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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7/24
    비온뒤 무서운 속도로 올라오는 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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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온난화 대피소 만들기 결정적 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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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온뒤 무서운 속도로 올라오는 풀!

 비온뒤 무서운 속도로 올라오는 풀!

 

끈 예취로 풀베기 하고 나서는 한 일주일만에 다시 텃밭을 찾았다.

이사이에 큰비, 작은비 해서는 3일정도 내렸고, 3일 정도는 엄청나게 더웠던 것인데-----.

무지하게 풀이 자라있다.

끈 예취기이라서는 가장 밑퉁을 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풀베기한 티는 분명했거늘,

일주일전 풀베기한 텃밭이라고 누가 믿겠는가?!

놀라운 속도로 자란 것임에 틀림없다. 

 

여름의 풀!

특히, 장마속에서 자라는 풀!

일주일 간격으로 풀베기를 한 나의 결론은, 풀의 일생에서 가장 왕성한 성장의 시기는 바로 여름 장마철이라고 단정을 내릴수 밖에 없다. 

사춘기 애덜로 치면 지난해 옷이 작아져서는 입을수 없을 정도로 쑥쑥자라는 모양이라고나 할까!

적절치 않네! 눈뜨고 나면 길어져 버린 콩나물 같다고나 할까! 이 표현도 별로 적절치 않군!

비온뒤 솟아나는 죽순! 그러네, 우후죽순!

 

왜 이렇게 잘 자라는 것인가!

이유는 간단하다. 

우선은 식물이 자라는데 적절한 온도와 수분이 제공되는 계절이다.  

그리고,

자랄대로 자란 뿌리,

광합성을 하기에 충분히 커진 잎,

뿌리의 영양분을 쫙쫙 빨아올려서는 잎끝까지 공급해줄정도로 튼튼하게 자란 줄기가 삼박자를 이룬다.

쑥쑥 안자라면 그게 이상한 것이다. 

 

여름의 풀을 이대로 놔둔다면, 즉, 자연에 맡긴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풀과 나무를 자연적 상태에서 자라게 한다면 말이다.

그렇다. 무성하게 들풀로 뒤덮힌 들과 조화롭게 우거진 숲이다.

 

조금더 나가볼까?!

자연과 어우러진 인간의 이상적 모습은 무엇인가?

그렇다. 우거진 숲, 푸르른 자연위에 동물 처럼 뛰어노는 인간의 모습 일거다.  

빨리 달리고 때로는 날기도 하겠으나, 들과 숲을 크게 거슬르지 않는 그것이어야 하지 않을까?!  

  

 

여름의 풀은 사람으로 따진다면 가장  왕성하게 자라는  청년기에 비교 되겠다.

육체적 정신적으로 가장 강렬한 에너지가 발산하는 시기다.

돌멩이도 씹어삼켜 소화 시킬때니까, 

주변 환경만 잘 조성 해준다면 훌륭한 성인으로 자라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겠다.

왕성하게 자라서는 훌륭하게 수확을 준비하는 여름의 작물처럼 말이다.

 

문제는 자연이나 인간사회 동일하게 워낙 주변환경이 좋지 않다는 점이다.

자연이나 청소년들이나 그 성장과 기세가 워낙 신비롭고 왕성하여, 티가 잘 안날뿐 ! 

 

무성해진 텃밭의 풀을 강철 예취기로 모두 베었다.

밭뚝과 논두렁에 무성해진 잡초까지!

잘 베었는가?! 일단 시원은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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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년7월 스테그

스태그플레이션과 신자유주의의 파산

[논설] 그럼에도 신자유주의인가?

김성구(편집위원장, 한신대)  / 2008년07월15일 9시39분


국제유가 및 원재료 가격의 급등과 물가상승 그리고 긴축과 금리 인상으로 새로운 경제침체의 우려가 전 세계적으로 확산하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이미 지난해부터 드러난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에 따른 주택시장의 폭락과 금융위기 속에서 실물경제의 침체가 예상되던 상황에서 전 세계적인 물가충격은 이제 경제침체를 현실화하고 스태그플레이션의 망령을 다시 떠올리기에 부족함이 없는 듯하다.

 

우리나라도 상황은 마찬가지여서 이를 배경으로 한국은행과 기획재정부 간의 정책논쟁이 벌어졌다. 긴축과 물가안정이냐, 수출과 성장이냐를 놓고 한국은행과 기획재정부 간의 논쟁은 시민단체 등 여론의 지지를 업은 한국은행의 승리로 일단락되었고,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은 정책 실패에 대한 혹독한 책임공방 속에서 장관 경질만큼은 피해 나갔다. 그러나 한국은행의 긴축과 물가안정은 전형적인 신자유주의 정책인바, 한국은행 식 신자유주의 물가정책이 스태그플레이션을 극복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 아닐 수 없다. 물론 기획재정부 식 신자유주의 성장정책도 스태그플레이션을 극복하지는 못한다.

 

스태그플레이션은 말 그대로 경기침체(스태그네이션)와 인플레이션의 합성어로서 경기침체와 인플레이션의 동반현상을 지칭한다. 주지하다시피 이 용어의 유행은 1970년대 중반 이래 케인스주의의 확장정책에도 불구하고 경기침체가 심화하였던 역사(1974/75년 공황과 1980/82년 공황), 즉 케인스주의의 파산을 배경으로 하였다. 케인스주의는 확장정책(개입주의)을 통해 인플레이션을 감수하더라도 완전고용을 달성할 수 있다는 이론에 입각해 있었고, 이 정책 처방은 2차대전 후 1970년대 초까지 나름대로 작동하였으나, 1970년대 이래 구조위기의 표출 속에서 파산하였다.

 

스태그플레이션이라는 현상 이전에 케인스주의에 따르면 물가와 실업은 역상관관계(상충적)이어서 물가를 안정시키려면 실업의 증대가 불가피하고, 반대로 실업을 감소시키려면 물가 등귀가 불가피하다. 물가 안정과 실업 감소(완전고용) 두 가지 목표를 동시에 달성할 수는 없지만, 한 가지 목표의 희생 하에 다른 한 가지 목표는 달성 가능했다. 케인스주의는 물가 등귀를 감수하더라도 실업 감소를 추구하였다. 그런데 1970년대 스태그플레이션으로 인해 이제 두 가지 목표가 모두 달성할 수 없게 되었고, 결국 케인스주의는 파산하였다.

 

신자유주의자들은 긴축과 물가안정 그리고 규제철폐를 통해 스태그플레이션을 극복할 수 있다고 선전하였다. 물가안정과 완전고용 두 가지 목표를 모두 달성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통화주의나 새고전파 같은 신자유주의에 따르면, 국가개입과 확장정책으로는 실업을 줄일 수 없고 인플레이션만 심화시킬 뿐이다. 따라서 스태그플레이션은 케인스주의가 가져온 불가피한 결과가 된다. 확장정책과 개입주의가 아니라 긴축과, 규제철폐를 통한 시장규율의 강화만이 물가안정과 완전고용을 가져온다는 것이다.

 

거의 30년에 이르는 신자유주의 정책의 결과를 보면, 이들의 이론과 정책은 케인스주의 못지않게 실패하였음을 알 수 있다. 신자유주의 긴축정책의 결과 선진자본주의 경제는 1980년대 이래 1970년대 중반과 1980년대 초반의 스태그플레이션의 상황으로부터 실로 두자릿수의 물가상승률을 진정시켰지만, 그 대가는 케인스주의 시대를 훨씬 능가하는 성장둔화와 대량실업의 구조화였다. 좋게 말해도 신자유주의는 물가 안정과 완전고용이라는 두 가지 상충적인 목표를 케인스주의와 상반된 방식으로 해결했을 뿐이었다. 즉 물가 등귀와 완전고용(케인스주의) 대신 물가안정과 대량실업을 가져왔을 뿐이었다. 그것은 필연적인 결과였는데, 신자유주의 기획이란 원래부터 긴축을 통해 성장둔화와 대량실업을 유도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시장규율을 강화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런데도 신자유주의 이론에 따르면, 이들은 물가안정과 완전고용을 주장하는데, 그것은 현실에 존재하는 대량실업을 케인스주의처럼 비자발적 실업(유효수요 부족으로 일하고자 하지만 일자리가 없는 상태)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단지 구인 및 구직과정에서의 정보 제한으로 발생한 일시적 실업으로 보기 때문이다. 조만간 일자리를 찾을 일시적 실업자이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실업(비자발적 실업)이 아니며, 따라서 완전고용을 주장해도 무방한 것이다. 구조화되고 있는 현실의 대량실업에도 불구하고 신자유주의자들이 완전고용을 주장하는 것은 이런 이론적 논거 때문이다.

 

정상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이라면 황당하게 들릴 궤변 같은 이런 주장을 신자유주의자들도 사실 대중들에게 터놓고 말하지 못한다. 시장에서 일자리를 뒤지다 보면 취업하게 되니까 당신들의 실업은 별로 문제가 아니라고 저널리즘의 어디에서 감히 그렇게 말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이들이 강단에서 아카데미즘의 이름으로 그렇게 학생들에게 강의하고 있다는 것을 어떤 대중이 알고 있을까?

 

현재의 경기 사이클은 2001년 미국 공황으로부터 시작된 것으로서 정확하게 언제 새로운 공황으로 종료할 것인가는 아직도 예측하기 어렵다. 그러나 대량실업이 구조화되어 있는 상황 속에서 새로운 물가 충격이 실로 새로운 공황으로 귀결된다면, 스태그플레이션의 재발은 누구도 부정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신자유주의의 파산을 의미한다는 것도 명명백백할 것이다. 1970년대 스태그플레이션이 케인스주의의 파산을 가져왔다면, 2000년대 말의 새로운 스태그플레이션은 분명 신자유주의의 파산을 가져올 것이다. 그럼에도 중앙은행의 긴축정책으로 이에 대처한다는 것은 썩은 무기 자루를 드는 것과 마찬가지다. 아니 그것보다 더 나쁜 것이어서 경제침체와 실업을 더욱 심화시킬 것이다.

 

자본주의 역사에서 스태그플레이션은 분명 2차대전 종료 이후 현대자본주의의 현상이고, 이는 자본주의가 국가독점자본주의 단계로 발전한 것과 관련되어 있다. 독점가격의 지배와 국가개입에 따른 경기순환의 변형, 특히 공황 시에 감가와 자본파괴를 막기 위한 자금 지원과 유동성 투입으로 인플레이션은 만성화되었고, 그럼에도 주기적인 공황과, 이윤율의 장기적 저하에 따른 침체경향이라는 자본주의의 고유한 축적의 모순은 심화되었는 바, 이런 주기적 위기와 구조적 위기의 결합 위에서 스태그플레이션이 발생했던 것이다. 이는 신자유주의 하에서도 예외가 아니어서 긴축을 주장하는 신자유주의 정부들조차 지난 공황 때마다 막대한 유동성을 투입하지 않을 수 없었다.

 

부르주아 경제학과 저널리즘이 스태그플레이션을 과학적으로 설명하지 못하는 것은 두말할 것도 없지만, 이런 현상조차도 부정확하게만 표현할 뿐이다. 저널리즘에서 스태그플레이션이란 두자릿수 정도의 과도한 물가상승과 낮은 성장률의 동반 현상으로 이해되는 데, 과학적으로 정의한다면, 스태그플레이션은 (공황 시에도) 지속적인 물가상승과 (공황 시의) 마이너스 성장률이 결합한 현상을 말한다. 따라서 이런 정의에 따르면, 스태그플레이션은 오늘날의 새로운 현상이 아니라 공황 때마다 나타난 전후 자본주의의 일반적 현상이며, 다만 1970년대 이래 구조위기 속에서 그 현상이 보다 극적인 형태로 전개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스태그플레이션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신자유주의를 폐기해야 하고, 또 그렇다고 케인스주의로 돌아가서도 안 되며, 근본적으로 국가독점자본주의를 넘어가지 않으면 안 된다. 국가독점자본주의 안에서 스태그플레이션을 극복하는 길은 존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스태그플레이션이란 국가독점자본주의의 모순들의 고유한 표현이기 때문이다. 국가독점자본주의 안에서 그래도 스태그플레이션을 완화하고자 한다면, 무엇보다 다음 두 가지 정책이 필수불가결하다. 첫째, 다가오는 새로운 공황 앞에서 확장정책으로의 전환은 불가피하게 필요하다. 둘째, 독점자본의 이윤과 가격을 강력하게 통제하고, 재정을 비롯한 국가독점에 대한 대중 통제를 강화하며, 사유화를 저지하고 국유화와 공공투자 등 사회화 프로그램을 적극 동원해야 한다.

 

스태그플레이션을 완화시킬 이런 정책조차도 국가독점자본주의 내에서 독점과 국가독점에 대항한 강력한 투쟁을 전제하는 것이다. 이런 투쟁 속에서 국가독점자본주의와 스태그플레이션을 근본적으로 극복하는 역사적 길이 열릴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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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난화 대피소 만들기 결정적 실수

온난화 대피소 만들기에 결정적 실수를 하다.

 

한참만에 들른 텃밭!

엄청나게 풀이 돋아나 있구나!

두어 차례 장마비가 오긴 했었지만, 이렇게나 빨리 풀이 올라오다니!

긴급 예취기 작업! 헌데, 강철 예취기가 아닌, 끈 예취기의 작업 능률은 형편없다.

풀을 베는게 아니라, 뜯는다는 느낌이다. 혹은 쓰러트리거나! 이런 식이라면 낼모레 다시 풀밭되는 것은 뻔한 것인데-----.

 

땅이 아니라, 하늘쪽은 어떤가!

지금쯤은 하우스 하늘쪽을 호박 넝쿨이 뒤덮어야 하는 시기인데.

하늘쪽은 형편없다. 땅에 풀이 무성한것에 비해 하늘쪽 넝쿨은 빈약하기 그지없다.

 

그런데, 단지 거름이 부족해서가 아니었다. 

호박 넝쿨이 자꾸만 땅쪽으로 쳐지고 있다. 위쪽으로 올라가지를 않는다.

이유는 간단했다. 햇빛에 달구어진 파이프를 견디지 못하고 쳐지기 때문이다.

양철 지붕위에는 넝쿨 작물이 안되는 이유와 같다.

초가 지붕을 아주 잘타는 것과 비교된다.

 

이를 방지 하려면, 파이프와는 별도로 끈을 연결해 주어야 한다.

열을 받지 않거나, 더듬이 순이 편하게 감싸게 하기 위해서는 끈을 달았어야 했다. 

이게 결정적 실수다. 잘올라가다가 중간에 축쳐진 호박 넝쿨 !

영 보기에 사납구나!

 

그래도, 조롱박은 많이 달렸다. 

헌데, 왠 조롱박이 이리 길쭉한가? 전형적인 술병형 조롱박이 다수이기는 하지만, 괴상하게 변형된 조롱박도 꽤나 많구나.

 

오늘이 7월 14일!

날은 덥다. 7월 말까지 계속 더워질 듯 !

지구 온난화에 대비한 대피소 만들기는 반쯤성공이고 반쯤 실패다. 

더위가 대피소를 거진 덮쳐 버렸다고나 할까?

온난화된 더위를 너무 얕잡아 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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