. 그는 덧붙였다. “게다가 이번 개정기에 뫼르소 씨 건보다 더 중요한 사건이 잡혀서 법원이 바쁠 거예요. 뫼르소 씨 바로 다음이 어떤 존속살해범 차례거든요.”

 

 

아침 일곱 시 반이 되자 나를 데리러 왔다. 호송차를 타고 법원으로 갔다. 경관 두 명이 나를 어둠 냄새가 나는 작은 방에 들어가게 했다. 우리는 문 근처에서 기다렸다. 문 너머로 목소리, 호명, 의자 소리, 마을 축제에서 공연이 끝난 뒤 춤을 추려고 자리를 정리할 때와 같은 소란스러움이 들려 왔다. 경관들은 판사들을 기다려야 한다고 말했다. 둘 중 한 명이 나한테 담배를 권했으나 거절했다. 잠시 후 그는 “떨리는지” 물었다. 아니라고 대답했다. 더구나 재판을 구경하는 게 나름 기대되기도 했다. 여태 그럴 기회가 한 번도 없었다. 다른 경관이 말했다. “그렇긴 한데, 결국 지치고 말아요.”

 

 

시간이 조금 흐르자 방에서 작은 벨이 울렸다. 경관들이 수갑을 풀어줬다. 문을 열더니 나를 피고인석으로 데려갔다. 법정은 사람들로 미어터졌다. 블라인드가 쳐져 있었는데도 햇살이 군데군데 스며들었고, 공기는 벌써 숨 막혔다. 창문은 닫혀 있었다. 내가 자리에 앉자 경관들이 나를 에워쌌다. 그때야 열 지어 나를 마주 보는 얼굴들이 눈에 들어왔다. 다들 나를 바라봤다. 배심원들이구나. 그런데 서로를 구별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저 트램 좌석 앞에 선 느낌이었다. 이 이름 모를 승객들은 새로 올라탄 사람한테 놀림거리가 없을까 훑어보는 중이었다. 물론 어리석은 생각이었다. 배심원들은 놀림거리가 아니라 범죄를 찾는 사람들이니까. 하여간 별 차이는 없었고, 어쨌든 내가 받은 인상은 그랬다.

 

 

닫힌 방 안에 사람이 이토록 많아 조금 어리둥절했다. 법정을 다시 둘러봤지만 얼굴을 분간할 수 없었다. 처음엔 다들 나를 보려고 앞다투는 중이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던 것 같다. 내가 관심받는 경우는 드물었다. 나 때문에 다들 이 소란을 피운다는 걸 노력 끝에 이해했다. 경관한테 말했다. “사람이 정말 많네요!” 기자들 때문이라며 배심원석 아래 책상 근처에 모인 사람들을 가리켰다. 경관이 말했다. “다들 왔군요.” “누가요?” 그는 재차 말했다. “기자들이요.” 경관과 아는 사이였던 기자 한 명이 경관을 보더니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나이가 꽤 든 사람으로, 친절했고, 약간 찡그리는 인상이었다. 기자는 경관과 뜨거운 악수를 했다. 그 순간 사람들이 서로 만나고, 부르고, 이야기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비슷한 부류끼리 모여 즐거워하는 사교 모임 같았다. 그리고 내가 괜히 낀 사람, 잉여물 같다는, 마치 불청객 같다는 이상한 느낌이 마음을 맴돌았다. 그래도 기자는 나한테 미소 지으며 말을 걸었다. 모든 일이 잘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나는 고맙다고 했다. 기자는 덧붙였다. “그게요, 뫼르소 씨 사건을 좀 크게 실었답니다. 여름엔 워낙 기삿거리가 부족해요. 뫼르소 씨 사건과 그 존속살해범 이야기 말곤 딱히 실을 만한 게 없었죠.” 그러고는 기자들 사이로 살찐 족제비를 닮은 키 작은 남성을 가리켰다. 엄청나게 큰 검은 테 안경을 낀 사람이었다. 파리에서 파견된 특파원이란다. “저 사람이 뫼르소 씨 때문에 여길 온 건 아니에요. 존속살해범 재판을 취재하러 온 김에 뫼르소 씨 사건까지 다루게 된 거죠.” 나는 또 하마터면 고맙다는 말을 할 뻔했다. 그런데 그게 얼마나 우스울지 생각했다. 기자는 나한테 손을 정중하게 흔들곤 떠났다. 몇 분 정도 더 기다렸다.

 

 

법복 차림의 변호인이 동료들한테 둘러싸여 도착했다. 기자들 쪽으로 가더니 악수를 했다. 농담을 주고받고 웃었다. 화기애애해 보였다. 벨이 법정에 울려 퍼지자 모두 제자리로 돌아갔다. 변호인이 내 쪽으로 오더니 악수를 한 후, 묻는 말에 짧게 대답하고, 괜히 나서서 말하지 말고, 나머지는 자기한테 맡기라고 조언했다.

 

 

내 왼편에서 의자를 뒤로 끄는 소리가 들렸다. 마르고 키가 큰 사람이 보였다. 붉은 옷을 입고 코안경을 쓴 채, 법복을 조심스럽게 접으며 앉았다. 검사였다. 법원 경위가 판사들의 도착을 알렸다. 동시에 두 개의 큰 선풍기가 소리 내며 돌아가기 시작했다. 판사 셋이 관련 서류를 들고 법정을 굽어보는 법대로 재빨리 걸어갔다. 두 명은 검은 옷, 한 명은 붉은 옷차림이었다. 붉은 법복을 입은 사람이 가운데에 앉더니 법모를 자기 앞에 놓고, 손수건으로 작은 대머리를 닦으며 공판의 개정을 알렸다.

 

 

기자들이 벌써부터 손에 펜을 들었다. 다들 무심해 보였고, 조금 빈정거린단 느낌을 줬다. 그래도 그중 회색 플란넬 옷과 파란 넥타이 차림의 유독 젊어 보이는 기자 한 명이 펜을 내려놓은 채 나를 바라봤다. 약간 비대칭인 그 얼굴에선 나를 주의 깊게 살펴보는 무척 맑은 두 눈밖에 안 보였다. 어떤 뚜렷한 감정도 읽을 수 없는 눈길이었다. 마치 내가 나를 바라보는 묘한 기분이었다. 아마 그 묘한 기분 탓에, 그리고 소송절차가 생소한 탓에, 그 뒤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잘 이해하지 못했다. 배심원 선정, 재판장이 변호인, 검사, 배심원단에게 하던 질문(그럴 때마다 배심원들은 전부 법대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공소장의 빠른 낭독. 내가 아는 장소와 사람 이름도 들려왔다. 그리고 변호인에게 몇 가지 질문을 더 했다.

 

 

재판장이 증인 호명부터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경위가 내 주의를 끄는 이름들을 읊었다. 아까까지만 해도 막연했던 방청객 사이에서 양로원 원장과 수위, 다 늙은 토마 페레스, 레몽, 마송, 살라마노, 마리가 일어났다가 옆쪽 문으로 사라져가는 모습이 보였다. 마리는 걱정스러운 손짓을 했다. 그들을 더 일찍 알아보지 못해 놀라던 참이었는데 마지막으로 셀레스트가 호명을 받고 일어났다. 셀레스트 옆에 식당에서 봤던 키 작은 여성이 보였다. 여성은 지난번처럼 재킷을 입었고, 여전히 또렷하고 단호한 표정을 지었다. 나를 빤히 바라봤다. 하지만 재판장이 말하기 시작해 따로 생각할 시간이 없었다. 재판장은 본격적으로 심리에 들어가겠다며, 굳이 방청객들에게 정숙하라고 할 필요가 없으리라 믿는다고 말했다. 자기는 객관적인 검토가 필요한 사건에 대한 소송을 공정하게 지휘할 임무가 있다고 설명했다. 배심원단의 평결은 정의에 입각해 받아들여질 것이며, 조금이라도 불미스러운 일이 일어나면 반드시 퇴정을 명령하겠단다.

 

 

갈수록 더웠고, 몇몇 방청객은 신문으로 부채질했다. 그래서 종이 바스락거리는 작은 소리가 계속됐다. 재판장이 신호를 보내자 경위가 짚으로 엮은 부채 세 개를 가져왔다. 판사들은 얼른 부채를 집어 들었다.

 

 

나에 대한 신문이 곧 시작됐다. 재판장은 차분하게 질문했다. 친절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우선 인정신문부터 했다. 짜증이 나긴 했지만, 자칫 엉뚱한 사람을 재판하면 큰일이니 인정신문을 할 만도 하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그러고 나서 재판장이 내가 한 행위를 읊기 시작했다. 세 문장에 한 번꼴로 나한테 “맞습니까?”라고 물었다. 그때마다 변호인의 지시대로 “네, 재판장님.”이라고 대답했다. 재판장이 사건을 면밀하게 따졌기 때문에 시간이 오래 걸렸다. 기자들은 내내 필기했다. 아까의 젊은 기자와 작은 자동인형의 시선이 느껴졌다. 트램에 나란히 앉은 승객들은 죄다 재판장을 향했다. 재판장은 기침하더니 서류를 들춰보고, 부채질하며 내 쪽으로 몸을 돌렸다.

 

 

재판장은 이제부터 사건과 다소 상관없어 보이지만 어쩌면 사건의 본질과 관련이 있을 수 있는 질문들을 하겠다고 말했다. 엄마 이야기를 하려나 보구나 싶었다. 얼마나 귀찮던지. 왜 엄마를 양로원에 모셨는지 물었다. 간병하고 치료할 돈이 부족해서 그랬다고 대답했다. 그것 때문에 개인적으로 힘들었는지 물었다. 엄마나 나나 서로 기대하는 게 없었다고, 다른 누구에게도 마찬가지였다고, 서로 새로운 삶에 익숙해졌다고 말했다. 재판장은 이 점은 더 이상 따지지 않겠다며 검사더러 질문이 더 있는지 물었다.

 

 

검사는 반쯤 등을 돌린 채 나를 바라보지 않으며, 재판장이 허락한다면 내가 아랍인을 살해할 의도를 갖고 혼자 샘으로 돌아간 건지 알고 싶다고 밝혔다. “아닙니다.” 나는 대답했다. “그렇다면 어째서 피고인은 무장한 상태였으며, 어째서 그 특정한 장소로 돌아간 건가요?” 나는 우연이었다고 말했다. 그러자 검사가 불쾌한 말투로 “일단 여기까지 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다음부턴 모든 게 혼란스러웠다. 적어도 나한텐 그랬다. 하지만 몇 차례 이야기가 오고 간 후 재판장은 일단 심리를 중단한 뒤 증인신문을 위해 오후에 계속하겠다고 말했다.

 

 

생각할 시간이 없었다. 나를 데리고 갔다. 호송차에 태운 뒤 교도소로 향했다. 교도소에서 식사했다.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서서히 피곤이 올라오려는 순간 나를 도로 데리러 왔다. 모든 게 다시 시작됐다. 나는 아까와 같은 법정에서, 아까와 같은 얼굴들과 마주했다. 다만 훨씬 더웠고, 배심원들, 검사, 변호인, 몇몇 기자들은 기적처럼 어디서 짚으로 된 부채를 구해왔다. 젊은 기자와 작은 여성도 여전히 있었다. 그런데 둘은 부채질하지 않았고, 아직도 말없이 나를 바라봤다.

 

 

내 얼굴을 뒤덮은 땀을 조금 닦아냈다. 양로원 원장을 부르는 소리를 듣고 나서야 여기가 어딘지, 내가 누군지 조금 정신 차릴 수 있었다. 원장한테 엄마가 내 불평을 했는지 물었다. 원장은 그렇긴 한데 재원자가 피붙이 불평을 하는 건 워낙 흔한 일이라고 말했다. 재판장은 내가 자기를 양로원에 보내서 엄마가 불평을 했는지 구체적으로 물었고, 원장은 그렇다고 말했다. 그런데 이번엔 아무 말도 덧붙이지 않았다. 다른 질문이 이어졌다. 원장은 내가 장례식 날 보인 침착함 때문에 놀랐다고 대답했다. 더 자세히 말해달라는 요구가 이었다. 원장은 자기 구두 끄트머리를 보더니 내가 엄마를 보려 하지 않았고, 한 번도 울지 않았고, 장례가 끝나자 엄마 묘지에 가서 묵상하지도 않고 바로 떠났다고 말했다. 장의사 직원 한 명이 내가 엄마 나이를 모른다고 해서 또 놀랐다고 덧붙였다. 잠시 침묵이 이어졌다. 재판장은 나에 관한 증언이 맞는지 물었다. 원장이 질문을 이해하지 못하자 재판장은 “절차상 하는 질문입니다.”라고 말했다. 그러고 나서 재판장은 차장 검사한테 증인에게 할 질문이 더 있는지 물었다. 검사는 “없습니다! 이걸로도 충분합니다.”라고 말했다. 어찌나 큰 목소리로, 어찌나 득의양양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그 말을 했던지 몇 년 만에 처음으로 울고 싶다는 바보 같은 심정이 들었다. 여기 모인 사람들이 나를 얼마나 싫어하는지 느껴졌으니까.

 

 

재판장은 배심원단과 변호인에게 질문이 더 있는지 물은 뒤 수위로 넘어갔다. 예의 의전이 반복됐다. 다른 사람들과도 마찬가지였지만. 수위는 증인석으로 가던 중 나를 바라보더니 시선을 돌렸다. 그는 질문에 대답했다. 내가 엄마를 보려 하지 않았으며, 담배를 피웠으며, 잠을 잤으며, 카페오레를 마셨다고 말했다. 법정 전체가 술렁이는 게 느껴졌다. 처음으로 내가 죄를 지었다는 걸 깨달았다. 수위더러 카페오레와 담배 이야기를 다시 말해달라고 했다. 차장 검사가 빈정거리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 순간 변호인이 수위에게 나와 같이 담배를 피우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하지만 검사가 일어서며 격하게 항의했다. “도대체 지금 누가 범죄자입니까? 증언을 평가절하하려는 의도로 검찰 측 증인을 욕보이는 질문을 하는 게 온당하긴 합니까? 그래 봤자 명명백백한 증언입니다!” 재판장은 어쨌든 질문에 답하라고 했다. 노인네는 난처하다는 듯이 말했다. “그래선 안 됐는데… 뫼르소 씨께서 권하시는 담배를 차마 거절할 수 없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나한테 덧붙일 말이 없는지 물었다. “없습니다.” 나는 대답했다. “다만 제가 증인에게 담배를 권한 건 맞습니다.” 그러자 수위가 약간 놀라며 고맙다는 듯이 나를 바라봤다. 수위는 잠시 망설이더니 자기가 나한테 카페오레를 권했다고 말했다. 변호인이 상당히 득의양양해하며 배심원들이 잘 참작해주리라 믿는다고 했다. 그런데 검사가 우리 머리 위로 고함치듯 말했다. “네, 배심원 여러분께서 잘 참작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남이야 커피를 권할 수도 있지만, 자기를 낳아준 분의 시신을 앞에 둔 아들은 마땅히 커피를 거절했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시리라 의심치 않습니다.” 수위는 제자리로 돌아갔다.

 

 


Deuxième partie

 

III

 

Je peux dire qu'au fond l'été a très vite remplacé l'été. Je savais qu'avec la montée des premières chaleurs surviendrait quelque chose de nouveau pour moi. Mon affaire était inscrite à la dernière session de la cour d'assises et cette session se terminerait avec le mois de juin. Les débats se sont ouverts avec, au-dehors, tout le plein du soleil. Mon avocat m'avait assuré qu'ils ne dureraient pas plus de deux ou trois jours. « D'ailleurs, avait-il ajoute, la cour sera pressée parce que votre affaire n'est pas la plus importante de la session. Il y a un parricide qui passera tout de suite après. »

 

 

À sept heures et demie du matin, on est venu me chercher et la voiture cellulaire m'a conduit au Palais de justice. Les deux gendarmes m'ont fait entrer dans une petite pièce qui sentait l'ombre. Nous avons attendu, assis près d'une porte derrière laquelle on entendait des voix, des appels, des bruits de chaises et tout un remue-ménage qui m'a fait penser à ces fêtes de quartier où, après le concert, on range la salle pour pouvoir danser. Les gendarmes m'ont dit qu'il fallait attendre la cour et l'un d'eux m'a offert une cigarette que j'ai refusée. Il m'a demandé peu après « si j'avais le trac ». J'ai répondu que non. Et même, dans un sens, cela m'intéressait de voir un procès. Je n'en avais jamais eu l'occasion dans ma vie : « Oui, a dit le second gendarme, mais cela finit par fatiguer. »

 

 

Après un peu de temps, une petite sonnerie a résonné dans la pièce. Ils m'ont alors ôté les menottes. Ils ont ouvert la porte et m'ont fait entrer dans le box des accusés. La salle était pleine à craquer. Malgré les stores, le soleil s'infiltrait par endroits et l'air était déjà étouffant. On avait laissé les vitres closes. Je me suis assis et les gendarmes m'ont encadré. C'est à ce moment que j'ai aperçu une rangée de visages devant moi. Tous me regardaient : j'ai compris que c'étaient les jurés. Mais je ne peux pas dire ce qui les distinguait les uns des autres. Je n'ai eu qu'une impression : j'étais devant une banquette de tramway et tous ces voyageurs anonymes épiaient le nouvel arrivant pour en apercevoir les ridicules. Je sais bien que c'était une idée niaise puisque ici ce n'était pas le ridicule qu'ils cherchaient, mais le crime. Cependant la différence n'est pas grande et c'est en tout cas l'idée qui m'est venue.

 

 

J'étais un peu étourdi aussi par tout ce monde dans cette salle close. J'ai regardé encore le prétoire et je n'ai distingué aucun visage. Je crois bien que d'abord je ne m'étais pas rendu compte que tout ce monde se pressait pour me voir. D'habitude, les gens ne s'occupaient pas de ma personne. Il m'a fallu un effort pour comprendre que j'étais la cause de toute cette agitation. J'ai dit au gendarme : « Que de monde ! » Il m'a répondu que c'était à cause des journaux et il m'a montré un groupe qui se tenait près d'une table sous le banc des jurés. Il m'a dit : « Les voilà. » J'ai demandé : « Qui ? » et il a répété : « Les journaux. » Il connaissait l'un des journalistes qui l'a vu a ce moment et qui s'est dirigé vers nous. C'était un homme déjà âgé, sympathique, avec un visage un peu grimaçant. Il a serré la main du gendarme avec beaucoup de chaleur. J'ai remarqué à ce moment que tout le monde se rencontrait, s'interpellait et conversait, comme dans un club où l'on est heureux de se retrouver entre gens du même monde. Je me suis expliqué aussi la bizarre impression que j'avais d'être de trop, un peu comme un intrus. Pourtant, le journaliste s'est adressé à moi en souriant. Il m'a dit qu'il espérait que tout irait bien pour moi. Je l'ai remercié et il a ajouté : « Vous savez, nous avons monté un peu votre affaire. L'été, c'est la saison creuse pour les journaux. Et il n'y avait que votre histoire et celle du parricide qui vaillent quelque chose. » Il m'a montré ensuite, dans le groupe qu'il venait de quitter, un petit bonhomme qui ressemblait à une belette engraissée, avec d'énormes lunettes cerclées de noir. Il m'a dit que c'était l'envoyé spécial d'un journal de Paris : « Il n'est pas venu pour vous, d'ailleurs. Mais comme il est chargé de rendre compte du procès du parricide, on lui a demandé de câbler votre affaire en même temps. » Là encore, j'ai failli le remercier. Mais j'ai pensé que ce serait ridicule. Il m'a fait un petit signe cordial de la main et nous a quittés. Nous avons encore attendu quelques minutes.

 

 

Mon avocat est arrivé, en robe, entouré de beaucoup d'autres confrères. Il est allé vers les journalistes, a serré des mains. Ils ont plaisanté, ri et avaient l'air tout à fait à leur aise, jusqu'au moment où la sonnerie a retenti dans le prétoire. Tout le monde a regagné sa place. Mon avocat est venu vers moi, m'a serré la main et m'a conseillé de répondre brièvement aux questions qu'on me poserait, de ne pas prendre d'initiatives et de me reposer sur lui pour le reste.

 

 

À ma gauche, j'ai entendu le bruit d'une chaise qu'on reculait et j'ai vu un grand homme mince, vêtu de rouge, portant lorgnon, qui s'asseyait en pliant sa robe avec soin. C'était le procureur. Un huissier a annoncé la cour. Au même moment, deux gros ventilateurs ont commencé de vrombir. Trois juges, deux en noir, le troisième en rouge, sont entrés avec des dossiers et ont marché très vite vers la tribune qui dominait la salle. L'homme en robe rouge s'est assis sur le fauteuil du milieu, a posé sa toque devant lui, essuyé son petit crâne chauve avec un mouchoir et déclaré que l'audience était ouverte.

 

 

Les journalistes tenaient déjà leur stylo en main. Ils avaient tous le même air indiffèrent et un peu narquois. Pourtant, l'un d'entre eux, beaucoup plus jeune, habillé en flanelle grise avec une cravate bleue, avait laissée son stylo devant lui et me regardait. Dans son visage un peu asymétrique, je ne voyais que ses deux yeux, très clairs, qui m'examinaient attentivement, sans rien exprimer qui fût définissable. Et j'ai eu l'impression bizarre d'être regardé par moi-même. C'est peut-être pour cela, et aussi parce que je ne connaissais pas les usages du lieu, que je n'ai pas très bien compris tout ce qui s'est passé ensuite, le tirage au sort des jurés, les questions posées par le président à l'avocat, au procureur et au jury (à chaque fois, toutes les têtes des jurés se retournaient en même temps vers la cour), une lecture rapide de l'acte d'accusation, où je reconnaissais des noms de lieux et de personnes, et de nouvelles questions à mon avocat.

 

 

Mais le président a dit qu'il allait faire procéder à l'appel des témoins. L'huissier a lu des noms qui ont attiré mon attention. Du sein de ce public tout à l'heure informe, j'ai vu se lever un à un, pour disparaître ensuite par une porte latérale, le directeur et le concierge de l'asile, le vieux Thomas Pérez, Raymond, Masson, Salamano, Marie. Celle-ci m'a fait un petit signe anxieux. Je m'étonnais encore de ne pas les avoir aperçus plus tôt, lorsque à l'appel de son nom, le dernier, Céleste s'est levé. J'ai reconnu à côté de lui la petite bonne femme du restaurant, avec sa jaquette et son air précis et décidé. Elle me regardait avec intensité. Mais je n'ai pas eu le temps de réfléchir parce que le président a pris la parole. Il a dit que les véritables débats allaient commencer et qu'il croyait inutile de recommander au public d'être calme. Selon lui, il était là pour diriger avec impartialité les débats d'une affaire qu'il voulait considérer avec objectivité. La sentence rendue par le jury serait prise dans un esprit de justice et, dans tous les cas, il ferait évacuer la salle au moindre incident.

 

 

La chaleur montait et je voyais dans la salle les assistants s'éventer avec des journaux. Cela faisait un petit bruit continu de papier froissé. Le président a fait un signe et l'huissier a apporte trois éventails de paille tressée que les trois juges ont utilisés immédiatement.

 

 

Mon interrogatoire a commencé aussitôt. Le président m'a questionné avec calme et même, m'a-t-il semblé, avec une nuance de cordialité. On m'a encore fait décliner mon identité et malgré mon agacement, j'ai pensé qu'au fond c'était assez naturel, parce qu'il serait trop grave de juger un homme pour un autre. Puis le président a recommencé le récit de ce que j'avais fait, en s'adressant à moi toutes les trois phrases pour me demander : « Est-ce bien cela ? » À chaque fois, j'ai répondu : « Oui, monsieur le Président », selon les instructions de mon avocat. Cela a été long parce que le président apportait beaucoup de minutie dans son récit. Pendant tout ce temps, les journalistes écrivaient. Je sentais les regards du plus jeune d'entre eux et de la petite automate. La banquette de tramway était tout entière tournée vers le président. Celui-ci a toussé, feuilleté son dossier et il s'est tourné vers moi en s'éventant.

 

 

Il m'a dit qu'il devait aborder maintenant des questions apparemment étrangères à mon affaire, mais qui peut-être la touchaient de fort près. J'ai compris qu'il allait encore parler de maman et j'ai senti en même temps combien cela m'ennuyait. Il m'a demandé pourquoi j'avais mis maman à l'asile. J'ai répondu que c'était parce que je manquais d'argent pour la faire garder et soigner. Il m'a demandé si cela m'avait coûté personnellement et j'ai répondu que ni maman ni moi n'attendions plus rien l'un de l'autre, ni d'ailleurs de personne, et que nous nous étions habitués tous les deux à nos vies nouvelles. Le président a dit alors qu'il ne voulait pas insister sur ce point et il a demandé au procureur s'il ne voyait pas d'autre question à me poser.

 

 

Celui-ci me tournait à demi le dos et, sans me regarder, il a déclaré qu'avec l'autorisation du président, il aimerait savoir si j'étais retourné vers la source tout seul avec l'intention de tuer l'Arabe. « Non », ai-je dit. « Alors, pourquoi était-il armé et pourquoi revenir vers cet endroit précisément ? » J'ai dit que c'était le hasard. Et le procureur a noté avec un accent mauvais : « Ce sera tout pour le moment. » Tout ensuite a été un peu confus, du moins pour moi. Mais après quelques conciliabules, le président a déclaré que l'audience était levée et renvoyée à l'après-midi pour l'audition des témoins.

 

 

Je n'ai pas eu le temps de réfléchir. On m'a emmené, fait monter dans la voiture cellulaire et conduit à la prison où j'ai mangé. Au bout de très peu de temps, juste assez pour me rendre compte que j'étais fatigué, on est revenu me chercher ; tout a recommencé et je me suis trouvé dans la même salle, devant les mêmes visages. Seulement la chaleur était beaucoup plus forte et comme par un miracle chacun des jurés, le procureur, mon avocat et quelques journalistes étaient munis aussi d'éventails de paille. Le jeune journaliste et la petite femme étaient toujours là. Mais ils ne s'éventaient pas et me regardaient encore sans rien dire.

 

 

J'ai essuyé la sueur qui couvrait mon visage et je n'ai repris un peu conscience, du lieu et de moi-même que lorsque j'ai entendu appeler le directeur de l'asile. On lui a demandé si maman se plaignait de moi et il a dit que oui mais que c'était un peu la manie de ses pensionnaires de se plaindre de leurs proches. Le président lui a fait préciser si elle me reprochait de l'avoir mise à l'asile et le directeur a dit encore oui. Mais cette fois, il n'a rien ajouté. À une autre question, il a répondu qu'il avait été surpris de mon calme le jour de l'enterrement. On lui a demandé ce qu'il entendait par calme. Le directeur a regardé alors le bout de ses souliers et il a dit que je n'avais pas voulu voir maman, je n'avais pas pleuré une seule fois et j'étais parti aussitôt après l'enterrement sans me recueillir sur sa tombe. Une chose encore l'avait surpris : un employé des pompes funèbres lui avait dit que je ne savais pas l'âge de maman. Il y a eu un moment de silence et le président lui a demandé si c'était bien de moi qu'il avait parlé. Comme le directeur ne comprenait pas la question, il lui a dit : « C'est la loi. » Puis le président a demandé à l'avocat général s'il n'avait pas de question à poser au témoin et le procureur s'est écrié : « Oh ! non, cela suffit », avec un tel éclat et un tel regard triomphant dans ma direction que, pour la première fois depuis bien des années, j'ai eu une envie stupide de pleurer parce que j'ai senti combien j'étais détesté par tous ces gens-là.

 

 

Après avoir demandé au jury et à mon avocat s'ils avaient des questions à poser, le président a entendu le concierge. Pour lui comme pour tous les autres, le même cérémonial s'est répété. En arrivant, le concierge m'a regardé et il a détourné les yeux. Il a répondu aux questions qu'on lui posait. Il a dit que je n'avais pas voulu voir maman, que j'avais fumé, que j'avais dormi et que j'avais pris du café au lait. J'ai senti alors quelque chose qui soulevait toute la salle et, pour la première fois, j'ai compris que j'étais coupable. On a fait répéter au concierge l'histoire du café au lait et celle de la cigarette. L'avocat général m'a regardé avec une lueur ironique dans les yeux. À ce moment, mon avocat a demandé au concierge s'il n'avait pas fumé avec moi. Mais le procureur s'est élevé avec violence contre cette question : « Quel est le criminel ici et quelles sont ces méthodes qui consistent à salir les témoins de l'accusation pour minimiser des témoignages qui n'en demeurent pas moins écrasants ! » Malgré tout, le président a demandé au concierge de répondre à la question. Le vieux a dit d'un air embarrassé : « Je sais bien que j'ai eu tort. Mais je n'ai pas osé refuser la cigarette que Monsieur m'a offerte. » En dernier lieu, on m'a demandé si je n'avais rien à ajouter. « Rien, ai-je répondu, seulement que le témoin a raison. Il est vrai que je lui ai offert une cigarette. » Le concierge m'a regardé alors avec un peu d'étonnement et une sorte de gratitude. Il a hésité, puis il a dit que c'était lui qui m'avait offert le café au lait. Mon avocat a triomphé bruyamment et a déclaré que les jurés apprécieraient. Mais le procureur a tonné au-dessus de nos têtes et il a dit : « Oui, MM. les jurés apprécieront. Et ils concluront qu'un étranger pouvait proposer du café, mais qu'un fils devait le refuser devant le corps de celle qui lui avait donné le jour. » Le concierge a regagné son ban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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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 번역 2-2

이 번역은 1942년 갈리마르에서 출간된 L'étranger를 원본으로 삼으며, 때로 이휘영, 김화영, 이기언, 김예령, 이정서 번역을 참고한다.

 

한국에서 L'étranger 원본의 저작권은 소멸했다. 이 번역본은 무료로 배포 가능하다. 단, 영리 목적 사용은 불가능하며, 일부나 전부를 어떠한 형태로도 가공 내지 수정할 수 없다. 어차피 카뮈의 간결함을 한국어로 살려본답시고 내 멋대로 의역한 부분이 많아서 그렇게까지 신뢰할 만하진 않다.

 

 

제2부

 

II

 

결코 입 밖으로 꺼내고 싶지 않은 일들이 있다. 교도소에 들어오고 며칠 지나지 않아, 여기서 보낸 시간을 이야기하고 싶지 않게 되리란 걸 알게 됐다.

 

 

시간이 흐르자 그 거부감이 옅어졌다. 사실 교도소에 있던 첫 며칠간은 별로 실감이 나지 않았다. 마치 뭔 일이 터지지 않을까 기다리는 기분이었다. 마리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면회를 온 뒤 비로소 모든 것이 시작되었다. 마리 편지(아내가 아니라서 더 이상 면회 올 수 없단다)를 받은 날, 그날부터 이 감방이 내 집이자, 내 삶이 멈춘 곳이구나 싶었다. 체포 당일엔 다른 수감자들이 있는 방에 나를 가뒀다. 대부분 아랍인이었다. 그들은 나를 보더니 웃었다. 뭘 해서 들어오게 됐는지 물었다. 아랍인을 죽였다고 하자 다들 조용해졌다. 조금 뒤에 해가 졌다. 수감자들은 어떻게 거적을 이용해 잠자리를 만드는지 알려줬다. 한쪽을 둘둘 말아 베개 삼아 자면 됐다. 빈대들이 밤새도록 얼굴 위로 지나다녔다. 며칠 뒤 독방으로 격리됐다. 판자 침대에서 자야 했다. 용변용 양동이와 양철 대야도 있었다. 교도소는 도시 꼭대기에 있었고, 작은 창 너머로 바다가 보였다. 쇠창살에 기대어 빛을 향해 고개를 내밀던 어느 날, 교도관이 들어오더니 누가 면회 왔다고 알려줬다. 마리일 것 같았다. 마리였다.

 

 

긴 복도, 계단, 그리고 복도를 하나 더 지나 면회실에 도착했다. 매우 큰 공간이었다. 넓은 창 너머로 들어온 햇살이 면회실을 밝혔다. 두 개의 큰 철책이 면회실을 셋으로 길게 나누어 놓았다. 두 철책 사이로 8에서 10미터 정도의 간격이 있어 면회객과 수감자들을 갈라놓았다. 마리가 맞은편에서 보였다. 줄무늬 원피스에, 얼굴을 햇볕에 그을린 모습이었다. 내 쪽엔 십여 명의 수감자가 있었다. 대체로 아랍인들이었다. 마리는 무어 여성들한테 둘러싸였다. 그녀 양옆으로는 검은 복장에 입술을 꽉 다문 쪼그만 노파, 그리고 맨머리에 손짓을 많이 해가며 무척 큰 목소리로 말하는 뚱뚱한 여성. 철책 사이 거리 탓에 면회객들과 수감자들은 아주 크게 말해야 했다. 사람들 목소리가 텅 빈 벽에 반사되어 울렸다. 하늘에서 창문으로 흘러내린 억센 빛은 사방으로 튀어 올랐다. 면회실에 막 들어갔을 때 살짝 현기증이 날 지경이었다. 감방은 더 조용하고 어두웠다. 익숙해지기까지 몇 초 정도 걸렸다. 마침내 가득한 햇살 사이로 얼굴 하나하나가 선명하게 보였다. 둘러보니 철책 사이의 복도 끝에 교도관 한 명이 앉아 있었다. 아랍인 수감자들과 그 가족들은 대체로 웅크려 마주 앉았다. 그들은 소리치지 않았다. 소란에도 불구하고 나직한 목소리로 서로 대화를 나누었다. 밑에서부터 형성된 어렴풋한 속삭임은, 그들 머리 위로 교차하는 대화들에 대비되어 지속적인 저음부처럼 들렸다. 마리한테 다가가는 와중에 이 모든 걸 알아챘다. 마리는 벌써부터 철책에 몸을 기댄 채 있는 힘껏 웃어 보였다. 무척 아름다워 보였지만, 그 말을 어떻게 전할지 몰랐다.

 

 

“좀 어때?” 마리가 큰 소리로 말했다. “어떻긴, 이렇지.” “괜찮아? 더 필요한 건 없고?” “응, 전혀.”

 

 

우리는 말을 멈췄다. 마리는 여전히 웃었다. 뚱뚱한 여성은 내 옆 사람한테 소리 질렀다. 남편 같았다. 솔직해 보이는 인상의 키 큰 금발 남성이었다. 이미 대화가 한창이었다.

 

 

“잔느가 걘 마음에 안 든대.” 여성이 목이 터져라 소리쳤다. “응, 그렇구나.” 남성이 말했다. “당신이 나오면 걜 다시 데려갈 거라고 말했는데도 싫대.”

 

 

레몽이 안부를 전한다고 마리가 건너편에서 소리쳤다. 나는 “고마워.”라고 말했다. 하지만 옆 사람 목소리 때문에 말이 묻혔다. 옆 사람은 “좀 어때 보이는지” 물었다. 아내는 웃으며 “더할 나위 없이 좋아 보인다”고 말했다. 내 왼쪽엔 가녀린 손을 가진 키 작은 젊은이가 말없이 있었다. 아까의 쪼그만 노파와 마주 앉은 채였다. 둘은 깊은 눈길을 주고받았다. 그런데 마리가 내게 희망을 품으라고 소리치는 바람에 그들을 더 오래 관찰하진 못했다. 나는 “그래.”라고 말했다. 동시에 마리를 바라봤다. 마리 어깨를 원피스 위로 감싸고 싶었다. 그 얇은 천을 바랐다. 그밖에 무얼 더 희망해야 하는지 몰랐다. 마리가 여전히 웃는 걸 보니 마리도 그런 뜻이었나 보다. 마리의 반짝이는 치아와 눈가의 잔주름만 보였다. 마리는 다시금 “곧 나오게 될 거야. 그럼 우리 결혼하자!”라고 말했다. 나는 “과연 그렇게 될까?”라고 대답하긴 했지만 뭐라도 말하려고 한 말이었다. 그러자 마리는 여전히 큰 목소리로 그렇다며, 무죄가 선고될 거고, 다시 해수욕할 수 있을 거라고 매우 빠르게 말했다. 그런데 옆에 있던 여성이 바구니를 교도소 측에 맡겼다고 소리 질렀다. 뭐가 들어 있는지 하나하나 열거했다. 비싼 돈 준 거니 꼭 확인하라고 했다. 다른 편에 앉았던 젊은이는 여전히 자기 어머니와 마주 보았다. 아랍인들의 속삭임이 낮게 깔려 지속됐다. 밖에서 들어오는 빛이 창에 기대 부풀어 오르는 것처럼 보였다.

 

 

상태가 별로 안 좋아졌다. 이만 가고 싶었다. 소음 때문에 괴로웠다. 다른 한편으론 마리와 조금 더 오래 있고 싶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모르겠다. 마리는 자기 직장 이야기를 하면서 계속 미소 지었다. 속삭임, 외침, 대화가 교차했다. 내 옆에 있던 작은 젊은이와 노파의 눈길 주위로 침묵의 외딴섬이 형성됐다. 점차 아랍인들을 데려갔다. 첫 수감자를 데려가자마자 거의 모두 말을 멈췄다. 쪼그만 노파는 쇠창살로 다가섰다. 그 순간 교도관이 아들에게 돌아오라고 손짓했다. 젊은이는 “잘 들어가요, 엄마.”라고 말했다. 노파는 쇠창살 사이로 손을 내밀어 시간을 붙잡고 싶다는 듯이 아들에게 천천히, 작은 손짓을 했다.

 

 

노파가 떠나는 동안 모자를 손에 쥔 남성이 들어와 그 자리를 차지했다. 수감자가 한 명 나왔고, 둘은 활기차게 대화했다. 하지만 주위가 워낙 조용해서 둘은 작게 말했다. 오른 편에 있던 남성을 데리러 왔다. 아내는 더 이상 소리칠 필요가 없단 걸 눈치채지 못했단 듯이 여전히 큰 소리로 “몸 잘 챙기고, 조심해야 돼!”라고 말했다. 그리고 내 차례가 왔다. 마리는 손으로 키스를 보냈다. 면회실을 나서기 나는 뒤돌아봤다. 마리는 움직이지 않은 채 얼굴을 쇠창살에 바짝 붙여 여전히 어그러질 정도로 힘껏 미소 짓고 있었다.

 

 

얼마 후 마리 편지를 받았다. 그리고 그때부터 결코 입 밖으로 꺼내고 싶지 않은 일들이 시작됐다. 어차피 뭐든 과장해선 안 된다. 내가 남들보다 잘하는 게 있었다면 바로 과장하지 않는 거였다. 그런데 수감되고 얼마 지나지 않은 동안 나는 여전히 자유인처럼 사고했다. 그게 제일 힘들었다. 예를 들어 해변에서 노닐다가 바다로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발치에 와 닿는 첫 파도 소리, 물속에 몸을 담갔을 때의 촉감과 해방감을 상상하다 보면 감방을 둘러싼 벽이 얼마나 좁은지 순간 느껴졌다. 그런데 이런 기분도 몇 달 안 갔다. 그 이후론 온통 죄수처럼 사고했다. 마당에서 매일 하는 산책이나 변호인 접견을 기다렸다. 나머지 시간은 나름 잘 때웠다. 나더러 마른 그루터기 안에서 하늘에 핀 꽃이나 바라보며 살라고 했어도 결국엔 차츰 익숙해졌으리라는 생각을 자주 했다. 새들이 지나가거나 구름과 마주치길 기다렸을 거다. 마치 변호인이 매고 오는 이상한 넥타이를 기다렸듯, 다른 세계에서 마리 몸을 꼭 껴안을 수 있는 토요일을 기다렸듯. 어쨌든 잘 생각해보면, 난 그루터기에 갇힌 건 아니었다. 나만 못한 처지도 있었다. 결국 무엇이든 간에 익숙해지고 만다. 엄마 생각이었다. 자주 말씀하시던 생각이었다.

 

 

더구나 평소에도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는 건 아니었다. 처음 몇 달은 힘들었다. 그런데 이런저런 노력 덕분에 시간이 그럭저럭 지나갔다. 예컨대 여자가 그리워 괴로웠다. 젊었으니 당연했다. 마리만 생각했던 건 결코 아니다. 그냥 여자 생각이 몹시 났다. 여태까지 알았던 여성들, 여성들을 사랑했던 모든 장면이 어찌나 머리에 떠오르던지 감방이 여성들 얼굴과 내 욕망으로 가득 찼다. 어떤 면에선 불안정해질 정도였다. 한편 그러면서 시간을 죽이기도 했다. 마침내 취사 담당과 식사 시간마다 동행하던 교도관 대장하고 친분을 쌓았다. 여자 이야기는 교도관이 먼저 꺼낸 거였다. 수감자들이 여자 생각 때문에 보통 불만을 품기 시작한단다. 나도 불만이라고, 이런 취급은 부당한 것 같다고 말했다. 교도관은 말했다. “바로 그래서 범죄자들을 교도소로 보내는 거죠.” “뭔 말이에요?” “그렇다니까요, 자유가 그런 거예요. 그 자유를 빼앗는 거죠.”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점이었다. 나는 동의하며 말했다. “그렇네요. 그게 바로 형벌이겠죠?” “그렇죠. 뫼르소 씨야 이해가 되겠죠. 다른 수감자들은 이해를 잘 못 하거든요. 결국 알아서들 해결하지만.” 그러곤 교도관은 떠났다.

 

 

담배도 문제였다. 교도소에 수감되자 벨트, 구두끈, 넥타이, 주머니에 든 물건 전부, 무엇보다 담배를 빼앗겼다. 감방에 갇히고 나서 담배를 좀 돌려달라고 해봤다. 그럴 수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첫 며칠은 너무 힘들었다. 담배 때문에 정말 낙심한 것 같다. 침대 판자에서 뜯어낸 나뭇조각을 빨아대곤 했다. 온종일 끝없는 구역질에 시달렸다. 왜 아무한테도 해 될 게 없는 걸 못하게 하는지 이해가 안 갔다. 시간이 지나고 이것도 형벌의 일부라는 걸 알게 됐다. 그런데 그땐 이미 담배를 안 피우는 게 익숙해진 다음이었다. 나에겐 더 이상 형벌로서 의미는 없던 셈이다.

 

 

이런 불편한 점을 뺀다면 그렇게까지 힘들진 않았다. 결국 시간을 어떻게 죽이느냐가 문제였다. 지난날을 더듬어보기 시작하면서부턴 더 이상 지루하지 않았다. 가끔 내 방을 떠올렸다. 한쪽 구석에서 출발해 눈앞에 보이는 모든 물건을 머릿속으로 열거하며 한 바퀴 도는 상상을 했다. 처음엔 금방이었다. 그런데 다시 할 때마다 조금씩 길어졌다. 가구 하나하나가, 그 안에 담긴 물건 하나하나가, 모든 물건의 디테일이, 그중에서도 무늬, 균열, 잘린 모서리, 색깔, 표면의 결이 떠올라서. 동시에 이 머릿속 목록을 잊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무엇 하나 빼먹지 않고 열거하려 했다. 어찌나 열심히 했던지 몇 주 지나자 방에 뭐가 있는지 생각하며 몇 시간씩 보낼 수 있었다. 그리고 생각하면 할수록 평소에 간과했거나 잊었던 부분들이 새로이 떠올랐다. 단 하루만 살았던 사람이라도 교도소에서 큰 문제 없이 100년은 살 수 있겠단 사실을 깨달았다. 지루해하지 않을 만큼 추억거리가 있을 테니. 어쩌면 그게 이점이기도 했다.

 

 

잠도 문제였다. 처음엔 밤에 잠이 잘 안 왔고, 낮에는 전혀 잘 수 없었다. 차차 밤에 잠이 잘 오기 시작했고, 낮에도 잘 수 있었다. 마지막 몇 달간은 하루에 16시간에서 18시간씩 잠만 잤달까. 남은 6시간은 식사, 용변, 회상, 체코슬로바키아 사람 이야기로 때웠다.

 

 

매트와 침대 판자 사이에 오래된 신문 조각을 찾은 참이었다. 천에 거의 달라붙어 누렇게 변색됐고 앞뒤가 비칠 정도였다. 사건·사고에 실린 기사였다. 도입부가 빠져 있었는데, 보아하니 체코슬로바키아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체코 마을에 살던 남성이 돈을 벌려 마을을 떠났다. 25년 뒤에 부자가 되어 아내와 아이를 데리고 돌아왔다. 남성의 어머니와 누이는 고향 마을에서 여관을 운영하는 중이었다. 남성은 어머니와 누이를 놀래려고 아내와 아이를 다른 곳에 머무르게 한 채 혼자 어머니네 여관으로 갔다. 여관으로 들어갔는데 어머니가 남성을 못 알아봤다. 남성은 장난삼아 객실 하나를 잡았다. 수중에 든 자기 재산을 보여줬다. 밤중에 어머니와 누이는 재산을 훔치려 남성을 망치로 때려죽인 후 시체를 강물에다 던져버렸다. 다음 날 아침 사정을 모르던 아내가 여관으로 찾아가서 여행객의 신분을 밝혔다. 어머니는 목을 맸다. 누이는 우물에 몸을 던졌다. 이 기사를 수천 번은 읽었을 거다. 한편으론 믿기지 않았고, 다른 한편으론 당연하다 싶었다. 결국 자업자득인 면도 있다고 생각했다. 절대 장난을 치면 안 된다.

 

 

여하간 수면, 회상, 신문 기사, 빛과 어둠의 교차 사이로 시간은 흘렀다. 교도소에 있다 보면 시간관념을 잃게 된다는 글을 분명 읽은 적이 있다. 그런데 나한텐 별 의미가 없었다. 하루가 얼마나 길면서도 동시에 짧을 수 있는지 미처 몰랐었다. 분명 살아가기에 너무 길긴 했지만, 어찌나 늘어지던지 하루가 다른 하루의 경계를 허물 정도였다. 하루하루가 이름을 잃어갔다. 내겐 오로지 어제와 내일이라는 단어만이 의미를 가졌다.

 

 

어느 날 교도관이 내가 수감된 지 5개월째 됐다고 말했다. 사실이겠거니 했지만 잘 이해가 안 갔다. 어차피 감방 안에선 늘 같은 하루가 펼쳐졌고, 언제나 같은 일만 반복했다. 바로 그날, 교도관이 떠나고 나서 쇠그릇에 비친 내 얼굴을 봤다. 그릇을 바라보고 웃으려고 노력해봐도 그저 심각해 보이기만 했다. 거울을 앞에 든 채 흔들어 보았다. 미소 지었지만 여전히 엄숙하고 슬픈 표정만 되돌아왔다. 하루가 저물어 갔고, 언급하기 싫은 시간이 되었다. 이름 없는 시간이었다. 저녁의 소리가 침묵의 행렬로 교도소 각층을 올라탔다. 천창으로 다가가 마지막 빛을 빌려 내 모습을 다시 한 번 봤다. 여전히 굳은 얼굴이었다. 어차피 나도 그 순간엔 심각했으니 별로 놀랄 일도 아니지? 그런데 동시에, 몇 달 만에 처음으로 내 목소리가 선명하게 들렸다. 이미 오래전부터 내 귀에 울려 퍼지던 소리였는데, 혼잣말이었단 걸 깨달았다. 그 순간 엄마 장례식 날 간호사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결국 막다른 길이었다. 그리고 누구도 교도소 안에서 맞이하는 저녁이 어떤지 상상할 수 없을 게다.

 

 


Deuxième partie

 

II

 

Il y a des choses dont je n'ai jamais aimé parler. Quand je suis entré en prison, j'ai compris au bout de quelques jours que je n'aimerais pas parler de cette partie de ma vie.

 

 

Plus tard, je n'ai plus trouvé d'importance à ces répugnances. En réalité, je n'étais pas réellement en prison les premiers jours : j'attendais vaguement quelque événement nouveau. C'est seulement après la première et la seule visite de Marie que tout a commencé. Du jour où j'ai reçu sa lettre (elle me disait qu'on ne lui permettait plus de venir parce qu'elle n'était pas ma femme), de ce jour-là, j'ai senti que j'étais chez moi dans ma cellule et que ma vie s'y arrêtait. Le jour de mon arrestation, on m'a d'abord enfermé dans une chambre où il y avait déjà plusieurs détenus, la plupart des Arabes. Ils ont ri en me voyant. Puis ils m'ont demandé ce que j'avais fait. J'ai dit que j'avais tué un Arabe et ils sont restés silencieux. Mais un moment après, le soir est tombé. Ils m'ont expliqué comment il fallait arranger la natte où je devais coucher. En roulant une des extrémités, on pouvait en faire un traversin. Toute la nuit, des punaises ont couru sur mon visage. Quelques jours après, on m'a isolé dans une cellule où je couchais sur un bat-flanc de bois. J'avais un baquet d'aisances et une cuvette de fer. La prison était tout en haut de la ville et, par une petite fenêtre, je pouvais voir la mer. C'est un jour que j'étais agrippé aux barreaux, mon visage tendu vers la lumière, qu'un gardien est entré et m'a dit que j'avais une visite. J'ai pensé que c'était Marie. C'était bien elle.

 

 

J'ai suivi pour aller au parloir un long corridor, puis un escalier et pour finir un et pour finir un autre couloir. Je suis entré dans une très grande salle éclairée par une vaste baie. La salle était séparée en trois parties par deux grandes grilles qui la coupaient dans sa longueur. Entre les deux grilles se trouvait un espace de huit à dix mètres qui séparait les visiteurs des prisonniers. J'ai aperçu Marie en face de moi avec sa robe à raies et son visage bruni. De mon côté, il y avait une dizaine de détenus, des Arabes pour la plupart. Marie était entourée de Mauresques et se trouvait entre deux visiteuses : une petite vieille aux lèvres serrées, habillée de noir, et une grosse femme en cheveux qui parlait très fort avec beaucoup de gestes. À cause de la distance entre les grilles, les visiteurs et les prisonniers étaient obligés de parler très haut. Quand je suis entré, le bruit des voix qui rebondissaient contre les grands murs nus de la salle, la lumière crue qui coulait du ciel sur les vitres et rejaillissait dans la salle, me causèrent une sorte d'étourdissement. Ma cellule était plus calme et plus sombre. Il m'a fallu quelques secondes pour m'adapter. Pourtant, j'ai fini par voir chaque visage avec netteté, détaché dans le plein jour. J'ai observé qu'un gardien se tenait assis à l'extrémité du couloir entre les deux grilles. La plupart des prisonniers arabes ainsi que leurs familles s'étaient accroupis en vis-à-vis. Ceux-là ne criaient pas. Malgré le tumulte, ils parvenaient à s'entendre en parlant très bas. Leur murmure sourd, parti de plus bas, formait comme une basse continue aux conversations qui s'entrecroisaient au-dessus de leurs têtes. Tout cela, je l'ai remarqué très vite en m'avançant vers Marie. Déjà collée contre la grille, elle me souriait de toutes ses forces. Je l'ai trouvée très belle, mais je n'ai pas su le lui dire.

 

 

« Alors ? » m'a-t-elle dit très haut. « Alors, voilà. - Tu es bien, tu as tout ce que tu veux ? - Oui, tout. »

 

 

Nous nous sommes tus et Marie souriait toujours. La grosse femme hurlait vers mon voisin, son mari sans doute, un grand type blond au regard franc. C'était la suite d'une conversation déjà commencée.

 

 

« Jeanne n'a pas voulu le prendre » criait-elle à tue-tête. « Oui, oui », disait l'homme. « Je lui ai dit que tu le reprendrais en sortant, mais elle n'a pas voulu le prendre. »

 

 

Marie a crié de son côté que Raymond me donnait le bonjour et j'ai dit : « Merci. » Mais ma voix a été couverte par mon voisin qui a demandé « s'il allait bien ». Sa femme a ri en disant « qu'il ne s'était jamais mieux porté ». Mon voisin de gauche, un petit jeune homme aux mains fines, ne disait rien. J'ai remarqué qu'il était en face de la petite vieille et que tous les deux se regardaient avec intensité. Mais je n'ai pas eu le temps de les observer plus longtemps parce que Marie m'a crié qu'il fallait espérer. J'ai dit : « Oui. » En même temps, je la regardais et j'avais envie de serrer son épaule par-dessus sa robe. J'avais envie de ce tissu fin et je ne savais pas très bien ce qu'il fallait espérer en dehors de lui. Mais c'était bien sans doute ce que Marie voulait dire parce qu'elle souriait toujours. Je ne voyais plus que l'éclat de ses dents et les petits plis de ses yeux. Elle a crié de nouveau : « Tu sortiras et on se mariera ! » J'ai répondu : « Tu crois ? » mais c'était surtout pour dire quelque chose. Elle a dit alors ces vite et toujours très haut que oui, que je serais acquitté et qu'on prendrait encore des bains. Mais l'autre femme hurlait de son côté et disait qu'elle avait laissé un panier au greffe. Elle énumérait tout ce qu'elle y avait mis. Il fallait vérifier, car tout cela coûtait cher. Mon autre voisin et sa mère se regardaient toujours. Le murmure des Arabes continuait au-dessous de nous. Dehors la lumière a semblé se gonfler contre la baie.

 

 

Je me sentais un peu malade et j'aurais voulu partir. Le bruit me faisait mal. Mais d'un autre côté, je voulais profiter encore de la présence de Marie. Je ne sais pas combien de temps a passé. Marie m'a parlé de son travail et elle souriait sans arrêt. Le murmure, les cris, les conversations se croisaient. Le seul îlot de silence était à côté de moi dans ce petit jeune homme et cette vieille qui se regardaient. Peu à peu, on a emmené les Arabes. Presque tout le monde s'est tu dès que le premier est sorti. La petite vieille s'est rapprochée des barreaux et, au même moment, un gardien a fait signe à son fils. Il a dit : « Au revoir, maman » et elle a passé sa main entre deux barreaux pour lui faire un petit signe lent et prolongé.

 

 

Elle est partie pendant qu'un homme entrait, le chapeau à la main, et prenait sa place. On a introduit un prisonnier et ils se sont parlé avec animation, mais à demi-voix, parce que la pièce était redevenue silencieuse. On est venu chercher mon voisin de droite et sa femme lui a dit sans baisser le ton comme si elle n'avait pas remarqué qu'il n'était plus nécessaire de crier : « Soigne-toi bien et fais attention. » Puis est venu mon tour. Marie a fait signe qu'elle m'embrassait. Je me suis retourné avant de disparaître. Elle était immobile, le visage écrasé contre la grille, avec le même sourire écartelé et crispé.

 

 

C'est peu après qu'elle m'a écrit. Et c'est à partir de ce moment qu'ont commencé les choses dont je n'ai jamais aimé parler. De toute façon, il ne faut rien exagérer et cela m'a été plus facile qu'à d'autres. Au début de ma détention, pourtant, ce qui a été le plus dur, c'est que j'avais des pensées d'homme libre. Par exemple, l'envie me prenait d'être sur une plage et de descendre vers la mer. À imaginer le bruit des premières vagues sous la plante de mes pieds, l'entrée du corps dans l'eau et la délivrance que j'y trouvais, je sentais tout d'un coup combien les murs de ma prison étaient rapprochés. Mais cela dura quelques mois. Ensuite, je n'avais que des pensées de prisonnier. J'attendais la promenade quotidienne que je faisais dans la cour ou la visite de mon avocat. Je m'arrangeais très bien avec le reste de mon temps. J'ai souvent pensé alors que si l'on m'avait fait vivre dans un tronc d'arbre sec, sans autre occupation que de regarder la fleur du ciel au-dessus de ma tête, je m'y serais peu à peu habitué. J'aurais attendu des passages d'oiseaux ou des rencontres de nuages comme j'attendais ici les curieuses cravates de mon avocat et comme, dans un autre monde, je patientais jusqu'au samedi pour étreindre le corps de Marie. Or, à bien réfléchir, je n'étais pas dans un arbre sec. Il y avait plus malheureux que moi. C'était d'ailleurs une idée de maman, et elle le répétait souvent, qu'on finissait par s'habituer à tout.

 

 

Du reste, je n'allais pas si loin d'ordinaire. Les premiers mois ont été durs. Mais justement l'effort que j'ai dû faire aidait à les passer. Par exemple, j'étais tourmenté par le désir d'une femme. C'était naturel, j'étais jeune. Je ne pensais jamais à Marie particulièrement. Mais je pensais tellement à une femme, aux femmes, à toutes celles que j'avais connues, à toutes les circonstances où je les avais aimées, que ma cellule s'emplissait de tous les visages et se peuplait de mes désirs. Dans un sens, cela me déséquilibrait. Mais dans un autre, cela tuait le temps. J'avais fini par gagner la sympathie du gardien-chef qui accompagnait à l'heure des repas le garçon de cuisine. C'est lui qui, d'abord, m'a parlé des femmes. Il m'a dit que c'était la première chose dont se plaignaient les autres. Je lui ai dit que j'étais comme eux et que je trouvais ce traitement injuste. « Mais, a-t-il dit, c'est justement pour ça qu'on vous met en prison. - Comment, pour ça ? - Mais oui, la liberté, c'est ça. On vous prive de la liberté. » Je n'avais jamais pensé à cela. Je l'ai approuvé : « C'est vrai, lui ai-je dit, où serait la punition ? - Oui, vous comprenez les choses, vous. Les autres non. Mais ils finissent par se soulager eux-mêmes. » Le gardien est parti ensuite.

 

 

Il y a eu aussi les cigarettes. Quand je suis entré en prison, on m'a pris ma ceinture, mes cordons de souliers, ma cravate et tout ce que je portais dans mes poches, mes cigarettes en particulier. Une fois en cellule, j'ai demandé qu'on me les rende. Mais on m'a dit que c'était défendu. Les premiers jours ont été très durs. C'est peut-être cela qui m'a le plus abattu. Je suçais des morceaux de bois que j'arrachais de la planche de mon lit. Je promenais toute la journée une nausée perpétuelle. Je ne comprenais pas pourquoi on me privait de cela qui ne faisait de mal à personne. Plus tard, j'ai compris que cela faisait partie aussi de la punition. Mais à ce moment-là, je m'étais habitué à ne plus fumer et cette punition n'en était plus une pour moi.

 

 

À part ces ennuis, je n'étais pas trop malheureux. Toute la question, encore une fois, était de tuer le temps. J'ai fini par ne plus m'ennuyer du tout à partir de l'instant où j'ai appris à me souvenir. Je me mettais quelquefois à penser à ma chambre et, en imagination, je partais d'un coin pour y revenir en dénombrant mentalement tout ce qui se trouvait sur mon chemin. Au début, c'était vite fait. Mais chaque fois que je recommençais, c'était un peu plus long. Car je me souvenais de chaque meuble, et, pour chacun d'entre eux, de chaque objet qui s'y trouvait et, pour chaque objet, de tous les détails et pour les détails eux-mêmes, une incrustation, une fêlure ou un bord ébréché, de leur couleur ou de leur grain. En même temps, j'essayais de ne pas perdre le fil de mon inventaire, de faire une énumération complète. Si bien qu'au bout de quelques semaines, je pouvais passer des heures, rien qu'à dénombrer ce qui se trouvait dans ma chambre. Ainsi, plus je réfléchissais et plus de choses méconnues et oubliées je sortais de ma mémoire. J'ai compris alors qu'un homme qui n'aurait vécu qu'un seul jour pourrait sans peine vivre cent ans dans une prison. Il aurait assez de souvenirs pour ne pas s'ennuyer. Dans un sens, c'était un avantage.

 

 

Il y avait aussi le sommeil. Au début, je dormais mal la nuit et pas du tout le jour. Peu à peu, mes nuits ont été meilleures et j'ai pu dormir aussi le jour. Je peux dire que, dans les derniers mois, je dormais de seize à dix-huit heures par jour. Il me restait alors six heures à tuer avec les repas, les besoins naturels, mes souvenirs et l'histoire du Tchécoslovaque.

 

 

Entre ma paillasse et la planche du lit, j'avais trouvé, en effet, un vieux morceau de journal presque collé à l'étoffe, jauni et transparent. Il relatait un fait divers dont le début manquait, mais qui avait dû se passer en Tchécoslovaquie. Un homme était parti d'un village tchèque pour faire fortune. Au bout de vingt-cinq ans, riche, il était revenu avec une femme et un enfant. Sa mère tenait un hôtel avec sa sœur dans son village natal. Pour les surprendre, il avait laissé sa femme et son enfant dans un autre établissement, était allé chez sa mère qui ne l'avait pas reconnu quand il était entré. Par plaisanterie, il avait eu l'idée de prendre une chambre. Il avait montré son argent. Dans la nuit, sa mère et sa sœur l'avaient assassiné à coups de marteau pour le voler et avaient jeté son corps dans la rivière. Le matin, la femme était venue, avait révélé sans le savoir l'identité du voyageur. La mère s'était pendue. La sœur s'était jetée dans un puits. J'ai dû lire cette histoire des milliers de fois. D'un côté, elle était invraisemblable. D'un autre, elle était naturelle. De toute façon, je trouvais que le voyageur l'avait un peu mérité et qu'il ne faut jamais jouer.

 

 

Ainsi, avec les heures de sommeil, les souvenirs, la lecture de mon fait divers et l'alternance de la lumière et de l'ombre, le temps a passé. J'avais bien lu qu'on finissait par perdre la notion du temps en prison. Mais cela n'avait pas beaucoup de sens pour moi. Je n'avais pas compris à quel point les jours pouvaient être à la fois longs et courts. Longs à vivre sans doute, mais tellement distendus qu'ils finissaient par déborder les uns sur les autres. Ils y perdaient leur nom. Les mots hier ou demain étaient les seuls qui gardaient un sens pour moi.

 

 

Lorsqu'un jour, le gardien m'a dit que j'étais la depuis cinq mois, je l'ai cru, mais je ne l'ai pas compris. Pour moi, c'était sans cesse le même jour qui déferlait dans ma cellule et la même tâche que je poursuivais. Ce jour-là, après le départ du gardien, je me suis regardé dans ma gamelle de fer. Il m'a semblé que mon image restait sérieuse alors même que j'essayais de lui sourire. Je l'ai agitée devant moi. J'ai souri et elle a gardé le même air sévère et triste. Le jour finissait et c'était l'heure dont je ne veux pas parler, l'heure sans nom, où les bruits du soir montaient de tous les étages de la prison dans un cortège de silence. Je me suis approché de la lucarne et, dans la dernière lumière, j'ai contemplé une fois de plus mon image. Elle était toujours sérieuse, et quoi d'étonnant puisque, à ce moment, je l'étais aussi ? Mais en même temps et pour la première fois depuis des mois, j'ai entendu distinctement le son de ma voix. Je l'ai reconnue pour celle qui résonnait déjà depuis de longs jours à mes oreilles et j'ai compris que pendant tout ce temps j'avais parlé seul. Je me suis souvenu alors de ce que disait l'infirmière à l'enterrement de maman. Non, il n'y avait pas d'issue et personne ne peut imaginer ce que sont les soirs dans les pris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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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 그리고 <베스트 오퍼>

  • 분류
    단상
  • 등록일
    2014/07/02 20:48
  • 수정일
    2014/08/19 00:55
  • 글쓴이
    푸우
  • 응답 RSS

<그녀>

 

 

종로 거리 걸으면서 여긴 참 도시구나 싶었다. 적적한 여름 공기 가르며 빨간 옷을 걸친 남성을 지나쳐 버스 정류장으로 다가섰다. 이내 기다리던 버스가 서 있는 곳으로 미끄러지듯 들어왔다. 앉을 수 있을까 내심 기대하고 올라 탔으나 마지막 자리가 눈 앞에서 사라졌다. 라디오를 통해 울려퍼지던 음악은 멎고 뉴스가 나왔다.

 

 

스파이크 존즈 감독의 <그녀>라는 영화를 보고 귀가하는 길이었다. 나름 밝고, 나름 무거운 영화의 줄거리는 잠시 뒤로 하더라도, 중간 중간 명도가 낮은 영화였다. 불이 꺼진 홀 안에서 혼자 빛나는 스크린 위로는 마찬가지로 불이 꺼진 침대 위 테오도르가 비쳐진다. 창백한 자막만이 화면의 균형을 깨뜨리며 눈을 괴롭혔다.

 

 

영화는, 우습게 들릴 수도 있지만, 굳이 보여주려고 하는 것 같지 않았다. 잘 정돈된 직각 구도들과 각자 있을 자리에 알맞게 채색된 색감을 못 본 척 하려는 의도는 아니다. 그런데 그 깔끔한 사물들은 왜 그 자리에 있었을까? 마치 두 주인공의 관계가 간직하는 유동성과 부드러움을 부각시키려는 의도가 느껴질 지경이었다. 그리고 거기에 관계가 놓였다. 시각이 자리를 내준 곳에.

 

 

사만다는 그렇게 테오도르를 만졌고, 테오도르도 사만다와 접촉했다. 손 끝으로 곤두세우는 팔의 솜털 하나 하나와 포개진 입술, 그 어루만짐은 음성을 타고 이루어졌지만, 여전히 어루만짐이었다. 터질 듯한 설렘으로, 익숙한 긴장감으로, 오르가즘은 가장 눈부신 어둠이었다.

 

 

그런데 사만다는 무언가 또 다른 것이 된다. 산장에서 사만다와 테오도르, 철학자 셋이서 대화한다. 사만다는 음성으로는 전달하기 힘든 감정을 느낀다고 고백한다. 그 순간, 질적 도약이 일어난다. 유동적이었지만 여전히 서로를 만질 수 있던 둘인데, 사만다는 기화하기 시작한다. 마치 테오도르 옆에서 끓던 주전자 속 물처럼. 사만다는, 더 이상 만질 수 없는 존재가 되고, 테오도르를 떠난다.

 

 

둘은 이별한다. 이별은 힘들다. 납득되지 않는 방향으로 흐른다. 이제 사만다의 목소리는 사라진 채 테오도르라는 피사체만 남는다. 안개 뿐인 앞을 걸어가는 테오도르지만, 이미 어루만짐의 세례는 이루어졌다. 그 교감의 충만함이. 테오도르는 두 발을 딛고 에이미와 옥상으로 알라간다. 나란히 앉는다. 그 어두운 고요 가운데 에이미는 테오도르 어깨에 머리를 기댄다.

 

 


 

 

<베스트 오퍼>

 

 

비오는 거리를 보며 잠깐 7년 전 일을 떠올린다. 한치 앞도 보이지 않던 그 여름 밤이 없었다면 지금 나는 다른 사람이었을 것이다. 만물이 서로 영향을 미친다고는 하지만, 조금 더 솔직해지자. 세상 모든 사건과 사물이 한 개인에게 같은 의미를 지니진 않는다.

 

 

여기서부터는 쥬세페 토르나토레 감독 <베스트 오퍼>의 줄거리와 개인 감상이다. 스포일링이 포함되어 있다. 엔니오 모리꼬네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볼만한 영화이지 않을까 싶다.

 

 

경매사이자 감정인인 버질 올드먼은 어느 날 한 여성으로부터 전화를 받는다. 클레어 이벳슨이라고 자신을 소개한다. 부모님이 남기고 간 저택에 있는 물건들을 감정해서 팔아달라고 부탁한다. 결벽증이 있는 버질, 광장공포증을 앓는 클레어. 둘은 천천히 사랑에 빠지고 병도 차차 치료된다. 그리고 반전. 클레어는 버질이 비밀스레 모아오던 회화 컬렉션을 훔치려고 연기했을 뿐이다.

 

 

버질이 컬렉션을 모을 수 있도록 도왔던 친구 빌리 휘슬러, 자동인형을 조립하며 연애 상담을 하던 로버트 모두 한 패였다. 사건의 전말을 알게 되어 충격을 받은 버질. 버질은 프라하의 한 카페에 들어가 클레어를 '기다린다'.

 

 

모든 게 거짓이었다! 그리고 질문이 꼬리를 물기 시작한다. 자동인형도 로버트의 위조품이었나? 버질에게 상담하러 온 로버트의 여자친구도 연기였을까? 관리인도? 다락방에 숨었던, 비 쏟아지는 날 버질을 구하러 달려온 클레어도? 컬렉션 앞에서 눈물을 흘린, 사랑한다고 고백했던 클레어마저? 버질의 결벽증은 호전된 것이 아니었던가? 버질은, 따지고 보면 조금 재수없는 이 할아버지는 마침내 세계에 의지하고 자기를 조금이나마 열기 시작하지 않았던가?

 

 

의문은 끝끝내 이 영화 자체를 정조준한다. 굳이 장르적 철저함을 강조하지 않더라도, 영화는 2시간 가까이 자신을 사랑 영화, 성장 영화로 소개하고, 그렇게 발전해 나가고 또 그렇다고 관객을 끊임없이 설득한다. 그런데 끝에 가서 그 가면을 벗고선 사실 범죄 영화였음을, 반전 영화였음을 갑작스럽게 밝힌다. 애잔한 로맨스를 지켜보던 관객으로서는 충격일 수밖에. 그렇다면 이 영화, 영화 자체는 사랑 영화에 대한 위조품인가?

 

 

글쎄, 결국 '진짜' 사랑 이야기는 아니었으니 위조품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하지만 영화가 고백하듯 "모든 위조품에는 진품의 미덕이 숨겨져 있다." 그러므로 우아하고 깊은 사랑 영화를 부단히, 부단히 흉내낸 이 영화는, 어딘가에 사랑 영화일 수밖에 없는 흔적을 감춰 놓았다. 클레어 역시 그저 속임수일 수만은 없는, 진정한 이별의 미덕을 버질 마음에 담아 두었다. 그래서 버질은 사기행각의 피해자로서 행동하지 않고 연인의 과거를 더듬어 찾아가는 사람이 된다.

 

 

이제 비가 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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