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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황과 노동자 투쟁

공황과 노동자 투쟁


1. 공황


1) 공황은 어떻게 전개될까?

- 공황은 투자금융 부문에서 시작되지만 금융공황과 산업공황이 동시적/복합적으로 진행될    것이다 : 진정한 경제공황.

- 공황은 미국에서 시작되지만 선진자본주의 나라들과 이른바 신흥시장에서 동시적/상호적    으로 진행될 것이다 : 명실상부한 세계공황.

- 공황은 1930년대의 대공황에 근접하는 강도를 가지고 진행될 것이다. 그러나 그 당시보    다 파급의 속도는 더 빠를 것이다 : 전례 없는 대공황.   


2) 공황의 원인은 무엇인가?

- 직접적으로는(immediately), 부동산(주택) 투기 거품과 금융(파생금융상품) 투기 거품이 융합되어 진행되던 가공자본의 축적과정이 한계점에 이르러 폭발함으로써 일어났다.

- 조금 크게 보면, 중앙은행이 낮은 이자율로 대출을 부추겨 거품 투자를 조장한 것과 부시 행정부가 직접 나서서 ‘소유자 사회’ 운운하며 ‘내집 갖기 운동’을 벌여 거품 소비를 조장한 것이 그 원인이다. (정책실패)

- 조금 길게 보면, 레이건, 대처 이래 자본주의 경제의 축적 패러다임을 신자유주의로 전환하여 과잉축적과 과잉생산을 심화시킨 것이 그 원인이다. 과잉축적과 과잉생산으로 인해  유휴 자본이 생산적인 즉 잉여가치를 낳는 투자기회를 갖지 못하자 투기에서 허구적으로 증식하다가 폭발한 것이다. (축적 패러다임의 실패) 

- 1970년대 이래의 장기 추세적인 이윤율 저하 경향 속에서 신자유주의 착취 강화에 의한 소비기반의 파괴와 과잉축적, 그것을 타개하고자 한 거품 투자와 거품 소비 조장, 그것에 의한 부동산 및 금융 투기의 동시 진행, 그 거품의 폭발과 시스템의 붕괴로 요약할 수 있다.  


3) 공황 ‘이후’는 어떻게 전망되는가?

- 일본이 14년째 겪고 있는 바와 유사하게 장기복합불황으로 지속될 것이다. 이른바 L자형    이다. 1930년대만큼 공황의 골이 깊지 않더라도 자산 디플레이션과 부채 누적 때문에     성장엔진의 재가동이 어렵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이윤율을 회복하여 성장엔진을 재가동    하기 위해 착취도를 높이려는 압박이 비상한 강도로 추구될 것이다. 이렇게 하여 줄어드    는 구매력은 군비지출 및 해외판매로써 대체하고자 할 것이다.  즉 군국주의화와 권위주의   화!

- 한편으로는 제국주의 상호간 국제공조가 이루어지겠지만 경제패권을 둘러싸고 대립의 격    화가 나타날 것이다. 달러를 기축통화로 정한 브레튼우즈 체제에 대한 손질이 불가피하겠    지만 다극화된 국제통화체제보다는 달러/유로 공동 기축통화 체제(대서양동맹)로 갈 가능    성이 많다. 더불어 상품, 자본, 노동, 자원 등을 둘러싼 시장쟁탈전도 갈수록 치열해질 것    이다.

- 이에 따라 제국주의 상호간 대립이 정치·군사적으로도 격화될 것이다. 이는 과거의 경험    이 보여주듯이 블록 간 대결의 형태를 띠게 될 것이다. 기득권을 가진 선진자본주의 강대    국 블럭(미국, EU 및 일본)과 후발 자본주의 강대국 블럭(중국과 러시아) 사이에 이념 대    결의 성격은 거의 없고 패권쟁탈전의 성격을 가지는 냉전(그러나 열전의 가능성도 내포하    는)이 벌어질 것이다. 

- 이 패권쟁탈전은 자원확보를 둘러싸고 중동에서 전개되는 테러와의 전쟁 차원을 훨씬 능    가하여 ‘상하이협력기구’ 나라들을 식민지로 확보하기 위한 쟁탈전과 중남미 사회주의 지    향 나라들에 대한 탈사회주의/식민지 지배권 유지를 위한 쟁탈전으로 가시화될 것이다. 

- 요컨대 생산력 발전과 세계시장 형성의 경향은 그 역의 경향에 의해 저지될 것이다. 자본    그 자체가 생산력 발전과 세계시장 형성에 대한 장벽으로 나타날 것이다.


“자본주의적 생산의 진정한 장벽은 자본 그것이다. 즉 자본과 자본의 자기증식이 생산의 출발점이자 종점, 동기이자 목적으로 나타난다는 점, 생산은 오직 자본을 위한 생산에 불과하며, 따라서 생산수단이 생산자들의 사회를 위해 생활과정을 끊임없이 확대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는 점에 자본주의적 생산의 진정한 장벽이 있다. 생산자대중의 수탈과 빈곤화에 의거하는 자본가치의 유지와 증식은 이러한 장벽들 안에서만 운동할 수 있으며, 이러한 장벽들은 자본이 자기의 목적을 위하여 사용하지 않을 수 없는 생산방법들[생산의 무제한적 증가, 생산을 위한 생산, 노동의 생산력의 무조건적 발달로 향하여 돌진하는 생산방법]과 끊임없이 모순된다. 수단 - 사회적 생산력들의 무조건적인 발달 - 이 제한된 목적 [기존자본의 가치증식]과 끊임없이 충돌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본주의 생산양식이 물질적 생산력을 발달시키고 이 생산력에 적합한 세계시장을 창조하기 위한 역사적 수단이라고 한다면,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은 또한 자기의 역사적 과업과 자기의 생산관계 사이의 끊임없는 충돌이라고도 할 수 있다.”(자본론 3권(상) p.300)  


“노동자의 착취수단으로서 어느 일정한 이윤율로 기능하기에는 너무나 많은 노동수단과 생활수단이 주기적으로 생산된다. 상품의 가치와 이 속에 포함되어 있는 잉여가치가 자본주의적 생사네 특유한 분배조건과 소비관계 아래에서 실현되어 새로운 자본으로 재전환 되기에는 너무나 많은 상품들이 생산된다. 즉 이 과정을 반복되는 폭발 없이 완수하기에는 너무나 많은 상품들이 생산된다. 너무나 많은 부가 생산되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적인 적대적인 형태의 부가 주기적으로 너무나 많이 생산된다.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장벽들은 다음과 같이 나타난다. (1) 노동생산성의 발달은 하나의 법칙으로서 이윤율의 저하를 내포하는데, 이 이윤율의 저하는 어느 일정한 시점에서 생산성의 발달 그 자체에 매우 적대적으로 대항하며 따라서 공황에 의하여 끊임없이 극복되어야만 한다. (2) 생산의 확장 또는 축소를 결정하는 것은, 생산과 사회적 필요[사회적으로 발달한 인간의 욕구] 사이의 비율이 아니라, 불불노동의 취득과, 이 불불노동과 대상화된 노동 일반 사이의 비율 - 이것을 자본주의적으로 표현하면, 이윤[의 취득]과, 이 이윤과 자본투자액 사이의 비율(즉 어떤 일정한 이윤율) - 이다. 따라서 사회적 필요를 충족시키기에는 아주 부족한 수준의 확장에서 이미 생산에 대한 장벽들이 나타난다. 다시 말해 생산은 사회적 필요가 충족되는 수준에서 중단되는 것이 아니라 이윤의 생산과 실현이 명령하는 수준에서 중단된다.”(자본론 3권 (상) p.310)  


2. 노동자 투쟁의 방향


1) 사회주의 노동운동으로의 이념의 혁신이 그 출발점이다.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이 공황은 신자유주의에 의해 매우 강도가 높은 것으로 되었지만, 사실 공황은 자본주의에 항상적인 것이다. 주기적으로 공황이 발생하는 것이야말로 자본주의의 운동법칙이다. 그리고 공황은 생산력의 발전을 멈추게 할 뿐 아니라 존재하는 생산력조차 사용되지 못하게 함으로써 사회적 필요의 충족을 어렵게 하고 근로대중을 실업과 빈곤의 나락으로 추락하게 한다. 그리하여 공황 국면에 이르러 보면 자본주의가 분배를 심히 불평등하게 만드는 체제일 뿐 아니라 자본주의 그 자체가 생산에 대한 장벽이라는 것이 분명히 드러난다. 이처럼 자본주의는 노동의 소외의 측면은 차치하더라도 생산력의 면에서도 분배의 면에서도 부정적인 양식임이 확인된다. 그러므로 노동운동은 모든 패배주의를 떨치고, 모든 개량주의를 극복하고, 자본주의 생산양식을 타파하고 자본주의 시대의 성과를 바탕으로 사회주의 생산양식으로의 이행을 목표로 하는 변혁적 노동운동으로 자신을 혁신해야 한다. 그 목표가 부분적인 사회주의든 전면적인 사회주의든 그 지향하는 바가 자본주의의 구제나 수정에 제한되지 않아야 한다. 그러한 노동운동은 노동자대중을 대표하고 그들의 이해와 요구를 대변할 수 없다.     


 “자본의 독점은 [이 독점과 더불어 또 이 독점 밑에서 번창해 온] 그 생산방식의 질곡으로 된다. 생산수단의 집중과 사회화는 마침내 그 자본주의적 외피와 양립할 수 없는 점에 도달한다. 자본주의적 외피는 파열된다. 자본주의적 사적소유의 조종이 울린다. 수탈자가 수탈당한다. ... 이 부정의 부정은 사적 소유를 부활시키지는 않지만 자본주의 시대의 성과 - 협업 및 토지와 생산수단[노동 그것에 의하여 생산된 것]의 공동점유 -에 입각한 개인적 소유(사적개인이 아니라 사회적 개인의 소유 : 필자)를 확립한다. 물론, 개인들 자신의 노동에 입각한 분산된 사적 소유가 자본주의적 사적소유로 전환되는 것은, 사실상 이미 사회적 생산과정에 바탕을 두고 있는 자본주의적 사적소유가 사회적 소유로 전환되는 것보다 훨씬 더 오래 걸리며 힘들고 어려운 과정이다. 전자의 경우는 소수의 횡령자가 국민대중을 수탈하는 것이지만, 후자의 경우는 국민대중이 소수의 횡령자를 수탈하는 것이다.” (자본론 1권 (하) pp.959~960)


2) 반제국주의와 ‘노동자 국제주의’로 전략을 재정립해야 한다.

이번 공황이 확인시켜주는 것은 오늘날 자본주의가 전 지구적(global)으로 긴밀하게 통합되어 있다는 것이다. 또한 이 전 지구적 자본주의는 제국주의적 자본주의와 그들에 의해 지배되는 식민지적 자본주의로 비대칭을 이루고 있으며, 제국주의 안에서도 패권과 비패권으로 위계를 이루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런 조건 하에서 그리고 불황이 지속됨에 따라 제국주의와 식민지, 패권적 제국주의와 비패권적 제국주의 상호간에 모순이 격화되어 갈 것을 전망할 때, 자본주의로부터 사회주의로의 변혁은 제국주의를 타파 또는 후퇴시키는 과정과 긴밀하게 결부시켜 추구하는 것이 현명할 것이다. 특히 패권적 제국주의 세력의 타파 또는 후퇴는 기존 질서에 커다란 지각변동을 가져오며 그런 변동 속에서 사회주의 변혁은 더욱 현실적이 될 것이다.  

이처럼 변혁의 주된 대상이 제국주의가 되어야 한다면 주된 동력은 세계 노동자계급의 국제연합으로 되어야 할 것이다. 지난날에도 그러했겠지만 전 지구적 자본주의라는 현실 속에서는 더더욱 일국적 사회주의 건설을 운동의 목표로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한 전략은 해당 나라의 노동대중에게 너무나 큰 고난을 요구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전 지구적 범위에서의 노동자계급의 국제연합을 이루고자 하는 노동자 국제주의가 노동운동의 전략적 원칙으로 자리매김 되어야 할 것이다. 물론 노동자와 농민 사이의 동맹은 여전히 전략적으로 중요하다.   


3) 조직과 투쟁에 관련된 모든 기존의 것들을 수술대에 올릴 각오를 해야 한다.


첫째 노동조합운동에 있어서 독점대사업장 정규직 노동자 중심의 실리추구적 노동운동은 전체 노동자계급의 이해와 요구를 대변하는 계급적/변혁적 노동조합운동으로 혁신되어야 한다. 이것은 기업별 노조의 산업·업종별 결속 강화를 의미하는 산별전환 노선과 단절을 의미한다. 대안은 지역산별노조이다. (이 노조는 교섭 중심에서 조직화와 저항적 투쟁 중심으로 활동의 중심이 바뀌어야 한다.즉 조직화 전략의 추구이다.) 이를 세포로 하는 지역적, 산업적 그리고 전 계급적 총연합으로, 밑에서 위로 연합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럼으로써 관료주의를 극복해야 한다. 한편 노동조합 안에서의 단결은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부르주아적 원칙과 더불어 공동체주의(물론 사회주의적인 공동체를 지향하는!) 원칙을 과감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즉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분배받는 것이 원칙으로 되어야 한다. 이런 원칙들의 결합에 입각하여 요구들이 만들어져야 하며, 공황 정세 하에서 비정규직 철폐와 일자리를 나누는 노동시간 단축(예컨대 하루 6시간제)이 노동조합의 중심적 요구가 되어야 할 것이다. 이런 바탕 위에서 노동조합은 노동자 정치운동이 주동적으로 제기하는 사회변혁적 의제들을 적극 받아 안아서 함께 요구하고 투쟁해야 할 것이다. 


둘째 노동자 정치운동은 사회변혁적 노동자정치운동으로 혁신되어야 한다. 제도/정책적 개량을 경시하지 않지만 사회변혁의 성격을 지니는 의제들을 중심으로 활동해야 한다. 가장 선차적으로 필요한 것이 무상의료, 무상교육, 무상주택과 같은 기본생활의 사회주의적 보장에 관한 요구이다. 다음으로 금리생활자 계급을 안락사 시키는 과제이다. 즉 지대/배당/고금리/투기자본이득 추구자를 반사회적인 존재로 규정답게 하는 것이다. 다음으로 금융과 실물을 망라하여 공적자금이 투입되는 기간산업을 국유화하고 사회화하는 과제이다 이런 변혁적 성격의 요구와 과제를 중심으로 투쟁해야 할 것이다. 이런 요구와 투쟁은 합법 정당의 형태로 추진될 수도 있고 반합법 전선체의 형태로 추구될 수도 있을 것이며 그 둘이 결합되어 추구되어야 할 것이다. 그 두 경우 요구에 있어서는 같을 지라도 투쟁형태에서는 다를 수 있을 것이다. 전자에게는 선거가 후자에게는 전민항쟁이 주요 투쟁형태일 터이다. 그러나 어느 경우건 이런 사회변혁적 요구들은 현존 국가권력을 지배계급의 수중에 그대로 둔 상태에서, 즉 야당이나 재야에 머물러서는 실현될 수 없을 것이다. 집권이 곧 변혁을 가져다주지는 않지만 집권 없이 변혁을 꿈꾸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셋째 노동자 사회·문화운동이 개척되어야 할 것이다. 오늘날 노동자 대중이 살아가면서 부딪치는 문제들은 노동과정에 직접적으로 관련된 것들에 국한되지 않는다. 생활세계 또는 시민사회 속에서 부딪치는 수많은 문제들이 있다. 그것들은 경제적인 성격을 띠는 것(대표적으로 교육과 의료에 관한 것)도 있고 비경제적인 성격을 띠는 것(예컨대 생태문제와 같이 진보적 가치에 관련된 것)도 있으며 그 두 가지 성격이 복합되어 있는 것도 있다.(예컨대 소비자보호운동) 특히 지금의 노동운동에는 사람들의 의식세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교육, 미디어, 문화 등에 대한 운동이 매우 부족하다. 민주노총 시대의 개량화된 노동운동은 이런 사회·문화적 운동을 자신의 임무로 사고하지 못한 면이 있다. 그러나 노동운동이 변혁지향성을 강하게 띠었던 87~91년 기간에 이런 활동들이 노동조합운동 안팎에서 매우 활발하게 전개되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끝으로 지금이 공황국면이라는 점을 환기하고 싶다. 자본가계급은 이 위기를 주동적으로 대처함으로써 노동자계급과 노동운동이 미처 손을 쓸 겨를도 없이 자신들의 지배를 안정화시키는 틀을 구축하려 하고 있다. 제국주의는 또 식민지에 대한 자신들의 지배권을 안정화시키기 위하여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이런 점이 1930년대의 공황에서와 아주 다른 점인 것 같다. 남한에서도 지배계급은 ‘서울 컨센서스’, 여야공동정부 운운하며 종언을 고한 신자유주의에 대한 대안을 마련하여 위기를 관리하려 부심하고 있다. 거기에 비해 노동운동은 반 한나라당(또는 반 이명박) 국민전선을 내놓은 것 밖에 없다. 만약 여야공동정부가 구성되어(민주노동당이 참여하든 않든 상관없이) 장하준 식의 케인즈주의를 대안으로 함께 추진한다면 노동운동은 지배계급의 들러리가 되어 그것을 지지하거나 닭 쫒던 개 지붕 쳐다보는 처지가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노동운동은 비록 낮은 단계의 사회주의에 불과한  한계가 있더라도 자본가계급과 분명하게 구별되는 독립적인 사회주의 강령을 가지고  이 공황 정세에 임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사회민주주의적인 최저강령이 아니라는 점에서 그것과 구별하여 당면 변혁강령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참고로 말하자면 사회민주주의의 원리는 사적 개인들의 연대이며 노동(능력과 노력)에 따른 분배라면, 사회주의의 원리는 사회적 개인들이 연합이며 (비록 공산주의 사회에서와 같이 완전하게는 아닐 지라도!) 필요에 따른 분배이다.


   2008년 10월 18일 k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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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황과 혹세무민지설들


채만수



[편집자 주: 이 글은 2008년 10월 11일의 연구소 내부 토론회에서 발표된 글을 약간 보완한 것이다.]




1. 상황 (1)


미국 공산당 계열의, 그러나 다분히 사민주의적 성향을 드러내고 있는 한 평론가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기상전문가가 아니라도 바람이 어디로 부는가는 누구나 알 수 있다”는 밥 딜런(Bob Dylan)의 1965년의 노래는 유명하다. 그리고 지금 우리에게 정말로 경제적 위기가 닥쳐 있다는 것을 누구도 부인하지 않고 있다.1)


실제로 그 동안 수십 년 동안 온 세계를 종횡무애 쥐락펴락하며 호령하던 거대 금융자본들이 연이어 쓰러지고 있고, 이에 따라 자본주의 세계경제는 지금 말 그대로 패닉(panic) 상태에 빠져 있다. 그리고 연일 국내외의 부르주아 신문․방송․인터넷 등을 장식하고 있는 “폭락”․“붕괴”․“패닉”․“공포”․“대공황” 등등의 비명이 말해주고 있듯이, 그 동안 그토록 완강하게 대공황이나 그 가능성을 과거지사로 치부하던, 소위 경제학자들을 포함한 자본의 이데올로그들 역시 모두 대공황의 공포에 떨고 있다.

공황, 그것도 대공황(의 가능성)을 아무도 부인하지 못하는 이러한 상황은, 국내의 지적 분위기와 관련해서 말하자면, 1989-90년 당시와는 가히 격세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그것이다. 그때는, 당시의 한국경제의 상황을 공황으로 규정했을 때, 예컨대 한사연(한국사회연구회․한국사회과학연구소)의 ‘진보적 경제학자’ 정건화(지금은 한신대 경제학 교수)나 정태인(노무현 정부의 청와대 비서관, 지금은 진보신당의 주요 정책 이데올로그 및 성공회대 교수) 등등이, “산업구조조정 국면일 뿐”이라거나 “소공황일 뿐”이라며, “현대자본주의의 축적위기는 국가의 개입으로 공황(Crisis)으로 전개되지 않는다”(정건화의 표현 그대로)고 박박 우기고 나서도 누구 하나 그 오류를 지적하지 않던 분위기였다.2)

그런데, 이렇게 대공황(의 가능성)을 사실상 기정사실화하고 있는 요즘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현대자본주의의 축적위기는 국가의 개입으로 공황(Crisis)으로 전개되지 않는다”는 일종의 ‘국가독점자본주의 영구번영론’이 청산된 것은 아니다. 요즈음의 대부분의 논의․보도들, 그 호들갑들 역시 사실은 모양만 바꾸어 그것을 재생하고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최근의 상황과 관련하여 2008년 10월 10일 현재까지 발표된 국내의 논의 가운데 이러한 헛소리의 범주를 벗어나 있는 것은, 내가 아는 한, <참세상>에 발표된 김성구 교수의 논설들(특히 그의 “미국 정부는 시장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나”)과3) 부분적으로는 박하순 노기연 소장․사회진보연대 집행위원장의 논설들, 그리고 노정협의 “경제공황과 자본주의 국가―신자유주의의 몰락인가?”(<<노동자정치신문>> 제45호, 2008년 9월) 정도뿐이다. 기타의 논의․논설들, 특히 <<한겨레>>나 <프레시안> 등에 게재되고 있는 그것들은, 뒤에서 명백히 하는 것처럼, 대부분이 ‘국가의 역할․규제 강화론’, 즉 사실상 형태만 바꾼 ‘국독자 영구번영론’, 혹은 국독자의 영구번영을 꾀하는 망상의 정책론들이다. 그리고 <참세상>의 일부 논의들은 전혀 이론적 근거들을 결(缺)하고 있는 몰개념하고 극좌적인 ‘자본주의 규탄․붕괴론’에 불과하다.

아무튼, 위기의 경제 상황 그 자체로 다시 돌아가면, 지난해 여름부터 폭발하기 시작한 위기는 지난 7월 들어 그 범위에서도 그 깊이에서도 급격히 확대․심화되면서 이제는 매일매일의 사태전개를 추적하는 것 자체가 사실상 부질없는 일이 될 정도의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자본가계급의 대표적인 신문의 하나인 <<뉴욕타임즈>>조차 다음과 같이 말할 정도이다.


두 주일 전 백악관이 7천억 달러의 구제 계획을 내놓았을 때에는 그 엄청난 규모가 전세계 금융체제를 진정시키고, 믿음과 신뢰를 회복시킬 것처럼 보였다. 그 계획이 [의회의: 인용자] 동의를 받은 지 3일이 지난 지금 그것은 마치 출렁이고 있는 바다에 조약돌 하나를 던진 것처럼 보인다.4)


실제로 써브프라임 모기지의 부실화를 계기로 발생한 ‘금융기관들의 손실’은 애초의 상상을 넘어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 금년 1월에 나는 당시의 보도들을 인용하면서, 기껏 독한 맘 먹고, “1,500억 달러, 2,500억 달러, 4,000억 달러! ― 사실 그것이 얼마나 거대한 금액인지?! 우리네에게는 차라리 무감각하게 다가온다”5)고 썼지만, 지금 다시 보면 그 순진함이 부끄러워 고개를 들기 어려울 지경이다. 그 손실이 1조 4천억 달러에 이른다는 얘기가 여기저기에 보도되고 있을 뿐 아니라, 그 손실이 “미국에서만도 2조 달러($2 trillion)에 이를 것”6)이라는 예측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금 언제 본격적으로 폭발할지 모르는 시한폭탄처럼 되어 있는 ‘신용 파생상품’(credit derivative)으로서의 ‘신용파산 스왑’(Crdit Default Swaps: CDS)이 2000년에는 1천억 달러였으나 지난 여름에는 62조 달러로까지 증대해 있다는 보도이니,7) 실로 유구무언!

이렇게 $700,000,000,000.-라는 거액이 “출렁이고 있는 바다에 던져진 조약돌 하나”처럼 보일 수밖에 없는 상황! 그리하여 그 거대한 구제계획이 의회를 통과한 그 날도, 그리고 그 이후에도 “대서양의 양안(兩岸)에서”, 즉 미국과 유럽에서, 아니 실제로는 거의 전세계에서 “주식시장의 현기증 나는 폭락”8)이 사실상 연일 계속되고 있고, 그리하여 주식시장을 아예 폐쇄해버리는 나라들이 속출하고 있는 상황!9) 그리고 또 미국만이 아니라 영국이나 IMF 등이 엄청난 액수의 구제자금 계획들을 속속 발표하고 전세계 주요 국가들이 연이어 공정 이자율을 내려도 시장 금리는 폭등하고 있을 뿐 아니라 자금이 회전되지 않고 있는 상황! 수백 년 역사를 가진 거대 은행들(증권회사나 보험회사들을 포함한 그것들)이 여러 나라에서 연달아 도산하고 있고, 도산을 면하기 위해서 국유화되고 있는 상황! 세계 최대의 자동차 메인커인 GM을 위시하여 포드, 크라이슬러 등 이른바 ‘빅 쓰리’가 정부로부터 곧 250억 달러에 이르는 보조금을 받기로 되어10)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생존 가능성 여부가 문제로 되면서 그 주식 가격이 정크본드(junk bond) 수준으로까지 폭락하고 있는 상황!11) 이것이 바로 자본주의 세계경제의 현재의 상황이다.

간단히 말해서, 미국의 써브프라임 모기지 부실 사태가 일파만파로, 아니 일파만파라는 말로도 현실의 1만 분의 1도 표현하지 못할 만큼 확산되고 있고, 물론, 국제통화기금(IMF)의, 금융위기 전공 전(前) 수석 경제학자이자 현재는 매사추세츠 공과대학(MIT)의 경제학자인 씨몬 존슨(Simon Johnson)도 말하고 있는 것처럼, “장래의 전망도 극히 불길하다(It looks pretty ugly down the road)”.12) 도미니크 쉬트라우스-칸(Dominique Straus-Khan) IMF 총재님께서는 “세계가 전세계적 경제침체의 간두(竿頭)에 서 있다”면서도, 부르주아적 백치증을 대표하여, “우리가 만일 재빨리, 강력하게, 협력하여 행동한다면” ‘세계시장과 금융시장의 문제들은 해결될 수 있다’13)고 말하고 있지만 말이다.



2. 혹세무민지설들


공황의 시기는 경제학자들에게는 대목이다. 혹세무민(惑世誣民)의 헛소리로 상황의 성격을 왜곡하고, 그 위기의 원인을 왜곡하여 노동자들의 탓 등으로 돌리는 등 공황의 부담을 전가하고, 자본의 이익을 옹호하며, 체제를 방어하기에 바쁜 씨즌인 것이다.14) 예컨대, 필시 모두가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겠지만, 11년 전 일반적으로 ‘IMF 사태’라고 부르는 거대한 외환․금융위기가 폭발했을 때, 자본의 극우 이데올로그들은 물론 <<한겨레>> 경제부장 이봉수15) 같은 물정 모르는 소부르주아 어릿광대들까지 그 위기의 원인을 노동자들의 ‘과소비’, 즉 그 과대소비 탓으로 돌렸던 것처럼 말이다.

자본주의적 경제위기, 즉 공황의 궁극적 원인은 과잉생산이기 때문에 공황의 원인을 노동자 대중의 과대소비로 돌리는 것은 물론 경제학의 백치나 떠들어댈 수 있는 가히 미친 주장이다. 공황의 발발과 심화의 원인이 과잉생산에 있다는 것은, 번거롭게 경제학 교과서를 들춰볼 필요도 없이, 자본가계급의 실천에 의해서 입증된다. 즉, 지난 ‘IMF 사태’ 당시에 그토록 노동자들의 ‘과소비’를 규탄하던 독점자본이 공황이 심화되고 장기화되자 한 개그우먼을 등장시켜 “허릿띠를 졸라매기만 해서는 안 되다”는 광고공세를 편 사실이나, 위기가 심화돼가자 미국 정부가 금년 봄 1천억 달러의 세금을 환급하면서까지 대중의 소비를 진작시키려고 했던 사실 등에 의해서 입증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미친 주장은 그것이 미친 것인 만큼 그다지 위험하지 않다. 그 융단폭격 같은 공세에 잠시 주춤했다가도 대중은 금세 그것이 거짓임을 알아채고 저항에 나설 뿐 아니라, 경험이 보여주는 것처럼, 자본가계급 스스로 그것을 부정하고 나서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진짜 위험은 그럴 듯하게 들리는 혹세무민지설(惑世誣民之說), 그러한 헛소리들에 있다. 그리고 오늘날 국내외를 막론하고 그러한 헛소리들이, 극우 이데올로그들이나 극우 대중매체들에 의해서는 물론, 이른바 ‘진보’의 깃발을 내세우고 있는 지식인들이나 대중매체들에 의해서도 널리 횡행하고 있다. 그리고 선진 대중에 대한 영향력이라는 면에서 보면, 두말할 나위도 없이, 극우 지식인들이나 매체들보다 ‘진보적’ 지식인들이나 그 매체들의 그것이 훨씬 더 위험하다. 그들의 발언에 대한 경계가 그만큼 덜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이 혹세무민의 헛소리들은, ‘진보’와 극우를 막론하고, ‘신자유주의에 대한 비판’(?)이라는 형태를 띠고 나타나고 있다. 시장과 국가를 대립시키면서, 이번 ‘금융위기’의 “근본원인”은 월스트리트 자본가들의 탐욕과 자본, 특히 금융자본에 대한 규제완화에 있기 때문에 (금융)자본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여 투명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 그 대강의 내용이다. 그들은 이를, 논자에 따라서, 혹은 “신자유주의의 종언”, ‘신자유주의의 종말“이라고도 부르고, ”레이건-대처주의의 종언“ 혹은 그 ”종말“이라고도 부르고 있으며, ”미국형 자본주의“ 혹은 ”앵글로-쌕슨형 자본주의“의 ”종언“ 혹은 ”종말“이라고도 부르고 있다.

예컨대, 쏘련을 위시한 20세기 사회주의 체제가 붕괴․해체되자 <<역사의 종언>>이라는 헛소리로 크게 재미를 본, ‘종언’ 장사꾼 극우 후쿠야마(Francis Fukuyama)는 이렇게 말한다.


... 범인은 미국적 모델 그 자체이다. 보다 적은 정부라는 슬로건 하에 미국정부(Washington)는 금융부문을 충분히 규제하는 데 실패했고 사회의 기타 부문에 엄청난 손해를 끼치도록 방치했다. ...

많은 해설자들이 월스트리트의 붕락(meltdown)은 레이건 시대의 종언을 보여준다고 지적해 왔다. 이 점에서 그들은, 설령 어찌어찌 해서 매케인(McCain)이 11월에 대통령에 당선된다고 하더라도, 의심의 여지없이 옳다. ...

레이건주의(혹은 영국적 형태로는, 대처주의)는 당시에는 옳았다. 1930년대 프랭크린 루즈벨트의 뉴딜 이래 전세계의 정부들은 갈수록 커져만 갔다. 1970년대에 이르면, 관료주의에 질식당한 거대한 복지국가와 경제는 극히 역기능적임이 입증되고 있었다....16)


이러한 주장들은 물론 수도 없이 많은 사람들에 의해서 수도 없이 많은 형태로 표현되고 있다. 예컨대, <<뉴스위크>>는 이렇게도 말한다. “문제가 되는 것은 은행의 지불능력만이 아니라 앵글로-쌕슨 자본주의 체제 전체이다”17)라고. 그리고 “투자가이자 박애주의자인 조지 쏘로스”는 이렇게 얘기하고 있다고 보도하고 있다.


“하나의 근본적인 차원에서 세계화 및 탈규제화의 모델이 파열되었으며, 그것이 바로 현재의 위기를 야기했다.” “우리는 지금 그러한 이데올로기의 종언을 맞고 있다.” 미래는 ... “보다 덜 제멋대로이고, 보다 덜 공격적으로 투기할 것이며, 보다 덜 차입에 의존할 것이며, 신용을 보다 더 조일” 것이다.18)


독일의 금융 담당 장관 쉬타인브뤽(Steinbrück)은, “우리가 바로 지금 겪고 있는 것과 같은 여과되지 않은 자본주의는 그 탐욕 때문에 결국은 그 자신을 먹어치울 것”이라며, 그리고 심지어 “맑스를 언급하면서” “금융시장을 ‘교화’(civilize)시키자는 공식적 운동까지”, 그러한 도덕운동까지 전개하기 시작했다고 한다.19)

이러한 발언들은 물론 수도 없이 그 예를 들 수 있는데, 이는 단지 바다 너머의 일만도, 극우 이데올로그들의 일만도 결코 아니다. 그러한 발언들은 바로 이 땅에서, 조․중․동 등의 극우언론에 의해서는 물론이려니와, 쟁쟁한 ‘진보적 지식인들’, ‘진보적 언론인들’, ‘진보적 매체들’에 의해서도 대량으로 생산․재생산되고 있다. 진보 매체 <<한겨레>>나 <프레시안> 등에서 전개되고 있는 ‘진보적’ 경제학자들이나 기자들의 논의들이 특히 그러하다.

우선 손에 잡히는 대로 몇몇만 소개하자면 이렇다.


1) 이승선 <프레시안> 기자

그의 여러 글들 중에서 “부시가 ‘대공황’ 운운하는 진짜 이유”(10월 6일)만을 간단히 소개하자면, 그는 미국의 7,000억 달러 구제법이나 의회가 “방만한 대출로 현재의 사태를 불러온 근본문제는 건드리지 않았다”고 ‘비판’하며, “미국의 시민들이 이러한 사태를 초래한 체제를 근본적으로 개혁할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면, 향후 엄청난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 그가 말하는 “사태를 불러온 근본문제”나 “사태를 초래한 체제의 근본적 개혁”이란 것은, 글의 내용상 기껏해야 “금융시장에 대한 적절한 감독과 규제”이다.

더구나 그는, 해외의 일부 논객의 주장을 소개하는 형식을 취해서이긴 하지만, “대국민 협박을 통해” 엄청난 규모의 구제금융이란 “특혜 덩어리”를 “끌어내기 위해서, 그리고 ”존 매케인 공화당 대선후보가 당선될 경우 차기 행정부에서 각종 사회보장제도의 기업화“를 추진하기 위해서 ”부시 대통령과 폴슨 재무장관, 버냉키 FRB 의장“ 등이 ”금융위기를 의도적으로 유도했다“는 ”금융위기 조작설“, 그러한 음모설까지 제기하고 있다. ― 참으로 훌륭하고 날카로운 ‘비판’이다!


2) 장정수 <<한겨레>> 편집인

“미국 월가 파산의 교훈”(9월 21일)이라는 칼럼에서 그는 “미국 월가의 몰락으로 1989년 소련과 동유럽의 사회주의 정권 붕괴 이후 세계를 지배해온 신자유주의도 종말을 맞게 됐다”고 선언하며, 흥미롭게도 “미국의 역대 정권 가운데 가장 극단적인 신자유주의 노선을 걸어온 부시 정권이 사회주의 정권을 방불케 할 만큼 가장 반신자유주의적이고 반시장적인 국가 개입 정책을 선택한 것은 역사적 희극이다”라고 쓰고 있다.

문제의 ‘신자유주의의 종말’에 관한 논의 등은 뒤에서 하기로 하자.

여기에서는 다만, “이런 상황에서 수출 의존형 경제구조와 함께 경제성장에 집착하고 있는 이명박 정부하의 한국 경제는 큰 시련을 겪게 될 것 같다”거나 “특히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미국 금융자본주의를 모델로 삼고 경제구조 개혁을 추진해온 한국은 이런 경제발전의 패러다임을 전면적으로 수정하지 않을 경우 미국과 유사한 위기를 맞게 될지도 모른다”며,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는 데에 대해서만 간단히 언급해두자.


미국 월가에서 촉발된 세계 금융위기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독일과 일본은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하는 탄탄한 제조업 기반과 월가 위기를 가져온 투자은행이 아닌 상업은행 중심의 금융구조가 방파제 구실을 하고 있어 그 타격을 덜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한국이 지향하는 경제모델이 이미 파산한 미국의 금융자본주의가 아니라 독일과 일본의 내실 있는 경제체제라는 사실을 웅변한다.


이렇게 그는 노골적으로 “한국이 지향하는 경제모델이” “탄탄한 제조업 기반과 ... 상업은행 중심의 금융구조가 방파제 구실을 하고 있어 ... 타격을 덜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독일과 일본의 내실 있는 경제체제”라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 이를 어쩐담?! 그가 그렇게 ‘웅변’하신 후 불과 보름 남짓 사이에 독일은 거대 주택자금대출 은행이 쓰러질 위기에 처해 거액의 구제자금을 제공하지 않으면 안 되었을 뿐 아니라 뱅크런(bank run), 그러니까 미친 듯한 예금인출사태를 예방하기 위해서 국가가 은행예금 전액에 대한 지급보증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처지로 몰렸으니 말이다! 그리고 일본은, 아직은 중 규모의 것이기는 하지만, 보험회사(야마토생명)나 부동산투자신탁회사(뉴시티레지던스)가 파산하고, 연일 주가가 폭락하고 있으니 말이다! 아니, “일본의 올해 상반기(4-9월) 상장기업의 파산 건수가 사상 최다를 기록”20)하고 있다고 야단들이니 말이다.


3) 성한용 <<한겨레>> 선임기자

“‘민주세력’의 경제철학은 뭔가”(9월 23일) 묻고 있는 칼럼에서 이렇게 말한다.


보수세력의 엉터리 경제철학을 비판하기는 쉽다. 그러나 대안을 내놓는 일은 쉽지 않다. ‘질적 성장’, ‘함께 사는 세상’, ‘민주적 시장경제’, ‘제3의 길’ …. 어렴풋한 방향은 보인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관통하는 경제철학이 없다. ... 미국발 금융위기도 보수세력에 독이 될지, 약이 될지 알 수 없다. 민주세력, 개혁세력, 진보세력이 제대로 된 경제철학을 찾지 못하면 보수가 계속 집권한다.


결국은 다 같은 얘기지만, “민주적 시장경제”라는 말이 특히 눈에 들어오긴 하는데, 아무튼 우습긴 하지만 어딘가 좀 싱겁다.


4) 강태호 <<한겨레>> 남북관계 전문기자

“부시는 어디 있는가”(9월 25일) 찾고 있는 칼럼에서 “이명박은 어디 있는가”도 함께 물으며 그는,


월가의 위기는 금융자본의 탐욕이 빚어낸 자기파괴적 재앙을 보여준다. 신자유주의는 이를 방치하고 결과적으로 조장했다. ... 금융시스템의 불안을 근본적으로 치유하려는 정부의 감독과 규제 조처는 안 보인다.

1989년 저축대부조합(S&L)의 파산에 따른 금융위기와 뒤이은 경기침체는 80년 등장한 레이건 공화당 행정부의 신자유주의 정책인 ‘레이거노믹스’에 책임이 있다. 이번 월가의 위기는 그 연장선에 있으며, ‘부시노믹스’도 그 책임을 져야 한다. 2000년 ‘닷컴 거품’이 꺼지자 돈은 부동산으로 몰렸다. 2001년 출범한 부시 행정부는 규제완화로 이를 조장했고, 저금리와 주택가격 상승을 바탕으로 개인들은 앞 다퉈 소비지출을 늘렸다. 7년여 미국 경제는 흥청망청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등 주택 담보대출이 이를 뒷받침했다.


운운하며, 흔해빠진 그렇고 그런 얘기를 하는 다른 한편에서, 더구나 “저금리와 주택가격 상승을 바탕으로 개인들은 앞 다퉈 소비지출을 늘렸다”느니, “7년여 미국 경제는 흥청망청했다”느니, “서브프라임 모기지 등 주택 담보대출이 이를 뒷받침했다”느니 하는, 백치적인 ‘과대소비=경제위기의 원인“론을 설파하는 다른 한편에서,


지금 부시 행정부의 시장개입이 신자유주의 정책의 수정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오히려 신자유주의의 구원을 위해 나선 건 아닐까? ... 잔치는 끝났으니 국민이 설거지하라는 것인가? ... 수많은 중소 금융기관의 도산 속에서 금융자본은 공룡화하고 독점은 더욱 심화될 것이다.


운운하며, 제법 놀랍고 날카로운 얘기도 하지만, 그것은 다시 “도덕적 해이의 전형”이라는, 부르주아의 ‘위선의 전형’인 상투적인 도덕적 설교나 다음과 같은 넋두리로 금세 빛을 잃고 만다.


천문학적인 돈을 퍼부은 이라크 전쟁과 북핵 문제는 잠시 덮어두고 경제만 봐도 부시의 8년은 끔찍하다. 특히 클린턴의 8년과 비교하면 극과 극이다. 클린턴 대통령은 단기 경기부양, 장기 재정적자 감축, 시장개입 확대를 통해 아버지 부시 시절의 경기침체를 극복했다.


그는 자신의 글에서 스스로 “상업은행과 투자은행의 엄격한 분리를 규정한 독점규제법인 글래스-스티걸법은 이미 형해화” 운운하면서도, ‘경제침체를 극복한 클린턴’이라는 자신의 편견을 합리화하기 위해서 그 법률이 “이미 형해화되긴 했지만 이번엔 아예 휴짓조각이 됐다” 운운한다. 그것이 폐지된 것, 즉 형해화된 것이 바로 클린턴 정부 하에서라는 것에 침묵하면서 말이다. 폐지된 법률이야 그것을 휴지조각을 만들던, 밑닦개를 만들던 도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그리고 “클린턴 대통령은 단기 경기부양, 장기 재정적자 감축, 시장개입 확대를 통해 아버지 부시 시절의 경기침체를 극복했다”? 시운이 좋았을 뿐 아닌가?


5) 조순 서울대 명예교수․전 경제 부총리, ‘자랑스런 서울대인’, 일명 ‘산신령’

“신자유주의의 ‘거품’이 터졌다”(9월 30일)는, <<한겨레>>에의 ‘특별 릴레이 기고’에서,


미국은 원래, 금융에 관해서는 보수적인 나라였다. 미국 사람들은 원래 흥청망청하는 국민이 아니다. 그런 미국에 왜 이런 거품이 생겼는가. 그 이유는 1980년대 말부터 경제정책의 중점이 ‘메인스트리트’로부터 ‘월스트리트’로 옮아갔기 때문이다. 월가출신 인물이 계속 중앙은행 총재 자리를 지켰다. 재무장관도 월가 출신이 많았다.


묻건대, 그렇다면, 그 동안 미국 경제에 닥친 숱한 위기․공황은? 예컨대 1930년대의 대공황은?

세상은 그가 경제학의 석학이고 ‘산신령’이시라니 아무튼 좀 더 들어보자.


월가 사람들은 내가 보기에는 금융에 대한 기본을 망각했다. 원래 금융업이란 남의 돈을 가지고 차질없이 운영해야 하는 기업이다. 때문에 좋은 금융가는 보수적이어야 하고 원칙을 지켜야 한다. 그런데 월가 사람들은 너무 자유롭게 자기 이익만 챙겼다. 그러다가 이번의 덜컥수에 걸렸다. 그린스펀 전 연준의장은 최근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이 금융에 작동해야 경제가 잘 된다는 말을 했다. 19년이나 중앙은행 총재직을 지킨 사람이 이런 글을 쓰다니, 몰라도 한참 모르는 소리였다. 아연하지 않을 수 없지만 이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인가. 각론은 아직 논할 단계가 아니다. 총론은 명백하다. 첫째, 신자유주의는 언제 어디서나 못 쓴다. 미국도 이 과정을 졸업했다. 둘째, 나라가 잘되자면, 정부와 민간의 역할 분담이 잘돼 있어야 한다. 민간이 정부를 대행할 수 있다는 생각은 옳지 않다. 셋째, 금융부문과 실물부문이 조화를 이뤄야 한다. 넷째, 금융가는 용감해서는 안 된다. 지나친 이노베이션을 해서도 안 된다.


과연 석학․‘산신령’다운 그렇고 그런 구역질나는 훈시, “몰라도 한참 모르는 소리”, “아연하지 않을 수 없(는)” 농담이지만, “이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6) 유종일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서브 서브 서브프라임의 비밀”(9월 24일) 등등 <<한겨레>>에 열심히 싣고 있는 이런저런 칼럼들에서,


위기의 씨앗은 눈앞의 고수익에 눈이 어두워진 금융기관들이 신용이 취약한 계층에게 높은 이자에 마구 돈을 빌려준 것이었다. ...

 금융의 기본은 신용이다. 신용은 사람에 대한 믿음이다. 믿음으로 사람을 살리고, 기업을 살리고, 경제를 돌아가게 하는 것이 금융의 본질이다. 금융공학은 이를 좀더 효율적으로 할 수 있게 도와주는 도구에 불과하다. 고수익은 고위험을 수반한다는 진리는 아무리 복잡한 파생상품을 만들어내도 변하지 않는다. 금융공학의 기법으로 나쁜 일(자산부실화)이 일어날 확률을 줄일 수는 있어도 없앨 수는 없다. 확률이 줄어든 만큼 나쁜 일이 일어났을 때의 피해는 더 커지기 때문에 결국 위험이 줄어든 것은 아니다. 사람에 대한 믿음과 이를 기초로 한 관계야말로 사람을 변화시켜서 위험자체를 줄여준다.

금융선진화도 좋지만 ‘돈 놓고 돈 먹기’식 금융이 아닌 사람을 살리고 산업을 살리는 금융을 생각할 때다. ...

긴축과 고통분담이 필요하다. ...

얼마 전 진보적인 학자들이 모여 경제난국을 타개하기 위한 정책대안을 논의하는 자리가 있었다. 발제를 맡은 나는 고심 끝에 금리인상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시장금리는 이미 많이 오르고 있다. 정책금리도 인상해야 한다. ...

서구에서는 진보세력이 긴축과 금리인상을 주장하는 것은 금기시되는 일이다. 긴축으로 경기가 위축되면 노동자와 서민층이 가장 타격을 받기 때문이다. 또 금리가 인상되면 채무자로부터 자산가에게로 소득이 이전되는데, 통상 저소득층일수록 자산보다 채무가 많기 때문에 역진적인 재분배 효과를 초래한다. 일례로 구제금융 위기 때 강남 부자들이 고금리를 즐기며 “이대로 영원히!”를 외쳤다는 얘기도 있지 않았던가. 그래서 금리인상론을 어렵사리 꺼냈지만 의외로 토론회에 참여했던 거의 모든 학자들이 찬성했다. 긴축과 고통분담이 이 난국을 헤쳐 나갈 기본 방향이라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그렇다. 이것이 바로 이 사회의 “진보적인 학자들”의 초상이다. 그런데, ‘진보적인 학자들’의 전공은 모두 도덕 내지는 자본 윤리학? 아무튼 좀 지나친 농담이다.


7) 정남기․최우성 <<한겨레>> 기자

“시장신화의 몰락”이라는 3번에 걸친 최근의 글들에서,


규제 완화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금융위기를 파생상품 등에 대한 감독 부실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위기의 근본 원인은 오히려 과잉 유동성과 이로 인한 부동산 시장의 거품에 있다고 보는 것이 적절하다. 그 밑바닥에는 신자유주의의 물결 속에 비대해진 금융자본이 존재한다. 미시적인 금융감독의 문제가 아니라 시장 자체의 위기라는 얘기다.


“미시적인 금융감독의 문제가 아니라 시장 자체의 위기”라? ― 어설프고 혼란스럽긴 하지만 약간은 핵심에 가까워지고 있는 듯하기도 하다. 그런데,


권순우 삼성경제연구소 거시경제연구실장은 “금융자본이 팽창하면서 통제받지 않는 자본의 이동과 증식으로 금융시스템의 불안정 요인이 잠복해 있는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폴 크루그먼 프린스턴대 교수 등 많은 전문가들은 이번 금융위기를 1930년대 대공황과 맞먹는 것으로 비유하고 있다. 다만 중앙은행 독립, 예금보험제도, 금산분리장치 등이 마련돼 있어 당시와 같은 파국을 피할 수 있었다는 지적이다.


도대체 자신이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지나 알고 있는 것인지? 그리고, “중앙은행 독립, 예금보험제도, 금산분리장치 등이 마련돼 있어 1930년대 대공황과 같은 파국을 피할 수 있었다”? ― 그렇다면, 최근 전개되고 있는 대파국은?

좀 더 들어 보자.


김진방 인하대 교수는 “시스템 안정성을 위해 적절한 정부 개입을 통한 시장설계가 필요하다”며 “그런 장치가 마련돼야 시장경제가 더욱 활발하게 돌아갈 수 있다는 교훈을 이번 미국발 금융위기에서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김진방 교수라는 분이 그러니까 그런 분, 즉 “시장경제가 더욱 활발하게 돌아갈 수” 있는 ‘교훈’이나 찾고 계신 분이었군요?!

아무튼 좀 더 들어보면,


고삐풀린 금융자본주의에 숨겨진 위험(리스크)는 분명하다. 최근 사태의 뇌관 구실을 한 파생금융상품 ‘크레디트디폴트스왑’(CDS)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단순화한 시디에스 모형이란 결국 ㄱ이 ㄴ에게 돈을 꿔준 뒤 그 돈을 받을 ‘권리’를 ㄷ에게 팔고, 다시 ㄹ,ㅁ,ㅂ…의 손으로 무한정 떠돌아다니는 것으로, 최종적으로 그 권리를 손에 쥔 투자자의 운명은 정작 누군지도 모르는 ㄴ이 돈을 갚을 능력에 달려 있다. 대형 투자꾼들이 벌이는 머니게임 속에서 위험은 결코 죽지 않는다. 다만 떠넘겨질 뿐이다. 그 위험이란 한순간에 경제시스템을 무너뜨리는 ‘폭탄’의 다른 이름이다.


아하, 그러니까 문제는, 자본주의 자체가 아니라, “고삐 풀린 금융자본주의”였군요?!

다시 좀 더 들어보자면,


신용상 금융연구원 거시경제연구실장은 “미국 금융위기의 원인은 소득보다 소비를 더 많이 했기 때문”이라며 “그 뒤에는 부동산 가격 상승이란 거품이 있었다”고 말했다. ...

박현수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10여년에 걸쳐 이뤄진 과잉소비를 고려할 때 최소한 4년 정도가 지나야 가계부채가 정상 수준으로 돌아올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렇다면, 역시 ‘과잉소비’가 문제였군요?!


8) 우석훈 성공회대 외래교수

“진짜 위기는 9월부터 시작이다”, 혹은 “‘금융 단독 위기’를 ‘실물 위기’로 키우는 MB정부”(9월 2일) 등등 <프레시안>에 게재하고 있는 일련의 ‘기사’에서 그는,


한국 경제에 정말 ‘장기적 위기’라고 할 수 있던 순간은 두 번 있었다. 1인당 국민소득의 성장률로 보자면, 이 수치가 0 혹은 마이너스에 달했던 것은 80년과 98년, 두 번이다. 한 번은 박정희의 유신체계가 종료하던 시점이고, 또 한 번은 김영삼 정권의 종료와 함께 한나라당이 처음으로 정권을 넘겨주던 시점이었다. 이 두 번의 한국 경제 공황은 모두 일종의 자본 과잉축적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지금 와서 이유가 중요해 보이지는 않는다.

이 두 번의 공황 사이에는 18년의 간극이 있다. 대체적으로 한국 경제에는 장기파동설을 빌린다면 15-18년 사이에 도저히 조정되지 않는 문제점이 발생한다고 할 수 있다.


라고, ‘그럴듯한 공황론’(?)을 들이대며, 문제를 논하고 있다, 학자답게! 다만, 여기에서 나는 그의 공황론 자체를 시시비비할 생각은 없다. 그런데,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오랫동안 “시장이 모든 것을 결정하게 하라”고 주장해온 한국의 우파들이 경제 운용하던 시절, 두 번의 엄청나게 큰 공황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라니?! 아무리 “한국의 우파들”, 이명박 정권을 ‘비판’하기에 바빠도 그렇지. 그리고 “박정희의 유신체계가 종료하던 시점”이라도 그렇지. 박정희의 ‘유신 시대’나 그 “유신체계가 종료하던 시점”이 과연 “‘시장이 모든 것을 결정하게 하라’고 주장”하던 시대였던가?!

그런데,


일반적으로 국민경제에 대한 적절한 정부 개입을 지지하는 내 입장에도 불구하고, 나는 금리 특히 환율에 대한 정부 개입은 반대한다. 부동산 경기부양에 대한 유혹으로 노무현 정부 초중반에 취했던 저금리 정책이 결국 정권은 날려먹고, 경제의 생산적 전환에 실패했다. 조중동의 '좌파 저주'가 정권을 망하게 한 것이 아니라, 뭘 잘 알지도 못하면서 금리를 억지로 내리려고 했던 노무현의 '2만 불 정책'이 지난 정권을 결국 무너지게 했던 것이라고 이해하고 있다. ...

그렇다면 이명박 정권은 ... 그들이 정말 시장주의자였다면, 환시장에 개입하는 바보 같은 일은 하지 않았어야 했다. ... 그렇게 정부가 환율에 개입하지 않으면 시장과 시장을 둘러싼 주체들이 적응하면서, 역으로 환시장이 결국에는 조정을 하게 된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환시장에 개입했고, 수십조 원을 날려먹었다. 이 사건이 9월 위기설의 실체다. ... 내가 외국의 환딜러라고 하더라도, 이런 바보 같은 정부가 있는 동안, 단단히 한몫 잡자고 작전을 걸 것 같다. ...

정부에서는 9월 위기설은 근거 없다고 했다. 물론 나도 그 의견에는 동의한다. 실물경제와 연관없는 위기는 진짜 위기는 아니다. 아직 한국의 실물경제는 대체적으로 위기에 직면할 정도는 아닌 것 같다.


묻건대, 그렇다면, “일반적으로 국민경제에 대한 적절한 정부 개입을 지지하는 입장”에서 개입해야 하는 부문과 개입해선 안 되는 부문은? 혹시 매번 우 교수님한테 자문해야? 더 들어보자.


위기 대응이 바로 실력이다. 만기도래 채권의 특징 몇 가지를 보여주면서 "위기는 없다"고 항변하는 게 위기 극복이 아니라, 실제 한국 경제를 둘러싼 몇 가지 위험요소들에 대해 제대로 대응하는 것이 근거 없어 보이는 위기설을 극복하는 진짜 방법인 것 같다.

위기설을 극복하고 싶은가? 그렇다면 현 위기설의 출발점인 강만수부터 해임하라. 위기설의 절반은 사라질 것이다. 그리고 청와대 경제팀을 위기관리형으로 재편하라. 그리고 현재의 이념 경제 기조를 위기관리 기조로 바꾸기 바란다. 정말로 말로만 외치던 ‘시장 경제’ 혹은 ‘작은 경제’, 그 기조를 외환과 금리에 대해서 하기 바란다. 마지막으로 측근 인사를, “경제를 아는 사람”으로 바꾸기 바란다. 그 정도만 해도 9월 위기설은 넘어설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여러 글에서 “강만수부터 해임”하고 “경제를 아는 사람”으로 바꾸라고 권고하고 있다. 그러면 위기(설)을 극복할 수 있다고. 그런데 그는 말한다. “나는 정치학자가 아니라서, 경제가 망하고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이 망하는 것보다는 국민경제가 건실하고 튼튼해지는 것을 더욱 소망하기 때문이다”라고! 강만수를 대신할 적임자는 혹시 ㅇㅅㅎ?

그런데, “‘금융 단독 위기’를 ‘실물 위기’로 키우는 MB정부”라니? 그것도 시정잡배나 그와 별 다름 없는 정치모리배도 아닌 명색이 경제학을 논하는 학자님의 말씀이라니 ― 참으로 장관이다!


9) 김호기(연세대)․(다시) 유종일․최태욱(한림국제대학원대학)․전창환(한신대) 교수 등 ‘개혁진보세력’

성한용 <<한겨레>> 선임기자의 “개혁진보세력 ‘대안이념’ 백가쟁명”(9월 29일)이란 기사에 의하면,


대안은 자유시장경제가 아니라 (한국형) 조정시장 경제(coordinated market economies) : 김호기․유종일․최태욱

금융권력에 대한 민주적 견제 및 통제로 금융민주주의를 제도화해야 한다: 전창환


아하! 아하! 그런 것이었군요! 그것이 바로 ‘대안’이었군요! 그렇다면,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발전’을 추구하고, 자본주의의 ‘극복’이 아닌 ‘인간화’를 지향한다는 점에서 독일의 ‘사회적 시장경제론’과 닮은 꼴[닮은 꼴? 표절?: 인용자]”이며, “시장에서의 자유경쟁을 보장하지만, 사회적 형평과 시장질서 확립을 위해 정부 개입을 허용하는 경제 시스템”이라는 ‘좌파의 아이콘’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의, 그리고 김대중 정부의 “민주적 시장경제론”21) 이 바로 그 대안?

결국 저들이 “(한국형) 조정시장 경제”니, “금융민주주의”니 하는 ‘대안’으로 요구하는 것은 기껏해야 서유럽식의, 혹은 북유럽식의 ‘사민주의’, 혹은 케인즈주의이다.


10) 이정우 경북대 교수․전 청와대 정책실장

이정우 교수는 경제학 전공의 교수이자 “참여정부[=노무현 정권: 인용자] 초기 청와대 정책실장을 지낸 데 이어 참여정부의 12개 핵심 국정과제를 총괄 조정하는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위원장으로 일해 참여정부 경제정책의 ‘설계사’로 꼽혔(던)”22) 거물인사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최근의 대공황이라는 사태를 맞으면서 진보 <<한겨레>>가 “특별 릴레이 기고” 제1호를 그에게 할여했고, 나아가 ‘창간 20돌’을 맞아 “경제섹션 ‘한겨레 경제’”를 별도 발행하면서 그 첫 호에서부터, 그리고 매주 월요일 정기적으로 “이정우의 경제이야기”를 담당하도록 촉탁한 인사이다. 그만큼 거물의 ‘진보적’인 경제학자이시니,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당연히 귀 기울이지 않을 수 없다.

그는 “[특별기고] 사상누각이 주는 교훈”(9월 29일)에서 이렇게 말한다.


이번 위기는 금융에 대한 지나친 규제완화와 감독 부실에서 온 것이다. 자본시장이 효율적이라는 가설 하에 정부 개입을 반대해온 시장만능주의자들이 오래 동안 각종 규제를 완화해왔고, 미국 금융계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금융공학이라는 현대판 연금술을 통해서 막대한 부를 쌓아왔으나 그 모든 신화가 사상누각이라는 게 백일하에 드러난 것이다. ‘시장만능’을 외치던 그 많은 경제학자들은 다 어디에 숨었나. ...


미국의 금융위기는 한국경제에 많은 시사점을 준다. 한국경제가 추종해온 것이 미국식 월가 자본주의 모델이고, 미국에서 경제학을 훈련받은 사람들이 학계, 정부, 재계, 언론계에 포진하여 날마다 ‘시장’을 외치고 있는 상황이 아닌가. 이명박 정부는 모든 전봇대를 뽑을 듯이 규제완화를 부르짖고 있고, 작은 정부, 감세를 내세워 멀쩡한 종합부동산세조차 없애려고 하고 있다. 부시의 경제철학과 쏙 빼닮은 이명박의 경제철학은 참으로 걱정스럽다. 미국 금융위기를 촉발한 것이 지나친 규제완화와 부동산 거품이었음을 모른단 말인가.


그런데, “멀쩡한 종합부동산세”를 빼놓고는, 자신이 참여하여 핵심적 역할을 했던 ‘참여정부’의 제반 경제정책, 예컨대 한미 FTA나, 비정규직 확대 등을 노린 이른바 노동(시장) 유연화 정책 등이야말로 ‘월가 자본주의 모델’, 즉 미국식 모델이 아니었으며, 자신 역시 “학계, 정부, 재계, 언론계에 포진”한 “미국에서 경제학을 훈련받은 사람들”의 하나 아니(었)던가?!

그리고 “이번 위기는 금융에 대한 지나친 규제완화와 감독 부실에서 온 것”이라는 그의 진단 혹은 분석의 결과도 잊지 말자. 또한 “맹목적 시장주의가 얼마나 무책임하고 위험한지를 미국 금융위기가 잘 보여준다”고도 말씀하시고 계신 바, 이 역시 잊지 말자. “맹목적 시장주의”가 아닌, 말하자면, ‘개명한 시장주의’ 혹은 ‘조정 시장경제주의’ 역시 “무책임하고 위험”하며 ‘금융위기’가 필연적임을 곧 보게 될 것이니까!

한편, “성년 한겨레”의 “경제섹션”의 첫 번째 “강의”, “주요 경제현안들을 경제이론 또는 개념과 연결”시키는 “짧은 강의”답게 ‘이정우의 경제이야기’ “‘시장경제’가 문제 아니라 ‘미국형 시장만능주의’가 문제”(10월 6일)라는 글은, 보다시피 그 제목에서부터 핵심을 장악해가고 있는데, 거기에서 그는 이렇게 얘기한다.


최근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미국 자본주의의 위신이 땅에 떨어져 버렸다. 사람들이 기존 경제체제를 불신하고, 미래를 불안하게 생각하며, 뭔가 대안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번 위기는 고삐 풀린 자본주의, 규제되지 않은 금융시장의 문제점이 폭발적으로 나타난 것이다. 이것을 자본주의 혹은 시장경제 일반의 문제점으로 확대해석해서 시장경제 자체를 배척해서는 안 된다. 이번 금융위기에서 문제가 된 것은 미국의 시장만능주의 경제모델이지 시장경제 자체는 아니기 때문이다.


글은 이렇게 이어진다.


미국 자본주의는 자본주의 대표선수답게 별명도 많다. 월가 자본주의, 영미형 자본주의, 자유시장경제, 시장만능주의, 신자유주의 등으로 불린다. 모든 나라에서 시장과 정부가 힘을 합쳐 경제를 운영하고 있으므로 현대경제를 혼합경제라고 하는데, 그 혼합 비율은 나라에 따라 크게 다르다. 영미형 자본주의에서는 시장이 주연이고, 정부는 조연이다.


그러면서 강의를 계속한다.


시장경제에 여러 가지 유형이 있다는 것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시장경제에는 시장만능주의만 있는 게 아니고, 크게 봐서 영미형, 북구형, 유럽형의 세 가지 유형이 있다. 시장이 큰 역할을 하고 성장을 중시하는 것이 영미형 모델이며, 영국․미국․캐나다․호주․뉴질랜드 등이 여기에 속한다. 그 대척점에 정부의 역할이 크고, 분배를 중시하는 스웨덴․노르웨이․핀란드․덴마크의 북구형 사회민주주의가 있다. 양자의 중간에 위치하는 것이 독일․벨기에․네덜란드․스위스․오스트리아 등의 유럽 복지국가다. 영미형 국가의 조세부담률이 20-25% 정도인 데 비해 북구는 무려 50%나 되고, 유럽은 양자의 중간쯤 된다. 이념적으로 본다면 영미형은 우파, 북구형은 좌파로 부를 수 있다.

지난 수십년 동안 세 모델의 종합성적은 어떤가? 세 모델의 평균소득은 모두 3만 달러라서 우열을 가리기 어렵다. 그러나 영미형에 비해서 분배가 평등하면서 성장은 비슷하고, 교육․혁신능력이 탁월하고, 범죄가 적고 인간적인 사회라 할 수 있는 북구가 우등생임을 부정하기 어렵다. 국민소득 대비 20%의 세금을 내면서도 감세와 ‘작은 정부’가 인기가 있고, 좌파는 경제를 망친다는 것이 정설처럼 통하는 한국에서는 참으로 믿기 어렵겠지만 50%나 세금을 거두는 북구 좌파 국가의 경제성적이 우수하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과연 ‘시장경제’란 무엇인가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한다.


어떻게 하다보니까 그의 “짧은 강의” 전체를 옮기고 말았는데, ‘진보’ <<한겨레>>라서 다행히 “무단 전체를 금지합니다” 따위의 경고는 없는 것 같다.

아무튼 이 교수의 ‘강의’가 강조하고자 하는 바는 명확하다. 그것은, “스웨덴․노르웨이․핀란드․덴마크의 북구형 사회민주주의”가 “좌파로 부를 수 있(는)” 것으로서, “영미형에 비해서 분배가 평등하면서 성장은 비슷하고, 교육․혁신능력이 탁월하고, 범죄가 적고 인간적인 사회라 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이번 금융위기에서 문제가 된 것은” “고삐 풀린 자본주의, 규제되지 않은 금융시장”으로서의 “미국의 시장만능주의 경제모델이지 시장경제 자체는 아니기 때문”에, 우리는 모름지기 이 북구형의 좌파 자본주의, 사회민주주의를 추구해야 하며, 이번의 경제위기를 ”자본주의 혹은 시장경제 일반의 문제점으로 확대해석해서 시장경제 자체를 배척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좋다. 다른 문제들은 잠시 제쳐두자. 그리고 과연 경제위기는, “영미형의 고삐 풀린 자본주의, 규제되지 않은 금융시장”의 문제, “미국의 시장만능주의 경제모델이지 시장경제 자체는 아니기 때문”에, “스웨덴․노르웨이․핀란드․덴마크의 북구형”의 문제는 아닌지, 이 교수의 주장이 아니라, 사실로 눈을 돌려보자.


먼저 덴마크

일찍이 지난 7월 11일부터 다음과 같은 보도가 나오고 있다.


북유럽 지역 86개 금융회사 가운데 지난해 주식이 최악이었던 로스킬데은행(Roskilde Bank)은 써브프라임 위기가 개시된 후 중앙은행에 의해서 구제되는 덴마크의 첫 번째 대출자가 되었다.23)


덴마크의 ... 로스킬데 은행은 7월 10일에 중앙은행으로부터 “무제한의 유동성”을 받았고, 덴마크은행연합회는 7억5천만 크로너까지의 손실을 보상해주기로 동의했다.24)


덴마크의 위기는 유럽의 다른 나라들의 그것과 다르고 더욱 나쁘다. 이는 초거대은행인 UBS의 판단이고, 신용평가회사 무디스(Moody's)의 판단이기도 하다.

그리고 UBS는 금년에 더 많은 은행들이 파산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

“덴마크의 주택가격은 2006년 가을까지 거대하게 상승했다....”25)


그리고 10월 6일이 되면, 뱅크런을 예방하기 위해서 덴마크 정부는 350억 크로너(약 64억 달러)에 이르는 모든 은행예금에 대한 지급보증을 하게 된다.

이것이 사실이다.


다음엔 스웨덴

덴마크에서의 문제야, 이 교수로 하여금 어이없는 얘기를 하게끔 하는 이론적인 바탕을 잠깐 제쳐두고 사실 그 자체만 본다면, 비교적 최근의 사태들이기 때문에 공사다망하신 이 교수님께서 혹시 추적하지 못했다고 해서 크게 책망할 일은 아닐지도 모른다.

그러나 스웨덴에서의 문제의 경우는 전혀 다르다. 1990년에서 ’94년 사이에 이미 스웨덴은 심각한 경제․금융위기를 겪었고, 이는 경제학 교수, 경제학 전공자가 아니더라도 알 만한 이는 다 아는, 혹은 다 알아야 할 유명한 사건이기 때문이다. 실로 그것은 “정말 체제적 위기의 문제”26)였고, “가장 극적인 세계의 10대 금융위기”27)의 하나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한편, 오늘날 “스웨덴의 주택가격은 미국의 그것보다 더욱 과대평가되어 있다.”28)

이 역시 사실이다. 사실이 이러한데도 이 교수님께서는, “이번 금융위기에서 문제가 된 것은 미국의 시장만능주의 경제모델이지 시장경제 자체는 아니기 때문”에, “이것을 자본주의 혹은 시장경제 일반의 문제점으로 확대해석해서 시장경제 자체를 배척해서는 안 된다”고 강변하고 있다. 영미형의 “대척점에 정부의 역할이 크고, 분배를 중시하는 스웨덴․노르웨이․핀란드․덴마크의 북구형”이 있으며, 이를 추구해야 한다고 강변하고 있다.

고백하건대, 이러한 이 교수 등의 정신적 병증과, ‘이번의 경제위기는 좌파 정권 10년 탓’이라는 박희태 한나라당 대표 등의 정치가들의 그것, 그리고 쏘련과 과거 동유럽 국가들 그리고 이북이 (국가)자본주의라는 일부 ‘사회주의 혁명가들’의 정신적 병증 사이의 차이를 나는 가늠하지 못한다.



3. 혹세무민지설들의 이론적․정치적 특징


1) 극우적 대안과 다르지 않은 ‘진보적’ 대안

이상에서 몇몇 ‘진보적인 지식인들’을 위주로, 그들이 이 대공황의 정세에서 무슨 얘기들을 하고 있는가 하는 것을 개략적으로 소개했다.

비록 표현이 다르고, 또 사람에 따라 방점을 찍는 곳이 다소 다르지만, 그들 간의 그러한 비본질적인 차이를 도외시하면, 그들의 주장의 요점은 사실상 동일하다. 그것은 모두 한결같이 ‘신자유주의’,29) 혹은 영미형․앵글로-쌕슨 형의 시장만능주의, 혹은 ‘규제되지 않은’ “고삐 풀린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이고, 그리하여 ‘시장의 투명성이 보장될 수 있는’, 자본의 탐욕과 방종에 대한 정부의 규제․감독․역할이 보다 강화․확대된 자본주의, ‘조정 시장경제’, 구체적으로는 ‘북구형의 사회민주주의’로 나아가야 한다는 주장이다. <<한겨레>>가 “개혁진보세력 ‘대안이념’ 백가쟁명”이라는 제목 하에 소개하고 있는 여러 ‘진보적 교수님들’의 이른바 “(한국형) 조정 시장경제”나 “금융민주주의”, 그리고 “문제가 된 것은 미국의 시장만능주의 경제모델이지 시장경제 자체는 아니다”는 이정우 교수의 주장 등이 이를 특히 명확하고 요약된 형태로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이들 ‘진보적 지식인들’ 혹은 ‘개혁진보세력’의 이러한 ‘대안이념’은 사실은 현 공황․위기 국면에서 터져 나오고 있는 극우 이데올로그들의 그것과 그다지, 아니 조금도 다르지 않다. 그들 극우 이데올로그들 역시 탐욕과 방종을 비판․비난하고, 신자유주의의 종언, 레이건-대처리즘의 종언, 미국형 혹은 영미형 자본주의의 종언, 몰락을 얘기하면서 ‘보다 투명한 자본주의’, 탐욕과 방종이 정부․국가에 의해서 규제․감독되는 자본주의, 국가의 역할 증대 등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미국의 한 혁명적 노동자 신문은 이렇게 쓰고 있다.


모든 사람들이 경제위기를 탐욕 탓으로 돌리며 비난하고 있다. 자신의 집이 몇 채나 되는지도 모르는 존 매케인[공화당 대통령 후보: 인용자]조차 그렇다.

요트를 갖고 있고 자가용 비행기와 여러 채의 호화주택을 가지고 있는 기생충들, 즉 억만장자들은 증오를 받아 싸다. 그러나 탐욕은, 인류사회가 부자와 가난뱅이로 분열된 이래 수천 년 동안의 현상이다.30)


위기가 고조됨에 따라서 정치가들과 학자님들은 다같이, 대중의 분노를 누그러뜨리기 위해서, 손가락질을 할 것이다. 공식적인 태도는 탐욕과 규제 실패라는 상황을 비난하는 것이다.31)


은행들이 쓰러지고, 일자리들이 사라지며, 경제가 빈곤과 불행이라는 엄청난 위기 속으로 깊이 빠져들어 갈수록 텔레비전 방송과 선거 유세 판은 갑자기, 결코 그럴 것 같지 않은데도 ‘대기업’을 비난하는 사람들로 꽉 차고 있다.

라우 돕스, 글렌 벡[모두 미국의 극우적 방송인들: 인용자], 그리고 심지어 사라 페일린[극우 공화당의 부통령 후보: 인용자]나 존 매케인까지도 갑자기 ‘월스트리트의 탐욕’과 싸우는, ‘근로인민의 보호자들’이 되고 있다. ...

돕스와 벡은 때때로 대기업을 비판하지만, ― 그러나 그것은 실로 노동자들과 중간계급의 모든 고통의 근원과 관련하여 그들을 혼란에 빠뜨리기 위한 왜곡된 방식으로 그렇게 하는 것이다.32)


 이렇게 “‘월스트리트’를 비난하는 우익들을 조심하라”고 외치고 있다. 우리의 상황에서는, “‘신자유주의’를, 영미형 혹은 미국식의 자본주의를, ‘고삐 풀린 자본주의’를 심판하고 있는 ‘진보적 지식인들’을 조심하라!”고 해야 할 것이다.

왜냐?

저들 주장에 숨겨진 그들 주장의 반노동자적․반동적 성격․특징 때문이다.


2) 시장 대 국가의 문제

저들은 시장과 국가 혹은 정부를 무매개적으로 대립시키고 있다. 그러면서 시장에 대한 국가․정부의 규제․감독․감시 및 국가․정부의 역할 증대를 요구하고 있다. 다름 아니라, ‘규제완화’․‘작은 정부’를 외치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비판이고, ‘투쟁’이다! 그리고 그러한 한에서, 혹은 바로 그렇기 때문에 저들의 주장은 자못 설득력 있게 들린다.

그러나 바로 거기에 함정이 있다!

저들이 몰계급적인 언사로 그 역할 강화를 요구․주장하는 국가 혹은 정부는 과연 누구의 국가, 누구의 정부인가?

분명 독점자본가계급의 국가․정부이다. 그러나 저들은, 국가의 본질, 그 계급 억압적 기능에 대한 선의의 무지 때문이든, 아니면 그것을 짐짓 은폐하고자 하기 때문이든, 바로 이 점에 침묵하면서 반동적으로 그 독점자본가계급의 국가․정부의 강화를 주장하고 있다.

게다가 그들은 신자유주의의 본질, 그 전선을 왜곡 혹은 은폐하고 있다. 그들은, 신자유주의의 본질, 그 전선의 본질이 마치 시장 대 국가, 혹은 시장 대 정부의 대립․갈등에 있는 것처럼 주장하면서, 국가․정부의 규제․감독․역할을 증대시킬 것을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시장 대 국가, 혹은 시장 대 정부의 대립․갈등은 결코 신자유주의의 본질도 그 전선의 핵심도 아니다.

시장과 국가․정부의 대립이나 갈등, 그것은 그저 언제나 노동 대 자본 간의 대립, 독점자본에 의한 노동자계급에 대한 공격․억압의 강화라는 신자유주의의 본질, 그 핵심적 전선을 은폐하고 호도하기 위한 기만적인 치장, 기만적인 슬로건에 불과하다. 그리고 기껏해야 그것은 때때로 발생하는 개별 독점자본과 정부 사이의 갈등에 불과하다. 예컨대, 그토록 ‘작은 정부’를 외쳐대던 전형적인 신자유주의 정부인 레이건 정권의 재정․예산의 구조․규모33)가 웅변하고 있는 것처럼, 신자유주의에서는 결코 ‘작은 정부’는 존재한 적도, 지향된 적도 결코 없다. 만일 ‘작은 정부’와 유사한 것이 있었다면, 그것은 단지 독점자본에 대한 규제에서뿐이었다.


3) 신자유주의 대 케인즈주의

저들은 케인즈주의와 신자유주의 또한 그것들을 무매개적으로․절대적으로 대립시킨다. 그리고 그들의 대립 속에서는 대체로 신자유주의=악, 케인즈주의=선이다. 바로 현대 서유럽 사민주의34)가 표방하는 도식 바로 그것이다.

전선을 이런 식으로 이해하고 선전하는 것은 국가독점자본주의에 대해서, 국가독점자본주의로서의 신자유주의에 대해서뿐 아니라 국가독점자본주의로서의 케인즈주의에 대해서도 전혀 이해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며, 곧바로 반동적인 국가독점자본주의에 봉사하는 것이다.

김성구 교수가 명확히 하고 있는 것처럼,


자본주의 위기에 직면해서 국가가 개입하는 것은 1930년대 대공황 이래 국가독점자본주의가 성립한 이후 더 이상 새로운 현상이 아니다. 케인스주의 시대뿐 아니라 신자유주의 시대에도 국가의 개입과 위기관리는 국가독점자본주의를 구성하는 주요한 일 요소이다.35)


실제로 케인즈주의나 그것의 실천판(實踐版)인, 파시즘적 경제정책들은 물론,36) 그 자유주의적 판(版)인 뉴딜도 결코 진보적이지 않다. 아니 거꾸로 극히 반동적이다. 그것들은 모두, 특히 1930년대의 대공황과 제2차 세계대전이 웅변하는 것처럼, 인류의 안전․생존과 번영을 위해서는 이미 지양되었어야 할 자본주의적 생산체제를 유지시키기 위한 억지 이론과 정책들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저들은 신자유주의를 비판․비난․심판한다며 곧바로 케인즈주의로, 즉 사실은 신자유주의의 기초일 뿐인 케인즈주의로 달려간다. 그리하여 자본의 ‘탐욕’ 및 ‘방종’에 대한 국가의 규제․감독을 요구하고, 국가가 ‘성장’이 아니라 ‘분배’에 그 정책의 중점을 둘 것을 요구한다. 저들은 ‘복지국가’라는 형태 속에 독점자본의 반노동자계급성이 은폐되어 있는 자본주의를 지향한다.

그만큼 그들은 반동적이다.

그러나 그나마 위로부터 그러한 ‘복지국가’를 주조해내려는 저들의 주장은 사실은 역사적 조건을 부당하게 사상한 저들의 망상에 불과하다. 케인즈주의적 소위 ‘복지국가’는 쏘련이라고 하는, 제국주의의 대립물, 억압과 착취에 대한 강력한 대립물․반대물로서의 20세기 사회주의가 발전하고 있었고,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노동자계급의 혁명적 계급투쟁이 존재하는 조건 속에서만 형성․발전할 수 있었던 것이기 때문이다. 케인즈주의적 ‘복지국가’는 실제로 쏘련을 위시한 20세기 사회주의 국가가 해체된 후, 예컨대 “제3의 길”, “새로운 중도” 등의 이름 하에 심각하게 해체과정을 밟아 왔으며, 바로 그것도 이번의 공황이 이토록 심대해질 수 있었던 주요한 요인의 하나이다.

그러나 저들 ‘진보적인 지식인들’도, 일부의 ‘사회주의 혁명가들’도, 이 점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을 뿐 아니라, 대개는 어느 것이 누구의 깃발인지조차 치명적으로 착각하고 있다. 물론 독점자본의 반공선전에 녹아나고, 그 장단에 어릿광대 춤을 추면서 말이다.


4) 위기의 원인․성격에 대하여

앞에서 본 것처럼, 저들은 “이번 위기는 금융에 대한 지나친 규제완화와 감독 부실에서 온 것”이라는 식의 인식을 가지고 있다. 위기의 ‘근본 원인’이니 ‘근본적인 문제’니 하고 문제를 제기하고 있지만, 결국 “금융에 대한 지나친 규제완화와 감독 부실”이 위기의 근본 원인이요, 따라서 그에 대한 규제․감독․조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우선, 저들의 주요 관심이 ‘시장에 대한 국가․정부의 규제․감독․조정’ 등에 가 있을 때, 저들은 자본주의적 생산의 ‘무정부성’에 대해서는 비록 희미하나마 무언가 감각․인식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들은 자본주의적 생산의 적대성에 대해서는 전혀 어떤 인식․이해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리고 바로 그 때문에 저들은 공황의 진정한 원인이나 성격에 대해서 이해하고 있지 못한 것이고, 거기에서 바로 몰계급적인, 사실은 독점자본의 이익을 옹호하고 절대화․영구화하는, 대안 아닌 대안, 사민주의를 주장하게 된다.

이에 대해서는 절(節)을 바꾸어 고찰해보자



4. 공황의 원인․성격


금융상의 위기만이 아니다

극우적 이데올로그들의 경우도, ‘진보적 지식인들의 경우도, 저들이 “이번 위기는 금융에 대한 지나친 규제완화와 감독 부실에서 온 것”이라고 할 때, 저들의 논의의 특징 중의 하나는 위기를 사실상 전적으로, 혹은 기본적 혹은 본질적으로 금융위기, 즉 신용위기로서 규정하고 취급하는 데에 있다. 그러면서 저들은 그 금융위기가 ‘실물경제의 위기’로 비화될까봐 전전긍긍하고 있다. 혹은, 앞에서 본 우석훈 교수님처럼, “실물경제와 연관없는 위기는 진짜 위기는 아니(며)” “아직 한국의 실물경제는 대체적으로 위기에 직면할 정도는 아닌 것 같다”면서, 장관 하나만 잘 갈아치우면 위기를 모면하고 비껴갈 것 같은 주장을 한다.

그러나 현 위기의 본질을 기본적으로 금융위기로 보면서 그것이 소위 실물경제로 비화될까봐 전전긍긍하는 것은 사실을 정확히 거꾸로 보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인식․관점은 현재의 위기가 서브프라임 모기지의 부실화, 즉 주택의 대량 미분양 사태와 그에 따른 주택가격의 하락, 다시 그에 따른 주택대출 원리금 상환의 연체․불능화에서 유발되었다는 자신들의 인식, 그러한 사실 자체와도 모순된다.

현 상황은 분명 거대한 금융위기, 거대한 신용위기임에 틀림없다. 온 세상을 호령하며 쥐락펴락하던 거대 금융자본이 속속 파산하고, 거대 금융기관들이 서로가 서로의 지불능력을 믿지 못해서 돈을 움켜쥐는 바람에, 미국의 연방준비제도(FRB)를 위시한 각국의 중앙은행과 정부가 역사상 유례없는, 상상도 못했던 거액의 구제자금을 살포하고37) 있는데도 금리가 폭등하고 전세계 금융시장이 마비상태에 빠지다시피 하고 있는 현 상황38)은 분명 거대한 금융공황, 거대한 신용공황임에 틀림없는 것이다.

그러나 이 금융공황, 신용공황은 결코 ‘실물경제’의 위기에 의하지 않은 자립적인 것이 아니다. 그것은 단지 ‘실물경제’의 위기의 현상형태의 하나에 불과하다.

맑스는 말한다.


경제학의 천박성은 특히, 산업순환의 시기전환의 단순한 징후인 신용의 팽창과 수축을 그 원인으로 삼는 데에서 보인다. 일단 일정한 운동에 던져진 천체가 끊임없이 동일한 운동을 반복하는 것과 전적으로 마찬가지로, 사회적 생산도 그것이 일반 팽창과 수축이라는 교대하는 운동에 던져지자마자 이 운동을 끊임없이 되풀이한다. 결과가 다시 또 원인이 되고, 그 자신의 조건들을 부단히 재생산하는 모든 과정의 부침은 주기성의 형태를 취한다.39)


화폐시장에서의 공황으로서 나타나는 것은 사실은 생산과정 및 재생산과정 자체에서의 비정상을 표현하고 있다.40)


그리하여, 오늘날 여러 경제학자들이 현 위기를 단순히 금융위기로서 규정하면서, 규제․감독 등 금융상의 관행을 바꿈으로써 위기를 해결하고, 나아가 예방․회피할 수 있다고까지 생각하고 주장하는 것은 바로 그 경제학의 천박성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은행과 신용은” 물론 “자본주의적 생산을 그 자신의 한계를 넘어 강행하게 하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 되고, 또한 공황과 사기(詐欺)의 가장 유효한 매체의 하나”41)이기 때문에, 공황의 규모, 그 심도나 격렬도 등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 것이지만, 그 작용은 어디까지나 거기까지이다.

그리고 현 위기의 심각성, 그 역사적 의의도 사실은 바로 그 점, 즉 그것이 단지 규제완화․감독소홀 등과 같은 금융관행상의 문제 때문에 발생한 단순한 금융위기․신용공황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기본적․본질적으로 생산과 소비간의 엄청난 충돌, 엄청난 과잉생산에 의한 것이라는 데에 있다.

그 의의를 심각하게 고려하지 않고 지나가듯이 하는 말들이긴 하지만, 그리고 “이번 위기는 금융에 대한 지나친 규제완화와 감독 부실에서 온 것” 운운하는 따위의 천박한 인식과는 정면으로 충돌하는 것이지만,42) 누구나 인정하는 것처럼, 위기는 분명 주택의 과잉생산에 의해서 발발하였고, 이미 여러 분야, 여러 부문에서 그 과잉생산이 명확한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현대 자본주의의 최대 산업의 하나인 자동차 산업은 엄청난 과잉생산이 일어난 나머지 GM이나 포드, 크라이슬러 같은 ‘빅 쓰리’의 생존 가능성 여부가 이미 월스트리트를 공포로 몰아넣고 있다. 불과 수개월 전만해도 웃돈을 주고도 구하기 어렵다고 아우성치던 철근, 철강도 이미 세계적 규모에서 엄청난 과잉생산임이 명백해지고 있다. 조선업 역시 마찬가지이다. 반도체나 LCD 산업 등은 이미 지난해부터 그 가격이 심각하게 폭락하고 있다. 한편에서는 노동생산성의 급격한 발전에 의한 것이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엄청난 과잉생산, 그에 따른 출혈경쟁에 의해서 그렇게 폭락해 왔다. 기타 대부분의 산업부문에서도 물론 유사한 사태가 전개되고 있다.

그런데 이들 산업은 현대 자본주의의 세계적인 주요 산업일 뿐 아니라 하나 같이 한국 자본주의의 명줄을 쥐고 있는 주요 산업이기도 하다. 그런데도 위기를 단지 금융상의 그것으로만 보는 백치증세 때문에, 강만수 장관 같은 주요 관료들뿐만이 아니라, 앞에서 본 것처럼, 그야말로 건필을 휘두르고 계신 우석훈 교수 같은 이도 한가하게도 “아직 한국의 실물경제는 대체적으로 위기에 직면할 정도는 아닌 것 같다” 운운하고 있다.

우리는 앞에서 IMF의 쉬트라우스-칸 총재도, 이명박 대통령도 2009년 하반기, 그러니까 내년 하반기에는 경제가 서서히 회복․성장 국면으로 들어갈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을 보았다. 물론 두 사람만의 주장이 아니다. 사실상 주요 부르주아 정책 담당자들, 이데올로그들의 주장이고, 사실은 소망이다. 그리고 그들이 그렇게 주장하고 소망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이 문제를 본질적으로 금융위기로서 파악하면서 금융상의 패닉, 경색만 해소되면 위기 상황이 끝날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소망이 현실로 실현될 가능성은 그다지 없는 것 같다. 그리고, 가능성이 극히 희박하기는 하지만, 이번의 위기를 어찌 어찌 해서 내년까지는 극복하고 ‘호황’, 즉 생산의 확대국면으로 나아간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그야말로 하루살이의 호황으로 끝나면서 곧바로 다시 대공황으로 빠져들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현재의 엄청난 과잉생산은 동시에 노동자 대중의 거대한 빈곤화와 함께 진행되어 온 것이기 때문이다.


상황 (2) ― 노동자계급의 빈곤

공황은 수많은 자본을 파산으로, 조업단축으로, 인수합병으로, 구조조정으로 내몰고, 그만큼 수많은 노동자들을 실업으로, 과잉인구로, 산업예비군으로, 빈곤으로, 길거리로 내몬다. 그리고 공황의 규모, 그 심도, 그 격렬도가 크면 클수록 그 빈곤화가 그에 비례할 것임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지금 전개되고 있는 공황에서도 이미 런던의 월스트리트에서, 런던의 씨티에서, 그리고 사실은 도처에서 이미 대규모의 ‘감원’ 소식들이 들려오고 있다. 아직도 초발단계(初發段階)인 만큼 앞으로 더욱더 심각하고 더욱더 대규모의 더욱더 비극적인 소식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여기에서는 현 공황의 배경을 이루는 지금까지의 빈곤화의 문제를 돌아보자.

월스트리트의 탐욕을 비난하는 극우 이데올로그들이든, 우리의 ‘진보적인 지식인들’이든, 저들은, 앞에서 본 것처럼, 신자유주의를, 저들 독점자본이 기만적으로 표방하는 바에 따라, 단지 시장 대 국가의 문제로, 특히 주로 금융자본에 대한 규제완화, 감독 소홀의 문제로 치부하고 있다. 그러나 신자유주의는, 특히 이른바 노동(시장)의 유연화를 비롯한, 노동자계급에 대한 공세․억압의 강화가 그 핵심이다. 그리고 그것을 불가피하게 하고 가능하게 하는 것은, 그리고 물론 결과가 다시 원인이 되면서 그 과정을 증폭시켜가고 있는 것은, 우선 노동생산력의 발전, 특히 자본주의적 생산의 틀 속에서의 과학기술의 혁명이다.

그리고 극소전자(ME)혁명, 정보통신(IT)혁명 등의 규정을 수반하면서 진행되어온 특히 지난 30여 년 동안의 과학기술혁명은, 이전의 어떤 과학기술혁명보다도, 자동화, 그것도 전면적 자동화, 나아가 무인생산(無人生産) 체제를 의식적으로 지향한 것이었고, 또 어느 때보다도 그러한 방향으로의 진전이 이루어졌다. 물론 특별잉여가치․초과이윤을 취득하기 위한 자본의 탐욕과 패배는 곧 파산․몰락을 초래하는 경쟁이라는 외적 강제에 의해서 그렇게 추진되었다.

인간의 필요 충족을 직접적인 목적으로 삼는 합리적인 경제체제, 그러한 사회체제 하에서라면, 과학기술혁명에 따른 노동생산성의 비약적인 증대는 당연히 모든 사람에게 축복이다. 물질적 생활수단의 생산을 위한 노동시간을 그만큼 단축할 수 있고, 그러한 필요노동시간으로부터 해방된 시간을 잠재되어 있는 인간적 자질을 개발하는 데에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유재산제에 기초한, 잉여가치․이윤을 위한 생산체제인 자본주의적 경제체제 하에서는 그것은 노동자 대중의 재앙(災殃)이다. 소수의 노동자에게는 장시간 노동이 강제되고, 다수의 노동자들에게는 실업과 반실업, 비정규직, 그에 따른 극심한 빈곤․고통이 강제되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 그 노동(시장)의 유연화, 구조조정 등은 모두 자본주의적 생산체제 하에서의 과학기술혁명의 그러한 작용을 강제․강화하고 제도화하는 억압기제이다. 그리고 바로 그에 의한 광범하고 심대한 대중의 빈곤 위에서 폭발하고 있는 것이 현재의 과잉생산위기인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 때문에, 자본가 국가들이 설령 어떤 재정․금융 정책에 의해서, 즉 파산해가는 금융기관들을 국유화하고, 금융시장에 엄청난 ‘유동성’, 즉 지불수단을 공급함으로써 금융시장을 진정시킨다고 하더라고, 그것이 곧바로 공황을 끝내는 것이 결코 될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거대한 규모로 폭발하고 있는 대공황은 바로 자본주이적 생산체제, 자본주의적 생산관계 속에서 발전한 생산력으로서의 과학기술혁명이 사실상 더 이상 자본주의체제 그것과 양립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독점자본이 노동자계급에 대한 공세․억압의 강화체제로서의 신자유주의를 그토록 강력하게 밀어붙일 수 있었던 데에는 정치사적으로도 주요한 조건이 작용하였다. 그리고 바로 그러한 조건 때문에 노동자 대중은 궁지에 몰리면서 빈곤의 나락으로 빠져 들어갔다. 다름 아니라 쏘련을 위시한 20세기 사회주의 체제의 해체가 그것이다.

주지하는 것처럼, 신자유주의는 1970년대에 자본주의의 전반적인 위기가 스태그플레이션이라는 형태로 재격화되면서 신보수주의, 통화주의의 형태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그리고 영국에서 대처 정권의 성립과 더불어, 그리고 미국에서는 레이건 정권의 집권과 더불어 현실적인 정치권력으로 등장하여, 미국의 항공관제사 파업, 영국의 광산노동자파업이라는 내전을 거치고 그것들을 파괴하면서 자신을 강화해갔다. 말할 것도 없이, 수십 년 간에 걸친 집요한 선전과 공작․탄압으로 반쏘․반공 이데올로기가 노동자계급 내부에서 헤게모니를 행사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쏘련을 위시한 20세기 사회주의 체제가 버티고 있고 발전하고 있는 한, 그것들을 아무리 이데올로기적으로 악마화하더라도 엄연한 사실이 자신을 주장하고 있었기 때문에 신자유주의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신자유주의의 전면화, 노동자계급에 대한 공세․공격의 전면화를 위해서는 쏘련을 위시한 20세기 사회주의 체제가 먼저 파괴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레이건 정부 하에서 극도로 강화된 냉전은, 한편에서는 그 자체가 과잉생산의 부담을 완화하는 수단이면서, 동시에 바로 20세기 사회주의 체제를 해체시키기 위한 전쟁 그것이었다. 무슨 구실을 내걸었던, 국제 노동운동 내부에까지 깊숙이 침투해 있던 각양각색의 반쏘 선전, 반쏘 정치공작은 물론 그들 제국주의의 우군이었고, 지금도 물론 그렇다.

드디어 1980년대 말에서 90년대 초에 걸쳐서 저들은 목적을 달성했다. 노동자계급은 좌절감과 방향상실증에 빠져들었고, 신자유주의는 거침없이 활개쳤다. 광범한 노동자 대중을 빈곤의 나락으로 내몰면서! 그리하여 사실은 자신의 묘혈을 파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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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24일 - 위기에 국가딜레마

신자유주의 금융위기에

직면한 국가의 딜레마

[논설] 미국 정부는 시장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나

김성구(편집위원장, 한신대)  / 2008년09월23일 14시43분

작년 여름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에서 비롯된 미국의 금융위기는 양파껍질 벗기듯 새로운 부실과 위기가 연이어 드러나 끝 모르게 전개되면서 세계금융시장을 충격으로 몰아가고 있다. 가히 1930년대 대공황을 능가하는 자본주의 최대의 위기라 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베어 스턴스의 매각, 인디맥 파산, 패니 매와 프레디 맥의 국영화, 리먼 브라더스 파산, 메릴 린치 매각, AIG 구제금융 등 올해 들어 금융위기에 속절없이 쓰러진 대형 금융기관들만 거론해도 전율이 일어날 정도다. 대형 기관들의 위기가 드러날 때마다 금융시장은 폭락하였고, 미국 정부는 그때마다 공적자금 투입과 유동성 공급을 약속하면서 위기를 진정시키고자 안간힘을 써 왔다. 시장의 위기와 국가의 개입이 마치 힘겨루기를 하는 양상이며, 그때마다 증권시장은 폭락과 폭등의 널뛰기를 보여 왔다.

 

신자유주의 모국이자 최고 선도국에서 벌어지는 최악의 금융위기로 인해 시장의 자유와 규제 철폐가 자본주의 최고의 성장과 복지를 가져다준다는 신자유주의 경제학의 교리는 이제 극도의 불신의 대상이 되었다. 반면 국가의 개입을 철폐해야 한다고 목소리 높였던 신자유주의자들이 앞다투어 금융시장의 규제와 국가개입의 불가피성을 설파하며 공적자금 투입을 정당화하고 있다. 금융시장의 자산계급들도 자신들이 보유한 금융자산의 가치 유지를 위해 정부의 개입 조처에 목을 매고 있고, 보다 강력하고 전면적인 정부 지원책을 쌍수 들어 환영하는 상황이 되었다. 지난 30년간의 신자유주의적 규제 철폐와 금융화가 현재의 위기를 가져온 장본인이었으며, 신자유주의 교리는 대중들을 눈멀게 한 사악한 신앙이었음이 백일하에 드러나게 된 것이다.

 

파생금융상품에 입각한 주택대출 채권의 증권화와 가공자본의 운동은 어떻게 자립화한다 하더라도 궁극적으로는 주택경기와 실물경제에 제약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증권화와 재증권화의 금융혁신은 주택시장의 침체와 실물경제의 위기 시 오히려 금융상의 연쇄위기라는 부메랑으로 증폭되어 돌아올 수밖에 없다. 이는 금융자본 분석에서 맑스주의 경제학의 기본명제에 속하는 것이며, 부르주아 경제학과 저널리즘은 결코 이해하지 못한다. 규제 철폐라는 신자유주의 기치 하에, 특히 파생금융상품 거래에 대한 금융당국의 감독과 관리가 극히 미진한 상태에서 투기와 탐욕으로 몰아간 이 금융거래의 부실 규모가 도대체 얼마가 되는지 미국 정부는 가늠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지금까지 투입되거나 약속한 공적자금과 유동성 공급의 규모는 다만 그 일부를 나타낼 뿐인데, 이것 또한 이미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올해 들어 미국 정부가 투입하기로 한 공적자금만도 9천억 달러에 이른 상태다. 즉 패니 매와 프레디 맥에 2천억 달러 구제금융, JP모건 체이스의 베어 스턴스 인수에 300억 달러 지원, AIG에 850억 달러 구제금융, 은행과 투자은행에 2400억 달러 대출, 주택압류 증가 방지를 위한 3000억 달러 지원, 심지어 MMF 보증을 위한 500억 달러 등등. 이와 같은 천문학적인 자금 투입에도 불구하고 미국 정부는 금융시장의 안정에 실패하였고, 급기야 모기지 관련 부실채권 전부를 떠안겠다며 새로 7000억 달러 규모의 공적자금 투입 법안을 의회에 요청하기에 이르렀다. 아울러 FRB를 비롯한 6대 선진국 중앙은행은 이들 국가의 금융시장에 달러 유동성을 1천8백억 달러나 증대시키기로 합의하였다.

 

부시 미 대통령 말대로 그야말로 미국 역사상 “전례 없는 위기”에 대한 “전례 없는 대책”이 나온 것이다. 미 연방정부의 새해 예산 규모가 3조 달러임을 감안하면, 추가로 요청한 공적자금 7천억 달러는 예산의 1/4에 육박하는 규모인데, 대선을 두 달 남겨놓은 임기 말 대통령이 이런 중대한 사안에 대해 신속하고 과감한 결단을 내려야했던 것에서 현재 진행되는 금융위기의 심각성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다.

 

자본주의 위기에 직면해서 국가가 개입하는 것은 1930년대 대공황 이래 국가독점자본주의가 성립한 이후 더 이상 새로운 현상이 아니다. 케인스주의 시대뿐 아니라 신자유주의 시대에도 국가의 개입과 위기관리는 국가독점자본주의를 구성하는 주요한 일 요소이다. 주지하다시피 경제위기의 근저에는 과잉자본의 문제가 있고, 금융공황이든 실물공황이든 공황은 이 과잉자본을 청산하는 기능을 담당한다. 공황을 통한 과잉자본의 청산을 통해 비로소 새로운 축적의 조건이 형성된다. 부르주아 저널리즘에서 말하는 자본주의의 자생적 회복력이란 이 폭력적 파괴를 통한 축적의 재개를 왜곡, 미화하는 것이다. 문제는 19세기 자유경쟁자본주의 단계와 달리 20세기의 독점자본주의 단계에서는 점점 더 위기 시에 과잉자본의 청산을 시장의 자발성에 맡기기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국가의 개입과 위기관리가 불가피하게 요구되었고, 이로써 자본주의는 국가독점자본주의로 성장전화하였다.

 

현재의 금융위기에서 보는 바처럼, 거대 금융기업의 부실과 파산은 과잉자본 청산의 시장기제이지만, 시장의 청산과정은 그 파급 효과가 너무도 위험해서 시장기제에 맡겨둘 수가 없다. 왜냐하면 과잉자본 및 위기의 청산이 아니라 자본주의 자체의 청산이 될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관념적인 부르주아 변론가들이 “도덕적 해이”라는 헛소리로 국가개입을 반대하고 시장의 순결성을 찬양한다 하더라도 진정한 자본주의 수호자들이 공적자금을 들고 시장에 들어오는 것은 이런 위험을 막기 위함이다. JP모건 체이스의 베어 스턴스 인수에서처럼 사적 기업 간의 시장 거래조차 국가 지원이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국가의 개입과 공적자금의 투입도 위기를 진정으로 극복하는 길이 아니다. 국가개입은 과잉자본의 청산을 지체시키고 위기를 지연시켜 그만큼 경제회복의 동력을 약화시킨다.

 

또한 국가의 개입으로 과잉자본과 부실자본이 저절로 청산되는 건 아니다. 과잉자본과 부실자본은 청산되는 게 아니라 많은 부분 전가되는 것이며, 누군가가 그 비용을 부담하여야 한다. 공적자금, 국민의 세금이 바로 그것이다. 사적 자본의 부실을 자본가 계급 즉 주주와 채권자 그리고 경영자의 손실 하에 전액 털어내는 것이 아니라 공적자금의 투입을 통해 납세자에게 그 손실을 전가하는 것, 이른바 손실의 사회화가 구제금융의 핵심을 이룬다. 우리도 지난 외환위기 때 겪어본 바처럼, 공적자금의 투입을 통해 사기업과 금융기관을 공기업으로 전환하는 자본주의적 사회화는 이처럼 자본투자자들을 구원하고 손실을 사회화하는 기본 메커니즘이다. 이를 통해 대중들에 불리한 방향으로 소득이 재분배되고 그것이 실물부문의 침체를 심화시킬 것임은 불문가지의 사실이다.

 

공적자금 또한 무한정 사용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설령 채권발행을 통해 공적자금을 조달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결국 국가재정에 의해 부담될 수밖에 없다. 이달 말로 끝나는 2007-2008 회계연도에 미국의 재정적자는 기록적인 4070억 달러로 추산되는 바, 내년 회계연도에는 4380억 달러의 적자가 예상되고 있다. 이런 적자 규모에 비추어 볼 때, 이미 투입하기로 약속한 9천억 달러와 추가 요청한 7천억 달러(전자의 일정 부분이 후자에 의해 충당되겠지만)가 미국 재정에 얼마나 감당하기 버거운 금액인가를 추측할 수 있다.

 

더욱이 공적자금 투입이 이것으로 충분한가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는 가운데, 구제금융과 공적자금 투입에도 불구하고 금융위기가 본격적으로 실물경제로 파급되어 2001년 시작된 미국 경기 사이클은 조만간 주기적 공황으로 끝맺을 것으로 보인다. 전후 미국자본주의 역사를 보면, 정부와 중앙은행의 시장개입에도 불구하고 주기적 공황을 예방한 적도, 또 주기적 공황을 피한 적도 없었기에 새로운 공황에 따른 추가적 재정압박도 불가피한 것으로 보인다. 재정적자의 심화 속에서 달러 가치의 하락 경향도 강화될 것이다. 헤게모니 통화로서의 지위도 그만큼 위협받지 않을 수 없게 된다.

 

한편, 목하 진행되는 미국 국가독점자본주의의 위기 속에서 국가독점자본주의론의 주요 명제들은 확연히 빛을 발하고 있다. 독점과 금융자본을 위한 국가개입, 국가와 독점-금융자본의 결합, 공적자금 투입과 손실의 사회화, 위기를 통해 진전되는 자본주의적 사회화 등 위기 시의 이러한 국가개입의 현실, 특히 개별기업과 금융기관에 대한 직접적 지원까지 분석하는 이론은 맑스주의 이론 내에서도 국가독점자본주의론만이 독보적이다. 나아가 금융위기의 결과 미국의 대표적인 투자은행들이 몰락하고 골드만 삭스와 모건 스탠리까지 은행지주회사로 전환하여 미국에서도 겸업은행의 지배가 확립되고 있다. 때늦은 감이 있지만, 이로써 미국형 투자은행이라는 특수한 모델을 20세기 자본주의의 이념적 모델로 둔갑시켜 레닌의 금융자본론을 비판, 폐기한 국내의 국가독점자본주의론 청산파도 더욱 설 땅을 잃게 되었다. 국가독점자본주의론 없이 현대자본주의의 위기 분석은 과학적일 수 없다. 국가독점자본주의론에 입각하지 않고 미국자본주의의 위기를 논하는 자가 있다면, 자신의 이론적 토대, 정체성이 무엇인지 다시 한 번 되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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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리먼파산 - 송논설

리먼 파산 했는데도

위험한 줄타기 중인 한국

[논설] 산업은행 민영화하면

한국경제는 망한다

홍석만 (논설위원)  / 2008년09월16일 3시49분

리먼 브라더스가 파산했다. 투자은행 서열 3위였던 메릴린치는 뱅크오브아메리카에 전격 매각되었다. 초국적 보험그룹인 AIG는 자구노력에도 불구하고 연방준비제도이사회에 400억 달러를 대출받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는 소식도 전해지고 있다. 뿐만이 아니다. 워싱턴 뮤추얼, 시티은행그룹 등 미국 금융사들의 유동성 위기가 연일 급보로 타전되고 있다. 물론 그때마다 증시는 출렁거린다.

 

하지만 호들갑을 떨지 말자(정작 우리가 호들갑을 떨어야 할 부분은 따로 있다). 이 위기는 이미 예견되었다. 작년 하반기부터 미 금융당국은 나름대로 서브프라임 모기지론의 위기관리에 많은 신경을 썼다. 올 초에 터진 베어스턴스 파산위기 당시에는 JP모건이 인수하도록 음으로 양으로 지원을 해주었다. 그리고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연준)는 핵폭탄급 금융 쓰나미도 막았다. 최대 모기지 은행이었던 패니메이와 프레디맥에 대한 2,000억 달러 지원과 전격적인 공기업화를 통해 시장의 충격을 흡수했다. 허리케인은 정부의 시장개입으로 막아 주고 대신 몇몇 열대성 저기압은 시장의 체력으로 버티라는 의도인가? 미 금융당국은 리먼의 예견된 파산에 아직까지 손 놓고 구경만 하고 있다. 언제 개입할지도 모르지만 베어스턴스나 패니메이, 프레디맥 사태와는 다른 태도다. 다른 각도로 보면 이 정도의 위기는 시장이 버틸 수 있다는 판단일 수도 있다.

 

위기관리에 성공하고 있는 미 연준에 박수를! 하지만 박수를 받을 곳은 연준만이 아니다. 진정 박수를 받아야 할 곳은 다른 이들이다. 총알을 피하기는커녕 총성이 나는 쪽으로 몸을 던지는 경호원과 같이 위기에 빠진 미 금융가를 구하기 위해 뛰어든 자들은 따로 있었다.

 

올 초 영국의 투자은행 노던록이 미국의 서브프라임 위기로 파산했다. 미국의 베어스턴스 보다 앞선 파산이었다. 금융시장에 끼치는 영향이 얼마나 컸던지 신자유주의자로 이름난 고든 브라운 총리는 신자유주의자 답지 않게 노던록을 국유화시켰다. 영국정부가 미 금융가의 부실을 정리하는 청소부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뿐만이 아니다. 서브프라임 위기가 확산하자 싱가포르 국부펀드를 필두로 아랍계, 중국, 호주, 일본, 러시아, 인도 할 것 없이 전세계 돈 좀 있다고 하는 국부펀드들이 미국 금융가의 서브프라임 위기를 짊어지고 나섰다.

 

그렇게 위기가 일단락되는가 싶었다. 하지만 이번엔 미국의 달러화 가치가 내려앉기 시작했다. 모든 사람이 달러화의 약세가 지속할 것이라 예견된 상황에서 정반대의 현상이 일어났다. 떨어지던 미국 달러화가 다시 치솟았다. 이번에는 전 세계 은행들이 나서서 달러화를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쏟았다. 유로은행 총재까지 나서서 달러화 방어에 앞장섰다. 도대체 왜 달러화 방어에 앞장섰을까?

 

석유의 지배권을 놓고 벌어진 미국-이라크 전쟁이 달러화와 유로화의 대리전이라고 표현되었다. 미국 달러화의 패권을 놓고 이른바 통화전쟁을 벌이고 있는 이 시기에 그들은 왜 달러를 지지하러 나섰을까? 또 각 나라 국부펀드들은 왜 미국 금융시장에 돈을 쏟아 부었을까? 시장가치가 낮아진 만큼 투자의 적기가 찾아 왔고, 이 기회에 미국계 금융회사를 소유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헛된 망상 때문에?

 

아니다. 미국 경제의 하락이 자국 경제에 미칠 충격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미국의 경기하락은 소비위축으로 드러나게 될 것이고 자국 수출기업의 채산성 악화로 돌아오게 된다. 또 미국 국채와 채권에 투자한 투자금의 손실도 예상된다. 달러화가 떨어질수록 손실은 더욱 커진다. 어쩔 수 없이 더 큰 손실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달러화 가치 상승을 위해 투자해야 하고 미국 금융의 부실을 떠안고서라도 파국을 면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했다. 이른바 ‘부실의 사회화’는 이렇게 이루어지고 있다.

 

그럼 한국은 어떤가. 마찬가지로 한국의 국부펀드들도 서브프라임 부실을 짊어지는데 한몫했다. 투자실패에 대한 질책에 온갖 변명으로 일관하던 한국은행도 미 정부의 공적자금 투입 소식에 그제서야 패니메이와 프레디맥에 400억 달러나 투자했다고 실토했다. 각종 연기금도 미국채권시장에 투자했고 현재까지도 손실규모가 정확히 얼마나 되는지 모른다.

 

그런 상황에서 한국의 산업은행이 리먼 브라더스 인수를 시도했다. 지난 6월 한국투자공사 등 올해 들어서 벌써 3번째 인수시도였다고 한다. 여기에 군인공제회까지 군인정신으로 무장하고 리먼 인수전에 뛰어 들었다. 만약 리먼 인수가 성공했다면 얼마일지도 모른 서브프라임 부실을 한국의 국책은행과 공적기금으로 틀어막은 꼴이 되고 말았을 것이다. (산업은행과 군인기금의 모든 자산을 다 합쳐도 리먼의 부실채권을 갚을 수 있을지 미지수였다.)

 

그렇다, 천만다행이다. 하마터면 산업은행과 군인기금의 파산은 물론 한국 금융시스템이 붕괴할 상황까지 가게 되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런 상황은 반복될 전망이다. 리먼 인수시도가 단순히 미국의 부실을 덜어주는 소극적인 의미가 아니기 때문이다. 정부는 토종 초대형투자은행을 설립해서 글로벌 금융리더로 새출발하겠다는 구상을 밝히고 있다. 그 때문에 리먼과 같은 투자은행의 인수를 끊임없이 저울질 하고 있다. 민유성 산업은행장이 ‘리먼’ 서울지사장 출신이기 보다는 ‘투자은행’ 서울지사장 출신이라는 점이 더 중요하다. 해외 투자은행의 기술과 경험을 바탕으로 산업은행을 글로벌 투자은행으로 키워내겠다는 정부의 강력한 의지가 담겨있다.

 

지난 8월 정부의 공기업 선진화 방안 1차에서 산업은행 및 기업은행의 민영화를 공표했다. 우리은행 최대주주인 산업은행이 민영화되면 우리은행도 자동으로 민영화된다는 점에서 이 방안은 대부분의 국유, 국책은행 민영화를 담고 있다. 바로 은행 민영화와 통폐합을 통해 ‘미국식-초대형-토종-투자은행’을 설립하겠다는 것이다.

 

이 구상은 노무현 정부시절 완성된 금융허브 구축의 3단계 핵심과제로 제시되기도 했다. 또한 노무현 정부시절 금융허브와 투자은행의 환경에 맞게 자본시장통합법이 통과되었고 2009년 2월 전격 시행을 앞두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 인수위 시절 산업은행 민영화 방안은 이미 기정사실화 되었고 토종투자은행 설립은 공약화 되었다. 하지만 이 구상은 어느 특정 정치세력의 계획이 아니라 자본의 구상이다. 삼성경제연구소에서는 이미 2006년에 산업은행 민영화와 관련된 여러 계획을 검토한 연구보고서를 제출한 바 있고, 노무현, 이명박 정부가 이를 받아 안았다.

 

문제는 대형투자은행과 금융허브 구상이 성공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이 투자은행이 어느 나라에서 어떻게 돈을 벌게 될 것 인가하는 윤리적 판단을 뒤로 하고서라도, 경험과 자본이 일천한 상태에서 한국의 투자은행 계획은 성공할 수 없다. 미국을 비롯해서 세계 굴지의 투자은행들도 파산을 맞고 있는 자본주의 세계경제의 위기 상황이기 때문이다.

 

정부와 자본이 투자은행 설립계획을 포기하지 않는 한 글로벌 금융위기 속에서 위험한 줄타기는 계속될 전망이다. 만약 투자은행이 현실화 되면 한국이 세계경제위기의 시발점이 될지도 모른다. 미국이야 한두 개 투자은행이 파산해도 전 세계 경호원과 달러를 동원해서 견딜 수 있겠지만 한국은 곧장 국가파산상태로 떨어지게 된다.

 

산업은행을 민영화하면 투자은행이 설립된다. 그러면 한국은 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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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4일 미국경제위기 -박하순

미국경제위기

어떤 상태인가?

[칼럼] 구조적 위기 또는 심각한

공황으로 이어질 가능성 커

박하순(노기연/사회진보연대)  / 2008년08월04일 15시46분

지난 3월 미국 제 5위 투자은행 베어스턴스가 몰락할 무렵 신용경색과 경제위기 공포가 최고조에 달했다가, 미 연방준비위원회의(연준) 지원 아래 제이피모건체이스 은행이 베어스턴스를 인수하고 금융시장이 어느 정도 안정을 되찾았었다. 그래서 대공황 전문가로서 미 연준 의장을 맡고 있는 벤 버냉키는 6월에 "미국 경제의 실질적인 하강 위험이 줄어들었다"고 언급하였고, 앨런 그린스펀 전 연준 의장은 "신용위기 최악의 상황은 이미 끝났거나 곧 끝날 것"이라 했다.

 

그러던 것이 채 한 달이 지나지 않아, 민영화되었으나 정부가 일정하게 지원하는, 합해서 모기지 시장의 반 정도를 점유하는 거대 주택금융(모기지) 업체인 패니메이(Fannie Mae)와 프레디맥(Freddie Mac)의 부실 소식으로 다시 금융시장이 요동을 쳤다. 미 정부는 재무부로 하여금 양 기관에 대한 신용공여한도를 각각 22.5억 달러씩 향후 18개월 동안 증액하고 필요할 경우 양 기관으로 대표되는 정부지원 모기지업체 발행 주식을 매입할 수 있는 권한을 재무부에 부여하는 법안을 제출하여 의회의 승인을 얻었다(그린스펀은 최근 양 기관의 국유화를 주장하였고, 벤 버냉키도 최후의 카드로 이를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시장은 다시 어느 정도 안정을 되찾았다.

 

이렇게 금융시장이 위기감에 휩싸이고 뒤이어 중앙은행의 금리인하 및 유동성 공급과 정부의 경기진작책 및 공적자금 투입 발표가 있으면서 시장이 상대적인 안정을 되찾는 식의 교대가 2007년 중반 비우량(서브프라임) 주택담보대출 사태가 발발한 이후 1년간 계속되고 있다. 올해 들어서는 미국경제의 이런 불안한 행보에 유가 변수까지 가세하게 되었다.

 

그러면 미국경제는 현재 어떤 상태에 있는가?
최근 발표된 속보치(나중에 수정될 수 있다)에 따르면 미국경제는 2/4분기에 연율로 환산하여 1.9% 성장한 것으로 나타났다. 9.2% 증가한 상품 및 서비스 수출(1/4분기에는 5.1% 증가하였다)과 6.7% 증가한 정부지출(1/4분기에는 5.8% 증가하였다)이 이 정도의 성과를 내는 데 상당한 기여를 하였다. 그리고 국내총생산의 약 70%를 차지하는 소비도 1.5% 증가하여(1/4분기에는 0.9% 증가하였다) 경제성장률이 더 악화하지 않는 데 기여하였다. 경기침체를 막기 위해 미 정부가 4월부터 1,680억 불에 이르는 소득세를 환급해 주었고 이것이 소비지출을 어느 정도 늘리는 데 기여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금융시장 주변에서는 2.3% 정도의 성장률을 예측하였는데 이에는 약간 미치지 못한 것이다. 그리고 1.0%로 발표되었던 1/4분기 경제성장률은 0.9%로 수정되었고, 0.6%로 발표되었던 2007년 4/4분기 성장률은 -0.2%로 수정되어 발표되었다. 대체로 2분기 이상 마이너스 성장을 하는 경우로 정의되는 경기침체가 시작되었는지 아닌지, 시작되었다면 언제 시작되었는지에 대해 그동안 논란이 있었는데 논자에 따라서는 미국의 경기침체의 시작시점을 2007년 4/4분기로 이야기할 수 있게 된 상황이다.

 

그리고 최근 발표한 고용통계를 보면 7월 실업률은 4년 만에 최고치인 5.7%를 기록하였고, 고용규모는 7개월 연속 감소하였다. 4월까지만 해도 실업률은 5%였는데 그 사이 무려 0.7%포인트가 증가한 것이고 6월 실업률 5.5%보다 0.2%포인트가 상승한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아직은 경착륙이나 공황을 이야기할 상황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불안불안하게 금융위기 상황을 헤쳐 나오고 있는 중이다. 그러면 미국경제는 앞으로도 약간의 어려움은 있겠지만 최악의 상황은 피할 수 있을 것인가? 그것은 우선 주택가격 하락이 얼마나 더, 언제까지 하락할 것인가에 달려 있어 보인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불거진 미국경제의 위기적 양상은 서브프라임 모기지 대출 부실에서 시작하였다. 신용이 썩 좋지 않은 사람들이 모기지 은행에서 주택 자금 대출을 받아 주택을 샀는데(사실 이런 연유로 주택가격이 계속 오르고 주택부문의 성장도 과도하게 진행되었다. 즉 주택시장에 커다란 거품이 형성된 것이다), 이자부담이 늘고 소득이 감소하자 이들 중에 그 원리금을 제 때에 상환하지 못한 주택구매자들이 많아졌다.(이자부담이 왜 늘어났는가? 2000년대 초반 정보기술부분에서의 거품붕괴를 막기 위해 대폭 낮아진 기준금리는 2004년부터 오르기 시작했고, 많은 모기지들이 초기 2-3년은 낮은 이자율, 이후 7-8년은 높은 이자율을 지불하는데 2000년대 초중반 급격히 늘어난 서브 프라임 모기지들은 2000년대 중후반부터 높은 금리를 지불해야 했다. 소득은 왜 감소하였는가? 자동차 공업 부진 등으로 이들 지역의 실업이 늘어났고 당연히 소득이 감소하였다.)

 

모기지 은행에서 다른 금융기관으로 넘겨진 주택대출자산을 근거로 하여 채권(MBS, ABS)과 이보다 더 복잡한 채권들(CDO)이 발행되었는데(주택대출자산의 유동화) 이들의 가격이 하락하고, 이런 채권들을 보유한 각종 금융기관들(투자은행, 헤지펀드, 상업은행 등)이 부실해졌다. 물론 원리금을 못 갚은 주택소유자들의 주택은 값싸게 처분되고 주택가격은 하락하였다.

 

사실 주택가격이 오르고 있을 때에는, 원리금을 갚지 못할 사람들이 오른 주택가격에 기초해 다시 대출을 받아 문제를 연기할 수도 있었고 받은 현금을 다른 용도로도 사용할 수 있었는데, 일단 주택가격이 내리기 시작하면 이것이 불가능하게 되고 하락한 주택가격은 대출금에 미달해 주택을 팔아 이 문제를 해결할 수도 없게 되어, 연체율은 더욱 높아지게 되고 결국 주택은 금융기관으로 넘어가 처분된다. 즉 연체는 주택가격 하락의 원인이기도 하지만 주택가격 하락으로 인해 연체가 늘어나기도 한다.

 

이런 상황에서 주택건설 축소 및 해당부문에서의 생산 및 소득의 감소, 금융기관의 부실 및 해당부분의 손실 확대, 신용경색으로 인한 금리상승과 이로 인한 소비 및 투자 축소나 주식시장의 부진, 그리고 이로 인한 소비 축소가 일어나게 된 것이다. 여기서 주택가격 하락은 현재의 위기의 크기나 깊이의 척도가 된다.

 

주택가격은 이전 최고치에서 30% 내외의 하락이 있을 것이라는 게 관련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관측이다. 대도시 20개 지역의 주택가격을 재는 케이스쉴러지수(S&P/Case Shiller Home Price Indices)로는 지난 5월까지 최고치 대비 20% 약간 못 미치는 주택가격 하락이 있었다. 금융시장이 약간 안정을 찾은 시기여서인지 몰라도 5월의 주택가격 하락은 전월 대비 0.9%가 하락하여 약 2%가 하락했던 3월, 4월에 비하면 약간 둔화되긴 했지만, 여전히 앞으로도 10% 이상 주택가격이 하락할 것이다. 그리고 그 하락은 2009년까지 계속될 것이라 한다.

 

이렇게 될 경우 보유자산의 상각을 계속 해나가고 있고, 딱히 영업상황도 개선될 기미가 없는 메릴린치나 리먼브라더스같은 미국 3, 4위 투자은행의 경우 베어스턴스의 길을 뒤따르지 말란 법이 없어 보인다. 그리고 상업은행 4위 와코비아나 심지어는 자산규모 기준 1위 씨티은행의 안전한 운행도 장담할 수 없다.
이것은 이번 금융위기의 규모나 파장을 가장 정확히 예측하고 있어 이름을 드높인 뉴욕대학의 루비니 교수의 진단이다. 한 발 더 나아가 루비니 교수는 8,500개 대소규모의 은행 중 8% 정도가 파산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이렇게 된다면 파산한 은행 예금 중 개인당 1억 한도 안에서는 보장을 해 주어야 할 책임이 있는 연방예금보험공사(FDIC)에 정부의 공적자금이 투입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앞에서 이야기한 패니메이나 프레디맥의 재국유화 가능성도 있고, 쓰러진 거대은행들에도 직간접적으로 공적자금이 투입될 것이어서 미 정부의 부담은 크게 늘어날 것이다(‘부실의 사회화’).

 

미국경제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는 주택시장 거품문제만은 아니다. 지금껏 지속적으로 구조조정을 해 오고 있던 3대 미 자동차업체(지엠, 포드, 크라이슬러)는 또다시 고유가의 직격탄을 맞고 빈사상태에 놓여 있다. 고유가는 자동차 업계 전체를 위기에 몰아넣고 있는데 이들 업체는 픽업트럭, SUV, 대형차 등 고유가에 특히 취약한 차들을 생산해 와 그 타격이 특별히 크다. 미국자본주의가 세계헤게모니로 등장한 데는 자동차산업의 발전이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는데 이들 업체들의 부진은 매우 상징적이라 하겠다.

 

미국경제의 앞날에 또 다른 변수는 미국을 제외한 세계 다른 국가나 지역의 경제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미국경제와 여타 경제는 상호 밀접한 영향을 주고받고 있기 때문이다. 지표에 따르면 유럽연합, 일본, 영국 등 거대경제권의 성장이 매우 미약하다. 몇몇 나라는 경기침체에 들어갈 가능성도 농후하다. 영국, 스페인, 포르투갈의 주택시장 거품도 붕괴하고 있다. 뉴질랜드는 2008년 1분기에 마이너스 성장을 하였고 2분기도 마이너스 성장을 할 것으로 예측이 되고 있어 경기침체에 들어섰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호주, 남아공 경제상황도 좋지 않다. 중국, 베트남, 인도는 주가가 폭락하고 있으며, 베트남, 인도, 필리핀 등은 대외 불안 요소를 가지고 있다. 즉 세계 다른 많은 지역이나 국가의 경제도 거품붕괴나 부진한 성장, 혹은 대외 경제 불안 요소를 안고 있다. 최근 미국경제의 성장을 그나마 지탱해 준 수출도 부진해질 가능성이 높다. 또한 사태가 장기화한다면 이들 지역이나 국가들의 미국 내 투자자산에 대한 환수 가능성도 없지 않다.

 

2009년 혹은 2010년까지 계속될 것이라는 미국의 금융위기의 양상은 거대금융기관의 부실, 거대 자동차업체나 항공업체의 부실, 세계 여타지역의 경제위기나 개도국의 외환위기 등으로 인해 앞으로도 위기와 상대적 안정이 교차되는 싸이클을 지속할 것이다. 이런 와중에 기존 제도들이 위기의 부담을 감당해내지 못하고 무너져 위기가 경제 전반으로 확산되는 시스템 리스크를 경험할 수도 있어 보인다. 이는 당연히 구조적 위기 내지 심각한 공황으로 이어질 것이다.

 

설사 공황까지는 가지 않을지라도 대규모 공적자금 투입을 통한 부실의 사회화와 이로 인한 재정적자 심화 등으로 미국경제는 최소한 지지부진한 모습을 보일 것이다. 어떤 양상이든 임금억제, 실업률 및 비정규-단시간 노동의 증가, 물가인상 등으로 노동자 민중의 생존권과 노동권은 심각히 훼손될 것이다.

 

이윤율 추이를 통해 본 미국경제 위기
이윤율 추이를 소묘해 보면서 이야기를 마무리하자. 이윤율 대용으로 비금융법인자본 수익률(이윤과 이자 등의 자본소득 ÷ 생산 자산[=고정자산+재고자산])을 이용하자.

 


미국경제의 이윤율은 65년까지 상승을 하다가 1982년까지 하락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물론 그 사이 작은 등락들이 있는데 새로운 정점들은 그 이전 정점들에 비해 더 낮고 새로운 저점들은 그 이전 저점들에 비해 더 낮다. 그리고 1997년까지 이윤율은 완만한 기울기로 다시 상승하다가 97년 이후 2007년까지는 이윤율이 다시 하락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82년부터 97년까지 작은 등락들의 정점들은 계속해서 높아지고 있고 97년 이후의 새로운 정점인 2004년의 정점은 97년보다는 낮다.

 

한편 82년 이후 가장 높은 이윤율을 보이고 있는 97년의 이윤율도 65년의 이윤율에 비하면 70% 정도에 불과하다. 윤소영(『이윤율의 경제학과 신자유주의 비판』, 2002)에 따르면 미국경제는 69-70년 순환적 위기, 73-75년 구조적 위기, 80년 순환적 위기, 81-82년 구조적 위기, 90-91년 순환적 위기를 경험한다. 구조적 위기란 이윤율 추세선이 하락하는 가운데 이윤율이 급격히 하락할 때 발생하는데 이는 공황으로 연결된다.

 

널리 알려진 대로 미국자본주의는 70년대 중반 징후적 위기가 발생한다. 이를 계기로 하여 미국자본주의는 성장기에서 불황기로 진입한다. 그러나 8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의 이익을 향유하면서 5-60년대 황금기에는 현저히 미달하지만 일정한 호황을 구가한다. 90-91년 순환적 위기를 한차례 겪었을 뿐 97년까지 이윤율이 추세적으로 상승한다. 이윤율이 상승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제국주의 그룹들 중 최정점에 위치하면서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의 편익의 대부분을 영유할 수 있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그 결과 국내 노동자의 노동권과 개도국의 발전의 권리가 희생되었다. 97년 이후 이윤율은 다시 하락 추세를 보이고 있는데 미국자본의 해외부문으로부터의 수익률은 아직도 증가하거나 유지되고 있는 반면에 국내에서의 수익률이 감소하면서 나타나는 현상으로 보인다. 그런 점에서 97년 이후를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 후반부라 일컬을 만하다.

 

이런 설명 틀에서라면 2001년의 위기는 구조적 위기라 할 수 있을 것이고, 2009년 혹은 2010년까지 지속될 것으로 예상이 되는 현재의 금융위기의 결과는 2001년 위기를 능가할 것으로 보인다. 이윤율도 2001년의 이윤율보다 더 낮아질 것이다.

 

윤소영(『마르크스의 경제학비판』, 2005)은 미국자본주의의 최종적 위기를 2010년대로 예상하고 있는데, 2009년 혹은 2010년 이후 또 다른 회복국면이 있을지라도 이때의 이윤율은 2004년의 이윤율보다 더 낮을 것이고 이 정점 이후 이윤율 하락은 81-2년의 수준을 하회할 것이다. 미국노동자들이 자신들의 노동권과 공적자금 투입기관들에 대한 사회적 통제를 둘러싼 투쟁을 완강하게 전개할 수 있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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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8일자 사회진보연대

 
 
 
 
세계적 석유 위기와 한국 경제의 위기
고유가, 피크오일과 MB노믹스의 무능
 
사회진보연대
 
석유가격 추세와 석유가격 급등의 원인

유가가 고공 행진을 하고 있다. 1999년 1월, 이라크의 증산으로 인한 공급 증대와 아시아 금융위기로 인한 수요 둔화가 겹쳐 유가는 배럴당 8달러에 머물렀다(미 서부텍사스 중질유 기준). 그러나 그 이후 유가는 급격히 올라 2000년 9월 배럴당 35달러가 되었다. 2001년 정보기술 산업 거품붕괴로 미국에 경제위기가 도래하자 2001년 말에 유가는 다시 하락하였다가 2004년 9월경에는 배럴당 4-50달러까지 상승하였다. 2007년 9월에 배럴당 80달러를 넘어섰고, 같은 해 10월에는 90달러를 넘어서더니 올해 1월 2일에는 100달러를 기록하였다. 이때까지만 해도 100달러는 일시적인 정점이라는 견해가 유력했다. 하지만 6월 17일 현재 130달러를 넘고 있고, 최고치를 기록한 6월 6일에는 139.89달러를 기록했다. 물가를 감안한 실질 가격 기준으로는 역사상 가장 유가가 높았던 2차 석유 위기 당시인 1980년의 100-110달러를 훌쩍 뛰어넘는 수준이다(에너지 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세계 석유 집약도 감소를 고려한 2차 석유위기 당시의 ‘실질 실효 가격’은 150-160달러가 된다고 한다. 즉 아직은 이 가격에는 못 미친다). 최근의 유가 상승은 그 가파르기가 그지없고 변동성 또한 매우 커 폭등과 폭락을 거듭하고 있는 것이다.

달러 기준 유가는 왜 이렇게 오르고 있는가? 달러 가치 하락 및 금융 투기, 중국, 인도 등에서의 원유 수요 증대, 사우디아라비아 등 중동 국가들의 원유 소비 증대 등이 원인으로 이야기되고 있다. 그리고 그날그날의 유가 변동 이유로는 나이지리아 등지에서의 테러리스트의 송유관 공격, 원유 채굴 노동자 파업, 미국 원유 재고량의 감소, 미국이나 이스라엘의 이란 공격설 등이 얘기되기도 한다.

우선 달러 가치 하락부터 보자. 달러 가치가 현저히 하락한 현재 달러 기준 유가는 유가 상승 정도를 과장하고 있는 것은 틀림없다. 즉 유로 기준으로 유가는 그렇게까지 오르지 않았다. 또한 서브프라임 사태 이후 금융 기관에 대한 불신이 커져 있는 상황에서 국채나 곡물 원유 등의 상품에 갈 곳 없는 자금이 몰릴 것이라는 것도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 물론 최근에 곡물 등 다른 상품 시장의 거품은 꺼지는데 원유 가격은 계속해서 치솟고 있는 점에서 원유 시장과 다른 상품 시장 사이에 차별화가 진행되고 있기는 하다.

중국, 인도 등지에서의 수요 증대 또한 막대하지만 이들 국가에서의 원유수요를 포함한 세계 원유 수요 증가율은 1994년에서 2006년 사이에 연평균 1.76%에 불과하다. 2003-2004년에 가장 높은 3.4%를 기록하였다. 문제는 이런 정도의 수요 증가에 부응하지 못하는 공급이 문제가 아닐까? 더욱이 가격이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공급 확대의 가능성이 커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최근에 가장 많이 이야기되는 유가상승 원인으로 이야기되고 있는 것이 원유 생산 및 공급 제약이다. 사실 투기를 비난하는 사람들은 투기 거품 이후에 유가가 폭락해서 '정상 가격'으로 되돌아 올 것이라는 강한 믿음에 기초해 있다. 그런데 석유는 근본적으로 고갈 가능성이 있는 자원이다. 만약 원유 생산량의 정점이 도래했거나 곧 도래한다면 문제가 다르다. 석유는 단기적으로 비슷한 가격의 대체제가 나타나기 힘든 자원이다. 이런 자원에 대한 투기와 고갈 가능성이 없고 일시적으로 공급 제약이 존재하는 상품에 대한 투기와는 성질이 다를 것이다. 이런 점에서 원유 생산 및 공급 제약의 문제는 금융 투기를 제한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피크오일(원유 생산 정점)이 도래했는가?

원유 생산 및 공급 제약은 일부 유전들이 생산 정점을 지나 생산량이 줄고 있고 일부 유전의 경우 투자가 진행되지 않아 잉여생산능력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생산에 조그마한 차질을 가지고 올 사건도 즉각 원유 가격을 밀어 올리는 요인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보다 뜨거운 쟁점은 원유 생산 정점이 이미 도래했거나 곧 도래할 것이라는 ‘피크오일’론이다. 킹 휴버트가 제시해 1970년대 미국의 원유 생산 정점 시기를 거의 정확히 예측해 유명해진 이 이론은 지금까지는 일부 극단적 비관론자들에게만 수용되다가 최근에는 주류 언론에도 자주 소개가 되고 있다. 그리고 최근의 원유가 상승의 근본적인 원인이 이것에 기인하지 않는가라는 논의가 활발하다.

비록 가까운 장래는 아닐지라도 원유 생산 정점은 있을 수밖에 없는데 원유가 “토지처럼 재생산이 불가능하지만 또 토지와는 달리 고갈 가능성이 높은” 광업자원의 일종이기 때문이다.

피크오일 주창자들의 피크오일 시기는 약간씩 차이가 있다. 이들에 따르면 이미 피크오일 시기가 지났거나 곧 도래한다. 휴버트와 같이 작업했던 디훼이즈(Kenneth S. Deffeyes)는 2005년에, 독일의 에너지워치그룹(EWG)는 2006년에 이미 피크오일에 도달했다고 하고, ‘피크오일 및 피크가스 연구연합회’(ASPO)의 창시자 캠벨(Colin Campbell)은 올해 6월에 발표한 자료에서 2008년을 피크오일의 해라고 예측하고 있다(캠벨은 새로운 자료를 반영하여 피크오일 시기를 변경해가고 있는데 2011, 2010, 2007, 2008로 바뀌고 있으나 2010년 전후로 피크오일 시기를 예측하고 있다. 캠벨은 1990년대 중반에 2000년을 피크오일 시기로 예측한 바 있다). 그리고 사우디 및 중동의 원유생산을 연구한 시몬스(Matthew Simmons)도 대체로 지금 시기를 피크오일 시기라고 주장하고 있다. (참고로 2005년, 2006년, 2007년의 원유 생산량은 1일 평균 약 8,500만 배럴로 거의 동일하고, 2008년 1/4분기만을 보면 생산량은 2005-2007년에 비해 조금 증가한 것으로 보인다.) 최근에는 거대 석유기업 등에서도 “값싼 원유 시기는 지나갔다”며 피크오일을 인정하는 듯한 발언을 하고 있다.

피크오일 주창자들과 이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 사이의 차이는 원유 매장량에 대한 판단의 차이, 앞으로 발견될 원유량의 차이, 오일 샌드 등 비전통적인 원유에 대한 판단의 차이 등에 있다. 피크오일 주창자들은 각국이 발표하는 매장량, 특히 OPEC 회원국들이 원유 생산 쿼터를 많이 할당받기 위해 부풀려온 매장량을 불신하고 대신 생산량, 원유 발견량, 원유 채굴량 등에 기초해 독자적으로 매장량을 판단하고 피크오일 시기를 산정한다.

피크오일 이후 원유 생산량이 어떤 궤적을 그릴지도 논란거리이다. 급격히 하강하느냐 고원 형태를 보일 것이냐가 문제다. 별 준비 없이 전자의 사태를 맞이하면 석유 문명은 공황, 전쟁 등 급격한 혼란을 겪을 것이다. 후자라 할지라도 석유문명의 전환은 불가피하고 그래도 전자보다는 혼란이나 고통이 덜할 것이라는 예측이다.

현재의 고유가가 가까운 장래에 피크오일의 도래에서 연유한 것인지 아닌지는 확실하지 않다. 그러나 원유 생산 및 공급의 제약이 어느 정도 뚜렷해 보여, 중국 인도를 포함한 전 세계의 경제위기가 아니라면 고유가는 앞으로도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비록 피크오일 지지자 외에도 많은 사람들과 기관들이 이러한 예측에 영향을 받아 고유가를 예상하고 있다. 투자회사 모건 스탠리에서는 원유가가 곧 150달러에 달할 것이라 발표를 했고, 골드만 삭스는 그 보다 먼저 향후 6개월에서 2년 사이에 원유가가 200달러까지 상승할 것이라고 이야기한 바 있다. 보다 극적인 사례로는 CERA(Cambridge Energy Research Associates)가 있다. 2008년의 유가폭등이 있기 전까지 CERA 의장 다니엘 예르긴(Daniel Yergin)은 피크오일 주창자들을 비판해 왔고, 유가가 곧 ‘정상’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예측을 했다. 하지만 그는 올해 5월 7일에 2008년 중 유가가 150달러에 이를 것이고, 이는 공급 제약 때문이라고 기존 견해를 뒤집었다.


고유가와 한국 경제

고유가는 한국 경제에 커다란 부담이다. 당장 화물연대 등 운수 종사자들의 파업을 낳고 있다. 치솟은 경유 가격에 비해 운송료가 터무니없이 낮기 때문이다. 국제적으로는 항공업계와 자동차업계가 타격을 받고 있는데 한국의 경우도 예외가 아닐 것이다. 곡물 가격 상승 또한 유가 상승과 무관하지 않다. 화학비료 생산, 기계영농에 원유가 필수적이고 이는 곡물 가격을 상승시키고 있다. 높은 가격의 원유에 대한 대체제로 바이오연료 생산이 활성화되면서 많은 양의 곡물이 쓰이고 있다.

고유가는 이렇게 개별 산업에의 영향 이전에 물가나 경상수지 등 거시 변수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최근의 물가 상승은 고유가가 주요 원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고유가는 경상수지를 악화시키고 있다. 원유 수입액은 올해 1월에서 4월까지의 합계액를 보면 수입총액의 18.8%를 차지하고 있는데 이는 전년 동기의 15.2%보다 3.6%포인트가 늘어난 것이다(참고로 곡물수입액이 총수입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같은 기간에 1.7%였다). 2007년 1월에서 4월까지의 원유수입액이 약 170억 달러인 반면 2008년 원유수입액은 약 270억 달러로, 올해 4월까지만 전년 대비 약 100억 달러의 추가부담이 있었다. 이 대부분이 가격 상승으로 인한 추가 부담이었다. 4월까지의 경상수지 적자가 약 68억 달러임을 감안하면 유가 상승으로 인한 부담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다.

고유가가 지속되고 이로 인한 경상수지 적자가 누적된다면 이는 자칫 초민족적 금융투기자본의 급속한 이탈을 낳고 이는 환율 위기를 낳을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현재 정도의 경상수지 적자만으로 이런 문제가 야기될 것은 아니다. 국내에 들어와 있는 막대한 규모의 금융투기자본이나 단기 외채의 존재로 인해 적은 규모의 경상수지 적자로도 쉽게 환율 위기를 야기할 수 있다는 것이 보다 정확할 것이다(국제투자수지 마이너스 규모는 최근 계속해서 커지고 있다).

고유가는, 특히 이것이 피크오일에서 기인한다면, 이런 단기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보다 중장기적으로 보다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것이다. 석유에 기댄 산업 및 소비생활 전반에 대해 대대적인 전환이 필요할 지도 모른다. 따라서 현재의 고유가로 인한 문제를 전부 이명박에게 물을 수는 없다. 하지만 이명박을 비롯한 지배세력이 이런 문제에 올바로 대처할 수는 없다는 것도 분명하다. 특히 금융세계화된 현실에서 국제적 환율의 변동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석유 가격의 급변은 그 자체로 경제에 큰 위기 요소다. 우리는 이명박으로 대표되는 지배세력이 경제성장 또는 효율이라는 미명하에 주권이나 안전, 생명, 건강, 민주주의, 노동권 등을 헌신짝 버리듯 내팽개치는 것을 보고 있다. 그들이 경제위기, 생태위기나 문명의 전환 등에 대한 그 어떠한 개념이나 대책을 가지고 있을 리 만무다.
 
2008년06월18일 16: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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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3일 고유가 한국위기징후

고유가와 한국경제의

 위기

[칼럼] 무지에 기초한 헛된 공약과 결과적인 사기를 감추는 MB정부

박하순(노기연/사회진보연대)  / 2008년06월13일 14시42분

7% 성장, 4만 불 소득, 7대 경제강국을 의미하는 ‘747’ 공약으로 경제를 살리겠다며 화려하게 등장한 이명박 정부가 흔들리고 있다. 촛불시위에 흔들리기도 하고 자신감 상실로도 흔들리고 있기도 하다. “나는 포기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언명이 내겐 자신감의 표현으로 들리지 않는다.

 

부시와의 면담을 위한 ‘선결조치’(?)인 광우병 위험 미국산 소고기 수입의 전면 자유화로 촛불시위를 촉발시킨 사람은 그 누구도 아닌 이명박 대통령 자신이었다. 부시와 만나서 할 이야기는 한미자유무역협정을 부시 임기 내 비준하자는 것이었다.

 

농업-농촌 붕괴, 지적재산권과 초민족적 자본의 소유권의 철저한 보장 등으로 인해 민중의 생존권과 한국경제에 광우병 위험 소고기수입 이상으로 파괴적일 한미자유무역협정을 하루빨리 통과시키기 위해(?) 검역 주권을 내팽개쳐 버리고 식품 안전을 심각하게 위협할 미국산 소고기 수입을 재개한 것이다.

 

사실 자본주의 전개과정에서, 특별히 자본의 위기 극복수단이라고 선전되고 있는 신자유주의 세계화 추진과정에서 중심부와 대자본의 이익을 위해 주권을 포기하거나 안전을 무시하거나 민중의 생존을 위협하는 정책이나 조처는 (반)주변부에서 다반사로 일어나고 있다.

 

지하철이나 철도, 전기, 가스, 수도 등의 분야에서 시설감시 및 수리보전 인력이나 작업을 대폭 줄이는 각종 구조조정이 진행되기도 하고(이로 인해 ‘낮은 확률’의 사고가 발생해 사고대처에 많은 비용이 들어간다 해도 평상시의 비용절감으로 인해 이전보다 비용이 적게 든다는 게 구조조정을 추진하는 자들의 사고방식이다), 산업안전 관련 법제도의 규제완화가 진행되어 작업장에서 건강과 생명을 위협하기도 하고, 저임금과 고용불안으로 생존 자체가 불안전한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법제도가 도입되기도 하고, 인간생명이나 환경을 대규모로 파괴하는 참혹한 전쟁이 여전히 발생하기도 한다. 이명박이 한 짓 또한 이와 유사한 짓이었다.

 

촛불시위가 계속되자 이에 대한 이명박 나름의 대응이 걸작이다. 수입고시를 며칠 연기하더니 결국 고시를 강행하고, “초를 누가 공급하는지” 배후를 캐라고 닦달을 하고, 30개월 이상 소를 수입하지 않게 하겠다더니 결국 수출 수입업자들의 ‘자율규제’ 카드를 내밀고, 부시에게 하소연 전화를 하여 온 국민을 창피하게 만들고, 민의를 수렴한다면서 종교인들을 만나 소고기 수입협상을 끝내지 않은 노무현 정권에 대해 원망을 늘어놓거나 주사파 배후설을 속닥거리면서, 주먹 크기의 촛불시위 규모를 연일 굴리고 키워 자신이 그 속에 압사당할 지도 모를 집채만 한 규모의 눈덩이로 만들어 냈다. 흡사 마법을 부리듯.

 

6월 10일 대규모 촛불시위를 보고 이명박 대통령은 많은 생각을 했단다. 임기를 시작할 당시 자신만만한 태도는 쑥 들어가고 세종로 컨테이너 박스 뒤에 잔뜩 몸을 웅크린 채 대운하나 공기업민영화 등의 정책을 재검토 혹은 연기하겠다고 하고 있다. 그리고 “부자면 어때”라며 ‘고소영’, ‘강부자’ 내각 및 청와대 비서진을 출범시킨 지 채 100일도 안 되어 이들을 대폭 물갈이 해, ‘비고대’-‘비영남’-‘10억 이하 재산가’를 등용시켜 보려 한단다. 촛불시위는 초지일관 이명박만을 겨냥하는데도.

 

사실 광우병 위험 미국산 소고기 수입 협상에서 나타난 주권이나 생명·건강·안전 등에 대한 이명박의 무시는 필시 기업을 경영하면서 체득했을 그의 천박한 효율지상주의에서 비롯했다고 해도 틀림이 없고, 이는 ‘조·중·동’을 비롯한 우리 사회 지배세력이 대체로 공유한 가치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와 연관되지만 다른 요소도 있어 보이는데 그것은 경제를 살려야 한다는 조바심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사실 선거 때부터 미국 비우량담보대출(서브프라임) 사태에서 촉발된 금융위기 및 세계경제 둔화가 한국경제에 필시 영향을 미칠 것이고, 경상수지가 몇 년 만에 적자로 진입할 것이라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이명박 후보는 7% 성장을 공약했던 것이고,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상황은 악화되고 있고 공약은 지켜야 하고... 그런데 7% 성장 호언은 무지에서 비롯했을까 아니면 대국민사기극이었을까? 내가 보기엔 오히려 무지에 오히려 더 가까운 듯하다. 결과적으로 사기를 친 것이기도 하고.

 

한편 경제를 둘러싼 이명박 정부의 우왕좌왕은 역대 어느 정부보다 심했다. 취임 이후 서브프라임 사태가 자못 심각해지자 마치 이를 전혀 모르고 있었던 것처럼 세계적인 경제위기가 오니마니 호들갑을 떨었다. 그러더니 성장목표를 슬그머니 6%로 내렸다. 곧 6% 목표도 달성이 불가능하지 않느냐는 회의론이 여기저기서 불거지자, 이 정도의 성장목표는 달성이 가능하고 임기 말에는 7% 성장목표도 달성할 것이라고 했다.

 

재임기간 평균성장률이 임기 말 한 해만의 성장률로 어느새 바뀌어 버린 것이다. 환율과 관련한 혼선은 더욱더 가관이었다. 계속되는 경상수지 적자로 환율이 상승하고 있던 상황에서 이명박 정부는 이를 방치하거나 심지어는 조장까지 하는 태도를 보였다. 환율상승이 수출을 증대시켜 성장목표를 달성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계산에서였을 것이다. 그런데 달러가치 하락으로 인한 국제 곡물가격 및 유가 폭등에다가 달러에 대비한 원화가치 하락(환율 상승)이 겹치면서 수입물가가 폭등하고 이에 대해 국민의 불만이 터져 나오자 다시 환율상승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태도로 돌변했다. 심지어는 외환시장에까지 개입하여 원화가치 하락을 막았다. 50여개 품목 물가지수를 따로 만들어 서민들이 주로 사용하는 품목의 물가를 잡겠노라고 부산을 떨던 상황에서 물가를 부추기는 정책을 계속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이런 우왕좌왕에 비하면, 전기료 인상요인이 있어 전기요금을 올려야 한다고 했다가 채 며칠도 지나지 않아, 공공서비스 요금을 동결하여 물가를 억제하겠다면서 전기요금 인상을 철회한 것은 아주 작은 소동에 불과했다.

 

한미자유무역협정 조기 비준 및 발효와 광우병 소고기 졸속협상이 벌어진 것은 이런 와중에서였다. 한미자유무역협정이 경제성장을 촉진하는 수단이라고 철저히 믿고 있는 이명박으로서는 경제위기가 엄습해 오는 상황에서 한미자유무역 조기 비준 및 발효를 통해 경제성장률을 조금이라도 끌어올려, 자신의 무지에 기초한 사기를 조금이나마 가릴 수 있기를 바랐던 것이다. 즉 한국경제의 대내외적인 상황에 대한 무지에 기초한 헛된 공약과 결과적인 사기를 감추기 위해 조바심을 내다가 촛불시위라는 눈사태를 맞이하게 된 것이다.

 


한편 이명박의 ‘747’ 공약 달성에 중요한 장애요소 중의 하나가 현재 고공행진을 하고 있는 유가로 보인다. 고유가가 한국경제에 미칠 영향을 알아보기로 하자.

 

이라크의 증산과 아시아 금융위기로 인한 수요둔화로 1999년 1월 배럴당 8달러였던 유가(미 서부 텍사스 중질유 기준)는 그 이후 급격히 올라 2000년 9월 배럴당 35달러가 되었다. 2001년 정보기술산업 거품붕괴로 미국에 경제위기가 도래하자 2001년 말에 유가는 다시 하락하였다가 2004년 9월경에는 배럴당 4-50달러까지 상승하였다. 2007년 9월에 배럴 당 80달러를 넘어섰고 2007년 10월엔 90달러를 넘어서더니 올해 1월 2일에는 100달러를 기록하였다. 이때까지만 해도 100달러는 한 번 찍고 기록으로 남는 가격이라는 견해가 유력했는데 잠시 뒤 유가는 다시 천정부지로 올라 6월 12일 현재 130달러를 넘고 있고 6월 6일엔 139달러를 넘기기도 했다. 물가를 감안한 실질가격 기준으로는 역사상 가장 유가가 높았던 1980년 2차 석유위기 당시의 100-110달러를 훌쩍 뛰어넘는 수준이다. 최근의 유가 상승은 그 가파르기가 그지없고 변동성 또한 매우 커 폭등과 폭락을 거듭하고 있다.

 

고유가는 당장 화물연대 등 운수종사자들의 파업을 낳고 있다. 치솟은 경유가격에 비해 운송료가 터무니없이 낮기 때문이다. 국제적으로는 항공업계와 자동차업계가 타격을 받고 있는데 한국의 경우도 예외가 아닐 것이다. 곡물가격 상승 또한 유가 상승과 무관하지 않다. 화학비료 생산, 기계영농에 원유가 필수적이고 이는 곡물가를 상승시키고 있다. 높은 가격의 원유에 대한 대체재로 바이오연료 생산이 활성화되면서 많은 양의 곡물이 쓰이고 있다. 당연히 곡물가가 오를 수밖에 없다.

 

고유가는 이렇게 개별 산업에의 영향 이전에 물가나 경상수지 등 거시변수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최근의 물가상승은 고유가가 주요 원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원유가 한국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어느 정도일까? 거의 전량 수입에 의존하는 원유가 수입총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알아볼 필요가 있다.

 

원유수입액은 올해 1월에서 4월까지의 합계액을 보면 수입총액의 18.8%를 차지하고 있다. 전년 동기의 15.2%보다 3.6%포인트가 늘어난 것이다. 참고로 곡물수입액이 총수입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같은 기간에 1.7%였다. 한편 2007년 1월에서 4월까지의 원유수입액이 약 170억 달러, 2008년 원유수입액이 약 270억 달러여서 올해 4월까지만 해도 약 100억 달러의 추가부담이 있었다. 이 대부분이 가격상승으로 인한 추가부담이었다. 4월까지의 경상수지 적자가 약 68억 달러임을 감안하면 유가상승으로 인한 부담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다. 고유가가 지속되고 이로 인한 경상수지 적자가 누적된다면 이는 자칫 초민족적 금융투기자본의 급속한 이탈을 낳고 이는 환율위기를 낳을 수도 있을 것이다.

 

달러기준 유가는 왜 이렇게 오르고 있는가? 달러가치 하락 및 금융투기, 중국과 인도 등에서의 원유수요 증대, 사우디아라비아 등 중동국가들의 원유소비 증대 등이 원인으로 이야기되고 있다. 그리고 그날그날의 유가변동 이유로는 나이지리아 등지에서의 테러리스트의 송유관 공격, 원유채굴 노동자 파업, 미국 원유재고량의 감소, 미국이나 이스라엘의 이란 공격설 등이 얘기되기도 한다.

 

우선 달러가치가 현저히 하락한 현재 달러기준 유가는 유가 상승 정도를 과장하고 있는 것은 틀림없다. 즉 유로기준으로 유가는 그렇게까지는 오르지 않았다. 또한 서브프라임 사태 이후 금융기관에 대한 불신이 커져 있는 상황에서 국채나 곡물 원유 등의 상품에 갈 곳 없는 자금이 몰릴 것이라는 것도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 물론 최근에 곡물 등 다른 상품시장의 거품은 꺼지는데 원유가격은 계속해서 치솟고 있는 점에서 원유시장과 다른 상품시장 사이에 차별화가 진행되고 있기는 하다. 중국, 인도 등지에서의 수요증대 또한 막대하지만 세계 원유수요 증가율은 1994년에서 1996년 사이에 연평균 1.76%에 불과하다. 2003-2004년에 가장 높은 3.4%를 기록하였다.

 

그러나 최근에 가장 많이 이야기되는 원인으로는 원유 생산 및 공급제약이다. 일부 유전들이 생산정점을 지나 생산량이 줄고 있고 일부 유전의 경우 투자가 진행되지 않아 잉여생산능력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생산에 조그마한 차질을 가지고 올 사건도 즉각 원유가를 밀어 올리는 요인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보다 뜨거운 쟁점은 원유생산 정점이 이미 도래했거나 곧 도래할 것이라는 ‘피크오일’론이다. 킹 휴버트가 제시해 1970년대 미국의 원유생산정점 시기를 거의 정확히 예측해 유명해진 이 이론은 지금까지는 일부 극단적 비관론자들에게만 수용되다가 최근에는 주류 언론에도 자주 소개가 되고 있다. 그리고 최근의 원유가 상승의 근본적인 원인이 이것에 기인하지 않는가라는 논의도 활발하다.

 

비록 가까운 장래는 아닐지라도 원유생산 정점은 있을 수밖에 없는데 원유가 “토지처럼 재생산이 불가능하지만 또 토지와는 달리 고갈 가능성이 높은” 광업자원의 일종이기 때문이다.

 

피크오일 주창자들의 피크오일 시기는 약간씩 차이는 있으나 이미 피크오일 시기가 지났거나 곧 도래한다는 것이다. 휴버트와 같이 작업했던 디훼이즈는 2005년에 피크오일에 도달했고, 독일의 에너지워치그룹(EWG)는 2006년에, ‘피크오일 및 피크개스 연구연합회’(ASPO)의 캠벨은 6월 자료에서는 올해가 피크오일의 해라고 예측하고 있다(캠벨은 새로운 자료를 반영하여 피크오일 시기를 변경해가고 있는데 2011, 2010, 2007, 2008로 바뀌고 있으나 2010년 전후로 피크오일 시기를 예측하고 있다. 물론 캠벨은 과거에 1990년대를 피크오일 시기로 예측한 바 있다). 그리고 사우디 및 중동의 원유생산을 연구한 시몬스도 대체로 지금 시기를 피크오일 시기라 이야기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방송대 이필렬 교수가 EWG을 따라 피크오일 시기를 2006년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참고로 2005년 2006년 2007년의 원유 생산량은 1일 평균 약 8,500만 배럴로 거의 동일하고, 2008년 1/4분기만을 보면 생산량은 2005-2007년에 비해 조금 증가한 것으로 보인다. 최근에는 거대 석유기업 등에서도 “값싼 원유 시기는 지나갔다”며 피크오일을 인정하는 듯한 발언을 하고 있다.

 

피크오일 주창자들과 이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 사이의 차이는 원유매장량에 대한 판단의 차이, 장래 발견될 원유량의 차이, 오일 샌드 등 비전통적인 원유에 대한 판단의 차이 등에 있다. 피크오일 주창자들은 각국이 이야기하는 매장량을 불신하고 생산량, 원유 발견량, 원유 채굴양 등에 기초해 피크오일 시기를 산정하고 매장량에 대한 판단도 독자적으로 진행한다.

 

피크오일 이후 원유생산량이 어떤 궤적을 그릴지도 논란거리이다. 급격히 하강하느냐 고원형태를 보일 것이냐로. 별 준비없이 전자의 사태를 맞이하면 석유문명은 공황, 전쟁 등 급격한 혼란을 겪을 것이고 후자라 할지라도 석유문명의 전환은 불가피하고 그래도 전자보다는 혼란이나 고통이 덜할 것이라는 것이다.

 

현재의 고유가가 가까운 장래에 피크오일의 도래에서 연유한 것인지 아닌지는 확실하지 않다. 그러나 원유생산 및 공급 상의 제약이 어느 정도 뚜렷해 보여, 중국 인도를 포함한 전 세계의 경제위기가 아니라면 고유가는 앞으로도 지속할 것으로 보인다. 투자회사 모건 스탠리에서는 원유가가 곧 150달러에 달할 것이라 발표를 했고, 골드만 삭스에서는 일찍이 향후 2년 이내에 200달러를 이야기한 바 있다.

 

이로 인한 한국경제에의 부담은 전 세계에서 가장 커다란 악영향을 미칠 것이다. 원유를 거의 전부 수입을 하고, 원유가 상승이 아니더라도 경상수지가 적자로 돌아서고 있는 현재 고유가는 앞에서 이야기한대로 환율위기를 야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현재 정도의 경상수지 적자만으로 이런 문제가 야기될 것은 아니고 국내에 들어와 있는 막대한 규모의 금융투기자본이나 단기외채의 존재가 적은 규모의 경상수지 적자로도 쉬 환율위기를 야기할 수 있다는 것이 보다 정확한 이야기일 것이다(국제투자수지 마이너스 규모의 급증의 문제).

 

고유가로 인한 한국경제 부진의 책임을 이명박에게 전부 덮어씌울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서브프라임 사태나 고유가 등 선거시기부터 있었던 문제에도 불구하고 이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7% 성장을 호언한 사기에 대한 책임까지 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명박을 포함한 현재의 지배세력은 경제성장 또는 효율이라는 미명하에 주권이나 안전, 생명, 건강, 민주주의, 노동권 등을 헌신짝 버리듯 내팽개쳤다. 또한 생태위기나 문명의 위기 등에 대한 그 어떠한 개념이나 대책도 가지고 있지 않다. 이명박과 현 지배세력을 이대로 가만히 놓아둔다면 이로 인한 재앙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촛불시위가 인민주권과 안전, 생태에 대한 권리, 노동권 등이 보장 되는 새로운 사회를 열어나가는 운동으로 시급히 발전해야 할 당위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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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16일 위기징후

가쁜 숨 몰아쉬는

美경제...금융위기

'쓰나미'로

부시 "대통령이 마술지팡이 가진 건 아니야"

변정필 기자 bipana@jinbo.net / 2008년07월16일 18시20분

 

미국 경제가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다. 자산 320억 달러의 미국 내 2위의 모기지 업체 인디맥이 11일 고객들의 대규모 인출사태로 자금이 바닥나 영업중단 조치를 받았다. 이어 13일 FRB(연방준비제도이사회)와 재무부가 파산을 막기 위해 양대 국책 모기지 업체인 패니매와 프레디맥에 대한 긴급 구제책을 내놓기에 이르렀다.

 

위기는 모기지 시장에만 머무르지 않았다. 미국 최대 저축 대부 업체인 워싱턴뮤추얼과 오하이오주 최대 지역은행인 내셔널 시티코프의 주가가 폭락하는 등 시중은행으로 위기가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14일 영업정지까지 갔던 인디맥 뱅코프에서 돈을 인출하기 위해 장사진을 친 고객들의 모습을 전하며 1년에서 1년 반 사이 미국 내 7천 500개 금융기관 가운데 150여 개에 이르는 중.소규모 기관들이 도산의 운명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을 내놓았다. 흡사 미 정부가 금융시장에 대한 통제를 완전히 상실한 것은 아닌가라는 관측마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이를 두고 헤지 펀드 매니저인 조지 소로스는 "생애 최대의 심각한 금융위기"라고 표현했다.

 

"FRB, 세계 최대의 금융 쓰레기 처리장 될 것"

 

미국 정부는 파산위기에 몰린 미국 패니매와 프레디맥을 파산위기에서 구하기 위해 2.5%의 저금리로 뉴욕연방은행에서 자금대출을 받을 수 있도록 하고, 필요할 경우 정부가 주식을 매입해 주겠다고 밝혔다.

 

이 두 모기지 업체의 대출규모는 5조 달러. 부채규모는 1조 5천억에 달한다. 미국 모기지 시장에서 이들의 점유율은 50%에 육박한다. 설명해보자면 2006년 유럽연합(EU) 소속 26개국 전체 연간 GDP가 12조를 약간 웃도는 수준이었으니, 이 두 모기지 업체의 대출규모는 EU 26개국 연간 GDP의 절반에 육박하는 셈이다. 이 업체들이 파산하게 되면 이들이 발행한 채권이 휴짓조각이 되고 이를 보증한 금융기관들의 연쇄부도로 이어진다. 그러니 미국 정부로서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그러나 미국의 경제전문가인 윌리엄 엥달은 정부가 이 부실을 껴안게 된다면 "FRB는 급격히 세계 최대의 금융 쓰레기 처리장"이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결국 금융 부실을 정부가 껴안게 되면, 그 부실은 납세자들의 부담으로 고스란히 돌아가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을 두고 미국 경제지인 '월 스트리트 저널(WSJ)'은 "납세자들이 이해해야 할 것은 패니와 프레디가 부정직한 종류의 사회주의를 이미 실현하고 있다는 것"이라며 비꼬았다. 그리고 "그들의 이윤은 사유화되었다. 그러나 그들의 위기는 사회화되었다"고 조롱했다.

 

"대마불사"의 신화...위기 증폭시켜

 

알려진 바에 따르면 이들이 보증해온 모기지 채권이 5조 2천억 달러이지만 실제 운용자금은 810억 달러에 그친다. 파생 금융상품이 유동화 과정을 거치면서 위험이 어떻게 증폭되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패니매는 대공황 당시 루즈벨트 대통령의 뉴딜 정책의 일환으로 1983년 설립되었다가, 1968년 사유화되었다. 프레디맥은 2년 뒤인 1970년에는 주택 대출 시장을 회생시키기 위한 방편으로 설립되었다. 이 두 모기지 업체는 사적으로 소유된 "정부의 보증기업(GSE)"이었다.

 

그래서 금융시장은 정부가 보증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패니매와 프레디맥의 채권을 사들였다. "대마불사"의 신화만 믿었던 금융시장은 결국 이렇게 위기를 증폭시켰다.

 

이번 긴급구제를 두고 윌리엄 엥달은 "금융 투자자들이 경고하는 것처럼, 폴슨은 미국 경제를 긴급구제하는 것이 아니라, 월 스트리트의 금융 친구들을 직접적으로 긴급구제하는 것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일시적인 조치일 뿐이라는 이야기다.

 

위기...탈출구는 있나?

 

윌리엄 엥달은 "만약 버냉키가 은행시스템의 붕괴를 막기 위해 무제한적인 유동성을 계속해서 제공한다면 미국 기업 및 채권시장, 그리고 달러를 파괴하는 위험을 감수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번 패니매와 프레디맥에 대한 무제한적 유동성은 또 다른 위기를 초래할 것이라는 이야기다.

 

이런 비판들을 의식한 듯, 헨티 폴슨 미 재무장관은 15일 패니매와 프레디맥에 즉각적인 신용한도 확대는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1930년대 이후 최대라고 하는 주택가격의 붕괴는 그 끝을 모르고 있다. 고유가로 인한 물가상승 압력은 높아지고 있다. 이달 초 미 노동통계국은 2007년 6월 대비 6개월 이상 장기 실업이 37% 증가했다고 밝혔다. 이른바 경기하강과 물가상승을 동시에 겪고 있는 스태그플레이션 국면에서 금융위기를 탈출하기 위한 미국 정부의 선택지는 없어 보인다.

 

부시 미 대통령은 15일 기자회견에서 "대통령이 마술 지팡이를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라는 말로 현재의 상황을 표현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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