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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사회의 보수화와 진보의 좌절, 그리고 미래 (py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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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2008/02/10
    08정세글 - 강내희
    우주

한국사회의 보수화와 진보의 좌절, 그리고 미래 (pyg)

 

1. 2007년 말, 그리고 2008년 초

시간의 흐름은 일정하지 않다. 너무나 더딘 보수적인 시간, 심지어 시간의 흐름을 거꾸로 되돌리는 반동적인 시간이 있는가 하면 때론 메시아의 재림처럼 너무나 일찍 우리 곁에 오는 미래의 시간도 있다. 현재라는 찰나는 이 시간의 역동적 뒤엉킴, 과거와 현재가 갈라지는 분기점 속에 존재한다. 2007년 말, 2008년 초 우리는 이 시간의 소용돌이 속에 존재한다. 2007년 말 대선은 분명 반동의 시간이었다. 2008년 초 현재는 반동의 시간과 미래의 시간이 뒤엉켜 싸우고 있다.
2007년 말 대선 이후 2008년 4.9총선 때까지만 하더라도 시간의 흐름은 더디고 반동적인 것처럼 보였다. 이명박 특검과 삼성 특검이 이 반동적 시간을 채웠다. 항간에서 떠도는 말처럼 한국 사회는 ‘미쳤다.’ 그러나 그 시간은 또한 미래를 품고 있었다. 메시아처럼 재림하는 미래의 시간은, 한나라당과 친박연대, 선진당을 포함한 보수 세력이 개헌선인 2/3에 육박하는 압승과 민주노동당의 열세, 그리고 채 피어보지도 못한 채 좌절해야 했던 진보신당의 실험이라는 ‘반동적 승리’와 함께 도래했다. 과거와 미래의 동시성은 ‘대중’의 잠재적 역동성과 함께 우리 곁으로 도적처럼 왔다.
대선에서의 실패 이후 사람들은 여러 가지 진단을 내어 놓았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같이 한국 진보 정치운동의 실패를 ‘좌파의 무능력’과 ‘정책 실패’, ‘현실적이지 못한 이상주의’, ‘몽상적이고 이상적인 좌파 운동’, ‘원칙을 고수하는 비대중적인 정치’ 등등에서 찾았다. 그러나 이런 진단은 다름 아닌 그들이 오늘날 왜 보수우파들이 이야기하는 ‘잃어버린 10년’의 바로 그 세력들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줄 뿐이다. 그들의 평가 자체가 지난 10년 동안 한국의 좌파 운동에서 잃어버린 정신과 태도, 관점이 무엇인지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한국의 진보운동이 잃어버린 것은 그들이 실패한 원인으로 진단한 바로 그것이다. 그들은 역사를 전혀 반성하지 않는다. 이것은 그들이 이미 ‘보수(保守)’ 그 자체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말은 진보적이지만 그들의 관점과 현실 인식, 행위는 ‘보수적’이다. 한국 사회의 보수화는 바로 이들처럼 보수화한, 퇴행적인 진보로부터 온다. 그들에게 ‘진보’란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삶, 그 현실의 부조리와 모순을 보수(補修)하는 것일 뿐이다.
그들은 사람들에게 엄연한 세계화의 논리, 신자유주의의 냉혹한 현실을 인정하라고 말한다. 대중의 욕망과 세계화의 현실, 거부할 수 없는 경쟁의 논리와 물질적 풍요 등등을 말하면서 마치 그것이 ‘현실’이며 과학적 인식인 것처럼 말한다. 따라서 그들은 이미 들뢰즈나 네그리가 말하는 ‘현행적인 것(the actual)’에 사로잡혀 있다. 그들에게 현실은 현재라는 시간을 구성하고 있는 과거 시간의 축적, 우리가 어쩔 수 없는 과거의 연속적 흐름 속에 존재할 뿐이다. 여기서 미래라는 시간은 언제나 그 과거 시간의 연속일 뿐이다. 그들은 그것을 ‘유물론’이며 ‘현실주의’라고 말한다.
지난 대선에서 소위 386세대의 보수화는 이명박의 ‘실용주의’로 표현되었다. 한때 민주화 세력과 산업화 세력의 연합이 이야기되기도 했다. 그들에게 실용은 역사도, 정치적 당파도, 이념도 가지고 있지 않은 오직 현재 주어진 것들 안에서 현실을 긍정하고 현실을 이기적으로 이용하는 것일 뿐이다. 현재 보이는 것, 현재 존재하는 것, 현재 경험하는 것들이 ‘현실’이다. 그러나 그 현실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다름 아닌 ‘자본’이다. 역사는 이 현실 속에 존재하지 않는다. 역사는 항상 미래와의 대화 속에 존재한다.
그것은 미래의 잠재적 가능성을 포착하는 ‘현재의 행위’ 속에 존재한다. 그래서 미래는 현재 주어진 것들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현재 주어진 것을 파괴하고 해체하며 ‘존재하지 않는 것’을 ‘존재하게 하는 행위’ 속에 있다.
그람시가 말했듯이 “……승리할 수 있게끔 노력할 때에도 그는 여전히 유효한 현실이라는 지평 위에서 움직이고 있는 것이지만 그러나 그것은 그 유효한 현실을 지배하고 초월하기 위해서다. 따라서 이때의 ‘있어야 할’ 것은 구체적인 것이며 사실상 유일한 현실적이고도 역사적인 현실해석이며, 또 그것만이 만들어지는 역사요 만들어지는 철학이며 또 그것만이 정치”이다. 진보의 진정한 원칙, 좌파의 정신적 우월성은 바로 여기에 있다. 그것은 ‘자본’이라는 현재의 시간, 현실의 공간을 부정함으로써 미래를 선취하는 것이며 미래를 여는 운동이다.
그러나 지난 10년 동안 한국의 좌파운동은 이런 정신을 잃어버리고 있었다. 현장에서 노동운동이 실리주의를 쫓아 우경화하고 사회운동이 ‘노동운동의 중심성’을 비판하면서 노동운동과 대립하고 시민운동이 노동운동 내부로 들어와 사회적 합의주의와 사회적 조합주의를 만들어내면서 ‘위로부터 진행된 민주화’와 더불어 10년 동안의 신자유주의 지배블록의 체제 내적 파트너가 되어가고 있는 동안, 한국의 진보운동은 ‘있어야 할 것’으로서의 미래를 향한 진보의 정신을 잃어가고 있었다.
그러므로 문제는 한국 사회의 보수화가 아니다. 문제는 오히려 한국 사회의 보수화 속으로 기어들어가는 진보운동 그 자체이다. 그것은 좌파 운동의 진보적 좌표, 이념의 상실이며 자본의 신자유주의적 지평이 창출하는 생활과 욕망으로의 투항이다. 2007년 대선의 캐츠프레이즈였던 ‘부자’, ‘경제 대통령’의 꿈은 다른 무엇이 아니라 자본의 지배적 헤게모니 하에서 생존 경쟁의 장으로 내몰리면서 ‘부자’를 꿈꾸는 대중의 욕망과 ‘현실’을 준거점으로 삼아 지배블록 내부로, 신자유주의적 생산성과 경쟁 논리에 투항하는 좌파 운동 전체가 만들어낸 것이다.


2. 대중소비사회와 ‘외설적인 아버지’의 귀환

2008년 대선과 2009년 4.9총선은 ‘외설적인 아버지’의 귀환이었다. 거기에는 법도, 도덕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것은 지젝이 이야기하는, 라캉이 세운 욕망의 공식, “나는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잉여-향락의 공식이 적용되고 있었다. 사람들은 더 이상, 도덕성이나 진실성, 정의로움 등등을 문제 삼지 않았다. 여기서 관철되는 것은 ‘부자 되세요’라는 욕망의 코드뿐이었다. 그것은 지젝이 말하는 이데올로기라는 숭고한 ‘대상 a’였다. 김영삼-김대중-노무현 정권을 거치는 동안, 한국사회는 ‘대중소비사회’의 풍요로움에 젖어 있는 듯이 보였다. 그러나 이 풍요로움은 결코 ‘풍족함’이 아니었다. 그것은 끊임없이 생산되는 ‘결핍, 결여’의 텅 빈 공백 속에 존재하는 ‘풍요로움’이었다. 풍요로움은 존재의 생명이 느끼는 풍요로움이 아니라 자본이 생산하는 ‘결핍’으로서의 풍요로움이었다.
오늘날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단순한 이데올로기 차원에서 전개되는 자본의 지구화가 아니다. 그것은 사회적으로 보면 5-60년대의 대중소비사회를, 기술적으로 보면 70년대 극소전자혁명을 기반으로 탄생한 것이다. 자본의 대량생산은 대량소비를 요구한다. 서구에서 자본의 시장 개척은 국내적으로 대량소비를 위한 시장체제로서 대중소비사회를 만들어냈다. 오늘날 전개되는 다품종소량생산체제는 대량생산체제와 근본적으로 다른 어떤 것이 아니다. 유연생산체제는 표준적이고 획일적인 하나의 상품으로 대중의 소비욕망을 창출할 수 없는 자본이 상품을 다각화하고 다양화함으로써 대중의 욕망을 생산하려는 자본의 전략에서 나온 것이다. 생산체제는 대량생산이 아니라 생산의 하드웨어를 중심으로 다양한 소프트웨어를 결합시켜 상품을 다양화하는 유연한 생산체제, 포스트 포디즘으로 전환하였다. 이런 전환의 기술적 기반을 제공한 것이 70년대 초 극소전자혁명이다.
엘빈 토플러나 다니엘 벨은 정보사회의 특징으로 ‘노동과 문화의 결합, 일상의 미학화, 서비스업과 같은 3차 산업의 성장’을 이야기했지만 이런 지식산업, 또는 정보산업의 발전은 자본의 무한증식욕구가 낳은 소비사회의 욕망을 전사회적으로 확산시키는 전략과 맥락을 같이 한다. 기본적으로 물질적 형태를 가진 생산 형태에 근거한 자본의 생산체제는 더 많은 소비 시장의 창출을 위해 다양한 미적, 문화적 양식을 상품 생산 체제 내부로 끌어왔다. 그것은 대중의 욕망을 상품의 필요에 대한 욕망, 즉 사용가치의 수준에서가 아니라 기호적 측면에서 생산하려는 자본의 전략이다. 자본은 대중에게 그들 자신의 욕망을 미학화하고 차별화함으로써 그 자신의 정체성을 ‘상품 소비’에서 획득하도록 바꾸어 놓았다.
사람들은 그가 소비하는 상품을 통해서 자신의 정체성을 형성하며 자신을 다른 사람과 구별 짓는다. ‘차이-차별화’의 욕망은 그가 소유한 것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따라서 그것은 자신의 본래적인 생명적 욕망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자본이 불러일으킨 ‘의사-개별화’ 또는 ‘의사-개성화’로서, 상품소비의 욕망일 뿐이다. 브루디외의 ‘상징 자본’, 또는 하우크가 말한 ‘상품미학’은 대중의 소비욕망을 창출하기 위한 자본의 책략에서 나온다. 여기서 욕망을 생산하는 것은 자본이 만들어내는 이미지, 차별화, 정체성의 욕망이다. 브랜드와 이미지는 남과 다르다는 자신만의 개성, 남과 다른 자신의 욕망, 자신의 치장을 생산하는 상품적 욕망의 정체성일 뿐이다. 따라서 화려한 쇼윈도의 상품들은 자본의 유혹이자 개인의 욕망을 소비적 정체성으로 전환시키는 코드화의 산물로서, 스펙터클한 자본의 세계일뿐이다.
한국에서 이런 대중소비사회와 정보사회의 성장은 매우 압축적으로 전개되었다. 게다가 이런 전개는 87년 6.10민주항쟁 이후 이루어졌던 개량적이고 반혁명적인 ‘위로부터의 민주화’와 함께 이루어졌다. 대중소비사회의 성장은 1980년대 중반 3저 호황을 기반으로 한 내수시장의 확장과 70년대까지 지속되었던 자본의 형식적 포섭에서 실질적 포섭으로의 전환에 근거하고 있다. 80년대 중반 이후 민주화와 더불어 나타났던 소위 ‘X세대’의 출현과 대중문화의 성장, 그리고 10대들의 대중문화에서의 주류화는 이를 표현한다. 그리고 이런 대중소비사회의 성장과 더불어 90년대 중반 이후 본격화한 정보사회는 대중을 ‘욕망’의 도가니로, 본격적인 소비사회-레저문화-문화사회로 몰아넣었다. 따라서 풍요로운 대중소비사회에서 ‘욕망’은 결코 실현될 수 없는 욕망을 향한 질주를 낳았다.
‘외설적인 아버지의 귀환’은 이와 함께 이루어졌다. 그것은 더 이상 도덕이나 윤리적 코드를 지키지 않는다. 자본은 그 욕망을 부추기며 욕망을 향한 질주, 충동의 끝없는 질주를 낳았다. ‘즐겨라’라는 지상명령은 자본의 상품 코드 속에서 숨 쉬며 더 많은 상품과 더 많은 잉여-향락을 요구했다. 이명박 대통령의 당선은 이 욕망의 화신으로 등장했다. ‘경제 살리기’, 그 욕망을 실현시켜 주지 못한 과거 정권에 대한 무능력에 대한 질타는 ‘실용주의’와 함께 ‘국익=국부’의 논리를 따라 이루어졌다. 그러나 이 ‘외설적인 아버지의 귀환’은 결코 실현될 수 없는 것이었다. 70년대의 고도성장이라는 신화 속의 박정희는 결코 이 외설적인 아버지가 실현시킬 수 없는 ‘텅 빈 존재’이기 때문이다. ‘대타자’는 없다.
그러므로 4.9총선이라는 박정희-이명박으로 이어지는 신드롬의 극성(極盛)은 곧바로 그것의 실체를 드러내는 과정이기도 했다. 4.9총선과 함께 대중의 욕망은 ‘텅 빈 존재’의 발견, 결국 아무 것도 해결할 수 없는 대타자(大他者)의 현실화 속에서 ‘욕망의 배반’을 경험해야 했으며 그 욕망의 주체로서 자신을 재발견해야 했다. 그것은 지젝이 말했듯이 “만약 개인이 (‘거대한 타자’에게 투사된) 믿음을 박탈당한다면, 그들은 사태 안으로 뛰어들어 스스로 직접적으로 믿음을 떠맡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이 유물론이라고 지젝은 말한다. “‘전체로서의 세상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즉 전체로 본다면 그 안의 “모든 것은 없음(무) 내부에 존재한다.”는 것이 유물론이다. 그러나 그것이 그가 바라듯이 “제도적인 상징적 차원에서 개인의 ‘거대한 타자’에 대한 지지를 없애는 일”, 즉 “진정한 문화혁명”으로 발전하리라고 기대해서는 안 된다. 여기에 현재 벌어지고 있는 촛불집회와 같은 대중운동이 지닌 한계가 있다.


3. 자본의 욕망과 자본주의의 내적 모순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를 수용하는 대중들은 단순한 수동적인 존재가 아니다. 그들은 적극적으로 자신의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 싸운다. 그러나 그 욕망이 오히려 그들을 ‘예속’으로 몰아넣기도 한다. 여기서 예속은 역설적이게도 그들의 투쟁이 낳는 것이다. 빌헬름 라이히는 “왜 사람들은 마치 그것이 구원이라도 되는 듯이 그들의 예속을 위하여 싸우는가?”라고 물었다. 우리는 이것을 오늘날의 한국 정치 지형 속에서도 동일하게 물을 수 있다. 80년대 좌파에서 전향하여 포스트적 담론을 받아들인 사람들은 알뛰세르의 이데올로기론과 라캉의 욕망이론에서 이 물음에 대한 답을 찾고자 했다. 알뛰세르는 ‘상상적 동일화’와 ‘호명이론’을 통해서 이것을 해명하고자 했다. 그러나 이제 포스트 모던적 담론들은 지배이데올로기가 작동하는 층위가 단순히 생존을 위한 필요로부터 오는 ‘결핍’과 ‘결여’가 아니라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다품종소량생산체제-유연생산체제-대중소비사회는 분명 대중의 욕망을 ‘결핍’에 대한 충족을 통해서 포획하지 않는다. 대중의 욕망을 이데올로기로 포획하는 것은 ‘향유’이며 ‘향락’이다. 그것은 ‘필요(need)’가 아니라 ‘충동(drive)’이다. 자본은 ‘자기 가치를 증식하는 가치’이다. 그것은 멈출 수 없는 욕망의 기관차이다. 그것은 대중의 ‘욕망’을 생산하며 창조한다. 자본주의적 생산은 교환 속으로 들어가야 하며 ‘소비’를 창출해야 한다. 생산물의 등가 교환, 화폐체계를 통한 가치의 실현은 자본주의 생산에 내재하고 있는 모순이며 ‘난점’이다. 생산/소비의 분리라는 이 이원적 체계의 고유한 난점을 해결하기 위해 자본은 대중의 욕망을 ‘자본의 욕망’으로 생산해야 한다. 대중소비사회는 이런 자본의 욕망이 생산하는 사회이다.
그러나 오늘날 상품미학의 전면화 속에서 성장하는 문화산업과 정보화에 기반하고 있는 지식정보산업의 활성화는 대중의 욕망을 다양화, 다원화하지만 그것을 충족시킬 수 있는 분배체제, 소득체제를 만들어내지 못한다. 정보화와 자동화라는 과학기술혁명에 근거한 신자유주의적 공세는 지젝이 말하듯이 결코 획득될 수 없는 욕망의 ‘텅 빈 공백’을 확장시키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라캉-지젝식으로 결코 획득될 수 없는, 근본적으로 ‘공(空)’이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자본주의 그 자체가 지닌 내적 모순, 즉 이윤증식의 욕구 자체가 대중의 욕망을 배제하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생산-소비의 이원적 체계는 대중들의 소득 분배, 자본주의적 부의 사회적 분배를 통해서 가능하다. 그러나 신자유주의 지구화는 생산력의 발전을 자본의 이윤증식체계로 바꾸어 놓는다. 여기서 배제되고 축출되는 것은 노동이다.
임노동은 자본의 고유한 한계이자 난점이다. “맑스의 기준에서 볼 때 전체로서의 자본은 모든 전제 조건과 모든 가정들이 결과물로 나타나는 완전한 총체가 아니다. 전체로서의 자본은 반드시 어떤 타자와 관계를 맺지 않고는 스스로 존재할 수가 없는 것으로 나타난다.”임노동은 살아있는 노동자의 생명 없이 존속할 수 없다. 그들은 생명을 유지해야 하는 인간이며 살아있기 위해 생산하고 소비해야 한다. 소비를 위한 재화는 노동력의 가치인 임금으로부터 얻어진다. 따라서 노동의 배제는 임노동의 가치 저하와 함께 실질적 소득의 하락을 낳는다. 임금의 하락과 노동 강도의 강화, 광범위한 실업과 같은 산업예비군화, 소득의 양극화와 빈곤층의 확산이 이루어진다. 오늘날의 신자유주의화는 한편으로 생산의 유연화-노동의 유연화-다양한 시장의 창출과 더불어 대중소비사회의 욕망을 다원화하고 부추기지만 다른 한편으로 노동의 배제 때문에 실질적으로는 소비욕망을 제한한다.
이것은 포스트 모던적 ‘욕망’ 이론이 보지 못하는 지점이다. 그들은 ‘노동패러다임’을 근대적 패러다임이라고 비판하면서 근본적으로 생산의 영역에서 발생하는 자본주의의 내적 모순을 간과한다. 대신에 그들은 이런 자본주의적 생산의 절대적 자기 한계보다 ‘소비’-‘욕망’에 주목한다. 고진은 생산자로서의 노동자가 아니라 소비자로서의 노동자에 주목하라고 말한다. 그리고 교환 체계에서 변혁의 가능성을 찾는다. 들뢰즈는 ‘탈주’에서 가능성을 찾는다. 그러나 이것은 자본의 지배를 생산하는 내적 모순을 보지 않는다. 그럼으로써 그들은 오늘날 신자유주의 지구화에서 국가에 대항하는 계급투쟁의 의미를 제대로 포착하지 못한다.
오늘날 신자유주의 지구화는 더 이상의 외부가 없는 자본의 세계를 창출하고 있다. “부르주아지는 모든 민족들에게 망하고 싶지 않거든 부르주아지의 생산양식을 채용하라고 강요한다. 그들은 소위 문명을 도입하라고, 즉 부르주아가 되라고 강요한다. 한마디로 부르주아지는 자본의 모습대로 세계를 창조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사람들의 삶을 규정하는 것은 다른 무엇이 아니다. 그것은 ‘자본’이다. 자본은 모든 존재를 상품의 가치로 표준화한다. 표준화하는 기제는 화폐이며 화폐는 그들의 삶을 규정하는 존재 조건이 됨으로써 삶을 조직한다. 그것은 외적으로 강제되는 것이 아니라 이미 현실적인 삶으로 주어진 것이다.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이것을 전지구적인 존재 방식으로 바꾸어 놓는다. 따라서 여기서 현실적인 것은 언제나 ‘상품’적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대중의 욕망 자체가 ‘상품의 욕망’이며 ‘자본의 욕망’이다. 대중 운동의 역동성과 한계는 바로 여기에 있다. 대중들이 보는 현실은 자본주의이다. 그들의 육체가 체현하고 있는 것, 그들의 생명이 숨 쉬고 있는 것은 자본주의이다. 대중들은 이 현실만을 본다. 이것이 자본주의라는 현실에서 발생하는 계급투쟁과 대중투쟁이 지닌 양면성이다. 그들이 욕구하는 것은 ‘자본의 현실’ 속에서 욕구되는 것이다. 그들은 ‘자본의 욕망’을 통해서 자신의 욕망을 꿈꾼다. 그러나 그렇다고 그 현실이 그들의 욕망을 실현시켜 주는 것은 아니다. 자본의 욕망은 오직 자기 가치를 증식하고자 하는 가치, 탐욕스런 증식의 욕망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대중의 욕망과 같은 것이 될 수 없다. 그럼에도 대중소비사회에서의 대중은 자본이 생산하는 상품과 화폐를 통해서 역으로 자신의 욕망을 생산한다.
그러므로 바로 여기에 대중들이 왜 그 스스로 예속되기 위해 싸우는지, 아도르노처럼 왜 대중들이 권력자의 품 안으로 들어가 안식을 느끼는지 등의 이유가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상품-화폐-자본 물신성과 같은 자본주의 사회체제 그 자체가 생산하는 현실적인 메커니즘, 권력의 사회 생활적 물질성에 있다. 아울러 바로 그렇기 때문에 대중의 역동성은 언제나 ‘자본의 한계’ 안에서 양면적으로 존재한다. 그것은 극히 자본적이면서 반자본적이다. 다만, 그들은 그 모순적인 자본주의적 현실 속에서 ‘부조리’와 ‘불합리’를 체득할 뿐이다. 계급투쟁과 대중투쟁의 과정은 이것을 ‘대중들의 몸’ 속에 각인시킨다.
신자유주의-정보화-자동화는 한편에서 대중들의 눈앞에 화려한 쇼윈도를 펼쳐 놓고 무수한 욕망을 풀어헤치며 유혹의 손길을 보낸다. 그것은 ‘자본의 욕망’이다. 그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돈’을 필요로 한다. 사람들은 돈을 벌기 위해서 취직을 해야 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 자본은 더 많은 사람들의 더 많은 노동을 착취하고자 한다. 가치의 생산은 기계에 더 많이 의존하고 노동자들 사이의 경쟁과 사람들 사이의 경쟁은 더욱 치열해진다. 욕망의 크기가 커지면 커질수록 그것을 획득할 수 있는 ‘전쟁 같은 노동’은 더욱 강화된다. 더 많은 대중들이 자본으로부터 배제되고 사회적으로 형성되는 무수한 욕망의 화려한 고리로부터 밀려나 주변인이 되거나 자신의 노동력을 팔 수 없는 생존의 위협 속에 놓이게 된다. 자본에 의해 생산된 욕망은 자본에 의해 배제된다.
대중은 그것을 모르지 않는다. 대중은 그 누구보다도 먼저 자본주의의 냉혹한 현실을 자각한다. 그것은 지식이 아니라 몸으로 느끼는 모순이다. 그들을 순진하게 아버지에게 자신의 욕망을 투영하는 어린 아이와 같은 존재라고 생각하는 것은 단견이다. 그들은 그 권력이 그들에게 행복을 가져다준다거나 아니면 새로운 희망을 준다고 믿기 때문에 그들을 지지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차라리 그렇게 믿고 싶어 할 뿐이다. 그들은 이미 자본주의, 신자유주의 하에서 일상적인 방식으로 자신들이 삶이 나아질 것이라고 믿지 않는다. 그들은 자유주의-합리적 시장경쟁과 같은 자본주의적 규칙을 더 이상 믿지 않는다. 오늘날 대중들이 ‘부친살해’ 이후 등장하는 ‘상징계’, ‘규칙과 법칙을 지닌 상징’ 안에서의 욕망의 실현이라는 도덕적 코드를 버리고 오히려 그 이전의 ‘외설적 아버지’로 돌아가는 것은 그들 자신이 이 현실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여기에 대중운동이 지닌 역동성과 반자본적 역능성이 있다.


4. 대중의 양면성과 좌파의 보수화

과거 80년대 민주화 운동 이후 끊임없이 현장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던 계급투쟁은 생산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투쟁이었다. 그것은 신자유주의의 공격에 대한 방어의 성격으로 형성되었다. 그러나 자본은 자유주의적 정치개혁과 더불어 신자유주의 경제를 전면화하였다. 과거 민주화 운동의 성과 위에 선 김대중-노무현의 신자유주의 정권은 이런 개인의 욕망을 신자유주의적 시장경쟁을 국가적 체제로 코드화하는, ‘국가 경쟁력 강화’와 ‘세계화’, ‘합리화와 효율성’이라는 논리를 내세우며 개인을 ‘무한 경쟁의 장’으로 몰아넣었다. 그들의 실패는 ‘무능력하거나 비현실적’이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신자유주의 지구화라는 현실에 너무 충실했기 때문에 나타났다.
신자유주의 세계화 속에서 이루어진 국익의 논리는 공공성의 논리 또는 사회연대적 논리가 아니다. 그것은 특권적 계급인 자본의 논리일 뿐이다. 세계화는 불가피한 현실로 승인되었으며 자본의 경쟁력 강화는 국가경쟁력 강화로 전환되었다. 여기서 국가권력은 이미 자본의 시녀로 존재하며 개인들은 자본을 위한 수단이 되었다. 국가권력은 보편이해로 자신을 가장하는 외피조차 벗어던져 버렸다. 국가는 공공성과 대외적인 보호 장치들을 제거해 버렸다. 따라서 국가는 더 이상 ‘보편이해’를 가장한 ‘계급이해’의 장치로 존재하지 않는다. 과거 96-97년 노동법 총파업 투쟁을 비롯한 반신자유주의 투쟁이 곧바로 국가권력에 대한 투쟁으로 전화하는 것은 바로 이런 사정 때문이었다.
이 과정을 통해 대중들은 신자유주의적 자본의 공세를 몸으로 학습해 왔다. 대중들은 더 이상 자본의 규칙과 규범, 상징적 체계를 믿지 않는다. BBK나 ‘고소영 내각’, ‘강부자 내각’ 등 도덕적 이슈들이 힘을 발휘하지 못한 것도, 4.9총선이 ‘뉴타운 건설’ 공약 속에서 이기적인 아귀다툼이 되어버린 것도 바로 이와 같은 제도적 규칙의 영향력이 쇠퇴했음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이런 대중의 자본주의적 상징체계의 와해가 자본 그 자체를 향한 투쟁과 반자본의 역동성을 생산하는 것은 아니다. 죽음, 파괴의 욕망이 작동하더라도 그것은 결코 자동적으로 새로운 생성의 힘으로 전화되지 않는다. 그것은 현실적으로 삶을 살아가야 하는 대중이 자신의 삶을 지탱하고 있는 ‘현행적인 것’들을 모두 부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현실의 부정은 그들에게 ‘생존의 포기’와 ‘죽음의 공포’를 유발한다. 따라서 대중의 선택은 이중적이다.
한편으로 대중은 주어진 현실 속에서 그것이 무엇이었든 간에 자신의 삶이 보다 나아지길 바라는 욕망을 따라 움직인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규범과 가치가 아니다. 맹자는 ‘항산(恒産)이 있어야 항심(恒心)이 있다’고 했다. 신자유주의 광풍 속에서 대다수의 대중이 지금 직면하고 있는 것은 기본적으로 ‘생존’이다. 생존의 벼랑에서 그들이 가질 수밖에 없는 욕망은 차라리 단순하다. 그것은 그 권력이 무엇이든 간에 그들의 생활이 개선되는 것이다. 그들은 자신의 노력으로 그 소박한 꿈을 이룰 수 없다는 것을 잘 안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이 아니라 자기보다 더 강력한, 실제로 그 꿈을 실행시킬 수 있는 타자의 욕망을 통해서 자신의 욕망을 꿈꾼다. 그들은 자기보다 더 강력한 힘을 가진 누군가에게 자신의 욕망을 동일화함으로써 자신의 욕망을 실현하고자 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대중들은 ‘도덕적 규범’을 포기할 정도로 강렬한 욕망에 비례하여 그 욕망의 대리적 구현자에 대한 의혹을 가지고 있다. 김영삼-김대중-노무현으로 이어지는 ‘위로부터의 민주화’는, 그것이 신자유주의적 정권인 이상 애초부터 대중들의 열망을 실현하는 권력이 될 수 없었다. 그들의 신자유주의는 오히려 대중들의 열망과 욕망을 배반하면서 빈부격차의 확대와 빈곤, 실업을 양산하였다. 김대중-노무현으로 이어지는 대중의 광적인 지지와 집단적 패거리화는 그들의 욕망을 반영했지만 그들에게 돌아온 것은 ‘배반’이었다. 그것을 통해 대중은 국민국가에 대한 믿음을 상실해 왔다. 규칙은 파괴되었고 이 사회의 법적-제도적 권위는 훼손되었다. 사상 최악의 46%라는 투표율, ‘찍을 사람이 없다’거나 ‘그 놈이 그 놈’이라고 보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보이콧을 행사한 유권자들은 이미 그것이 헛된 미망임을 알고 있다. 여기에는 적어도 반체제적, 반제도적인 도발성이 잠재되어 있다.
좌파의 정치학이 작동하는 곳은 바로 여기이다. 그러나 87년 이후 좌파 정치는 보수 우파의 담론 헤게모니에 스스로를 투항시켜 왔다. 보수 우파들의 논리는 언제나 주어진 현실을 기반으로, 현실주의의 논리를 전개한다. 그들에게는 미래가 없다. 주어진 현실이 영원하고 그것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논리가 바로 그들의 전통-보수(保守)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의 좌파 또한 이 논리를 벗어나지 못했다. 그들은 대중성을 외치며 비현실적인 길이 아니라 ‘현실적’인 길을 원했다. 대중적인 것=현실적인 것이라는 사고 속에서 작동하는 정치학은 언제나 주어진 것들을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의 포로가 되어 있는, 그리하여 결국 자본의 욕망 속으로 포획되어 들어가는 ‘실정성의 정치학’이었다.
그러나 대중이 원하는 것은 주어진 현실을 승인하는 것이 아니다. 이미 그들은 주어진 현실의 규칙과 규범이 오히려 그들 자신의 족쇄가 되며 그들 자신의 삶을 더욱 비참하게 만들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거기에 대고 그들은 더욱더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길을 모색했다. 그러나 그 길은 결코 합리적이거나 현실적인 길이 될 수 없었다. 왜냐하면 거기서 실질적인 주도권과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자본’이기 때문이다. 정리해고와 파견근로제 실시, 부당노동행위가 있어도 현장의 운동은 자꾸만 실리화되었다. 노조 간부는 이미 노조 관료가 되어 가고 있었다. 대중적인 욕망은 탁구공과 같다. 그것은 언제 어디로 튈지 모르기 때문에 노조 간부는 그 욕망을 합리적으로 통제하고자 한다. 그들은 대중의 욕망을 전부다 만족시킬 수 없다는 것을 ‘현실’로 전제한 이후에 대중의 욕망을 적절하게 조절하고 통제하는 실리의 정치, 실정성의 정치학을 추구했다. 따라서 한국의 좌파운동은 이미 기존의 체제와 제도를 부정하는 대중적 행위보다 퇴행적이었다.
그들은 대중을 가르쳐야 할 대상으로 삼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대중은 모르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자신의 현실을 타개할 수 있는 것을 요구한다. 그러나 좌파는 이런 희망을 대중에게 주지 못했다. 그것은 그들이 ‘실정성의 정치학’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서구의 합리적 시민-개인주의적 인간에 기반하고 있는 시민사회운동이 그러했으며 노동자의 경제적 이해를 정치학의 모든 것으로 이해하는 한국의 관료화된 노동운동이 그러했다. 게다가 좌파의 정치운동을 지향하는 정파운동은 80년대의 서클 운동과 연고적인 봉건적 운동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대중들이 이 시대에 요구하는 것은 다른 무엇이 아니다. 그것은 ‘힘=권력’이다. 물론 이 ‘힘에의 의지’는 이중적이다. 대중은 모래알같이 흩어진 나약한 개인들이다. 여기서 권력은 생성될 수 없다. 문제는 그들의 힘이 결집되는 것이다. 만일 그와 같은 권력의 집단적 생성, 권력의지의 집합체가 생성되지 않는다면 대중의 ‘권력 의지’는 정반대의 ‘의지’, ‘권력의 품으로 안기는 길’로 전화될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대중들의 권력 의지는 철저하게 양면적이다. 그것은 죽음 본능이 이중적이기 때문이다.
기존의 것을 파괴하고자 하는 죽음 본능은 기본적으로 ‘기존의 낡은 것들을 파괴할 수 있는 힘’을 요구한다. 하지만 그것이 자신들의 힘으로 생성되지 않는 이상, 대중의 권력의지는 더욱더 강한 대타자를 요구하는, 파시스트적 권력을 요구하는 욕망으로 전화될 수 있다. 박정희-이명박으로 이어지는 한국에서의 파시스트적 권력에 대한 신드롬은 이런 욕망의 흐름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것은 대중의 욕망이 지닌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대중의 권력의지를 대중 자신의 권력으로 전화시켜야 하는 좌파 정치운동의 문제이다. 지난 10년 동안 좌파는 그 권력의지를 잃어버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지난 대선과 4.9총선에서 그대로 재현되었다. 보수화된 것은 대중이 아니라 좌파운동 그 자체이다. 여기서 자유로울 수 있는 한국의 좌파는 없다.


5. 적대적 모순의 다원화와 좌파의 실패

좌파의 보수화는 87년 이후, 그리고 90년대 현실사회주의권의 몰락과 함께 지배체제의 재코드화가 진행되었던 ‘위로부터의 민주화’와 함께 진행되었다. 한국의 진보운동은 자유주의적 민주화와 대중소비사회의 다원화 속에서 진로를 잃고 오히려 주어진 현실에서 대중의 욕망을 좇아가는 ‘실정성의 정치학’으로 빠져들었다. 보비오의 자유주의적 시민사회론과 하버마스의 생활세계가 시민운동의 이데올로기적 담론을 제공하면서 시민사회의 주류로 등장하는 동안 이들과 대립했던 좌파는 자본주의적 지배의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현대성의 지평을 탐색함으로써 자신을 더욱 발본적인 세력으로 만들어왔다. 그러나 그런 방향 전환의 기저에는 정치에 대한 니힐리즘이 내재되어 있었다. 그것은 87년 민주항쟁에 이은 ‘위로부터의 수동혁명’ 속에서 포획되고 자유주의적으로 구축되는 지배헤게모니에 대한 좌파의 좌절이 자리 잡고 있었다.
노동자계급을 비롯한 대중은 자본의 지배 헤게모니 안으로 코드화되어갔다. 자본의 강력한 힘은 대중을 조직했다. 좌파는 좌절했으며 대중의 욕망을 조직하는 ‘권력’에 공포를 느꼈다. 현실적으로 더욱 냉혹해지는 자본의 공세에도 대중은 자본의 지배 안으로 기어들어갔다. ‘결핍’은 생산되었지만 그들은 ‘향유’에 젖어 있었다. 따라서 좌파의 현실 정치학은 생산과 권력의 거시적 메커니즘이 아니라 생활과 장소, 소비의 영역으로 대체되었다. 아울러 현실에 대한 비판은 대중의 욕망을 더욱 급진화할 수 있는 정치적 강령과 ‘권력 의지의 집합체’를 창출하는 행동적 급진주의와 정치적 급진주의가 아니라 대중의 사회문화적 소비와 욕망을 심리적이고 미학적으로 탐색하면서 근대성의 내면을 파헤치는 이론적 급진주의와 미학적 비판주의로 대체되었다. 여기서 좌파가 상실한 것은 ‘대중의 역동성’을 정치적 권력체로 조직하는, 유물론적 정치학의 ‘변증법적 예술’이다.
그들은 ‘대중’을 알자고 말한다. 한편에서는 ‘대중’을 숭배의 대상으로 만들고 다른 한편에서는 ‘대중’을 계몽의 대상으로 삼는다. 그러나 대중은 숭배의 대상도, 비판의 대상도 아니다. 왜냐하면 대중의 양면성은 곧 자본주의라는 현실, 자본이 내적으로 생산할 수밖에 없는 모순의 효과이기 때문이다. 분명 대중은 상품 물신성의 지배적 효과 속에 존재한다. 그러나 자본은 모든 세계를 자신의 내부로 완전하게 포획할 수 없다. 자본의 한계는 고진이 말했듯이 임노동과 자연이다. 그것은 자본주의적 생산 메커니즘이 유지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요소이다. 그러나 자본은 그것을 온전히 포획할 수 없다.
자본은 기본적으로 생산과 소비라는 이원적 체계의 정치경제학적 지형을 벗어날 수 없다. 생산과 소비는 분리되어 있지만 서로 균형을 맞추며 맞물려 작동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본주의는 불황과 공황으로 빠져든다. 생산량에 맞추어 소비량이 조절되어야 하며 소비를 통해서 생산의 힘이 창출되어야 한다. 여기서 양자를 매개하는 것은 ‘임노동’이다. 자본은 ‘임노동’ 없이 생산을 가동할 수 없다. 임노동의 재생산은 소비로부터 주어진다. 따라서 임노동을 통해서 자본주의적 생산과 소비의 모순은 중첩적으로 응축된다. 대중소비사회는 자본의 이 모순을 임노동자에게 전가하면서도 다양한 소비 욕망의 창출을 통해서 지배를 구축했다. 이것은 물론 자본의 의식적인 의도에 의해 이루어졌다기보다 자본의 생산이 요구하는 내적 논리를 따라 이루어졌다. 대량생산, 거대하게 축적된 자본은 대중의 거대한 소비를 요구한다.
그럼에도 대중소비사회의 창출은 자본의 지배에서 이중의 효과를 낳았다. 첫째, 임노동을 더욱더 생산의 지배 메커니즘으로 끌어들였다. 다원화된 소비의 양태를 통해 ‘향유’의 메커니즘을 생산하고 이에 대한 욕망을 코드화함으로써 대중으로 하여금 그것을 소비할 수 있는 돈을 획득하는 생산의 장에서의 몰입, 자본주의적 생산의 지배를 자신의 필요로 바꾸어 놓았다. 사람들은 소비하기 위해 더욱 열심히 일을 한다. ‘돈만 있으면 이 세계는 정말 살만한 곳이다.’ 둘째로, 자본주의 사회의 대중, 모래알처럼 개별화된 개인을 소비하는 개인으로 바꿈으로써 정치적 지배의 억압성을 감추었다. 문화산업과 상품미학은 대중의 욕망을 다원화된 상품적 욕망으로 코드화함으로써 냉혹한 자본의 지배를 망각하고 사회적 갈등과 대립을 해소하도록 만든다. 여기서 ‘실사회의 종언’이, 보드리야르의 ‘시물라시옹의 세계’가 펼쳐진다.
그러나 이런 지배의 효과에도 생산과 소비의 이원적 체계, 그리고 자본 증식으로 자연을 착취하는 자본의 지배는 자본의 적대선을 공간적으로 확장하면서 모순을 중첩적으로 강화하는 결과를 낳고 있다. 예를 들어 소비욕망은 생산 내부에서 착취의 논리로 전환되며 노동자들을 자본의 지배에 순응시키는 기제가 된다. 신자유주의 지구화의 유연생산체제는 다품종소량생산과 다양한 욕망의 스펙터클을 펼쳐놓지만 그런 욕망의 다원화는 생산의 영역에서 배제되고 박탈된다. 생산의 영역에서 모순은 노동강도 강화와 노동배제로 이어지고 소비자인 임노동의 소득을 박탈한다. 일시적으로 노/자의 단일한 모순은 정규직과 비정규직, 대기업과 중소기업 노동자, 파견 근로와 변형노동, 파트타임노동으로 분산되며 이주노동자와 같은 인종적이고 민족적인 차별과 여성노동자에 대한 이중적 착취로 변형되며 노동자 내부의 대립과 갈등으로 분산된다. 그러나 그런 대립과 갈등은 궁극적으로 사회의 모든 구성원을 자본주의적 생산과 소비, 양자로부터 축출하는 결과를 낳을 뿐이다. 오늘날 신자유주의 하의 노동자들의 양면성에는 이런 내부 분할과 반자본의 일탈이 뒤섞여 있는 것이다.
특히 자연과 소비의 일상적 생활 영역에서 나타나는 자본의 내적 모순은 모든 생명에 대한 파괴로 나타나고 있다. 자본의 모순은 생산에서가 아니라 자연과 호흡하며 살아가는 일상적 삶의 차원에서 적대성을 생산한다. 그것은 적대적 모순이 사회운동 차원으로 확장됨을 의미한다. 미국 쇠고기 수입에서 문제가 되었던 것은 대량생산을 하는 축산업이 낳은 광우병이었다. 그러나 어디 그것뿐이겠는가? 유전자변형생물체와 식품들이 우리의 식탁을 위협하며 환경호르몬이 건강을 위협하고 있다. 먹을거리 자체가 문제가 되고 있으며 인간의 생명 자체가 자본 증식의 도구가 되고 있다. 따라서 생산 영역에서 발생하는 인종적이고 성적인 착취의 구조뿐만 아니라 소비 영역에서 발생하는 교육, 의료, 먹을거리, 환경과 같은 문제들이 ‘반자본’의 문제로 비화되고 있다. 여기서 생산 영역에서 진행되는 계급적대의 구조는 사회 영역에서 진행되는 공동체의 생활적인 문제들과 직접적으로 중첩되고 있다.
따라서 문제는 생산이냐 소비냐, 또는 거시적 구조냐 미시적 생활세계냐, 국가냐 생활이냐의 대립에 있지 않다. 60년대 이후 서구의 소비자자본주의와 소비사회론을 비롯하여 고진까지 ‘소비’에 중심을 두고 ‘생활’의 영역에서, 일반 시민들의 삶의 영역에서 ‘변혁의 가능성’을 찾는 것은 이런 자본의 정치경제학적 모순, 즉 생산의 내부에 존재하는 적대의 메커니즘과 모순의 중첩성을 망각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기존의 생산 중심의 노동운동, 또는 노동자계급 중심성만을 외치면서 소비의 영역을 쁘띠부르주아적 시민운동으로 치부하는 소위 ‘정통’적 맑스주의 또한 소비의 영역이 생산의 영역과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생산의 모순을 전가시키고 분산시키는 또 다른 지배의 양식이라는 점을 보지 않고 있다.
그러므로 자본의 지배에 대항하는 ‘대중적 힘’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노동운동과 사회운동의 결합, 노동운동의 정치화와 사회운동의 적색화, 적․녹․흑의 연정이 필요하다. 사실, 지난 10년간 한국의 좌파운동은 그전에 그들이 기반하고 있었던 노/자간의 단일한 적대에 기반하고 있는 정치적 지형을 상실하고 있었다. 이에 좌파들의 전략도 바뀌었다. 특히, 시민운동의 성장과 더불어 좌파 또한 다양한 영역으로 자신의 영역을 바꾸었다. 그러나 이 과정 속에서 좌파는 ‘권력 의지의 집합체’를 창출하려는 정치적 의지를 상실하는 대가를 지불했다. 그것은 과거의 시간을 고수하는 소위 ‘정통’ 맑스주의자들의 완고함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는 시민사회운동 영역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났다. 소위 진보운동 진영 내부에서 노동운동과 시민운동, 계급운동과 사회운동, 그리고 맑스주의와 무정부적 코뮌 운동의 대립이 반복되었다. 그러나 이런 대립은 역설적이게도 적대적 모순을 다원화하는 자본의 분산 전략과 지배적 책략에 말려드는 것일 뿐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확장되는 자본의 모순에 대한 대중적 열망을 결집시키는 ‘권력 의지의 집합체’에 대한 임무의 해체 또는 망각이었다.


6. 대중에 대한 공포와 대중의 권력

대중은 언제나 꿈을 꾼다. 유토피아는 그들이 꾸는 꿈의 이름이다. 그리고 그 꿈이 미래를 창조한다. 그러나 그들은 일상적인 삶에서 유토피아적 꿈을 꾸지 않는다. 그들은 각박하게 경쟁하면서 생존의 벼랑으로 몰아가는 자본주의적 삶의 방식이 아니라 상호 호혜적으로 교환하는 코뮌적 공동체를 상상한다. 그러나 그것은 상상일 뿐이다. 그들은 언제나 현실에서 그것을 ‘공상’이라고 느낀다. 그러나 ‘이상’이 ‘공허한 원칙’처럼 느껴지는 것은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 어딘가에 이와 다른 삶을 살아가는 세계가 없기 때문이 아니다. 그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다른 세계가 가능할 수 있다는 믿음과 비전을 현실화할 수 있는 ‘힘’을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혁명은 광기이며 이성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이다. 그 속으로 몰려드는 대중적 폭발력은 그 힘을 느끼는 순간, 점화된다. 따라서 현실화의 문제는 지금 경험할 수 있는가 아닌가에 있지 않다. 현실화는 지금 존재하는 현재의 문제가 아니라 그것이 실현될 수 있는 가능성, 힘의 문제이다. 대중들이 더 이상 다른 세계를 꿈꾸지 않고 자본으로 투항하는 것은 그것의 힘을 발견할 수 없거나 믿음을 줄 수 있는 비전을 발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비전은 단순한 관념 또는 이론적인 정책이거나 프로그램이 아니라 그것을 실제로 실현할 수 있는 결집된 힘이다. 한국의 좌파들이 ‘잃어버린 10년’은 바로 이것이며 다시 솟구쳐 오르는 대중투쟁 속에서 피어나는 미래를 창조해야 하는, 그들이 책임져야 할 것은 ‘권력의지의 집합체’를 창출하는 것이다.
대중의 권력 의지가 지닌 이 양면성에서 지식인들은 공포를 느낀다. 90년대 이후 한국의 소위 진보적이었던 지식인들 사이에서는 대중파시즘이라는 유령과 국가권력 장악이라는 제도적 신화가 유행했다. 지난 10년간 유포되었던 대중독재, 대중파시즘이라는 대중공포증은 진보적 지식인들의 제도권으로의 투항을 합리화하는 변호론이 되었으며 그들만의 엘리트주의를 생산했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 그들은 역으로 정치적 지배 권력을 정당화하고 적극적인 보수주의자들이 되었다. 반면 ‘현실성’을 이야기하면서 ‘제도권으로 투항한 지식인들’은 현재 주어진 지배 권력과 체제만을 현실적이라고 말함으로써 그들 스스로 자기 이익을 합리적으로 추구하는 개인주의자들이 되었다. 이들은 전혀 다른 방향에서 시작하지만 결국 같은 결론에 도달했다. 그것은 대중 위에 서는 정치권력으로의 투항이며 엘리트주의자로서 지배자가 되고자 하는 권력자로의 변신이다.
그러나 좌파들 또한 이런 공포에서 벗어나 있는 것은 아니다. 90년대 이후 한국의 좌파 운동은 이런 담론에 대한 대립 지점에 서 있었다. 제도적 포획과 코드화를 벗어나 대중 자신의 권력, 코뮌적 권력을 꿈꾸었던 비제도적 좌파들은 그 반대편에서 ‘국가=전체주의’라는 유령을 만들어왔다. 그들은 대중의 욕망을 전치시키는 대타자에 대한 환상을 파괴해 왔다. 그들은 부르주아 대의제가 생산하는 ‘재현=대표(representation)’의 코드화를 벗어난 민중 자신의 권력, 코뮌적 자치 권력을 요구했다. 그러나 그것은 대중의 양면성을 무시하거나 애써 부정하는 것일 뿐이다. 현실적으로 대중은 그들의 욕망을 실현시킬 수 있는 권력을 요구한다. 그것이 때론 국가로, 정당으로, 과학자(황우석)로 표현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그것들이 대중의 욕망을 실현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니라 무언가 출구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들이 사는 세계에서 그들의 욕망을 대변할 수 있는 권력을 요구한다. 물론 여기에 전체주의와 포풀리즘의 위험이 존재한다.
그러나 문제는 그들의 욕망이 잘못되었다고 말하는데 있지 않다. 그들의 욕망이 그렇게 작동하는 것은 주어진 자본주의적 현실로부터 비상구가 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대표=대리’가 아니다. 오히려 문제는 민중이 자기 스스로 권력의 중심에 서고자 하는 권력 의지를 부여하는 것이다. 강력한 국가 권력에 대한 민중의 요구는 그들 스스로 노예가 되길 바라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들 스스로 권력의 중심이 될 수 있다는 희망과 열정을 현실에서 발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희망을 주어야 한다. 권력의 지평을 바꿀 수 있다면, 그리하여 부르주아적 헤게모니가 아니라 민중적 헤게모니를 창출할 수 있다면 그때부터 대중은 희망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어떤 경우, 예를 들어 베네수엘라처럼 국가장치를 장악하는 과정을 통해 이루어질 수도 있다. 문제는 의회를 통한 국가권력의 장악이냐 아니냐가 아니다. 원칙이 적용되어야 하는 것은 이런 전술적 문제가 아니라 그 권력이 사용되는 방향이다. 베네수엘라의 혁명은 비록 위로부터 국가 권력을 장악하는 데에서 시작되었지만 그것의 성패는 그 권력을 민중들에게 돌려주는 것, 민중들 자신을 권력의 주인이자 자치적 권력체로 조직할 수 있는 민중권력을 창출하는 데 있다. 따라서 현재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권력화에 대한 경계와 공포가 아니라 오히려 대중의 열망을 권력화하는 데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베네수엘라의 차베스’이다. 대중이 ‘영웅’을 요구한다고 벌써부터 두려워할 문제는 아니다.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는 길은 다양하다. 그것은 결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좌파에게 오직 하나의 원칙이 있다면 그것은 민중 스스로 정치가가 되고 ‘정치적 권력체’가 되도록 그들을 조직하는 것이다. 그것을 성취하는 길은 주어진 현실의 모순 속에 있다. 모든 운동이 그렇듯이 사회적 변혁의 과정 또한 하나의 길, 하나의 경로를 가지는 것도 아니며 한 번의 혁명으로 이룩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80년대의 좌파운동이 가지고 있는 지식인의 관념적 사고이거나 순진한 생각일 뿐이다. 한 번의 혁명으로 모든 것이 바뀌지는 않는다. 다만 혁명이 근본적인 것은 그것이 이전과 다른 새로운 질의 사회적 형태와 권력의 형식을 창조한다는 점이다. 따라서 혁명의 순간은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가는 연속적이고 영구적인 혁명의 출발일 뿐이다.
그러나 여전히 좌파 운동 내부에는 이런 순진함이 존재한다. 순진함은 그것의 열정으로 표현될 때 힘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순진함이 현실의 뜻하지 않은 난관에 봉착할 때, 혁명을 근본적으로 파괴하는 반동적 권력이 될 수 있다. 소위 레닌주의자를 자처했던 ‘왕년의 볼셰비키’가 그러했으며 ‘이성의 화신’으로 전화된 스탈린주의적 당 독재가 그러했다. 그들은 새로운 세계의 개척자, 사회주의 혁명의 계몽가가 되었다. 그것은 그들이 원한 것이 아니다. 우매한 대중들이 혁명을 망치고 있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에 그들 스스로 권력자가 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문제는 모순적인 현실의 운동, 모순적이기 때문에 역동적인 대중의 삶을 직시할 수 있는 유물론적인 정치학이 필요하다. 만일 레닌주의적 원칙과 계급투쟁의 단순화로 현실을 재단하려 한다면 그것은 그들의 의도와 무관하게 대중의 양면성을 자신의 과학과 이성으로 단죄하고 바꾸고자 하는 엘리트주의, 대리주의에 빠져드는 것이다. 그러므로 문제는 제도냐 반(反)제도냐에 있지 않다. 의회주의와 반(反)의회주의의 대립쌍은 동일한 오류를 반복할 뿐이다. 시민운동과 정치-정당, 경제-노조의 양날개론에 근거한 의회주의 노선을 따르는 전자는 ‘실정성의 정치학’에, 후자는 생디칼리즘적인 주의주의와 무정부주의의 오류에 빠져 있을 뿐이다. 이제는 이 대립을 벗어나 ‘반자본’의 대중적 권력의지, 집합적 권력의지를 창출하기 위한 좌파 공동의 정치 전략과 전술이 모색되어야 한다.


7. 집합적 권력의지를 향한 좌파의 정치

대중은 자본의 모순 속에서 자신의 모순을 반복적으로 생산한다. 대중의 역동성은 이 모순의 반복 속에서 예측불가능하게 튀어나온다. 따라서 언제나 그랬듯이 다시 희망을 만드는 것은 생산을 책임지고 있는 대중, 즉 민중이다. 4.9총선의 참패를 느낄 사이도 없이 대중의 반란은 시작되었다. ‘이명박 탄핵서명운동’과 ‘촛불집회’를 만든 것은 좌파가 아니라 대중이었다. 좌파가 한국의 앞날을 걱정하고 있을 때 대중은 이미 행동으로 자신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제는 한국의 좌파가 그 행동에 대해 행동으로 대답할 때이다. 그러나 그 행동은 집회를 쫓아다니면서 촛불 하나를 더 켜는 것이 아니다. 민중은 이미 그 행동을 스스로 조직했다. 한국의 좌파들이 해야 할 일은 대중의 파괴적 힘을 ‘민중의 권력’으로, 민중 자신의 권력으로 조직하는 ‘권력 의지의 집합체’를 창출하는 것이다. 대중에게 목마른 것은 미래의 비전을 보여줄 수 있는 정치적 힘이다.
이 힘을 창출하기 위해서 좌파는 첫째, 오늘날 신자유주의 지구화가 펼쳐놓는 자본주의 사회의 내적 모순을 거시적으로 탐색하는 정치경제학적 지형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미학적이고 해석적인 근대성에 대한 탐색은 미시적 작동을 밝혀주지만 적대의 기본적인 선을 등한시하거나 은폐하는 경향이 있다. 물론 오늘날 자본주의의 내재적 모순은 ‘노/자의 단일한 적대선’을 따라 움직이는 것이 아니다. 계급적대의 모순은 다양한 적대의 선을 타고 분산되며 적대적 대립의 양축을 약화시킨다. 게다가 그런 적대적 모순의 다원화, 다양화는 자본의 내적 모순을 해소할 수 없으며 일시적으로 적대의 선을 분산시키며 궁극적으로 자본의 내적 모순을 확장시킬 뿐이다. 따라서 적대의 선을 분산하는 운동은 결국 자본의 책략에 말려드는 것일 수밖에 없다.
이런 의미에서 둘째, 적대의 선이 다원화되는 생산-소비의 영역에서 중첩되고 응축되는 적대의 선을 다시 포착해야 한다. 적대의 선이 다양화하는 것은 곧 ‘반자본’적 운동의 지평이 확장되는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생산현장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 대기업과 중소기업, 실업자와 노동자의 대립뿐만 아니라 사회운동과 노동운동, 적색과 녹색, 적색과 흑색의 대립을 넘어 함께 자본의 힘에 대항하면서 민중적인 권력, 민중의 힘을 만들어낼 수 있는 정치적 비전과 행동을 조직해야 한다. 그것은 적대적 모순을 분산시키면서 적대의 선을 약화시키는 자본의 전략에 맞서 확산을 새로운 사회의 창조적 힘으로 전환시키는 것이다. 영역의 확장은 새로운 사회구성의 힘이다. 따라서 생산 영역에서의 다양한 계급운동과 생활 영역에서의 시민운동, 그리고 자본의 반생명적, 반인간적 지배에 대항하는 사회운동의 보편성을 반자본이라는 공통의 전략 속에서 묶어내는 작업이 필요하다. 그것은 중첩되는 모순의 공통성을 통해서 연대의 틀을 짜는 것이자 새로운 사회의 비전과 정책을 제시하는 것이며 대중들을 대항적 권력체로, ‘권력의지의 집합체’로 묶어내는 것이다.
여기서 핵심은 물론 코뮌이다. 자본의 적대적 모순은 다양한 형태의 코뮌을 생산한다. 문제는 이 코뮌을 반자본의 대항적 권력체로, 자본을 대체할 수 있는 권력으로 조직하는 것이다. 그것은 대리주의를 반복하거나 제도화, 권력화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다. 여기서 기존의 국가 장치까지를 포함한 ‘민중 권력’을 강화할 수 있는 다양한 전술이 개발되어야 한다. 문제는 국가 권력이 아니라 그 권력이 전략적으로 향하는 지점이다. 따라서 의회전술을 포함하여 민중적 권력을 생산할 수 있는 공동의 전략과 전술, 아젠다를 개발하고 공동행동을 조직해야 한다.
셋째, 좌파의 유물론적 정치학을 복원해야 한다. 유물론적 정치학은 자본주의의 내적 모순에 주목하며 그 모순에 의해 생성되는 변혁의 파토스와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려는 열정을 자본과 다른 사회의 질과 형식으로 주체화하는 정치이다. 대중의 양면성은 관념적으로 재단되거나 비판되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새롭게 창조되어야 할 형식 속에서 에토스적으로 조직되어야 할 대상이다. 대중의 양면성은 대중 그 자신의 본래적 속성이 아니며 자본주의라는 그들이 살고 있는 현실사회의 내적 모순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따라서 대중의 양면성은 끊임없는 혁명의 파토스를 만들어내는 현실적 기반이며 새로운 사회의 대중적 열망을 정치적 주체로서, 대중의 자기 통치 권력으로 조직할 수 있는 원천이다.
그러나 그런 대중의 열정은 결코 그 자체로 자본을 대체하는 사회적 권력이 될 수 없다. 대중들은 새로운 사회를 생산하는 형식 속에서 훈련되어야 한다. 그것은 대중만이 아니라 새로운 사회의 이념을 쫓는 좌파들도 마찬가지이다. 좌파가 대중과 다른 것이 있다면 그것은 새로운 사회의 권력적 형식, 새로운 주체화의 형식을 적극적으로 창안하면서 자본주의와 전혀 다른 질의 사회적 형식을 지금-여기서 만들어간다는 점이다. 그것은 자본의 내적 모순에 근거하지만 결코 그 내부적 형식을 따라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모순을 자본의 외부, 새로운 사회의 형식으로 바꾼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그것은 새로운 형식과 질을 가진 조직적 형식을 지닌다. 이것을 ‘당’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대중 위에 서는 권력이 아니라 대중의 권력을 창출하기 위한 권력적 체계와 위상을 가진 조직이 되어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그것은 권력 장악을 목적으로 의회정당 또는 스탈린적 정당 개념을 넘어서야 하며 비제도적인 정당이 되어야 한다. 비제도적 정당은 그 자체가 자본의 안에서 밖을 모색하고 밖을 생산한다는 점에서 모순적이다.
그러나 현실의 역사는 모순의 끊임없는 재생이며 그 재생의 과정 속에서 미래를 생산한다. 연꽃은 진흙탕 속에서 자신을 정화하여 꽃을 피운다. 진흙탕은 현실이다. 문제는 그것을 새로운 사회의 역동적 힘으로 바꾸어 놓는 것이다. 따라서 그것은 하나의 결단이다. 행위는 무오류로부터 나올 수 없다. 행위는 오류를 검증하려는, 그리하여 스스로 추락하며 다치는 행위를 통해서 생산된다. 좌파의 관념화된 정치학이 전화되어야 할 지점은 바로 여기다. 대중에 대한 공포가 계몽을 만들고 지도자를 만들고 대리주의적 권력과 관료주의를 만든다. 그러나 로자 룩셈부르크가 말했듯이 “진실로 혁명적 운동이 범한 오류는 현명한 중앙위원회가 절대적으로 오류를 저지르지 않는 것보다 훨씬 더 큰 성과를 가져오는 것”이다. 좌파는 이 역사적 짐을 스스로 떠맡는 자들이다. 대중은 결코 그 자체로 혁명적이지도 반혁명적이지도 않다. 그러나 대중은 모순적이며 이 모순이 그들로 하여금 진실로 혁명적이게 만든다. 문제는 그 혁명성을 새로운 집합적 권력의지로 변환시키는 것이다. 좌파는 이 모순을 떠안기 때문에 모순적이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또한 혁명적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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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힘 화요브리핑12호

[민생경제]

○ 추석이후 한국 경제…3大 악재 부각

○ 상반기 소비지출증가…‘물가부담’ 가구당 68만원 꼴

 

[금융위기와 한국경제]

○ 미국 리먼사 파산, AIG 흔들, 금융위기 파장과 전망

 

[공공부문 민영화, 시장화]

○ 3차 공기업 선진화방안에 담길 내용은 무엇일까

○가스업계 “천연가스시장 경쟁 도입땐 소비자 피해”

○ 대우조선 매각, 현황과 각 입장

○ 국회, “산업은행 민영화 재검토해야”

 

[제도정치]

○ 추경안 날치기 무산, 국회 또 다시 파행 가능성

○ 청와대 경호시연, ‘장애인은 대통령 위협세력?’

주민요구에 의정비 삭감한 강북구 의회

‘식객’보다 못한 ‘대통령과의 대화’

어청수는 막가파?

MB정부 지지율, 20%대 유지

‘건국절 법안’ 자진 철회

대체복무 찬성 의견 증가, 작년과 정반대

 

[한반도]

김정일 건강이상설, 북한 강력 부정

○ 북한 언론매체들, 9.9절 60돌을 맞아 ‘강성대국’ 강조

○ 북한의 대미결전 발언; 북한의 강온 양면전략이자 대김정일 충성 맹세문

○ 김정일 건강이상설에도, 북한 이상 기미는 없어보여

○ 김정일 건강설로 '핵이슈 실종'

○ '김정일 와병설' 계기로 '5029' 작전계획 격상 움직임

○ 북미 양자. 북핵협상 난관 속에서 해결 가능성 시사

○ ‘북한, 미국 대선 국면 활용하는 것 아니냐’는 전망 대두

○ 북한, 동창리 미사일기지 건설

○ WFP가 분석; 심각한 북한의 식량 사정

○ 평통 미주지역회의, '대북화해정책' 비판

○ 반미연대집회 "미국, 대북 테러지원국 해제 조치 나서라"

○ 120여 민족단체, '단군민족평화통일협의회' 창립

 

[국제]

○ 9.11 테러 7돌, 아프칸 수렁에 빠진 미국

○ 볼리비아, 반정부세력 시위와 폭동 속에서 미대사 추방

○ 볼리비아 시위사태 진정세..계엄 확대 없을 듯

○ 미국-볼리비아 간 대립, 남미 좌파국의 ‘반미전선’으로 발전

 

[교육]

○ 전교조 가입 교사수 공개 의무화

○ 공교육비 민간부담률 OECD 1위

○ 올 서울대 입학생 10명 중 2명은 ‘특목고’ 출신

 

[대학]

○ 학자금 연체자 1년반새 2배

○ 대학 비인기학과 ‘생존 투쟁’

○ 대학 자율화 2단계 추진

○ 이명박 대통령 "'반값 등록금' 말한 적 없다고? 선거 혼자 했나?"

 

[청년 실업]

○ 취업난에 20대 경제활동 참가율 사상 최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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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년7월 스테그

스태그플레이션과 신자유주의의 파산

[논설] 그럼에도 신자유주의인가?

김성구(편집위원장, 한신대)  / 2008년07월15일 9시39분


국제유가 및 원재료 가격의 급등과 물가상승 그리고 긴축과 금리 인상으로 새로운 경제침체의 우려가 전 세계적으로 확산하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이미 지난해부터 드러난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에 따른 주택시장의 폭락과 금융위기 속에서 실물경제의 침체가 예상되던 상황에서 전 세계적인 물가충격은 이제 경제침체를 현실화하고 스태그플레이션의 망령을 다시 떠올리기에 부족함이 없는 듯하다.

 

우리나라도 상황은 마찬가지여서 이를 배경으로 한국은행과 기획재정부 간의 정책논쟁이 벌어졌다. 긴축과 물가안정이냐, 수출과 성장이냐를 놓고 한국은행과 기획재정부 간의 논쟁은 시민단체 등 여론의 지지를 업은 한국은행의 승리로 일단락되었고,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은 정책 실패에 대한 혹독한 책임공방 속에서 장관 경질만큼은 피해 나갔다. 그러나 한국은행의 긴축과 물가안정은 전형적인 신자유주의 정책인바, 한국은행 식 신자유주의 물가정책이 스태그플레이션을 극복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 아닐 수 없다. 물론 기획재정부 식 신자유주의 성장정책도 스태그플레이션을 극복하지는 못한다.

 

스태그플레이션은 말 그대로 경기침체(스태그네이션)와 인플레이션의 합성어로서 경기침체와 인플레이션의 동반현상을 지칭한다. 주지하다시피 이 용어의 유행은 1970년대 중반 이래 케인스주의의 확장정책에도 불구하고 경기침체가 심화하였던 역사(1974/75년 공황과 1980/82년 공황), 즉 케인스주의의 파산을 배경으로 하였다. 케인스주의는 확장정책(개입주의)을 통해 인플레이션을 감수하더라도 완전고용을 달성할 수 있다는 이론에 입각해 있었고, 이 정책 처방은 2차대전 후 1970년대 초까지 나름대로 작동하였으나, 1970년대 이래 구조위기의 표출 속에서 파산하였다.

 

스태그플레이션이라는 현상 이전에 케인스주의에 따르면 물가와 실업은 역상관관계(상충적)이어서 물가를 안정시키려면 실업의 증대가 불가피하고, 반대로 실업을 감소시키려면 물가 등귀가 불가피하다. 물가 안정과 실업 감소(완전고용) 두 가지 목표를 동시에 달성할 수는 없지만, 한 가지 목표의 희생 하에 다른 한 가지 목표는 달성 가능했다. 케인스주의는 물가 등귀를 감수하더라도 실업 감소를 추구하였다. 그런데 1970년대 스태그플레이션으로 인해 이제 두 가지 목표가 모두 달성할 수 없게 되었고, 결국 케인스주의는 파산하였다.

 

신자유주의자들은 긴축과 물가안정 그리고 규제철폐를 통해 스태그플레이션을 극복할 수 있다고 선전하였다. 물가안정과 완전고용 두 가지 목표를 모두 달성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통화주의나 새고전파 같은 신자유주의에 따르면, 국가개입과 확장정책으로는 실업을 줄일 수 없고 인플레이션만 심화시킬 뿐이다. 따라서 스태그플레이션은 케인스주의가 가져온 불가피한 결과가 된다. 확장정책과 개입주의가 아니라 긴축과, 규제철폐를 통한 시장규율의 강화만이 물가안정과 완전고용을 가져온다는 것이다.

 

거의 30년에 이르는 신자유주의 정책의 결과를 보면, 이들의 이론과 정책은 케인스주의 못지않게 실패하였음을 알 수 있다. 신자유주의 긴축정책의 결과 선진자본주의 경제는 1980년대 이래 1970년대 중반과 1980년대 초반의 스태그플레이션의 상황으로부터 실로 두자릿수의 물가상승률을 진정시켰지만, 그 대가는 케인스주의 시대를 훨씬 능가하는 성장둔화와 대량실업의 구조화였다. 좋게 말해도 신자유주의는 물가 안정과 완전고용이라는 두 가지 상충적인 목표를 케인스주의와 상반된 방식으로 해결했을 뿐이었다. 즉 물가 등귀와 완전고용(케인스주의) 대신 물가안정과 대량실업을 가져왔을 뿐이었다. 그것은 필연적인 결과였는데, 신자유주의 기획이란 원래부터 긴축을 통해 성장둔화와 대량실업을 유도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시장규율을 강화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런데도 신자유주의 이론에 따르면, 이들은 물가안정과 완전고용을 주장하는데, 그것은 현실에 존재하는 대량실업을 케인스주의처럼 비자발적 실업(유효수요 부족으로 일하고자 하지만 일자리가 없는 상태)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단지 구인 및 구직과정에서의 정보 제한으로 발생한 일시적 실업으로 보기 때문이다. 조만간 일자리를 찾을 일시적 실업자이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실업(비자발적 실업)이 아니며, 따라서 완전고용을 주장해도 무방한 것이다. 구조화되고 있는 현실의 대량실업에도 불구하고 신자유주의자들이 완전고용을 주장하는 것은 이런 이론적 논거 때문이다.

 

정상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이라면 황당하게 들릴 궤변 같은 이런 주장을 신자유주의자들도 사실 대중들에게 터놓고 말하지 못한다. 시장에서 일자리를 뒤지다 보면 취업하게 되니까 당신들의 실업은 별로 문제가 아니라고 저널리즘의 어디에서 감히 그렇게 말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이들이 강단에서 아카데미즘의 이름으로 그렇게 학생들에게 강의하고 있다는 것을 어떤 대중이 알고 있을까?

 

현재의 경기 사이클은 2001년 미국 공황으로부터 시작된 것으로서 정확하게 언제 새로운 공황으로 종료할 것인가는 아직도 예측하기 어렵다. 그러나 대량실업이 구조화되어 있는 상황 속에서 새로운 물가 충격이 실로 새로운 공황으로 귀결된다면, 스태그플레이션의 재발은 누구도 부정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신자유주의의 파산을 의미한다는 것도 명명백백할 것이다. 1970년대 스태그플레이션이 케인스주의의 파산을 가져왔다면, 2000년대 말의 새로운 스태그플레이션은 분명 신자유주의의 파산을 가져올 것이다. 그럼에도 중앙은행의 긴축정책으로 이에 대처한다는 것은 썩은 무기 자루를 드는 것과 마찬가지다. 아니 그것보다 더 나쁜 것이어서 경제침체와 실업을 더욱 심화시킬 것이다.

 

자본주의 역사에서 스태그플레이션은 분명 2차대전 종료 이후 현대자본주의의 현상이고, 이는 자본주의가 국가독점자본주의 단계로 발전한 것과 관련되어 있다. 독점가격의 지배와 국가개입에 따른 경기순환의 변형, 특히 공황 시에 감가와 자본파괴를 막기 위한 자금 지원과 유동성 투입으로 인플레이션은 만성화되었고, 그럼에도 주기적인 공황과, 이윤율의 장기적 저하에 따른 침체경향이라는 자본주의의 고유한 축적의 모순은 심화되었는 바, 이런 주기적 위기와 구조적 위기의 결합 위에서 스태그플레이션이 발생했던 것이다. 이는 신자유주의 하에서도 예외가 아니어서 긴축을 주장하는 신자유주의 정부들조차 지난 공황 때마다 막대한 유동성을 투입하지 않을 수 없었다.

 

부르주아 경제학과 저널리즘이 스태그플레이션을 과학적으로 설명하지 못하는 것은 두말할 것도 없지만, 이런 현상조차도 부정확하게만 표현할 뿐이다. 저널리즘에서 스태그플레이션이란 두자릿수 정도의 과도한 물가상승과 낮은 성장률의 동반 현상으로 이해되는 데, 과학적으로 정의한다면, 스태그플레이션은 (공황 시에도) 지속적인 물가상승과 (공황 시의) 마이너스 성장률이 결합한 현상을 말한다. 따라서 이런 정의에 따르면, 스태그플레이션은 오늘날의 새로운 현상이 아니라 공황 때마다 나타난 전후 자본주의의 일반적 현상이며, 다만 1970년대 이래 구조위기 속에서 그 현상이 보다 극적인 형태로 전개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스태그플레이션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신자유주의를 폐기해야 하고, 또 그렇다고 케인스주의로 돌아가서도 안 되며, 근본적으로 국가독점자본주의를 넘어가지 않으면 안 된다. 국가독점자본주의 안에서 스태그플레이션을 극복하는 길은 존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스태그플레이션이란 국가독점자본주의의 모순들의 고유한 표현이기 때문이다. 국가독점자본주의 안에서 그래도 스태그플레이션을 완화하고자 한다면, 무엇보다 다음 두 가지 정책이 필수불가결하다. 첫째, 다가오는 새로운 공황 앞에서 확장정책으로의 전환은 불가피하게 필요하다. 둘째, 독점자본의 이윤과 가격을 강력하게 통제하고, 재정을 비롯한 국가독점에 대한 대중 통제를 강화하며, 사유화를 저지하고 국유화와 공공투자 등 사회화 프로그램을 적극 동원해야 한다.

 

스태그플레이션을 완화시킬 이런 정책조차도 국가독점자본주의 내에서 독점과 국가독점에 대항한 강력한 투쟁을 전제하는 것이다. 이런 투쟁 속에서 국가독점자본주의와 스태그플레이션을 근본적으로 극복하는 역사적 길이 열릴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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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정세 (노힘)

2008년 정세전망(초)

 

2008.01.19

노동자의힘

 

 

1. 국제정세

 

1) 국제경제

 

세계경제의 불안정성이 심화되고 있으며, 이는 이른바 금융세계화를 주도해왔던 미국경제의 침체와 불안정성이 주된 원인이 되고 있다. 현재 미국경제는 심각한 불균형에 시달리고 있으며, 기축통화인 달러의 헤게모니 또한 위협받고 있는 실정이다. 2008년 경제전망과 관련하여 미국의 지배계급 스스로 경기침체로 인한 성장둔화를 예견하고 있고, 경제성장률이 1-2%에 머물것이라 밝히고 있으나, 실제로는 제로성장을 할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또 미국 등이 주도하고 있는 국제통화기금(IMF)도 미국경제의 침체가 ‘국제적인 금융시장의 경색’으로 이어질 것을 경고하고 있다.

 

금융불안정성은 이른바 서브프라임모기지(비우량주택담보대출) 사태로 불거져 나오고 있다. 신용등급이 낮은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고금리로 주택자금을 대출해주는 이 제도는 그 채권 대부분을 전 세계 금융회사와 연기금등이 보유하고 있어, 단지 미국내의 사태가 아니라 전세계적인 문제로 확장되고 있다. 이미 2007년에 미국은 물론 유럽, 일본의 금융회사들이 이미 상당액을 손실처리해야 했으며, 이후 대출상환이 부실해질 경우 사태는 2008년, 2009년까지 확산될 조짐이다. 또한 서브프라임 모기지 차입자 중 산당수가 이른바 오토론(자동차할부대출) 연체자와 겹쳐있어 모기지시장과 오토론시장이 연계된 신용위기상황도 예견되고 있다.

 

미국경제의 침체와 금융시장의 경색은 미국달러화의 약세로 이어지며, 이로 인해 미국의 주식시장, 채권시장에서 빠져나온 자본들이 다시 원유 및 원자재 투기시장으로 몰려가면서 이들 원자재가격의 상승이라는 악순환을 야기시키고 있다. 한편 이른바 국부펀드가 대두하면서 미국의 경제헤게모니에 대한 자본블럭간의 경쟁이 및 대립도 더욱 격화될 조짐이다. 이미 서브프라임모기사태에 중동의 국부펀드가 개입한 사례에서처럼, 또 중국 등 신흥국가들의 국부펀드 조성 움직임이 보여주듯 국부펀드를 이용한 통신, 에너지, 금융산업에 대한 자본 블럭간의 경쟁은 심화되고 있다.

 

한편 이른바 세계의공장이라 불리우는 중국경제의 경우 경기과열과 물가앙등으로 고전하고 있다. 중국은 은행의 지급준비율을 인상하고, 지난 10년간 유지해온 안정위주의 통화정책을 긴축정책으로 전화하고 있다. 이는 과열성장과 통화팽창에 따른 물가폭등 때문이다. 실제로 물가는 최근 6%를 넘어 중국 내 경기뿐이 아니라 세계적인 인플레이션을 야기시킬것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중국경제는 올림픽이 예정되어 있는 8월까지는 증시활황과 고성장이 유지될 것으로 보이나, 이후에는 고물가를 통제하지 못할 경우 경제성장에 제동이 걸릴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또한 미국의 위안화 절상요구가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는점도 향후 중국경제의 향배에 주요한 요인으로 작동할 것으로 보인다.

 

세계경제의 불안정성은 금융시장외에도 유가앙등과 곡물가격 폭등으로 이어지면서 세계적인 스태그플레이션으로 확대될 조짐마져 보인다. 경기가 침체함에도 물가가 상승되는 이 현상은 전세계적으로 확인되고 있다. 곡물가격의 경우 생산량은 지속적으로 줄어드는 것에 비해 소비가 증가하고 있으며, 여기에 바이오에탄올 원료용 옥수수가격의 상승 등으로 향후 10년간 농산물가격이 높게 형성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또한 미국, 유럽, 등에서는 경제성장률은 낮은 반면 소비자 물가지수가 4%이상 상승하고 있다. 여기에 중국과 신흥국가들의 성장은 전세계적으로 에너지와 식료품가격의 상승의 요인이 되고 있다.

 

2) 국제정치

 

세계경제의 불안정성의 심화는 경제적 수준은 물론 정치적인 수준에서도 미국헤게모니의 약화를 가져오고 있으며, 동시에 미국헤게모니에 도전하는 여타 유럽, 중국, 러시아 등 제국주의 국가 혹은 자본블럭간의 대립과 갈등을 심화시키고 있다.

 

유럽연합(EU)의 경우 유로화의 도입으로 상징되는 경제통합을 정치통합으로 확장하여 미국의 헤게모니와 인접한 러시아 그리고 중국등 신흥강국의 도전에 대응한다는 전략을 추진해 왔다. 그 방안이 이른바 2002년 2월 맺어진 ‘니스조약’의 개정이다. 즉, 비준절차상 국민투표를 거쳐야 하는 헌법안이 2005년 프랑스와 네델란드의 반대로 표류하자 2007년 부뤼셀에서의 정상회담을 계기로 각국 의회의 비준만으로 개정이 가능한 조약을 변경하고자 하고 있다. 만일 2009년 개정조약이 발효되면 회원국소관이었던 외국인직접투자 분야가 이관되어 유럽연합이 대외협상권을 발휘하는 등 경제와 정치가 통합되는 체제로 변화되며, 이로써 미국의 헤게모니에 도전하는 유력한 세력이 될 것이다.

 

중국의 경우, 세계경제의 중심축이 미국에서 중국으로 이동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올 정도로 급속한 경제성장을 이루고 있다. 특히 2007년 중국공산당 17차 전국대표대회를 통하여 경제성장과 부국강병을 통한 위대한 중화민족의 부흥을 선언하고, 과학적발전관과 샤오캉사회론(중산층사회 즉 의식주가 해결된 중등생활이상의 복지사회)을 제시하였다. 이러한 변화는 중국사회안에서 계급갈등을 형성하고 있다. 중국 공안부의 통계에 따르면, 2005년에도 공식적으로 추산된 집단시위는 8만7000건에 달했으며, 이는 대부분 국영기업 개조작업과 부동산 재개발에 따라 거리로 나앉게 된 노동자·농민·도시빈민이 일으킨 시위였다. 한편 중국해양석유총공사가 미 석유회사 인수를 시도하는가 하면, 군사분야에서 군비지출을 증대하는 등 전세계적인 군비경쟁체제에 뛰어들고 있다. 군비의 규모는 중국정부의 공식자료로도 일본의 방위비에 근접하며, 실제로는 미국에 이어 2위에 해당한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대외정책과 관련하여 2008년 베이징올림픽을 앞두고 있기에 안정화를 기본기조로 하여, 미국, 일본과의 화해협력 정책을 펼치면서도, 대만의 독립움직임에 대해 제동을 걸고 있다.

 

러시아의 경우, 3월 대선을 앞두고 있으나, 푸틴의 영향력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헌법상 연속 3번 연임이 불가능한 조건에서 푸틴은 ‘단합러시아당’의 후보로 메드베데프를 추천하고 당선되면 자신이 총리역을 수행할 것이라고 발표하였고, 이는 현실화 될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는 지난 8년간 연평균 7%의 경제성장과, 세계3대 외환보유고가 보여주듯이 새로운 강국으로 등장하고 있다. 이는 무엇보다 풍부한 에너지자원(천연가스, 석유 목재등)의 덕이라 할 수 있다. 국제정치에 있어서도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이며, 핵무장 국가로 미국을 위시로 한 NATO와도 종종 안보정책에서 대립하고 있다. 러시아의 아시아 정책은 경제적인 것에 치중하고 있으며, 특히 동시베리아-태평양송유관 건설은 에너지수출국으로 자신의 위상을 높이게 될 것이다. 또 극동지방개발과 관련 도로 등 인프라건설과 가스개발에 주력하고 있으며, APEC를 통해 한국 중국 일본 미국 등의 자본유치도 계획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11월 대선이 예정되어 있으며, 부시의 일방적인 외교정책 특히 이라크전쟁의 후유증, 경기침체 등으로 특별한 이변이 없는 한 민주당의 승리로 귀결될 것으로 보인다.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관련 부시정부는 이자율을 5년간 동결하는 등의 대책을 발표하고, 금리인하등의 조처를 취하고 있으나, 실효성을 거두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대외정책과 관련 이라크와 아프카니스탄에서 자국에 우호적인 정부를 만들지 못할 경우, 아프리카 공략의 거점확보, 카스피해의 에너지자원확보라는 목표를 달성하지 못할 것이기에 총력전을 전개하려 할 것이다. 최근 제출한 해외주군둔 재편안의 주내용은 20011년까지 유럽의 병력을 이동 이들 지역에 7만4천명의 병력 증원하는 것이다. 한편 이란이 핵활동이 미국의 우려에 크게 못미친다는 사실이 밝혀진 상태에서, 이란이 중국 혹은 러시와 협력을 강화할 경우 중동에서의 미국의 입지는 더욱 협소화될 것이다.

 

남미의 경우 이른바 좌파정권의 등장이후 기존 기득권세력의 반발로 정치 사회적 변화에 일정한 제동 혹은 교착상태를 보이고 있으며, 이는 반제 반세계화투쟁에도 일정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볼리비아의 경우 천연자원에 대한 국가의 통제를 높이고, 토지 개혁을 추진하는 등 그 동안 소외되어 왔던 선주민과 빈민들을 위한 적극적인 정책을 추진해왔다. 그리고 최근에는 가스 세금을 활용해 60세 이상의 볼리비아인들을 위한 연금 재원으로 쓰겠다는 정책을 발표해 야당과 부유층이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한편 베네수엘라의 경우 2007년 12월 2일에 진행된 개헌 국민투표가 찬성 49.3%, 반대 50.7%의 근소한 차이로 부결되었다. 차베스 대통령은 “민중들이 선택한 결정”을 수용하겠다고 밝혔으며, 다시 개헌을 추진하지 않는 한 차베스 대통령은 2013년 대통령직에 다시 도전할 수 없게 되었다. 차베스를 대신할 인물이 부재한 현재상황에서 이번 개헌의 패배는 베네수엘라의 볼리바르주의 운동에게 심각한 도전이 되고 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하게 빈곤한 노동자, 노동조합 활동가, 공무원들은 물가인상을 따라잡을 수 있는 임금 인상과 물가 인상 및 상품 부족을 해소하라고 요구하고 있는 상황에서 정치적 헤게모니를 강화하기 위해서는 반 차베스파의 경제 사보타지를 막아내고, 차베스의 혁명이 아닌 베네주엘라 민중의 혁명이 지속되어야 함을 보여주고 있다.

 

 

2. 한반도 동북아 정세

 

한반도 정세의 경우 이른바 ‘북핵위기’가 일정하게 해소될 가능성을 가지며, 경제적 이해관계를 중심으로 상호관계가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 북핵문제의 경우 2007년 10.3 합의를 통해 북한이 핵시설에 대한 불능화 합의를 도출하였으며, 비록 핵프로그램의 신고대상의 범위를 둘러싼 북미간 대립이 존재하지만, 미국과 북한의 정권의 각각의 이해관계로 2008년내에 일정한 성과를 도출하려 노력할 것이다. 미국은 북한의 핵시설 불능화 신고에 상응하는 조치로 테러지원국 명단, 적성국교역법의 해제를 제출하였고, 이는 향후 평화협정체결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러한 변화에는 북한정권의 내외적 조건이 작동하고 있다. 2008년 북한정권 수립 60주년이 되는 해이며, 5년마다 실시되는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선거도 예정되어 있다. 북한정권은 2007년 11월 2012년 강성대국의 대문을 열자고 주장하면서, 경제건설에 국가역량을 집중할 것을 시사하였다. 즉, 대내외정책에서 실용주의적경향이 강해질 것이며, 특히 이명박정권의 등장에 대해 신년사에서 어떤 언급도 하지 않고, 남북경협과 경제재건에 중점을 둘 것을 밝혔다. 2012년은 만 70세가 되는 김정일의 후계자 구도 문제와도 연동되어 있다. 즉, 북한 정권은 북미관계개선과 남북경협강화를 동시에 추구하면서 안정적인 정권재창출의 기반을 확보하는데 주안점을 두려할 것이다.

 

한편, 이명박정권의 대 북한정책은 기본적으로 한미동맹의 강화에 근거하면서 자본의 필요에 따른 실용주의적 노선으로 가닥을 잡을 것이다. 북핵문제는 미국과의 긴밀한 공조 아래 6자회담의 틀에서 해결을 추구하고, 노무현정권이 합의한 주한미군의 전략적유연성 등 미국의 요구에 적극적 동참할 것이다. 이미 인수위는 5000명의 평화유지군 상시 운영,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에 대한 참여 확대, 해상수송로 보호를 위한 해상 합동군사훈련 참가를 추진한다고 밝혔으며, “한미동맹의 복원 강화”를 제일의 대외정책으로 제시하였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북한이 핵을 포기하는 결단을 내리면 400억달러 규모의 국제협력기금을 조성하여, 북한에 300만달러 이상 수출기업 100개 육성, 북한 주요 도시 10곳에 기술교육센터 설립 및 산업인력 30만명 양성, 서울~신의주 간 고속도로 건설 등을 일궈내겠다는 계획을 제출하는 등 남북경협에 대한 의지를 함께 보이고 있다.

 

동북아 정세의 경우, 한반도와 마찬가지로 자본블럭간의 이해관계가 때론 정치군사적 긴장으로 때론 경제협력의 확대라는 이중적 양상을 띠고 복잡하게 얽혀 나타나고 있다. 러시아의 경우 직접적으로는 미국의 동유럽 MD(미사일방어시스템)를 겨냥한 것이기는 하나 대륙간 탄도미사일을 개발하였고, 중국과 상하이협력기구를 구성 합동훈련을 실시하였다. 이에 미국 일본 호주 또한 합동훈련을 실시하는가 하면, 미국은 대서양에서 태평양으로 군사력을 재배치하고 있다. 특히 일본은 2007년 12월 MD개발을 성공하였으며, 이는 북한이 보유한 중거리 탄도미사일을 상정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는 동북아지역의 군사비가 증가하고, 특히 강대국 러시아 중국 일본이 군사비 5백억달러 그룹으로 조만간 진입하는 촉매제가 되고 있음을 의미하며, 한국도 250억달러에 이르는 군비를 지출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동북아지역의 군비경쟁의 이면에는 또한 자본블럭간의 경쟁이 놓여져 있고, 이는 역으로 국가간 경제협력의 형태로도 현상된다. 일예로 중국은 일본 기술의 획득 등을 목표로 중-일 경제협력을 적극 추진하고 있으며, 일본 후쿠다 수상 방중이후 후진타오 주석이 일본을 답방하며, 양국간 과학기술이전, 일본산업단지 건설, 동중국해 천연가스 공동개발 등을 추진하고 있다. 한편 러시아와 한국은 동시베리아 극동지역 개발투자의 형태로 시베리아횡단철도(TSR)과 한반도종단철도(TKR)연결사업, 에너지개발, 남-북-러 3각 경협 등을 추진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서는 어떤 식으로든 북핵문제해결이 관건적이다. 이렇듯 동북아정세는 한미일 군사동맹의 강화라는 정치적 긴장을 한축으로 하면서도 자본국가간의 경제적 이해관계가 상호 맞물리면서 다차원적인 경쟁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3. 국내정세

 

1) 한국경제

 

한국경제 관련 가장 낙관적인 전망을 내놓고 있는 재벌연구소의 경우에도 4%대의 성장률을 예견하면서, 미국 서브프라임부실과 고유가 중국발 인플레이션 등으로 타격이 불가피하다는 전망을 내놓고 있는 실정이다. 정부관계자들도 서브프라임모기지 금리가 08년 1월부터 다시 치솟기 때문에, 국내 금융시장에 미칠 충격을 우려하고 있다. 실제로 국제금융시장의 금리는 9년래 최고치를 경신했으며, 이에 따라 국내 금융시장에서도 국채를 비롯한 채권금리 상승이 예상되어 외화차입이 많은 기업들에게 부담이 증가될 전망이다. 여기에 국내증시에서의 외국인 투자자금의 이탈이 가속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형국이다.

 

한국경제는 현재 여러 요인들이 충첩되어 적신호를 보이고 있다. 우선 주택대출 금리가 급격히 인상되었다. 주택담보대출 변동금리가 8%대로 치솟는가 하면, 고정금리도 9%를 넘어섰다. 이는 채권시장의 금리가 급등하기 때문이며, 이로 인해 대출자들의 부담이 확대되고 있다. 또한 물가가 상승하고 소비가 움츠러들고 있다. 물가의 경우 3%이상 상승률을 보일것으로 예측되며, 이는 유가와 곡물가가 동시에 오르고 원자재부담까지 가증되는 형국이기 쉽게 잡힐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한편 외국투자자들 또한 향후 5-6년내에 한국경제가 어려운 상황에 처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나섰는데, 그 요인으로 석유 등 원자재가격상승과 중국등의 추격 등 주로 외적 여건을 들고 있다. 실제로 미국 등 경제성장의 둔화는 달러화의 역세와 원화 상승으로 수출 증가율을 낮출 것이다.

 

중국경제 또한 한국경제에 불안요인으로 작동할 가능성이 높다. 중국정부의 긴축조치와 가공무역정책의 변화, 그리고 물권법의 실시와 노동법강화, 친환경정책 등은 제조업 자본들에게 부정적인 요인으로 작동하고 있다. 더욱 문제는 그동안 저가의 중국제품으로 유지되어온 한국의 서민경제가 중국의 인플레로 압박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중국 증시의 하락이 본격화 될 경우 그동안 해외펀드의 30%에 해당하며 1조원 이상의 수익을 얻던 이른바 ‘차이나펀드의 특수’ 또한 사라지게 된다. 특히 전체 수입 중 대중국 비율이 18%에 달하는 한국의 경우 중국경제의 영향력으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2) 이명박정권과 한국사회

 

이명박정권은 노무현정부가 추진해온 신자유주의정책 즉 한미동맹강화, 제국주의전쟁참여, 한미FTA, 비정규직법, 자본시장통합법 등 일련의 친자본주의 정책을 유지 계승하면서도 보다 노골적으로 이를 확대 강화할 것이다. 이점에서 이른바 ‘참여정부’와 이명박정부의 계급적 본질은 차이가 없다. 그럼에도 이전 정부와는 지배방식에서 일정한 차별점을 가질 것으로 보인다. 일예로 노무현정권으로 표상되는 신자유주의 개혁세력이 이해당사간의 타협을 강조한 것에 비해, 이명박정권은 ‘법과 질서’를 강조하며, 저항세력에게 보다 ‘법치주의’ 즉 억압적인 방식으로 대할 것이며, 반면 자산계급의 이해를 노골적으로 대변하는 정책으로 일관하려 할 것이다. 실제로 국정운영의 4대 원칙의 내용은 자율과 경쟁, 배려와 관용, 법의 지배, 감세와 절약 등인데, 이는 자율이라는 미명하게 기업의 규제를 최소화하고, 기업에 대한 배려를 최대화하며, 반발하는 노동자민중에게 엄격한 법의 심판을 가하고, 자산계급에겐 감세를 무산계급에겐 허리띠를 졸라맬 것을 강요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이명박의 경제정책은 자본의 무한질주를 위한 모든 사회영역에 대한 시장화공세라 할 수 있으며 그 핵심에서는 금융지배체제의 강화와 공공부문의 파괴가 놓여져 있다.

 

이명박정권은 노무현정권의 자본시장통합법을 기반으로 자본간 상호출자를 허용하여 독점자본을 강화시키려 하며, 금산분리법을 완화 혹은 폐지하여 산업자본과 은행자본의 결합을 가속화시켜 거대 금융자본의 사회지배를 확대하려 하고 있다. 이들은 산업은행 민영화는 물론 우체국의 민영화까지 들고 나오면서, 은행, 보험, 증권회사 등의 통합을 재촉하고 있으며, 연금개혁이라는 미명하게 연금마져 금융시장에 투입하여 거대금융투기자본의 형성을 부채질하고 있다. 이를 통해 이미 초국적자본으로 성장한 재벌들의 거대금융투기자본으로 전화와 이를 통한 해외투기자본과 결탁 혹은 경쟁을 통해 자본에게 새로운 시장과 투자처를 향한 활로를 열겠다는 의미이다. 이는 한국사회전체를 걸고 판돈을 만들어 세계적 투기시장에 뛰어들겠다는 그야말로 ‘신자유주의기업국가’의 ‘CEO’로 자처하고 나선것이라 할 수 있다.

 

이명박정권의 공공부분에 대한 시장화공세는 곧 최소한의 사회공공성이란 틀마져 파괴하는 것으로 현상화될 것이다. 정부의 기능축소 혹은 부처간 통폐합의 본질은 국가의 공적인 책무를 방기하고, 철저히 모든 분야를 시장화하여 자본에게 맡기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일예로 그나마 존재하던 부동산투기에 대한 최소수준의 규제마져 포기하고 부동산투기천국으로 만들겠다는 것이며, 중고등학교 조차도 평준화를 해체하여 무한경쟁에 내몰며 사교육시장에 뛰어든 교육자본의 이해를 충족시켜주겠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MBC 민영화 발언에서처럼 공영방송을 축소하고, 신문과 방송의 겸업을 통해서 거대자본의 언론장악을 허용하여 언론의 공공성을 파괴하고자 하고 있다.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의료, 에너지는 물론 마시는 물마져도 시장화하여 자본의 무한이윤창출을 위한 사회를 만들고자 하고 있다.

 

경제살리기를 내걸고 당선된 이명박정권은 성장주의를 골자로 경제성장률 7%, 300만개의 일자리 창출, 국민소득 4만달러와 세계 7대 경제대국으로의 진입을 말하고 있으나, 그 가능성은 매우 불투명하다. 현재는 이미 2001년부터 시작된 경기순환을 마감한 시점 즉 세계경제의 공황의 경고가 공공연히 제기되는 상황이며, 한국만이 이를 피해갈 수 없다. 또 기업에 대한 규제완화가 곧 국민경제의 질적 상승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실상은 기업운영의 최적의 조건마련을 위해 노동자민중에 대한 더 많은 희생을 강요하는 것으로 나타나게 될 것이다.

 

이는 이명박정권이 야심차게 추진하고 있는 ‘한반도대운하’사업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압축적 성장’을 내건 이명박정권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처방으로 화폐의 유통속도를 빠르게 순환시켜 단기적 경제지표를 높이는 방안으로 운하건설과 같은 대규모토건사업을 추진하려 할 것이나, 이는 재앙으로 귀결될 위험이 높다. 3면이 육지이고 국토의 70% 산지인 국가에서 운하의 경제적 실효성도 문제이지만, 이 과정에서 파괴되는 생태와 환경은 세대를 뛰어넘는 상흔을 만들 것이다. 결국 이득을 보는 것은 거대토건사업에 뛰어들 자본뿐이며, 노동자 민중들은 새만금과 서해안 원유사건이 그러하듯 그 피해를 대물림해야 하는 상황에 처할 것이다.

 

한편 2008년 4월로 예정된 총선의 경우 한나라당의 우세가 예견된다. 이는 집권초기 정부의 국정운영의 안정성을 뒷받침해야 한다는 대세론과, 이미 대선에서 나타난 득표율이 연속성을 가지고 작동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총선을 둘러싼 부르조아 정치세력간의 합종연횡도 여느때와 다르지 않을 것이며, 한나라당의 경우 공천과정에서 박근혜세력의 이탈여부, 정몽준 등 차기 당권을 노리는 세력들간의 전초전이 될 것이다. 여기에 이회창 진영이 일정하게 총선에서 성과를 거둘 경우 두개의 보수정당과 대선패배이후 혼란을 겪고 있는 통합신당, 민주노동당 등의 약세로 이변이 없는 한 여대 야소의 구도로 정리될 가능성이 크다.

 

3) 노동자 민중의 조건

 

이명박정권은 탄생은 비정규직노동자는 물론 공공, 금융부문 그리고 공무원노동자들에게도 직접적인 위협을 가져올 것이다.

 

이미 ‘친 기업’과 ‘규제완화’ 등을 중심으로 하는 공공부문 민영화와 이에 따른 대규모의 구조조정이 예상되고 있다. 공공부문에 대한 구조조정은 이미 이전 자유주의 개혁세력들의 집권시기에도 지속적으로 진행되어 온 것이기는 하나, 이명박정권은 ‘기업하기 좋은 환경’ 조성 및 세출예산 축소 정책으로 인한 구조조정, 한미FTA 비준 임박으로 인한 공공서비스 기반 축소, 경기불안 및 경제위기 이데올로기로 인한 공공부문 구조개혁 공세, 필수공익사업장의 필수유지업무 도입 등을 무기로 더욱 거세게 몰아부칠 것이다.

 

또 정부조직 개편, 공무원에 대한 경영혁신(성과급 확산, 연금제도 개혁 추진)을 필두로 이미 법제도가 준비된 영역(발전, 가스, 지역난방, 인천공항 등)에서부터 자회사 매각 또는 경쟁 운영체계, 주식 상장 등을 시도함과 동시에, 민영화(자산 매각) 효과가 큰 국책은행(산업은행의 투자부문, 기업은행)의 단계적 민영화, 시중은행(우리은행)과 기 민영화 단계에 있는 공기업(문화방송 등) 등의 추가 구조조정이 이어질 것이며, 이는 해당 노동자들에 대한 고용불안으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 또 공무원에 대한 임금동결은 임금 억제 가이드라인이 되고, 최저입찰제 도입은 이들 납품업체 노동자들의 임금삭감의 요인이 될 것이다.

 

비정규직에 대한 공격도 더욱 확대될 것이다. 비정규직의 규모는 증가일로(2007년 8월 861만명)에 있으며, 자본은 기간제보호법을 회피하기 위하여 무기계약으로 전환, 계약해지 및 파견 용역 등 간접고용을 확대하고 있다. 한편 이명박정권의 일자리 창출은 근본적으로 비정규직의 확대에 근간할 것인데, 이는 이들이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말하지만 ‘불합리한 차별 및 시정절차의 합리적 개선'이란 표현에서처럼 그 규정을 모호하게 만들고 실제로는 학력, 경력, 성별, 직무별 난이도에 의한 차별을 합리화하여 비정규직을 확대하게 될 것이다. 여기에 2008년 7월부터 100인 이상 300인 이하 사업장에도 비정규법이 적용될 예정인데 2007년의 경우처럼 이를 회피하기 위한 외주용역 전환 등으로 비정규노동자들의 고용불안은 더욱 확장 심화될 것이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은 노동자들의 필연적으로 야기시킬 것이고, 이에 대한 이명박정권의 대노동정책은 ‘법치화를 통한 노사관계의 안정화’이다. 이명박정권은 불법시위로 사회적비용과 손실이 크기에 이를 근절하겠다며 사실상 파업과 집회를 무력화시키고자 하고 있다. 시위가 빈번한 지역에 상설시위지구를 설치 한정된 공간에서만 집회를 허가하고, 엄격한 법집행과 공권력 투입을 통해 집회 시위 및 표현의 자유를 심각하게 제한하려 할 것이다. 동시에 노 사/민/정 대타협을 제기하고 있는데, 이는 기존의 노/사/정위원회를 지역단위로 전화시켜서 전국적 의제 형성을 막아내고, 지역 민간인들의 참여와 무쟁의에 대한 지역교부금 등의 인센티브 제공계획에서처럼, 지역적 수준에서부터 노동조합을 압박하고, 사안을 지역사안으로 분산 고립시켜 무력화시키려는 방안을 제출하고 있다.

 

이렇게 이명박정권의 대 노동공세가 매우 파상적임에도 노동자 민중운동의 상태와 조건은 상대적으로 취약하다.

 

대선시기 한국노총의 정책연대, 뉴라이트 노조운동의 등장에서처럼 노동조합운동의 체제내화는 심각한 수준에 다다르고 있으며, 이로부터 민주노조운동 또한 자유롭지 못하다. 이미 대선시기에 자유주의개혁세력에 대한 지지는 물론 이명박에 대한 지지를 민주노조 전직간부들이 하는 작태가 벌어졌으며, 대공장, 남성, 정규직 노동자 중심성을 극복하지 못한 채 개별자본의 지불능력에 의존하며, 서구유럽이 그러했듯 비정규직과 실업노동자를 포괄하지 못한 채, 산별노조체제는 계급타협체제의 도구가 될 위험에 처해 있다. 민주노총은 이명박정권의 노동정책에 ‘죽기살기로 싸우겠다’고 말했지만, 노동자들이 분신자결을 하는 상황에서도 산별대장정을 강행하는 것에서처럼, 또 투쟁이 국회 앞 투쟁으로 정형화, 박제화 되면서 지역, 현장, 부문의 투쟁이 당사자들만의 절박한 투쟁으로 고립되어버린 현재의 지형속에서 발본적인 전환과 전복이 없는 한 또 하나의 수사로 그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어려움은 농민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물론 농민들이 ‘벼랑 끝에 몰렸다’는 위기의식으로 정부에 대한 불신을 극단적 시위로 표출할 가능성도 존재한다. 특히 한미FTA 국회비준 저지를 위한 ‘농민총궐기대회’가 전국적으로 확산되면서 갈등이 심화될 것이다. 한편 한칠레 FTA 국회비준 때처럼 농촌지역 국회들은 여야를 막론하고 소극적 태도를 견지할 것으로 예상되나, 현재의 국회지형에서 한미FTA비준은 강행될 것이다. 문제는 농민에 대한 분할 포섭이 더욱 강화 확대될 것이라는 것이다. 이명박정권은 노무현정권이 그러했듯이 농업의 시장경쟁력을 강화시키는 방향에서 농업인력의 양성, 유망기술 및 품목에 기반 구축에 주력하게 될 것이며, 생산, 가공, 유통의 전 부문에 걸쳐 산·관·학협력체계를 강화하여 농민에 대한 분할을 가속화 시킬 것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도태되는 농민들을 관리하는 시스템을 도입하고 있다. 농가등록제가 그것인데 이는 자영업자들이 국세청에 사업자등록을 해야 하는 것처럼, 농가도 각자의 경영정보를 등록하도록 해 이를 기준으로 선택과 집중을 통해 한정된 예산을 지원한다는 것이다. 즉, 현행 품목별 가격보전 방식의 직접지불제가 농가별 소득보전 방식으로 바뀐다는 점에서 농업 및 농민에 대한 전면적인 구조조정의 성격을 갖으며, 이 과정에서 농민의 계급분화가 가속화 될 것이다.

 

여성과 빈곤의 경우도 상황은 매우 열악하다. 여성의 경우 비정규법이 확대적용되면서 대부분 소사업장에서 노동을 하며 전체 비정규직 노동자의 70%를 차지하는 여성노동자들의 경우 가장 직접적인 피해자가 될 것이다. 이런 점에서 여성비정규직 노동자의 투쟁은 불가피하나, 개별적이나 산개투쟁으로 진행될 가능성도 적지 않다. 여기에 그나마 노무현정권에서는 성주류화전략이라는 미명하게 바우처 제도를 통한 일-가정 양립정책 등 나름의 복지정책 등을 여성가족부를 통해서 실행해왔으나 이명박정권은 이런 여성가족부조차도 통폐합해버렸다. 게다가 뉴코아-이랜드 투쟁의 발발에 있어 책임은 노조쪽에 있다는 발언, 비정규직 문제에 있어 해법은 법적 해결로 대응하겠다는 등의 발언, 또 여성문제에 있어 공약의 우선순위를 일반주부, 서민층 여성, 저소득층 배려에 할당 한다 등에서처럼 이명박정권은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의 문제를 전혀 해결할 의지조차 없으며, 동시에 여성을 일하는 노동자로서 바라보는 관점조차 없다. 이런 점에서 여성과 여성노동권의 권리는 심각히 위협받을 위험에 처해 있다.

 

복지의 축소와 사회적빈곤의 문제도 심각하다. 이명박정권의 ‘성장복지’란 실상 신자유주의 전략을 복지 빈곤 정책에서도 관철시키겠다는 것이다. 건강보험재정 안정화라는 명분하에 입원환자 식대의 본인 부담률이 50%로 높아지고 장애아동 무상보육료 지원 50억원, 보육시설 확충 등이 삭감될 것이다. 보육시설 또한 국공립 시설의 증가가 아닌 민간보육시설의 증가이며, 교사 또한 시간제교사를 도입한다는 것이다. 한편 온갖 선심성 공약은 남발하였는데 정작 10조원이 추가로 들 재원과 관련하여서는 정부기능 축소와 효율화 등 구조조정으로 비용을 절감하면 문제 없다 식이다. 결국 재정이 증가하지 않을 경우 복지혜택의 대상자가 축소될 것이고 이로 인해 기초적 복지혜택조차 받기 힘든 상황이 도래할 수도 있다. 또, 재개발 재건축 등 부동산 시장을 활발히 하겠다는 주장에 비해 기존에 서울시장 시절 행했던 것처럼 주거 빈곤층, 노점상, 재래시장 등에 대해 그 어떤 시혜적 조치도 취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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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년 노동정세(sw)

 

2008년 노동정세 전망


이승원(노동전선 정책위원)



1. 노동조합 조직률


전체 노동조합 조직률은 2007년 8월 기준 12.1%이며 조합원수는 192만 명이다. 매년 11%대의 하락을 보이던 조직률이 다소 상향된 것이다. 고용 형태별 노조 조합원은 정규직이 163만 명(85.2%), 비정규직은 28만 명(14.8%)이며, 이는 정규직의 22.5%, 비정규직의 3.3%를 차지하는 비율이다.

2007년 8월 기준 경제활동인구 중 임금노동자는 1,588만 명이며, 이중 정규직은 727만 명(45.8%), 비정규직은 861만 명(54.2%)이다. 비정규직의 비율은 점차 증가 하다가 정체되었으나, 이는 2007년 7월 시행된 비정규법을 회피하기 위한 편법적인 기간제의 별도직군화 추진 등으로 외형적인 숫자만 정체된 것처럼 보이나 내용상으로는 실제 늘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비정규직 노동자 조직화가 절대적으로 요구되는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비정규직의 조직화가 매우 낮다. 수치로도 나타나듯이 정규직 노동자 조직률은 22%대인데 반해 절대적으로 열악한 비정규직의 조직화는 3%대 머물고 있다. 특히 정규직의 경우 IMF이후 고령화(신규 채용 억제)가 지속화 되고 있으며, 이들이 구조조정에 의한 퇴출 대상이 되고 있고, 신입의 경우 비정규직으로의 채용이 일반화되어 정규직의 비중은 점차 줄어들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증가되는 비정규직에 대한 조직화 방안이 사업장별 또는 부분적으로는 일어나고 있으나, 폭발적 증가는 보이고 있지 않다. 이는 양노총 모두 산별(초기업단위 노조)노조 건설을 외치고는 있으나 건설이 아닌 기존 노조의 전환을 중심으로 두고 있어 기업별노동조합의 연합형태인 무늬만 산별노조들이 만들어져 자본이 주도하는 고용형태 변화에 효과적인 대응을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대규모, 기업별노조 중심의 운동이 다수화된 중소 영세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조직화에 효과적이지 못하며, 오히려 장애 요인이 될 수 있는 상황인 것이다.

양대 노총의 조직률은 80만 수준에서 다소 한국노총이 앞서 있는 듯하나 조직 성향 등에 있어 직접적인 수의 비교는 큰 의미가 없을 것이다. 다만 양 노총에 합류하고 있지 않은 30만 정도가 이후 이명박 정권에서 친정권화의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보인다.



2. 노동자 투쟁과 3대 과제


대규모 정규직 노동조합의 투쟁으로 대표되는 한국노동운동은 현대자동차를 비롯한 금속노조와 철도, 화물 등의 운수 및 공공부분을 중심으로 지속적인 투쟁을 전개 하였으나, 대부분이 전투성마저 상실하여 변혁의 주체로 나서기에는 무기력한 상황이다. 최근 몇 년간 이어진 민주노총과 민중의 투쟁들은 요구는 전체 민중과 계급의 요구로 높아졌으나 투쟁은 현장 조합원들을 추동해 내지 못하고 간부들의 선도 투쟁으로 머물러 한계를 노출하였으며, 국회 일정을 쫓아다니는 투쟁으로 대중적인 패배감만 높이고 승리하는 투쟁을 만들어가지 못했다. 이는 2008년에도 답습될 것이며 획기적인 변화는 없을 것이다. 


한국사회 노동운동의 3대 과제로 제기된 산별노조 건설! 비정규직 철폐! 노동자 정치세력화!는 합치되어 투쟁과 성과를 이뤄내기 보다는 각각이 단절되고 개별화된 목표를 통해 서로의 힘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낳고 있다.


- 산별노조 건설은 기득권 있는 정규직노동조합들의 입맛에 맞도록 조직형태와 운영이 바뀌고 있으며, 산별교섭에 중심을 두어 노동조합의 역할을 스스로 제한하고 조직력이 약화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공공운수연맹의 경우에는 산별 전환이 운수, 그 외 공공으로 구분되어 전환되었고, 2007년말 공공대산별 건설을 계획하고 추진하였으나, 공공운수, 공공노조가 건설되었지만 미전환 노조들의 저항과 산별노조들과 연맹의 입장들이 차이가 나, 대산별건설이 연기되고 묘책을 찾기 어려운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2008년 공공운수연맹은 3분 체제를 하나로 합치하는 것이 최대의 과제이며, 이는 전체 운동에 있어서도 대단히 중요한 문제일 것이다. 공공부문의 비정규직 문제가 법 시행시기를 놓고 볼 때, 2008년말에 집단적인 해고와 용역전환이 될 것으로 보이며, 2008년을 비정규직 조직 및 투쟁에 있어 중요한 시기일 것이다.


- 비정규직 철폐는 ‘차별철폐’인가? ‘철폐‘인가? 하는 투쟁의 방향에 있어서도 주체들 간에 명확하지 않은 상황이며, 이랜드-뉴코아 투쟁에 대한 민주노총 결의사항의 미이행, 비정규직 투쟁을 엄호하고 전체의 투쟁으로 확산해야 할 민주노총이 노동부장관과의 협상에 연연하여 투쟁에 찬물을 끼얹는 등의 행위로 비정규직들의 고립. 분산적인 투쟁이 되고 있다.

이미 장기화된 기륭전자, 이랜드-뉴코아, 코스콤의 투쟁은 개별화되고 있으며, 2년 가까이 지속해 온 KTX의 투쟁은 조용히 마무리되고 있다. 사업장마다 약간씩의 차이가 있으나 비정규직 투쟁임에도 품앗이 이상의 연대투쟁을 만들지 못하고 있다. 또한 정규직 노동자들의 연대도 각 사업장의 초기 투쟁시 연대 이상은 조직되고 있지 못하다.

민주노총 차원에서의 비정규직법안 폐기 투쟁도 방향만 이야기한 한 채, 폐기가 아닌 개정 세력이 노동부와 협의를 진행하여, 민주노총 중집에서의 헤프닝 이후로는 어떠한 논의도 진행되고 있지 않다. 대선 국면에서 민주노총이 권영길후보 지지에 올인하는 동안 비정규직 투쟁은 대선후보들의 립서비스 외에는 실질적인 해결책 없이 방치되고 있었다. 기업의 생산성향상을 기본 모토로 갖고 있는 이명박의 집권은 이후 비정규직 철폐 투쟁에 악재로 작용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신자유주의 정책에 있어 현 정권과 차이가 존재하지는 않겠지만 노동시장의 유연화를 전제로 노동정책을 내놓고 있어 한층 힘들어 질 것이다.


- 노동자정치세력화는 민주노총의 민주노동당에 대한 배타적 지지 선언을 철회해야 한다는 주장과 민주노동당의 분당 가능성까지 비춰지고 있어 전반적인 재검토가 필요한 시기가 될 것이다. 여하튼 대선과 내년 총선 이후 노동계 전반에 걸쳐 방향성을 잃고 총연맹-산별연맹(노조)-단위노조의 유기적인 연결체제 마저 무너지는 소통구조의 단절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으며, 개별화된 행보들이 이어지고 단위노조는 내부 챙기기로 급격히 선회할 것이다.

노동조합 상층 간부들의 행보는 대선과정에서도 보여지듯이 이념적 색체들이 다양하게 나타나, 겉으로는 노동자정치세력화를 이야기하지만 독자 정당건설에서 민주노동당 지지, 문국현 지지, 한나라당 지지까지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 반면에 현장의 노동자들은 민주노동당과 기존 보수정당과의 차별성에 의문을 제기하며, 실제 정치에 대해 무관심으로 일관하고 있다. 이는 총선까지 연결 될 전망이다. 최근 보여준 민주노동당의 반노동자적 행태는 현장 간부들이 대선에 적극적으로 몰입하지 못하는 요소가 되기도 하였다. 총선 결과에 따라 노동계, 특히 민주노총 산하는 춘주전국시대를 방불케 하는 다양한 정치 성향들이 표출되고, 그 영향이 현장에 까지 미치는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3. 노동자들의 삶


개별 노동자들의 생활을 살펴보면 유가급등이 결국 대선과 총선 이후 물가급등으로 연결 될 것이며, 공공요금의 인상 및 물가인상, 176조 원에 달하는 부동산 담보대출 금리의 인상 등으로 가계 압박이 커 질 전망이다. 전체 상위 10%와 하위 10%의 소득점유비는 1996년 6.7배에서 2006년 14.9배로 증가하였으며, 노동자에 있어서도 하위 10%의 임금은 62만 원이며, 상위 10%의 임금은 320만 원으로 2007년 임금불평등은 5.2배로 OECD 국가 중 임금불평등이 가장 심한 것으로 알려진 미국(2005년 4.5배)보다 심하며, 점차 고착화 조짐이 보이고 있다.(2002년 이후 5.0배 - 5.2배를 유지)


IMF이후 지속적으로 가해진 구조조정에 대한 대응은 노동자들의 저항에 가까운 투쟁이었으나, 총연맹 차원의 투쟁전선 구축의 실패, 단위노동조합의 개별화된 투쟁 등으로 끌려 다니는 투쟁을 전개 하였으며, 최근에는 이런 투쟁들도 실종되고 있다. 그러나 저들의 구조조정이 중단된 것이 아니라, ‘업무최적화’, ‘저성과자’등의 용어를 등장시켜 구조조정을 개인들의 문제로 일상화 시키고 있으며, 현장도 자신이 대상이 되지 않거나 적절한 보상수단이 강구되면 투쟁 보다는 실리를 택하는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노동자들이 개별화되고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평균 수명의 연장이 노동자들에게는 노후의 삶 보장이라는 고민에 놓이게 됨.)으로 인해 안정과 실리를 추구하는 행태로 나타나고 있으며, 대선에 있어서도 이념 보다는 실용주의를 넘어 도덕성은 별거 아니라는 풍토가 조성 되었다. 



4. 자본의 노동시장 유연화 전략과 대응 


자본은 시행된 비정규직법안이 비정규직의 차별을 시정하고 비정규직을 축소하는데 기여하기 보다는 바로 비정규직의 고용행태가 한국사회 일반적인 고용형태로 자리잡게 하기 위해 항시적 구조조정을 정착시키려 할 것이다. 정규직에게는 이미 현장에서 관철하고 있는 연봉제를 고용과 연계시키는 1년 단위 연봉계약제로의 전환을 획책할 것이며, 신규 입사는 인턴, 계약직의 형태를 확대할 것이다.

자본의 구조조정은 고용형태의 변화를 통한 총액임금의 축소를 목적으로 움직일 것이며, 이명박정권 당선을 자신들의 승리로 보며, 노사관계에 있어 인사.경영권의 독점을 요구하며 집단적 노사관계 및 근로조건의 법적 보장 수준으로의 저하를 획책할 것이다. 이명박의 ‘노사관계의 법치화’를 등에 업고 사용자단체를 중심으로 로비와 대노조 공세를 강화할 것이다. 정권의 비호하에 자본은 철저히 법대로 하자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자본의 공세에 조직화된 정규직 노동자들은 기득권의 보호 외에는 큰 저항 없이 여타의 구조조정에 동의할 것이며,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조직화와 투쟁은 유의미하게 전개될 것이나, 비정규직 자체가 직종별로 고용형태별로 세분화 되어 있어, 근본적인 투쟁목표와 요구로 조직되지 않는 한, 개별사업장 또는 직종으로 개별화 되어 성과 있는 투쟁을 남기기 어려울 전망이다. 

이명박의 주요 공약은 자본의 시장 확대를 위한 민영화, 규제 완화, 감세 노동시장 유연화 등 친기업의 내용으로 자본이 환영할만한 내용이며, 그중 서민 주요 생활비 30% 절감도 대부분이 감세와 국가 지원으로 되어 있고, 고속도로 통행료 50%인하는 하이패스 전면화로 인한 인건비 절감(자동화로 전체 해고)을 통해하므로 노동자에게 직접 피해가 올 것이다.



5. 이명박정권의 노동정책 및 노동계에 미칠 영향


이명박후보의 주요 공약과 한나라당과 정책연합을 한 한국노총의 질의서에 대한 답변 내용을 중심으로 살펴보면 ; 이명박정권은 기업의 대외경쟁력 강화를 통한 생산성향상으로 고성장 기조를 유지하여 고용을 창출하고 경제를 활성화 시키겠다는 전형적인 영.미식 신자유주의 노선이다.


노동쪽에 미칠 큰 영향은 무엇보다도 노동시장의 유연성일 것이며, 이를 뛰어 넘어 노동의 무저항과 통제를 기본 기저로 깔고 있다. 7%성장 전략을 살펴보면, 공공부문의 혁신과 10%예산 절감, 기업의 규제 완화, 대운하 건설, 감세, 노사관계 안정을 주요하게 들고 있다.


- 먼저 공공부문 혁신과 10%예산 절감은 공기업의 민영화를 주요 과제로 제시하고 있다. 2008년 대상 선정 및 계획 수립이라 구체적인 대상은 없으나, 이명박은 한국노총의 정책요구중 전력산업 재통합에 대해 ‘수용’이 아닌 ‘적극검토’ 의견을 제시한 것으로 볼 때, 민영화의 대상이 전체가 될 가능성이 있다. 또한 공무원의 동결은 임금 억제의 가이드라인 역할을 할 것이며, 최저가 입찰제 실시는 정부의 구매력을 볼 때, 공공부문 납품업체 노동자들의 임금삭감 요인이 될 것이다. 내년의 공공부문은 민영화 대응, 개혁 칼바람에 대응하는 한해가 될 것이며 공공부문 개혁이 정권 초기에 항상 나온 점을 볼 때, 2008년 총선 이후부터 하반기 초까지 개혁안 및 민영화 대상 선정이 마무리 될 것으로 보인다.


- 노사관계 안정에 있어서는 노사관계의 법치화를 내세우고 있다. 불법시위로 인한 사회비용이 12조 3,190억 원(GDP대비 1.53%)으로 계산하고 있으며, 이를 근절하여 1%대의 성장을 이루겠다는 발상이다. 국회 등 시위가 빈번한 지역에 상설시위지구를 설치하여 그곳에서 한정적인 집회만을 허가하고 가투 등을 엄단하겠다는 발상이며, 불법파업은 공권력의 개입을 통해 엄단하겠다는 것이다. 한편 사회적 협의기구인 지역별 노⦁사⦁민⦁정 협의체를 통해 무쟁의에 대한 지역교부금 등의 인센티브 지급 등으로 유인책을 만들려고 한다. 노동조합은 지역 사/민/정에 둘러쌓여 투쟁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을 만들려는 것이다.


- 2008년 1월 발효되는 필수공익사업장 제도에 따르면 직권중재는 폐지하되 필수유지업무 제도를 신설하여 파업권을 사실상 제한하고 있는데, 대부분의 공기업들은 필수유지업무로 사실상 파업을 포기하거나 불법화될 소지가 크다.

 

- 노⦁사⦁민⦁정은 노동에 있어서는 노⦁사⦁정 보다도 더 불리한 조건이며, 의제 또한 지역으로 국한되어, 노동조합의 평화 의무만이 강요되는 상황이 될 것이다. 특히 무파업 지역에 대한 보상체계와 당사자 해결원칙을 존중하되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정부가 법과 원칙을 노⦁사 모두에게 엄격하게 지키겠다고 하지만, 노사관계 법⦁제도 선진화 내용을 부당노동행위 구제제도, 복수노조 창구 단일화, 노조전임자 급여지원 문제로 잡고 있는 것은 부당노동행위의 처벌조항 삭제 등 사용자 중심의 노사관계를 구현할 것으로 예상된다.

 

- 노동시장의 유연화는 해고의 용이성에 집중될 것이며, 정년은 연장하되 임금피크제의 도입과 맞바꾸려 할 것이다.

 

- 비정규직 대책은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이야기 하나, 불합리한 차별 및 시정 절차 합리적 개선에서 ‘불합리한’을 전제하여 합리적 차별을 합법화하려는 저의를 깔고 있다.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협소하게 적용하여 학력, 경력, 직무의 난이도 등으로 인한 차별을 합리적 차별로 인정해서 비정규직의 해소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 서민 주요 생활비 30%절감 중 고속도로 통행료 50%인하는 하이패스 전체 확대(자동화) 및 노동자 해고로 원가를 절감하겠다는 것이라서 고속도로 톨게이트 근무 노동자들의 고용에 심각한 영향을 끼칠 것이며, 통신서비스 요금 20% 인하는 유.무선의 결합서비스를 위한 통신사업자간 합병 및 구조조정이 불가피해 노동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1-2년 내에 유.무선의 결합서비스와 기업 합병이 가속화될 것이며, 통신서비스사업이 3강 또는 2강 구도로 정리될 전망이다.


- 공약 사항 중 특이 사항은 ‘건강 포인트’제도이다. 5대 건강생활(비만도, 금연 여부, 5대암 검진 여부, 혈압 및 혈당 측정 경험, 만성 질환 진단자의 투약 지속율) 실천도를 점수화 해 인센티브를 주는 제도를 도입하겠다는 것인데, 자칫하면 3대 건강생활이 기업 내부에도 들어와 구조조정의 빌미로 쓰이거나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하는 형태로 나타날 수 있는 우려를 갖고 있다.


- 한국노총의 한나라당과의 정책연합은 결국 한국노총의 실재를 적나라하게 드러난 행위였으며, 이로 인해 일부에서 꾸준하게 추동하였던 민주노총·한국노총 통합 등은 당분간 사라질 전망이다. 이명박진영의 노동정책은 신자유주의 노선에 철저하게 복무하는 것으로 나아가서는 노동의 기본권마저 박탈하는 기업의 경쟁력을 최우선으로 설정하고 있다. 겉으로는 대화와 타협을 이야기 하지만 공권력을 통한 탄압을 경고하고 있는 상황이며, 초기 대응에 실패할 경우 집권 시기 내 노동이 수세에 몰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실제 중요한 것은 이번 대선에 나타났듯이 노동운동 진영의 다양한 정치적 지향을 어떻게 계급적 이해를 중심으로 모아내느냐에 달려 있을 것이다. 노동자들의 노동자계급과 자본주의 시민으로서의 이중적인 행태에 대해 어떻게 하나로 모아내고 현실적인 문제를 대응해 나갈 것 인지가 중요할 것이다. 이명박은 노무현처럼 말을 바꾸거나 거짓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노총에 준 답변서나 주요 공약을 통해 분명하게 이야기 하고 있다. 기업은 키우고 노동은 때려잡겠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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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정치정세(ys)

 

2008년 국내외 정치정세와 노동자․민중1)


김영수(노동전선 정책위원/경상대 사회과학연구원)



1. 소위 ‘87년체제’의 아이러니


세계적인 수준에서 정치적 대립구도가 급격하게 변화되고 있다. 중남미 지역을 중심으로 한 제3세계 국가에서는 좌파정권의 등장과 함께 21세기 사회주주의의 전형들을 모색하려 한 반면, 유럽을 중심으로 한 서구 자본주의 국가에서는 사민주의 정치세력의 퇴장과 함께 신자유주의의 또 다른 21세기 전형들을 모색하고 있다. 전자의 모태가 쿠바․베네수엘라․볼리비아를 중심으로 한 중남미 지역의 ‘반신자유주의 좌파동맹’이라고 한다면, 후자의 모태는 27개 국가를 회원으로 하고 있는 ‘신자유주의 유럽동맹(EU)’이다. 그런데 이러한 양자의 동맹체제는 노동자․민중들의 대중투쟁과 긴밀하게 연계되어 있다. 중남미에서의 반신자유주의 좌파동맹이 노동자․민중들의 투쟁의 성과와 연계되어 있다면, 신자유주의 유럽동맹은 노동자․민중들의 반신자유주의 대중투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자본을 중심으로 하는 동맹체제와 노동자․민중들의 대중적 저항은 세계적인 현상으로 확대되고 있다. 또 다른 예를 들면, 아프리카대륙의 자본들은 신자유주의 아프리카연맹(AU)을 중심으로 ‘21세기 아프리카 르네상스’를 추구하고 있는 반면, 아프리카 대륙의 노동자․민중들은 초국적 독점자본에 저항하는 투쟁을 확산시켜 나가고 있다.

세계적 수준에서는 1999년의 시애틀 투쟁 이후 세계사회포럼, 공정무역운동 등, 유럽 지역에서는 실업자운동, 유럽헌법 반대운동, 반전사회포럼 등, 그리고 제3세계 지역에서는 중남미의 볼리바리안 운동, 사빠티스타 민족해방군(EZLN)의 공동체 자치운동, 아프리카․중남미․동남아시아의 토지개혁운동 등이 전개되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공공재화의 사유화로 인해 발생한 문제들을 해결하려는 유럽 지역 및 중남미 지역의 재국유화운동과 공공부문의 신자유주의적 개혁을 저지하기 위한 공공부문의 사회화운동,2) 중남미, 동아시아, 아프리카 등의 토지를 사회화하기 위한 농민운동, 그리고 청년실업 및 실업자 문제 해결을 위한 국가 역할의 변화 및 사회체제의 변화에서 찾고자 하는 중남미 및 유럽의 실업자 운동 등이 2008년에도 활성화될 것이다. 이러한 운동들은 정치적 대중투쟁으로 발전하지 않을 수 없는데, 이유는 세계적 수준의 신자유주의에 저항하는 운동들의 전략적 목표이다. 각 국가별 운동주체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아래로부터 통제할 수 있는 국가권력의 수립, 생산수단의 사회화, 그리고 제국주의적 전쟁 및 수탈에 저항하는 반제국주의 저항체제의 수립 등을 지향하고 있다.

한반도에서도 자본을 중심으로 하는 동맹체제가 형성․강화되고 있고, 노동자․민중들은 그러한 동맹체제에 저항하는 투쟁을 전개하고 있다. 한미동맹체제는 ‘북핵폐기’와 한미FTA를 추구하면서 한반도를 미국의 ‘저강도 전략’의 신자유주의 진지로 변화시키고 있으며, 한국의 노동자․민중들은 한미FTA반대 및 반전․반제투쟁을 전개하였다. 미국은 북한에 대한 ‘고강도 전략’의 한계상황에 직면하면서 국내의 경기침체, 특히 금융시장의 불안과 소비시장의 불황을 극복하기 위한 전략적 진지를 구축하려 하고 있고, 그러한 전략의 주요한 대상 중에 하나인 한국과의 제국주의적 동맹을 강화하고 있다. 그래서 남북정부는 미국의 ‘저강도 유연화 전략’에 조응하는 차원에서 제2차 남북정상회담, 남북경협의 강화, 서해평화협력지대의 추진 등을 합의하고, 한반도의 경색정국을 변화시켜 나가고 있다. 

그러나 2007년 대선에서는 신자유주의 개혁세력의 정권유지 및 반신자유주의 세력의 정치적 부흥이라는 이변이 발생하지 않았다. 신자유주의 원조세력인 한나라당이 신자유주의 개혁세력인 통합신당을 물리치고 10년 만에 정권을 되찾았다. 노동자․민중들은 신자유주의 개혁정부를 실패한 세력으로 평가하고, 신자유주의 반대세력을 지지한 것이 아니라 신자유주의 원조세력을 선택하였다. 한국정치에서는 참으로 아이러니한 현상이 자주 발생한다지만, 2007년의 대선과 같이 아이러니한 현상은 없을 것이다. 신자유주의 원조세력은 역사적으로 노동자․민중들을 탄압하고 억압했던 주체들이고, 한국사회를 고통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던 주체들인데, 또한 신자유주의 개혁세력은 1987년 6월항쟁과 7-9월 노동자대투쟁으로 형성된 소위 ‘87년체제’의 정치적 주체라고 할 수 있는데, 노동자․민중들은 신자유주의 개혁세력의 실패에 대한 대안세력으로 신자유주의 원조세력을 선택하였으니 말이다.

노동자․민중들은 어떤 이유 때문에 이러한 선택을 한 것인가? 이 문제는 2008년의 한반도 정치정세를 인식하는데 있어서 핵심요소로 작용할 것이다. 단지 노동자․민중들의 정치의식이 저열하다는 분석과 평가에 그칠 수 없다. 2007년 대선은 노동자․민중의 정치세력화를 추구해 왔던 노동자․민중정치의 새로운 임계점이자, 노동자․민중들의 전략적 선택지로서의 결절점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분석과 평가를 하기 위해서는, 한국정치의 구조적인 측면에서 나타나는 노동자․민중들의 전략적 선택, 그리고 노동자․민중들이 실질적으로 신자유주의 원조세력을 선택하였는가의 문제가 해소되어야만 한다.

 

2. 2007년 대선에서 사라진 보수 대 진보의 구도


2007년 대선에서는 제도권을 중심으로 한 반신자유주의 정치세력의 ‘조로현상’과 함께 신자유주의 원조세력의 새로운 부흥이 일어났다. 정치적 지배블록 내에서는 의사(pseudo) 좌파로 표상되어 왔던 신자유주의 개혁세력의 약화현상이 발생하고, 대신 수구적 보수에서 합리적 우파로 변신을 꾀해 왔던 신자유주의 원조세력이 정권교체의 대안세력으로 급부상하여 정권을 교체하였다.

노동자․민중들은 1992년 이후 탈군부 정권을 중심으로 하는 ‘민주주의적 신자유주의 개혁담론’에 포위된 상태에서, 신자유주의적 개혁을 민주주의적 개혁으로 인식하는 ‘오버랩 개혁통치’의 희생양이 되었다. 민주노총 지도부들의 일부만이 아니라 소위 시민운동단체의 대다수가 ‘오버랩 개혁통치’의 주체로 등장하였다. 이러한 개혁통치의 주체들은 소위 ‘87년체제’의 정치적 주체들이었다. 민주주의적 개혁세력은 실질적 민주주의를 추구하지 못하면서 ‘개혁담론’만을 무성하게 하였을 뿐, 신자유주의 정책을 노동자․민중들에게 강요하였다. 노동자․민중들은 민주주의적 개혁이라는 ‘희망의 21세기’를 원했지만, 실질적으로 ‘절망의 21세기’만을 맞이하게 되었다. 이는 민주주의적 개혁세력에 대한 배신과 분노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고, 더 나아가 민주주의적 개혁세력의 무능력으로 표상되었다. 문제는 ‘오버랩 개혁통치’의 유탄이 신자유주의적 개혁세력만이 아니라 민주노동당을 중심으로 한 반신자유주의 정치세력들에게도 집중 포화되었다는 점이다. 의사(pseudo) 좌파로 표상되어 왔던 신자유주의 개혁세력보다 더 좌파적 성향으로 표상된 반신자유주의 세력들도 ‘오버랩 개혁통치’의 희생양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 동안 한국사회의 정치적 대결구도는 매우 다양하게 형성되었다가 명멸하고, 또 다시 부활하곤 하였다. 민주 대 반민주, 보수 대 진보의 구도가 그러했었다. 이러한 대결구도는 대선이나 총선을 맞이할 때마다 수구․보수세력을 상대로 하는 선거전술, 즉 후보단일화 전술, 비판적 지지전술, 그리고 독자후보전술로 현실화되었다. 2007년 대선에서는 그야말로 제반 정치세력들의 독자후보전술이 채택되었지만, 신자유주의 원조세력들은 선거라는 경쟁게임에서 승리하였다. 한나라당의 후보인 이명박이 범죄자로 확인되지 않는 한, 새로운 한나라당 정권의 정통성은 앞으로 5년 동안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2007년의 대선정국에서 노동자․민중의 정치세력화를 추구했던 ‘진보’는 사라졌다. 경제부흥세력 대 경제실패세력, 부패세력 대 청렴세력, 거짓세력 대 진실세력, 폭력세력 대 평화세력 등의 대결구도는 대선정국을 수놓았지만, 노동자․민중의 진보 대 자본의 보수라는 대결구도는 형성되지 못한 것이다. 신자유주의 대 반신자유주의의 정치적 투쟁전선이나, 한미FTA 저지투쟁의 전선조차 거의 형성되지 못하였다. 단지 노동자․민중의 ‘진보’는 부르주아 계급의 정치적 지배블록 내에 존재하는 ‘상대적 진보’로 표상되었다. 한나라당<민주당<통합신당<창조한국당<민주노동당<한국사회당 등의 대통령 후보자를 중심으로 배열되는 진보였던 것이다. 비제도권에서 노동자․민중의 정치세력화를 추구하는 세력들도 2007년 대선정국에서 자신들의 정체성에 조응하는 선거투쟁을 거의 하지 못하였다. 또 다른 수준의 정치적 무능력이 표출된 것이다. 이러한 정치적 무능력은 노동자․민중의 잠재화되어 있는 자발적 정치투쟁을 무한정 기다리는 것과 매우 유사하다. 비제도권의 노동자․민중정치가 ‘대기주의적 정치활동’이라는 혐의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이다.

노동자․민중은 신자유주의 원조세력이나 신자유주의 개혁세력 때문에, 목숨을 던져야만 하는 고통의 나락으로 떨어졌지만, 2007년 대선정국에서 계급 간의 정치적 대결구도로 형성되는 진보정치, 즉 반신자유주의 정치, 반제국주의 정치, 그리고 반자본주의 정치를 외면하였고, 더욱이 상대적 진보세력을 지지하고 선택한 것이 아니라 가장 보수적인 세력을 지지하고 선택하였다. 노동자․민중들은 아예 제도정치 내부의 상대적 진보정치만이 아니라 비제도적인 노동자․민중의 진보정치를 외면함으로써, 노동자․민중정치로 하여금 ‘진보의 공황상태’로 빠져들게 되었다.

 

3. 신자유주의 정치구조와 노동자․민중


민주주의 이행과정을 거치고 있는 한국의 정치구조에 대한 일반적인 평가는 간단하게 정리할 수 있다. 정치적 민주화가 진전되고 있는 만큼, 수구․보수세력에 대해 신자유주의 개혁세력을 중심으로 한 ‘개혁적 저항’이 필요하고, 그러한 개혁에 동참하지 않는 노동자․민중운동에 대해서는 ‘개혁적 고립’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YS정부-DJ정부-NO정부가 신자유주의 정책블록이라는 ‘정책 카르텔’을 형성한 상태에서 한국 민주주의 이행의 주체인양 존재하면서 노동자․민중을 억압한 경우이다. 소위 ‘87년 체제’의 모순적 구조, 즉 노동자․민중들을 고통에 빠트린 신자유주의 정책을 추구하면서도 민주주의 이행 및 개혁의 주체로 간주되었으며, 이러한 주체들을 상대로 하는 각종의 투쟁을 오히려 민주주의 이행 및 개혁의 걸림돌로 간주되기까지 하였다. 민주주의 이행 및 개혁에 대한 수구․보수세력의 저항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이러한 주체들에게 힘을 모아주지 않는다는 비판이었다. 이러한 모순적 구조를 신자유주의 정치구조로 표시하면, 아래의 그림과 같이 도식화할 수 있다.


     


한국정치의 기본적인 대립구도는 신자유주의 세력 대 반신자유주의 세력 간에 형성되었고, 각각의 주체들은 상호연대를 바탕으로 노동자․민중들의 지지를 획득하기 위한 투쟁을 전개하였다. 이러한 대결은 곧 신자유주의 정책을 둘러싼 ‘갈등적 경쟁관계’를 형성․유지하였고, 이 과정에서 각각의 주체들은 ‘전략적 선택과 저항’이라는 통치전략과 투쟁전략을 구사하였다. 즉 대결주체들의 역량과 조건에 상응하는 통치전략과 투쟁전략, 소위 신자유주의 정책에 대한 저항세력의 조건 및 통치세력의 상황에 따라 다양한 통치전략과 투쟁전략들이 구사되었다. 이 과정에서 반신자유주의 세력의 저항은 사회적으로 고립화되는 상황을 맞이하곤 하였다. 비정규투쟁, 파병반대투쟁, 한미FTA반대투쟁 등이 2004년의 대통령탄핵반대와 같은 대중투쟁으로 발전하지 못하였다. 

노동자․민중들도 1997년-98년의 외환위기 상황을 겪으면서, 신자유주의 세력 및 반신자유주의 세력들에 대한 ‘전략적 선택과 저항’을 경험하게 되었다. 노동자․민중들은 정치적․사회적 의제를 중심으로 하는 저항의 주체로 쉽게 나서지 않았고, 노동현장이나 생활현장의 안정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이기주의적이고 개인주의적인 선택을 마다하지 않았다. 주로 노동자들을 조직원으로 하고 있는 민주노총이 조직적이고 대중적인 투쟁을 쉽게 전개할 수 없었던 요인이자, 민주노총 스스로 투쟁의 정체성을 변화시키게 되는 주요 요인이었다.

노동자․민중들은 신자유주의 정치구조를 전복하기 위한 반신자유주의 정치활동의 주체로 나선 것이 아니라, 신자유주의 정치세력과 반신자유주의 정치세력을 경우에 따라 전략적으로 선택하는 상호 모순적 행위의 주체로 존재하였다. 이러한 모순적 정치행위는 2007년 대선정국에서도 자연스럽게 표출되었다.

선거정치에서 나타난 노동자․민중들의 전략적 선택은 역사적으로 존재해 왔다. 한국정치의 구조적 특성인 ‘인물 중심의 선택3), 지역 중심의 선택, 대중 중심의 선택4), 남북관계 중심의 선택’, 즉 선거를 매개로 하는 정치행위의 주체로서 노동자․민중의 정치세력화를 지체시키는 주요 세력으로 존재하였지만, 이러한 선택의 기준은 그 동안 지역을 중심으로 하는 정치활동의 결과를 반영한다고 할 있다. 신자유주의 원조세력에 대한 지지기반이 거의 35% 수준이었던 반면에, 노동자․민중의 정치세력화를 추구하는 세력에 대한 지지기반은 10% 미만이었다. 이것은 두 가지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하나는 한나라당을 중심으로 하는 신자유주의 원조세력의 지지기반이 한국사회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지역을 중심으로 노동자․민중들의 이해를 대변하고자 했던 민주노동당의 정치활동이 노동자․민중들의 신뢰를 아직까지 획득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민주노동당의 지지기반이 급속하게 확장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신자유주의 정치세력들은 한국정치의 구조적 특성을 전략적으로 활용하면서 노동자․민중들로 하여금 ‘자발적 참여, 자발적 동원’을 선택하게 하였다.


4. 노동자․민중의 전략적 선택과 노동자․민중정치


1) 2007년 대선정국과 노동자․민중


2007년의 대선정국에서 나타난 노동자․민중들의 선택을 두고 ‘국민 노망’, ‘새로운 반한나라 범민주전선 실패’, ‘잘못된 민중의지’, ‘반신자유주의 투쟁패배’ 등이 등장하였다. 국민노망론은 가장 반민중적이고 반민주적인 것이고, 새로운 범민주전선의 실패론은 신자유주의 개혁세력을 비판하고 있는 노동자․민중의 상태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엘리트주의적 주장이다. 반면에 ‘잘못된 민중의지론’ 및 ‘반신자유주의 투쟁 패배론’은 그 동안의 노동자․민중정치에 대한 비판적 평가를 바탕으로, 노동자․민중정치의 새로운 대안을 모색하려는 것이다. ‘국민 노망론’과 ‘새로운 반한나라 범민주전선론’은 한나라당에게 정권을 내주는 것 자체가 민주주의의 퇴행으로 간주하는 것이고, ‘잘못된 민중의지론’과 ‘반신자유주의 투쟁패배론’은 노동자․민중정치를 보다 정확하게 진단하여 새로운 노동자․민중정치의 대안들을 모색하자는 것이다. 하지만 노동자․민중들은 부르주아 정치에 ‘중독’되어 투표행위만을 정치활동으로 인식하는 경향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한국정치의 주요한 결절점을 만들어 냈던 정치적 대중투쟁의 주체로 존재해 왔으며, 신자유주의 개혁세력 및 진보정치세력의 실질적인 지지기반으로서의 역할을 담당해 왔다.

노동자․민중들은 20년에 걸친 소위 ‘87년체제’를 경험하면서, ‘87년체제’의 모순적 구조를 인식하기 시작하였다. ‘87년체제’의 정치적 주체들은 1948년 이후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는 한국사회의 보수적 구조를 민주적으로 변화시키기 위한 이행 및 개혁의 주체로 인정할 수 있지만,5) 신자유주의 정책의 집행자로서의 책임을 신자유주의 개혁세력에게 묻기 시작하였다. 그 동안 반신자유주의 세력이 줄기차게 제기해 왔던 신자유주의 정책의 문제점, 즉 ‘사회적 양극화 문제6), 생활조건의 악화 문제7), 부르주아적 개혁의 문제8)’들이 노동자․민중들을 고통에 빠지게 한 것이다. 노동자․민중들은 신자유주의 개혁세력을 중심으로 하는 ‘87년 체제’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정치적 대안을 전략적으로 선택해야만 할 기로에 서 있었다.

그런데 노동자․민중들은 2007년 대선정국에서 민주노동당을 중심으로 하는 반신자유주의 세력을 선택하지 않고 신자유주의 원조세력을 선택하거나 혹은 어떠한 정치세력도 선택하지 않은 정치적 방관자로 남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은 2007년의 대선정국을 신자유주의 원조세력의 완승이라고 평가한다. 현상적으로 볼 때, 아주 명확한 정답이다. 과연 이들 세력만의 승리라고 할 수 있는 것인가? 신자유주의 정치라는 구조적 관점에서 볼 때, 2007년 대통령선거를 ‘그들만의 리그’로 정착시킨 신자유주의 정치세력의 완승이라고 보아야 한다. 지난 5년 동안 신자유주의 개혁세력의 대표였던 통합신당은 선거라는 경쟁정치게임에서 신자유주의 원조세력에게 패배했지만, 그들을 포함하는 신자유주의 정치세력은 노동자․민중들로 하여금 자신들만을 전략적으로 선택하게 하는 ‘신자유주의 정치의 성공신화’를 일궈낸 것이다. 신자유주의 정책블록 내에서의 권력이동, 즉 정치권력의 주류로부터 비주류로 이전하게 하고, 노동자․민중들을 그러한 권력이동에 동원하는 신자유주의 정치세력의 성공시대가 열린 것이다. 그렇지만 노동자․민중들이 신자유주의 원조세력을 전략적으로 선택하게 된 측면들을 한국정치의 구조적인 특성과 연계시켜서 분석해야만 할 주요 이유이다. 

신자유주의 개혁세력의 실패로 말미암아, 신자유주의 원조세력은 역사적으로 존재했던 지지기반의 응집력을 강화시킬 수 있었다. 그러한 응집력의 기제는 한국정치의 구조적 특성을 활용하는 것이었다. ‘인물 중심, 대중 중심’의 전략을 극대화하는 반면 ‘지역 중심, 남북관계 중심’을 극소화하는 전략이었다. 반면에 반신자유주의 세력은 한국정치의 구조적 특성을 극복하는데 많은 한계를 드러냈다. 즉 2004년 민주노동당이 원내에 진입하고 난 이후, 민주노동당은 노동자․민중의 정치세력화를 추구하는 주체로서의 정체성을 형성하는데 실패한 것이다. 민주노동당의 조직 내적인 측면에서 볼 때, 한편으로는 ‘인물 중심, 대중 중심, 남북관계 중심’의 전략을 추구하였고, 다른 한편으로 ‘탈지역적이고 탈대중적인 계급 중심’의 전략을 추구하기도 하였다. 민주노동당의 원내외 정치활동의 측면에서 볼 때, 한편으로는 노동자․민중들에 대해 ‘고립화 전략’을 추구하고 있는 신자유주의 개혁세력과 정책적으로 연합하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러한 세력을 부정하면서 진보적인 정치세력으로서의 정체성을 제도권 밖에서 형성하려 하였다. 노동자․민중들은 민주노동당을 대안의 정치세력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한국정치의 구조적 특성에 중독되어 있는 노동자․민중들의 입장에서 볼 때, 민주노동당은 지역을 중심으로 하는 정치활동의 과정에서 실질적인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였다는 것이고, 노동자․민중들로부터 권리를 위임받을만한 지도자들을 양성하지 못하였다는 것이다. 소위 보수적인 정치세력으로 규정되어 왔던 신자유주의 정치세력과 차별화된 정치활동의 미비, 예를 들면, 의회에서나 자치단체의 정치활동이 기존의 신자유주의 정치구조를 극복하지 못하였다는 의미이다. 또한 민주노동당은 한국정치의 구조적 특성을 인정할 것인가 인정하지 않을 것인가에 대한 전략적 선택이 부재하였거나 혼돈의 상태를 지속시켰다.


2) 신자유주의 원조세력과 노동자․민중의 전략적 선택


신자유주의 원조세력은 신자유주의 개혁세력을 비판하면서 이탈한 노동자․민중들의 지지를 바탕으로 정권교체를 일구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러한 이러한 평가는 적지 않은 문제점들을 드러낼 수 있다. 2007년 대선의 결과를 보면, 신자유주의 개혁세력에서 이탈한 노동자․민중들이 대거 신자유주의 원조세력을 지지하였다고 할 수 없고, 노동자․민중의 정치세력화를 추구하는 민주노동당에 대한 지지기반의 변화가 발생하지 않았다. 최근의 각종 선거결과에서 알 수 있듯이, 신자유주의 원조세력과 신자유주의 개혁세력은 그 동안 노동자․민중들로부터 탄탄한 지지를 받아왔다. 




<표1> 각종 전국선거의 정당별 득표(비율)

대통령 선거

16대 득표

(비율) 

한나라당

 

민주당

 

민주노동당

합계

11,443,297

(46.6)

12,014,277

(48.9)

 

957,148

(3.9)

24,561,916

15대 득표

(비율)

한나라당

국민회의

 

국민승리21

합계

9,935,718

(38.7)

10,326,275

(40.3)

 

306,026

(1.2)

25,642,438

국회의원 선거

17대 득표

(비율)

한나라당

민주당

우리당

자민련

민주노동당

합계

8,083,609

(37.9)

1,698,368

(8.0)

8,957,665

(42.0)

569,083

(2.7)

920,229

(4.3)

21,330,770

17대 비례득표

(비율)

한나라당

민주당

우리당

자민련

민주노동당

합계

7,613,660

(35.8)

1,510,178

(7.1)

8,145,824

(38.3)

600,462

(2.8)

2,774,061

(13.0)

21,285,984

17대 광역비례득표(비율)

한나라당

 

민주당

자민련

민주노동당

합계

8,595,174

(52.1)

4,796,391

(29.1)

1,072,782

(6.5)

1,340,376

(8.1)

16,482,559

16대 득표

(비율)

한나라당

민주당

자민련

민주노동당

합계

7,365,359

(38.9)

6,780,625

(35.9)

1,859,331

(9.8)

223,261

(1.2)

18,904,740

광역단체장 선거

제3회 득표

(비율)

한나라당

 

민주당

자민련

민주노동당

합계

8,820,102

(52.9)

4,874,653

(29.2)

870,475

(5.2)

782,490

(4.7)

16,683,072

제2회 득표

(비율)

한나라당

국민회의

자민련

  

  

  

  

합계

6,784,348

(40.6)

5,768,126

(34.5)

2,549,537

(15.3)

16,710,763

제1회 득표

(비율)

민자당

민주당

자민련

합계

6,876,733

(33.3)

6,223,015

(30.1)

3,577,696

(17.3)

20,646,858

평균 득표비율

(%)

41.9

7.6

36.5

8.5

5.2

99.7

17대 대선득표

(비율)

한나라당

민주당

통합신당

 

민주노동당

합계

10,983,363

(48.5)

155,402

(0.7)

5,965,793

(26.3)

 

681,067

(3.0)

23,690,385

* 참조1 : 군소정당이나 무소속의 득표율을 합산하지 않은 상태에서 계산하였기 때문에, 실질적인 득표율과 아주 미세한 차이가 발생할 수 있다.

* 참조2 : 대선, 총선, 그리고 지자체선거에서 나타나는 투표행태의 차별성이 존재한다는 점을 고려해야만 한다. 지자체 선거의 투표율이 다른 선거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다.

* 참조 3 : 17대 대선의 결과는 96.1% 개표현황이다.


위의 <표1>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최근 약 10년 동안의 대표적인 선거결과를 중심으로 본다면, 한나라당을 중심으로 하는 신자유주의 원조세력은 평균 41.9%의 지지율을 확보하고 있었다. 만약 자민련을 지지한 세력까지 포함한다면, 한나라당을 중심으로 하는 수구․보수세력을 지지하는 기반의 비율은 평균 50.4%이다. 17대 대선에서 한나라당의 이명박 후보가 48.5%의 지지율로 당선이 되었고, 이회창 무소속 후보가 15.1%의 지지율을 획득하였다. 두 후보의 지지율은 63.6%이다. 수구․보수세력에 대한 지지율이 기존 선거의 평균 지지율에 비해 약 13% 증가한 것이다. 그러나 수구․보수세력들은 제16대 대선에서 한나라당을 중심으로 11,443,297표를 획득하였는데, 이번 대선에서는 이명박과 이회창의 득표수를 모두 합쳐서 14,402,512표를 획득하였다. 제16대 대선에 비해 약 300만 표 이상을 더 획득하였지만, 만19세의 유권자들이 더 늘어났다는 점을 고려하면, 투표에서 나타나는 지지기반의 변화가 그리 크지 않다고 보아야 한다.

신자유주의 개혁세력의 대표적 정당에 대한 평균 지지율은 평균 36.5%였고, 역사적으로 하나의 정당에서 함께 정치활동을 하였던 민주당의 평균 지지율인 7.6%를 합산한다면, 44.1%의 지지기반을 확보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민주당이 이번 대선에서 독자적으로 출마하였기 때문에, 통합신당은 기존의 평균 지지율인 36.5%에 비해 이번 대선에서 약 10%가 부족한 26.3%의 득표율을 기록하였다. 신자유주의 개혁세력으로 분류할 수 있는 문국현 후보와 이인제 후보의 득표율을 합한다면, 32.8%인데, 이는 기존의 평균 지지율에 비해 3.7%가 부족한 결과이다. 신자유주의 개혁세력은 한나라당에 정권을 넘겨주었지만, 신자유주의 개혁세력의 지지기반이 무너진 것으로 보기 어렵다. 투표에 참여하는 유권자 중에서 신자유주의 세력에 대한 지지기반이 전체 유권자의 약 90%이상인데, 이는 한국정치의 구조적인 특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노동자․민중들은 그 동안 신자유주의의 고통을 당하면서도 신자유주의 원조세력과 신자유주의 개혁세력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지 않았다.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한 반신자유주의 대중투쟁, 민주노동당을 중심으로 하는 반신자유주의 정치활동 등이 존재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노동자․민중들은 선거정치에서 신자유주의 세력의 강력한 지지기반으로 존재하였다.


3) 민주노동당에 대한 노동자․민중의 전략적 선택

 

노동운동의 주체들은 1987년 이후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추구하였음에도 불구하고, 2004년에 이르러서야 민주노동당의 의회진출을 이루어냈다. 그런데 이번 대선에서 나타난 민주노동당의 결과를 놓고 볼 때, 민주노동당이 의회에 진출한지 3년 만에, 20년에 걸친 노동자․민중의 정치세력화가 수포로 돌아가는 것 아닌가라는 의문을 자아내고 있다. 민주노동당은 제16대 대선에서 3.9%의 지지율을 획득하였고, 이번 대선에서는 3.0%의 지지율밖에 획득하지 못하였다. 득표수에 있어서도 지난 대선에 비해 276,081표가 부족하다. 이번 대선에서 10% 이상의 득표율을 획득하려 했던 민주노동당의 입장에서 보면, 단 한명의 국회의원조차 보유하지 않은 문국현 후보보다 낮은 득표율을 기록하였다는 측면에서 보면, 민주노동당은 이번 대선의 최대 패배세력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의 주요 원인은 정치세력화를 추구하는 정치활동의 방식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첫째로는 민주노총은 민주노동당을 배타적으로 지지하면서 노동자․민중의 정치세력화를 추구하고 있지만, 정치활동을 전개하는 과정에서는 민주노동당을 실질적으로 지원하거나 지지하지 못하였다. 오히려 ‘신자유주의 개혁세력이나 반신자유주의 세력’을 놓고서, ‘다차원적 대응’이라는 전략적 선택을 고수하였다. 민주노총은 민주노동당과 각종의 선거정치나 정책협의 등의 연대관계를 형성한 상태에서 정치활동을 전개하였지만, 민주노총 중앙의 정치활동과 지역․현장의 정치활동이 서로 분리된 채 전개되는 경향성을 드러냈고, 정치활동과 관련된 중앙 지도부들의 의사결정이 지역․현장에서는 실질적으로 집행되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민주노총은 의회공간을 확보하기 위한 정치활동에 주력하여 선거와 관련되는 권력자원을 조금이나마 강화시켰지만, 정치적 대중투쟁에 필요한 권력자원을 형성․강화시키지 못하였다. 따라서 조합원들도 자신의 이해나 계급적 이해를 정치적 대중투쟁으로 관철시키려 하기보다 의회에 진출한 민주노동당에 의존하는 방식으로 관철시키려 하고 있다. 조합원들의 정치적 투쟁공간이 의회라는 공간으로 협소해지고, 조합원 스스로 정치적 대중투쟁을 정치활동으로 간주하지 않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둘째로는 신자유주의 개혁세력을 상대로 투쟁했던 민주노동당의 정치활동에 대한 노동자․민중들의 판단이다. 물론 민주노동당은 신자유주의 정치구조 하에서 기본적으로 반신자유주의 전략이라는 정책적 패러다임을 유지하였지만, 노동자․민중들은 신자유주의 개혁세력과의 ‘선택적 연합전략’을 추구하는 민주노동당의 정체성에 대해 혼란스러워하지 않을 수 없었다. 노동자․민중의 입장에서 볼 때, 민주노동당의 정체성이 혼란스러운 것은 곧 반신자유주의 정치에 대한 노동자․민중의 신뢰를 구축하지 못하는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① 노동자․민중정치의 통일성이 강화되지 못하였다. 노동자․민중정치가 반신자유주의 전략으로 통일되는 것이 아니라 ‘쓰레기통9) 속의 신자유주의 개혁전략’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 채, 신자유주의적 개혁을 민주주의적 개혁으로 포괄하려는 전략적 선택의 오류라고 할 수 있다. ② 노동자․민중정치의 적대전선이 희석되었다. 신자유주의 개혁세력은 민주노동당 및 민주노총과의 선택적 연합전략을 동시에 추구하면서 민주노동당 및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하는 반신자유주의 적대전선을 희석시킬 수 있었다. ③ 노동자․민중정치가 부르주아 정치의 제도적 공간으로 압축되었다. 민주노동당이 제도권으로 진출한 이후, 민주노동당은 정치적 투쟁을 비제도적이고 탈법적인 공간으로 확장시키지 못하였다. 각종의 선거투쟁도 선거법을 준수하지 않으면 안되는 조건을 만들어 냈으며, 노동자․민중들의 정치적 대중투쟁들을 조직하기보다 정치적 대중투쟁이 존재하는 공간에 ‘깃발과 연설’만을 제공하는 ‘서비스 정치활동’에 주력하였다.


셋째로는 민주노동당의 조합주의적 정치활동에서 그 원인을 규명하지 않을 수 없다. 민주노총은 민주노동당을 배타적으로 지지하면서 노동자․민중의 정치세력화를 추구하는 주체로 존재한다. 노동자․민중들은 이러한 관계를 바탕으로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 간의 관계를 ‘배타적 등가관계’로 규정해버린다. 민주노총의 부패는 곧 민주노동당의 부패로 인식되거나, 민주노총의 투쟁은 곧 민주노동당의 투쟁으로 인식된다. 이러한 ‘배타적 등가관계’에서 볼 때, 민주노동당의 성패는 곧 민주노총에 조직되어 있는 조합원들의 정치의식과 궤를 같이 하지 않을 수 없다. 조합원들의 정치의식을 판단하는 최소한의 지표를 당원가입, 정치기금 모금, 그리고 계급투표로 설정한다면, 민주노동당은 그 동안 민주노총과 함께 조합원들의 정치의식을 고양시키는데 실패하였다. 2007년 1월 현재, 민주노동당의 당원은 약 80,000명이고, 이 중에서 약 38,000명이 민주노총 조합원이다. 2004년 3월 30일에 비해 약 19,500여 명의 조합원이 당원으로 가입하였고, 전체 당원의 47.5%를 차지하고 있다. 문제는 2007년 1월 현재 당권을 가진 민주노총 당원은 22,382명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당권을 가지고 있는 조합원은 민주노총 전체 조합원 대비 3.44%에 불과하다. 그리고 민주노동당은 2002년 지방선거부터 2006년 지방선거까지 네 번의 전국선거에 참여하였다. 후보자에 대한 평균 지지율은 선거에 참여한 전체 유권자의 3.11%이고, 정당에 대한 평균 지지율은 10.84%이다. 후보자에 대한 득표율은 지속적으로 약간씩 상승하고 있지만, 정당 지지율은 2006년 지방선거에서 오히려 감소하였다. 또한 민주노총은 2002년 대선에서 연맹별로 일정액을 중앙정치기금으로 납부(조합원 1인당 1000원)하여 총연맹의 선거지원 및 당 대선지원금으로 사용하기로 하였다. 모금 목표 총액은 약 60억 2천 만 원 정도(민주노총 조합원 수에 상응)였다. 그러나 모금된 총액은 약 2억 3천 만 원 정도(23,186명의 조합원)였다.10)목표액 대비 모금액의 비율은 고작 3.82%에 불과하다. 민주노총 중앙은 정치활동과 관련된 각종의 선전 및 교육활동, 조직활동, 재정모금활동 등을 지역이나 노동현장의 간부들에게 요구지만, 지역이나 현장에서는 이러한 활동들이 거의 활성화되지 않는다. 지역이나 현장의 노조간부들은 개인적인 정치적 성향, 즉 부르주아 계급의 개혁적인 정당에 대한 지원·지지를 조합원들에게 강요하거나 조합원의 개인적인 판단에 맡긴다. 오히려 민주노총의 간부들을 개별적인 정치적 성향을 내세우면서 신자유주의 개혁세력을 지지하거나, 조합원으로 하여금 신자유주의 개혁세력을 지지하게 한다. 민주노총은 조합원들의 정치의식 수준을 다음과 같이 평가하고 있다. “우리 조합원들은 ‘노동자 정치세력화, 또는 민주노동당’에 대해 그다지 관심이 없고 또 잘 모르는 것이 솔직한 우리의 현실이다.”11)


4) 부르주아 정치를 거부하는 노동자․민중의 전략적 선택


만약 노동자․민중들이 신자유주의 개혁세력으로부터 이탈하였을지라도, 그들 모두가 신자유주의 원조세력을 선택하지 않고 정치적 방관세력으로 남아 있다면, 노동자․민중들은 신자유주의 원조세력과 신자유주의 개혁세력, 그리고 민주노동당을 중심으로 하는 반신자유주의 세력을 동시에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노동자․민중들이 전략적으로 선택한 것은 선거불참이었다. 이러한 현상은 투표를 통한 노동자․민중들의 전통적인 선택으로 설명할 수밖에 없다. 즉 노동자․민중들은 신자유주의 세력에 대한 전략적 선택이나, 민주노동당을 중심으로 한 반신자유주의 세력에 대한 전략적 선택에서 큰 변화를 보이지 않고 있다. 단지 신자유주의 원조세력에 대한 지지기반의 응집력이 강화된 반면에 신자유주의 개혁세력에 대한 지지기반은 이완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 문제는 선거에 참여하지 않은 약 37%의 노동자․민중들이다.

신자유주의 개혁세력에서 이탈한 노동자․민중들은 신자유주의 원조세력의 지지기반으로 이탈한 것이 아니라 정치적 방관세력으로 남아 있다고 보아야 한다. 이러한 방관세력들은 현존하는 신자유주의 정치세력이나 반신자유주의 정치세력 모두를 불신한다고 할 수 있다.

 

<표2> 1987년 이후 전국적 선거 참여율

년도

지방선거

대통령선거

국회의원선거

1987

 

89.2%

 

1988

 

 

75.8%

1992

 

81.9%

 

1995

65.8%

 

 

1996

 

 

63.9%

1997

 

80.7%

 

1998

52.7%

 

 

2000

 

 

57.2%

2002

48.9%

70.8%

 

2004

 

 

60.6%

2007

 

62.9%

 

자료 : 중앙선거관리위원회(2004)


1987년 이후, 노동자․민중들의 투표 참여율은 지속적으로 낮아지고 있다. 2002년 지방선거의 경우, 50% 이하의 노동자․민중들만이 투표에 참여하였다. 특히 정치적 관심도가 높을 수밖에 없는 대통령선거와 국회의원선거의 투표율이 1987년 이후에 지속적으로 낮아지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번 대선에서는 62.9%로 낮아졌다. 정치에 무관심하거나 방관하고 있는 노동자․민중들의 비율이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약 1400만 명의 유권자들이 투표에 참여하지 않았는데, 이는 이명박 후보와 이회창 후보가 모두 획득한 표와 거의 유사하다.

이처럼 정치적 방관세력이 증가하고 있는 현상을 보다 적극적으로 평가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현상이 내포하고 있는 의미는 다음과 같다. ① 부르주아 정치세력의 정치에 대한 노동자․민중들의 관심이 약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단순히 정치적 이슈의 부재에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부르주아 정치에 대한 불신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 ② 정치에 대한 관심을 갖기에는 노동자․민중의 생활조건이 너무나 여유롭지 못하거나 고통스럽다는 사실이다. 노동자․민중들이 자신의 생활조건의 문제를 정치의 문제로 쉽게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생활의 직접적인 이해를 둘러싼 고통을 극복하는 문제만으로도 벅찰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③ 부르주아 정치세력은 노동자․민중을 대상화하거나 소외시키기 위한 최적의 수단을 확보하였다는 점이다. 부르주아 정치세력은 선거전문가 정당으로서 활동만을 하다가, 선거 시기에 소수의 노동자․민중들로부터 권력을 위임받아 국가권력을 확보하면 되는 것이다. ④ 노동자․민중들은 부르주아 정치에 대해 무관심하거나 방관하면서도 또 다른 형태의 정치를 희망한다는 점이다. 노동자․민중들은 유신체제나 군부독재 하에서 정치적 관심을 거의 가지고 있지 않다가, 1987년 6월항쟁 이후 정치적 주체로 등장한 한국사회의 역사를 보더라도, 중남미 지역을 중심으로 한 좌파동맹의 토대를 제공하고 있는 현실의 역사를 보더라도, 노동자․민중들은 부르주아 정치를 방관한다고 해서 정치의 주체성조차 상실하였다고 할 수 없다.


5. 신자유주의 정치세력의 완승과 노동자․민중


1) 노동자․민중과 신자유주의적 개혁실패


노동자․민중들은 신자유주의 카르텔의 희생양으로 존재하면서 더 이상의 고통을 감수할 수 없게 되었고,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희망’이라는 명약을 ‘국가 주도의 성장’에서 찾기 시작한 것이다. 수년 전의 ‘박정희 향수’는 독재자 개인에 대한 향수라기보다는 신자유주의의 고통을 경제성장의 꿀맛으로 해소하려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현상들은 유럽동맹의 주요 국가들에서도 나타난다. 전통적으로 사민주의 정당을 지지했던 프랑스와 독일의 노동자․민중들은 신자유주의 세력을 지지하게 되었고, 스페인에서도 프랑코의 개발독재에 대한 향수가 사회적으로 범람하고 있다. 이탈리아 노동자․민중들도 신자유주의 세력을 지지하는 경향성으로 변화되고 있다. 자본주의적 ‘저성장 장기불황’ 구조에 들어선 선진 자본주의 국가의 노동자․민중들은 ‘국가 주도의 성장’을 반신자유주의 세력에게 의지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신자유주의 세력, 특히 1970년대 경제성장의 한복판에서 일익을 담당했던 한나라당과 이명박에게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단지 노동자․민중들은 이미 한국경제가 ‘저성장 장기불황’구조를 21세기의 새로운 국가주의로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할 뿐이다.


첫째, 한국의 노동자․민중들은 1997년에서 1998에 밀어닥친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국가적 차원의 경제위기로 인해 받아야만 할 고통을 경험하였다. 신자유주의 개혁세력은 이러한 고통을 완화시킨 것이 아니라 본격적으로 강화시켰다. 그런데 노동자․민중들은 자본주의 체제의 ‘저성장 장기불황’ 구조의 문제보다 자신의 생존에 직접 위협을 가하는 문제에 관심을 갖는다. 수구․보수세력들은 신자유주의적 개혁세력과의 정치적 경쟁에서 노동자․민중들의 인식수준을 자극하기 위한 전략을 선택하였다. 한편으로는 신자유주의적 개혁정책의 ‘꿀단지’를 긁어모으는 대신, 다른 한편으로는 특정 대기업이나 국가경제의 위기가 곧 노동자․민중의 생존에 직접적으로 위협을 가한다는 이데올로기 전략을 추구하였다. 소위 민주주의적 신자유주의 개혁에 대해서는 신자유주의 개혁세력을 무능한 의사(pseudo) 좌파로 몰아붙이면서, 좌파 세력에 의한 국가파멸론을 제기하였던 것이다. 노동자․민중들은 ‘국가’라는 ‘두려움에 중독’된 상태에서, 자신의 생존위기를 국가에 의존하는 현상이 전면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한 것이다. 신자유주의 개혁세력은 국가발전의 토대를 강화시키지 못한 것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자본에 대한 각종의 개혁적 규제들이 곧 국가발전의 저해요인이었다는 것이다. 반신자유주의 경쟁정치세력은 국가위기를 조장, 즉 ‘무상의료 및 무상교육, FTA반대’ 등의 정치행위를 하는 반국가적인 세력으로 인식되었다. 


둘째, 한국의 노동자․민중들은 그 동안 남북통일의 필요성을 거부하지 않은 상태에서, 탈군부 정권을 중심으로 하는 통일담론을 수용해 왔다. 그래서 노동자․민중들은 특정한 국면에서 제기되어 왔던 남북관계의 변화조치로 인해 자신의 정치적 선택을 변화시키곤 하였으며, 북한을 적대시하는 남한 정치세력들의 이데올로기적 담론을 부정하는 의식의 변화를 일으키곤 하였다. 그렇지만 노동자․민중들은 신자유주의적 개혁세력을 중심으로 하는 통일정책의 집행과정에서 남북관계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경험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같은 민족이라는 의식뿐만 아니라 하나의 독립국가라는 인식을 동시에 하게 되었을 것이고, 미국이 주도하는 ‘북한봉쇄정책’에 대해 동일한 민족의 문제라기보다는 미국과 북한이라는 국가 간의 문제로 인식하게 되었을 것이다. 이러한 인식의 변화는 곧 남북관계에 대한 노동자․민중들의 무감각성을 증폭시키는 주요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이제는 더 이상 남북관계의 문제는 한국 노동자․민중들의 정치적 선택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요소로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아야 한다.


2) 신자유주의 정책블록의 정책과제


신자유주의 정치세력은 정책카르텔을 형성하고 있을지라도, 동일한 수준의 신자유주의 정책을 집행하지 않을 것이다. YS정부가 신자유주의 도입하는 정책에 집중하였다면, DJ정부는 도입된 신자유주의 정책을 하드웨어 수준에서 집행하였고, NO정부는 소프트웨어 수준에서 집행하였다. 이처럼 신자유주의 정책블록을 형성한 신자유주의 경쟁정치세력은 신자유주의 정책의 대상과 범위, 속도와 강도 등에 있어서 편차를 두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편차가 그 동안 상호 간의 경쟁과 대립으로 표상되어 왔다. 만약 한나라당과 이명박 후보가 정권을 장악했을 경우, 신자유주의 정책은 이전의 정부들과는 다른 차원에서 추진되지 않을 수 없다. 노동자․민중들이 원하고 있는 ‘국가주의적 발전전략’ 및 ‘자본주의 중심부 진입전략’에 조응할 수 있는 통치전략을 구사하는 것인데, 그것은 다차원적 고강도 구조조정정책, 노동조합운동에 대한 분할통치정책, 국가주의 이데올로기 강화정책, 그리고 자유주의적 양당정치 고착화 정책 등이다.


첫째, 다차원적 고강도 구조조정 시스템(Multiple Software System)과 노동조합운동에 대한 분할통치전략이 구축될 것이다. 한국 정치가 대통령을 중심으로 하는 ‘일괴암적 상의하달형’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이명박의 리더십은 ‘실용적 국가권위주의 리더십’으로 표상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국가주의’ 이데올로기는 근대화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주요하게 사용된 권위주의적 리더십의 토대였기 때문에, 사회구성원들은 ‘사회계약’을 통해 국가의 성원으로 생활하게 된 이상, 국가의 존재를 위해 자신의 법·제도적 권리뿐만이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천부적인 권리조차 양보하지 않으면 안되는 권위주의적 리더십의 희생양이 될 것이다. 다차원적 고강도 구조조정 시스템을 작동시키기 위한 리더십이 작동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신자유주의 정책블록은 이미 1994년 YS정부 이후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지만, ‘저성장 장기불황’ 구조를 극복하는데 있어서 한계상황에 직면해 있기 때문이다.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은 사회구조의 제반 영역을 강도높게 구조조정하는 차원에서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이전의 신자유주의 개혁세력들이 공공부문에 대한 구조조정을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을 후퇴시키거나 내부 노동시장의 유연화를 추구하는 방식이었다면, 2008년부터 공공부문의 모든 구성원, 즉 임원뿐만 아니라 노동자들까지 포함하는 구조조정이 추진될 것이다. 또한 민간부문에 대한 구조조정은 각종의 규제완화 및 내․외부 노동시장의 유연화를 극대화하는 차원의 구조조정을 단행할 것이다. ‘다차원적 고강도 구조조정 시스템’은 곧 노동조합운동과 정면충돌을 감안하면서 추진할 것인데, 한나라당과 이명박은 이 과정에서 노동조합운동에 대한 ‘분할통치’를 극대화할 것이다. 특히 노동조합운동의 ‘정치화’에 대해서는 전면적으로 억압하는 대신, 노동조합운동의 경제화에 대해서는 제한적인 유연성을 발휘할 것이다. 특히 이명박 후보가 한 토론회에서 밝혔듯이, 국가의 정치적 권위에 도전하면서 국가경제의 발전에 저해가 되는 노조운동을 쉽게 허용하지 않을 것이다. 이는 곧 정규직 중심의 조직화된 대기업 노조들을 집중적으로 관리하겠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즉 노동조합의 경제주의적 권한을 국가경제에 위협되지 않는 수준에서 허용하는 노동정책을 추구하면서, 노동조합을 노사상생을 통한 국가경제의 발전에 기여하는 운동의 사회적 주체로 유인할 것이다. 그것의 주요한 수단은 노동조합운동의 자주적인 활동조차 관리하고 통제하는 전략, 즉 1990년대 초반 전노협 와해공작의 일환으로 추진된 ‘전노협 가입 사업장 노동조합 업무조사’ 형태의 통제․관리정책도 본격화될 수 있다.


둘째, 한국의 노동자․민중들은 자유주의적 정치질서 재편의 서막을 열고 있다. 역사적으로 한국정치의 탈군부화 과정이 노동자․민중들의 피를 요구했다면, 이제는 노동자․민중들의 전략적 선택만으로도 정치질서를 재편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1987년 이후, 이러한 자유주의적 정치질서 재편이 이루어져 왔지만, 2002년 대통령선거까지는 탈군부화 과정으로 간주될 수 있다. 그런데 2007년 대선에서는 수구․보수세력이자 군사정권의 잔존세력으로 간주되어 왔던 한나라당이 새로운 정권의 주체로 부활하였다. 한국의 노동자․민중들은 자유권이 보장되는 한국정치, 즉 ‘선거게임’의 심판자로 참여하여 정치질서를 자신의 의지대로 재편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은 곧 신자유주의 경쟁정치세력을 중심으로 한 ‘양당제도’의 토대를 실질적으로 고착화하는 계기이다. 만약 2007년 대통령선거에서 한나라당이 정권을 장악한 이상, 신자유주의 개혁세력들은 정치공학적 분할운동과 통합운동을 활발하게 전개하면서, 신자유주의 정치세력에 대한 노동자․민중들의 지지기반을 확고하게 구축하려 할 것이다. 2008년 총선은 다양한 정당의 ‘선거게임’으로 진행될 것이다. 한국정치의 역사적인 특수성을 고려하면, 노동자․민중들의 전략적 선택의 가능성은 두 가지로 구분될 수 있다. 하나는 노동자․민중들이 신자유주의 원조세력으로 하여금 ‘신자유주의적 국가발전 패러다임’을 관철시켜 나갈 수 있도록 거대 여당의 의회를 만들어 줄 가능성이다. 다른 하나는 신자유주의 야당세력들로 하여금 정권을 견제할 수 있도록 ‘여소야대’의 의회를 만들어 줄 가능성이다. 문제는 어떠한 형태의 의회를 만든다 하더라도, 모두 신자유주의 세력들이 주도하는 실질적 양당제도가 구축된다는 점이다. 신자유주의 세력들은 현상적으로는 다당제라 할지라도 실질적인 양당제도를 통해 자유로운 ‘권력이동 체계’를 구축하거나, 혹은 의회라는 ‘경쟁장치’를 이용하여 연립정권을 통한 권력분점의 가능성을 모색할 것이다. 전자의 가능성이 실현된다면, 반한나라당 연합전선의 필요성이 제기될 것이고, 후자의 가능성이 실현된다면, 권력분점을 위한 상호 경쟁관계가 강화될 것이다. 이러한 실질적 양당체제의 가장 큰 문제점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신자유주의 정치세력을 중심으로 한 사회질서의 재편이 노동자․민중의 의지와 무관하게 진행된다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양당제도를 부정하는 정치세력들이 노동자․민중들의 정치적 지원과 지지를 획득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양당제도를 고착화한 정치세력들은 국가권력의 힘을 ‘경쟁적으로 분점’하면서 새로운 정치세력의 등장을 가로막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양당제도는 노동자․민중들의 잠재화된 정치행태, 즉 광범위한 정치적 대중투쟁을 유발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셋째, 한국의 노동자․민중들이 한나라당과 이명박 후보를 전략적으로 선택한 이상, 한나라당과 이명박 후보는 국가발전에 의존하면서 노동자․민중들의 생존위기의 강도를 약화시키고자 노력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의 주요한 수단은 국가발전 이데올로기, 즉 ‘국가의 선진화 전략’ 혹은 ‘국가의 중심부 진입’ 이데올로기가 기승을 부릴 것이다. 노동자․민중들은 이러한 이데올로기를 ‘의구심과 호기심의 눈초리’로 수용하면서, 한나라당과 이명박의 정책을 어느 정도 수용하는 태도를 보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는 정치적 노동조합운동을 백안시하거나 도외시하는 주요 동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 국가경제의 발전을 저해할 수 있는 모든 노동조합운동을 고립화하는 사회적 역량으로 존재할 수 있다. 최근 비정규 노동자들이 목숨을 걸고 투쟁하고 있지만, 그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연대가 미미한 수준에 머무는 것도 유사한 현상으로 볼 수 있다. 물론 이러한 이데올로기는 1987년 체제가 수립된 이후 지속적으로 동원해왔던 통치전략이었지만, 2008년부터는 사회구성원들의 ‘자발적인 참여와 동원’의 구조 속에서 그 힘을 발휘할 수 있다. 

이러한 국가주의 전략은 남북관계에서도 힘을 발휘할 것이다. 한국의 노동자․민중들은 2008년부터 남북관계에 대한 ‘통일 패러다임’의 변화, 즉 ‘국가지원 패러다임’을 ‘국가발전 패러다임’으로 변화시킬 것을 요구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한나라당은 그 동안 신자유주의 개혁세력들이 구축해 놓은 ‘남북평화경협관계’를 유지․강화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관계가 곧 ‘국가발전 패러다임’과 조응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고, 또한 장기불황구조를 타개하기 위한 하나의 방책, 특히 중국을 상대로 하는 미국의 ‘대북한 저강도 유연화 전략’에 부응하는 수준에서 남북평화경협체제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북한을 상대로 한 한미관계의 공조체계 및 한일관계의 공조체계의 복원도 이러한 구조적 틀 내에서 이루어질 것이다. 다만 그 형식과 내용이 변화된다는 것이다. 남북관계에서 국가 중심의 일방적인 지원형식이 아니라 시장 중심의 교환형식, 즉 ‘수평적 주고받기 형식’이 강화될 것이다. 북한도 역시 미국의 변화된 전략에 부응하기 위해서라도 남한과의 관계를 시장 중심의 수평적 교환관계를 적극적으로 고려하지 않을 수 없고, 북한 노동자․민중들의 생활조건을 개선시키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은 신자유주의 개혁세력의 대북관계를 변화시키겠다는 이명박 후보의 표상과 달리, 오히려 신자유주의 개혁세력의 대북관계를 다차원적으로 활용할 것이다. 예를 들면, 한나라당은 DMZ지역의 환경을 국제적인 수준에서 보호하기 위한 공약을 제시하고 있는데, 이 공약은 곧 경제적인 문제만이 아니라 환경문제까지도 남북 간의 수평적인 관계에서 해결해 나가겠다는 의지로 볼 수 있다.

만약 한나라당의 남북관계가 이런 차원에서 형성․강화된다면, 남북관계는 실용주의적 상호발전전략의 차원으로 고착화될 수 있다. 북한도 역시 실용주의적 발전전략을 거부하기에는 한계상황에 직면해 있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남북관계가 이러한 차원으로 유지된다면, 소위 친북한적인 노동자․민중의 진보정치세력들은 시민운동세력과 함께 반한나라당 전선을 형성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실용주의적 남북관계를 유지하는 ‘한나라당 활용론’이나 ‘민족 동반발전론’이 지속적으로 제기될 것이기 때문이다.12)


6. 노동자․민중정치의 과제


한나라당은 권력이동의 종지부를 찍기 위해 2008년 총선에서 거대여당으로 등극하기 위한 전략들을 모색할 것이다. 가장 확실하게 추진할 수 있는 전략은 노동자․민중들의 ‘두려움의 중독’과 ‘허상의 국가희망’을 자극하는 것이다. 즉 ‘21세기의 새로운 국가주의’를 형성하는 전략은 노동자․민중들에게 ‘당근과 채찍’을 주는 것인데, 당근으로는 초국적 자본의 유입을 통한 한국경제의 ‘신버블화’이고, 채찍으로는 소위 신자유주의적 ‘구조개편 완료정책’에 저항하는 노동자․민중들을 탄압하는 것이다. 노동시장의 전면적 유연화 정책, 자본에 대한 규제완화 정책, 공공부문에 대한 신자유주의적 재편정책 등이 다차원적으로 추진될 것이다. 이러한 당근과 채찍은 이중적인 효과를 불러일으킬 것이다. 한편으로는 노동자․민중의 계층적 분할이 가속화될 수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노동자․민중의 전면적 저항이 강화될 것이다. 두 가지의 ‘효과요인’들이 곧 2008년 지배세력과 노동자․민중세력 간의 ‘힘 관계’를 결정하게 된다. 계층적 분할의 효과가 클 경우에는 노동자․민중들의 저항이 사회적으로 고립된 상태에서 전개될 수밖에 없고, 전면적 저항의 효과가 클 경우에는 부르주아 정치의 무관심층으로 이탈한 노동자․민중들과 함께 새로운 노동자․민중정치의 전형들이 만들어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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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정세요약 (nk)

 

2008년도 경제전망 1 


대선 후보들이 저마다 자신을 경제살리기의 주역이라고 떠벌리고 있다. 그러나 2008년 경제전망은 낙관하기 어려우며, 오히려 암울할 것이라는 예측이 지배적이다. 특히 미국경제의 불안정성이 세계경제 전체로 확대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아래에서는 관련기사들을 종합하여 2008년 경제전망에 대해 1차 정리하고자 한다.


☞ 미국경제성장률 둔화될 것


파이낸셜뉴스1)는 CNN머니 등 주요외신을 인용하여,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가 내년도 미국 국내총생산 GDP가 2.7% 성장에 그칠 것이라고 전망했다고 소개하였다. 이는 당초 예상치였던 3.1%에서 2%대로 하향 조정한 것이다. 이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인한 주택시장 침체와 금융권의 신용경색이 지속될 것, 여기에 실업률 역시 당초 예상치 4.7%보다 0.2%포인트 높아진 4.9%에 달할 것이라는 진단이 작동했다고 덧붙였다.


한편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도 지난 20일(현지시간) 미국의 경제성장률을 이전 전망치인 2.5%∼2.75%에서 1.8%∼2.5%로 낮췄다. 2009년 경제성장률 역시 2.7%에서 2.3%로 하향 조정했다. 백악관이 제시한 2.7%보다 훨씬 낮은 수준이다. 실업률 4.8%로 백악관의 전망보다 낮았다.


골드만삭스도 내년도 ‘경기침체’ 가능성을 40∼45%로 높게 잡고 있다. 채권투자의 귀재인 핌코의 빌 그로스도 미국 경제가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로 인한 여진으로 대공황 정도로 위축되지는 않겠지만 제로 성장을 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실제 민간부문의 침체는 더욱 커지고 있다. 미 상무부가 지난달 28일(현지시간) 발표한 지난 9월 신규주택판매의 수정치는 71만6000건으로 급격하게 줄어들어 1996년 1월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고 8월의 77만건보다도 적었다.


10월 신규주택판매는 1.7% 증가했지만 9월의 신규주택판매가 급격한 하향조정의 결과라고 밝혔다. 10월 신규주택판매는 1.7% 늘어난 연간기준으로 72만8000으로 집계됐다. 이에 따라 주택건설업자들이 주택재고물량을 해소하기 위해 주택가격을 내릴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이와 함께 10월의 신규주택 중간가격은 지난 9월보다 8.6% 하락했고 작년 10월보다는 13% 떨어진 21만7800달러로 조사됐다.


☞ 세계경제 성장도 둔화될 것


미국경제의 성장둔화 예상은 세계경제 성장률 예상과도 연동되어 나타나고 있다. 지난 30일 국제통화기금(IMF)은 유가폭등과 국제금융시장의 신용경색 사태가 내년 세계 경제성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내다봤다.2)


마수드 아메드 IMF 대변인은 이날 정기 브리핑에서 최근 유가폭등 및 금융시장의 혼란과 관련, “당초 예측했던 것보다도 위험도가 훨씬 높다”며 “내년 세계경제성장률 전망치를 하향조정하게 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아메드 대변인은 정확한 수치는 공개하지 않았다.


IMF는 지난달에도 내년 세계 경제성장 전망치를 종전 5.2%에서 4.8%로 하향조정한 바 있다. 다만 그는 일부 선진국과 신흥시장의 활발한 3분기 경제활동에 힘입어 올해 경제성장률은 당초 전망치인 5.2%를 상회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미국발 서브프라임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로 촉발된 국제 금융시장의 신용경색사태에 대해 “전세계 주가가 하락하는 가운데 미국과 유럽의 은행들은 수십억달러의 손실을 보고 있다”며 “이번 사태의 여파가 심각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서브프라임모기지의 부실이 주택시장의 불안과 소비지출 둔화, 경기둔화를 불러오는 연쇄효과를 일으킬 가능성에 대해서도 우려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특히 신흥시장의 경우 이번 모기지 사태에 별다른 피해를 보지는 않았지만,국제 신용시장의 경색으로 인해 향후 부정적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 서브프라임 모기지론의 여파


한편 세계경제 둔화와 관련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사태를 직접적인 원인으로 지목하기도 한다.3)


'주택경기 침체'는 바로 '신용 위기의 지속'을 뜻한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는 미국에서 신용등급이 낮은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고금리로 주택마련 자금을 빌려 주는 대출을 의미한다. 그런데 대부분의 서브프라임 모기지는 채권으로 만들어져 전 세계 금융회사와 연기금 등이 보유하고 있다. 때문에 모기지 부실이 늘어날수록 이들 채권의 부실도 커질 수밖에 없다. 지난 3분기(7~9월)에만 씨티그룹,메릴린치 등 금융회사들이 손실 처리한 금액은 500억달러(약 46조원)에 달한다고 한다. 도이체방크는 이 금액 규모가 내년엔 1300억달러(약 121조원)로 불어날 것으로 예상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한 술 더 떠 3000억달러(약 279조원)에 이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경고했다.


문제는 금융회사의 피해가 미국 회사에 국한된 게 아니라는 것이다. HSBC와 바클레이즈,스위스리 등 내로라하는 유럽 금융회사들도 이미 상당액을 손실 처리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유럽 금융회사들의 피해는 더 커질 것이란 전망도 있다. 유럽중앙은행(ECB)도 대규모 유동성을 추가 공급해야 할 상황이다. 영국 주택 소유자 수십만명이 모기지 부담으로 집을 내놓아야 할지 모를 '시한폭탄'이 작동하고 있다는 경고도 나왔다.


일본 금융회사들도 3분기에 상당 부분의 손실을 감수해야 했다. 주택경기 침체와 신용 위기는 지금도 미국 경제를 옥죄는 요인이다. 내년에 두 가지 상황이 더욱 나빠지면 미국 경제의 연착륙(경기 과열이 완만하게 진정되는 것)은 장담하기 어렵다. 미국 경제가 침체에 빠지지 않고 둔화되더라도 세계 경제는 몸살을 앓을 수밖에 없다. 당장 달러화가 더욱 약세를 보일 건 뻔하다. 달러화 자산(미국 주식,채권 등)에서 빠져 나온 돈이 원유 등 원자재로 몰리면서 유가는 상승 압력을 받게 된다.


☞ 국부펀드 논란


일부에서는 서부프라임 모기지론의 충격을 흡수할 대안으로 국부펀드를 언급하기도 한다.


국부 펀드에 대한 사전적 정의는 없지만 일반적으로 정부가 공적 외환보유액과 별도로 재정 흑자 등의 잉여 자금을 재원으로 조성해 수익성 위주로 운용하는 투자 기구를 의미한다. 공적 외환보유액은 환투기 공격 등 유사시 바로 사용할 수 있도록 현금으로 바꾸기 쉽고 안전한 선진국 정부 채권 의 형태로 가지고 있는 것이 보통이다. 이와 달리 국부 펀드 는 좀 더 장기간 돈이 묶이더라도 보다 높은 수익을 거둘 수 있는 고수익 채권,주식,부동산 등 다양한 자산에 투자한다. 쿠웨이트가 1953년 석유 판매 수입을 재원으로 쿠웨이트 투자위원회를 설립하고 런던에 투자사무소를 개설한 것이 국부 펀드의 시작이다. 현재 세계 최대 국부 펀드는 아랍에미리트의 아부다비투자공사(ADIA)로 8700억달러를 굴리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100억달러(약 10조원) 이상의 자산 규모를 가진 국부 펀드만 20개 정도에 이르고 있다. 외환보유액 세계 1위를 자랑하는 중국도 지난 9월 2000억달러 규모의 국부 펀드인 외환투자공사를 발족시켰다. 모건스탠리 자료에 따르면 전 세계 국부 펀드의 총 규모는 2조5000억달러로 추정된다. 이는 전 세계 외환 보유액 5조1000억달러의 절반에 달하는 규모다. 헤지펀드 운용액인 1조5000억달러보다도 많은 데다 5년 후에는 공적 외환보유액보다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실제로 한국경제4)에 따르면 국부펀드가 서브프라임 모기지 충격으로 위기를 맞은 세계 최대 금융회사 씨티그룹의 구세주로 나섰다는 것이다. 씨티그룹은 75억달러(약 7조원)의 자금을 아랍에미리트(UAE)의 아부다비 투자청(ADIA)으로부터 긴급 수혈받기로 합의했다고 지난달 27일 발표했다. ADIA는 75억달러를 투입하는 대신 씨티그룹의 지분 4.9%에 해당하는 전환사채를 받기로 했다. 시티가 지급해야할 전환사채 이자는 무려 연 11%에 달한다. 이는 쓰레기 채권이라는 정크본드(연 9%)보다도 높은 수준이다. 전환사채(CB·Convertible Bond)는 주식으로 전환할 수 있는 채권이어서 이를 인수하면 주식을 사들이는 것과 같은 효과가 생긴다. 로이터통신은 "ADIA가 전환사채를 모두 주식으로 바꿀 경우 알왈리드 빈 탈랄 사우디아라비아 왕자를 제치고 씨티그룹의 최대주주로 부상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씨티그룹은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로 인해 최근 110억달러(약 10조원)에 달하는 자산을 손실 처리해야 했다.


한편 유럽과 미국 등에는 국부펀드에 대한 경계론이 널리 퍼져 있는 상태다. 선진국들은 개도국이 국부펀드를 이용해 전략적인 목적으로 선진국의 통신, 에너지, 금융산업 등에 대한 투자를 확대할 경우 국가안보 저해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을 경계하고 있다. 또 개도국이 국부펀드의 막대한 자금력을 이용해 환율개입, 공정경쟁 저해 등 국제경제 여건을 자국에 유리한 방향으로 전개하는 데 이용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IMF는 유가 등 국제원자재 가격이 하락할 경우 산유국 등 원자재 생산국이 국부펀드를 이용해 가격 흐름을 바꿀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실제로 미국은 IMF와 세계은행이 국부펀드의 자산운용에 관한 국제적인 행동규범(code of conduct)을 제정할 것을 제안했고, 국부펀드에 의한 자국기업 인수를 견제하기 위해 Exon-Florio법을 개정하여 외국정부 또는 대리인의 투자도 외국인투자관련 필수조사대상에 포함하고 있다. 독일도 미국의 외국인투자위원회(CFIUS)와 같이 국부펀드의 자국 기업 투자를 감시·제어할 수 있는 기구설립을 추진하는 한편 프랑스와 공동으로 EU 및 G7 차원에서 국부펀드에 대한 대응방안을 모색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대해 프랑스의 파이낸셜 타임즈지는 “프랑스의 한 당국자가 유럽은 특정한 전략산업부문에서 국부펀드의 투자활동을 직접 규제할 수도 있다고 언급했고, 그동안 다른 유럽국가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자본자유화를 강조해 온 영국도 J. Hutton 기업부장관이 국부펀드관련 추가조치가 필요할 경우 다른 EU국가와 협력할 것이라고 언급했다”고 보도했다. 알뮤니아 EU 집행위원 또한 “투자대상, 운용기준, 투자구성 등의 측면에서 투명성을 제고하지 않을 경우 국부펀드들의 선진국 전략산업 투자 시도에 대해 적절한 대응조치를 강구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 국부펀드 논란은 실상 신자유주의세계화 특히 금융세계화에 따른 자본블럭간의 경쟁 및 대립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실제로 언론보도에 따르면 개도국 국부펀드 성장세가 지속되면서 국부펀드의 운용을 둘러싼 선진국과 개도국 간 갈등이 확대될 우려되고 있다고 한다. 개도국들은 그동안 자본자유화를 추진해 오면서 시장규율을 강조하였던 선진국의 국부펀드 규제강화 움직임에 반발해 왔다. 국부펀드를 통해 선진국 주요산업에 대한 투자, 인수를 확대하려고 하는 개도국과 자국의 기간산업을 보호하려는 선진국 간 마찰이 빈번해지면서 보호주의가 확산될 우려도 있다. 한편 해외 대형 국부펀드들이 신흥시장국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고 있어 국내투자 확대 가능성에 대비할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실제 쿠웨이트, 카타르 등 중동 국부펀드들은 고성장 등으로 상대적으로 투자수익률이 높은 중국 등 아시아국가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카타르 투자청 최고책임자를 겸직하고 있는 쉐이크 하마드 총리는 최근 “아시아지역에 대한 포트폴리오 비중을 40%까지 높일 계획”이라며 “쿠웨이트 투자공사도 미국과 유럽 투자 비중을 90%에서 70%로 줄이는 대신 중국, 인도 등 아시아지역의 부동산, 사모펀드 등에 대한 투자확대를 추진 중이다”고 말했다.5)


결론적으로 볼때 세계경제의 불안정성에 대한 경고는 계속되고 있다.


무엇보다 부실규모가 날로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메릴린치는 3분기에 22억4000만달러의 적자를 봤고 UBS도 7억4000만달러의 적자를 기록했다. 은행 실적 악화는 미국계 뿐만 아니라 영국 프랑스 독일 스페인 일본 등으로 확산되는 분위기다.


문제는 앞으로 부실상각이 더 많아지고 손실액도 커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서브프라임과 관련된 자산가격 하락으로 4분기 부실상각 규모가 큰 폭으로 확대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주요 투자은행들이 예상하는 서브프라임 관련 총손실 추정액이 빠르게 늘고 있다.


OECD는 내년에만 3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했으며 도이치뱅크와 골드만삭스는 총손실 추정액을 3000억~4000억달러로 내놓았다. UBS는 4800억달러, RBS는 5000억달러로 전망했다. 또 전세계의 부채담보부증권(CDOㆍCollaterized Debt Obligation) 손실규모 역시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JP모건이 CDO손실규모를 2600억달러로 예상했다. 이는 UBS증권의 전망치인 850억달러의 3배에 달하는 규모다. 부채담보부증권은 빚을 담보로 발행되는 자산담보부증권(ABS)의 일종이다.


여기에 미국의 주택가격 하락은 모기지 연체율 증가와 담보주택의 유질 처분 증가, 기존 주택의 공급 확대로 주택가격을 다시 떨어뜨리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서브프라임모기지론 부실로 금융기관들의 대출조건이 강화되고 있다. 이는 연체율을 올리고 다시 주택경기를 위축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는 분위기다. 모기지대출 연체율은 2005년 하반기부터 상승하기 시작했다. 올 2분기 서브프라임 연체율은 14.82%까지 올라섰다. 프라임 연체율은 2.73%였다. 3분기 은행들의 전체 주택대출 연체율은 2.74%로 1년만에 1%포인트 올랐다. 주택가격 하락과 연체율 증가는 결국 원리금을 못 갚은 상황을 만들어 주택이 경매 등으로 다시 시장으로 나오는 상황을 만들고 있다. 주택공급이 확대되면서 가격이 더 떨어질 수밖에 없다. 주택가격이 떨어지면 구매자들도 매입 시기를 늦춰 수요는 더 줄게 된다.


문제는 주택경기 침체가 경기 하강으로 이어질 가능성이다.6)


☞ 아시아경제의 불안정성


상황이 이렇게 되니, 미국경제의 어려움을 아시아나 유럽이 보완할 것이라는 주장대신 전세계적인 경기침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확대되고 있다.7) 이는 중국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일예로 중국 경제가 세계의 공장임을 자처하지만 선진국 원청기업의 하청공장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에 미국ㆍ유럽의 경기가 후퇴하면 타격을 입을 것이라는 전망이 그것이다.8) 최근 한달여 사이 상하이증시는 20.04% 급락해 베어마켓(bear market)에 진입했으며 중국 부동산 열풍의 진원지인 광둥성 선전의 신규주택 거래량이 절반 이하로 뚝 떨어졌다. 중국 증시와 부동산에서 거품 붕괴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30일 베이징상보(北京商報)에 따르면 저우샤오촨(周小川) 인민은행장은 중국 공상은행과 HSBC은행이 공동 주최한 포럼에서 중국 경제의 경착륙 가능성을 이례적으로 거론했다. 저우 행장은 “지금 전세계 범위에서 경제가 서로 영향을 받게 돼 있다”면서 “중국 은행들이 미국 서브프라임 사태에 따른 경기 파동에 경각심을 갖고 대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미국 씨티은행은 중국 경제가 구조적인 조정에 따른 ‘진통기’에 진입할 가능성이 있다고 예측했다. 선밍가오(沈明高) 씨티은행 수석분석가는 “중국 통계국에 따르면 중국 경제는 지난 10월에도 공업생산지수는 물론 도시민 가처분소득과 소비자물가지수(CPI) 등 주요 지수가 과열상황을 나타내면서 다시 ‘경고등’이 켜졌다”면서 “재정수입이 6개월 연속 ‘경고지대’를 벗어나지 못한 상황 등에 경각심을 가져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중국 증시와 부동산의 버블 붕괴 가능성도 제기된다. 청쓰웨이(成思危)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상무부위원장도 최근 “증시와 부동산이 동시에 비정상적인 과속성장을 지속하고 있다”며 부동산 거품 붕괴 가능성을 제기했다.


실제로 중국정부는 내년 경제 운용의 방향을 경기과열과 통화팽창 억제에 두겠다고 밝혔다.


이는 중국 경제가 막대한 외자 유입과 고정자본 투자 과열 등으로 고성장을 유지할 것이라는 전망에 따른 것이다.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은 27일 내년도 경제 정책 방향을 정하는 정치국 회의를 열어 통화팽창과 과열경기를 억제하는 양방(兩防) 정책을 결정했다고 중국 언론들이 28일 보도했다. 올들어 고공행진중인 중국 물가는 10월 6.5%의 상승률을 기록, 10년래 최고치를 경신했다. 하지만 10월 이후 국제유가가 급등하고 유가인상으로 공공교통요금 등 서민 물가가 들썩이고 있다. 중국 지도부는 이 같은 물가상승이 저소득계층의 생활에 영향을 미쳐 사회안정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펑싱윈(彭興?) 중국 사회과학원 금융연구소 주임은 “통화 팽창을 막기위한 조치는 과감하게 추진돼야 한다”고 말했다.9)


☞ 2008년 한국경제 전망은?


2008년도 한국경제 전망과 관련하여서는 다소간에 차이가 존재한다.


삼성경제연구소는 비교적 낙관적인 전망을 내놓았다.10) 이들은 20일 `2008년 한국경제 전망`을 통해 대외여건 악화에도 불구하고 내년 경제성장률을 당초 예상치인 5.0%로 유지한다고 밝혔다. 올해 경성장률은 4.8%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했다. 상반기 수출과 설비투자 호조, 하반기 소비회복 등의 요인에 힘입어 경기상승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내년의 경우 한국경제는 `상고하저`의 형태를 보일 것으로 전망됐다. 상반기중 전년동기대비 5.2%, 하반기는 4.6% 성장할 것으로 예상했다. 연구소는 "서브프라임 부실이 확대되고 있지만 당초 예상을 넘어서는 미국 경제의 하강세를 확인하긴 어렵다"고 진단했다. 또 "세계경제나 한국경제 모두 유가상승에 대한 면역성이 커져 고유가의 영향은 크지 않을 것"이라며 "미국경제 둔화에도 불구, 신흥국가의 성장은 지속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런데 이들도 다만 미국 주택시장 침체가 소비부진으로 이어질 경우 한국경제도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단서를 달고 있다. 즉 미국경제가 1%미만으로 성장한다면 내년 수출증가율이 한자릿수로 하락할 것이란 설명이다. 또 글로벌 금융시장 불안으로 주식시장 호황을 바탕으로 한 소비회복도 기대하기 어려울 것으로 내다봤다. 만일 이같은 상황이 일어날 경우 내년 성장률은 올해보다 낮은 수준을 기록할 수도 있다는 설명이다.


한국경제 전망과 관련 주요언론 연구소들의 입장은 비관론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11) 무엇보다도 체감경기가 문제라고 지적되고 있다. 한국은행이 전국 2407개 업체를 대상으로 조사한 제조업체의 11월 업황전망 실사지수(BSI)는 90으로 전월보다 3포인트 하락했다. 3개월 연속 하락세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조사한 내년 1분기 BSI 전망치는 99로, 전분기에 비해 6포인트 하락하면서 4분기 만에 처음으로 기준치(100) 밑으로 떨어졌다. 내년 1분기 경기가 전분기보다 악화될 것으로 예상한 업체는 28.9%로 경기상승을 예상한 업체(27.7%)보다 많았다. 주택담보대출의 기준금리로 적용되는 양도성예금증서(CD) 금리는 6년 반만에 최고치를 기록했고 주식시장은 조정과 반등을 반복하며 해외발 변수에 출렁거리고 있다.


권순우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미국 서브프라임 부실과 고유가 , 중국발 인플레이션 등 크게 세가지 대외악재가 아직까지는 실물경제로 전이되지 않았다"면서도 "내년이후에는 타격이 불가피하다는 시각이 우세하다"고 우려했다. 그는 "미국 경기가 연착륙된다면 디커플링이 가능하겠지만 침체로 빠진다면 수출 등 우리 경제도 영향권에서 벗어날 수 없다"며 "최근 경기회복의 든든한 버팀목인 소비 회복도 금융시장 불안심리에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신민영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BSI가 뚝뚝 떨어지고 있고 금융시장 불안이 주식시장에 반영되면서 기업과 투자자들의 심리불안이 나타나고 있다"며 "그렇게 되면 내수의 큰 축인 투자와 소비에 영향을 주게된다"고 분석했다.


그는 "미국을 따라 유럽이 불안해지고 투자자금이 아시아권에서 이탈되면 우리도 전염효과에 들어갈 수 밖에 없을 것"이라며 "내년 성장률을 5%로 전망했지만 내달 중순까지 조정 여부를 검토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2008년 경제전망 관련 기사정리 2


작성: TJ


지난 경제전망 1에서 다루었던 것처럼, 200년 경제전망의 주요변수는 미국발 서브프라임모기론사태로 인한 여파, 중국경제의 긴축정책이 가져올 변화이다. 이번주 경제동향에서도 이를 중심으로 경제전망관련 각종 기사를 정리요약하고자 한다.


제목: 서브프라임사태 어디로 가나?


세계경제 비동조화론자들의 주장, 일부 경제연구소가 08년 한국경제 성장률이 5%를 유지할 것이라는 진단에도 불구하고 주요언론들은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의 여파를 우려하는 기사를 계속 싣고 있다. 이를 반영하듯 한국정부 당국도 서브프라임 모기지 문제에 대해 공공연히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지난 10일 재정경제부와 한국은행에 따르면 부시 미 대통령이 앞으로 5년간 일부 서브프라임 모기지 금리 동결을 추진하겠다고 지난주 발표했지만 서브프라임 모기지 연체율은 더욱 높아질 것으로 분석됐다.

재경부 관계자는 “만기 30년짜리 서브프라임 모기지 금리는 대출 초기 몇 년간은 연 2∼3%로 낮지만 그 이후엔 훨씬 높아지는 구조”라면서 “2005년 이후 모기지 대출자는 내년 1월부터 금리가 재조정돼 치솟기 때문에 국내 금융시장에 미칠 충격이 내년초부터 더 커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걱정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내년과 2009년 중 금리 재조정 대상자는 180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미국은 2005년부터 지난 7월 사이 이뤄진 모기지 대출 가운데 투기자가 아닌 주택의 실거주자로 60일 이상 연체가 없는 등의 조건을 충족하면 금리를 동결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대책이 제대로 추진된다고 해도 120만가구만 혜택을 보게 된다는 것이다.


더욱 중요하게 부시정부의 이번 서브프라임 모기지 금리동결 조치가 단지 실효성을 갖지 못할 뿐만 아니라 실상은 투자자를 위한 조치에 불과하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즉, 서브프라임 모기지론에 대한 금리동결 계획은 다가올 몇 달 동안 그들의 집을 잃게 될 수많은 가정들의 압류(foreclosure)을 막는 데에는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할 것이며, 미국의 주택시장 붕괴와 이에 따른 신용위기로 인해 금융거인들이 감수해야 하는 손실을 축소하는데 있다는 것이다.

부시행정부의 계획에 따르면 모기지 대출기관이 자발적으로 소수의 서브프라임 변동금리 차입자 들에게 최초차입 수준의 금리로 - 이미 통상적인 주택대출(conventional home loans)보다도 몇 퍼센트 더 높은 수준 - 5년 동안 금리를 동결해주게 될 것이다. 오직 그들의 대출을 상환할 능력이 있는 이들과 “최초” 차입 금리를 간신히 낼 수 있을만한 이들만 이 동결조치에 해당하고 더 높은 금리를 지불하지 못할 이들은 다가올 몇 달 동안 축출 명단에 오를 것이다. 이렇게되면 최초의 낮은 금리나 더 높은 갱신된 금리를 갚지 못할 서브프라임 차입자들은 제외될 것이다. 이는 저소득 또는 중산층의 절대 다수의 주택 소유자들이 모기지 상환을 위해 고통을 겪고 그들의 주택은 구원을 받지 못하게 됨을 의미한다.

목요일 기자회견에서 폴슨 재무장관은 한 기자의 질문에 대답하는 과정에서 부시 행정부의 계획이 실패한 주택대출로부터 그들의 손실을 줄이고자 하는 모기지 대출자들이 이미 시행하고 있는 모기지 조정 과정을 “조율”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강조했다.

이 계획은 2005년 1월 초에서 2007년 7월 말까지 이루어진 대출에 적용되며 2008년 1월 초와 2010년 7월 말 사이에 조정될 예정이다. 이는 자동적으로 2007년 4분기에 조정될 예정인 모기지 850억 달러는 제외되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그들의 주택을 위해 자본을 충당했던 서브프라임 차입자 들을 위해 연방주택사업국을 통한 자금재조달(refinancing)의 촉진, 그리고 중앙과 지방정부가 리파이낸싱을 조달하기 위한 비과세 채권을 발행할 수 있도록 하는 규제완화도 포함한다.

이 계획은 결국 노동계급 가정, 빈 집으로 메말라갈 커뮤니티, 부동산세 감면에 시달릴 중앙과 지방정부 등이 직면한 사회적 재앙을 줄이는 데에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하는 반면, 정치인들과 금융인들은 이 계획이 신용시스템에 대한 신뢰가 부식하는 것을 막고 월스트리트가 재앙적인 붕괴에서 벗어나도록 하는 데 충분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는 당장 은행과 투자자들이 수백만 달러의 악성투자를 상각 처리하는 것을 지연시키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세계경제 동조화론으로 돌아서는 것은 거대 금융자본도 마찬가지이다. 세계경제가 미국경제의 그늘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디커플링(decoupling)’을 일찌감치 예견한 골드만삭스도 서브프라임 부실사태를 계기로 예전의 시각을 180도로 수정했다. 피터 베레진 골드만삭스 이코노미스트는 “세계경제가 일제히 미국발 악재에 충격을 받고 있다”며 “오는 2008년은 동조화 현상이 다시 찾아오는 ‘리커플링(recoupling)’의 해가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골드만삭스는 내년도에 거시경제 분석 대상 38개국 가운데 26개국의 경제성장률이 떨어지고 불과 12개국만 전년보다 높아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세계경제 성장률도 당초 4.7%에서 4%로 하향조정했다. ‘브릭스’라는 신조어를 만든 짐 오닐(사진)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유럽과 일본은 수많은 리스크가 잠복해 있어 미국보다 빠른 속도로 경기가 둔화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영국과 캐나다 중앙은행은 미국발 금융 충격에 따른 자국 경제의 침체 가능성에 대비해 지난주 금리인하를 단행했으며 유럽중앙은행(ECB) 역시 조만간 금리인하 추세에 동참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미국경제와의 동조화를 부른 최대 요인은 역시 미국 부동산발 소비 침체다. 스티븐 로치(사진) 모건스탠리 아시아태평양부문 회장은 “미국 소비자들은 세계경제를 뒷받침하는 초대형 고릴라”라며 “미국의 주택경기 침체가 소비 둔화로 연결되면서 세계경제가 미국과 탈동조화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게 됐다”고 분석했다.

대미 수출의존도가 높은 아시아 역시 상당한 타격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타이 휘 스탠다드차타드은행 동남아시아 책임자는 “미국 소비 침체로 홍콩ㆍ대만ㆍ말레이시아ㆍ싱가포르의 수출이 감소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한국 역시 미국의 소비 둔화로 적지않은 고통이 예상된다. 후쿠이 도시히코 일본은행 총재도 이달 3일 기자회견에서 “해외발 경기하강 위험이 확대되고 있다”고 말했다.


여기에 오토론 문제까지 겹쳐질 경우 상황은 더욱 나빠질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7일 보도자료에서 리먼브라더스를 인용, 지난 2006년 오토론 신청자 중 신용등급이 최상위이면서도 30일이상 자동차 할부금 상환을 연체한 차입자의 비율은 9월말 현재 4.5%를 나타내 직전월인 8월의 2.9%를 크게 웃돌았다며 이는 월간 기준으로 8년래 최대 상승폭을 기록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즉, 지난 9월말 현재 신용등급이 좋지 않은 서브프라임 모기지 차입자 중 12%가 오토론 연체자에도 포함된 것으로 나타나 8월의 11.1%에서 크게오른 것으로 집계됐다.

신문은 오토론 시장의 상황이 모기지 시장과 같은 재앙 수준으로 발전하지 않을것으로 업계에서는 전망되고 있다며 그러나 주택차입자들이 주택대출을 상환하지 못하듯이 자동차 할부금을 상환하지 못할 수 있다는 점에서 모기지 시장과 오토론 시장은 연결돼 있다고 지적했다. 신문은 미국의 자동차 판매가 올 들어 2.5% 감소했고 내년에도 추가 감소할 것으로 예상되는 데다 오토론 금리도 지난 2004년말 6.5% 수준에서 8%로 급등했다며 이는 미국의 소비지출을 비롯한 경제 전반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으로 주장했다.

오토론이 모기지 채권과 마찬가지로 증권화가 활발히 이루어졌던 점도 문제로 지적됐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에 따르면 지난 2006년 오토론을 기초로 발행된 자산유동화증권(ABS)은 890억달러에 달해 모기지와 신용카드 계정에 이어 3위를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도이체방크에 따르면 오토론을 기초로 발행한 ABS는 올 들어 11월까지 690억달러를 기록해 작년동기보다 19% 감소한 것으로 집계됐다.

신문은 오토론 연체율이 보다 광범위한 경제의 건전성과 밀접한 연관이 있으며 오토론 시장에서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는 신호는 신용위기 상황이 미 경제 전반에 보다 광범위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고 덧붙였다.



제목: 제목: 중국경제의 경기과열 억제정책과 한국경제와의 관계


지난 경제전망 1에서도 언급했듯이 중국당국은 경기과열 억제정책의 필요성을 공공연히 언급한바 있다. 문제는 이것이 세계경제와 한국경제에 가져올 여파이다. 관련된 기사들에 근거하면 매우 부정적인 효과로 이어질 것이라는 견해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먼저 사실관계부터 확인해보자.

중국의 중앙은행인 중궈런민(中國人民)은행은 25일자로 시중은행의 지급준비율을 현행 13.5%에서 14.5%로 1%포인트 인상한다고 8일 발표했다. 이 같은 지준율은 1985년 이후 22년 만에 최고 수치다. 이번 조치는 5일 폐막한 내년도 중앙경제공작회의에서 중국 정부가 ‘통화정책의 기조를 안정에서 긴축으로 전환하겠다’고 선언한 뒤 사흘 만에 나온 것으로, 경기 과열과 물가 앙등을 강력하게 억제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특히 지준율을 0.5%포인트씩 올리던 데서 벗어나 일거에 1%포인트를 올린 것은 그만큼 정부와 중앙은행의 긴축 의지가 강력하다는 점을 보여 준다.

중국 정부가 1998년 이후 10년간 지속해 온 ‘안정’ 위주의 통화정책을 ‘긴축’으로 바꾼 것은 5년째 계속되는 두 자릿수의 과열 성장과 통화팽창에 따른 물가 폭등 때문이다. 중국 정부는 2003년부터 경기가 과열 조짐을 보이자 지준율을 14차례 올리는 외에 금리도 8차례 올렸지만 과열 경기는 식을 줄 몰랐다.

올해 중국의 예상 성장률은 11.6%로 1994년 이래 14년 만에 최고치를 나타낼 것으로 전망된다. 내년 성장률 예상치도 11.0%에 이른다. 10월 말 현재 도시의 고정자산 투자증가율 역시 26.9%로 지난해 24.3%보다 올랐다. 학자들은 고정자산 투자증가율이 25%를 넘으면 ‘경기 과열’로 진단한다. 통화량도 올해 10월 말 현재 39조4200억 위안(약 4897조 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8.47%나 늘었다. 10월 말 현재 신규 대출 증가액은 3조5050억 위안(약 435조 원)으로 지난해 전체보다 많다. 이에 따라 물가도 올해 들어 최고 6.5%나 올라 최근 10년간 ―1.4∼3.9% 선이었던 물가 안정추세가 완전히 무너졌다.

그러나 이번 조치로 중국의 과열 경기가 수그러들지는 불확실하다. 중국사회과학원 금융연구소 화폐이론 및 화폐정책 연구실 펑싱윈(彭興韻) 주임은 “경제지표의 변화에 따라 금리와 지준율이 재조정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해 추가 조치가 나올 수 있음을 암시했다.


다음, 이러한 중국의 경제상황이 한국에 어떤 효과를 가져올지 살펴보자.

무엇보다 중국에 진출한 우리 기업들이 신규 대출을 받지 못해 자금난에 봉착할 가능성이 커진 데다, 수출에도 상당한 악재로 작용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특히 중국 증시 하락이 본격화될 경우 국내 증시에도 큰 파장을 미치게 돼 이번 중국의 정책 전환이 자칫 '중국발 쇼크'로 확산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박순양 부산은행 전략기획부 금융경제조사팀장은 "중국의 이번 정책 전환은 경기 안정을 위한 긴축이 아니라 경기 과열을 억제하기 위한 긴축이라는 점에서 그 강도가 아주 높을 것"이라며 "중국에 진출한 우리 기업들이나 중국에 수출하는 기업들 입장에선 상당한 부정적 영향이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더욱 문제는 中 인플레가 서민경제 압박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동안 상대적으로 저물가 덕분에 국민들은 지난 10년을 장바구니 부담없이 보낼 수 있었다. 이는 저가의 중국제품 덕이었다. 이른 바 ‘차이나프리(China Free. 중국(제품)없이 살아가기 힘든 현실을 역설적으로 표현한 말)’로 불리는 중국 경제의 슈퍼 파워가 그것이다. 그런데 최근 물가는 지난 10월 위험수위인 3%로 오르더니 11월에는 3년 만에 처음으로 3.5%까지 뛰었다.

기간 국내 경제가 지난해 5%의 안정적 성장을 하고도 얼어붙은 체감경기를 제대로 녹이지 못했던 이유는 소득 증가율이 줄곧 생산증가율에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던 것이 지난 3분기에 와서야 5년 만에 처음으로 국민총소득 증가율(5.4%)이 국내총생산 증가율(5.2%)을 추월했다. 이는 전체 해외펀드의 30% 이상을 차지하는 차이나펀드 특수로 해외펀드 투자를 통한 이자와 배당수익이 1조원 가까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중국 증시의 상승세가 이웃 나라인 우리 국민의 지갑을 채워준 셈이다.

여기에 56개월 흑자행진 이어간 수출도 중국경제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 산업자원부는 올해 하반기 수출 전망을 할 때마다 “고유가와 환율하락의 어려움이 있다”고 우려해 왔지만, 실상은 달랐다. 11월 수출은 359억5000만달러로 두 달 연속 사상 최고치를 갈아치우며 상승세를 멈추지 않고 있다. 오정규 산자부 무역투자진흥관은 “불안정한 대외여건 속에서도 중국 등 신흥공업국으로의 수출호조로 상승세가 이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즉, 재정경제부가 어려운 대외여건에도 불구하고 내년도 경제성장률 전망치(5%)를 고수하고 있는 것은 글로벌 생산공장에서 세계 최대 소비시장으로 탈바꿈하고 있는 중국이라는 버팀목 때문이다. 재경부 관계자는 “아직은 물가관리 수준에 머물러 있지만 유가와 곡물가가 동시에 오르고 원자재가격 부담까지 가중돼 물가 상승세가 쉽게 꺾이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설명했다. 멈추지 않는 물가, 이곳에도 중국 효과가 녹아 있는 셈이다.

장재철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올 들어 중국의 소비자물가가 가파른 상승세를 지속하면서 경제 전반에 인플레이션이 확산되고 있으며 그 영향으로 고유가와 과잉 유동성 등에 따른 기존의 글로벌 인플레이션 압력을 더욱 높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더욱이 전체 수입 중 대중국 비중이 18%에 달하는 우리나라의 경우 직접적인 영향권 안에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제목: 한국경제에 대한 부정적인 전망들


미국발 서브프라임 모기지사태, 중국발 경기억제 정책 말고도 한국경제의 적신호를 경고하는 여러 기사들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무엇보다 세계경제 전체의 불안정성을 들 수 있다.

일예로 국제금융시장의 금리가 3일 9년래 최고치를 경신했다. 이에 따라 외화차입이 많은 한국경제에도 충격파가 우려된다. 국제금융시장의 중심지인 영국 런던에서 우량은행끼리 단기자금을 거래할 때 적용할 금리인 리보(LIBOR)금리가 3일 직전거래일인 지난달 30일에 비해 6.10%에 0.61%포인트 6.71%까지 치솟았다.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로 국제시장이 요동치기 시작한 지 불과 4개월만에 리보금리가 1.0%포인트나 급등한 것이다.

이 같은 리보금리 수준은 롱텀캐피털매니지먼트(LTCM) 부도 사태로 국제금융시장이 큰 혼란을 겪었던 1998년 12월이후 가장 높은 것이다. 이에 따라 국내 금융시장에서 국채를 비롯한 채권금리 상승이 예상되고 이어 외화차입을 많은 기업들에게 신규 외화차입 비용의 증가 뿐만 아니라 기존의 외채에 대한 상환부담을 증가시킬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이후 일어나고 있던 국내증시에서의 외국인 투자자금의 이탈을 가속화시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특히 국제금리급등과 외국인투자자금 이탈에 이어 국제유가의 급등과 돌출적인 정치 경제적인 악재까지 겹친다면 국제금융시장의 신용경색이 외부적인 요인에 의한 것이긴 하지만 국내경제도 상당한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는 게 경제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한편 세계경제의 스태그플레이션을 우려하는 기사들도 나오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3일 경기 둔화를 막기 위해 각국의 금리 인하가 필요한 시점이지만 식품과 에너지 가격의 고공행진으로 인한 물가상승 우려 때문에 통화당국이 딜레마에 빠졌다며 이같이 보도했다. 주요국 물가지수도 하반기 들어 가파른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다. 지난달 유로존(유로화를 통용하는 유럽 13개국 경제권)의 소비자 물가상승률은 3%(이하 전 분기 대비,연율 기준)로 목표치인 2%를 크게 웃돌았다. 물가상승률이 3%대로 올라선 것은 6년여 만에 처음이다. 독일이 13년 만에 최고치인 3%를 기록했다. 영국 물가는 지난 10월 2.1% 상승했다. 미국 물가도 지난 10월 3.5% 올랐으며 중국은 6.5%로 8월 수준으로 다시 치솟았다.

FT는 비싸지는 식품과 에너지 가격이 물가 수준을 장기적으로 끌어올릴 수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통적 시각에선 식품과 에너지 가격이 장기 물가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 것으로 본다. 변동성이 크기 때문이다.그래서 인플레이션 판단 기준이 되는 근원(core) 소비자물가지수에서 식품과 에너지 가격을 뺀다. 하지만 이런 전통적 접근 방식을 바꿔야 할 정도로 식품과 에너지 가격의 상승세가 강력하다는 것이다.

케네스 로고프 미 하버드대 교수는 "상품(commodity) 가격과 전체 물가의 관계에 구조적인 변화가 일고 있다"고 말했다. 세계 각국 중앙은행들의 물가관리가 최근 수년간 신통찮았던 것도 이런 구조적 변화를 가속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FT는 각국 통화당국이 스태그플레이션에 대처하려면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발 신용위기가 글로벌 성장과 각국 경제의 성장세에 얼마나 영향을 미칠 것인가를 주의깊게 들여다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신흥경제국들은 신용위기의 초기 충격에서 대체로 벗어났기 때문에 인플레이션 억제에 중점을 둬야 한다고 주문했다.

HSBC의 스티븐 킹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지금으로선 신흥경제국 사람들은 전적으로 물가상승과 경기과열,과잉 유동성을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선진국 통화당국은 그러나 성장세를 살려나가는 게 중요하고 이를 위해 어느 정도까지 금리를 인하할 수 있는지 잘 따져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국의 경우 글로벌 투자자들과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당국의 시각차가 있다. 투자자들은 미국 경제의 침체를 걱정하는 반면 FRB는 내년에 성장세가 회복되고 실업은 크게 늘어나지 않을 것으로 본다. 오히려 공격적으로 금리를 인하할 경우 달러 약세를 가속화하고 유가 상승과 미국 내 물가상승이라는 부작용을 낳을 것으로 염려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한국경제의 적신호는 여러요인이 충첩되어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주택대출 금리 인상도 그 요인 중 하나이다. 주택담보대출 변동금리가 8%대로 치솟은 가운데 주택담보대출 고정금리도 9%대를 돌파했다. 채권시장 약세로 변동형 주택담보대출 금리를 결정하는 양도성 예금증서(CD)금리뿐만 아니라 고정 금리형 주택담보대출의 금리를 결정하는 은행채나 국고채 등 장기채권의 금리가 급등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올해 은행채 발행이 급증하면서 은행채 금리가 CD금리보다 휠씬 큰 폭으로 상승했다. 고정 금리마저 급등하면서 변동 금리 대출자들이 고정 금리 대출로 갈아타기도 어려워졌다. 고정금리로 3년 거치기간을 거쳐 변동금리나 고정금리로 갈아타야 할 대출자들의 고민이 커지고 있다.

소비심리도 움추러 들었다. 경기 전망을 나타내는 심리지표인 소비자기대지수가 8개월만에 하락세로 돌아섰다. 통계청이 6일 발표한 11월 소비자전망조사 결과에 따르면 6개월 뒤 경기, 생활형편, 소비지출에 대한 경기 기대심리를 나타내는 소비자기대지수는 102.0으로 10월 103.3에 비해 1.3포인트 떨어졌다. 그동안 소비자기대지수는 7개월 연속 오름세를 보였지만, 지난달에는 상승세가 한풀 꺾였다.

생활형편 기대지수와 소비지출 기대지수는 각각 101.4,106.8로 10월보다 1포인트,1.3포인트씩 하락했다. 게다가 모든 소득계층에서 소비자기대지수가 하락했다. 월 400만원 이상 고소득 계층은 108.0에서 106.5로,300만원대 계층은 106.1에서 104.7로 떨어졌다. 월 소득 100만원대 계층은 100.5에서 99.0으로,100만원 미만은 95.6에서 95.4로 하락했다. 연령별로도 전 연령층에서 소비자기대지수가 하락세를 보였다.6개월 전과 비교해 현재의 경기, 생활형편 등을 평가하는 소비자평가지수는 지난달 88.0으로 10월 92.5에 비해 4.5포인트나 급락했다. 지난 4월 87.4 이후 가장 낮은 수치다. 소비심리가 최근 7개월새 최고로 꽁꽁 얼어붙은 셈이다. 현재 자산 가치에 대한 소비자 평가를 나타내는 자산평가지수는 주식·채권의 경우 금융시장의 불안정 등 여파로 97.1을 기록,10월보다 9.7포인트 추락했다.

정부와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일제히 “우리경제의 하방위험이 증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고유가 등의 여파로 물가가 내년 1·4분기까지 3%대 중반의 높은 상승률을 보일 것으로 전망했다. 이에 따라 정부는 가격 상승률이 높은 기초 원자재와 농축수산물 등에는 할당관세를 적용, 세율을 낮출 방침이다.

재정경제부는 6일 경제동향 보고서인 ‘그린북’을 통해 “유가 상승과 미국 경기 둔화, 중국의 추가 긴축 가능성 등 하방위험이 확대되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달 “경기불안 요인이 상존하고 있다.”는 중립적 진단보다 경고의 수위가 높아졌다.

KDI도 이날 발표한 ‘12월 경제동향’에서 “우리 경기가 호조세를 유지하고 있으나 세계 경기의 둔화 가능성과 물가상승 압력의 증가 등 위험요인들이 점증하는 모습”이라고 진단했다. 특히 내년 1·4분기까지 높은 물가 상승률이 지속될 가능성이 있으며 고유가에 따른 교역조건 악화로 실질 국내총소득(GDI) 증가세가 4·4분기 이후 둔화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한국경제의 위기를 진단하는 또 하나의 경고는 외국투자자들부터도 나왔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4일 국내 외국 대사관의 상무관과 외국기업인 100명(응답 84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한국주재 외국 경제인들의 우리나라 대외경쟁력 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응답자의 39.3%는 5~6년 내 한국 경제가 어려운 상황을 맞을 수 있다는 견해에 “그럴 수 있다”고 응답했다.

한국 경제를 위협할 요인으로는 36.0%가 ‘중국ㆍ인도 등 후발국의 추격’을, 21.3%가 석유 등 원자재 가격 상승 및 확보 곤란을, 2.2%가 북핵에 따른 안보 불안을 꼽았다. 전체의 59.5%가 외부 경제 여건이 한국 경제의 진로를 좌우할 것으로 전망한 셈이다.

한국 경제의 대외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는 응답자의 29.8%가 ‘글로벌 수준의 제도 정비’를, 19.4%가 ‘선진 기업을 따라잡기 위한 한국 기업의 기술개발 노력’을 제시했고, 15.3%는 ‘고지가ㆍ고임금 등 고비용 구조개선’을 지적했다.

주한 외국 경제인들은 그러나 한국 경제에 대한 이 같은 우려 섞인 전망에도 불구하고 주력 수출업종의 경쟁력은 크게 나빠지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국내 주요 산업의 5년간 경쟁력 전망과 관련해서 조선ㆍ이동통신기기ㆍ디지털 가전 등은 50% 이상이 ‘강화될 것’으로 내다봤고 석유화학ㆍ철강ㆍ기계ㆍ자동차 등은 ‘현재 수준을 유지할 것’이라는 응답이 50% 안팎이었다. 다만 섬유업종의 경우 응답자의 60% 정도가 ‘5년 내 경쟁력이 약화될 것’으로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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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정세글 - 강내희

 

변혁적 진보정당 건설을 위한 정세분석1)

                                                            강내희           


1. 2007년 대선 이후의 정세


지난 10년간 정권을 잡아온 개혁적 자유주의 세력이 몰락하고 (신)보수적 자유주의 세력이 압도적 승리를 거두었다. 이명박의 승리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급증, 사회양극화의 심화, 민생경제의 파탄 등을 빚어낸 노무현 정권이 심판을 받았음을 말해준다. 이는 개혁적 자유주의를 자신의 이념으로 삼은 노무현 정권이 시행해온 신자유주의 정책에 대한 민중의 분노와 울분이 표출된 결과일 것이다. 노 정권의 실정에 대한 민중의 심판이 (신)보수적 자유주의에 대한 지지로 이어진 것은 아이러니라 하겠지만, 최근 국내 정치세력들의 지형을 놓고 보면 그것은 필연적인 결과이기도 하다. 대선 전까지 노무현 정권의 신자유주의 정책 노선에 대한 대안, 무엇보다 진보적, 변혁적, 좌파적 정치세력의 구심점이 형성되어 있지 못했다. 민생파탄, 사회적 양극화, 비정규직 급증 등은 신자유주의가 자아낸 폐해라는 점에서 노무현 정권만이 아니라 보수 세력 전반이 떠안아야 할 책임인데도 진보적 대안이 부재했던 탓에 ‘경제 살리기’를 내세운 이명박에 대한 민중적 지지가 형성되었던 것이다.

지난 대선을 통해 범 보수=자유주의 진영 내부에는 대대적인 세력 교체가 이루어졌다. 이 진영은 크게 보면 개혁적 성향과 보수적 성향으로 양분되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이 가운데 지난 10년간 정권을 장악해온 개혁적 자유주의는 대선에서 패배했고, 2008년 4월에 실시될 총선에서도 참패가 예상되는 반면 보수적 자유주의가 새로운 집권세력으로 부상했다.2) 세력 교체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한나라당의 대선 후보 경선 과정에서 ‘수구보수’ 박근혜와 ‘실용보수/신보수’ 이명박의 경쟁에서, 대선에서는 박근혜의 패배가 가져온 빈틈을 이용해서 다시 등장한 ‘정통보수’ 이회창과 이명박의 경쟁에서 후자가 승리함으로써 보수 진영 내부에서도 세력 교체가 일어났다. 이로 인해 보수 진영 내부에서는 ‘실용보수’, ‘신보수’의 시대가 개막되었다고 하겠는데, 넓게 보면 자유주의 진영은 개혁적 자유주의 세력의 전반적 후퇴 속에 보수적, 특히 신보수적 자유주의가 전면에 나서는 구도가 만들어진 셈이다.

(신)보수적 자유주의의 승리는 어떤 사회적 변화를 가져올 것인가? 일단 근본적인 변화는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차기 정권이 개혁적 자유주의에서 보수적 자유주의로 입장 선회가 이루어진 점만 본다면 이런 전망이 가능하다고 본다. 두 자유주의 세력 간의 근본적 차이는―양자의 차이를 강조하며 전자에 대한 비판적 지지를 보내며 지난 10년 넘게 국내 사회운동 흐름에 과도한 영향력을 행사해온 시민운동 진영의 지배적 관점과는 달리―사실상 없었다. 두 세력은 정치적으로는 서로 적대적이었으나 1997년 IMF 위기 이후 부쩍 강화되었고 그동안 한국 사회의 근간을 지배해온 신자유주의 정책 노선을 적극 지지한 점에서는 ‘초록이 동색’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크게 보면 동일한 세력 내부에 일어난 것일지라도 이번의 (자유주의에서 자유주의로의) 권력 이동이 눈여겨봐야 할 새로운 정치적 국면을 만들어낸 것 또한 부인할 수는 없다. 당연한 일이지만 (신)보수적 자유주의의 승리는 우선 그동안 ‘민주개혁’을 외치며 신자유주의 정책을 펼쳐온 개혁적 자유주의 세력 내부에 커다란 동요를 일으킨 것으로 보인다. 개혁적 자유주의 세력은 지난 대선에서 보수적 자유주의와의 경쟁에서 자신이 밀렸다고 보고 통합신당의 경우 과거 한나라당 소속인 손학규를 당 대표로 선출한 데서 드러나듯이 더 많은 우경화-보수화의 길을 걷는 모습이다. 물론 이런 모습은 한국 자유주의 진영의 양대 경향들 간에는 차이가 거의 소멸하고 있음을, 또는 양자의 차이가 원래 그리 크지 않았음을 확인해줄 뿐이다.

하나의 자유주의에서 다른 하나의 자유주의로의 권력 이동이 국내 정치지형에 가져온 파장은 진보진영에서 좀 더 분명하게 드러난 것으로 보인다. 개혁적 자유주의의 몰락은 그동안 제도권 정치에 진입하여 진보세력을 대변해온 정치세력의 몰락도 동반했다. 민노당과 한국사회당이 지난 대선에서 각각 3.01퍼센트, 0.07퍼센트밖에 득표하지 못한 것이다. 12월 19일의 대선이 끝난 이후 지금까지 민노당 내부, 안팎에서 당내 최대 정파인 ‘자주파’와 ‘평등파’ 사이에 종북주의 논쟁이 일고, 이 과정에서 당의 혁신, 제2창당, 신당 건설 등을 둘러싼 다양하고 첨예한 입장 차이가 드러나고 있는 것은 그동안 합법정당 운동을 해온 진보정치 세력의 패배가 가져온 충격의 파장이다. 이런 점은 한편으로는 민노당의 그간 정치적 행태가 근본적 위기를 맞았다는 점과 이제 진보정당운동의 재구성이 필요하다는 점을 동시에 보여준다.

지난 대선의 특징 하나는 기권율이 크게 증대했다는 것이다. 이는 한나라당, 통합신당 등 자유주의적 제도권 정치에 대한 불신과 함께 민노당 중심의 진보정치에 대한 불신도 동시에 크게 증대했다는 증거이다. 특히 지난 대선에서 민노당은 당원들까지도 기권율이 높았고, 자당 후보에 대한 투표율도 낮아서 진보정치에서의 급진적 변화에 대한 열망이 저변에 누적되어 있음을 짐작케 한다.



2. 이명박 시대의 전망


이명박 정권은 자유주의 세력 가운데서도 보수적 자유주의 세력이며, 보수적 자유주의 세력 가운데서도 실용노선 또는 신보수의 길을 걷는 세력이 창출한 정권이다. 이에 따라 이명박 정권은 1997년 이후 개혁적 자유주의 세력에 의해 추진되어온 신자유주의 정책을 더 강력하고 노골적으로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이명박은 ‘경제 살리기’ 약속을 통해 대선 승리를 거두었다. 여기서 확인해야 할 점은 이명박이 회생시키고자 하는 ‘경제’는 자본주의 경제, 그것도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경제라는 사실이다. 이명박 식 ‘경제 살리기’의 목적과 성격은 17대 대통령직 인수위가 밝힌 차기 정부 구성 방향과 정책 방향을 통해 이미 드러났다. 인수위는 규제가 심한 정부부처일수록 공무원 감원을 더 많이 하겠다는 방침을 발표한 바 있다. 각종 규제 완화가 기업, 특히 대기업의 요구를 전면 수용하는 조치임을 다시 언급할 필요가 있겠는가. 총액출자제도, 금산분리, 수도권 개발 등 그간 있었던 기업 활동 규제는 사회적 총자본의 이익과 기업운영의 투명성 제고, 국토의 균현적 발전 등을 위해 대기업 활동에 가했던 일정한 규제들이다. 이명박 인수위는 경제 성장 즉 자본 축적을 위해 투자 활성화 등을 추진할 것임을 밝힘으로써 이들 규제를 전면 완화하거나 제거할 의도를 숨기지 않는다. 이는 이명박 정부의 정책이 이전 정권이 보여준 친독점자본적 정책을 더욱 노골화, 전면화할 것이라는 분명한 신호이다.

그러나 이런 식의 경제 살리기가 과연 효과를 볼는지는 의문이다. 기업의 투자가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는 근본 이유는 규제보다는 적합한 수익을 올릴 수 있는 투자 부분이 적다는 데 있다. 산업부분에서 투자처를 찾지 못한 기업자금을 금융부문, 투기부문 등에 투자하도록 길을 터면 일시적으로는 금융자본 운동의 활성화 등을 가져올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런 조치는 현재 미국의 경우가 보여주다시피 거대한 금융공황을 만들어내고 이는 다시 산업공황을 더 한층 파국적인 것으로 만들 공산이 크다. 나아가 과잉축적 시기 기업의 공격적인 산업투자는 (IMF위기 발생 2-3년 전의 경우가 보여준 대로) 곧바로 산업공황, 과잉생산위기를 촉발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식 ‘경제 살리기’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지면 사회적 공공성의 극단적 파괴가 예상된다. 이명박 시대에는 공기업의 민영화가 다시 본격화할 것이다. 공기업의 민영화는 김대중 정권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으나 노무현 정권에서는 일시 중단된 상태였다. 물론 이것은 노 정권이 민영화에 반대하여 생긴 현상인 것은 아니다. 철도공사가 KTX 여승무원의 정규직화를 거부하며 수익사업에 전념하여 적자에서 흑자로 전환한 예에서 볼 수 있듯이 공기업으로 남아 있는 경우에도 민영화라는 형식을 띠지는 않았어도 이미 광범위하게 민간 기업을 본 딴 운영체계를 수용해온 터이다. 민영화 없는 민영화가 진행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명박 시대에는 공공부문 전반에서 더욱 강력한 민영화 드라이브가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교육, 의료, 물=에너지, 주거 등 사회적 공공성을 구성하는 주요 공공 분야에서 더 강화된 시장화가 이루어질 것이라는 점은 앞서 언급한 대로 이명박 인수위가 규제가 심한 정부부처의 인원을 더 감축하겠다고 밝힌 데서도 짐작할 수 있다. 이명박 시대에는 국가독점을 대신하는 민간독점이 강화되고, 노동유연화를 위한 대대적인 구조조정이 빈발하고, 사회적 공공성이 극단적으로 파괴될 것임을, 이 결과 필연적으로 대중의 삶이 더욱 피폐해질 것임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공공부문에 대한 사적 자본의 더 전면적인 침투가 허용되면 사회적 자원의 불균등 배분이 극대화되고, 대중의 삶에 불리한 소득재분배가 촉진될 것이다. 하지만 규제의 완화나 해제를 통한 경제 살리기는 사회적 자원의 파괴를 낳으면서 실제로는 사회적 비용을 추가로 증대시킬 수밖에 없다.

이명박 시대에는 금융자본주의가 더욱 강화될 것이 분명하다. 이명박 인수위는 금산분리 정책의 완화를 차기 정부의 입장으로 내놓았다. 이는 금융자본주의를 더욱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자세는 미국에서 발생한 ‘비우량신용대출’ 부실 사태로 전 세계 금융시장이 위기를 맞은 점에 비추어 볼 때, 그리고 이제는 다보스포럼에서도 자본의 금융화에 대한 반성이 제기되기 시작했다는 점에 비추어 볼 때3) 대세를 거스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융자본주의적 발전을 추구하면 예상되는 금융공황 발생 시 금융소득자 층이 일차적 희생자들이 될 것이다.

이명박 시대의 또 다른 특징은 신자유주의적 개발정책을 강화할 것이라는 점이다. 한국의 국토는 노무현 정권의 ‘국토균형발전’ 정책에 의해 그러잖아도 각 지방 자치체의 무분별한 개발에 노출되어 있었으나 평생 ‘개발업자’로 살아온 이명박의 당선은 개발 드라이브를 지금까지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강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물론 이명박 식 개발은 과거 박정희 식의 개발과 동일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전에는 개발이 국가 재정에 의해 주도되는 발전주의적 성격이었다면, 이명박 식의 개발은 민자 유치 중심으로, 기업이 주도하는 방식으로 전환될 공산이 크다. 이런 점은 이미 첨예한 사회적 쟁점으로 떠오른 경부운하에 대해 이명박이 민간자본으로 건설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데서 확인되고 있다. 그러나 민자 개발은 국가 주도의 개발보다 더 큰 문제들을 야기할 것으로 전망된다. 민자로 개발한다는 것은 기업 이윤을 보장해주겠다는 것인데, 이는 사회적 부담의 증대를 전제하는 개방 방침이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심각한 생태환경 파괴가 우려된다는 데 있다.

이명박 정권의 경제 살리기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흐름의 지속과 강화로 이어질 것이다. 2월 말에 열리는 임시국회에서 2007년 4월에 타결된 한미FTA 비준 안을 통과시키기로 한나라당과 통합신당 사이에 이미 합의가 이루어져 있다. 한미FTA의 발동은 1997년 IMF 위기를 계기로 한 층 더 강화된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새로운 강화를 의미한다. 이번의 자유무역협정은 자본주의 국가들 가운데 가장 노골적인 신자유주의적 사회운영을 해온 미국과 체결한 것이라는 점에서 이는 미국의 신자유주의 사회 제도의 국내 도입을 의미하며, 한국사회의 미국화를 의미한다. 문제는 이 미국화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는 데 있다. 지금 미국은 이미 파산상태로 들어가 있을뿐더러 자국민의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권리도 제대로 보장하지 못하는 형편이다. 이명박 정권이 한미FTA 비준을 통해 한국경제가 미국경제로 더 깊이 편입하여 미국식 신자유주의체제를 전면화하려는 것은 국내외의 독점자본 지배체제를 강화하기 위함 이외에는 목적이 없다. 그러나 이 조치는 국내 중소자본, 영세자본의 더 한 층의 몰락을 초래하며 한국 민중의 삶을 나락으로 빠뜨릴 것이다.

이명박 정권의 ‘경제 살리기’는 새로운 인구정책과 연동될 수밖에 없다. 이명박의 경제정책은 친 기업, 친 재벌, 친 자본의 성격을 띠기 때문에 설령 경제가 성장하더라도, 그 효과로 예컨대 일자리가 확대되더라도 비정규직의 한 층 더 높은 양산과 전면화를 동반하게 된다. 이미 심각해진 사회적 양극화가 더욱 심화될 것이라는 말이다. 한편으로는 명품시장이 확대된다 하더라도 다른 한편으로는 노동을 계속해도 빈곤상태에서 벗어날 수가 없는 인구가 증가하게 된다. 갈수록 많은 대중이 더욱 궁핍한 삶을 영위하게 되면 어떻게 되겠는가? 노동 운동, 기층민중 운동의 활성화는 필연적이다. 운동의 증대와 급진화가 예상될 경우 정권 초기에 펼칠 것으로 예상되는 포퓰리즘적 정책의 자원은 곧 바닥을 드러내고, ‘엄정한 법 집행’을 내세우며 운동에 대한 억압적 정책을 강구하게 될 것이다. 지금 세계적으로나 국내적으로 공황의 위기가 닥치고 있다는 점에서 이명박 정권에서의 민중 탄압은 이전보다 한 층 더 강화된 파시즘적이고 공안적인 형태를 띨 공산이 높다.

이명박 정부의 정책은 김대중, 노무현 정부 등이 추진해온 신자유주의적, 시장주의적 정책을 끝장까지 밀고 나가는 것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넘어지지 않기 위해 비탈길에서 자전거 페달을 계속 밟는 격이다. 신자유주의 체제의 위기를 신자유주의의 전면화를 통해 돌파하려는 자살 전략인 것이다. 그러나 임박한 미국발 세계공황이 금융적 축적의 위기를 몰고 오고 있고, 이 위기는 미국경제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한국과 중국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며, 세계적 대공황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 공황은 애초 미국헤게모니 하에서 조직된 전후 세계자본주의체제의 자본의 과잉축적이 가져온 장기적인 구조적 불황기의 최종국면에서 나타나는 파국적인 과잉생산위기가 될 것이다.

이 와중에 이명박 정권이 경제 살리기를 위한 출자총액제한제도의 폐지, 금산분리 완화를 통한 투자활성화 정책, 경부운하 건설 등의 개발 정책 등을 펴려는 것은 공황 출현을 부채질하는 셈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점에서 이명박 정권의 정책은 얼마 지나지 않아 파산 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할 수 있다. 임기 내에 신자유주의 지배체제가 지닌 제 모순들의 거대한 폭발이 있을 것이다. 이명박 정부에 대해 현재 국민의 기대가 높을수록 모순의 폭발이 가져올 파장은 더 클 것이다. 높은 기대는 오래지 않아, 아마 2년 이내에, 거대한 실망과 분노로 바뀔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이는 한국의 정치적 지형이 극도의 불안정에 빠질 것이라는 말이기도 하다. 높아가는 불만과 거세지는 저항을 제도정치권으로 흡수할 가능성은 더욱 낮아지는 조건 속에서 저항의 증대와 억압의 강화(신자유주의 경찰국가의 전면화), 즉 거대한 사회적 적대가 형성될 것으로 판단된다.



3. 진보정치 운동의 새로운 지형


17대 대선의 결과로 한국의 정치지형이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이명박 정권하에서 신자유주의 정책의 강화에 따른 사회적 제 모순의 폭발과 첨예한 사회적 적대의 형성이 예상되는 가운데, 진보운동에도 새로운 과제들이 제기되고 있다.

그동안 한국의 진보운동은 민족해방(NL) 대 민중민주(PD) 노선의 경쟁 속에 NL파의 패권이 관철되는 구도 속에 놓여 있었다. 현재 민주노총, 전공 등 주요 대중조직, 민주노동당, 한국진보연대를 주도하는 것은 민족주의 진영이다. 민족주의, 또는 자주파의 패권이 정점을 형성한 것은 대선 직전이었고, 이 정세가 민노당의 대선 후보 경선 과정에서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민주노동당의 참패는 NL파의 패권 구도에 파열구를 내는 중요한 계기를 제공한 것으로 보인다. 최근 민노당의 지도부가 비상대책위 체제로 바뀐 것은 NL파가 대선 후보 경선에서 거의 절대적 결정권을 행사한 것이 오히려 부메랑이 되어 NL파를 강타함으로써 그 세력을 일단 약화시켰기 때문이다.4) 이에 따라 민노당의 현재 당권은 비상대책위를 구성한 PD 계열의 ‘평등파’가 잡고 있고 평등파의 일부는 “보다 적색으로, 보다 녹색으로”라는 기치를 내걸고 지난 선거에서 민노당과 비슷하게 참패한 한국사회당과 지금 막 건설이 추진되고 있는 녹색당과 공동으로 당을 만들지 못하면 총선에서의 선거연대를 기대하며 진보신당을 구성하기 위해 움직이고 있다. 진보운동 내부에서 지금 한창 혁신과 재구성이 일어나고 있음을 보여주는 정황이라 하겠다.

그러나 과연 이런 흐름이 한국의 진보운동에서 새로운 위력적인 흐름을 만들어낼는지는 미지수이다. NL과의 분명한 거리 두기를 시도하는 것은 나름대로 의미가 없지 않지만 현재 민노당 내부에서나 외부에서 혁신이나 제2창당, 또는 신당을 건설하려고 나선 세력을 보면 대체로 PD 계열, 평등파이지만 이들의 입장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사민주의 성격이 지배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지적은 현재 비대위를 구성하며 민노당에 남아 있는 평등파 세력에게 더 적합한 것이겠지만 민노당의 대선 패배를 계기로 민노당에서 나와 지금 신당을 건설하고자 하는 평등파 세력도 사민주의 성격의 강령을 채택한 당에 오래 속해 있었다는 점에서 쉽게 비껴갈 수가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사실은 현재까지 진보정당 운동을 전개해온 세력 대부분이 충분한 변혁적인 자세로 당 건설 운동에 임하고 있는 것은 아님을 말해준다. 과연 사민주의적 입장을 통해 오늘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흐름에 포획되어 있는 한국사회의 새로운 대안을 창출할 수 있을 것인가?

신자유주의 시기의 자본주의 발전 단계에서 사민주의는 비판적 세력으로서의 역할이 전혀 없지는 않을 것이다. 사민주의는 신자유주의의 발호로 인하여 파괴되고 있는 사회적 공공성의 수호자로서의 역할을 어느 정도 수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서구에서 사민주의가 후퇴한 것이 신자유주의의 상승기였다는 점을 곰곰이 생각할 필요가 있다. 사민주의는 자본주의에 대한 근본적인 극복보다는 일정한 통제를 통해 복지국가를 건설하는 것을 그 정치적 목적으로 삼는다. 하지만 사민주의가 약속하는, 그리고 한때 스스로 일정하게 구현했다고 본 복지국가는 신자유주의에 의해 무너졌으며, 세계적으로 사민주의를 내세우는 정당들은 더 이상 오늘날 자본주의의 대안으로 인식되지 못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사민주의는 자신을 새로운 진보의 대안으로 내세우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런 정황은 지금까지 언급한 진보정당 운동의 흐름을 넘어서는 새로운 운동이 필요함을 보여준다. 한국의 진보운동에 전반적인 혁신과 재구성이 필요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이제 이 혁신과 재구성의 방향을 새롭게 설정해야 한다. 그것은 진보운동의 급진화이고 사회주의적 변혁이라는 분명한 좌파적 전망을 지닌 운동으로 만드는 것이다.

한국에서 사회주의적 변혁 운동은 사실 음지에서 이루어졌던 편이다. 국내 진보세력 가운데 사민주의와는 구분되는 사회주의 노선은 대체로 민노당과도 거리를 두고 있었다. 좌파 세력은 노동운동, 여성운동, 인권운동, 평화운동, 생태운동, 문화운동 등 사회운동 곳곳에서, 비정규직 투쟁, 평택미군기지반대투쟁, 한미FTA저지 투쟁 등 한국에서 계속 제기되는 현안들에 대해 어려운 개입을 해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좌파 세력은 아직 정치세력으로서 통합된 전선을 형성한 적이 없으며, 사회주의를 정확하게 표방한 정당운동을 본격적으로 전개한 적도 없었다. 물론 노동자의힘이나 사회주의노동자연합과 같은 정치조직이 없었던 것은 아니나 이들 조직은 적어도 아직까지는 공개적인 정당운동을 추진한 것이 아니다.

2008년 초 현재 형성된 새로운 정치적 국면에서 이제 좌파 세력은 새로운 정당운동을 전개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된다. 이는 무엇보다도 2008년 1월 현재 한국의 진보진영은 새로운 희망의 국면을 맞았기 때문이다. 참으로 오랜만에, 모처럼 맞은 기회이다. 이 기회는 우선 현 단계 한국사회의 진보적 과제는 ‘민주개혁’에 있음을 주장하며 가까이로는 지난 10년간 정권을 장악해왔고, 좀 더 멀리는 지난 20년 넘게 진보운동의 헤게모니를 장악해온 개혁적 자유주의 세력의 붕괴로부터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 개혁적 자유주의는 특히 지난 10년 정권을 잡아오면서 민주개혁의 대의에 동의하는 시민운동 진영의 ‘비판적 지지’ 등에 의해 한국사회의 진보를 박정희 시대 이후 정권을 장악해온 보수우파 세력과의 적대와 경쟁을 통해서만, 그리고 형식적 민주주의의 완성을 통해서만 이루어진다고 주장하면서 실질적으로는 보수우파 또는 보수적 자유주의와는 근본적으로 다를 바 없는 신자유주의 정책을 펼쳐 왔다. 이 개혁적 자유주의는 자신이 펼친 신자유주의 정책의 희생자가 된 민중의 분노에 의해 심판을 받아 이제는 거의 지리멸렬해졌다. 진보진영이 새로운 희망을 갖게 된 것은 개혁적 자유주의 세력의 파탄으로 인해 자신과 경쟁할 세력의 약화에서 나온다.

둘째, 진보진영의 기회는 민노당의 패배를 계기로 온 측면도 있다. 그동안 민노당은 개혁적 자유주의 세력과 경합하면서 후자를 ‘개혁세력’으로 보게 하고 자신을 진보진영의 대표로 만들어왔으나 진보에 대한 자신의 해석에 따른 행보로 인해 대선에서 참패함으로써 진보진영의 대표를 자임하는 데 어려움을 맞게 되었다. 이는 무엇보다 민노당 내부에 NL파의 헤게모니가 구축되어 끊임없이 제기되는 진보적 의제들을 민족주의 노선으로 축소시킨 데 따른 결과이다.

국내 좌파 세력은 개혁적 자유주의의 몰락, 그에 동반된 민족주의+사민주의 세력의 패퇴를 통해 열린 새로운 정치적 국면에 참여할 기회를 얻었다. 이 국면에 좌파는 과연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현재의 국면은 오래 지속되지는 않을 것이다. 이번 국면은 장기적 구조에 해당하기보다는 단기 지속할 분기점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분기점인 만큼 그것은 한국 좌파세력의 중장기적 모습을 결정지을 공산이 크다. 어떻게 이 국면을 맞이하고 보내느냐에 따라서 좌파는 새로운 도약의 기회를 맞을 수도, 그동안의 관성처럼 모처럼 찾아온 희망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 여기서 ‘희망’은 남한에서는 처음으로 좌파세력이 변혁적 진보정당, 다시 말해 자본주의 극복을 자신의 분명한 목표로 삼는 정당을 건설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리킨다.

한국에서 좌파세력은 정당을 만들만큼 힘을 가진 적이 없다. 국내 정치지형에서 지금까지 한 번도 헤게모니를 갖지 못한 것이다. 특히 지난 10여년 좌파는 자신의 입지가 극도로 위축되는 것을 경험했다. 사회의 근본적 변혁을 지향하는 세력, 현재의 상태로서의 자본주의를 지양하고, 대안적 사회를 위한 코뮌주의를 실천하려는 좌파가 힘을 발휘하려면 정치지형의 일정한 파열이 발생해야 하나 그동안 이 지형은 견고한 구조적 한계에 갇혀 있었기 때문이다. 넓게는 김대중, 노무현 정권으로 대변되는 자유주의 헤게모니가, 좁게는 민노당으로 대변되는 민족주의+사민주의가 한국정치의 민주적 대안임을 참칭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구조가 지배하는 상황에서는 변화를 기대할 수 없다. 구조는 지배와 피지배의 구도를 재생산하고, 그로부터의 이탈을, 그것의 변혁을 꾀하려는 사회적 흐름을 변수 아닌 변수로 만들어버리기 때문이다. 지난 기간 좌파는 자유주의 세력과 그 종속 세력인 민족주의 및 사민주의 세력이 대안적 정치지형을 장악한 상황에서 자신의 존재를 알리기도 어려웠다. 지난 대선에서 좌파들이 아무런 선거 전략을 세울 수 없었던 것도 한국정치의 구조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낼 만큼 힘을 갖지 못한 탓이다.

대선 이후 좌파가 새로운 희망을 갖게 된 것은 천만다행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좌파는 솔직해야 한다. 지금의 희망은 자신의 능력으로 획득한 성과가 아니다. 자유주의 세력의 몰락, 그에 동반한 민족주의+사민주의 세력의 몰락에 뒤따라 그저 얻은 선물이니 그것은 어디까지나 어부지리에 해당한다. 지금 좌파 가운데 현 국면을 희망의 그것으로 보면서도 그 속에 선뜻 뛰어들기를 주저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것도 스스로 그 희망을 쟁취한 것이 아님을 알기 때문이리라.

그렇다고 좌파가 희망을 갖지 말 일은 아닐 터이다. 아니 오히려 현재 국면에 더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필요하다. 정세적 국면은 구조의 견고함을 드러낼 수도, 탈구조화의 징후를 보일 수도 있다. 지금은 (맑스의 말을 맥락을 바꾸어 말하면) “모든 견고한 것이 허공으로 사라지는” 시점이다. 좌파는 이에 따라 자신의 입지를 만들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맞았다. 비록 자유주의 세력과 민족주의+사민주의 세력의 붕괴로 만들어졌다고 하더라도 이 국면을 놓칠 수 없다. 이번 기회를 놓쳐버리면 언제 다시 좌파에게 비슷한 기회가 올는지 모를 일이다.

세력들의 관계는 구조화되어 있으면 좀체 변화를 허락하지 않는다. 작년까지만 하더라도 한국의 정치세력 판도는 너무나 뻔했다. 정치 구도의 예측가능성도 너무 높았다. 그러나 대선을 거치며 기존의 세력 구도는 와해되기 시작했다. 이 와해는 향후 정치지형의 예측불가능성을 높인다. 이 예측불가능성이야말로 변화, 자본주의 구조의 변혁을 추구하는 좌파에게는 새로운 가능성이고 기회이다.

물론 판도 전체가 깨진 것은 아니다. 자유주의 헤게모니도 완전히 무너지진 않았다. 지난 대선에서 이명박의 당선은 정치권력의 이동 아닌 이동, 즉 하나의 자유주의에서 또 하나의 자유주의로의 이동을 의미할 뿐이다. 그러나 이런 변화만으로도 한국 범 진보세력의 구도는 격변이 일어난 듯하고, 진보와 개혁을 내세우며 좌파들을 뒷전으로 밀어 넣은 제 세력은 와해의 위기를 맞은 듯하다. 통합신당, 민노당은 이제 다시 세력을 회복하기 어려울 정도가 되었다.

이명박 정권의 출범은 이전의 정권들이 시행해온 신자유주의 정책을 더욱 강화할 것이고 이로 인해 사회적 배제를 당하는 인구의 수는 더욱 늘어날 것이다. 한국에서 신자유주의는 지난 10년 같은 자유주의이면서도 개혁을 자칭하는 세력에 의해 관리되어 왔으나 이들이 지난 대선에서 정치적 심판을 받아 패배함으로써 보수적 자유주의 세력의 관리 체계 속에 들어가게 되었다. 개혁적 자유주의가 대선에서 패배한 것은, 그리고 이 세력의 2중대 역할밖에는 하지 못해 민족주의+사민주의 세력이 덩달아 패배한 것은 일단 남한 민중의 신자유주의에 대한 반대―이 반대가 왜 더 강한 신자유주의 세력에 대한 지지로 이어졌는지는 좌파가 풀어야 할 숙제이지만―를 의미한다.

좌파에게 현 국면이 희망인 것은 개혁적 자유주의, 민족주의, 사민주의 세력의 전면적 위기 속에 보수적 자유주의가 집권하면서 좌와 우가 과거 어느 때보다 확연하게 구분될 수 있는, 좌파가 우파에 맞서서 한국사회의 미래를 짊어질 대안으로 떠오를 구도가 만들어질 가능성이 생겼기 때문이다. 물론 이 가능성은 어느 틈엔가 불가능성으로 바뀔 수도 있고, 희망도 아지랑이로 사라질 수 있다.

지금 한국 정치는 혼돈에 빠진 상태이다. 보수적 자유주의 또는 보수우파 세력은 현재 이명박+박근혜와 이회창 세력으로 나뉘어져 있으나 한나라당에서 박근혜가 뛰쳐나올 가능성이 전혀 없지 않고, 개혁적 자유주의는 통합신당과 창조한국당으로 나뉘어져 있고, 그동안 민노당에서 한솥밥을 먹던 민족주의와 사민주의도 분리 직전에 이르렀다. 바야흐로 정치적 분열의 시대이다. 정치세력들이 이런 이합집산을 보이는 것은 사회 제 세력의 정치적 관계를 규정하는 구조가 더 이상 이전의 지배력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말이다. 구조의 변동, 그것은 새로운 구조로의 전환이 일어남을 의미한다.

이는 또한 역사의 분기점이 생긴다는 말이다. 분기점에 가까워지면 구조 속에서 서로 대립하던 극들이 비평행 상태에 이르게 되고, 구조 전체는 극들 간의 긴장에 따른 동요를 겪게 된다. 러시아의 기호학자 유리 로트만의 설명에 따르면 이런 순간에는 “개인과 집단의 행위는 자동 예측이 불가능해지고, 결정성이 뒷전으로 물러난다.” 예측 불가능한 행동, 선택, 결정들이 폭발적으로 일어나는 것이다. 분기점이 분기점인 것은 그 지점에서 운동의 요인들이 예측 불가능한 방식으로 서로 교점을 만들어내고 그 결과 운동의 새로운 벡터가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요인들의 교점을 예측하는 것이 불가능한 시점, 그것은 “혁명의 시대, 또는 다른 극적인 역사적 변화의 시기이다.” 앞에서 “2008년 1월 현재 한국의 좌파 세력은 새로운 희망”을 갖게 되었다고 한 것은 바로 이런 예측 불가능성의 국면이 전개되고 있다고 느낀 때문이다.

희망은 분수처럼 솟구치는 힘을 가지고 있다. 또한 그것은 어디로 튈지 모르는 포말(泡沫)이다. 구조가 변동의 분기점에 이르면 그 다음에 어떤 형태의 구조가 만들어질는지는 예측이 불가능하다. 다만 변화를 유발하려면 구조를 동요시키는, 그리하여 구조가 더 이상 재생산되지 않고 변화를 향한 분기점으로 나아가게 하는 조건들이 갖추어져야 한다. 역사적 구조의 변화에서 특히 중요한 것이 주체들의 능동적 행위이다. 오늘의 지배적 구조를 변혁하기 위해서는 좌파의 의지, 선택, 실천, 참여가 중요한 것이다.

물론 이런 행위로 구조 변동의 방향 전체를 통제할 수는 없다. 그러나 변동이 일어나는 시점에 변화를 촉발하는 행동들이 집적되면 주체들의 행위에도 변화가 발생하는 법이다. 사회적 구조가 평행상태에 있을 때에는 사회적 주체들의 행위는 늘 예상 가능한 방향으로 이루어지지만 구조가 변동을 겪는 순간 그 행위는 전혀 예측할 수 없는 방식으로 움직일 수도 있다. 지극히 보수적이던 개인이 갑자기 진보적 행위의 주체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이런 변화가 지금 한국사회에 일어나고 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전에 없던 변화의 조짐이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정치적 세력의 판도가 새롭게 짜이고 있다는 것, 보수진영 안에서도, 진보진영 안에서도, 자유주의 세력 내부에서도, 민족주의와 사민주의의 연대 틀 안에서도 동요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은 구조적 변동이 시작되는 조짐인지도 모른다.

좌파는 이 조짐을 기회로 포착해야 한다. 모처럼 찾아온 이 기회가 어떤 미래를 가져올는지 예측할 수는 없지만 지금 좌파가 할 일은 역사의 흐름이 구조적 평행상태에서 비평행의 분기점에 도달하도록 구조를 동요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지금의 분기점에서 어떤 태도를 취하느냐, 어떤 행동을 하느냐, 어떤 꿈을 꾸느냐에 따라서 좌파는 역사의 새로운 벡터를 만들 수도 있지만 지금의 정치적 구도, 구조가 재생산되는 흐름의 지속 저 뒤안길로 사라질 수도 있다.


4. 변혁적 진보정당의 건설


오늘 좌파에게 주어진 과제, 좌파가 취해야 할 행위는 무엇인가? 나는 한국 좌파의 당면 과제는 변혁적 진보정당을 건설하는 일이라고 본다. 정당 건설이 필요한 이유는 너무나 많다. 좌파가 역사의 주체로 서려면 대중과 만나야 한다. 그러나 한국의 좌파는 지금까지 한 번도 제대로 대중과 만난 적이 없다. 좌파가 결집되어 있지 못했기 때문이고, 뒷목에만 앉아 있었기 때문이고, 특히 정당 형태로 대중에게 다가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물론 이미 변혁적 진보정당 건설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정당 건설에 나서려는 사람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변혁적 정당을 건설하는 일은 간단하지 않다. 정당 건설은 많은 에너지, 많은 사람들의 참여를 요구한다. 힘의 결집이 필요한 것이다. 이런 점 때문에 정당 건설을 위한 범 좌파 또는 범 진보 세력의 연대를 주장하는 경우도 있다. 민노당에서 활동하다가 지난 대선에서의 패배 원인을 민족주의 세력의 종북주의에서 찾으며 당의 새로운 활로를 찾으려는 제2 창당파 또는 민노당 밖에서 새로운 당을 만들고자 하는 신당파, 지난 대선에서 민노당 못지않게 죽을 쑨 사회당, 그 밖의 많은 다양한 정파와 세력을 포함하는, 범진보 범좌파 세력들의 연대를 강조하는 것이다.

좌파들 간의 연대가 필요함을 부인하지 않는다. 그러나 문제는 연대의 방식이다. 일각에서는 좌파는 수가 적기 때문에 세를 불리기 위해 연대를 하자고 한다. 좌파가 소수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좌파가 언제 다수였던 적이 있던가. 좌파는 숫자라기보다는 입장이다. 이론적, 정치적 입장은 정확함, 분명함, 열정, 용기 등에 의해 가늠되는 것이지 숫자 크기에 의해 가늠되는 것이 아니다. 오늘 좌파는 블랙홀 같아야 한다. 블랙홀은 커서 우주를 빨아들이는 것이 아니다. 좌파도 블랙홀 같은 흡수력을 가지려면 크기에 연연해서는 안 된다.

연대를 하더라도 새로운 연대가 필요하다. 좌파 간의 연대가 그것이다. 좌우 합작이 아니라 좌-좌 연대이다. 좌우 합작의 통상적인 모습은 진보진영에서의 사회주의, 사민주의, 민족주의의 연대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연대와 합작의 결과가 무엇인지 민노당의 실패를 통해 이미 확인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좌우로 가는 것이 아닌 좌파들을 가로지르는 좌-좌 연대이다. 좌파는 이 새로운 연대를 통해 변혁적 진보정당을 만들어내야 한다.

통상 변혁 정당은 맑스주의 지식인과 선진노동자의 결합인 것으로 간주된다. 이들 지식인과 노동자의 결합은 필수적이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이런 필요조건 이상의 것이 필요하다. 한국의 좌파가 만들어야 할 정당은 변혁적 계급정당이어야 할 것이지만 성차와 성애, 인종/민족, 생태, 인권, 평화 문제를 다루는 운동들의 변혁적인 분파와도 함께할 수 있는 포용성이 있어야 한다. 이는 변혁정당 건설 운동이 지향할 좌-좌 연대가 좌파적 정치조직들의 연대와 함께 사회운동 내부의 다양한 좌파들과의 연대까지 아우를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좌-좌 연대가 쉽지는 않을 것이다. 지난 10년 좌파 정치조직들이 연대를 모색했으면서도 아직 뚜렷한 성과를 내놓지 못하고 있는 것이 단적인 증거이다. 게다가 지금 요구되는 좌-좌 연대는 정치조직들 외부에 있는 운동단체들―그 일부는 정당운동에 대해 적잖은 회의를 지닌―과 나아가서 다양한 성향을 지닌 개인들까지 포괄할 필요가 있다. 변혁 정당 건설에 대해 기대가 많은 만큼 의문이 많을 수밖에 없는 이유라 하겠다.

그래도 지금은 정당 건설에 대한 의문이나 회의보다는 기대가 더 크게 지배하는 국면으로 보인다. 물론 그동안 서로 다른 입장들, 행태들 때문에 쌓인 불만, 불신을 없던 것처럼 털어 버릴 수는 없다. 좌파운동 내부에는 계급문제, 성문제, 생태문제 등을 놓고 적잖은 갈등이 있다. 하지만 문제가 있다면 당 건설 과정에서, 강령의 채택 과정에서 토론을 통해 제기되어야 한다고 본다. 물론 이 과정을 얼마나 민주적으로 전개하느냐가 여전히 문제로 남겠지만, 동시에 그것은 당 건설 과정의 역동성을 만들어내고 변혁 정당에 대한 관심을 증폭시키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한국의 좌파는 역사상 처음으로 변혁적 진보정당 건설의 기회를 맞았다. 그동안 좌파의 정치적 활동에 장애로 작용하던 구조가 처음으로 허물어지는 징조가 나타났다. 오래 지속되지 않을 절호의 이 기회를 구조 변동의 분기점 형성 국면으로 만들어야 한다. 희망의 이 국면을 열정적으로 끌어안고, 좌파적 민주주의를 실천해야 한다. 그래야만 역사의 새로운 벡터를 창조할 수 있을 것이다. 변혁적 진보정당의 건설! 그것이 지금 좌파에게 주어진 정세적 의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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