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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힘 발제문에 대한 의견 - yhs

> 오해인가, 의도적인 회피인가?

- 노동자의힘은 사노련의 제안을 왜곡하지 말고 진지하게 답해야 한다!

 

 

발제문에서 노힘은 사노련과 해방연대한테 노힘이 09년 초로 일정을 박아 놓은 ‘사회주의 노동자정당 추진위(이하 사노당 추진위)’ 건설에 함께 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그리고 그와 같이 사노당 추진위 건설로 “총결집”하면, “현장의 선진활동가들이 당 건설의 주체로 결합하는 동력이 대폭 강화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우리는 그렇게 “결집”하는 것이 대중적 결집이 될 수 없다고 이미 지적한 바 있다. 그런 식의 경로와 일정은 설사 “결집”한다 하더라도 앙상하게 정치조직 간의 통합으로 끝날 뿐, 현장의 선진활동가들이 당 건설에 주체로 대거 결합하는 경로와 일정이 될 수 없다고 확신한다. 실제로 발제문에는 “현장의 선진활동가들이 당 건설의 주체로 결합하는 동력이 대폭 강화될 것”이라는 추측과 기대만 있지, 어떤 근거나 조직화 계획도 제시되고 있지 않다.

 

한편 현장의 선진활동가들을 당 건설로 결집시키기 위해 사노련이 제안한 조직화 계획에 대해서는 답변을 회피한 채 왜곡된 대립구도를 만들어내고 있다.

 

사노련은 발제문에서 “사회주의 노동자당 건설을 선진노동자들 사이에서 공론화하고 대중적 검증을 거치기 위한 방안으로, 그리고 그와 동시에 사회주의운동으로 현장을 재조직하기 위한 방안으로 ① 당 건설운동 전면화를 위한 일련의 전국토론회 개최, ② 무소속 활동가들을 두루 포괄하는 사회주의자 공투전선 형성”을 제안하고 있다.

 

그리고 이 전국토론회 준비 및 조직화 사업과 공동투쟁 결의를 집행하기 위해 기존 3개 정치조직 회원 이외에 200명 이상 무소속 활동가들의 참가 기명을 조직하고, 이를 바탕으로 <(가칭) 사회주의 당 건설운동 전면화를 위한 전국토론회 조직위원회>[무소속 활동가들 포함]를 구성할 것도 함께 제안했다.

 

노힘은 사노련의 이러한 당 건설 주체역량 결집 방안에 대해서 가타부타 언급이 없다. 그러면서도 사노련의 제안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이는 다음과 같은 주장으로 답변을 대신하고 있다.

 

“우리는 사회주의운동 및 당건설의 필요성에 대해 선진활동가들 사이의 공론화를 위해, 현시기 계급투쟁의 진전을 위해서, 사회주의 정치세력들 간의 다양한 공동활동, 공동투쟁이 필요하다고 판단함. 그러나 이러한 사안별/부분별로 진행되는 공동활동/공동투쟁을 통해서는 짧은 시기 안에 주체역량상의 토대가 획기적으로 강화되거나, 각 조직의 입장의 공론화를 통한 검증이 선진활동가들이 사회주의 정치활동으로 나서는 일대전환의 계기가 될 것으로 판단하지 않음.”

 

사노련이 공론화/검증 방안이자 동시에 주체역량 강화 방안으로 제안한 내용이 기껏 “사안별/부분별로 진행되는 공동활동/공동투쟁”이란 말인가? 단순한 오해인가 의도적인 회피인가?

 

나아가 노힘은 당 건설운동 전면화 방안을 둘러싼 사노련 대 노힘의 차이라면서, “선 강령토론 및 합의 이후 당 건설운동의 본격화”냐, 아니면 “당 건설운동의 구체적 일정 속에서 이를 이뤄내는가”냐 라는 대립구도를 설정하고 있다. 과연 그러한가?

 

사노련은 전국토론회 발제문에서 직접적인 제안을 하고 있기 때문에 다른 두 조직이 사전에 검토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판단하여 발제문을 미리부터 공개 제출했다. 발제문을 본 동지들이라면 누구라도 모를 수가 없는 것이, 각 조직의 당 건설 계획을 비롯하여 당 강령 ․ 전술 ․ 조직노선과 함께 남한 운동의 핵심쟁점들을 놓고 일련의 전국토론회를 무소속 활동가들과 함께 공동으로 조직하여 선진노동자들과 대중들 사이에서 공론화하고 검증을 거쳐 대중적 결집을 이뤄내자고 제안하고 있다.

 

이것이 “당 건설운동의 본격화”를 강령 합의 후로 미루는 것인가? 두루 알다시피, 사노련은 정치조직들 간에만으로 강령 토론 및 합의를 상정하고 있지 않다. 정치조직들 만의 토론 및 합의로는 무소속 활동가들을 대거 규합하지 못하며, 당 건설도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보아 무소속 선진노동자들이 대거 주체로 결합하는 일련의 전국토론회 조직을 제안하고 있다. 전투적 현장활동가들 사이에서 당 건설을 공론화하고 대중적 검증을 거치며 이와 동시에 사회주의운동으로 현장을 재조직하자는 제안이다. 이것이 “당 건설운동의 본격화”가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어떻게 이것이 먼저 조직들 간에 강령 합의하고 난 다음에 당 건설운동 본격화하자는 것으로 읽힐 수 있는가? 이것도 단순히 오독인가, 의도적인 회피인가?

또한 당 건설운동의 본격화를 강령 토론 및 합의 과정과 기계적으로 대치시키는 발상법은 대단히 위험하다. 무소속 전투파 선진노동자들이 사회주의 당 건설운동에 나서도록 하기 위한 가장 직선적인 수단은 사회주의 강령 ․ 전술 ․ 조직노선을 중심으로 하는 정치적 토론을 본격화하는 것이다. ‘사회주의 강령 ․ 전술 논의’를 매개하지 않고서 어떻게 선진노동자들이 조합주의를 딛고 사회주의 정치활동으로 나아가도록 안내할 수 있다는 것인가, 어떻게 그들이 당 건설운동의 정치적 주인공으로 우뚝 서도록 할 수 있단 말인가?

 

현장의 광범위한 선진활동가들을 사회주의 당 건설운동으로 조직하는 않는 한, 써클들 사이의 통합 논의는 진짜 당 건설운동을 결코 만들어낼 수 없다. 선진활동가들을 대상화시켜서는 안 된다. 그 방법은 각 조직들이 자신이 추구하는 사회주의 당의 강령 ․ 전술 ․ 조직노선을 제출하고, 이것을 선진노동자들 속에서 공론화시키는 것이다. 이 공론화 과정을 통해서 선진노동자들이 각 조직들의 입장을 ‘검열’/검증할 뿐만 아니라 자신의 정치적 목소리를 낼 것이고, 이것은 사회주의 당 건설운동의 정치적 방향타를 세워내는 데 일익이 되어줄 것이다.

그런데 노힘은 이러한 강령 논의를 부차화 시키고 있을 뿐만 아니라, 나아가 강령 논의를 당 건설운동에 대립시키는, 왜곡된 구도로 몰아가고 있다. 이는 선진노동자들이 사회주의 정치의 주체로 나서도록 하는 과정을 회피하는 것이며, 이를 통해 각 조직의 정치적 입장을 검열 받는 과정을 회피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검열과 주체화 과정을 통하지 않고서 사회주의 당 건설운동이 어떻게 소수 사회주의 정파들의 좁은 틀을 뛰어넘어 선진노동자들의 운동으로까지 확장 전화할 수 있겠는가.

 

자. 그렇다면 노힘이 이 방안 말고 어떤 다른 내용의 “당 건설운동 본격화” 방안을 제시하고는 있는 것인가? 노힘 말대로 “당 건설운동의 구체적 일정 속에서” 과연 당 건설운동 본격화를 이뤄내기 위해 제시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 노힘이 말하는 “구체적 일정”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107명이 모여 10월 11일 ‘사회주의 노동자정당 건설 준비모임’ 출범대회를 치루었”고, 거기서 사노당 추진위를 09년 초에 건설할 것을 결의하였다는 것! 그래서 이 결의에 사노련과 해방연대도 함께 하자는 것, 그것 말고 “당 건설운동 본격화”를 이뤄내기 위한 다른 내용은 없다. 여기에 “구체적”인 게 무엇인가? 09년 초라는 달력상의 날짜와 추진위라는 앙상한 조직형식에 대한 제안이 “구체적”인 것인가? 날짜 박기와 조직형식 가지고서는 이 엄중한 운동정세 속에서 구체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것으로는 아무도 당 건설을 설득할 수 없다.

노힘이 결의한 “사노당 추진위” 건설에 사노련과 해방연대도 “결집”하라는 그 ‘제안’에는 선진노동자들 사이에서 당 건설 계획을 공론화하고 대중적 검증을 거치고 무소속 활동가들을 대거 사회주의운동으로 조직하기 위한, 그래서 실제로 당 건설운동을 본격화할 수 있는 어떤 계획도 없다. “결집”하면 다 된다는 공허한 언사 말고는 말이다. 이런 식의 “당 건설운동 본격화”는 선진노동자들, 무소속 현장활동가들을 사회주의 당운동으로 결집시키는 당 건설 계획이 될 수 없으며, 따라서 무조건 실패하는 당 건설이 될 수밖에 없다. 노힘이 “사노당 추진위”라는 조직형식을 선점했다는 것 말고는 실제 당 건설에 남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다.

 

노힘은 진정 선진노동자들/전투적 현장활동가들 사이에서 사회주의운동을 전면화할 계획이 있는가? 아니, 과연 의지라도 있는가? 전투적 조합운동을 넘어 현장을 당 운동으로 재조직할 의지가 있는가? 현 시기 엄중한 정세를 돌파하기 위한 당 건설의 절박함과 그에 반해 가라앉아 있는 주체 상태 ․ 주체 역량 간의 현격한 괴리를 정면으로 돌파하기 위한 직접적인 조직화 계획 없이는 어떤 당 건설 계획도 자족적인 것일 수밖에 없다. 사노련의 제안에 대해 왜곡된 대립구도를 설정하고 있는 노힘의 추진위 건설 동참 제안이 정확히 그렇다. 그것은 명백히 실패하는 길이다. 그리고 당 건설에 대한 환멸만을 남기는 길이다. 그것은 사회주의 당 건설 세력 모두에게 타격을 입힐 것이다. 우리는 그 길을 막을 권리가 있다.

 

우리는 노힘이 사노련의 제안을 회피하지 않고, 다시 한 번 진지하게 검토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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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 운동 전면화 - jyk

사회주의운동 전면화를 위한 계기를 놓치지 말아야



사회주의자와 선진 노동자의 열망을 보여준 공동토론회


10월 18일 전교조 서울본부에서는, 사회주의 노동자연합과 노동해방실천연대, 노동자의힘 등 3개 사회주의 정치조직의 공동 주최로, 사회주의 대중화, 사회주의운동 전면화, 새로운 노동자 당 건설을 내걸고 ‘사회주의 운동과 당 건설을 위한 전국 토론회’가 열렸다.


이 토론회는 전국의 사회주의자들과 선진노동자들의 깊은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토론장에는 3개 정치조직 회원들을 비롯해서200명 가까운 사람들이 모여서 열심히 토론과정에 참여함으로써 공동토론회에 대한 뜨거운 열정을 보여주었다.


그 동안 3개 조직 상호간의 몇 가지 의견 차이와 신뢰의 부족으로 공동 토론회가 열리지 않았으므로, 처음으로 3조직 합의로 토론회가 열린 사실 자체가 토론장에 참여한 사람들은 물론 참여하지 않았을지라도 전국 사회주의자와 선진노동자들의 깊은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이 토론회가 3개 사회주의 정치조직이 사회주의운동 전면화와 당건설을 위해서 공동으로 사업을 추진할 계기로 될 것을 전국의 수많은 사회주의자들과 선진 노동자들이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이 토론회가 토론회를 주최한 3개 조직이 공동의 틀거리를 구성해서 공동사업, 공동투쟁을 만들어 나감으로써 사회주의운동 전면화와 당 건설을 위한 첫걸음을 내딛을 수 있기를 바란다. 이것이 전국 사회주의자들과 선진 노동자들의 열망과 기대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절대로 토론회의 한 부분의 대립과 격돌의 장면에 사로잡히거나 특정 지점에 집착하지 말고 이 토론회의 전체 내용을 차분히 분석하고 정리해서 함께 공통으로 출발할 지점을 찾아보고, 가능하다면 대범하고 과감하게 발걸음을 내디딜 수 없는가도 숙고해 보아야 할 것이다.



토론내용 분석과 공통적 지반의 검토


이 토론회에서는 유기혁열사투쟁방기에 대한 문제를 둘러싸고 격론이 있었지만, 그 이외에 문제를 제출하고 풀어나가는 방식에서는 차이를 보였으나  광범위한 영역에서 공통적인 내용을 갖고 있음을 보여 주었다.


우선 현 시기 사회주의운동을 전면화하고, 사회주의 노동자당 건설로 나서야 한다는 것, 이러한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어느 한 조직의 역량으로서는 불가능하고 3조직을 포함해서 전국의 (진정한) 사회주의자들이 모두 모이고,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선진 노동자들을 광범위하게 결집해야 한다는 것은 모두가 동의하고 있다.


공동사업을 위한 각 조직의 제안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노동해방실천연대(해방연대)는 공동투쟁과 당 건설작업에 필요한 강령논의를 위해서 공동이론지 발간을 제안하고 있다. 노동자의 힘은 ‘사회주의 노동자정당 건설 준비모임(준비모임)’에 모두 함께 참여할 것을 제안하고, 서로 협의해서 함께 동의하는 다른 조직형태로 할 수도 있다고 말하고 있다. 사회주의 진영의 공동투쟁조직 역시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사회주의노동자 연대(사노련)은 ‘사회주의운동 전면화와 당건설을 위한 전국 토론회 조직위원회(조직위원회)’구성을 제안하고 이 조직위원회는 공동투쟁 역시 담당하는 것으로 설정하고 있다.


3조직이 공통된 것은 1)사회주의 세력의 공동투쟁이 필요하고 이를 위한 조직적 틀거리를 만들어야 한다. 공동투쟁의 핵심축은 공공부문 사유화저지-공공화 또는 사회화투쟁과 비정규직철폐투쟁이다. 2)사회주의운동 전면화와 당 건설을 위한 준비작업을 추진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①강령과 전략 전술을 수립키 위한 공동연구와 토론이 필요하고, ②전국적 대중토론을 전개해야 한다. 지역, 산업 업종 노조와 현장조직 부문을 막론하고 전면적이고 공개적인 대중토론으로 한다. 3)공동투쟁과 사회주의운동 전면화와 당 건설을 위한 사업을 추진키 위해서 공동의 틀거리(조직)를 구성해야 한다. 공동투쟁과 사회주의운동 전면화와 당건설 작업을 위한 조직은 통일성이 담보되어야 한다.(하나의 조직 또는 하나의 조직과 이 산하 조직 또는 긴밀히 결합된 형태의 조직)


이 논의에서 중심축인 사회주의운동 전면화와 당 건설을 위한 조직의 위상과 형태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검토해보자. 해방연대는 공동이론지 발간을 제외하고 구체적 조직형태를 제출하고 있지 않으므로, 사노련과 노동자의 힘이 제안하는 조직위상과 형태를 비교 검토해 보자.


사노련은 사회주의운동 전면화와 당 건설을 위한 전국토론회 조직위원회를 구성하자고 제안하는 데 이 조직위원회에는 3조직 구성원과 그 외 사회주의자, 선진노동자가 개인 자격으로 참여한다. 3조직 구성원 외에 200명정도의 인원을 구성원으로 제안하고 있으므로, 대규모(상당규모) 회원조직을 말하고 있다. 준비모임이나 추진위원회 등 당 조직 건설단계를 구체화하고 있지 않으나 전국적 대중토론과 강령 논의 등 전 단계 작업을 거쳐서 당 건설 단계로 들어서는 것으로 설정되고 있는 것 같다. 


노동자의힘은 사회주의 노동자 정당 건설을 위한 준비모임을 구성하거나 이와 유사한 위상과 형태의 당 건설 준비조직 구성을 제안하고 있다. 그러나 이 준비모임의 역할을 보면 강령과 전략 연구 토론, 사회주의운동 전면화와 당 건설 토대 마련 등 사실상 사노련이 조직위원회가 수행할 역할로 설정하는 사업내용과 차이가 없다. 준비모임 자체가 강령과 전략을 연구토론해서 마련해가고, 전국적 토론을 통해서 사회주의자와 (사회주의를 지향하거나, 사회주의에 동의하는) 선진노동자들을 결집해서 당 건설추진위원회를 구성할 사람들을 결집하는 과제를 갖고 있는 것이다. 다만 준비모임은 사노련이 제안하는 조직위원회보다 당을 준비하는 조직적 위상을 분명히 하고 있는 데서 서로 차이가 있으나, 준비모임 역시 그대로(연속성을 가지고) 당 건설 다음 단계인 추진위원회로 바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추진위원회는 한 단계 더 발전된 조직체요, 그 구성원 역시 새롭게 조직되는 것임을 분명히 하고 있으므로 사실상 노동자의힘의 준비모임과 사노련의 조직위원회와의 차이는 크게 좁혀진다. 



어떻게 출발할 것인가?


1)가장 초보적인 것으로는 공동투쟁과 전국토론회, 강령연구를 위한 3조직 (한시적인) 대표자모임을 구성해서 사업을 추진하는 것이다. 필요한 공동사업 추진을 위해서 실무 또는 집행을 위한 대책팀 또는 대책위원회를 산하에 둔다. 사회주의운동 전면화와 사회주의 당 건설, 사회주의 진영(세력)의 공동투쟁이라는 사업의 중대성에 비추어서, 이런 형태의 모임은 우스꽝스런 것이고 굳이 만들 필요가 없다. 


2)각 조직에서 일정한 수(이를테면 5-10명)의 대표를 선정해서 공동의 위원회를 구성하고 이 위원회가 사업의 결정과 집행을 맡는 방안이다. 3조직 이외에 +@를 참여시킬 수 있다. 일정수의 대표를 파견해서 사업의 결정과 집행을 맡기면 나름의 의결, 집행구조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구성의 한계는 각 조직에서 파견하는 숫자의 많고 적음에 관계없이 그 파견자는 원래 조직의 결정을 가지고 와서 이를 대변하게 되는 점에 있다. 각 조직의 독자성은 당연히 유지되고 그 각 사업과 각 사업추진 각 단계에서 각 조직의 의견을 가지고 와서 합의 또는 타협으로 결정함으로써 그 추진력과 통합성 및 사업추진의 효율성은 대단히 낮은 수준에 머물 것이다.


3)다수의 개인 자격으로 구성된 조직을 별도로 만들어서 이 조직이 사업을 추진토록 하는 것이다. 물론 3조직 구성원과 3조직에 속하지 않은 개인들(사회주의자, 선진노동자)로 구성된다. 현재 준비모임이 100여명의 회원으로 구성되어 있으므로 나머지 두 조직에서 100명씩과 기타 100여명이면 400여명이 된다. 조직위원회는 3조직 이외에 기타 200명을 추가하는 것으로 제안하고 있으므로 역시 400-500명은 될 것이다. 여기서 회원 숫자는 크게 중요치 않을 것이다. 진정한 사회주의자냐, 사회주의 지향이 분명하고 노동자의식과 책임감이 명확한 선진 노동자이냐, 그리하여조직활동의 실천력이 명확히 담보되느냐가 선정 기준이 될 것이다.


10월 18일 공동토론회에서 제안되었듯이 이를테면 ‘사회주의운동 전면화와 당 건설, 공동투쟁을 위한 노동자연대’를 조직해서 이를 주체로 해서 사업을 추진할 수 있을 것이다. 말할 것도 없이 이러한 위상과 형태를 갖는 조직체가 구성된다면 사회주의운동과 당 건설, 공동투쟁은 획기적인 발걸음을 내딛을 수 있을 것이다. 3개 정치조직은 각기 그대로 존재하나 서서히 새로 구성된 조직으로 역량을 싣고 집중되어갈 것이다.


노동자의 힘이 중요한 동력이 된 준비모임이 이러한 조직형태로 구성되어서 당건설을 위한 조직화사업, 강령 전략 수립사업, 공동투쟁사업을 추진해 나가고 있고, 사노련 역시 이러한 역할을 담당할 같은 형태의 조직건설을 제안하고 있으므로 서로 진지한 논의를 거쳐서 합의해내지 못할 것이 없다고 본다. 해방연대 역시 기본적으로 추진할 사업 내용에서 동의하고 있으므로 이러한 출발에 합의하지 못하겠는가? 아직 여러 가지 조건이 조성되지 않고 상호 이해와 신뢰, 공동사업 바탕이 마련되지 않아서 어렵다면 수위를 낮출 수밖에는 없을 것이나, 전국 사회주의자와 선진노동자의 열정은 불러일으키기 어려울 것이다.



유기혁열사 투쟁 방기문제


10월 18일 토론과 그동안의 논의과정을 살펴보면 해방연대가 노동자의힘과 함께 사회주의 노동자정당 건설을 추진해나가는 데 있어서 주요한 장애는 유기혁열사투쟁 방기에 대한 책임문제인 것으로 보인다. 이 문제에 대해서 여기서 명확한 방안을 제시할만한 입장에 있지 않다. 다만 이 문제를 극복하는 데에 있어서는 ‘미래의 전망을 열기 위해서 과거를 올바르게 정리하고 혁신해 나간다’는 관점에서 해결지점을 찾아 나갈 것을 바라는 마음이다.


유기혁열사투쟁방기문제는 그 자체로서 당시 비정규직투쟁과 노동운동 전반에 중대한 타격을 준 과오임은 분명하지만, 전반적 노동운동 특히 대공장 노동운동의 패배주의 관료주의 실리적 조합주의문제의 대표적 사례이기도 하다. 이를 어떻게 극복하고 해결해 나갈 것인가 는 계속 반성과 고민 실천의 과정에서 해결되어야 할 문제일 것이다. 노동자의힘 내부논의와 실천속에서 나름대로 문제해결방안을 찾고, 3단체 공동의 토론, 또 서로의 끊임없는 비판과 토론과정에서 공론화해서 해결방안을 찾아나가야 할 것이다.


준비모임은 형식적으로 노동자의힘과 다른 실체이다. 내용적으로 노동자의힘 출신이 절반이고 노동자의힘이 준비모임 조직화와 운영, 사업에서 주요한 역할을 해 왔을 것으로 보이지만 노동자의힘의 유기혁열사처리의 미흡함이나 과오(판단)를 이유로 준비모임을 공동사업 대상에서 제외해야 한다는 것은 과도하고 적절치 않을 것이다. 준비모임의 구성과 운영 및 사업을 두고서 판단해야 할 것이다. 또한 사회주의 운동을 위해서 3조직 구성원이나 그 외에 개인들이 함께 새로운 조직을 구성하고 운영방안을 세워나간다면 이 과정에서 함께 올바른 원칙이 실현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노동자의힘과 선 결합역량이 사회주의 실천을 본격화하고 확장하기 위한 하나의 계기로서 준비모임을 출발시킨 것을 모두 이해하고 환영해야 할 것이다.



글을 맺으며


3조직 공동토론을 통해서 3조직이 논란을 격화시키고 더 멀어졌다는 불만도 있다. 그러나 겉으로 보이는 차이보다도 공통된 지반이 대단히 넓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내용적으로 보면 포괄적으로 공통된 지반을 갖고 있음이 확인되었다. 그리고 토론회에 모인 사람들을 비롯해서 전국 곳곳의 사회주의자들이 사회주의운동의 전국적 전 계급적 통일을 위한 계기가 마련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이러한 계기가 마련된다면 비로소 사회주의운동을 공공연하게 전면화하고 사회주의 노동자당 건설에 본격적으로 나설 수 있다. 전국 각 지역과 산업, 노조와 현장조직 수준에 이르기까지 선진노동자들의 광범위한 토론과 실천을 조직해내서 사회주의와 사회주의노동자당 건설을 전면적으로 추진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역사적 의미를 갖는 실천이 될 것이다. 우리는 이 계기를 살려서 놓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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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정당운동의 반성과 새로운 출발(jsj)

1. 민주노동당의 붕괴 - 진보정당운동 제1기의 해체

작년 대선 끝난 직후부터 민주노동당이 심상치 않은 조짐을 보이더니 끝내 18대 총선을 앞두고 붕괴했다. 87년 민주화 이후 최초로 원내 진출에 성공한 진보정당이 무너진 것이다. 많은 이들이 ‘분열’이라는 표현을 썼지만, 그보다는 ‘붕괴’가 맞다. 단순히 기존의 민주노동당이 잔류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으로 나뉜 게 사태의 핵심이 아니기 때문이다. 정당으로서의 생명력 자체가 사라졌다.
물론 잔류 민주노동당은 18대 총선에서 5명의 당선자를 내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이것이 과연 어떠한 적극적 의미를 지닐 수 있을까? ‘민주노동당의 죽음’을 선언하고 탈당한, 필자를 비롯한 전(前) 당원들은 18대 국회에서 민주노동당의 미래는 ‘좌민련’, 즉 ‘좌파 자유민주연합’일 뿐이라고 지적했었다. 국회에 몇 석의 의석을 갖기는 해도, 마치 과거 자민련이 그랬던 것처럼, 어떠한 미래의 전망도, 존재 의의도 찾기 힘든 정당이 되리라는 것이었다. 18대 국회에서 잔류 민주노동당이 이 운명을 벗어나기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럼 도대체 민주노동당의 붕괴의 이유는 무엇인가? 혹자는 민주노동당이 사회민주주의 노선을 전면에 내걸지 않았기 때문에 실패했다고 말한다. 그런가 하면 다른 어떤 이들은 정반대의 입장에서 민주노동당이 사회주의 변혁의 입장을 분명히 하지 않고 의회주의에 경도된 것이 문제였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러한 교과서적인 진단만으로는 현재 한국 사회에서 진보정당운동이 맞부딪힌 구체적인 난점과 과제들을 제대로 직시하기 힘들다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상황을 좀 더 분석적으로 살펴보아야 한다.
정당은 조직이면서 또한 정치적 프로젝트(기획)다. 그것은 특정한 어떤 방식으로 구체적인 어떤 목표를 달성하겠다는 집단 행위다. 게다가 한 정당이 꼭 하나의 프로젝트로만 구성되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대부분의 정당들은 여러 개의 서로 다른 프로젝트들이 결합된 복합 프로젝트의 성격을 띤다.
민주노동당도 그랬다. 필자가 보기에 민주노동당은 3개의 주요 프로젝트가 결합된 복합 프로젝트의 성격을 띠었다. 그 3개의 주요 프로젝트란 무엇인가?
첫째는 ‘대중조직 기반 정당’이라는 프로젝트다. 민주노동당은 민주노총의 조직적 지지‧지원에 바탕을 두고 창당했고, 이후에도 이것이 당의 존립과 발전의 주요 기반이 되었다. 그리고 2003년부터는 전농도 합류했다. 민주노총과 전농은 주로 상층 간부들을 중심으로 당에 입당했고, 때로 조합원이나 농민회원을 대상으로 입당 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그리고 선거 때마다 공직 후보군을 배출하고 재정 지원을 했다. 민주노동당은 중앙위원회와 대의원대회 그리고 최고위원회에 노동 및 농민 부문 할당을 실시해 민주노총, 전농 간부들이 이들 당 기관에 참여할 수 있게 했다. 민주노동당은 당과 민주노총, 전농 사이의 이러한 관계를 곧 민주노동당이 노동자‧농민의 정당인 근거로 내세웠다.
둘째는 ‘운동권 정파 연합 정당’ 프로젝트다. 민주노동당은 80년대, 90년대에 등장한 ‘운동권’(한국에서 오랫동안 좌파를 일컫던 말) 정파들의 결집체였다. 물론 ‘노동자의 힘’이나 한국사회당처럼 여기에 합류하지 않은 정파들도 있었다. 하지만 대체로 운동권의 8, 9할이 뭉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특히 그 동안 독자정당 창당 문제를 놓고 서로 이견을 보여 왔던 범NL 정파들과 범PD 정파들이 함께 했다는 것이 커다란 특징이었다. 이들 사이에는 여전히 심각한 노선 차이가 존재했지만, 일단은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반대하고 그 현실 대안을 추구한다는 수준에서 강령 상의 합의를 했다.
셋째는 ‘국회 진출 중심 정당’ 프로젝트다. 물론 제도권 정당이라면 다 국회에 진출하려 한다. 그런데 여기에서 말하는 ‘국회 진출 중심 정당’이란 활동의 중심이 어디까지나 국회의원 배출 쪽에 놓여 있는 정당을 뜻한다. 한국은 대통령 중심제다. 그래서 제도권 정당들의 활동 중심도 대통령 선거의 도전에 있다. 한데 민주노동당은 이러한 일반적인 경쟁의 대열에 속해 있지 않았다. 민주노동당은 87년 민주화 이후 10년도 더 넘게 진보 좌파가 의회 안에 독자 지분을 전혀 갖지 못한 상황을 타개하겠다는 일념으로 만들어졌고, 그 지분 확보 의지 하나로 비바람을 헤쳐 왔다. 국회 진출 전까지는 여타의 다른 제도 정치 활동(대선 도전이든 지방선거든)은 부차적인 관심사에 불과했다.
이러한 3개의 프로젝트들이 서로 결합된 복합 프로젝트로서 민주노동당은 2004년 총선에서 일단 성공을 거뒀다. 대중조직의 지원과 운동권 결집의 저력을 바탕으로 드디어 국회 진출에 성공한 것이다. 민주노동당 프로젝트는 2000년대 초반 상황 속에서 확실히 정세적 의의를 갖고 있었다.
그러나 민주노동당의 해체는 역설적으로 바로 그 성공에서 비롯됐다. 이때부터 민주노동당의 쇠퇴와 몰락이 시작됐다. 애초에 민주노동당은 소수 의석의 한계를 대중운동의 활성화로 돌파한다는 ‘거대한 소수’ 전략을 통해 보수 양당에 맞설 대안으로 성장하겠다고 천명했다. 하지만 ‘거대한 소수’ 전략은 작동하지 않았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다. 그리고 그 이유 중에는 분명 원내 활동에 고착된 의원단 활동의 한계도 존재했다.
하지만 좀 더 근본적인 이유들을 함께 보아야 한다. 근본적인 이유들이란 곧 민주노동당이라는 복합 프로젝트를 이루던 3개의 프로젝트들이 각각 시대 상황과 결정적으로 어긋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우선 ‘대중조직 기반 정당’ 프로젝트를 보자. 사실 민주노동당과 대중조직 사이의 관계는 그 자체로 커다란 약점을 갖고 있었다. 전 세계 좌파 정당 중 대중조직 기반 정당의 전형은 영국 노동당이다. 영국 노동당이나 이 당의 영향을 받은 정당들(아일랜드 노동당, 캐나다 신민주당 등)은 ‘노동조합의 정치 부대’라는 이야기를 들을 정도로 노동조합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 여기까지는 민주노동당과 다를 바가 없다. 그런데 영국 노동당형 정당들은 민주노동당에는 없는 독특한 제도를 갖고 있다. 그것은 집단 입당 제도다. 노동조합이 일단 당 지지를 결정하면 그 노조의 조합원 전원을 당원으로 인정하는 것이다. 이것은 사실 굉장히 기계적이며 형식적인 입당 방식으로서, 비판받을 소지가 많다. 하지만 어쨌든 영국 노동당형 정당들은 이를 통해 당과 노조의 유대를 일반 조합원 수준으로 확대하려 했다. 그런데 민주노동당에는 대중조직 기반 정당이면서도 이런 제도적 장치가 없었다.
민주노동당은 민주노총에 기대어 창당했으면서도 겉으로는 좌파 정당의 좀 더 보편적인 형태, 즉 당 강령에 동의하는 개인이 스스로 입당하고 그 개별 입당 당원들의 활동에 기반하여 성장하는 정당을 표방했다. 하지만 실제로 이런 원칙을 적극 구현하지는 않았다. 당이 독자적으로 노동 대중 사이에 뿌리 내리려 하기보다는 민주노총을 통해 노동자들에게 다가갔다. 그래서 결국 민주노동당은 좌파 정당의 보편적 형태에도 미치지 못하고 그렇다고 영국 노동당형 정당의 장점을 구비한 것도 아닌 어정쩡한 조직 형태를 갖게 되었다.
역사상 이와 비슷한 사례가 이미 존재한다. 바로 일본 사회당이다. 일본 사회당도 당시 일본의 진보적 노총인 총평에 크게 의존했지만, 집단 입당 제도를 취하지는 않았다. 일본 사회당도 겉으로는 노조와 분리된 독자적 이념 정당을 표방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또 그 역할에 충실한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총평의 중개 없이 노동 대중에게 다가가지 못했다.
그래서 결국 어떻게 되었던가? 80년대 말 일본 노동운동의 우경적 재편 과정에서 총평이 사라지자 일본 사회당도 급격히 흔들리기 시작했다. 수 십 년간 제1야당의 자리를 점하던 당이 몇 년 만에 몰락하고 말았다. 그만큼 일본 노동계급 사이에 독자적으로 뿌리를 내리지 못한 탓이었다.
우리의 경우, 불행인지 다행인지, 이러한 당-노조 관계의 약점이 조기에 드러났다. 그것도 아주 치명적으로 말이다. 이것은 한국 노동운동의 기업별 노조 중심 구조와 노동 유연화 공세가 서로 맞물리면서 비롯됐다. 비정규직 노동자가 늘어나고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이의 격차가 커지는 데도 불구하고 기업별 노조 중심의 한국 노동운동은 비정규직, 중소기업 노동자들을 조직하는 데 실패했다. 그래서 노동조합 조직률은 10% 수준에 묶여 있고, 대다수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운동을 자신들의 무기로 바라보지 않는 (심지어는 ‘귀족 노동운동’이라는 보수 세력의 악선동에 공감하는) 형편이다.
이 상황에서 민주노동당은 덫에 걸린 신세가 됐다. 한때는 ‘민주노총당’이라 불리는 것이 노동계급의 당으로 인정받을 근거가 됐지만, 상황이 반대가 됐다. 대다수 비정규직, 중소기업 노동자들이 민주노총을 자신들의 조직으로 여기지 않으며, 그래서 ‘민주노총당’ 역시 자신들의 당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민주노동당이 민주노총에만 계속 의존하는 한, 미조직 노동자들에게 노동계급의 당으로 인정받을 가능성은 점점 더 봉쇄될 것이다. 아니, 더 나아가, ‘정규직당’, ‘대기업 노동자당’으로 치부돼 다수 노동자들 사이에 뿌리 내릴 가능성을 차단당할 위험이 높다. 이것은 ‘대중조직 기반 정당’ 프로젝트가 몰고 온, 의도하지 않은 비극적 결과다.
다음으로 그럼 ‘운동권 정파 연합 정당’ 프로젝트는 어떻게 됐는가? 원내에 진출하고부터 민주노동당 안의 강령적 합의라는 게 무척 취약하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특히 2006년에 북한 핵 실험을 계기로 북한 문제가 불거지면서 이것이 더욱 극적으로 폭로됐다. 당 내 범NL 정파들이 종북주의 혐의로부터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게 분명해졌다. 사실은 이때부터 범PD 정파들 사이에서는 기존 정파 연합 구조를 계속 유지하는 데 대한 회의가 일기 시작했다.
문제는 당 안에서 노선 투쟁이 벌어진다는 것 자체가 아니라 그게 너무 시대착오적이고 퇴행적이라는 데 있었다. 적어도 범PD 성향 당원들 사이에서는, 스탈린주의 체제의 한 변형으로서 북한 체제가 갖는 근본 문제나 최근 북한 정권 및 그 추종자들이 주장하는 ‘우리 민족 제일주의’의 퇴행성은 이미 평가가 끝난 사항들이었다. 하지만 민주노동당 안에서는 여전히 그 평가를 놓고 논쟁을 벌여야 했다. 게다가 이러한 논쟁에도 불구하고 범NL 세력은 민주노총 국민파와의 연합과 특유의 조직력을 바탕으로 당권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민주노동당이라는 울타리 안의 동거 구조가 미래의 대안 제시와는 인연이 먼 것이라는 점이 시간이 갈수록 더욱 더 분명해졌다.
마지막으로 ‘국회 진출 중심 정당’ 프로젝트를 보자. 막상 국회에 의석을 갖고 보니 소수 의석의 한계를 실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거대한 소수’ 전략에 따른다면 대중운동의 활성화로 이를 극복해야 했으나, 대중운동은 침체 상태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했다. 2006년 지방선거에서는 그간 당의 지역 거점이었던 울산의 두 기초자치단체에서 패배를 맛보았다. 민주노동당은 대중운동에서든 지역 정치에서든 당의 토대가 아주 부실함을 새삼 절감했고, 그런 상황에서 의회 안에 약간의 지분을 갖고 있다는 게 얼마나 공허한지 뼈저리게 느꼈다.
이렇게 민주노동당이라는 복합 프로젝트 안에 점차 균열이 나타나는 가운데, 2007년 대선이 다가왔다. 당 안팎의 많은 이들이 이번 대선을, 민주노동당이 봉착한 위와 같은 한계들을 뛰어넘을 마지막 돌파구로 보았다. 아니, 대응 여하에 따라서는 민주노동당에게 일생일대의 기회가 될 수도 있겠다고 기대를 걸었다. 그도 그럴 것이 열린우리당의 쇠퇴로 열린 새로운 정치 공간이 예사롭지 않았던 것이다. 베네수엘라의 차베스 대통령이 보여준 좌파 민중주의(left populism) 전략을 한국의 진보 세력도 활용할 수 있지 않을까? 민주노동당의 대선 후보가 일정한 대중적 바람을 일으킬 수만 있다면, 한국에서도 이것이 충분히 실현 가능하지 않을까? 물론 집권까지 바라는 것은 아니지만, 어떤 비약적 발전은 기대해볼 수 있지 않을까? 이런 기대가 자라났다.
이것은 보수 우파의 ‘미완의’ 수동혁명(아직 그 결과가 최종 확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미완의’라는 수식어를 붙였다)에 맞서는 진보 세력의 적극적 대응이 될 수도 있었다. 이명박 현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일군의 보수 우파 세력은 경제성장 제일주의를 무기로 우파 자체를 재편하고 새로이 헤게모니를 구축하기 시작했다. 2006년 지방선거가 그 시작이었고, 2007년 대선은 승리의 정점이었으며, 2008년 총선이 그 승리의 최종 인준 절차였다. 이 수동혁명 과정에서 노무현 정권과 열린우리당, 즉 중도 우파의 정치 공간이 붕괴하기 시작했고, 민주노동당 역시 이를 무력하게 바라만 보고 있었다. 하지만 민주노동당이 대선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잘 하면, 이러한 무기력증에서 벗어날 수도 있었다. 보수 우파의 ‘미완의’ 수동혁명에 심각한 균열을 낼 수도 있었던 것이다.
허나 이러한 전망은 실현되지 않았다. 그리고 민주노동당 안의 많은 이들은 이 기대를 짓밟은 당사자가 다름 아니라 민주노동당 내부에 있다고 판단했다. 당 내 범NL 정파들이 별다른 근거 제시 없이 대권 3수생인 권영길 의원을 조직적으로 지지하기로 결정했고, 그들의 조직력에 힘입어 결국 권 의원이 민주노동당 대선 후보로 나서게 됐다. 그리고 그 순간 민주노동당이 대선에서 바람을 일으킬 가능성은 차단됐다.
대선 직후 민주노동당을 떠난 당원들(최대 2만 명 수준)의 상당수는 범NL 세력의 이러한 선택을 납득할 수 없었다. 이런 선택을 하게 된 것은 범NL 세력이 민주노동당이라는 전체 프로젝트야 어떻게 되든 아랑곳없이 자신들의 당 내 패권 유지 가능성만 계산했기 때문 아닌가? 권영길 후보 이외의 후보들(노회찬, 심상정 의원)이 진보적 민중주의 전략을 구사할 무기로서는 더욱 유력했지만, 만약 이들 중에서 후보를 낸다면 그 후보에게 당권이 집중됨으로써 범NL 세력의 당 내 패권이 흔들리게 되기 때문에 그런 결정을 한 것 아닌가? 그렇다면 하나의 정치 조직이자 프로젝트로서 민주노동당은 그 존재 의의를 상실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즉 민주노동당은 생명력을 다했다. 죽었다. 이것이 지난 1, 2월에 민주노동당 탈당파가 도달한 결론이었다.
지난 몇 달간의 사건들은 민주노동당의 분당 과정이라기보다는 차라리 그 사망을 선고하고 이를 확인하는 과정이었다. 그리고 이 과정은 아직도 다 끝난 게 아니다. 민주노동당이라는 정치 프로젝트가 시효 만료임을 좀 더 분명히 확인하기 위해 2-3년의 시간이 더 필요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 해체 과정이 이미 시작됐으며 그것은 결코 돌이킬 수 없다는 점이다. 이렇게 해서 진보정당운동의 제1기는 그 막을 내렸다.


2. 진보정당운동 제2기를 시작하기 전에 확인할 것들

진보정당운동의 한 시기가 이렇게 끝났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동으로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는 것은 아니다. 비록 진보신당이 출범했지만, 진보신당 스스로 표방한 것처럼, 이 당은 과도 정당이다. 진보정당운동의 제2기를 이끌 새 진보정당을 건설하기 위한 전 단계다. 진보신당은 창당할 때부터 총선이 끝나면 제2단계 창당 과정을 밟겠다고 약속했었고, 이제 그것을 본격 추진해야 할 시점이다.
게다가 진보신당 외에도 새로운 좌파 정당을 건설하려는 또 다른 흐름들이 있다. 한국사회당이 초록정치연대에 초록 좌파 정당 창당을 제안한 상태다. 그리고 ‘노동자의 힘’이 사회주의 노동자정당의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이와는 별도로 해방연대와 사회주의노동자연합도 각각 사회주의 정당 건설을 표방하고 있다. 가히 당운동의 백가쟁명 시기다.
이 대목에서 필자는 진보정당운동의 제2기를 시작하기 전에 우리가 확인해야 할 점들을 짚고 싶다. 진보 좌파 내에는 여전히 개혁 정당과 혁명 정당을 선명하게 나누고 새로 건설될 당이 이 중 어느 한 쪽을 분명히 선택해야 한다는 입장들이 있다. 사회민주주의 정당인지 혁명적 사회주의 정당인지 확실히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필자는 지금 한국 사회에 필요한 게 이런 이분법인지에 대해 회의적이다. 물론 고전적인 개혁/혁명 논쟁은 앞으로 우리 운동에서 어떤 식으로든 반복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개혁/혁명을 놓고 입장이 갈린다는 것과, 그래서 이러한 입장 차이가 곧바로 개혁 정당과 혁명 정당의 분립으로 나타나야 한다는 것은 서로 다른 문제다.
어쩌면 미래의 어느 시점에는 개혁 정당과 혁명 정당으로 나뉘는 게 더 바람직할지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이 그 시점은 아니다. 지금 시점에서 개혁 정당과 혁명 정당의 이분법을 고집한다는 것은 한국 사회의 구체적 분석에 따른 구체적 실천이라기보다는 낡은 교과서(그것이 사회민주주의판이든 코민테른판이든)의 추종으로만 보인다.
왜 그러한가? 우선 한국 자본주의의 현 상황이 어떤 교과서의 틀에도 딱 들어맞지 않는 독특한 양상을 보이기 때문이다. 한국 자본주의는 세계 자본주의의 전형적인 점이 지대에 해당한다. 이러한 점이 지대에서는 세계 자본주의의 중심부나 주변부에 비해 훨씬 중층적이고 복합적인 모순이 지배한다. 그래서 세계 자본주의의 좀 더 전형적인 지역(중심부나 주변부)에서 발전한 교과서적 이론이나 노선이 현실에 잘 들어맞지 않는다. 이른바 보편 이론이 쉽게 통하지 않는 사회인 것이다.
그래서 이러한 점이 지대는 흔히 새로운 이론‧노선의 배양지가 되곤 한다. 기존의 틀로는 다루기 힘든 상황에 다가가기 위해 새로운 설명이나 실천 방향을 치열하게 고민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과거 혁명기 러시아나 그람시 생전의 이탈리아가 그 좋은 사례다. 이런 상황에서 트로츠키는 불균등 결합 발전 법칙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었고, 그람시는 국가-시민사회의 특정한 접합으로서 역사적 블록 개념을 고안해냈다.
그런데 한국 자본주의는 그러한 점이 지대 중에서도 유례가 없을 정도로 독특하다. 분단을 경험했고, 돌진적 산업화를 겪었다. 또한 제국주의 경험이 없는 비슷한 규모의 국가들 중 거의 유일하게 선진 자본주의의 반열에 올라섰다. 그런가 하면 노동계급 1세대가 계급 정체성과 연대감을 채 연마하기도 전에 신자유주의 노동 유연화 공세에 휩쓸렸다. 민주화 1세대가 미처 50대가 되기도 전에 민주주의에 대한 회의와 피로감이 나타나고 있다. 한 마디로, 너무도 압축적인 자본주의 발전 때문에 한 사회 안에 서로 다른 시간대가 공존하고 있다. 복수의 시간대가 교차하며 서로 복잡하게 얽혀 있는 것이다.
이런 특성은 특히 대중의 경험과 의식 속에 뚜렷이 각인되어 나타난다. 불과 10년도 안 되는 시간을 단위로 서로 다른 역사적 경험을 하기 때문에 세대가 잘게 나뉠 뿐만 아니라 세대 사이의 의식 차이도 심대하다. 그래서 주체의 의식 측면에서만 보면 다른 어느 나라보다도 인구 집단이 파편화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뚜렷한 공통성과 강한 연대감을 지닌 다수 집단이 형성되기가 쉽지 않다. 즉 민주주의와 사회 변혁의 주체가 형성되기 쉽지 않다.
이것은 노동계급의 형성이 중단되었다는 사실에서 가장 뼈아프게 드러난다. 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한국의 노동자들은 스스로를 계급으로 조직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 과정이 채 초기 단계를 벗어나기도 전에 노동 유연화 공세가 몰아닥쳤다. 어느 나라나 노동 유연화가 진행되면 불안정 노동자가 늘어나고 노동계급 내에 원심력이 강화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그 정도가 더욱 심각했다. 한국 노동운동의 기업별 노동조합 중심 구조와 불안정 노동자의 증가가 서로 맞물리면서 다수의 노동자들이 ‘구조적으로’ 노동조합운동 바깥으로 내몰리는 상황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나마 초보적 계급 형성 과정을 거친 소수 조직 노동자들과 신자유주의 양극화의 최대 피해자인 다수 미조직 노동자들 사이에 객관적 차이 그 이상으로 의식의 골이 깊어졌다. 이 간극이 지금 노동계급 형성 과정이 계속되는 데 커다란 장애 역할을 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고전적인 개혁/혁명 정당 도식은 과연 어떠한 답을 던져줄 수 있는가? 혁명 정당의 선전 선동의 정치는 과연 어떤 방식으로 정규직 노동자와 비정규직 노동자, 대기업 노동자와 중소기업 노동자 사이의 간극을 돌파할 수 있을 것인가? 도대체 이런 사회에서 교과서적인 선전 선동의 정치가 작동할 수 있겠는가?
또 다른 사례를 들어보자. 지금 한국의 중간층(여기에는 신중간계급뿐만 아니라 노동계급 상층도 포함된다)을 지배하는 화제는 자녀 교육과 부동산이다. 자녀를 어떻게든 대학 서열 구조의 상층부에 진입시켜 신자유주의 엘리트로 만들거나 정규직 일자리를 갖게 하는 것, 그리고 자가 소유 주택(아파트)을 장만하고 그 가격을 올려 노후 소득을 확보하는 것, 이것이 모든 중간층의 욕망이다.
이것은 신자유주의 시대에 어느 나라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라지만, 한국에서는 유독 심하다. 그도 그럴 것이 한국에서는 이미 개발 자본주의 시대부터 자녀 교육과 부동산이 중간층에 진입하고 그 지위를 유지하는 데 필수적인 두 수단이었기 때문이다. 한국의 중간층에게 입시 경쟁과 내 집 마련은 곧 가계 차원의 복지 확보 통로에 다름 아니었다. 그래서 한국의 중간층에게는 신자유주의의 엘리트 교육 열풍이나 만인 투기 문화가 결코 낯설지 않다. 한국 사회에서는 개발 자본주의의 유습과 신자유주의의 투기 문화가 서로 만나 전대미문의 사교육‧부동산 열풍으로 확대‧증폭되고 있다.
이 대목에서 다시 고전적인 개혁/혁명 정당 도식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묻고 싶다. 개혁 정당의 통상적인 레퍼토리는 사회 복지를 확대하자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에 호응해야 할 대중의 상당수는 이미 자신들만의 복지 수단(입시 경쟁과 부동산 투기)을 확보하고 있으며, 신자유주의 시대에는 그것만이 생존의 길이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공공복지를 통한 집단적 해결책이 더욱 바람직한 대안이라는 계몽이 과연 얼마나 호소력을 지닐 수 있을까? 지금의 한국 사회에는 혁명의 주체와 마찬가지로 개혁의 주체 역시 존재하지 않는 것 아닌가?
그래서 일체의 변혁이 불가능하다는 비관주의에 빠지자는 게 아니다. 교과서의 도식이 우리에게 해답을 던져 주리라는 오해와 착시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앞에 놓인 ‘진보의 재구성’이라는 과제가 과거의 논쟁을 단순 반복하는 것보다는 훨씬 더 근본적인 접근을 요구한다는 점을 더욱 철저히 이해해야 한다. 그렇다면 ‘진보의 재구성’을 추진할 새로운 진보정당 역시 과거의 개혁/혁명 정당 도식에 얽매일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한국 자본주의의 독특성 말고도 또 우리가 잊어선 안 될 게 있다. 그것은 “발전된 자본주의-민주주의 사회에서 과연 변혁의 계기는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는가?”라는 물음이다.
사회민주주의 개혁 정당의 입장을 따른다면, 이것은 애당초 고민거리가 못 된다. 이 입장에서는 ‘변혁’을 고민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선거로 집권한 뒤에 부분적 개혁 조치들을 추진하기만 하면 된다.
한편 코민테른의 혁명 정당 공식에서도 이것은 어려운 문제가 아니다. 왜냐하면 이 경우에는 혁명이 전위정당의 단일한 기획으로 사고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전위정당이라는 주체가 확실히 존재하기만 한다면, 나머지는 이 당을 중심으로 배치되면 되는 어떤 객관적 요소들일 뿐이다.
하지만 적어도 발전된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이런 공식이 크게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코민테른 운동에 뿌리를 둔 정당들 중에서 실질적인 대중적 영향력을 확보했던 사례를 들자면, 이탈리아 공산당이나 프랑스 공산당이 있다. 그런데 이들 정당은 위의 도식에서 전제하는 ‘전위정당’과는 거리가 멀었다. 이들은 실제로는 사회민주주의 정당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대중정당 형태를 취했다. 사회민주주의 정당보다 좀 더 급진적인 이념을 내걸었다는 점이 다를 뿐이었다.
한편 위의 공식을 고집스럽게 견지한 세력들(트로츠키주의, 마오주의 정파들)은 대중 정치 세력으로 성장하기 힘들었다. 이들은 대개 소정파 수준에 머물렀다. 선진 자본주의 사회의 이념적 추가 가장 왼쪽으로 기울었던 1960년대 말에도 이것은 예외가 아니었다.
과거의 공식들보다는 실제 역사적 사례가 우리에게 더 많은 것을 말해준다. 선진 자본주의 국가 내에서 좌파가 자본주의 자체에 대한 도전에 가장 근접했던 사례를 든다면, 이탈리아의 잉그라오 좌파나 영국의 벤 좌파가 있다. ‘잉그라오 좌파’는 1960년대에 이탈리아 공산당의 대중 정치가 피에트로 잉그라오를 중심으로 당 내 좌파와 노동조합운동 내 좌파가 결집한 것을 일컫는 말이다. 이들은 1960년대 당 내 논쟁 과정에서 등장하여 1969년의 대중파업(‘뜨거운 가을’)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1970년대에 이들은 공산당의 구조개혁 노선과 대중운동을 결합하는 데 앞장섰다.
벤 좌파는 영국판 ‘잉그라오 좌파’라 할 수 있는데, 이번에는 영국 노동당의 좌파 하원의원 토니 벤이 중심이 되었다. 1970년대에 벤 의원은 대기업의 국공유화 약속을 저버린 당 지도부를 과감히 비판하여 당 내 좌파의 지도자로 부상했다. 1970년대 말 대처의 신우파 정부가 들어서자 벤 의원을 중심으로 당 내 신좌파가 형성됐고, 여기에 다시 노동조합운동 좌파나 다양한 사회운동 세력들이 결집했다. 이들은 1980년대 초에 노동당의 당권에 도전하는 등 영국 역사상 최초로 대중적인 좌파 정치 운동을 펼쳤다.
이 두 사례로부터 우리는, 선진 자본주의 사회에서 대중적 영향력을 갖춘 변혁운동은 어떤 전위정당의 단일한 기획이나 자연발생적 대중운동으로 설명하기에는 사뭇 복잡한 양상을 띤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그것은 대중 정치인, 대중정당 내의 좌파적 흐름, 노동운동과 사회운동의 활성화 같은 다양한 요소의 특정한 접합으로 나타난다. ‘당-사회운동 접합’이라고나 할 이러한 특정한 배열과 결합이 대안적인 역사적 블록의 형성 과정이 시작되는 데 촉매이자 중핵 역할을 한다.
사실 위의 두 사례는 실제 변혁을 추진한 것은 아니었다. 그 전 단계에서 멈춰버린 사례들이다. 반면 라틴아메리카의 두 나라, 칠레와 베네수엘라는 위의 사례들보다 더 앞선 경험을 보여준다. 1970년-1973년의 칠레 인민연합 정부 그리고 현재 진행 중인 베네수엘라 차베스 정부의 볼리바리안 혁명이 그것이다. 이들의 경우에도 변혁의 길을 연 것은 잉그라오 좌파나 벤 좌파와 크게 다르지 않은 대중 정치인, 대중정당(들) 그리고 노동운동‧사회운동 사이의 어떤 결합이었다.
물론 칠레와 베네수엘라를 선진 자본주의라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오랫동안 대의 민주주의가 뿌리 내린 나라들임에는 분명하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다시 한 번, 부르주아 민주주의가 일정하게 발전한 나라에서 변혁의 순간에 다가가는 것은 ‘당-사회운동 접합’을 통해서임을 확인할 수 있다.
한국에도 87년 이후 대의 민주주의가 정착됐다. 이런 사회에서 집권의 방식이 선거냐 아니냐 논쟁하는 것은 소모적이다. 선거를 통한 집권은 이제 상수이자 전제 조건이다. 다만 우리가 확인해야 할 것은 집권 자체는 선거를 통해서 할 수밖에 없되 변혁은 선거 결과만으로 시작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이다.
즉 이제 한국에서도 변혁 과정은 대중 정치가, 대중정당(들) 그리고 대중운동의 특정한 접합을 통해서만 시작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바로 그러한 접합을 준비하기 위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당운동의 방향과 방식은 무엇인가? 새로운 진보정당운동은 개혁/혁명 교과서의 추종이 아니라 다름 아닌 이 물음에 답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이러한 우리의 논의에 유용한 단서 역할을 하는 것이 ‘사회운동 정당’ 구상이다. 이미 몇 년 전부터 민주노동당 안팎에서 개혁/혁명 정당의 이분법을 극복할 출발점으로 ‘사회운동 정당’을 이야기하곤 했다. 하지만 막상 ‘사회운동 정당’이 무엇을 뜻하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불분명한 데가 많다.
혹자는 당이 사회운동을 집권의 수단으로 전락시키지 않고 대등한 동반자로 인정함으로써 당운동과 사회운동의 동시 발전을 추구하는 것 정도로 해석한다. 나쁘지 않은 전망이지만, 이것만으로는 다분히 수세적이고 도식적인 정의가 아닐 수 없다. 당과 사회운동 사이의 새로운 관계는 설명할 수 있을지 몰라도 당 활동 자체가 왜 ‘사회운동적’이라고 불려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설명해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게 핵심인데도 말이다.
그래서 이렇게 해명하기도 한다. ‘사회운동 정당’이란 ‘수권 정당’과 대비되는 말이다. 수권 정당에게는 집권이 절대적 목표인 데 반해 사회운동 정당은 그렇지 않다. 사회운동 정당에게 집권은 복수의 목표들 중 하나일 뿐이다. 사회운동 정당은 집권보다는 사회운동 전반의 발전을 더 중요시한다.
이것 역시 가능한 하나의 해명이다. 하지만 집권을 단지 부차적인 목표로만 바라보는 정당이 과연 정당으로 존립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과거 독일 녹색당이 비슷한 맥락에서 ‘반(反)정당적 정당’을 표방하기는 했으나 결국에는 다른 대중정당과 별반 다를 것 없는 모습을 보인 사례가 있다. 이 점에서 우리는 좀 더 솔직해져야 한다. 부르주아 민주주의 체제에서 대중정당으로 존재하면서 집권이라는 본래 목표를 무시할 수는 없다. 적어도 ‘집권’과 ‘사회운동’을 서로 대립시켜 바라보는 입장에서 ‘사회운동 정당’을 말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어불성설이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우선 ‘사회운동’ 자체를 새롭게 정의 내려야 한다. 이제껏 ‘사회운동’이라 불려온 이러저런 조직들이나 대중 동원 등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는 정치적 상상력을 펼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 대목에서 필자는 ‘사회운동’을 이렇게 정의 내려 본다. “기존의 자본주의-대의 민주주의 질서의 제약을 넘어서는 대중의 행위 능력들을 배양하고 성숙시키는 일련의 집단적 과정.” 이것은 로자 룩셈부르크가 자본주의 아래서 일상 개혁 투쟁의 목표로 제시한 “노동자계급의 인식과 의식의 사회화”를 나름대로 재구성해본 것이다.
‘사회운동’을 이렇게 정의할 경우, ‘사회운동 정당’이란 “집권 과정 자체를 사회운동적인 것으로 바라보며 실천하는 정당”이다. 즉 집권을 지향하되 그것을 일련의 제도 정치 과정으로 제약‧환원하지 않고 대중의 대안적인 행위 능력들을 발전시키는 과정으로 심화‧확장하는 정당이다. 이러한 대안적 행위 능력들이 발전해야만 자본주의를 넘어설 대안적인 역사적 블록의 토대를 구축할 수 있고, 집권이 집권 자체로 종료되는 게 아니라 변혁 과정의 새로운 시작이 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운동 정당의 주된 정치 활동 방향은 계몽의 정치나 선전 선동의 정치가 아니라 예시적(prefigurative) 실천의 정치다. 사회운동 정당은 시민사회 내에 다양한 연대조직들(초기업단위 노동조합, 대안 협동조합, 민중의 집 등등)을 만드는 데 앞장서며 이들 연대조직들의 네트워크를 결성하는 데 촉매 역할을 한다. 그리고 당 활동 자체와 이들 연대조직의 네트워크를 통해서 대안 사회의 가치와 원칙(가령, 협동과 연대)을 바로 지금부터 현실로 구현한다. 비록 맹아적인 수준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사회운동 정당이 대중을 설득하는 것은 계몽이나 선전 선동이 아니라 이러한 예시, 즉 미리 보여주기를 통해서다. 21세기 현대 사회는 냉소주의가 지배하는 사회다. 통상적인 방식의 메시지 전달로는 도저히 이 냉소주의를 깰 수 없다. 현대 사회에는 차고 넘칠 정도로 메시지가 범람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메시지가 수신자에게 가 닿으려면 수신자가 직접 눈으로 볼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즉 제한된 범위와 수준에서나마 우리의 대안을 ‘행위’ 혹은 ‘현실’로 구성해서 제시해야 한다.
브라질 노동자당의 참여예산제 실험과 같은 사례가 당시 정세에서 커다란 의미를 지닐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런 맥락에서였다. 포르투 알레그레 시의 노동자당 시정부가 펼친 참여예산제는 항상 먼 미래의 이상으로만 이야기해온 민중 참여와 자치를, 비록 초보적인 형태로나마, 지금 여기의 현실로 구성해서 보여주었다. 굳이 이렇게 지방자치제를 활용하는 형태가 아니라 할지라도, 사회운동 정당은 다양한 수단과 방식을 통해 예시적 실천을 펼쳐야 한다. 그래서 이 단단한 교착 상태, 즉 대중의 분열과 냉소주의를 깰 충격(들)을 던져야 한다.


3. 새로운 진보정당운동을 구성할 3개의 새 프로젝트들

어떤 이들은 보수 우파 정권이 최소 10년은 갈 거라고 이야기한다. 그럼직하다. 하지만 이게 비관주의의 근거가 되지는 못한다. 비록 대안 부재 상황에서 보수 우파 집권 시대가 장기화될 가능성이 높을지라도, 그들의 헤게모니는 그렇게 튼튼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지 고작 두 달밖에 안 된 지금, 서울 종로 거리에서는 수만 명의 10대, 20대가 정부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 개방에 항의하며 촛불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렇게 균열은 항상 존재하고, 어느 때든 우리가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시기에 모순은 폭발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명박 시대에도 집단행동이 가능하다는 사실에, 88만원 세대도 거리에 나서기 시작했다는 사실에 너무 흥분해선 안 된다. 문제는, 항상 그렇듯이, 어떻게 해야 이러한 일회적 동원을 일상적 참여로 전환하고 대중의 움직임에 방향과 형태, 지속성과 일관성을 부여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그래서 여전히, 정치운동이 중요하다. 비록 그것이 대중과 관계 맺는 방식은 과거와 근본적으로 달라져야 할지라도 말이다.
진보 좌파는 이명박 정권 아래서 예기치 않게 폭발할 대중운동들에 긴밀히 결합하면서 동시에 진보정당운동의 제2기를 새롭게 구성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이 두 실천이 결코 서로 동떨어진 과정이 되어서는 안 된다. 대중운동의 새로운 등장과 새 진보정당의 건설이 함께 해야 한다. 그래야만 과거 대중운동의 침체기를 배경으로 등장한 민주노동당과 달리 튼튼한 내구성과 왕성한 생명력을 갖춘 좌파 정당을 만들 수 있다.
이렇게 새로 전열을 정비해야만, 2010년 지방선거로 시작될 이명박 정권 후반기의 제도 정치 과정을 보수 우파에 대한 대반격의 계기로 활용할 수 있다. 어차피 18대 총선에 그런 반격의 시작을 기대하기는 무리였다. 이번 총선은 우파의 ‘미완의’ 수동혁명의 끝자락이었다. 이제부터 진보 좌파는 원외에서 토대를 새로 쌓고 아래로부터의 반격을 준비해야 한다. 그것이 ‘진보의 재구성’의 요체이기도 하다.
이 글에서 새로운 진보정당의 구체적인 이념과 노선, 활동 방향과 조직 얼개까지 다 다룰 수는 없다. 아래에서도 계속 강조하겠지만, 이런 내용들은 대중적인 토론과 합의를 통해 만들어가야 할 것들이다. 다만 이 글에서는 과거 민주노동당이 대변하던 3개의 프로젝트와 대비하여 새 진보정당이 담보해야 할 프로젝트들은 무엇인지 짚어보겠다.
새 진보정당도 몇 개의 주요 프로젝트들이 결합된 복합 프로젝트의 성격을 띠게 될 것이다. 그 중 첫 번째는 ‘대안 형성’ 프로젝트다. 새 진보정당에도 물론 강령과 정책이 필요하다. 당장 제2창당 과정에서 강령 작성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런데 새 진보정당은 이러한 작업에 대해 과거와는 다른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
과거의 방식은 통상적인 계몽주의적 태도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것이었다. 지식인들 혹은 선진적 투사들이 사회주의의 궁극 목표와 그 당면 과제를 정리해 강령 문서를 만들면 당원들은 그것을 마치 교과서처럼 학습하는 방식.
하지만 지금은 그렇게 하기에는 빈 곳도 많고 의심할 대목도 너무 많은 시대다. 전 지구적 자본주의를 극복해야 인류 문명이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만 분명할 뿐, 나머지는 불명확하다. 즉 자본주의 문명을 ‘어떻게’ 극복해나갈지는 숙제로 남아 있다. 물론 과거 사회주의 운동의 교훈은 여전히 중요하지만, 이제는 생태주의, 여성주의, 평화주의의 문제제기 역시 그와 동등한 근본적 중요성을 지닌다.
그래서 새 진보정당은 통상적인 이념 정당과는 달리 ‘대안 형성 정당’이어야 한다. '즉 궁극적인 대안은 공동의 실천과 토론을 거치면서 비로소 모습을 드러낼 수밖에 없다는 점을 전제해야 한다. 이러한 전제에 따라 대중적인 실천과 토론 과정이라는 용광로 안에 사회주의, 생태주의, 여성주의, 평화주의 등등 우리 시대의 좌파 이념들을 녹여내야 한다. 그 결과물이 무엇일지는 우리도 알 수 없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러한 합금 과정을 거친 금속만이 21세기 자본주의에 맞설 무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대안 형성의 결과물도 중요하지만, 사실 그것만큼 중요한 것은 그러한 대안 형성 과정 그 자체다. 21세기 좌파는 누군가 먼저 이념을 만들면 대중이 그것을 받아들인다는 식의 관점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념은 대중들 자신의 참여와 대화를 통해 만들어져야만 종이 위의 선언에 그치지 않고 처음부터 대중의 일상 세계에 녹아들어갈 수 있다. 새 진보정당의 강령 작성 과정이 이래야 할 뿐만 아니라 이후 일상적인 정책 생산 과정에서도 이러한 방식을 계속 반복해야 한다. 좌파 이념의 토착화에 아직 성공하지 못한 한국 사회이기에 이러한 노력의 중요성은 더욱 절실히 다가온다. 새 진보정당은 곧 이러한 참여․대화 과정의 실험장이 되어야 한다.
둘째는 ‘새 노동운동 육성’ 프로젝트다. 새 진보정당은 새 세대의 노동운동을 육성하는 인큐베이터가 되어야 한다. 그것은 기업을 넘어서는 노동운동의 활동 메커니즘을 만드는 일이자, 기업 단위 임단협을 넘어서는 의제를 개발하는 일이고,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동자, 대기업과 중소기업 노동자, 남성과 여성 노동자 사이의 새로운 연대의 전통을 만드는 일이다.
새 진보정당이 새로운 노동운동의 배양장이 되자면, 과거 민주노동당과는 달리, 당 안에 노동자 당원들의 독자적인 활동 구조를 갖춰야 한다. 당 지역조직과는 별도로 광역 단위의 노동자 당원 조직을 마련하는 게 그 한 방안이 될 수 있다. 이러한 노동자 당원 조직이 노동조합운동 내에서 새로운 노동운동의 가치와 방향을 몸으로 보여주고 확산시키는 진지 역할을 해야 한다.
그 동안 많은 이들이 갈망해온 사회운동적 노동운동의 등장은 기존 노동조합 구조만으로는 결코 실현될 수 없다. 노동자 당원 조직 같은 초기업적이고 탈조합적인 진지들을 구축하고 그 연계망을 만들어야만, 사회운동적 노동운동이 비로소 태동하고 확산될 수 있을 것이다.
셋째는 ‘진보적 지역 정치’ 프로젝트다. 과거 민주노동당이 ‘국회 진출’에 전략적 중심을 두었다면, 새 진보정당은 그와 달리 ‘지역 정치’에 주목해야 한다. 이것은 단순히 우리 앞에 놓인 가장 가까운 선거가 지방선거이기 때문이거나 혹은 보수 우파가 중앙정부를 장악한 상황에서 그나마 진보 세력이 도전하기 수월한 영역이 지역 정치이기 때문은 아니다.
지역은 그렇게 만만한 도전처가 아니다. 오히려 진보 좌파에게 지역 사회는 여전히 쉽지 않은 활동 무대다. 하지만 그럼에도 진보 좌파는 지역에 전략적 비중을 두고, 진보적 지역 정치를 일구는 것을 가장 중요한 당면 과제로 삼아야 한다.
그 이유는 우선 지역 사회야말로 87년 이후 민주화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민주화의 바람이 미치지 않은 영역이기 때문이다. 여전히 풀뿌리 토호 세력이 지역 사회를 지배하고 있고, 이들이 항상 보수 우파의 최종 피난처 역할을 해준다. 이들이 건재하는 한, 보수 우파는 어떠한 후퇴를 겪더라도 다시 재기할 수 있을 것이다. 지역 사회의 민주화는 곧 한국 사회의 제2단계 민주화다.
다음으로 지역은 이제 노동계급 형성의 기본 단위가 되었다. 현대 자본주의에서 점차 서비스 산업 비중이 늘어나면서 노동력 재생산뿐만 아니라 노동 과정 자체가 지역 단위로 이뤄진다. 또한 다양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서로 연대할 수 있는 단위는 개별 기업이 아니라 지역이다. 따라서 새 진보정당은 노동운동이 지역 중심의 활동 방식으로 전환하도록 자극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지역 정치는 대안 사회의 맹아를 형성하는 데 가장 효과적인 무대가 되어준다. 새 진보정당은 지역 사회에 다양한 연대조직들을 건설하고 ‘민중의 집’ 등을 통해 이들 연대조직 사이의 연합을 모색해야 한다. 이러한 연대조직들은 자본주의 시장경제와 국가 관료주의를 넘어서는 대안적 행위 양식들의 묘목장이 될 수 있다. 또한 브라질의 참여예산제 사례처럼 지방자치제를 활용해 대안 사회의 이상과 원칙을 일정하게 구현할 수도 있다. 즉 지역을 무대로 예시적 실천을 펼칠 수 있다.
이 모두가 이명박 정권 시대, 전 세계적으로는 신자유주의 세계화 물결이 역류를 맞고 있으나 한국에서는 그 최후의 절정을 향해 치솟는 이 시대에 진보 좌파가 벌여야 할 진지전의 핵심 과제들이다. 새로운 진보정당운동의 사명은 바로 이 진지전의 야전 사령부 역할을 하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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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전선 정세토론회-kty

 

노동자정치세력화 어떻게 할 것인가?

김태연(정책선전위원장)



1. 진보정당운동의 실패 이후 되풀이되는 혼란과 새로운 모색


1) 민노당


민노당 내의 이른바 ‘자주파’는 대선패배에 대해 그들이 대선후보를 세웠음에도 ‘후보를 잘못 세웠다’, ‘코리아 연방제를 주요 쟁점으로 부각하지 못했다’, ‘대중조직이 계급투표를 제대로 조직하지 못했다’ 등 자기반성적 평가는 그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는 태도로 일관했다.

민노당은 2월 3일 당대회에서 심상정비대위 혁신안이 부결된 후 2월 19일 다시 비대위를 구성했다. 비례대표 전략공천과 ‘혁신-재창당 준비위원회’ 등 기존에 나와있던 안을 혁신안으로 결정하고, 민노당에 대한 ‘배타적 지지’방침을 등에 업고 총선으로 돌파하려 하고 있다.

그러나 이미 비례대표 전략공천에서 신자유주의세력 지지자들을 비례대표후보로 공천하는 등 ‘무원칙한 양적 확대’에 치중하고 있다. 여기에 민주노총 집행부는 이미 무력화된 ‘배타적 지지’ 방침을 근거로 민주노총 부위원장을 출마시키는 등 민노당 살리기에 여념이 없다.


* ‘배타적 지지’를 둘러싼 대립 격화


2.14, 민노당 천영세 직무대행은 민주노총, 전농,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한국청년단체협의회 등 이른바 ‘배타적 지지’ 4개 단체 대표자들과 간담회를 갖고 민노당 구원을 호소했다.

그러나 그동안 ‘배타적 지지’ 입장을 갖고 있던 전국빈민연합은 ‘배타적지지’ 방침을 둘러싼 논의가 진행되고 있어 불참했고, 그 후 진보신당에 참가했다. 이런 상황에서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이나 한국청년단체협의회까지 포함하여 배타적 지지 단체 수를 늘렸다. 그러나 이미 민주노총 내부에서 배타적 지지 방침이 허물어지고 있기 때문에 ‘배타적 지지’ 방침이 민노당 잔류세력의 ‘민노당살리기’ 노력에 얼마나 힘이 될 지는 미지수이다.

민주노총 이석행집행부는 ‘배타적 지지’ 방침을 무기로 민노당살리기의 전위로 나섰다. 민주노총 정치위원회는 배타적 지지 방침에 대한 총선 전 논의를 일축했다. 그러나 민주노총 집행부의 이런 의도는 가맹산하조직에서부터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동안 ‘배타적 지지’ 방침이 어떤 역할을 해왔는가? 민주노총 내부에서 친자본 정당을 지지하는 세력에 대해서는 아무런 방패막이도 되지 못했다. 노동조합의 지도적 인사들은 계기마다 친자본정당과 친자본 정부로 넘어갔다. 2007년 대선에서는 우후죽순 격으로 친자본정당 후보들을 지지하고 나섰다. 그럴때 ‘배타적 지지’ 방침은 있으나 마나 했다. 반면 진보변혁세력의 노동자 정치운동에 대해서는 ‘배타적 지지’의 칼날을 들이대기 일쑤였다. ‘배타적 지지’는 변혁운동의 발전을 가로막는 역할만 해 온 셈이다.

‘배타적 지지’ 방침은 민노당 스스로에 대해서도 ‘독’이었다. 민노당이 노동대중을 위해 실질적으로 투쟁하지 않아도, 민주노총이 당연히 돈을 대고, 표를 주는 마당에 민노당이 노동대중을 두려워하겠는가? ‘배타적 지지’는 민노당을 노동대중으로부터 멀어지게 한 것이다.


노동조합(민주노총), 정당(민노당), 전선조직(민중연대)에서 통합되어 있던 진보진영 내의 좌우세력는 민족주의노선과 계급주의노선으로 조직적 분열을 맞고 있다. 민족주의세력이 먼저 한국진보연대 출범을 필두로 민중연대에서의 좌우연대를 깨고 나갔다. 이어 민주노동당이 분열되어 민족주의정당으로 잔류했다. 그 다음 차례가 민주노총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즉, 배타적 지지로 민노당 살리기를 감행하면 그 결과는 민주노총 분열이다.


2) 진보신당


2.16, ‘전진’은 총회를 통해 총선 전 진보신당 창당을 결정하고 지역별 추진위원회를 구성하기로 결정했다. 심상정 비대위 체제에서 먼저 탈당하여 구성된 ‘새진보운동’(대표 김석준, 조승수, 박승옥)은 2월 17일 심상정비대위를 중심으로 한 이른바 당혁신파와 함께 신당을 만들기 위해 해소를 결정했다. ‘새진보운동’ 측이 4월전 총선용 창당, 총선후 강령제정 등 본격적 창당안을 내었으나, 심상정비대위 관련 인사들을 중심으로 4월총선 대응에 신중론이 제기되어 논란이 되었다. 4월총선에서의 패배는 ‘도박’이라는 정치적 부담이 작용한 것이다. 이 논란은 2.13, 심상정, 노회찬 의원을 비롯한 평등파 핵심 인사들의 회동에서 ‘총선 전 임시 창당-총선 후 정식 창당’의 2단계 창당으로 정리되었다.

총선전에 만들 신당은 ‘진보신당연대회의’ 형태이다. 2월 21일 심상정, 노회찬 의원이 기자회견을 통해 진보신당연대회의 구성을 위한 원탁회의를 제안했다. 이로써 탈당세력의 신당은 이런저런 조직들을 뒤로 하고 심상정, 노회찬이라는 기존 민노당의 대중적 간판스타 의원을 앞세워 창당하는 수순을 밟기 시작했다. 3월 2일 300명이 창당발기인대회를 했고 3월 16일 창당할 예정이다.

이런 일정과 함께 “새로운 진보정당은 평등, 생태, 평화, 연대를 핵심 가치로 추구해야 한다”고 당의 노선까지 밝혔다. ‘4월총선을 향해 100m 경주를 안하고, 2010년 지자체를 목표로 한다’고 하지만 신당의 운명은 4월총선 결과에서 좌우될 수 있기 때문에 4월 총선에 사력을 다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민노당의 조직력에 맞서기 위해 명망가들을 앞세운 총선전략을 기조로 하고 있다. 비례대표 후보를 당원직선이 아닌 이른바 ‘전략공천’으로 정한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진보진영 명망가들을 앞세울 것으로 보인다. 노회찬, 심상정 의원은 신당의 지역구에 출마하고, 단병호 의원은 일단 진보신당 참여유보와 4월총선 불출마 입장을 취했다. 그러나 노동자정치세력화를 위해 노력한다는 입장도 분명히 함으로써 4월총선 후 창당과정에 참여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4월총선을 겨냥하여 출범을 서두르고 있는 ‘진보신당’이 민주노동당의 한계를 극복하고 제대로 된 노동자정당으로 갈 수 있을 지에 대해 아직 신뢰할 수 없다. 민노당 분당 과정에서 민노당 실패에 대한 평가가 일면적이었고, 새로운 정당의 방향에 대한 대중적 논의도 없이 총선용 정당을 급조하는 등 민노당의 전철을 밟고 있기 때문이다.




3) 변혁적 노동운동 진영의 당건설 논의


- 노동자의힘

노동자의힘은 3월 15일 오후 4시부터 16일 오전 8시까지 이어진 총회에서 노동자계급정당 건설안을 결정했다. 2008년말-2009년에 최소한 노동자계급정당건설 추진위원회 구성을 목표로 하고, 이를 위해 공개적이고 대중적인 방식으로 추진기구를 구성하기로 했다. 이 추진기구는 노동자의힘 밖에 두어 제세력과 개인들이 주체적으로 참여하여 만드는 것이며, 노동자의힘 약 30여명, 지역과 현장의 활동가 및 사회운동활동가 70여명 등 100명 내외로 구성할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당의 성격과 관련하여 반자본 사회주의 노동자정당, 의회주의 합법주의를 부정하는 전제 하에 의회전술 구사, 당원의 요건으로 ‘실질적 당활동을 할 것’ 등을 결정했다. 이런 내용의 당건설 계획안을 재석인원 2/3이상 찬성으로 의결했다. 결의된 당건설을 책임있게 추진할 지도부를 구성하기 위해  4월 13일 총회를 속개하기로 하고 정회했다. 따라서 노동자의힘은 4월 13일 총회에서 지도부를 구성한 후 ‘추진기구’ 제안 등 본격적으로 당건설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 사노련

2월 23일 4개 서클을 통합한 사노련은 혁명적 사회주의정당 건설을 내걸었다. 특히 변혁의 경로에 대해 선거를 통한 부르조아 권려기구 장악 가능성 또는 필요성을 전면 부정하고 대체권력으로서의 평의회(소비에트)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논의모임 제안에 대해서는 지금 당당은 변혁정당 건설을 위한 제 정치조직의 조직간 연대에 부정적인 입장을 표명했다. 현장에서 각자가 사회주의 실천을 하고 그를 토대로 검증한 후 판단한다는 것이다.


- 해방연대

해방연대는 민노당 탈당 후 5월경에 사회주의 노동자정당 건설 문제에 대해 논의하다는 입장이다. 2월 13일 토론회에서는 일차적으로 평가사업을 하고 현장에서의 사회주의적 실천에 주력한다고 하여 사노련과 비숫한 입장을 보였다.


- 사회당

3.16, 사회당은 당대회에서 최광은 대표를 선출했다. 최광은 대표는 새로운 진보정당의 창당이 필요하나, 그 방안은 정파연합방식이 아니라고 하여 ‘진보신당’과의 합당에 소극적 입장이었다. 2위를 한 박진희 후보는 ‘진보신당’과의 연대를 주장했다. 구체적으로 3월 당대회에서 사회당을 해소하고 진보신당과 총선에 대응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사회당 전당대회의 이같은 결정은 사회당 해소․새로운 진보정당 창당이 절대다수이나,  그중에서도 이념적으로는 보다 생태적이고, ‘진보신당’과의 연대보다는 보다 폭넓은 연대를 지향하는 의견이 다수로 확인되었다. 즉 진보신당과의 즉각 통합을 주장한 박진희 안이 패배하고 최광은 대표체제가 들어섬으로써 사회당은 최소한 2010년 지자체까지 유지하면서 ‘진보대연합’을 추진할 것이다.




2. 지난 10년의 한계를 극복하자


이 땅의 노동자들은 자본가들의 착취와 탄압에 맞서 가열찬 투쟁을 전개해 왔다. 87년노동자대투쟁으로 떨쳐 일어선 노동자들은 투쟁의 무기인 노동조합으로 뭉쳐 투쟁해 왔다. 그러나 노동조합의 투쟁만으로는 자본의 착취와 정권의 탄압을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데 한계를 절감했다. 그래서 노동자정치세력화가 요구되었다.


지난 10년간 민주노동당을 중심으로 한 노동자정치세력화가 추진되었다. 그러나 민주노동당은 노동대중의 노동자정치세력화 열망을 받아안지 못하고 실패했다. 당은 두 개로 쪼개졌다. 민주노동당과 같은 방식으로는 진정한 노동자정치세력화로 나아갈 수 없다. 이제 민주노동당식 노동자정치세력화의 한계를 극복한 올바른 노동자정치세력화가 추진되어야 한다.



1) ‘국민과 함께하는 노동운동’을 극복하고 노동자중심성을 확고히 세워야 한다


- 민노당은 97년 대선에서 ‘국민승리 21’로부터 출발했다. ‘일어서라 코리아’를 대선 기치로 삼았다. 이는 민노당이 ‘투쟁하는 노동자정당’으로 인식되는 것을 피하기 위함이었다. 민주노총 1기집행부가 출발하면서 내건 ‘국민과 함께하는 노동운동’과 맥을 같이 하는 운동방향이 민노당 출발에서부터 자리잡고 있었다. ‘국민과 함께하는 노동운동’이 민노당에서는 ‘데모당 딱지를 떼야 한다’는 것으로 표현되었다. 실천적으로는 적극적인 대중투쟁 회피로 나타나, ‘투쟁정당’으로서의 면모를 상실했다. 지난 10년간 자본과 정권의 신자유주의 공세에 맞서 수많은 노동자들이 구속수배해고되고 심지어는 목숨을 걸고 투쟁하는 상황에서 민주노동당은 흉내내기식 투쟁으로 일관함으로써 자본과 정권의 신자유주의 공세에 고통받는 대다수 노동자․민중의 희망이 되지 못했다.

이런 문제는 민노당 분당 이후 진보신당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진보신당의 심상정 공동대표 역시 진보신당이 ‘데모당’의 딱지를 떼야 한다는 주장하고 있다.


- 사회변혁운동은 다수 대중의 지지를 확대하고 외연을 넓혀야 한다. 그러나 중심을 확고히 하면서 외연을 넓혀야 한다. 새롭게 시작할 노동자정치세력화는 무엇보다 먼저 노동자대중의 요구와 열망을 중심에 놓고 노동자다운 투쟁으로 차고 나가는 노동자중심성을 확고히 해야 한다.


2) 민족주의를 극복한 노동자계급의 정당을 건설해야 한다


- 민노당 내에서 민족주의노선이 득세하여 노자간 대립을 부차적인 문제로 돌려 노동대중의 절실한 요구와 투쟁에서 점점 비껴나갔다. 이는 2007년 대선에서 이른바 ‘코리아연방제’ 파동으로 정점에 이르렀다. ‘6.15 공동선언 실현’을 가장 우위에 놓는 경향으로 인해 6.15 공동선언의 한 주체인 남한 정권에 대한 대정부투쟁에서 끊임없이 지그재그했다. 6.15선언을 중심으로 연합하면서 신자유주의 정책에 대해서는 반대하는 기조 속에서 민노당은 집권 신자유주의 정당의 2중대로 전락해 갔다.

2007년 대선 후 민노당 내에서 이른바 ‘평등파’는 자주파의 ‘종북주의’를 패인으로 제기했다. ‘자주파’의 민족주의노선이 민주노총, 민중연대, 진보정당 등에서 노동자민중의 투쟁전선을 심각하게 교란해 왔다는 점에서 근거있는 진단이다. 그러나 일심회 사건과 ‘종북주의’를 문제제기의 중심에 놓은 것은 본질을 호도하는 것이었다.


- 한국사회는 여러 가지 문제들이 산적하지만 가장 핵심적인 문제는 노자간의 대립이고, 수많은 문제들이 그것에서부터 비롯되고 확대된다. 때문에 새로운 노동자정치세력화는 민족주의를 극복하고, 자본주의 착취를 철폐하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해야 한다.


3) 의회주의를 극복하고 투쟁하는 정당을 건설해야 한다


- 민노당은 87년노동자대투쟁 이후 노동운동 발전의 성과를 안고 출발했다. 특히 1997년 민주노총의 노개투 총파업의 성과를 안고 출발했다. 노개투 총파업 이후 “노동계급은 산별노조와 진보정당이라는 두 개의 조직적 무기를 갖추자”고 주장되었다. 이른바 ‘양날개론’은 ‘민노당은 의회에서 노동자들을 정치적으로 대표하고, 노동조합은 대중투쟁을 한다’는 것이었다. 그 결과 민노당은 투쟁정당으로서의 역할을 방기하고, 노동조합의 정치활동은 민노당이 더 많은 의원을 배출하도록 지원하는 것으로 격하되었다. 민노당은 노동조합이 투쟁집회에 연사를 보내 ‘노동자가 승리하기 위해 더 많은 민노당 의원을 뽑아달라’고 호소하는 일로 일관했다. 정치활동을 민노당에 넘긴 노동조합 대중조직의 투쟁은 경제주의 투쟁으로 제한되었다. 물론 현재의 민주노총 투쟁전선 약화가 경제주의 때문에 초래되었다고 볼 수는 없다. 경제투쟁마저 제대로 못하기 때문에. 그러나 신자유주의 정권에 대한 대중적인 정치투쟁 발전을 가로막은 것이 사실이다. 신자유주의 공세에 대한 노동대중의 투쟁의지는 다음 선거에서 진보정당 지지로 유예되곤 했다. 사회변혁투쟁은 말할 것도 없고, 신자유주의 분쇄투쟁조차도 결국은 선거에서 다수당이 되어 집권하지 않는 한 요원하다는 인식을 유포시켰다.


- 4.19, 5.18, 6.10, 7-9월노동자대투쟁 등 지난 역사의 굽이굽이에서 노동자민중의 치열한 대중투쟁이 역사를 변화시켜왔다. 선거에 개입하여 성과를 내는 것조차도 이러한 대중투쟁의 강화없이는 가능하지 않다. 2007년 대선에서 민노당의 패배는 노동자대중투쟁이 약화된 결과이기도 하다. 4월 9일 총선에서 민노당이나 진보신당이나 성과를 바라고 있으나, 이런 점에서 그 결과는 이미 한계를 안고 있는 것이다. 서구 의회주의 정당들이 선거에만 몰입하다가 사회변혁에 실패하지 않았는가? 새로운 노동자정당은 선거에 개입하고 활용하지만 투쟁을 중심에 놓는 정당이어야 한다. 



4) 사민주의의 한계를 벗어나야 한다


- 민노당은 ‘정책정당’을 표방했다. 정책정당을 강조한 것은 ‘대책없는 투쟁일변도’를 지양하고, ‘대안있는 정책’으로 승부하자는 것이었다. 정당이 대안정책을 제출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중요하다. 그러나 정책정당 강조가 투쟁정당과 대치시키고 있는 것은 문제였다.

이 문제를 차치하고 민노당의 정책은 어떠했는가? 사민주의 정책 일변도였다. 사민주의 정책중에서도 수준이 낮은 정책이었다. 신자유주의 논리에 대응하여 케인즈주의류의 수요창출을 주장하고, 조세개혁을 통한 재분배를 정책으로 제출했다. 사회보장을 사회연대정책으로 해결하자는 안을 내었다. 그 결과 대중은 신자유주의를 추진하는 노무현정권이 양극화문제 해결을 위해 내놓는 이런저런 정책들과 별다른 차별을 느낄 수 없게 했다. 대중에게 민노당은 좀 더 강경한 열우당류로 전락했다. 그래서 열우당의 패배에 민노당이 도매값으로 함께 넘어간 것이다.


- 사회연대전략 전면에 내세운 진보신당의 총선공약

3.19, 진보신당은 22개 총선공약을 발표했다. 22개 공약 중 ‘사회연대 생활임금’, ‘노동시간 연 2000시간 상한제’, ‘저소득층 국민연금보험료 지원’ 등 3개항이 사회연대전략에 관한 것이다. 이는 지난 2006년 민노당 내에서 제기되었으나, 노무현정권의 ‘양극화 해소를 위한 고통분담론’에 악용되고, 사민주의적인 정책이라는 논란 속에서 당의 정책으로 채택되지 못했다. 2007년초 민주노총 임원선거 쟁점으로 확대되어, 당시 ‘전진’ 그룹 내에서도 찬반논란이 야기되어 사회연대전략 반대입장을 낸 바 있다.

구체적 내용은 향후 5년 내 평균임금의 50% 수준으로 최저임금을 높이고, 당장 최저임금 지급이 어려운 기업들을 위해 인상 차액 일부를 고용보험 기금을 통해 지급하겠다는 것이다. 또 연 노동시간을 2000시간으로 제한하여 노동시간 단축에 따른 일자리를 증대한다는 것이다. 이 경우 잔업특근수당 축소에 따른 임금저하 문제를 ‘사회연대’라는 당위성을 바탕으로 적극 설득한다는 것이다. 진보신당의 사회연대전략은 총선에서뿐만 아니라 금년 임단투에서 주간연속 2교대제의 쟁점으로 될 가능성이 많다. 현대, 기아, 대우, 쌍룡 등 자동차업종 자본측은 주간연속 2교대제 전제조건으로 임금삭감을 주장하고 있다. 여기에 이명박 정권은 경제침체 상황에서 ‘경제살리기를 위한 임금동결’ 공세를 강화할 것이다.

비정규 노동자의 저임금 문제를 노동계급 내부에서 해결하고자 하는 사회연대전략이 집단이기주의 공세를 앞세운 노동자 고통분담론을 비껴 나갈 수 있을지 의문이다.

민노당도 3월 18일 총선공약을 발표했고, 비정규중소영세사업장노동자 문제해결을 위한 3대 해법, 6대 긴급대책이 포함되어 있다. 두 당 모두 비정규직 중심의 노동시장을 받아들이고, 차별을 완화하는 방향을 채택하고 있다. 비정규직을 양산하고, 차별을 확대하는 비정규악법을 폐기하는 데에는 별로 방점을 찍지 않고 있다.


- 새롭게 건설할 노동자 정당은 자본주의의 근본적인 문제들을 제기하고, 새로운 사회건설을 목표로 해야 한다.


*. 변혁적 진보정당 건설을 위한 대토론회


대선 이후 각 정치세력이 기민하게 대응하지 못하는 가운데 변혁운동 진영의 논의가 시급하다는 문제의식에서 논의모임 형식을 통해 대중토론의 장을 열었다. 노동전선 대표 등 활동가들도 이 논의모임에 참가했다.


- 1.18 대토론회 : 변혁적 노동운동진영은 1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1월 18일 ‘진보정당운동 위기와 변혁적 정당운동의 전망’을 주제로 대토론회를 개최했다. 이 토론회는 좌파 정치조직들이 기민하게 움직이지 못하는 조건에서 민노당 분열사태라는 정세적 긴박함을 감안하여 10여명이 제안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졌다.


- 2.13 2차 토론회 : 2월 13일, ‘변혁적 진보정당의 필요성과 기본상’을 주제로 노동자의힘(박성인 중앙집행위원장), 사회주의노동자연합(박준선 운영위원), 해방연대(성두현 대표), 사회당(오준호 대표), 사회진보연대(임필수 운영위원) 등이 지정토론자로 참가하여 토론을 벌였다. 논의모임 제안자 자격으로 김세균 교수가 발제를 통해 ‘사회주의 노동자정당’ 건설과 이를 위한 논의모임 구성을 제안했다.

노동자의힘이 적극 동의입장을 표명했다. 그동안 추진해 왔던 좌파정치테이블 구성을 촉구하고, 한편으로는 논의모임을 적극 추진하여 계급정당건설에 박차를 가하자는 입장을 밝혔다.

토론에 참가한 활동가들은 변혁진영 정치조직들이 연대를 강화하기 보다는 차이를 강조하고, 당면 정세에서 각 자의 현장실천 운운하는 모습에 대한 실망과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또 민노당을 탈당하는 세력과 함께 범좌파 진영의 연대에 의한 당건설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제기되었다.

좌파 정치조직이 여전히 써클적 분열을 극복하고 있지 못한 상황이 다시 한번 확인되어 변혁정당 건설의 전망을 어둡게 했다. 반면에 현장활동가들의 관심은 매우 높은 것으로 확인되었다. 논의모임은 앞으로 현장활동가들이 적극 참가하는 지역토론회를 추진할 예정이다.



3. 노동자정치세력화를 위한 현장활동가들의 실천과제


1) 변혁적 노동운동세력이 더 이상 관망해서는 안된다


지난 10년간의 진보정당운동 실패는 노동자정치세력화를 위한 절호의 기회이다. 변혁적 노동운동지영이 그동안 제기해 온 민노당 운동에 대한 대중적 문제의식이 실천적으로 검증되고 있다. 그리고 노동대중의 문제의식은 패배론으로 흐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노동자정치운동으로 발전할 것을 원하고 있다.

4월 총선 이후 노동자정치세력화에 대한 논의와 구체적 행보다 다시 본격화될 것이다. 노동자 정당운동의 새로운 판이 짜질 가능성이 많다. 이 새로운 판은 최소한 다음 10년을 규정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변혁적 노동운동 진영이 준비부족론, 대기론, 무관심 등으로 관망한다면 한 발도 나아갈 수 없을 것이다.


2) 무엇부터 시작할 것인가


노동자정당에 대해 변혁운동진영 내의 견해차이는 매우 크다. ‘민족주의, 의회주의, 사민주의를 극복한 노동자정당’ 정도가 최저한의 공통분모이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차이가 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단 논의의 장을 열어야 한다.

‘민족주의, 의회주의, 사민주의를 극복한 노동자정당 건설’을 논의 출발을 위한 최소 기준점의 하나로 하자. 그 기준점 하에서 당의 이념과 노선, 당의 형태, 활동, 당건설의 경로와 시기 등을 논의하자.

체계적 논의를 위한 가장 느슨한 틀을 구성하고, 현장활동가들이 광범위하게 참가할 수 있는 방식으로 토론회를 열자. 총선 후부터 늦어도 6월까지 지역별 토론회 방식을 기본으로 하자.

지역별 토론회의 성과를 토대로 보다 발전된 형태의 당건설 추진기구를 만들 것을 목표로 하자.


3) 현장활동가들의 역할


- 노동전선이 출범하면서 정치조직으로 자신의 위상을 규정하지 않았고, 정치활동의 자유를 보장하기로 했다. 실제로 노동전선 내부에는 노동자정치세력화와 관련 하여 다양한 견해가 있다. 민노당 분당 이전에는 민노당 당원인 회원들이 있었고, 사회당 당원도 있다. 노동자의힘 등 정치조직의 회원들도 있다. 정당운동 자체의 유의미성을 부정하는 회원들도 있다. 노동자정치세력화와 관련하여 변혁적 노동자정당을 건설하자는 동지들도 있고, 진보신당과 함께 하자는 동지들도 있다.

그러나 노동전선은 노동자정치세력화에 대해 공통의 문제의식은 갖고 있다. 즉 노동자정치세력화는 의회주의, 사민주의, 민족주의를 지양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현 시기에 노동전선이 어떻게 할 것인가?

내부에는 정치방침과 관련한 논의를 하지 말자는 의견도 있다. 정치활동을 할 회원들의 각자가 이런저런 정치조직활동 차원으로 하면 되지, 이를 노동전선의 정치방침으로 만들려하면 가능하지도 않고, 노동전선 내부가 분란에 휩싸일 뿐이라는 것이다. 또 아무리 열려있는 토론을 하더라도 특정 정치조직의 입장을 관철하려는 듯한 우려를 낳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노동전선은 노동해방과 사회변혁을 지향하는 활동가들의 실천적 연대조직이다. 회원인 활동가들의 실천은 노동자정치세력화 과제에서 배제되지 않는다. 따라서 노동전선은 당면한 노동자정치세력화에 복무해야 한다. 다만, 노동전선의 조직위상이나 내부조건을 감안하여 성급한 정치방침 결정을 전제해서는 안된다. 노동자정치세력화에 대한 내부토론을 통해 인식을 풍부히 하고, 견해를 모아나가는 노력을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


- 노동전선뿐만 아니라 광범위한 현장활동가들이 토론에 주체적으로 나서자. 지금부터 각 지역토론회를 적극적으로 조직하자. 현장할동가들 스스로부터 노동자정치세력화의 방향을 정립하고 실천에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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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당 방침(사노련)

<사회주의 노동자당 추진 세력의 연대와 결집을 위한 정치방침>



혁명적 사회주의 노동자당 추진 세력의 연대와 결집으로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참된 희망을 만들어 가자!


1. 2007년 대선에서 민주노동당이 참패하면서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둘러싼 지형에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1) 민주노동당의 참패는 자본주의 모순의 심화로 벼랑 끝에 내몰린 노동자 대중에게 어떤 희망도 제시하지 못함으로써 민주노동당 스스로가 자초한 것이다. 민주노동당은 고통 속에 절규하는 노동자 대중을 반자본주의 정치투쟁으로 이끌어 내려는 어떤 진지한 시도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노동조합 관료들을 기반으로 개량주의와 의회주의에 철저히 매몰되면서 신자유주의 집행자 노무현 정권의 2중대 역할을 수행하였을 뿐이다. 그로 인해 민주노동당은 노무현 정권에 대한 노동자 대중의 분노를 모아내는 주체가 되기는커녕 노무현 정권과 한 묶음으로 심판당하는 비참한 처지에 놓이고 만 것이다.

(2) 민주노동당의 참패는 그 본질과 실상을 스스로 만천하에 까발리는 기폭제로 작용하고 있다. 대선 참패 이후 민주노동당은 시끌벅적한 책임 공방을 벌이고 있지만, 자본주의 모순의 심화로 절규하는 노동자 대중의 정치적 열망을 배신한 데 대한 어떤 진지한 반성도 찾아볼 수 없다. 노동자 대중의 정치적 열망을 똑같이 배신해 온 이른바 자주파와 평등파 사이에 반성 없는 추악한 패권 다툼만이 벌어지고 있을 뿐이다.

(3) 대선 참패와 반성 없는 추악한 패권 다툼 속에서 민주노동당의 위상은 결정적으로 추락하고 있다. 한동안 민주노동당은 노동자 대중의 정치적 열망을 개량주의와 의회주의라는 잘못된 길로 이끌면서도 마치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유력한 희망인 듯 행세하였다. 그것은 1987년 노동자 대투쟁과 1996~97년 노동법 총파업을 거치며 성장해 온 노동자 대중의 정치적 열망을 민주노동당이 상당 부분 흡수해 냈던 까닭이었다. 그러나 그동안 민주노동당에 참여하거나 지지했던 수많은 노동자들이 이제 민주노동당을 박차고 나오거나 지지를 거둬들이고 있다. 지난 10년 가까이 민주노동당이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유력한 대안처럼 행세해 왔던 시대가 마침내 끝나가고 있다.

2. 사회주의 노동자당만이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참된 대안이 될 수 있다.

(1) 민주노동당이 개량주의와 의회주의의 길을 걸음으로써 노동자 대중의 정치적 열망을 배신해 온 것은 그동안 민주노동당을 주도해 온 자주파(민족주의)만의 책임이 아니다. 대선 참패 이후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평등파(사회민주주의) 또한 개량주의와 의회주의를 주도해 온 또 하나의 주역일 뿐이다. 게다가 대선 참패 이후 평등파는 신당추진 세력이든 민주노동당 혁신 세력이든 더욱 노골적인 개량주의와 의회주의를 주창하는 길로 나아가고 있다. 민족주의와 사회민주주의는 자본주의 모순의 심화로 절규하는 노동자 대중의 정치적 열망을 정면으로 배신한다는 점에서 동전의 양면일 따름이다.

(2) 그동안 민주노동당과 경쟁하는 정치세력이었던 노동자의 힘과 한국사회당은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참된 대안이 될 수 없는 치명적인 결함을 갖고 있음으로 인해 오히려 민주노동당이 압도적 지위를 유지하는 데 받침돌이 되었을 뿐이다. 노동자의 힘은 노동자 권력 투쟁으로 나아가는 일관된 강령적 입장을 세우지 않고 시류에 따라 “반신자유주의”와 “반자본주의”를 왔다 갔다 하며 전형적인 중도주의의 모습을 보여 왔다. 노동자의 힘은 모호함으로 가득 찬 중도주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림으로써 스스로 말과 행동이 전혀 다른 좌파 노조 관료들의 근거지로 타락해 왔을 뿐이다. 한국사회당은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변종에 다름 아닌 사회적 공화주의를 내세우면서 노동자 운동 자체로부터 사실상 이탈해 왔다.

(3) 자본주의 모순의 심화로 벼랑 끝에 내몰리고 있는 노동자 대중의 정치적 열망을 온전히 받아 안고 올바로 이끌어 나갈 유일한 대안은 개량주의 환상을 단호히 거부하는 사회주의의 길이다. 자본주의 모순이 나날이 격화되는 정세 속에서 자본주의 그 자체에 도전하고 자본주의에 정면대결 하는 태세를 갖춘 사회주의 노동자당만이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참된 대안이 될 수 있다. 비정규직 철폐,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 노동자통제권 도입, 재벌 몰수․국유화 등을 내걸고 노동자 대중을 반자본주의 투쟁으로 조직하는 사회주의 노동자당, 의회주의와 관료주의를 단호히 거부하고 현장에서부터 계급투쟁을 조직해 나가는 사회주의 노동자당,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 폐지와 노동자 권력 수립을 뚜렷하게 추구하는 사회주의 노동자당만이 벼랑 끝에서 절규하는 노동자 대중의 정치적 열망을 진정으로 실현할 수 있다.

3. 사회주의 노동자당 추진 세력의 연대와 결집으로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참된 희망을 만들어 가자.

(1) 사회주의노동자연합(준)은 아직 정식 출범을 앞두고 있지만 사회주의 노동자당을 추진하는 한 주체로 당당히 서려고 한다. 우리는 스스로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지만, 우리만의 힘과 노력으로 사회주의 노동자당을 건설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 스스로 소중한 성과들을 쌓아가는 것 못지않게, 사회주의 노동자당 추진 세력의 연대와 결집 또한 사회주의 노동자당 건설을 앞당기기 위해 매우 중요한 과제라고 판단한다. 우리는 사회주의 노동자당 추진 세력의 연대와 결집을 제안한다.

(2) 사회주의 노동자당 추진을 위해 연대하고 결집해야 할 세력은 그 범위를 분명하게 할 때에만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참된 희망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사회주의 노동자당 추진 주체가 되고자 한다면 개량주의를 단호히 거부하고 혁명적 사회주의 지향을 뚜렷이 세워야 할 것이다. 의회주의와 관료주의를 단호히 거부하고 현장에서부터 계급투쟁을 조직하겠다는 실천방향을 확고하게 세워야 할 것이다. 민주노동당을 비롯하여 사회주의 노동자당 추진 주체가 도저히 될 수 없는 정치조직들에 더 이상 뒤섞여 있지 않고 단호히 결별하여 스스로 사상적·실천적 정체성을 분명히 세워야 할 것이다.

(3) 지금으로서는 사회주의 노동자당 추진 세력의 연대와 결집이 실현되기까지 다소 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 우선 필요한 것은 연대하고 결집할 주체들이 자신의 지향을 분명히 세워내고 드러내며 소통하는 길에 과감하게 나서는 것이다. 우리는 스스로 혁명적 사회주의자가 되고자 하는 여러 동지들에게 사회주의 노동자당 추진 주체로 자신을 재정립하며 과감하게 떨쳐나설 것을 호소한다. 또한 현장의 계급투쟁 속에서 성장하는 현장 활동가 동지들이 정치적 도약과 결단을 통해 사회주의 노동자당 추진 주체로 스스로 우뚝 설 것을 강력히 호소한다.

(4) 연대와 결집의 방안은 혁명적 사회주의 노동자당 추진 세력의 윤곽이 드러나고 소통이 진전되는 것을 바탕으로 구체화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혁명적 사회주의 노동자당 추진 세력들과 긴밀히 소통할 것이며, 그 결과를 토대로 연대와 결집의 방안을 제안할 것이다.

(5) 노동자 정치세력화 지형이 크게 흔들리고 있는 현 상황은 노동자 대중의 솟구치는 투쟁이 아니라 민주노동당의 추락에서 비롯된 만큼 많은 한계를 갖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자본주의 모순의 심화로 나날이 벼랑 끝에 내몰리는 노동자 대중은 머지않아 거대한 폭발력으로 자신의 분노를 세상에 드러낼 것이다. 지금 벌어지는 사태는 그 전주곡에 다름 아니며, 우리 모두는 머지않아 격렬하게 소용돌이치는 역사의 한복판에 가차 없이 내던져질 것이다. 뜻과 힘을 하나로 모아 사회주의 노동자당 건설을 향해 연대하고 결집함으로써 비상한 역사의 부름에 온몸으로 응답해 내자.

2008년 2월 4일

사회주의노동자연합(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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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동당 사태논평(해방연대)

민주노동당은 정치적으로 완전히 몰락하였다.



1. 민주노동당은 정치적으로 완전히 몰락하였다.


대선에서의 참패로 민주노동당은 정치적으로 몰락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2005년 울산북구재선거, 2006년 지자체선거에서의 패배 이후에도 패배에서 아무런 교훈도 끌어내지 못하고, 아무런 자기변화도 실천하지 못한 민주노동당에게 노동자, 민중은 준엄한 심판을 내렸다.


사태를 더욱더 극단적으로 악화시킨 것은 대선참패 이후 한 달여 동안 보인 민주노동당의 부끄러운 모습이었다. 권영길 후보와 경선과정에서 권영길 후보를 적극 지지한 자주파와 개인들, 그리고 선대위와 최고위원회는 진심으로 반성하고 책임지는 태도를 보이지 않았으며, 대선이 참패로 끝난 지 한 달여가 지났지만 명확하게 구체적으로 대선참패의 정치적 책임을 진 사람은 사실상 한명도 존재하지 않았다. 다른 한편에서 ‘전진’을 중심으로 대선투쟁의 참패에 대한 철저한 평가는 하지 않으면서, ‘종북주의 때문에 대선투쟁에서 패배하였다, 종북주의 때문에 당이 망했다’는 정치적 공세만이 난무하였다.


우여곡절 끝에 힘들게 심상정비대위가 구성되었지만 진정성 있는 반성과 평가는 누락된 채 정파 간 정치공세가 악화될 뿐이었으며 그 결과는 민주노동당의 완전한 정치적 몰락이다.

신당파의 의견을 사실상 반영한 비대위의 평가와 혁신안은 평가의 핵심을 완전히 비껴갔으며, 그 내용은 전진과, 이후 신당파가 제기한 ‘종북주의 청산’ 기조에 철저히 입각하였고 노골적으로 당을, ‘정세에 전혀 부합되지 않게’ 우파사민주의정당화(현재의 민주노동당보다도 우경화한!)하려는 노선으로 채워졌다. 이 안은 “민주노동당이 대선투쟁에서뿐만 아니라 지난 3년간의 정치사업 전반에서 반자본주의적 기조를 분명히 하지 못하여 독자적인 노동자정치의 실천에 실패하고 그 결과 열우당 2중대의 위치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대선참패의 핵심원인과는 완전히 동떨어진 평가와 대안을 ‘자주파의 후퇴’라는 조건을 활용하여 일거에 당에 들이미는 노골적인 우파사민주의정당화 정치공세였다.


이 정치공세에 자주파는 역방향의 정치공세로 대응하여, 2.3 대의원대회에서 ‘대선참패는 사실이 아니며 대선결과는 단지 실망스러운 결과일’뿐이라는 수정안을 통과시켰으며, 최기영, 이정훈당원의 정보유출이란 ‘해당행위’에 대한 징계조차 거부하였다.


대선참패조차 부인하는 자주파의 현실인식은 자주파가 얼마나 현실과의 소통, 대화능력을 상실하고 있는지를 철저히 노출시켰는데 이들에 의해, 민주노동당은 노동자, 민중, 일반국민에게 황당무계한 당으로 비칠 수밖에 없게 되었다. 또한 징계거부는 최소한의 당기강 확립조차 거부하는 것이었다.


결국, 대선참패 이후 자주파와 신당파의, 밑도 끝도 없는 상호 정치공세 끝에, 비상한 시기에 대응하기 위해 구성된 비대위조차 붕괴되는 사태가 발생하였으며 이 사태로 민주노동당은 마지막 남은 노동자, 민중의 신뢰와 기대마저 잃고 정치적으로 완전히 몰락하게 되었다.



2. 2.3 대의원대회는 민주노동당이 노동자정치세력화의 발전에서 더 이상 할 역할이 없게 되었음을 확인하는 자리였으며 이에 해방연대(준)은 향후, 역사적으로 생명을 다한 민주노동당의 대안으로서 사회주의정당을 건설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투쟁해갈 것이다.


이를 위해 해방연대(준)은 오늘자로 회원총회(2.23)를 소집하여 회원들의 민주노동당에 대한 태도, 보다 구체적으로 탈당여부를 결정할 것임을 밝히며 민주노동당내 사회주의당원 동지들에게도 이 문제를 긴급하게 함께 토론, 결정할 것을 제안한다. 사회주의정당건설의 길이 비록 당장은 힘겨울지라도 우리는 이 길에서 사회주의자들과 함께 새롭게 노동자, 민중과 만나 노동해방, 인간해방을 실천해갈 것이다.


아울러 우리는 작금에 진행되고 있는 ‘새로운 진보정당운동’이 민주노동당에 대한 진정성 있는 평가에 기초하지 않고 종북주의선동에 의존하고 있으며 사실상 우파사민주의정당 건설을 지향하고 있다는 점이 확실하기 때문에 이러한 진보정당운동에 반대하고 이에 참여하지 않을 것임도 밝힌다.



2008년 2월 4일


노동해방실천연대(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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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계급정당건설 성명(노힘)

반자본주의 정치변혁을 이끌 노동자계급정당 건설 운동을 본격화·전면화 하자!

 

 

1. 민주노동당의 위기가 곧 노동자민중 정치운동의 위기는 아니다.

 

1-1 민주노동당 운동은 정치적 사망선고를 받았다.

 

민주노동당이 내부 혼란에 휩싸여 있다. 비대위 구성, 재창당, 분당, 그리고 ‘종북주의’를 둘러 싼 논란이 난무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혼란과 논란의 직접적인 계기는 17대 대선에서 참패 때문이다. 그러나 근본적으로는 출범 이후 지난 10여 년 간 누적된 민주노동당 운동 전체, 전반의 모순과 문제가 터져 나온 것이다.

민주노동당은 민족자주정부를 실현하기도 전에, 사민주의 정권을 세우기도 전에, 아니 노동자정치세력화를 위한 최소한의 유의미한 기초를 다지지도 못한 채 정치적 사망선고를 받았다.

민주노동당은 자신의 오른쪽으로부터 ‘낡은 진보’라는 조롱을 받고 있으며, 당 내부로부터는 ‘종북주의’ 공세에 직면해 있고, 자신의 왼쪽으로부터 ‘겉늙은 진보’라는 비판에 부딪혀 있다. 이러한 문제제기가 전부 다 맞는 것은 아니지만 민주노동당이 보여주고 있는 각각의 단면인 것은 사실이며, 이는 민주노동당 스스로 불러들인 것이다.

 

민주노동당이 정치적 사망선고를 받았다고 판단하는 근거는 이렇다.

 

무엇보다 이번 대선 과정과 결과, 그리고 그에 대한 당 내 반응 자체가 첫 번째 이유이다. 민주노동당은 3.01% 득표율에 그친 원인과 정치적 의미에 대해, 그것이 이후 노동자민중 정치운동에 끼칠 영향과 파급에 대해, 그리고 그에 대한 정치적 책임을 어떻게 감당해 나갈 것인지에 대해 전체 노동자민중 정치운동을 향해 당 차원에서의 책임 있는 정치보고를 내 놓고 있지 못하다. 이미 그를 수행하거나 감당할 수 있는 정치력이 바닥난 상태다. 난파선에서의 아우성만이 들리고 있을 뿐이다.

 

두 번째로, 민주노동당은 이미 의회주의, 합법주의 늪에 너무 넓고 깊게 빠져있다. 의회 진출, 합법 영역으로의 확장 자체를 문제 삼는 것이 아니다. 의회와 합법 공간으로의 진출과 확장은 노동자민중 정치운동이 확보해야 할 하나의 수단이자 경로이다. 그러나 그 자체를 목표이자 목적으로 삼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그것은 노동자민중 정치운동을 부르주아 정치로 몰고 갈 뿐이다. 이 점에서 민주노동당은 이미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넜다. 민주노동당이 지금의 혼란을 어떻게 수습하던지 간에 이 점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은 자명하다. 민주노동당은 지금 이 순간에 이르러서도 부르주아 정치와 똑같이 오직 당권과 비례대표후보를 염두에 둔 이전투구만을 벌이고 있을 뿐이다.

 

셋째, 민주노동당이 벌이고 있는 반신자유주의 투쟁은 반자본주의 투쟁이 아니라 더 좋은 자본주의를 위한 투쟁에 머물러 있으며, 노동자 국제주의에 기반 한 반제국주의 투쟁이 아니라 협소한 민족주의에 갇혀 있다. 민주노동당은 투쟁을 통해 노동자민중을 정치의 주체로 세우기보다는 오히려 수동화시키고 있으며, 투쟁 속에서 노동자민중의 변혁 의지를 키우고 노동자민중이 변혁으로 나아갈 수 있는 계기를 형성하기보다는 오히려 조합주의 또는 경제주의로 이끌고 있다. 민주노동당이 반자본주의 정치변혁을 중심에 놓고 노동자민중 투쟁을 조직하고 이끌기를 기대하는 것은 더 이상 가능하지 않다.

 

민주노동당 운동의 좌절은 단지 민주노동당만의 문제에서 그치지 않는다. 현실적으로 민주노동당이 노동자민중 정치운동의 대표적 성격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노동자민중 정치운동이 지금 처한 상황으로부터 우리 역시 자유롭지 않다. 그렇다고 민주노동당이 져야 할 책임까지를 더 이상 감당할 수는 없다.

따라서 당 내부의 정파들 사이에서야 종파주의 또는 자파중심주의라는 정치공방이 있을 수 있지만, 노동자민중 정치운동 내 민주노동당 비판 세력의 문제제기를 모두 종파로 단정 짓는 것은 섣부르다.

민주노동당이 비록 전체 정치, 계급지형 속에서는 여전히 소수에 머물러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것이 곧 민주노동당에게 면죄부를 주는 것은 아니며, 변혁을 지향하는 세력이 아직은 규모가 작다는 이유만으로 민주노동당이 계속해서 노동자민중 정치운동을 대표해야 한다는 것을 마냥 전제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1-2 민주노동당의 위기가 곧 노동자민중 정치운동의 위기는 아니다.

 

민주노동당은 1987년 전국노동자대투쟁과 1996~97 전국총파업투쟁의 산물이다. 그런 의미에서 민주노동당이 처한 위기가 노동자민중 정치운동 전체 또는 자체의 위기를 낳을 것이라는 우려를 할 수 있다. 그러한 우려가 현실화 될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그러한 우려를 잠재우고 오히려 노동자민중 정치운동을 새롭게 구성하고 새로운 동력과 활력을 창출할 수 있는 가능성도 그 못지않게 크다.

 

역사적으로 봤을 때 지난 1987년에 대중적 노동운동이 성립한 이후에, 지금 시기는 노동자민중 정치운동에서의 세 번째 주요 국면을 열어 젖혀야 때이다.

 

첫째 국면은 대중적 노동운동이 막 태동했고 노동자대중의 엄청난 분노와 에너지가 폭발했지만 아직 대중 자신의 뜻과 의지로 정치세력화를 시도하기에 이르지 못한 조건에서 일련의 정파운동 주체들 사이에서 정치적 이합집산이 이루어진 시기이다.

이 시기의 핵심적 특징은 노동자대중의 힘이 분출하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정파운동 주체들은 오히려 ‘현실사회주의’권의 붕괴에 쫓겨 노동자민중 정치운동이 지녀야할 변혁성을 버리고 부르주아 정치의 한 부분으로 투항했다는 점이다.

 

둘째 국면은 세계적 차원에서 신자유주의가 형성되고 그 여파가 한국에 상륙하는 시점과 맞물려,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한 정치세력화가 그 전 시기 변혁성을 탈각한 정파들과 결합하면서 민주노동당을 창당하던 시기이다.

이 국면에서의 핵심적 특징은 자본지구화가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는 조건에서 민주노동당 창당에 앞장 선 정파들은 이를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정치적 전망을 세우려는 노력보다는 이미 파탄 난 낡은 민족주의와 사민주의 노선으로 노동자 대중투쟁을 이끌었다는 점이다.

민주노동당이 전체 노동자민중 정치운동을 대표할 수 있었던 것은 그 노선의 올바름 때문이 아니라 노동자민중 운동에서 다수를 점하는 양적 우위를 차지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며, 이는 곧 변혁적 의지를 지니고 있던 나머지 정치 주체들의 운동이 정체했거나 실패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제 세 번째 국면이 지금 막 형성되고 있다. 아니 세 번째 국면이 형성될 수 있느냐의 기로에 서 있다. 셋째 국면이 어떤 핵심적 특징을 낳을 것인가는 지금부터의 논쟁과 운동에 따라 좌우될 것이다. 우리는 이 세 번째 국면의 실천적 귀결이 노동자계급정당 건설이라고 판단한다.

따라서 민주노동당 문제는 민주노동당 수준에서의 문제로 제약되어서는 안된다. 논쟁과 운동은 정파 차원의 범위를 벗어나 핵심적으로 민주노조운동 전체로, 지역과 현장 구석구석까지 넓고 깊숙하게 번져 나가야 한다.

‘종북주의’ 공방에 갇히지 않고 반자본주의 정치운동을 구체적, 대중적으로 형성할 수 있는 노선과 방안을 둘러싼 논쟁으로 확장되어야 하며, 나아가 그 연속 위에서 운동 재편이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가를 원점부터 재검토해야 한다.

이렇게 바라본다면 부르주아 선거에서의 패배를 마냥 낙심할 일도 아니다. 오히려 민주노동당의 위기를 우려하는 제한된 시야를 넘어 오히려 전체 노동자민중 정치운동을 도약시킬 수 있는 계기를 형성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이를 위해 이제 민주노총은 노동자대중을 정치의 전면으로 이끌어 낼 수 있는 방향에서 태도를 정해야 하며 민주노총 내 활동가들 사이에서 활발한 토론과 논쟁이 불붙어야 한다.

동시에 각 정치 세력도 암중모색이나 이삭줍기에 기댈 것이 아니라 만 천하에 자신의 정치적 입장과 태도를 들고 나와 스스로 정치적 심판대에 기꺼이 서야 한다.

그 어떤 기득권이나 기정사실화도 인정하지 않아야 한다. 이는 부르주아 정치에서도 더 이상 통하지 않는 보수적이고 후진적인 모습일 뿐이다.

 

 

2. 노동자계급정당 건설 운동을 본격화⋅전면화하자.

 

2-1 노동자계급정당 건설을 당면 정치 일정으로 올려야 한다.

 

지난 20~30년에 걸쳐 진행된 자본 지구화 결과로 이제 세계는 보다 분명하고 투명하게 그 모습을 드러냈다. 제국주의 사이의 경제 전쟁과 그와 동전의 양면인 군비 경쟁은 더욱 가속되고 있다. 단지 제국주의 사이에서만 그러한 것이 아니라 그 여파가 전 세계 모든 국가로 번져 나가고 있다.

신자유주의 세계자본주의 체제의 불안정성과 불확실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세계적 차원, 세계적 규모에서의 경제 위기가 언제 어떤 양상으로 터져 나올 것인가를 두고 전 세계가 전전긍긍하고 있다. 그 어떤 정치적 통제력과 제동 장치도 준비되어 있지 않으며 설령 일정한 협상과 타협이 부분적으로 가능하더라도 실효성을 발휘할 수 없다.

경제 위기는 그 자체에서 머물지 않고 당연히 정치 위기를 동반할 수밖에 없다. 전 세계 곳곳에서 이미 이와 같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개혁과 변화’를 외치는 목소리가 지배계급 내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지난 대선 결과는 이러한 세계적 현상의 한국적 표현이자 모습이다.

 

이제, 노동자민중 정치운동이 나아가야 할 방향과 목표는 분명하다. 반자본주의 정치변혁이 그것이다. 반자본주의 정치변혁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노동자민중의 긴급한 정치적 과제이다. 더 좋은 자본주의는 가능하지도 않으며, 통일한국은 하나의 과정일 수는 있어도 그 자체가 노동자민중의 미래를 보장해주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반자본주의 정치변혁을 주도해 나갈 수 있는 정치적 태세와 조직적 준비를 어떻게 형성해 나갈 것인가이다. 그 시작은 노동자계급정당 건설을 현실의 정치 일정으로 올리는 것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민주노동당이 지금과 같은 지경에 처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민주노동당 운동을 부정하지 않는 세력이 여전히 노동자민중 정치운동 내에서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민주노동당 내 ‘신당 추진파’가 보이고 있는 상황 인식과 정치 행태도 여전히 기존 민주노동당 틀 자체를 조금도 벗어나 있지 않다.

따라서 반자본주의 정치변혁과 노동자계급정당은 새로운 주체와 새로운 동력에 기초하여 전혀 다른 차원에서 준비되고 시작되어야 한다.

 

노동자계급정당 건설을 현실의 정치 일정으로 올려야 하는 이유는 노동자계급정당 건설 역시 진공 속에서 이루질 수 없으며 현실의 정치⋅계급지형과 노동자민중 정치운동 내부의 흐름과 맞물려야 하기 때문이다.

민주노동당이 지금과 같은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하더라도, 또한 어떤 수준에서 봉합이 이루어진다 하더라도 어차피 노동자계급정당 건설은 이미 그 시작을 예고하고 있었던 일이다. 민주노동당 사태는 그 계기를 제공하는 하나의 조건일 뿐이지만, 노동자계급정당을 건설하고자 하는 세력은 지금의 상황에 보다 책임 있고 긴장되게 임해야 한다. 그것은 당연한 임무이다.

 

노동자계급정당 건설 일정을 올려야 한다는 것이 단지 물리적 시간표를 작성해야 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노동자계급정당을 건설하기 위한 과정은 익히 알고 있는 바와 같이 간단한 과정이 아니다. 거쳐야 할 논의와 잡아야 할 사업이 산적해 있다. 거기에 필요한 최소한의 시간만도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진짜 중요한 것은 시간의 문제가 아니다. 정치적 판단과 결단이 우선되어야 한다. 그에 따라 시간은 얼마든지 조정될 수 있다. 그럼에도 지난 20여 년에 걸친 대중투쟁의 역사에 비춰보면 지금도 너무 늦었으며 이명박 정부에 대한 대응과 투쟁을 상정해야 하는 측면에서 볼 때에도 시간이 마냥 주어져 있는 것도 아니다.

이명박 정부에 대한 대응과 함께 향후 예상되는 세계자본주의의 불안정성, 동북아 한반도 차원에서 형성되고 있는 정세 지형을 따라잡기 위해서라도 노동자계급정당 건설 일정을 현실의 정치 일정으로 하루빨리 올려야 한다.

 

더 이상 기존 민주노동당 또는 또 다른 ‘신당 추진파’에게 노동자민중의 정치운동을 맡길 수는 없다. 특히 노동자계급정당 건설이 단지 정파들 사이의 논의와 사업에 의해서만이 아니라 보다 중요하게는 대중적 근거와 기반을 형성하는 과정과 맞물려야 하는 것이 필수라는 점에서 노동자계급정당 추진 세력의 정치적 태도와 정치 일정을 분명히 밝혀야 한다.

 

2-2 노동자계급정당은 ‘반자본주의 정치연합’에서부터 시작할 수 있다.

 

당 건설 문제는 20세기 변혁운동의 역사가 그랬던 것처럼 21세기 현재에도 여전히 뜨거운 쟁점이 되고 있다. 당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다. 당은 변혁을 이루기 위한 수단이며 변혁적 활동가들의 존재 형식이자 활동 양식일 뿐이다. 그럼에도 당은 불가피하게 그 자체가 하나의 전략이자 노선을 표현하는 것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건설하고자 하는 당의 강령과 규약 또는 이념과 노선을 어떻게 표방할 것인가와 함께, 당을 건설하고자 하는 정파의 역사적 과정이 문제가 된다.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가가 바로 당 건설 경로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노동자계급정당 건설 논의와 운동이 시작되면 위와 같은 맥락에서 노동자계급정당 건설에 동의하는 세력 내부에서도 적지 않은 논쟁과 쟁점이 벌어질 것을 예상할 수 있다. 당연히 거쳐야 할 과정이자 경로이다.

 

노동자계급정당을 건설해야 하는 것이 매우 긴급한 정치적 과제라는 것을 공유하고 있는 세력들 사이에서도 실제로 노동자계급정당 건설 운동에 본격 나서기까지는 사전에 풀어야 할 숙제가 아직은 남아 있다.

 

그 핵심은 두 가지다. 하나는 건설하고자 하는 당의 성격 문제이다. 물론 건설될 당은 기존 민주노동당 운동을 대체해야 하는 당이 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최소한의 기준은 주어져 있다. 즉 당의 이념과 노선이 민족주의 또는 사민주의와는 분명한 선을 그어야 하며, 동시에 당의 정치활동에서 의회주의와 합법주의 요소를 철저히 배제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건설될 당이 반자본주의 정치변혁을 실천하는 사회주의 정당이어야 한다는 점도 문제가 될 것이 없다. 그러나 이것들은 일정한 추상적 원칙 차원의 것이어서 그 자체가 쟁점이 되지 않는 조건에서는 그 이상의 특별한 정치적 의미를 갖는 것은 아니다.

즉 이상의 것들은 당 건설 운동을 같이 할 수 있는 최소한의 필요조건일 뿐 충분조건은 아니다. 충분조건은 그 보다는 더 구체로 들어가서 논의되어야 한다. 그랬을 때 우리는 이상의 필요조건에 동의하는 세력들 사이의 ‘반자본주의 정치연합’이 당의 성격과 관련한 출발 시점에서의 준거가 될 수 있다는 판단이다.

 

또 하나는 당 건설 운동을 함께 할 수 있는 세력이 어디까지인가, 또는 누구인가의 문제이다. 이는 조직의 문제이며 인격의 문제이다. 가장 원칙적인 수준에서의 답은 위에서 말한 당의 성격에 동의하는 모든 세력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어느 누구든 최종적으로는 건설하고자 하는 당의 강령과 규약에 동의하는 것을 전제로 하면 된다는 것이 우리의 기본 입장이다.

이제까지의 운동 과정에서 발생한 여타의 쟁점이나 문제는 이제 건설된 당 안에서 해결의 방향을 지속적으로 모색해 나가는 것으로 설정을 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이 모든 문제를 당 건설 이전에 모두 해결하거나 해소하고 가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그것은 우리가 설정하고 있는 경로와는 다른 것이다.

 

 

3. 노동자의힘은 노동자계급정당 건설 운동에 적극 나서려한다.

 

노동자의힘은 민주노동당이 출범하려던 시기에 그와는 다른 정치적 입장과 태도 속에서 독자적인 정치운동을 시작했다. 민주노동당이 어쨌든 노동자민중 정치운동의 대표적 역할을 하고 있던 지난 10년 동안, 노동자의힘은 적지 않은 어려움 속에서도 노동자계급정당을 건설하기 위한 노력과 투쟁을 다해왔다.

노동자의힘이 노동자계급정당 건설 운동을 본격화⋅전면화할 것을 주장하고 제안하는 것도 바로 그와 같은 활동을 해온 결과이다.

노동자의힘은 2006년 11월 총회에서 조직 내부적으로 노동자계급정당 건설 운동을 해나갈 것을 결의한 바 있다. 그것은 반자본주의 정치변혁을 이끌 새로운 정치운동 양식의 창출을 더는 늦출 수 없으며, 또 한편으로는 노동자계급정당이 건설되어야 한다는 새로운 움직임과 논의가 이미 여러 형태, 여러 수준에서 제기되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노동자의힘은 이제부터 그러한 움직임과 기운을 묶기 위한 운동과 활동을 본격적으로 펼쳐나가고자 한다.

 

노동자의힘은 지난 2007년을 경유하면서 우리 자신을 포함하여 노동자민중 정치운동 전반이 새롭게 거듭나야 한다는 점을 절감했다. 노동자의힘도 지난 대선에서 그 어떤 의미 있는 정치활동을 전개하지 못했다. 더 크게는 반자본주의 정치변혁의 전망을 충분히 제출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위에서 민주노동당 운동에 대한 전면적인 비판을 가했다. 이에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우리가 져야 할 몫이다. 물론 민주노동당에 대한 비판은 당연히 민주노동당 구성원 모두에게 가하는 비판이겠지만 그 안의 구체적 상황에 따른 변별점이 없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노동자의힘은 이제 더 이상 자신만의 세계에 갇히지 않고 노동자계급정당 건설에 동의하는 모든 세력과 함께 반드시 노동자계급정당 건설을 성사시켜 내기 위해 책임 있는 역할을 다하고자 한다. 이를 통해 지난 시기 미진하고 부진했던 바와 우리에게 가해진 정당한 비판과 지적을 노동자계급정당 건설 운동 속에서 극복해 나갈 것이다. 그것이 노동자계급정당 건설 운동을 주장하고, 제안하며 그를 위한 일 주체로 설 것을 선언하는 자가 취해야 할 올바른 태도라고 믿고 있다.

노동자의힘은 오늘 이후로 우리가 주장한 바를 현실화시켜 나가기 위한 활동과 사업을 본격적이고 전면적으로 그리고 일관되고 지속적으로 펼쳐나갈 것이다.

 

2008.01.10.

노동자의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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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노당평가와 사회주의정당(해방연대)

[발제2] 민주노동당에 대한 역사적 평가와 그 대안으로서의 사회주의정당 건설
31호
2008/02/02
민주노동당은 2007년 대선투쟁에서 참패하였다. 5년 전 2002년에 비해 당원 수와 당조직은 급격히 확대되었음에도 권영길 후보는 2002년보다도 낮은 3.0%를 득표하는 데 그쳤다. 낮은 득표율을 보였을 뿐만 아니라 민주노동당은 2002년과 달리, 사회의 향후 발전방향을 둘러싸고 의미 있는 논란거리를 제기하는 데에서도 실패하였다.

더욱 심각한 것은 대선에서의 참패 이후, 민주노동당이 보인 모습이다. 권영길후보와 당내경선과정에서 권영길후보를 지지한 자주파와 개인들, 그리고 선대위와 최고위원회는 진심으로 반성하고 책임지는 태도를 보이지 않고, 임기를 얼마 남겨놓지 않은 최고위원회의 사퇴와 심상정비대위의 구성으로 사태를 수습하는 데에만 몰두하였다. 대선이 참패로 끝난 지 이미 한 달이 지났지만, 명확하게 구체적으로 대선참패의 정치적 책임을 진 사람은 사실상 한 명도 존재하지 않는다. 다른 한편에서는 의견그룹 전진을 중심으로 대선투쟁의 참패에 대한 철저한 평가는 진행하지 않은 채 “종북주의 때문에 대선투쟁에서 패배하였다, 종북주의 때문에 당이 망했다”는 정치적 공세만이 난무하고 있다. 그 결과 당은 대선에서의 참패에 이어 제2의 추락을 경험 중에 있으며, 어렵게 비대위가 구성되었지만 대선참패이후 한 달이 다 된 시점에서도 평가는 아직 시작조차 되지 않고 있고, 당의 모습에 실망한 당원들의 탈당행렬이 연일 이어지고 있다.

대선에서의 참패 이후에도 진정성 있는 반성과 평가가 실종된 채 정파 간 정치공세만 난무하는 민주노동당에 과연 미래가 존재하는 것인지 심각한 의문이 드는 시기이다. 냉정하게 말해 이미 민주노동당은 진정성 있는 반성과 평가가 불가능한 정치조직으로 전락한 것이 아닌가하는 의문조차 든다. 필자가 이러한 의문을 갖는 것은 이런 상태가 이미 오래전부터 반복되어 왔고 대선참패 이후의 당의 모습이 이를 더욱더 명확하게 확인해주고 있기 때문이다(미주).

민주노동당이 대선에서 참패한 핵심적인 이유를 밝히는 것은 노동자계급의 관점에서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면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민주노동당이 참패한 핵심적인 이유는, 한국 자본주의의 모순 악화와 사회의 양극화, 이에 따른 노동자, 민중의 삶의 악화, 파탄에 민주노동당이 급진적인 반자본주의적 노동자정치의 강화로 대응하지 않고, 오히려 우경화하여 자유주의정치세력과 독립적인 정치세력으로 노동자, 민중들에게 전혀 인식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민주노동당은 열우당 2중대, 대통합민주신당 2중대의 위치를 벗어나지 못하고, 자유주의정치세력과 함께 ‘민생파탄을 초래한 한 묶음의 무능한 세력’으로밖에 인식되지 못해 동반 몰락했다.

이 자명한 사실조차 민주노동당, 보다 구체적으로 민주노동당내 정파들은 분명하게 정치적으로 정식화하지 못할 만큼 현실인식과 현실과의 소통에서 실패하고 있으며 대신 민족주의세력과 사민주의적 개량주의세력사이에는 사태의 핵심을 완전히 놓친 지루한 정치공세만이 반복되고 있다. 주인(노동자, 민중, 당원)의 마음은 급속히 떠나가고 있는데 객들(정파들)의 내부정치만이 횡행하고 있다.

민주노동당에서 활동해온 사회주의자들에게 지금만큼 당의 현실을 냉정히 평가하고 그 대안을 단호히 실천해야 하는 시기도 없었다.

민주노동당을 통한 노동자정치세력화는 어떠한 역할을 하였고 앞으로 어떠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인가? 민주노동당은 과연 앞으로 혁신되어 반자본주의적 정치투쟁에 적극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당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을 것인가? 민주노동당이 노동자정치세력화의 발전에서 할 수 있는 긍정적 역할이 다해간다면 사회주의자들은 어떤 대안을 강구해야 하는가? 정파연합당이 사실상 해체되고 있는데 원하든 아니든 더 이상 정파연합당이 유효한 시기는 지난 것이 아닌가? 사회주의정당을 건설해야 한다면 우리가 건설할 사회주의정당이 핵심적으로 담아야 할 내용은 무엇인가? 등등 사회주의자들이 지금 스스로에게 제기해야 하는 질문들은 어느 것 하나 가벼운 것들이 아니다.

오늘 토론회에서 우리는 이 모든 질문에 완벽한 답을 내릴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를 기대하며 토론회에 참여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민주노동당으로 표현되는 노동자정치세력화의 한 시도가 역사적으로 마감되어가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끼고 있는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무엇보다도 겸허한 태도일 것이다. 오늘 토론회가 민주노동당에서 활동해온 사회주의자들이 서로 간에 고민과 대안을 소통하는 하나의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1. 민주노동당에 대한 역사적 평가

1) 2000년 창당에서 2004년 4.15총선까지

민주노동당의 2000년 창당은 노동자정치세력화를 주요과제로 설정한 민주노총의 주도하에 다양한 정파가 결합하면서 창당되었다(민주노총의 주도 + 정파연합당). 96, 97 총파업이 창당의 주요 동력이 되었다. 민주노총이 창당을 주도한 점이 이전에 실패를 반복하던 진보정당 추진 움직임과 달리 민주노동당이 대중적 토대를 빠른 시기 안에 구축할 수 있었던 가장 커다란 이유였다.

민주노동당 창당에 참여하지 않은 일부 좌파들이 당시부터 민주노동당 창당이 민주노총 내 개량주의세력의 주도하에 이루어졌다는 것을 이유로 민주노동당의 창당을 개량주의세력의 정치세력화 시도 정도로 축소하여 평가하고 있지만, 이는 민주노동당 창당의 의의를 지극히 일면적으로만 규정하는 것이다. 이들의 주장대로 민주노동당이 민주노총 내 개량주의세력의 주도하에 창당된 것은 사실이지만, 민주노동당의 창당은 ‘노동자도 정치세력화’를 해야 한다는 대중적 열망을 기본 동력으로 한 것이었고, 민주노동당의 창당에는 개량주의적 세력만이 아니라 변혁적인 세력 역시 참여하였던 것이다. 당시 민주노동당 창당에 참여하지 않은 세력들이 이후 실천에서 민주노동당에 대당하는 자립적인 대중적 정당을 창당하는 데서 실패한 것은 이들이 노동자정치세력화라는 과제에 정면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기권한 채 좌익분파주의적으로 대응하였기 때문이다.

민주노동당은 창당 주체의 한계를 그대로 반영하여 출발부터 의회주의적 경향과 대리주의적 경향, 개량주의적 경향이 우세하였지만 창당 이후 격화된 한국사회의 모순과 이에 따른, 기존보수정당과 다른 대안에 대한 노동자, 민중의 열망고조, ‘무상의료, 무상교육, 부유세’로 상징되는 급진적인 주장을 배경으로 2004년 총선에서 10명의 국회의원을 당선시키는 성과를 내었다. 이 시기가 민주노동당의 ‘한계 속에서의 성장’시기였다. 비록 많은 한계를 안고 있었지만 그리고 비례대표제라는 제도의 덕도 보았지만 이 시기에 민주노동당은 진보불모의 한국정치지형에 돌파구를 내는 데 성공하였고 그 결과 노동자, 민중의 새로운 기대를 받게 되었다. 2004년 총선직후의 메이데이 전야제와 집회가 어느 해보다 활기에 찼던 것과 총선이후 대규모 당원입당이 이루어진 것은 이러한 기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2) 2004년 4.15총선 이후 당 혁신의 실패와 ‘당의 한계가 오류로 전환된 퇴보의 시기’

그러나 2004년 총선이후 민주노동당은 자신을 혁신함으로써 이러한 기대에 부응하는 데에서 실패하였고 변화된 정세에 지속적으로 적응하지 못하는 상태를 노출시키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그 이유의 대부분은 불리한 객관적 조건이 아니라 주체적 한계와 오류였다.

객관적 조건은 민주노동당의 발전에 매우 유리한 조건이었다(이는 민주노총에게도 똑같았다). 사회의 모순 심화는 인간다운 삶을 갈구하는 노동자, 민중의 열망을 고조시켰다. 자본주의체제의 모순이 곪아 터지고 있었고 객관적 조건은 급진적인 노동자정치의 본격적인 전개에 극히 유리한 조건이었다. 무상의료, 무상교육 주장이 대중적 호응을 얻은 것은 이 주장이 자본 위주의 사회질서에 대해 급진적으로 도전하는 것으로 대중들에게 받아들여졌고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게 했기 때문이다. 이 점을 잘 읽고 당은 2004년 총선 이후 본격적으로 자본주의와 기존질서에 도전하는 행동을 전개했어야 했고, 원내진출을 의회활동과 대중투쟁을 효과적으로 결합시키는 토대로 적극 활용하여야 했다. 그리고 이것은 당연히 열린우리당 등 자본가정당과는 정치적으로 완전히 독립된 노동자정치의 실천과 결합되어야 했다.

그러나 당은 이러한 방향과는 반대방향으로 나아갔다. 반자본주의정당으로서의 성격 강화는 실천되지 않았고, 2004년 너무나도 당연한 비정규직관련 투쟁의 전면화와 비정규직철폐운동본부의 건설이 당시 당내에서 논란이 될 정도로 당은 상황에 전혀 대응하지 못하는 한계를 노출하였다. 2005년 불파투쟁을 당은 사실상 방치하였다. 당 정치사업에서 민족주의적, 개량주의적 기조가 갈수록 강화되었다. 또한 당은 노동자계급의 요구를 의회에서 대신 해결해주는 고루한 의회주의, 대리주의정당의 성격을 온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의회활동과 대중투쟁이 분리되는 현상이 발생하기 시작하였으며, 열린우리당 2중대 논란이 끊임없이 반복될 정도로 독자적인 노동자정치의 실천에 실패하였다. 당원들 특히 노동자당원들의 주체적 당활동 참여 확대를 위한 조치는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 당은 사회적 모순의 격화되는 조건에서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노력을 하기는커녕 오히려 체제에 안주하며 우경화하는 상황을 연출하였고 이는 당연히 당의 침체와 위기로 연결되었다.

2005년 울산북구재선거에서의 패배는 이를 반영하는 것이었고, 선거 패배 이후 최고위원회가 총사퇴하고 비대위가 구성되었지만 당은 그 후에도 아무런 혁신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2기 최고위원회에서도 이전의 민족주의적, 개량주의적 정치기조가 그대로 반복되었고, 2006년 지자체선거에서도 민주노동당은 울산북구, 동구 구청장선거에서 패배했으며 전국적으로도 패배했다.

2004년 이후 당이 보인 모습은 발전이 아니라 정반대로 퇴보였다. 당의 급진화가 아닌 우경화는 당의 침체를 가져오고 이 침체상태를 극복하기 위해 당은 다시 우경화로 향하고 이것이 다시 침체를 더 악화시키는 악순환의 고리는 계속 확대 재생산되어 왔고, 2007년 대선후보 당내경선에서 자주파의 종파적인 이해로 세 후보 중 가장 우경화한 권영길후보가 당의 대선후보로 당선된 이후에는 현충원 방문, 친기업정당 선언으로 우경화의 속도가 급속히 빨라지더니, 급기야는 당대표의 한국노총 사과사태까지 발생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의 결말은 정치적 몰락위기를 가져온 대선에서의 참패였다.

창당 이후 2004년까지의 시기가 ‘당의 한계 속의 성장 시기’였다면 2004년 이후는 ‘당의 한계가 오류로 전환된 퇴보의 시기’였다.

3) 민주노동당의 퇴보추세는 역전될 수 없을 정도로 이미 구조화되어 있다

그러면 민주노동당은 과연 앞으로 혁신되어 퇴보를 멈추고 반자본주의적 정치투쟁에 적극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당으로, 노동자들을 당의 주체로 세우는 당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을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아니다’이다.

그 첫번째 이유는 몇 가지 혁신조치로 달라질 수 없을 정도로, 자본주의적 모순악화, 사회양극화 정세에 대해 민주노동당이 적응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는 이미 구조화되어있기 때문이다. 현재 당에는 크게 보아 민족주의경향, 사회주의경향, 사민주의경향이 존재한다. 이 중 다수파를 형성하고 있는 민족주의경향은 당이 반자본주의적 정치투쟁기조를 채택하는 것을 완강히 반대하고 있으며 시대착오적인 민족민주적인 정치투쟁기조에 당의 정치투쟁기조를 여전히 가두어두려 하고 있다. 코리아연방공화국의 국가비전채택은 이 경향의 돌발적인 시도가 아니라 일관된 기조의 산물이다. 이들은 이 기조를 조만간에 더욱더 밀어붙일 것이다. 사민주의경향은 공공연한 형태로 자신을 표현하지 않아서 그렇지 사회주의로 위장된 사민주의경향까지 합하면 당내 두 번째 규모의 경향으로서, 이 경향은 반자본주의적인 기조의 예각화를 민족주의자들과는 다른 방향에서 방해하고 있다(반자본주의적 기조 반대에서 민족주의자들과 사민주의자들은 공조하고 있다). 이들 두 경향을 합치면 민주노동당은 60%이상의 다수가 반자본주의적 기조를 당의 기조로 채택하고 투쟁하는 것에 반대하고 있다.

두 번째 이유는 당이 노동자대중의 투쟁흐름과 분리되어 이미 관료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당은 창당시기부터 민주노총 상층 중심으로 조직되었고 이후 일반 노동자들이 다수 입당하였지만, 일반노동자들이 당에 영향력을 행사할 통로가 봉쇄되어(가령 앞에서 예를 든 현장분회의 약화, 계선조직에서의 현장라인의 누락 등) 당은 노동자대중의 투쟁과 분리되어 있다. 그 결과 당원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노동자들의 건강한 흐름이 당에 영향을 미치거나 당사업과 연결되지 않고 상층관료의 통제아래 관리되고 있다. 이로 인해 당은 노동자대중의 분노, 열망, 투쟁과 분리되어 있다.

세 번째 이유는 당의 잘못된 정치노선, 패권주의적 운영, 출세주의자들 사이의 권력투쟁 등에 실망하여 건강한 선진노동자들과 변혁적 세력들이 새로이 입당하지 않고, 오히려 건강한 기존당원들이 개별적으로 탈당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대선패배 이후 당이 보인 극히 실망스러운 모습은 이 추세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사회주의자들은 민주노동당의 퇴보추세가 역전될 수 없을 정도로 이미 구조화되어 있다는 점을 인식하여야 한다. 2003년 이후 사회주의자들은 민주노동당이 발전하도록 민주노동당의 사회주의정당화를 실천하기 위해 노력해왔지만 2008년 현재의 시점에서 당전반의 사회주의정당화 가능성은 전혀 없다는 현실을 냉정히 인정해야 한다. 이 정도가 아니라 사태는 더욱 심각하다는 것, 사회주의정당화 가능성이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당이 퇴보하여 당이 창당당시 내걸었던 노동자정치세력화와 사회주의적 이상과 원칙의 계승 발전조차 공문구가 되어가고 있다는 현실을 직시하여야 한다.

4) 민주노동당이 노동자정치세력화의 전진을 위해서 할 수 있는 긍정적 역할은 주체적 한계와 오류로 인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민주노동당이 실제로 하고 있는 역할은 민주노총의 배타적 지지에 기대어 노동자정치세력화의 대표체로 행세하며 노동자정치의 발전을 방해하는 것이다. 이제 민주노동당은 노동자정치세력화의 발전에서 걸림돌이 되고 있으며 그 역사적 생명을 다해가고 있다. 노동자정치세력화의 발전을 위해서는 민주노동당이 아니라 새로운 대안이 필요한 시점이 되었다. 진정성을 갖는 사회주의자라면 이 점을 철저히 인식하고 역사적 한계에 이른 민주노동당을 대중적으로 폭로하고 노동자정치세력화의 발전을 가져올 대안을 적극적으로 모색하고 실천해야 한다. 민주노동당에 대해서는 언제 어떻게 분화할 것인가의 문제만이 사회주의자들에게 남아 있을 뿐이다.

5) 노동자정치세력화가 온전히 발전하기 위해서는 사회주의정당이 건설되어야 한다

만약 민주노동당이 2004년 이후 올바른 궤도에 올랐다면 민주노동당은 지금 사회주의정당에 근접한 정당으로 발전해 있을 것이다. 이렇게 되었다면 민주노동당은 한국자본주의의 모순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는 한국사회에서 창당초기 이상으로 발전하는 당으로 자리 잡게 되었을 것이고, 사회주의자들은 분화를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주의 정치활동의 풍부화를 고민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사회주의자들의 역량부족과 대응 실패, 그리고 기회주의자들의 시대착오적인 정치투쟁기조 때문에 민주노동당은 이러한 방향으로 발전하지 못하였다. 발전해야 할 때 발전하지 못하는 모든 존재가 정반대로 퇴보하듯이 민주노동당은 발전해야 할 때 발전하지 못함으로써 자신의 위치를 올바로 찾지 못하고 퇴보하여 노동자정치세력화의 온전한 발전에 걸림돌이 된 정당이 되어버렸다.

이제 사회주의자들은 노동자정치세력화와 노동자정당만을 말할 것이 아니라 올바른 노동자정치세력화는 사회주의노동자정당을 통해서만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을 당당하게 주장하고 이를 실천해야 한다.


2. 민주노동당의 한계와 오류를 극복할 사회주의정당을 건설하자!

1) 그다지 아름답지 못한 모습으로 다가온 민주노동당의 분화 - 정파연합당이 유효한 시기는 지나갔다

앞에서 지적하였듯이 민주노동당은 민주노총의 주도하에 다양한 정파가 결합하면서 창당되었다. 어느 정파도 자체의 역량만으로는 대중적인 진보정당을 창당할 수 없는 조건이 역설적으로 정파연합당을 가능하게 했고, 2004년까지 민주노동당 내의 정파들은 서로 갈등하면서도 동거체제를 유지해왔다. 그러나 민주노동당이 원내로 진출한 2004년을 경과하면서 정파동거체제는 본격적으로 한계를 드러내기 시작하였다. 가장 대표적으로 문제가 불거져 나오기 시작한 것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과 북핵에 대한 태도문제를 둘러싸고였다. 민주노동당은 이미 2003년 이후 북미간의 공방이 격화될 때마다 정파간 이견으로 신속하게 당론을 결정하고 실천하는 데에서 실패해왔다. 통일된 정치적 입장의 결여로 당은 능동적으로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의 선도자로 나서는 데에서 실패하였다. 여타 문제에서도 비슷한 일들이 벌어졌고 이것이 해결불능의 지경에까지 이른 것은 대선후보 당내경선 과정에서였다. 자주파의 종파적 행동으로 발생한 당내경선 후유증으로 민주노동당 내의 정파동거체제는 이미 대선참패 이전에 사실상 붕괴된 상태였다. 대선참패는 이를 표면으로 들어나게 하였다.

원래 정파동거체제는 장기간 계속될 수 없는 것으로 언젠가 분화될 운명이었다. 그러나 매우 불리한 조건에서 분화의 시기가 찾아왔다. 대선 참패로 민주노동당 전체가 정치적 몰락위기에 처한 시기가 분화에 유리한 시기가 아님은 주관적 생각에 빠진 사람이 아니면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는 일이다. 보다 좋은 조건에서 분화가 이루어지게 되었다면 좋았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 분명한 것은 이미 동거체제는 불가능해졌다는 점이고 그다지 아름답지 못한 모습이지만 이미 분화는 시작되었다는 점이다. 이것이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정파연합당으로서의 민주노동당은 각각의 주체가 원하든 아니든 이미 해체되기 시작하였고 이는 이미 다시 봉합될 수없는 수준에 이르렀다. 그러면 선택의 문제가 남는다. 정파연합당이 해체되기 시작하는데 정파 간 이합집산을 통해 새롭게 정파연합당을 재조직할 것인가, 아니면 정파연합당이 유효한 시기가 끝났음을 인정하고 이념적으로 특징이 분명한 당을 건설하고 새로운 활로를 각각 찾아 갈 것인가가 선택지점이다.

사회주의자로서 필자는 후자가 장기적으로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사회주의세력들이 총선에 연연해 한다거나, 내용도 불명확하고 오래 가지도 못할 새로운 정파연합당에 매달리지 말고 긴 호흡으로 사회주의 지향점을 분명히 하는 길, 사회주의정당 건설의 길을 선택하는 것이 바람직하고, 이 길을 통해 대중들과 새로운 내용과 자세로 만나는 것이 대중들에게 보다 정치적으로 책임지는 태도이고 당장은 힘들겠지만 앞으로 힘 있게 성장할 수 있는 방도라고 생각한다. 이는 민족주의세력, 사민주의세력에게도 권유해보고 싶은 제안이기도 하다. 물론 선택은 그들의 자유이지만.

2) 우리가 사회주의정당을 건설할 때 핵심적으로 담아야 할 내용은 무엇인가?

글의 1.항목에서 필자는 민주노동당이 앞으로 노동자정치세력화의 발전에서 긍정적으로 할 수 있는 역할은 당의 구조적 한계로 더 이상 없다고 주장하였다. 그런데 이 주장이 민주노동당으로부터 계승할 성과가 전혀 없다거나 민주노동당을 통한 노동자정치세력화의 경험에서 끌어낼 수 있는 반면교사적인 교훈이 없다는 것으로 이해되어서는 안된다. 이러한 태도는 변증법을 공부한 사회주의자의 태도가 아니다. 실제로 민주노동당의 경험 속에서는 주요 회의내용의 공개와 직선제 등처럼 외국의 진보정당과 비교하여 매우 선진적인 내용들이 다수 있다(물론 이 모두는 그냥 주어진 것이 아니라 당원들의 투쟁으로 쟁취된 것들이다). 이 모두는 향후 건설될 사회주의정당이 계승해야 할 내용이다. 다른 한편 민주노동당은 진보정당이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당원교육이 극히 부족하였다. 특히 새로이 입당한 당원들을 당 활동으로 이끄는 초보적인 교육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점은 민주노동당의 경험이 제공하는 대표적인 반면교사적인 교훈이다. 공과가 어떠하든 민주노동당의 경험은 향후 사회주의정당의 건설과 발전과정에서 소중한 참고자료가 될 것이다.

또한 노동자정치세력화의 시도는 민주노동당만이 있었던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들 경험도 비판적으로 검토하여 자신의 교훈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여기에 타국의 역사적 경험도 중요한 참고자료가 되어야 한다.

앞으로 사회주의자들이 이들 교훈을 실천적으로 반영하여 건설될 당의 내용으로 최대한 만들어가야 할 것이다. 이를 전제로 오늘 토론회의 발제문에서는 우리가 건설할 사회주의정당이 핵심적으로 담아야 한다고 필자가 생각하는 것을 밝혀 보겠다.

(1) 명목상이 아니라 실제로 사회주의가 이념, 강령, 전술, 조직운영에서 구현되는 사회주의정당

- 우리가 건설할 당은, 명목상으로만 사회주의를 표방할 뿐 실제의 활동은 경험주의적이고 조합주의적인 활동을 벗어나지 못하는 당이 되어서는 안된다. 또한 행세식 사회주의자들의 집합소가 되어서도 안된다.

- 우리가 건설해야 할 정당은 실제로 사회주의가 이념, 강령, 전술, 조직운영에서 구현되는 사회주의정당, 사회주의 활동이 충만한 당이 되어야 한다.

(2) 현실사회주의 실패 경험의 교훈을 반영하고, 인류가 새롭게 축적한 물질적, 문화적 성과와 새로운 삶의 양식에 대한 문제의식을 능동적으로 수용한 새로운 사회주의를 목표로 하는 당

- 또한 건설할 사회주의정당은 자신의 이념으로 내거는 사회주의를 추상적으로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사회주의 실패 경험의 교훈을 반영하고, 인류가 새롭게 축적한 물질적, 문화적 성과와 새로운 삶의 양식에 대한 문제의식을 능동적으로 수용한 새로운 사회주의를 구체적으로 제시하여야 한다. 새로운 사회주의의 내용을 제시하지 못하는 사회주의정당은 변화된 역사적 지형 속에서 대중적인 사회주의정당으로 성장하기 어렵다. 지금까지 사회주의자들 사이에서 축적된 대안적 사회주의에 대한 논의의 성과를 모아, 건설될 사회주의정당은 자신의 사회주의의 내용을 분명하게 대중적으로 제시하여야 한다.

(3) 노동자계급이 투쟁과 조직의 주체가 되는 당 - 대리주의정당의 배격

- 민주노동당은 노동자계급의 정당임을 자처하였지만 실제로 민주노동당에서 노동자계급은 주체로서 참여할 수도, 당에 영향력을 행사하지도 못하였다. 실제의 모습은 민주노총 전현직 관료 중심의 당이었다.

- 또한 민주노동당은 당의 주체로 노동자계급을 세우지 못하고 노동자계급의 선두에서 투쟁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계급의 요구 일부를 의회활동을 통해 대신 해결해주려는 대리주의정당을 벗어나지 못하였다.

- 앞으로 건설할 당은 철저히 노동자계급을 투쟁과 조직의 주체로 세우는 당이 되어야 하며 대리주의를 철저히 배격하여야 한다.

(4) 대중투쟁을 중심으로 선거투쟁과 의회활동을 결합하는 당

- 의회주의적 실천은 결코 계급투쟁을 발전시키지도 계급해방을 실현하지도 못한다.

- 민주노동당이 무기력한 당이 된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당이 의회주의적 한계에 갇혀 조로증에 걸려 짧은 기간 동안에 무기력한 상태에 빠졌기 때문이다.

- 의회주의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선거투쟁과 의회활동를 소극적으로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대중투쟁을 중심으로 선거투쟁과 의회활동을 올바로 결합해야 한다.

(5) 노동현장에 기반을 두고 현장의 투쟁과 밀접히 결합하는 당

- 민주노동당은 의회주의적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창당 이후 노동현장에 기반을 두고 현장의 투쟁과 밀접히 결합하는 당으로 발전하는 데에서 실패했다. 보다 정확히 말하면 창당 이후 당의 주류를 형성한 세력은 이를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들은 이를 방해하였다. 이는 당의 현장분회가 창당 이후 의도적이라고 할 정도로 배격된 데에서도 잘 나타난다.

- 이러한 민주노동당의 한계는 곧바로 의회주의적 실천, 해결사적 대리주의적 실천을 고착화하는 주요 요인이 되었다.

- 우리가 건설할 사회주의정당은 이러한 반면교사적인 교훈을 철저히 반영하여 노동현장에 기반을 두고 현장의 투쟁과 밀접히 결합하는 당이 되어야 한다.

- 이를 위해서 조직구조도 현장단위조직을 기반으로 한다.

(6) 노동자계급의 선진적 부대로서의 당 + 대중적 당

- 우리가 건설할 당은 노동자계급의 선진적 부대가 되어야 한다. 이것이 전위정당이다. 전위정당하면 비합직업적 혁명가조직을 연상하는 경향이 있는데 전위정당의 본질은 비합직업적 혁명가조직이 아니라 당이 노동자계급의 선진적 부대라는 데에 있다. 이를 위해 당원들의 교육, 투쟁에서의 단련을 일상적으로 실천한다.

- 전위정당의 성격을 갖는 것과 동시에 대중정당을 지향하여야 한다. 전위정당과 대중정당은 서로 배제하는 것이 아니다. 대중정당에 대비되는 것은 전위정당이 아니라 직업적 혁명가조직이다. 당은 최대한 대중정당을 지향하여야 한다.

(7) 당원이 주체적으로 참여하는 당

- 당원은 당조직 중 하나에 참여하여 활동해야 한다. 이러한 조건에 맞지 않는 경우는 후원당원으로 조직한다. 이러한 방식이 당원들의 주체적 참여를 담보할 수 있다.

- 민주노동당의 경험을 교훈으로 당원들의 교육과 훈련에 당역량을 집중적으로 배치한다.

(8) 민주집중제가 말로서가 아니라 실제로 구현되는 당

- 민주집중제는 매우 훌륭한 조직운영원리이다. 특별히 사회주의정당만의 조직 운영원리인 것도 아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보면 민주집중제는 구호로서만 남고 민주주의는 실종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스탈린주의정당이 그러했고 북한의 조선노동당이 그러하다.

- 현실에서 존재했던 것은 민주집중제를 구실로 특정종파, 특정종파의 수령이 모든 것을 결정하고 이를 내려 먹이는 반민주주의정당이었다. 말로서가 아니라 토론과 비판의 자유, 행동의 통일이 실제로 살아 숨 쉬는 생동감 있는 당을 건설하여야 한다.


3.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가?

1) 가장 먼저 사회주의자들 사이에서 토론을 통해 문제의식을 공유하자!

- 민주노동당이 노동자정치세력화의 전진을 위해서 할 수 있는 긍정적 역할은 주체적 한계와 오류로 인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대안으로서 사회주의정당 건설이 필요하다는 것을 사회주의자들 사이에서 토론하고 문제의식을 공유하자.

- 민주노동당의 분화 시기, 사회주의 정당 건설의 구체적 경로 등은 향후 토론심화과정에서 구체화해가자. 임시 당대회 후에 민주노동당에 대한 사회주의자들의 태도를 보다 구체적으로 토론하고 결정하자.

2) 전국순회토론을 통해 사회주의당원들과 현장당원들 사이의 소통을 확대하고 의지를 모아가자!

3) 사회주의자로서 구체적인 사회주의활동을 실천하자!

- 거창한 것이 아니라 가장 기본적인 사회주의활동부터 실천하자.

- 우선 사회주의자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학습활동부터 실천하자.

- 노동현장 단위조직 건설을 실천하자.

- 당 안팎의 사회주의자들과 함께 적극적으로 사회주의적 정치투쟁전선을 형성하자

4) 대선투쟁 평가와 당사업 및 운영 평가에 적극적으로 임하자!


맺으며

오늘 토론회의 핵심주제는 토론회 제목처럼 민주노동당에 대해 역사적 평가를 내리고 그 대안으로서 사회주의정당을 건설해가자는 것이다.

지금까지 사회주의자들은 원칙적인 입장에서 당을 비판하고 그 대안을 제시해왔다. 비정규직 철폐투쟁을 당이 자기의 것으로 안고 투쟁할 것, 의회주의를 배격할 것(당직공직 겸직금지를 지속할 것 등), 사회적 모순의 격화에 맞추어 반자본주의적 정치투쟁기조를 실천할 것 등을 주장해왔다. 그리고 만약 당이 이러한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으면 심각한 정치적 위기에 처할 것임을 이미 2005년부터 지적해왔다. 2007년에 들어서서는 당원으로서는 가장 강력한 표현 ‘만약 당이 반자본주의적 정치투쟁기조를 확립하지 못할 경우 당은 정치적 몰락의 길로 들어설 것이라는’ 표현을 써가면서 당의 심각한 상태를 경고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경고를 당은 전혀 수용하지 않았다. 그 결과는 경고한 대로 참담한 패배와 정치적 몰락이었다. 참담한 패배 이후에도 당은 진솔한 반성과 평가와는 너무나 거리 먼 행보를 하며 한달여를 보내왔고, 실망한 당원들의 탈당사태가 연이어 벌어지고 있다. 민주노동당은 자멸하였다. 다른 이유가 아니라 자신이 기초하는 노동자계급과 갈수록 멀어지고 노동자계급과 소통하는 데서 철저히 실패했기 때문이다.

오늘 발제문에서 필자는 이미 민주노동당은 혁신될 수 있는 시기를 놓쳤고 더 이상 혁신될 수 있는 가능성이 없다고 주장하였다. 당의 창당 때부터 함께 했던 당원으로서 이런 주장을 할 수밖에 없게 퇴보한 당의 현실이 매우 안타깝다. 그러나 이것이 냉엄한 현실이다.

이제 사회주의자들은 솔직히 이를 인정하고 사회주의정당 건설이라는 대안을 실천해가야 한다. 아직 우리들은 이를 가능케 하는 구체적 경로를 확정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지향이 올바르고 역사의 방향과 일치하며 노동자계급의 열망과 함께 하는 것이라면 우리는 충분히 이를 찾아내고 실천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오히려 지금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당장 구체적 경로를 밝혀내는 것이 아니라 왜 지난 10년의 민주노동당을 통한 노동자정치세력화가 실패했는가를, 민주노동당 뿐만 아니라 노동운동, 민중운동 전반이 왜 침체와 무기력을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지를 겸허히 반성, 성찰하는 것일 것이다. 민주노동당의 참패 이후 벌어지고 있는 당내 움직임은 매우 실망스럽다. 그것은 그 주체들에게서 운동에 대한 겸허한 반성과 성찰의 기운을 전혀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그 만큼 감동도 없다. 당 밖의 좌파 움직임도 아직은 그다지 고무적이지 않다. 민주노동당에 대한 평가는 넘쳐나는데 관료주의적 변질 등 주체에 대한 평가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이런 자세에서는 제대로 된 대안이 나오기 어렵다.1

오늘 발제에서는 토론회를 지켜보는 사람들이 기대할 만한 내용 - 당에서의 분화시기, 사회주의정당 건설의 구체적 경로는 다루지 않았다. 이 주제는 앞으로 순차적으로 다루어야 할 내용들이다. 너무 조급해하지 말고 긴 호흡으로 갔으면 좋겠다. 오늘 토론회가 향후 토론과 실천에 하나의 자극제가 되는 자리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갖으면서 발제를 마친다.
성두현 (해방연대(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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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평가와 진보운동(lk)

 


대선 평가를 둘러싼 몇 가지 숙고와 진보운동

이광일(성공회대) 



이번 대선에서 한나라당의 이명박 후보는 48.7%를 득표하였고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후보는 26.2%의 지지율을 얻었다. 진보를 자임한 민주노동당은 3%, 사회당은 언급하기 민망할 정도의 득표를 기록했다. 이러한 선거결과에 근거하여 권력의 행보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다수 언론들과 정치평론가들은 한나라당의 압도적 승리를 전제로 선거 의미에 대한 촌평과 향후 전망을 제출하고 있다. ‘이명박특검법’에 대한 한나라당의 연이은 거부권행사 요구도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나온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진정 이것이 전부인가. 한나라당의 승리는 분명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지율이 함축하고 있는 의미에 대한 평가를 포함하여 몇 가지 문제에 대해 재고해 볼 필요는 있다. 그저 ‘그들의 말’에 휩쓸릴 수만은 없기 때문이다.


‘압도적 승리’에 가려진 것


첫째, 투표율과 득표율에 대한 해석의 문제이다. 이번 선거의 전체투표율은 62.9%로 37.1%의 유권자가 투표를 하지 않았다. 대선 중 역대 최저의 투표율이다. 이를 고려해 산술적으로 추산해 보면, 이명박 후보는 전체유권자 가운데 약 30.8% 정도의 지지를 받아 당선되었다. 이런 측면에서 ‘압도적 지지’에 의한 당선이라는 평가는 상대적인 의미를 지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향후 전망과 관련하여 중요한 것은 오히려 투표하지 않은 부분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의 문제이다. 이번 선거에서 정권교체의 열망이 높았던 보수정치세력 지지자들의 결속력은 매우 높았다. 이명박 후보의 지지율에 무소속 이회창 후보의 15.1%를 합하면 63.8% 정도가 보수파를 지지하였고 이것은 전체유권자의 40% 정도이다. 투표할 만큼 한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유추할 때, 기권표에는 항존하는 정치적 무관심층 이외에 개혁적이거나 진보적인 성향의 표가 적지 않게 포함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들은 선거 결과가 진즉에 결정되었기에, 혹은 기존 진보정당들의 퇴영적인 모습과 새로운 의제(agenda)가 빈곤한 상황에서 자신의 정치적 의사를 투표와 연결시키지 않은 층이다. 민주노동당 지지자 가운데 적지 않은 부분이 ‘반한나라당’이라는 방침 아래 열린우리당 후보를 찍었을 것이고 또 다른 적지 않은 부분은 퇴영적인 민노당에 실망하면서 기권했을 것이다. 사회당의 지지율이 당원수에도 훨씬 못 미쳤다는 점을 감안할 때, 거기에도 다수의 기권표가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상황을 고려할 때, 지난 선거에서 “그래도 진보정당인데’라며 민주노동당에 표를 주었던 진보, 급진지향의 대중 가운데 다수가 투표장에 나가지 않았을 것이라고 상정하는 것이 비현실적일까.


물론 투표율과 득표율에 대한 평가는 다양할 수 있다. 하지만 이들 기권표의 성격을 무시한 채, 이번 선거를 한나라당의 ‘압도적 승리’라고 평가하며 향후 정치지형을 점치는 것은 눈에 보이는 현상을 너무 과잉 평가하는 측면이 없지 않다. 그것이 지니는 한계는 이미 나타나고 있는데, 한나라당의 ‘이명박특검 철회요구’가 그것이다. 이러한 압박은 최소한 특검의 행보를 미리 제한하려는 정치적 효과를 거둘 수 있을지는 몰라도 결국 이 침묵한 사람들의 자존심을 더욱 자극하는 요인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진보진영의 경우, 최소한 내년 총선의 향배와 대책, 그리고 노무현정권보다 더 강한 신자유주의 공세가 예상되는 지금, 이 드러나지 않은 부분에 대한 좀 더 객관적인 접근이 필요한 것은 아닌가. 이들 가운데 최소 10-15% 정도가 어떤 의제를 매개로 어떤 정치적 행보를 보이느냐가 향후 정치지형과 관련하여 중요한 변수로 작용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은 진보정치세력의 재구성 여부와 밀접한 연관을 지니고 있지만 말이다. 진보의 덕목이 무엇인가. 현상을 무시해서도 안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보이지 않는 것을 간과해서도 안된다는 사실이다.


‘이념과 실용의 대비’, 현실을 가리는 이데올로기


둘째, 대부분의 언론이 합창하는, 이념이 탈각되고 실용이 압도한 선거라는 해석이다. 그런데 과연 그런가. 이러한 평가는 보수의 언어로 현실을 가리고자 하는 반지성적인 평가이다. 지금 지구적, 일국적 수준에서 전개되는 정치는 신자유주의라는 이념, 발상에 의해 압도적으로 지배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른바 97년 IMF위기 이후 한국정치의 궤적 또한 이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이번 선거 또한 예외가 아니다. 이와 관련하여 이명박 후보에 대한 20-30대의 지지를 두고 ‘젊은 세대=진보’라는 등식이 깨졌다고 부산을 떨고 그것을 근거로 ‘실용주의’가 승리하였다는 평가가 무반성적으로 제출되고 있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물론 자사의 기사에 대한 대중적 관심제고가 중요할 수밖에 없는 일부 언론, 시장에 지배받는 여론조사기관과 정치컨설턴트 등의 입장에서 보면, 이런 자극적 평가가 필요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러한 해석들은 그 근거가 견고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적실한 것도 아니다. 사실 이들 세대의 거의 다수는 신자유주의 이외에 어떤 이념과 발상, 대안들이 존재하는지, 그리고 신자유주의가 어떤 사회관계와 권력관계 위에서 작동하고 있는지조차 잘 알지 못한다. 아니 알고 싶어 하지도 않는다. 이들은 집권 대통합민주신당과 야당인 한나라당이 공유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들이 신자유주의를 옹호하는 정치세력인지 여부도 제대로 분간하지 못한다. 다수의 일반 대중들 또한 마찬가지이다. 바로 그렇기에 이들은 내용을 따져보지도 않은 채 ‘경제성장, 일자리 창출’이라는 신자유주의정치세력들의 선동적인 말 한마디와 자신의 미래를 기꺼이 바꾸는 대담함을 보일 수 있는 것이다. 사정이 이런데, 이들 세대에 “당신은 스스로를 진보적 이라고 생각합니까. 아니면 보수적이라고 생각합니까?”라고 물어 그 응답률로 이들의 진보성 여부를 규정하는 것이 어떤 의미를 지닐 수 있는가. 또한 젊은 세대의 특성상 이들 가운데 스스로를 보수적이라고 응답할 사람들이 얼마나 되겠는가. 연구자적 입장에서 말하면, 이런 이유로 인해 ‘양적 조사방법’이 아닌 ‘질적 조사방법’이 존재하는 것 아닌가.


흔히 평가하듯 ‘이념의 탈각’과 ‘실용주의의 부각, 압도’는 서로 대립시켜 비교, 설명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오히려 신자유주의라는 하나의 이념, 발상이 압도적으로 지배하는 비대칭적인 현실 때문에 그 안에서 실용주의가 팽배하게 된 것이라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개혁, 심지어 진보를 자처하는 일부 언론들조차 비판 없이 추종하는, 즉 새로이 출범할 이명박정권을 ‘이념을 넘어서는 실용정권’ 등으로 묘사하는 평가는 피상적인 것이 아닐 수 없다. 그것은 그 인식, 인정 여부와 무관하게 마치 이념과는 관계없는 듯 행세하면서 현실을 지배하는 신자유주의 권력의지에 스스로를 복속시키는 태도이기 때문이다.


집권 자유주의정치세력의 운명과 활로


셋째, 기존의 집권 자유주의정치세력의 향후 위상과 관련된 평가이다. 이번 선거에서 이들이 얻은 득표율은 26.2%로 지난해 5.31지방선거의 광역의회 비례대표 득표율에서 열린우리당이 얻은 21.2%보다는 높다. 하지만 지자체선거와 달리 이번 선거가 대통령선거라는 점, 투표율이 당시 투표율보다 10% 이상 높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거의 대동소이한 득표율이라 할 수 있다. 여기에다 이들 세력이 신자유주의 정치세력으로 전화한 이후 한나라당과의 차별성이 거의 사라진 점을 감안한다면 이러한 득표율은 자유주의정치세력이 독자적으로 얻을 수 있는 최대의 득표라 할 수도 있다. 집권을 위해 과거 이들이 3당합당, DJP연합 등을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그리고 이번 선거에서 이들이 왜 그토록 ‘반한나라당의 단일화’에 목메었는지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사정이 이렇다면 이들이 다시 살아날 수는 있을까. 곧 다가올 내년 4월의 총선거에서 그것은 가능할까. 다수의 언론과 평론가들은 ‘친노파’와의 단절 실패와 ‘도로 열린당’으로의 회귀 등을 참패의 핵심 요인으로 지적하고 있다. 이른바 ‘노무현프레임’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 해법은 탈노무현이다. 그런데 진정 이들이 탈노무현프레임을 구축할 수 있을까. 애석하지만 이번 선거 과정은 그것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주었다.


그렇다면 왜 불가능할까? 그것은 한마디로 노무현프레임의 핵심이 신자유주의에 입각한 정책이기 때문이다. 97년 IMF위기를 계기로 등장한 김대중정권 이후 자유주의정치세력에게 주어진 역할은 신자유주의를 국가사회의 운영원리로 정착시키는 것이었는데, 그렇다면 ‘탈노무현프레임’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그것은 김대중정권과 노무현정권을 거치며 심화된 신자유주의에 대한 제동을 의미하는 것 아닌가. 과연 그것이 가능하겠는가. 이번 대선에서 나타났듯 자유주의정치세력은 그것에 제동을 걸기보다 오히려 선거일이 가까워질수록 신자유주의정책에 더욱 더 밀착하는, 따라서 한나라당과 더욱 유사한 정책을 제출하기 일쑤였다.


사정이 이러하기에 이들 자유주의정치세력은 자신들의 차별성을 이른바 ‘평화.개혁세력’이라는 언술에서 찾고자 하였던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호소력을 발휘하지 못하였다. 87년 식 ‘민주 대 반민주’의 구호로 한나라당을 반평화, 전쟁수구세력으로 몰았지만, 대중은 거기에 호응하지 않았다. DJ가 ‘한나라당의 집권’이 전쟁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역설하며 이들을 돕고자 하였으나 그것 또한 찻잔 속의 미풍도 되지 못하였다. 그것은 한나라당이 ‘신대북정책’으로 맞불을 놓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더 본질적 이유는 이른바 평화.개혁을 상징하는 개성공단이 신자유주의를 넘어서는 것이 아니라 그 프레임 안에 존재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것의 핵심은 신자유주의 분업체제에 북한을 어떻게 결합시킬 것인가의 문제 아니었던가. 즉 대북정책은 신자유주의체제 속에 존재하는 하나의 하위정책 이상의 의미를 지니지 못했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평화.개혁 담론은 대중에게 주변적, 부차적이었다. 상대적으로 안온한 삶을 사는 대중은 그나마 무엇인가 새로운 가치들을 자기화하고자 하는 욕망을 지닐 수 있을지 모르지만, 지금 삶 그 자체에 등이 휘어 고통 받는 대중에게는 그럴 여유가 없다. 그들은 그 고통을 강제한 가시적 정치권력을 가장 중요한 비판의 대상으로 설정하는 반면, 그 고통을 해소시켜주겠다는 선전과 선동에는 강하게 이끌린다. 더군다나 ‘신자유주의의 길’만이 실현가능한 활로로 인식되고 있는 상황이라면, 즉 ‘진보적 대안’이 의미 있는 대중적 영향력을 지니고 있지 못한 상태이라면 그들이 무엇을 선택할 것인지는 명약관화한 것 아닌가.


그렇다면 이런 상황에서 자유주의 정치세력들은 다시 살아남을 수 있는가. 그들에게 주어진 길은 두 가지인데, 그 하나는 이번 대선과정에서 이미 그들 가운데 일부가 그랬던 것처럼 커다란 줄기에서 차이가 없는 한나라당, 이회창의 흐름에 동참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신자유주의에 반대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그것이 야기하는 문제의 심각성을 자기화하면서 그러한 문제를 완화, 해소하는 방향으로 선명히 이동하는 것이다. 이 후자의 길은 이번 대선에서 범여권으로 분류된 창조한국당의 정책 내용과 통할 것이다. 기우에서이지만 어떤 정치세력, 어떤 당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들이 내세우는 내용이 중요하다. 결국 대통합민주신당으로 대표되는 현 집권 자유주의정치세력은 이 두 가지 길을 중심으로 하여 재구성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만에 하나 혹시 그들이 진보정치세력과 연대할 가능성은 없는가. 이 질문과 관련하여 이 지점에서 간과하지 말아야 할 점이 있다. 그것은 집권 자유주의정치세력들이 스스로를 신자유주의자라고 말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항상 그들은 자신들을 개혁주의자, 민주주의자로 포장해 대중에게 소개해 왔다. 어떤 이는 그들이 ‘좌파신자유주의’라고 스스로를 규정하지 않았느냐고 말할지 모르겠으나, 거기에서 중요한 것은 신자유주의가 아니라 ‘좌파’였고 그것은 단지 개혁, 민주주의의 또 다른 이름이었을 뿐이다. 여전히 다수의 대중은 그것이 신자유주의 개혁, 신자유주의에 근거한 민주주의라는 점을 알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삶에 고통 받는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성장과 번영을 약속하는 신자유주의’를 ‘좌파의 사슬’로부터, 즉 혐오스러운 ‘개혁주의자, 민주주의자’로부터 분리시키는 것이다. 그렇게만 된다면 현실의 고통은 해결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바로 이 대목에서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좌파 아닌 자유주의정치세력이 한편으로 좌파를 조롱, 희화화시키면서 다른 한편 그것을 통해 신자유주의의 대중적 영향력을 더욱 강화시켰다는 점이다. 바로 이것이 노무현정부가 이명박정권을 탄생시킨 일등공신이라는 세간의 평가로부터 진보가 끄집어 내야하는, 결코 잊지 말아야 할 정치적 교훈이다. 이런 그들이 어떻게 진보와 연대할 수 있겠는가.


자유주의정치세력이 이러한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다면, 자신들의 주장이 옳았고 대중들이 그것을 알아주지 못한 것이 억울하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을 입증하기 위해 한나라당이 남북관계를 경색시켜 줄 것을 기도하는 수밖에 없다. 그런데 미리 예단할 수는 없지만, 어디 그것도 한나라당 마음대로 되겠는가. 한반도를 둘러싼 지정학은 그리 간단치 않다.


진보의 완패와 진보정치세력의 재구성


마지막으로 진보정치세력의 현재, 향후 전망과 관련된 것이다. 민주노동당, 사회당에 대한 피판은 이미 많은 것들이 제기되어 왔고 지금 이 순간에도 제기되고 있다는 점에서 새로운 것은 아니다.


비판이 전혀 먹히지 않는 화석화된 정당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노동당에 바라는 것은 최소한 진보정당에 부합되는 행보를 걸으라는 것이다. 굳이 “제도정당은 어쩔 수 없어!”라는 낡은 비판에 기대고 싶지 않다. 또 그 제도의 경계를 넘어서라고 말하지도 않겠다. 그것은 민주노동당, 혹은 사회당의 몫이라기보다 ‘더 많은 진보, 더 많은 민주주의’를 목표로 제도/비제도의 경계를 헐어야 하는 ‘운동정치들’의 몫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의 신대북정책 한방에 끝난 완고한 민족주의, 코리아연방, 그리고 말의 성찬뿐인 환경 및 생태문제에 대한 언급, 소수자 차별에 대한 무지와 감수성 빈곤 등은 그 지지자들, 우호자들에게 민주노동당을 진보정당으로 호명하는 것을 망설이게 만들었다. ‘비정규직노동자의 당’이라고 외쳤지만, 비정규직법의 통과 과정에서 보인 비일관성과 동요 이후 민주노동당의 그러한 외침은 의구심의 대상이 되기에 충분했다.


혹시 민주노동당의 정파들이 과거에 뿌렸던 땀과 눈물로 현재 자신들이 진보라는 점을 증명하고자 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시대착오적이다. 굳이 ‘87년 체제’의 종말을 언급할 필요도 없다. 민주주의와 진보는 과거를 묻지 않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재구성되는 그것들은 오직 지금 이 순간 어디에 서 있는가를 그 판단의 유일한 준거로 삼기 때문이다. 그런데 과연 민주노동당은 지금 어디에 어떤 모습으로 서 있는가.


다른 한편 사회당은 어떤가. 그 대선후보는 어떤 과정을 거쳐 선출되었는가. 그것이 내세운 ‘사회적 공화주의’는 또 어떻게 해서 탄생했는가. 그에 대해 대중은 물론 그 당원조차 잘 알지 못한다. 이 사회에 공화주의를 부정하는 세력은 없다. 문제는 그 ‘사회적’이라는 수식인데, 그것은 결코 새로운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그것은 다양한 사회관계들에 내재한 차별과 배제를 제거하자는 ‘급진민주주의’의 또 다른 정치적 판본으로 독해될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사회당이 환호한 창조한국당의 ‘사람중심 진짜경제’가, 그에 근거한 경제정책들이 ‘사회적 공화주의’와 어떻게 만날 수 있는지 알고 싶다. ‘사람중심의 진짜경제’에 대해 보였던 공감과 환호는 자유이지만, 여전히 중요한 것은 인간일반이 아니라 분열된 역사적 사회관계들이다. 그 안에 내재된 권력관계들이며 정치들이다. ‘사람중심의 진짜경제’가 사회당의 급진민주주의와 무언가 상통한다고 생각하며 거기에 환호하였다면, 지금 사회당이 존재해야 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선거가 끝난 지금, 사회당은 민주노동당에 대한 비판을 잠시 접어두는 것이 필요하다. 그것은 사회당의 몫이 아니다. 지금 사회당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이번 대선과정에서 자신들이 보인 정책과 정치적 행보에 대한 냉철한 성찰이기 때문이다. 지금 대중은 사회당이 무엇을 하는 정당인지 알지 못한다. 자신들의 당원수에도 훨씬 미치지 못하는 0.07%의 지지율이 사회당의 모습을 온전히 드러내주는 것은 아니겠지만, 지금 공당으로서의 사회당의 존재가 어떠한가를 반증하는 증거로서는 충분한 수치이다.


이런 맥락에서 이번 대선의 진짜 패배자는 ‘개혁진보세력’이 아니라 진보정치세력이다. 이번 선거의 판세는 63.8% : 26.2%+3%+0.07%가 아니다. 63.8%+26.2% : 3%+0.07%, 즉 90% : 3.07%인 것이다. 여기에 만일 창조한국당을 친신자유주의 정치세력으로 규정할 경우, 그 패배의 골은 더욱 깊다. 범신자유주의세력이 투표자의 96%를 획득한 것이다. 이 초라한 3.07%를 가지고 진보정치세력이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아직도 좌고우면할 일이 남아 있는가. 진정 대중에게 희망을 주고 싶다면 이제 남은 것은 자신을 버리는 길밖에 없다.


첫째, 그 방법이 어떠하든 민주노동당은 재구성될 필요가 있다. 계급적이지도, 급진민주주의적이지도 않은 ‘완고한 자주파’들과 단절하는 것이 필요하다. 둘째, 그 재편의 과정에서 사회당 등과 통합할 필요가 있다. 변화를 전제로 한 민노당과 사회당의 강령은 내용상 서로 함께 하지 못할 정도의 차이가 존재한다고 생각지 않기 때문이다. 셋째, 제도정당 외부의 계급적, 급진민주주의적인 정치세력들, 혹은 ‘계급좌파’와 ‘비계급좌파’ 또한 이러한 움직임을 외면하지 말고 직간접적으로 개입, 결합할 필요가 있다. 과거와 같은 ‘제도정치=개량주의’라는 낡은 혐오는 금물이다. 이미 언급했지만, 그 한계는 제도/비제도의 경계를 끊임없이 재구성하고자 하는 운동정치들의 과제로 계속 남을 것이기 때문이다. 넷째, 이 과정에서 민주노총의 현 민주노동당에 대한 배타적 지지가 재검토, 철회되어야 한다. 지금 배타적 지지는 오히려 진보정치의 보수화를 조장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섯째, 이러한 변화에 기존 진보정당의 대중적 명망성과 영향력을 지닌 리더들이 동참하도록 최대한 요구할 필요는 있지만, 결코 그들에게 연연해서는 안 된다. ‘낡은 틀’에서 비상할 수 없다는 것을 그들도 잘 알고 있겠지만, 장기적으로 더욱 중요한 것은 인물보다는 바로 그 낡은 틀을 바꾸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번 대선이 진보정치세력에게 준 기회를 어떻게 잡을 것인가. 시간은 진보정치세력을 마냥 기다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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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정당 재구성(sk)

 

진보정당 운동의 전면적인 재구성이 필요하다!

김세균 (서울대 교수, 정치학)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의 압승을 가져온 2007년 대선은 그간 한국정치를 주도해온 자유주의세력의 정치적 결집체였던 통합민주신당만이 아니라 노동자-민중의 독자적 정치세력화의 열망을 안고 출현한 민주노동당의 참패를 가져왔다. 민주노동당 운동은 그간 한국의 진보정당운동을 대표해 왔다. 그런 만큼, 민주노동당의 참패는 민주노동당 운동의 위기만이 아니라, 진보정당 운동 전체의 위기를 대변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 위기는 진보정당 운동이 지금과 같은 내용과 방식으로 전개되는 한 앞으로도 희망이 없음을, 새로운 희망을 창출하려면 무엇보다 과감한 자기혁신과 재구성이 있어야 함을 지시한다.



민주노동당이 해소되어야 할 이유


민주노동당은 새로운 진보정당에게 진보정치의 바턴을 넘기고 역사 속에서 사라져야할 조직이 되어버렸다. 왜 그런가? 그 가장 중요한 이유는 민주노동당이 크게 보면 ‘민주개혁세력’, ‘평화애호세력’ 등으로 자처해온 자유주의세력의 제2중대 이상의 정치조직이 되지 못한 데에, 이로 인해 자유주의세력이 성장할 때 동반성장하다 자유주의세력이 추락할 때 동반추락해야 하는 처지에 놓일 수밖에 없었던 데에 있다. 민주노동당은 민주개혁세력과 구분되는 ‘급진적’ 진보세력이 아니라, ‘민주개혁세력 내부의 좌파’ 이상의 조직이 되지 못했다. 이렇게 된 것은 민주노동당이 애초부터 장기적으로 당을 함께 할 수 없는 정파들의 연합에 기초하여, 그것도 (사회주의 경향의 계급적 진보세력 일부가 참가하긴 했지만) ‘자주파’로 불리는 좌파 민족주의세력과 ‘평등파’의 주류를 형성하는 사민주의 경향의 계급적 진보세력의 연합에 기초하여 조직된 데에 기인한다.

주지하다시피, ‘자주파’ 내지 ‘민족해방파(NL파)’는 민족통일의 달성과 같은 민족문제의 해결을 계급문제를 포함한 다른 모든 문제들의 해결 보다 우선시하고, 반제문제 등을 일차적으로 ‘민족해방’의 관점에서 파악하는 좌파민족주의세력을 가리킨다. 이와는 달리, ‘계급적 진보세력’이란 계급문제의 해결을 민족문제를 포함한 다른 모든 문제들의 해결 보다 우선시하고, 민족문제는 물론 반제문제 등을 계급문제의 해결의 관점에서 파악하는 정치세력을 가리킨다. 그런데 원래 ‘민중민주파(PD파)’로 불린 계급적 진보세력은 애초에는 사회주의적 지향성을 지닌 단일한 세력으로 출현했지만, 이후 크게 보아 체제 내적 개혁을 추구하는 사민주의세력과 자본주의 극복을 추구하는 사회주의세력으로 분화되었다. - 유럽에서는 사민주의자도 대체로 자신을 사회주의자로 동일시여기지만, 여기서는 혼돈을 피하기 위하여 사민주의와 사회주의를 구분한다.-  때문에 오늘날에는 더 이상 ‘단일의 계급적 진보세력’, ‘단일의 PD파’, ‘단일의 평등파’ 등에 대해 말할 수 없다. 오히려 (혁신자유주의 세력을 포함한 자유주의세력과 구분되는) 진보세력은 크게 보아 ‘좌파민족주의세력’과 ‘사민주의세력’ 및 ‘사회주의세력’으로 삼분되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들 세력들은 추구하는 운동의 궁극적 목표와 목표 실현의 수단과 경로 등에 대해 상이한 견해들을 갖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계급문제와 민족문제 등이 중첩적으로 뒤얽혀 있고, 신자유주의 반대, 한반도 평화체제의 구축, 반전반제의 과제 등이 절박한 당면과제가 되어 있는 오늘날의 조건 속에서 이러한 당면 과제들의 해결을 위해 차이를 넘어 서로 힘을 합쳐 투쟁해야 할 진보세력 내부의 주요한 3대 분파이다. 이들 세력들은 서로 공통적으로 인식하는 당면과제의 해결을 위해 차이를 넘어 함께 투쟁해 나가야 할 책무를 지닌다. 그렇지만, 이들 세력들이 당을 함께 할 수 있는 세력들이 아니라는 점을 우리는 옳게 인식할 필요가 있다. 당면과제들의 해결을 위한 연대는 추구하는 궁극적 목표 등에서 차이를 지닐지라도 그 과제들의 해결을 위해 연대하는 제 세력들의 전선운동체나 공동투쟁체에 의해 확보될 일이다. 이와는 달리, 당이란 전선운동체 등과는 달리 무엇보다 자신들의 궁극적인 정치적 목표의 달성을 위해 노력하는 동일한 세력의 정치적 결집체여야 할 것이다. 실제로 당의 목표 등이 전선운동체와 같은 조직의 그것들과 같은 것이라고 한다면, 전선운동체 등과 구분되는 당과 같은 정치조직이 왜 별도로 필요한 지를 옳게 설명할 길이 없다.

그런데 민주노동당은 ‘노동자-민중의 독자적 정치세력화’라는 대중적 요구가 증대된 것을 배경으로 좌파민족주의세력과 사민주의세력 중심의 계급적 진보세력이라는 애초부터 당을 함께 할 수 없는 양대 정파가 중심이 되어 만든 전선운동체적 성격의 정파연합당으로 출범했다. 이런 당이란 잘 운영될 때에도 전선운동체가 행할 수 있는 것 이상을 행할 수 없다. 게다가 이런 당은 현재 민주노동당에서 일어나고 있는 ‘종북주의’ 논쟁이 보여주다시피 공통의 당면과제 이상의 문제와 관련해서는 ‘봉합’ 이외에는 다른 해결의 길이 없는 끊임없는 노선 분쟁에 휩쓸리지 않을 수 없고, 평등파가 자주파의 ‘패권주의’를 문제 삼고 있는 데에서 드러나다시피 특정 정파의 패권이 관철될 경우 당 운영 문제 등과 관련하여 심각한 내분에 직면하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좌파민족주의세력은 계급문제의 해결에 관심을 갖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민족문제의 해결을 우선시하기 때문에 남북한의 화해-협력과 민족문제 해결을 위한 자유주의세력과의 연대나 진보대연합의 형성 등을 중시한다. 그리고 사민주의세력은 개혁의 진전 그 자체만을 중시하기 때문에 사민주의와 혁신자유주의 내지 개혁적 자유주의의 차이란 실제로는 그다지 큰 것이 아니다.

이처럼, 민주노동당은 전선운동체 등을 통해 연대하거나, 필요하다면 ‘선거연합’ 등을 행할 수 있지만 당을 함께 할 수 없는 세력들이 진보운동의 당면과제에 대한 공동 대응을 우선시함으로써 생겨난 당이라는 태생적 한계를 안고 출현한 당이다. 또한 민주노동당은 노동자-민중의 ‘독자적’ 정치세력화의 열망을 안고 출현한 당이긴 하지만 자유주의세력의 제2중대 역할 이상을 하기 어려운 세력들이 주도하는 당이 됨으로써 노동자-민중의 독자적 정치세력화에 기초하여 우리 사회의 발본적인 변혁을 추구하는 당과는 거리가 먼 당, 그렇기 때문에 노동자-민중의 독자적 정치세력화의 진정한 의의를 왜곡하고 퇴색시키는 당이 되어버렸다. 게다가 ‘의회 진출’ 이라는 당시 진보세력의 당면과제를 최우선시함으로써 창당된 당이기 때문에 의회주의와 합법주의, 대리주의와 관료주의 흐름이 지배적이 된 당, 의원 활동에 대한 당적 통제가 제대로 이뤄질 수 없는 당, 명망가된 의원들에게 갈수록 의존하는 당, 누가 당선가능한 비례대표 후보가 되는가가 정파들의 사활적 이해관계가 걸린 문제로 되는 당이 되어버렸다. 거기서 더 나아가 오늘날에는 자주파의 패권까지 관철됨으로써 실질적으로는 계급노선이 민족주의노선과 계급연합노선 등에 종속되어 있는 ‘무늬만의 노동자계급정당’으로 전락해 버렸다. 이처럼, 지금까지의 민주노동당은 민족주의와 사민주의의 불행한 결혼이 탄생시킨 정당이며, 사회적 관계의 근본적인 변혁을 바라는 많은 평당원의 사회주의적이거나 사회주의 지향적 열망을 민족주의적, 사민주의적, 의회주의적 전망 속에 가두는 정당이었다.

또한 민주노동당은 그간 민주노총과 전농과 같은 대중조직의 배타적 지지에 크게 의존하는 정당이었다. 그런데 이런 배타적 지지-대변 관계 형성은 민주노동당을 진보정당을 대표하는 정당으로 만들고 민주노동당의 양적 성장 등에 기여했지만, 실질적으로는 당과 대중조직들 모두에게 치명적인 손실을 안겨주는 것이었다. 진보정당은 무엇보다 사회적 관계의 총체적 인 변혁을 위해 투쟁하는 조직이어야 하는 반면, 대중조직은 무엇보다 대중들이 직면한 절실한 당면과제의 해결을 위해 투쟁하는 조직이어야 한다. 그러나 민주노동당과 대중조직들 간의 그런 배타적 지지-대변 관계의 형성은 민주노동당을 대중조직의 볼모로 만드는 동시에 대중조직을 민주노동당의 볼모로 만들어 버렸다. 그 결과 민주노동당은 대중조직의 한계를 넘어서는 당다운 당으로 활동하는 데에 방해를 받았고, 대중조직은 민주노동당 정치에 종속된 채 대중조직다운 대중조직으로서 활동하는 데에 방해를 받아 왔다.


우리에게 요구되는 새로운 진보정당의 상


위에서의 논의를 통해 드러나는 것은 민주노동당이 현재 직면하고 있는 위기가 민주노동당이라는 조직 틀을 유지시키는 선상에서 제기되는 ‘내부 혁신’이나 ‘제2창당 운동’ 등을 통해 극복될 수 있는 위기가 아니라, 참으로 진보정당 운동의 전면적인 재구성의 절실함과 시급함을 알리는 위기라는 점이다. 그런데 진보정당 운동의 재구성은 민족주의와 결별한 새로운 사민주의 정당을 건설하기 위한 것도, 당을 현재의 민주노동당 보다 더 우경화시키고 진보정치를 결국 자유주의적, 민족주의적 정치의 아류로 전락시키는 데에 기여할 따름인, 혁신자유주의세력들까지 포괄하는 진보대연합 정당을 건설하기 위한 것도 되어서는 안 된다. 그렇기는커녕 진보정당 운동의 재구성은 그와는 정반대의 길로 나아가는 것이어야 한다. 그 방향은 기본적으로 진보정당 운동을 더욱 급진화시키는 방향, 자본주의의 극복을 공개적으로 천명하며, 그 극복을 위해 투쟁하는 사회주의적 노동자계급정당이라는 새로운 진보정당을 건설하는 것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 이유는 무엇보다 자본주의사회의 발본적인 변혁을 추구하는 진보정당다운 진보정당은 사회주의적 계급정당 이외에는 없기 때문이며, 또 그런 정당만이 노동자-민중의 독자적 정치세력화의 열망을 올곧게 대변하고, 그 참다운 대의를 실현시켜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오늘날 축적위기에 갈수록 더 깊숙이 빠져들고 있는 자본주의는 노동자대중에게 갈수록 더 많은 고통을 강요하고, 이들을 위한 사소한 개혁조차 불허하는 지극히 야만적인 체제로 변모하고 있다. 이는 오늘날 혁신자유주의적-사민주의적 개혁을 통한 자본주의의 전반적인 쇄신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해졌음을, 또 이로 인해 인류가 오늘날 더 한층의 야만이냐, 아니면 사회주의적 변혁이냐의 기로에 처해 있음을 가리킨다. 이런 정세에 적극적으로 능동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도 오늘날 우리에게 요구되는 진보정당은 다름 아닌 사회주의적 노동자계급정당이다.

우리에게 요구되는 사회주의적 노동자계급정당은 그러나 거대한 역사적 비극을 경험한 이전의 사회주의정당 운동의 과오와 한계를 넘어서는 정당이어야 한다. 그 정당은 무엇보다 대중정치의 활성화에 기여하는 정당, 대중들의 투쟁과 일상적으로 결합하는 가운데 대중들을 신자유주의-자본주의 이데올로기로부터 해방시키기고 정치의 진정한 주체로 상승시키는 데에 기여하는 정당, 국가권력을 대중권력으로 대체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정당, 철저히 민주적인 사회주의체제의 건설을 추구하는 정당, 생태주의적-여성주의적 관점을 적극 수용하고 계급적 억압 등으로 남김없이 환원되지 않는 모든 형태의 사회적 억압과 차별에 반대하며 사회적 소수자들의 권리를 유보 없이 옹호하는 21세기형의 새로운 사회주의적 계급정당이 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이 정당은 이 시대의 주요한 당면과제의 해결에 적극 대응하기 위해 신자유주의 등에 반대하는 모든 세력들과  연대하면서도 그 연대가 사회주의적 변혁에 기여하는 것이 되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 정당이 되어야 할 것이다.


새로운 진보정당, 어떻게 건설할 것인가?


누가 새로운 진보정당의 건설에 앞장서야 할 것인가? 그 건설에 일차적으로 책임을 져야 할 부분은 말할 필요도 없이 민주노동당 내외의 모든 계급적 좌파세력들이다. 이들에게 시급하게 요구되는 것은 새로운 진보정당을 건설하기 위해 분산되어 있고, 분열되어 있는 지금의 상태에서 벗어나 현재의 조직적 소속과 노선상의 차이 등을 넘어 한시바삐 힘을 합치는 일이다. 이는 현 시기에 계급적 좌파세력들에게 요구되는 지고의 과제이다. 이 과제를 회피하거나 이 과제에 분파적, 타성적으로 대처하지 말라! 그리고 이런 노력에 기초해 노동현장과 사회운동의 제 영역에서 활동하는 선진노동자들과 선진적 활동가들을 새로운 진보정당 건설에 적극 동참시키고, 바로 이들이 새로운 당의 중추가 되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할 것이다. 나아가 그런 노력을 통해 건설되는 새로운 진보정당은 사회변혁을 추구하는 진정한 노동자대중정당으로 자신을 계속 성장-발전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


민주노동당의 위기를 새로운 진보정당 건설의 호기로 전환시키자!


민주노동당 운동의 위기는 진보정치 전체를 위기로 내몰고 있지만, 미래를 담보할 수 없는 낡은 수구적 진보정치를 노동해방, 사회해방의 미래를 담보하는 새로운 급진적 진보정치로 대체할 수 있는, 참으로 소중한 호기도 제공해 주고 있다. 위기의 호기로의 전환은 그러나 어디까지나 위기를 호기로 전환시키기 위한 많은 이들의 집합적 의지의 결집과 이들의 과감하면서도 책임 있는 행동의 전개를 통해서만 성취될 수 있는 일이다. 우리 사회의 발본적인 변화와 진보정치 다운 진보정치의 전개를 염원하는 모든 이들은 이 시기 진보세력의 가장  절박한 정치적 과제가 된 진보정당 운동의 전면적인 재구성을 위해 함께 힘을 합쳐 나갈 과제 앞에 놓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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