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FTA 협상에서 시종 뜨거운 감자로, 때에 따라서는 계륵처럼 다뤄졌던 게 개성공단 원산지 문제였다. 다른 협상 부문에 비해 개성공단 생산 제품 원산지 인정 문제가 갖는 정치적 성격이 각별했기 때문이다. 한국 협상단은 개성공단을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연장이라는 정치적 측면과 개성공단을 포함한 북 생산 제품의 대외 수출길 확보라는 경제적 측면에서 원산지 인정을 주장했고, 미국 협상단은 적대적 대북정책의 연장의 측면과 전체 협상을 유리하게 이끌기 위한 협상 카드로서의 측면에서 원산지 불인정을 주장했다. 협상 결과는 예견한 것처럼 정치적 차원에서 일단락 되었다. 개성공단 원산지 인정에 대한 한국 정부의 긍정적인 해석과 2.13 합의 이후 평화 무드의 확산, 개성공단 입주기업에 대한 정부 혜택 확대 등을 배경으로 개성공단 개발 열기는 최고조에 이르고 있다.
국정브리핑
5월 17일 남북 간 철도 개통은 비록 시험개통이긴 하나 머잖아 한반도 물류혁신의 전기가 마련된 것으로 평가된다. 상징적인 일이지만 57만의 철도개통이 신자유주의 세계화 흐름 내지 노무현 정부의 동북아구상과 맞물려 개통되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각별하다. 이제 조만간 남북철도의 단계적 개통을 통해 개성공단 생산품 수송, 북 노동자 통근 등을 꾀하고, 나아가 대륙철도(TSR, TCR 등)와의 연결을 통한 '동북아 물류 거점 구축'의 비전을 구체화할 수 있게 되었다. 남북철도 연결과정 자체가 남북간 정치.군사적 신뢰를 구축한다는 데 무엇보다도 큰 의의가 있다.
개성공단, 남북철도, 금강산관광 등 남북경협이 본 괘도에 올랐고, 2.13 합의와 한미FTA 협상 타결 이후에는 미 제국주의의 적대적 대북정책에 따른 상시적 전쟁 위기 속에 추상적으로만 다뤄졌던 한반도 평화협정 체결 문제도 가시권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남북 철도 시험운행을 하루 앞둔 날, 이재정 통일부 장관은 남북경제협력포럼이 주최한 초청특강 자리에서 "열차 시험운행을 통해 경제적, 산업적, 군사적 차원만이 아니라 열차를 통해 얻으려는 가치와 목표가 무엇인가를 성찰해야 한다. 2000년 정상회담 이후 꾸준히 발전해온 남북관계가 이루어낸 역사적 결실이고 모든 사람들이 평화의 가치를 누리면서 살아갈 수 있는 새로운 세계를 지향할 수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남북 민중이 '남북관계 발전의 결실'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가치, 그리고 목표는 무엇일까. 이날 이재정 장관은 첫째, 한반도 평화를 위한 국민적 합의를 통해 남북관계를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것, 둘째, 남북경제협력, 교류협력을 상징적인 개념이 아니라 실질적인 이익관계로 만드는 것, 셋째, 한미, 남북관계가 북미 관계 발전으로 이어지도록 하는 것을 강조했다. 이재정 통일부 장관이 생각하는 '가치'가 한반도 평화를 고려한, 그리고 남북 공동의 이익과 번영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이는 참여정부가 표방해온 평화번영정책의 연장이자, 2000년 남북정상회담과 615선언 이후 남북 관계 발전을 위해 노력해온 남북 당사자 모두의 공통의 이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개성공단 개발이 속도를 더하고, 남북철도 시험개통으로 물류 혁신의 구상을 앞당기는 것을 곧 남북 공동의 이익과 번영으로 치환될 수 있을까. 개성공단과 남북철도의 가치가 곧바로 남북 민중의 진보적 삶의 가치로 이어진다고 정의할 수 있을까. 남북 민중의 입장에서 남북 관계의 발전 내지 한반도 평화에 대한 가치를 접근해본다면 단정하기 만만치 않은 문제이다. 무엇보다 한반도 평화협정의 조속한 체결이 이루어져야겠는데, 이는 미 제국주의의 대북 적대정책 및 군사전략 중단 문제와 연결된다. 그리고 한미동맹에 기초한 한국 정부의 전략적 유연성 합의와 국방개혁2020 등 이른바 자주적 국방론은 폐기 내지 수정이 필요하다. 한반도 생태의 지속가능성도 염두에 두어야 하고, 한반도 사회구성원 모두의 균등한 삶의 질 구현을 위한 국가적, 사회적 전략도 마련해야 한다. 남과 북 각각 사회구성원의 삶과 생존, 민주주의, 평화인권의 보편적 가치가 얼마나 보장되고 있는지에 대한 반성이 이루어져야 진정한 가치를 이야기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남북, 단절의 역사만큼 왜곡된 시민사회
남북 체제의 골은 분단의 역사만큼이나 깊다. 지난 반세기동안 북은 수령 중심의 당-국가 융합체제를 형성해왔다. 논란은 있지만 '우리식 사회주의'로 회자되는 북의 정치체제는 당 우위의 당-국가융합체제로서의 국가사회주의체제로 정의된다. 북은 수령제와 주체사상, 그리고 주체사상을 실현시키는 방도로서의 혁명적 군중노선을 관철시켜왔다. 북 정치체제는 북 인민에 대한 당-국가의 전일적 지배체제로, 주체사상을 통한 인민의 이데올로기적 통합에 유례없는 성공을 거두었고, 수령-당-인민의 수직적 동원구조를 재생산해왔다. 구 소련 및 동구권의 몰락에도 불구하고 북 체제가 유지될 수 있었던 데는 수령제의 수립과 함께 제반 구 계급사회 착취 일반의 폐기, 복지체제의 수립, 혁명적 군중노선 채택, 민족 자주성의 확보 등이 배경을 이룬다는 분석이다.
사진/ 유영주 기자
북이 다른 어떤 사회주의체제보다 당과 국가에 대한 인민대중의 지지를 이끌어내는데 성공했지만, 당 우위의 당-국가융합체제는 위로부터의 국가의 강화를 가져왔다. 따라서 북이 지난 시기 계급적 착취의 폐기와 복지체제의 수립과 같은 주요한 사회주의적 조치와 함께 인민대중의 당-국가융합체제로의 통합에 성공했음에도 불구하고 '생산자의 자유로운 연합체'라는 사회주의 본래적 의미를 살리지는 못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말하자면 '국가의 사회화'가 아니라 '사회의 국가화'가 전면적으로 관철되면서 인민대중에 대한 국가의 통제가 강화되었고, 인민대중은 자신으로부터 분리된 국가와 국가로 전화한 당에 종속되는 관료적 사회주의체제의 발전에 봉사해온 것이다.
북은 2002년 7.1 조치를 통해 이른바 사회주의계획경제 정상화와 사회주의 강성대국 건설을 목표로 제시했다. 이 조치에서 북은 가격인상, 환율현실화, 기업경영의 독립성과 노동성과급제 실시 등을 골자로 하는 경제관리개선조치를 발표하는 한편 외자 유치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7.1조치 이후 신의주특별행정구 지정, 금강산관광지구 지정에 이어 2002년 11월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가 개성공업지구를 지정했다. 북은 미국의 봉쇄정책이 예고되는 가운데 신의주와 개성공단을 외국자본과 기술도입 창구로 만들어 외화 수입 증대, 고용 확대 및 국제경제와의 연계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개혁, 개방을 추진하였다. 그러나 미 제국주의의 대북 봉쇄정책이 강화되면서 경제적 어려움에 봉착했고, 2006년 미사일 시험발사와 핵실험을 강행하는 한편 북미간, 6자간 협상을 통해 2.13 합의를 이끌어내는 국면에 이르렀다. 이제 개성공단 개발과 평화 무드에 따른 본격적인 대북 자본 진출은 북 사회에 새로운 변화를 추동할 것으로 보인다.
당-국가융합체제가 북의 시민사회의 자율적 성장, 발전을 저해하는 요소가 있었다는 점에서, 개성공단 등을 통한 개방 개혁과 자본 진출에 따른 노동사회의 형성은 향후 북 시민사회 변화와 발전에 새로운 모티프를 제공할 전망이다. 이미 1만3천 명이 넘는 노동자가 남에서 진출한 자본이 투자한 공장에서 노동을 하고 있으며, 3단계 개발계획이 마무리되는 2012년 경에는 35만 노동자, 100만 배후도시가 형성된다. 특히 한미FTA 협상 결과로 미루어 개성공단만 특정하지 않고 북 전역에 대한 원산지 인정이 다뤄지고 있고, 이미 일각에서 거론되기 시작한 제2, 제3의 개성공단 개발과, 경원선 등 남북철도의 운행이 이루어질 경우 남의 자본 진출은 보다 본격화될 것이다. 또한 이 전후 시기는 한-EU, 한-일, 한-중 FTA와 일-아세안 FTA 체결이 예정돼 동북아 전체의 단일 시장 형성을 예고한다. 초국적자본의 동북아 시장 공략의 규모와 속도에 따라 북 체제 및 시민사회의 변화와 발전은 점차적으로 자본 직접적인 양상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한편 남은 (종속적) 국가독점자본주의의 내적 모순의 심화에 따른 외환위기를 겪으며, 신자유주의축적체제의 전면화가 이루어졌다. 신자유주의축적체제의 강화는 자본 우위의 신자유주의정치체제의 발전으로 이어졌고, 국민의정부와 참여정부는 사회 전부문에 대한 시장 중심의 효율과 경쟁 원리를 관철해왔다. 지난 10여 년 동안 신자유주의정치는 시민사회와의 가버넌스 구축을 시도하며, 자본의 합리화와 글로벌스탠다드 구축에 복무해왔고, 노사관계로드맵, 자본시장통합 등의 법제화를 완성해왔다. 최근 한미FTA 타결은 사회구성원 전체에 대한 위로부터의 신자유주의 질서의 전면화를 강요하는 것이며, 노동유연화 강화와 이에 따른 사회적 빈곤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심화될 전망이다.
지금 북이 개방, 개혁 정책에 따른 당-국가융합체제의 변동 가능성과 개성공단 등 남의 자본 진출로 노동사회 전반에 변화가 예고되는 시점이라면, 남은 신자유주의축적체제의 모순이 심화되는 가운데 사회적 빈곤 및 노동유연화에 저항하는 반신자유주의 정치의 새로운 가능성이 타진되는 시점으로 비교된다. 남북 양 체제와 남북 시민사회의 변동과 발전이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를 예측하고, 또 남북 정부 및 민중이 어떻게 만나야 할 것인가를 제기하는 것이 향후 한반도의 진보적 미래를 가늠하는 척도가 되어야 하며, 이는 체제와 제도에 대한 논의와 함께 보다 비중있게 다뤄져야 한다.
통일의 상, 모델 논의 자체로 큰 진전
남북관계는 개성공단, 철도, 금강산관광 등 남북경협을 통한 관계 개선 문제에서부터 국가, 체제, 정부 등 통일의 상과 모델에 대한 문제까지 포괄적으로 다뤄지는 문제이며, 한반도 평화는 미 제국주의의 대북 정책, 북핵, 6자의 관계, 북미수교, 평화협정-정전협정, 한미동맹 등의 문제가 복잡하게 얽혀있는 문제이다. 또한 남북관계와 한반도 평화 문제에 있어 이를 진전시킬 주체로서 국가나 정부와 함께 민중의 역할을 빼놓을 수 없다. 무릇 시대적 배경은 남북관계와 한반도 평화 실현을 위한 전망과 구체적인 실천 계획을 요구하고 있으며, 이는 보수, 진보세력 할 것 없이 정치세력 모두에게 부여되는 과제다.
개성공단 신원 건물. 사진/ 유영주 기자
세 후보는 지난 4월 말 한반도 관련 정책을 제시하며 본격적인 경선 레이스에 돌입했다. 노회찬 의원은 4월 25일 '노회찬, P+1코리아구상'을, 권영길 의원은 4월 26일 대선출마선언에서 '평화와 통일의 한반도 시대를 열겠습니다'를, 심상정 의원은 4월 27일 토론회에서 '한반도 평화체제로 가는 길'을 각각 발표했다. 이들 세 입장은 진보정당으로서의 민주노동당이 그동안 취해온 평화통일정책을 보다 구체화하고 공약 차원으로 확장했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각 후보의 정견과 공약의 차이는 현재로서는 현실 인식의 차이라기보다는 논리와 아이디어 차이의 측면이 큰 것으로 보이며, 향후 논의 과정에서 큰 그림과 각론이 더 분명히 정돈될 것으로 보인다.
제출된 세 개의 글만 놓고 보면 거시적인 프로세스 수준에서 다루는데, 남북관계를 중심으로 한반도 평화 문제를 반영하고 있다.
노회찬 후보는 'P+1 코리아구상'에서 한반도 평화체제에 대해 'P+1 평화체제' 3대원칙을 제시하고, 한반도 비핵지대화 3대 실현방안, 군비축소, 한미동맹의 점진적 해체와 동북아평화공동체 구축의 그림을 내놓았다. 'P+1 평화체제'가 구축된 위에 건설되는 2012년 '코리아연합'은 경제협력의 전면화, 생태친화적이고 지속가능한 통일공간 구축, 사회문화교류 전면화를 추진하는 2국가-2체제-2정부의 형태를 띤 국제법상 두 개의 국가이나 하나의 국가를 준비하는 통일1단계의 성격을 갖는다고 주장한다.
권영길 후보는 '연합연방통일공화국' 수립을 위한 '3단계 남북공동조치'를 제기했다. 1단계 '남북한 전면적 신뢰관계 구축 공동조치'를 통한 '연합연방통일공화국'의 발판 마련, 2단계 '남북관계 공고화 공동조치', 3단계 '평화체제 구축 공동조치'로 요약되며, 연합연방통일공화국은 1국가-2체제-2정부의 형태로, 연방헌법에 기초한 통일국가라고 주장한다.
심상정 후보는 '한반도평화경제공동체'를 제시하며 한반도 평화체제가 지향하는 통일국가는 1국가-2체제-2정부로 정리한다. 1단계, 남북간 신뢰회복체제를 이루는 종전선언기, 2단계 전략대화체제를 이루는 평화협정기를 거쳐 한반도의회를 설치해 의원단과 집행위원회를 선출하고, 한반도 헌장에 의해 하나의 국가로 기능하기 위한 최소한의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는 3단계 한반도평화경제연합을 주장한다. 이를 위해 3대 전략목표와 8대 실행과제를 제시한다.
국가-체제-정부의 형태와 관련한 논쟁은 남북통일의 상과 모델을 다룬다는 점에서 경로, 시기, 방안 등에서 더 진전된 논의가 필요하다. 지금까지 한국 정부의 남북연합 방안과 북의 연방제 방안 외에 진전된 논의가 별반 없었다는 점에서 향후 남북관계를 진보적으로 재구성하는 데 많은 시사점을 제공할 것으로 보인다. 6.15공동선언 이후 남북연합 중심의 해석과 연방제 중심의 해석이 절충되어 있고, 특히 남북통일의 상과 모델에 대한 좌파의 발언이 미비했다는 측면에서도 이 논쟁이 가져다주는 의미는 작지 않다.
그러나 국가-체제-정부 등 남북 관계 문제는 미 제국주의와 한반도 주변국, 미국과 북, 남과 북 등 국제 정세와 계급투쟁의 흐름 속에서 통일 주체로서의 양 국 정부와 양 국 민중의 주체적 입장에서 어떤 실현 경로를 그릴 것인가의 논의로 발전시켜야 한다. 연방제냐 하나의 국가냐의 문제는 연대연합 단계에서 남과 북 사회구성원의 동의 속에 이루어질 문제이며, 결국 남북 인민의 총의에 의해 결정될 것이다. 그런 점에서 형식적인 규정에 앞서 반자본(주의) 운동의 연장에서 남과 북 공히 아래로부터 건설하는 국가와 체제의 전망을 제기함으로써, 진보적으로 실현가능한 남북 관계를 만들어가야 한다.
세 후보가 더 구체화해야 할 것들
그러나 세 후보가 지금까지 제시한 남북관계와 한반도 평화 접근에 대한 입장만을 놓고 보면 몇 가지 공통된 약점이 눈에 띈다.
우선 세 문서 모두 6.15공동선언의 한계를 분명히 적시하지 않고 있다. 이미 알고 있듯이 6.15선언은 '우리민족끼리' 자주적으로 통일을 이루자는 역사적인 선언이었다. 남의 연합제 안과 북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 안의 공통성을 인정하고, 경제협력을 통해 민족경제를 균형적으로 발전시킨다는 민족대단결의 의미를 담았다. 6.15선언 이후 7년, 남북은 미 제국주의의 대북 봉쇄정책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인 경협과 교류로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어왔다. 햇볕정책에 이은 평화번영정책은 한반도 평화에 크게 기여하였으며, 6.15선언 정신은 남북 공동의 이익과 번영을 위한 경협 추진으로 남북 관계 발전의 기초를 이루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6.15선언에는 '우리민족'이 강조됨으로써 민족 편향적인 기조를 띠는 대신 남북 사회구성원의 자유로운 참여와 의지는 대상화하는 한계가 있었다. 남북 문제 해결이 직접적인 과제인 점은 7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 없지만, 이 주체가 '우리민족'으로 강조되는 것은 계급투쟁과 인류발전의 보편성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더군다나 한반도 문제는 6자회담국의 관심에서도 확인되듯 한반도 민중만의 문제가 아니라 동아시아 전체의 문제로 되어 있어, 향후 남북 문제를 제대로 풀기 위해서라도 민족의 잣대를 강조할 일은 아니다. 이런 점에서 진보정당의 대통령 후보로서 남북관계와 한반도 평화 방향을 제시함에 있어, 7년 전 6.15선언이 가져온 성과와 함께 선언에 반영된 민족 중심의 편향과 지금까지의 실천 경향을 잘 평가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로부터 남북경협과 교류 전반에 남북 민중의 주체적인 참여를 보장하고, 궁극적으로 남북 사회구성원의 균등한 삶의 질을 구현하기 위한 좌파적 전망을 제시하는 제2의 6.15선언 준비가 필요하다.
또한 세 개의 글은 한반도 평화를 구현하기 위한 과제로서의 반제 의식이 공히 취약해 보인다. 대체로 남북관계와 한반도 평화에 대한 거시적 측면을 주되게 반영한 데 비해 정세적 측면은 충분히 다뤄지지 않은 탓으로 보인다. 오늘날 미 제국주의의 대외 정책은 전쟁을 통한 지역 질서 재편과 지역무역협정, 자유무역협정으로 초국적자본의 이동을 자유롭게 하기 위한 자본의 세계화 경향 추동으로 압축된다. 무엇보다 미 제국주의의 전쟁 책동이 멈추지 않고 있다. 9.11 사태 이후 아프카니스탄 침공과 2003년 이라크 침공, 팔레스타인 침공 등 국제적인 전범으로서 미 제국주의의 범죄가 계속된다. 최근에는 이란을 향해 총구를 맞추고 있으며, 지금도 북에 대한 적대정책을 철회하겠다는 명시적인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 더군다나 미군의 신속기동군대로의 재편으로 세계 지역 곳곳에서 군사적 긴장을 고조하고 있으며, 유사시 언제든 전쟁을 도발할 수 있다는 점에서, 미 제국주의의 전쟁 책동에 맞선 반전평화의 과제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이는 평화협정 체결, 주한미군의 단계적 철수, 한미군사동맹 조약의 퍠지 등 공약의 문제와는 결이 다른 문제인데, 세 후보 모두 반제반전 국제연대의 호소와 반전평화를 위한 남북 민중간 연대의 강조는 인색해 보인다. 더불어 주한미군이전반대, 반전공동행동, 파병반대운동 등 한국에서의 반전평화운동의 성과를 기초로 동아시아 평화운동의 확산을 위한 실천방안을 마련할 수 있어야 한다. 동아시아의 핵확산 및 군사주의와 군사동맹의 강화에 대하여 동아시아 차원의 반전평화운동의 실천적 연대를 구체화하는 것이 요구된다.
북측 CIQ에서 바라본 개성공단 전경. 사진/ 유영주 기자
남북경협 문제는 자본의 대북 진출 문제와 연동된다. 한미FTA 협상 과정에서 한국 자본의 개성공단 원산지 문제에 보인 관심에서도 확인되듯이, 자본의 대북 진출은 과잉중복투자와 이윤율 경향 저하로 인한 자본운동의 위기를 해소하는 문제로 풀이된다. 개성공단은 현재 본단지 1차 5만 평 분양이 완료되어 시범단지 15개 기업과 1차 분양 23개 업체 중 7개 업체가 가동중이다. 북 노동자의 숫자가 1만2천 명이 넘었고, 07년 1월까지 총생산액이 1억불에 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3단계 900만 평 전체 개발이 완료되면 북 노동자 35만 명 규모에 연간 총생산액 200억 달러 규모로, 진출 자본은 총 86억 달러의 수입을 챙길 것으로 보고 있다. 2008년 상반기 1단계 입주 기업이 본격 가동되는 시기 개성공단에 필요한 노동자의 규모는 7만-10만 명 정도로 추정된다. 당장 한국 중소자본에게는 숨통이 트이는 규모이며, 남에 진출한 초국적자본으로서도 환심의 대상이 아닐 수 없다. 남북경협, 특히 개성공단 진출에는 남북 전체를 대상으로 한 자본의 산업구조 고도화와 규제의 선진화를 통한 경쟁력 강화 및 노동유연화 구상이 함축되어 있다. 즉 남북 공동의 이익과 번영의 남북경협 이면에 북 노동자의 한국 산업체제로의 단계적 편입을 확대함으로써 장기적으로 북 전역에 대한 신자유주의 시장 질서로의 재편 구상이 반영되어 있다. 이는 가까운 미래 미 제국주의와 남과 남 자본, 북과 북 노동 간의 새로운 계급투쟁의 도래를 예고하는 것이며, 남북 경제공동체 전망을 검토하는 이상 반자본(주의) 운동의 연장에서 남북 호혜의 경제적 대안을 모색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노회찬 후보는 '남북경제공동체'의 구체적 전략을 추후 제출하기로 하였고, 권영길 후보가 이야기하는 '남북공동번영기금'이나 "분단과 사회양극화로 점철된 한반도의 경제를, 38선을 넘나드는 새로운 '한반도경제공동체'"라는 주장만으로는 판단하기 어려우며, 심상정 후보의 '한반도평화경제연합'의 경제적 제 방안도 이런 점을 고려하여 구체화되어야 할 것이다.
노무현 정부의 대북정책 및 남북경협에 날선 긴장이 없어보이는 점도 문제다. 노무현 정부의 평화번영정책은 한미동맹 강화의 기초 위에서 6자회담을 통한 북핵 문제 해결과 적극적인 남북경협으로부터 동북아중심국가로 나아가는 것을 골자로 한다. 주한미군의 신속기동군화는 미국 중심의 21세기 동북아 질서 확립의 가장 중요한 군사적 요소이다. 노무현 정부의 국방개혁2020은 미국의 군사동맹 정책에 정확히 조응한다. 2007년 국방예산안에 따르면 2006년 대비 9.9% 증액한 24조7,505억 원으로 책정되었고, 이 중 17조8,402억 원(72.1%)은 경상운영비로, 6조9,103억 원(27.9%)은 전력투자비로 배분됐다. 이처럼 국방중기계획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매년 10% 가량의 국방비 증액이 요구된다는 지적이다. 국방개혁2020에 따른 자주국방 달성까지는 모두 621조 원이 들어갈 것으로 추정된다. 여기에다 용산 기지 이전 재배치 비용, 평택 기지 조성 비용, 반환 미군기지 환경오염 정화 비용, 방위비 분담금과 주한미군 간접 지원 비용 등 주한미군 지원 비용 규모는 정확히 확인되지도 않는다. 이처럼 협력적 자주국방과 한미동맹을 기본 축으로 한 자주국방 역량 강화 정책은 동북아지역 전체의 군비 증강을 촉진하고 있다. 세 후보 모두 군축을 강조하고 있고, 다양한 어조로 주한미군의 단계적 철수와 한미군사동맹의 폐기를 이야기하고 있으나 궁극적으로 한반도 평화를 위한 외교정책으로서의 한미동맹 자체의 폐기와 비동맹 선언을 분명히 하는 것이 필요하다.
한반도의 좌파적 비전을 준비하는 토론 기대
앞으로 5년이면 개성공단 100만 배후도시가 건설되고, 경원선을 거쳐 대륙철도를 이용할 수 있을 전망이며, 상당한 수준의 왕래가 가능할 것이라는 예측도 나온다. 군사적 긴장이 해소되는 대신 자본의 대북 진출에 따른 예기치않은 노동문제가 발생할 것이라는 예측도 공공연하다.
또한 한반도 평화를 실현하기 위한 남북 정부와 민중의 실천도 전에 없이 역동적으로 이루어질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우리민족끼리 라는 배타성은 동아시아 민중 전체의 이익을 위한 민중의 보편성과 연대성으로 극복할 수 있어야 하고, 통일만 이루어지면 된다는 통일지상주의는 새롭게 형성될 계급투쟁의 맥락에서 인식 전환이 꼭 필요하다.
대선을 계기로 민주노동당 세 후보가 펼치는 평화통일정책 대결은 우리가 살아가야 할 미래 사회를 그리는 문제라는 점에서 경쟁 이상의 의미가 있다. 진보정당의 대통령 후보로서의 실천인 만큼, 남북 민중역량의 진보적 성장에 관심을 집중함으로써 동아시아 전체의 보편적 연대성을 획득하는 운동을 고민하고, 반제반전, 평등평화의 한반도 전략의 구체화를 위한 보다 진전된 정책 대결을 펼쳐줄 것을 기대한다. 사회구성원의 균등한 삶의 질을 갖추기 위한 한반도 차원의 사회적, 국가적 전략 마련이 가장 우선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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