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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24일 - 위기에 국가딜레마

신자유주의 금융위기에

직면한 국가의 딜레마

[논설] 미국 정부는 시장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나

김성구(편집위원장, 한신대)  / 2008년09월23일 14시43분

작년 여름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에서 비롯된 미국의 금융위기는 양파껍질 벗기듯 새로운 부실과 위기가 연이어 드러나 끝 모르게 전개되면서 세계금융시장을 충격으로 몰아가고 있다. 가히 1930년대 대공황을 능가하는 자본주의 최대의 위기라 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베어 스턴스의 매각, 인디맥 파산, 패니 매와 프레디 맥의 국영화, 리먼 브라더스 파산, 메릴 린치 매각, AIG 구제금융 등 올해 들어 금융위기에 속절없이 쓰러진 대형 금융기관들만 거론해도 전율이 일어날 정도다. 대형 기관들의 위기가 드러날 때마다 금융시장은 폭락하였고, 미국 정부는 그때마다 공적자금 투입과 유동성 공급을 약속하면서 위기를 진정시키고자 안간힘을 써 왔다. 시장의 위기와 국가의 개입이 마치 힘겨루기를 하는 양상이며, 그때마다 증권시장은 폭락과 폭등의 널뛰기를 보여 왔다.

 

신자유주의 모국이자 최고 선도국에서 벌어지는 최악의 금융위기로 인해 시장의 자유와 규제 철폐가 자본주의 최고의 성장과 복지를 가져다준다는 신자유주의 경제학의 교리는 이제 극도의 불신의 대상이 되었다. 반면 국가의 개입을 철폐해야 한다고 목소리 높였던 신자유주의자들이 앞다투어 금융시장의 규제와 국가개입의 불가피성을 설파하며 공적자금 투입을 정당화하고 있다. 금융시장의 자산계급들도 자신들이 보유한 금융자산의 가치 유지를 위해 정부의 개입 조처에 목을 매고 있고, 보다 강력하고 전면적인 정부 지원책을 쌍수 들어 환영하는 상황이 되었다. 지난 30년간의 신자유주의적 규제 철폐와 금융화가 현재의 위기를 가져온 장본인이었으며, 신자유주의 교리는 대중들을 눈멀게 한 사악한 신앙이었음이 백일하에 드러나게 된 것이다.

 

파생금융상품에 입각한 주택대출 채권의 증권화와 가공자본의 운동은 어떻게 자립화한다 하더라도 궁극적으로는 주택경기와 실물경제에 제약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증권화와 재증권화의 금융혁신은 주택시장의 침체와 실물경제의 위기 시 오히려 금융상의 연쇄위기라는 부메랑으로 증폭되어 돌아올 수밖에 없다. 이는 금융자본 분석에서 맑스주의 경제학의 기본명제에 속하는 것이며, 부르주아 경제학과 저널리즘은 결코 이해하지 못한다. 규제 철폐라는 신자유주의 기치 하에, 특히 파생금융상품 거래에 대한 금융당국의 감독과 관리가 극히 미진한 상태에서 투기와 탐욕으로 몰아간 이 금융거래의 부실 규모가 도대체 얼마가 되는지 미국 정부는 가늠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지금까지 투입되거나 약속한 공적자금과 유동성 공급의 규모는 다만 그 일부를 나타낼 뿐인데, 이것 또한 이미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올해 들어 미국 정부가 투입하기로 한 공적자금만도 9천억 달러에 이른 상태다. 즉 패니 매와 프레디 맥에 2천억 달러 구제금융, JP모건 체이스의 베어 스턴스 인수에 300억 달러 지원, AIG에 850억 달러 구제금융, 은행과 투자은행에 2400억 달러 대출, 주택압류 증가 방지를 위한 3000억 달러 지원, 심지어 MMF 보증을 위한 500억 달러 등등. 이와 같은 천문학적인 자금 투입에도 불구하고 미국 정부는 금융시장의 안정에 실패하였고, 급기야 모기지 관련 부실채권 전부를 떠안겠다며 새로 7000억 달러 규모의 공적자금 투입 법안을 의회에 요청하기에 이르렀다. 아울러 FRB를 비롯한 6대 선진국 중앙은행은 이들 국가의 금융시장에 달러 유동성을 1천8백억 달러나 증대시키기로 합의하였다.

 

부시 미 대통령 말대로 그야말로 미국 역사상 “전례 없는 위기”에 대한 “전례 없는 대책”이 나온 것이다. 미 연방정부의 새해 예산 규모가 3조 달러임을 감안하면, 추가로 요청한 공적자금 7천억 달러는 예산의 1/4에 육박하는 규모인데, 대선을 두 달 남겨놓은 임기 말 대통령이 이런 중대한 사안에 대해 신속하고 과감한 결단을 내려야했던 것에서 현재 진행되는 금융위기의 심각성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다.

 

자본주의 위기에 직면해서 국가가 개입하는 것은 1930년대 대공황 이래 국가독점자본주의가 성립한 이후 더 이상 새로운 현상이 아니다. 케인스주의 시대뿐 아니라 신자유주의 시대에도 국가의 개입과 위기관리는 국가독점자본주의를 구성하는 주요한 일 요소이다. 주지하다시피 경제위기의 근저에는 과잉자본의 문제가 있고, 금융공황이든 실물공황이든 공황은 이 과잉자본을 청산하는 기능을 담당한다. 공황을 통한 과잉자본의 청산을 통해 비로소 새로운 축적의 조건이 형성된다. 부르주아 저널리즘에서 말하는 자본주의의 자생적 회복력이란 이 폭력적 파괴를 통한 축적의 재개를 왜곡, 미화하는 것이다. 문제는 19세기 자유경쟁자본주의 단계와 달리 20세기의 독점자본주의 단계에서는 점점 더 위기 시에 과잉자본의 청산을 시장의 자발성에 맡기기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국가의 개입과 위기관리가 불가피하게 요구되었고, 이로써 자본주의는 국가독점자본주의로 성장전화하였다.

 

현재의 금융위기에서 보는 바처럼, 거대 금융기업의 부실과 파산은 과잉자본 청산의 시장기제이지만, 시장의 청산과정은 그 파급 효과가 너무도 위험해서 시장기제에 맡겨둘 수가 없다. 왜냐하면 과잉자본 및 위기의 청산이 아니라 자본주의 자체의 청산이 될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관념적인 부르주아 변론가들이 “도덕적 해이”라는 헛소리로 국가개입을 반대하고 시장의 순결성을 찬양한다 하더라도 진정한 자본주의 수호자들이 공적자금을 들고 시장에 들어오는 것은 이런 위험을 막기 위함이다. JP모건 체이스의 베어 스턴스 인수에서처럼 사적 기업 간의 시장 거래조차 국가 지원이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국가의 개입과 공적자금의 투입도 위기를 진정으로 극복하는 길이 아니다. 국가개입은 과잉자본의 청산을 지체시키고 위기를 지연시켜 그만큼 경제회복의 동력을 약화시킨다.

 

또한 국가의 개입으로 과잉자본과 부실자본이 저절로 청산되는 건 아니다. 과잉자본과 부실자본은 청산되는 게 아니라 많은 부분 전가되는 것이며, 누군가가 그 비용을 부담하여야 한다. 공적자금, 국민의 세금이 바로 그것이다. 사적 자본의 부실을 자본가 계급 즉 주주와 채권자 그리고 경영자의 손실 하에 전액 털어내는 것이 아니라 공적자금의 투입을 통해 납세자에게 그 손실을 전가하는 것, 이른바 손실의 사회화가 구제금융의 핵심을 이룬다. 우리도 지난 외환위기 때 겪어본 바처럼, 공적자금의 투입을 통해 사기업과 금융기관을 공기업으로 전환하는 자본주의적 사회화는 이처럼 자본투자자들을 구원하고 손실을 사회화하는 기본 메커니즘이다. 이를 통해 대중들에 불리한 방향으로 소득이 재분배되고 그것이 실물부문의 침체를 심화시킬 것임은 불문가지의 사실이다.

 

공적자금 또한 무한정 사용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설령 채권발행을 통해 공적자금을 조달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결국 국가재정에 의해 부담될 수밖에 없다. 이달 말로 끝나는 2007-2008 회계연도에 미국의 재정적자는 기록적인 4070억 달러로 추산되는 바, 내년 회계연도에는 4380억 달러의 적자가 예상되고 있다. 이런 적자 규모에 비추어 볼 때, 이미 투입하기로 약속한 9천억 달러와 추가 요청한 7천억 달러(전자의 일정 부분이 후자에 의해 충당되겠지만)가 미국 재정에 얼마나 감당하기 버거운 금액인가를 추측할 수 있다.

 

더욱이 공적자금 투입이 이것으로 충분한가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는 가운데, 구제금융과 공적자금 투입에도 불구하고 금융위기가 본격적으로 실물경제로 파급되어 2001년 시작된 미국 경기 사이클은 조만간 주기적 공황으로 끝맺을 것으로 보인다. 전후 미국자본주의 역사를 보면, 정부와 중앙은행의 시장개입에도 불구하고 주기적 공황을 예방한 적도, 또 주기적 공황을 피한 적도 없었기에 새로운 공황에 따른 추가적 재정압박도 불가피한 것으로 보인다. 재정적자의 심화 속에서 달러 가치의 하락 경향도 강화될 것이다. 헤게모니 통화로서의 지위도 그만큼 위협받지 않을 수 없게 된다.

 

한편, 목하 진행되는 미국 국가독점자본주의의 위기 속에서 국가독점자본주의론의 주요 명제들은 확연히 빛을 발하고 있다. 독점과 금융자본을 위한 국가개입, 국가와 독점-금융자본의 결합, 공적자금 투입과 손실의 사회화, 위기를 통해 진전되는 자본주의적 사회화 등 위기 시의 이러한 국가개입의 현실, 특히 개별기업과 금융기관에 대한 직접적 지원까지 분석하는 이론은 맑스주의 이론 내에서도 국가독점자본주의론만이 독보적이다. 나아가 금융위기의 결과 미국의 대표적인 투자은행들이 몰락하고 골드만 삭스와 모건 스탠리까지 은행지주회사로 전환하여 미국에서도 겸업은행의 지배가 확립되고 있다. 때늦은 감이 있지만, 이로써 미국형 투자은행이라는 특수한 모델을 20세기 자본주의의 이념적 모델로 둔갑시켜 레닌의 금융자본론을 비판, 폐기한 국내의 국가독점자본주의론 청산파도 더욱 설 땅을 잃게 되었다. 국가독점자본주의론 없이 현대자본주의의 위기 분석은 과학적일 수 없다. 국가독점자본주의론에 입각하지 않고 미국자본주의의 위기를 논하는 자가 있다면, 자신의 이론적 토대, 정체성이 무엇인지 다시 한 번 되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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