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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국내외 정치정세와 노동자․민중1)
김영수(노동전선 정책위원/경상대 사회과학연구원)
1. 소위 ‘87년체제’의 아이러니
세계적인 수준에서 정치적 대립구도가 급격하게 변화되고 있다. 중남미 지역을 중심으로 한 제3세계 국가에서는 좌파정권의 등장과 함께 21세기 사회주주의의 전형들을 모색하려 한 반면, 유럽을 중심으로 한 서구 자본주의 국가에서는 사민주의 정치세력의 퇴장과 함께 신자유주의의 또 다른 21세기 전형들을 모색하고 있다. 전자의 모태가 쿠바․베네수엘라․볼리비아를 중심으로 한 중남미 지역의 ‘반신자유주의 좌파동맹’이라고 한다면, 후자의 모태는 27개 국가를 회원으로 하고 있는 ‘신자유주의 유럽동맹(EU)’이다. 그런데 이러한 양자의 동맹체제는 노동자․민중들의 대중투쟁과 긴밀하게 연계되어 있다. 중남미에서의 반신자유주의 좌파동맹이 노동자․민중들의 투쟁의 성과와 연계되어 있다면, 신자유주의 유럽동맹은 노동자․민중들의 반신자유주의 대중투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자본을 중심으로 하는 동맹체제와 노동자․민중들의 대중적 저항은 세계적인 현상으로 확대되고 있다. 또 다른 예를 들면, 아프리카대륙의 자본들은 신자유주의 아프리카연맹(AU)을 중심으로 ‘21세기 아프리카 르네상스’를 추구하고 있는 반면, 아프리카 대륙의 노동자․민중들은 초국적 독점자본에 저항하는 투쟁을 확산시켜 나가고 있다.
세계적 수준에서는 1999년의 시애틀 투쟁 이후 세계사회포럼, 공정무역운동 등, 유럽 지역에서는 실업자운동, 유럽헌법 반대운동, 반전사회포럼 등, 그리고 제3세계 지역에서는 중남미의 볼리바리안 운동, 사빠티스타 민족해방군(EZLN)의 공동체 자치운동, 아프리카․중남미․동남아시아의 토지개혁운동 등이 전개되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공공재화의 사유화로 인해 발생한 문제들을 해결하려는 유럽 지역 및 중남미 지역의 재국유화운동과 공공부문의 신자유주의적 개혁을 저지하기 위한 공공부문의 사회화운동,2) 중남미, 동아시아, 아프리카 등의 토지를 사회화하기 위한 농민운동, 그리고 청년실업 및 실업자 문제 해결을 위한 국가 역할의 변화 및 사회체제의 변화에서 찾고자 하는 중남미 및 유럽의 실업자 운동 등이 2008년에도 활성화될 것이다. 이러한 운동들은 정치적 대중투쟁으로 발전하지 않을 수 없는데, 이유는 세계적 수준의 신자유주의에 저항하는 운동들의 전략적 목표이다. 각 국가별 운동주체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아래로부터 통제할 수 있는 국가권력의 수립, 생산수단의 사회화, 그리고 제국주의적 전쟁 및 수탈에 저항하는 반제국주의 저항체제의 수립 등을 지향하고 있다.
한반도에서도 자본을 중심으로 하는 동맹체제가 형성․강화되고 있고, 노동자․민중들은 그러한 동맹체제에 저항하는 투쟁을 전개하고 있다. 한미동맹체제는 ‘북핵폐기’와 한미FTA를 추구하면서 한반도를 미국의 ‘저강도 전략’의 신자유주의 진지로 변화시키고 있으며, 한국의 노동자․민중들은 한미FTA반대 및 반전․반제투쟁을 전개하였다. 미국은 북한에 대한 ‘고강도 전략’의 한계상황에 직면하면서 국내의 경기침체, 특히 금융시장의 불안과 소비시장의 불황을 극복하기 위한 전략적 진지를 구축하려 하고 있고, 그러한 전략의 주요한 대상 중에 하나인 한국과의 제국주의적 동맹을 강화하고 있다. 그래서 남북정부는 미국의 ‘저강도 유연화 전략’에 조응하는 차원에서 제2차 남북정상회담, 남북경협의 강화, 서해평화협력지대의 추진 등을 합의하고, 한반도의 경색정국을 변화시켜 나가고 있다.
그러나 2007년 대선에서는 신자유주의 개혁세력의 정권유지 및 반신자유주의 세력의 정치적 부흥이라는 이변이 발생하지 않았다. 신자유주의 원조세력인 한나라당이 신자유주의 개혁세력인 통합신당을 물리치고 10년 만에 정권을 되찾았다. 노동자․민중들은 신자유주의 개혁정부를 실패한 세력으로 평가하고, 신자유주의 반대세력을 지지한 것이 아니라 신자유주의 원조세력을 선택하였다. 한국정치에서는 참으로 아이러니한 현상이 자주 발생한다지만, 2007년의 대선과 같이 아이러니한 현상은 없을 것이다. 신자유주의 원조세력은 역사적으로 노동자․민중들을 탄압하고 억압했던 주체들이고, 한국사회를 고통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던 주체들인데, 또한 신자유주의 개혁세력은 1987년 6월항쟁과 7-9월 노동자대투쟁으로 형성된 소위 ‘87년체제’의 정치적 주체라고 할 수 있는데, 노동자․민중들은 신자유주의 개혁세력의 실패에 대한 대안세력으로 신자유주의 원조세력을 선택하였으니 말이다.
노동자․민중들은 어떤 이유 때문에 이러한 선택을 한 것인가? 이 문제는 2008년의 한반도 정치정세를 인식하는데 있어서 핵심요소로 작용할 것이다. 단지 노동자․민중들의 정치의식이 저열하다는 분석과 평가에 그칠 수 없다. 2007년 대선은 노동자․민중의 정치세력화를 추구해 왔던 노동자․민중정치의 새로운 임계점이자, 노동자․민중들의 전략적 선택지로서의 결절점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분석과 평가를 하기 위해서는, 한국정치의 구조적인 측면에서 나타나는 노동자․민중들의 전략적 선택, 그리고 노동자․민중들이 실질적으로 신자유주의 원조세력을 선택하였는가의 문제가 해소되어야만 한다.
2. 2007년 대선에서 사라진 보수 대 진보의 구도
2007년 대선에서는 제도권을 중심으로 한 반신자유주의 정치세력의 ‘조로현상’과 함께 신자유주의 원조세력의 새로운 부흥이 일어났다. 정치적 지배블록 내에서는 의사(pseudo) 좌파로 표상되어 왔던 신자유주의 개혁세력의 약화현상이 발생하고, 대신 수구적 보수에서 합리적 우파로 변신을 꾀해 왔던 신자유주의 원조세력이 정권교체의 대안세력으로 급부상하여 정권을 교체하였다.
노동자․민중들은 1992년 이후 탈군부 정권을 중심으로 하는 ‘민주주의적 신자유주의 개혁담론’에 포위된 상태에서, 신자유주의적 개혁을 민주주의적 개혁으로 인식하는 ‘오버랩 개혁통치’의 희생양이 되었다. 민주노총 지도부들의 일부만이 아니라 소위 시민운동단체의 대다수가 ‘오버랩 개혁통치’의 주체로 등장하였다. 이러한 개혁통치의 주체들은 소위 ‘87년체제’의 정치적 주체들이었다. 민주주의적 개혁세력은 실질적 민주주의를 추구하지 못하면서 ‘개혁담론’만을 무성하게 하였을 뿐, 신자유주의 정책을 노동자․민중들에게 강요하였다. 노동자․민중들은 민주주의적 개혁이라는 ‘희망의 21세기’를 원했지만, 실질적으로 ‘절망의 21세기’만을 맞이하게 되었다. 이는 민주주의적 개혁세력에 대한 배신과 분노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고, 더 나아가 민주주의적 개혁세력의 무능력으로 표상되었다. 문제는 ‘오버랩 개혁통치’의 유탄이 신자유주의적 개혁세력만이 아니라 민주노동당을 중심으로 한 반신자유주의 정치세력들에게도 집중 포화되었다는 점이다. 의사(pseudo) 좌파로 표상되어 왔던 신자유주의 개혁세력보다 더 좌파적 성향으로 표상된 반신자유주의 세력들도 ‘오버랩 개혁통치’의 희생양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 동안 한국사회의 정치적 대결구도는 매우 다양하게 형성되었다가 명멸하고, 또 다시 부활하곤 하였다. 민주 대 반민주, 보수 대 진보의 구도가 그러했었다. 이러한 대결구도는 대선이나 총선을 맞이할 때마다 수구․보수세력을 상대로 하는 선거전술, 즉 후보단일화 전술, 비판적 지지전술, 그리고 독자후보전술로 현실화되었다. 2007년 대선에서는 그야말로 제반 정치세력들의 독자후보전술이 채택되었지만, 신자유주의 원조세력들은 선거라는 경쟁게임에서 승리하였다. 한나라당의 후보인 이명박이 범죄자로 확인되지 않는 한, 새로운 한나라당 정권의 정통성은 앞으로 5년 동안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2007년의 대선정국에서 노동자․민중의 정치세력화를 추구했던 ‘진보’는 사라졌다. 경제부흥세력 대 경제실패세력, 부패세력 대 청렴세력, 거짓세력 대 진실세력, 폭력세력 대 평화세력 등의 대결구도는 대선정국을 수놓았지만, 노동자․민중의 진보 대 자본의 보수라는 대결구도는 형성되지 못한 것이다. 신자유주의 대 반신자유주의의 정치적 투쟁전선이나, 한미FTA 저지투쟁의 전선조차 거의 형성되지 못하였다. 단지 노동자․민중의 ‘진보’는 부르주아 계급의 정치적 지배블록 내에 존재하는 ‘상대적 진보’로 표상되었다. 한나라당<민주당<통합신당<창조한국당<민주노동당<한국사회당 등의 대통령 후보자를 중심으로 배열되는 진보였던 것이다. 비제도권에서 노동자․민중의 정치세력화를 추구하는 세력들도 2007년 대선정국에서 자신들의 정체성에 조응하는 선거투쟁을 거의 하지 못하였다. 또 다른 수준의 정치적 무능력이 표출된 것이다. 이러한 정치적 무능력은 노동자․민중의 잠재화되어 있는 자발적 정치투쟁을 무한정 기다리는 것과 매우 유사하다. 비제도권의 노동자․민중정치가 ‘대기주의적 정치활동’이라는 혐의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이다.
노동자․민중은 신자유주의 원조세력이나 신자유주의 개혁세력 때문에, 목숨을 던져야만 하는 고통의 나락으로 떨어졌지만, 2007년 대선정국에서 계급 간의 정치적 대결구도로 형성되는 진보정치, 즉 반신자유주의 정치, 반제국주의 정치, 그리고 반자본주의 정치를 외면하였고, 더욱이 상대적 진보세력을 지지하고 선택한 것이 아니라 가장 보수적인 세력을 지지하고 선택하였다. 노동자․민중들은 아예 제도정치 내부의 상대적 진보정치만이 아니라 비제도적인 노동자․민중의 진보정치를 외면함으로써, 노동자․민중정치로 하여금 ‘진보의 공황상태’로 빠져들게 되었다.
3. 신자유주의 정치구조와 노동자․민중
민주주의 이행과정을 거치고 있는 한국의 정치구조에 대한 일반적인 평가는 간단하게 정리할 수 있다. 정치적 민주화가 진전되고 있는 만큼, 수구․보수세력에 대해 신자유주의 개혁세력을 중심으로 한 ‘개혁적 저항’이 필요하고, 그러한 개혁에 동참하지 않는 노동자․민중운동에 대해서는 ‘개혁적 고립’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YS정부-DJ정부-NO정부가 신자유주의 정책블록이라는 ‘정책 카르텔’을 형성한 상태에서 한국 민주주의 이행의 주체인양 존재하면서 노동자․민중을 억압한 경우이다. 소위 ‘87년 체제’의 모순적 구조, 즉 노동자․민중들을 고통에 빠트린 신자유주의 정책을 추구하면서도 민주주의 이행 및 개혁의 주체로 간주되었으며, 이러한 주체들을 상대로 하는 각종의 투쟁을 오히려 민주주의 이행 및 개혁의 걸림돌로 간주되기까지 하였다. 민주주의 이행 및 개혁에 대한 수구․보수세력의 저항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이러한 주체들에게 힘을 모아주지 않는다는 비판이었다. 이러한 모순적 구조를 신자유주의 정치구조로 표시하면, 아래의 그림과 같이 도식화할 수 있다.
한국정치의 기본적인 대립구도는 신자유주의 세력 대 반신자유주의 세력 간에 형성되었고, 각각의 주체들은 상호연대를 바탕으로 노동자․민중들의 지지를 획득하기 위한 투쟁을 전개하였다. 이러한 대결은 곧 신자유주의 정책을 둘러싼 ‘갈등적 경쟁관계’를 형성․유지하였고, 이 과정에서 각각의 주체들은 ‘전략적 선택과 저항’이라는 통치전략과 투쟁전략을 구사하였다. 즉 대결주체들의 역량과 조건에 상응하는 통치전략과 투쟁전략, 소위 신자유주의 정책에 대한 저항세력의 조건 및 통치세력의 상황에 따라 다양한 통치전략과 투쟁전략들이 구사되었다. 이 과정에서 반신자유주의 세력의 저항은 사회적으로 고립화되는 상황을 맞이하곤 하였다. 비정규투쟁, 파병반대투쟁, 한미FTA반대투쟁 등이 2004년의 대통령탄핵반대와 같은 대중투쟁으로 발전하지 못하였다.
노동자․민중들도 1997년-98년의 외환위기 상황을 겪으면서, 신자유주의 세력 및 반신자유주의 세력들에 대한 ‘전략적 선택과 저항’을 경험하게 되었다. 노동자․민중들은 정치적․사회적 의제를 중심으로 하는 저항의 주체로 쉽게 나서지 않았고, 노동현장이나 생활현장의 안정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이기주의적이고 개인주의적인 선택을 마다하지 않았다. 주로 노동자들을 조직원으로 하고 있는 민주노총이 조직적이고 대중적인 투쟁을 쉽게 전개할 수 없었던 요인이자, 민주노총 스스로 투쟁의 정체성을 변화시키게 되는 주요 요인이었다.
노동자․민중들은 신자유주의 정치구조를 전복하기 위한 반신자유주의 정치활동의 주체로 나선 것이 아니라, 신자유주의 정치세력과 반신자유주의 정치세력을 경우에 따라 전략적으로 선택하는 상호 모순적 행위의 주체로 존재하였다. 이러한 모순적 정치행위는 2007년 대선정국에서도 자연스럽게 표출되었다.
선거정치에서 나타난 노동자․민중들의 전략적 선택은 역사적으로 존재해 왔다. 한국정치의 구조적 특성인 ‘인물 중심의 선택3), 지역 중심의 선택, 대중 중심의 선택4), 남북관계 중심의 선택’, 즉 선거를 매개로 하는 정치행위의 주체로서 노동자․민중의 정치세력화를 지체시키는 주요 세력으로 존재하였지만, 이러한 선택의 기준은 그 동안 지역을 중심으로 하는 정치활동의 결과를 반영한다고 할 있다. 신자유주의 원조세력에 대한 지지기반이 거의 35% 수준이었던 반면에, 노동자․민중의 정치세력화를 추구하는 세력에 대한 지지기반은 10% 미만이었다. 이것은 두 가지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하나는 한나라당을 중심으로 하는 신자유주의 원조세력의 지지기반이 한국사회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지역을 중심으로 노동자․민중들의 이해를 대변하고자 했던 민주노동당의 정치활동이 노동자․민중들의 신뢰를 아직까지 획득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민주노동당의 지지기반이 급속하게 확장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신자유주의 정치세력들은 한국정치의 구조적 특성을 전략적으로 활용하면서 노동자․민중들로 하여금 ‘자발적 참여, 자발적 동원’을 선택하게 하였다.
4. 노동자․민중의 전략적 선택과 노동자․민중정치
1) 2007년 대선정국과 노동자․민중
2007년의 대선정국에서 나타난 노동자․민중들의 선택을 두고 ‘국민 노망’, ‘새로운 반한나라 범민주전선 실패’, ‘잘못된 민중의지’, ‘반신자유주의 투쟁패배’ 등이 등장하였다. 국민노망론은 가장 반민중적이고 반민주적인 것이고, 새로운 범민주전선의 실패론은 신자유주의 개혁세력을 비판하고 있는 노동자․민중의 상태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엘리트주의적 주장이다. 반면에 ‘잘못된 민중의지론’ 및 ‘반신자유주의 투쟁 패배론’은 그 동안의 노동자․민중정치에 대한 비판적 평가를 바탕으로, 노동자․민중정치의 새로운 대안을 모색하려는 것이다. ‘국민 노망론’과 ‘새로운 반한나라 범민주전선론’은 한나라당에게 정권을 내주는 것 자체가 민주주의의 퇴행으로 간주하는 것이고, ‘잘못된 민중의지론’과 ‘반신자유주의 투쟁패배론’은 노동자․민중정치를 보다 정확하게 진단하여 새로운 노동자․민중정치의 대안들을 모색하자는 것이다. 하지만 노동자․민중들은 부르주아 정치에 ‘중독’되어 투표행위만을 정치활동으로 인식하는 경향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한국정치의 주요한 결절점을 만들어 냈던 정치적 대중투쟁의 주체로 존재해 왔으며, 신자유주의 개혁세력 및 진보정치세력의 실질적인 지지기반으로서의 역할을 담당해 왔다.
노동자․민중들은 20년에 걸친 소위 ‘87년체제’를 경험하면서, ‘87년체제’의 모순적 구조를 인식하기 시작하였다. ‘87년체제’의 정치적 주체들은 1948년 이후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는 한국사회의 보수적 구조를 민주적으로 변화시키기 위한 이행 및 개혁의 주체로 인정할 수 있지만,5) 신자유주의 정책의 집행자로서의 책임을 신자유주의 개혁세력에게 묻기 시작하였다. 그 동안 반신자유주의 세력이 줄기차게 제기해 왔던 신자유주의 정책의 문제점, 즉 ‘사회적 양극화 문제6), 생활조건의 악화 문제7), 부르주아적 개혁의 문제8)’들이 노동자․민중들을 고통에 빠지게 한 것이다. 노동자․민중들은 신자유주의 개혁세력을 중심으로 하는 ‘87년 체제’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정치적 대안을 전략적으로 선택해야만 할 기로에 서 있었다.
그런데 노동자․민중들은 2007년 대선정국에서 민주노동당을 중심으로 하는 반신자유주의 세력을 선택하지 않고 신자유주의 원조세력을 선택하거나 혹은 어떠한 정치세력도 선택하지 않은 정치적 방관자로 남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은 2007년의 대선정국을 신자유주의 원조세력의 완승이라고 평가한다. 현상적으로 볼 때, 아주 명확한 정답이다. 과연 이들 세력만의 승리라고 할 수 있는 것인가? 신자유주의 정치라는 구조적 관점에서 볼 때, 2007년 대통령선거를 ‘그들만의 리그’로 정착시킨 신자유주의 정치세력의 완승이라고 보아야 한다. 지난 5년 동안 신자유주의 개혁세력의 대표였던 통합신당은 선거라는 경쟁정치게임에서 신자유주의 원조세력에게 패배했지만, 그들을 포함하는 신자유주의 정치세력은 노동자․민중들로 하여금 자신들만을 전략적으로 선택하게 하는 ‘신자유주의 정치의 성공신화’를 일궈낸 것이다. 신자유주의 정책블록 내에서의 권력이동, 즉 정치권력의 주류로부터 비주류로 이전하게 하고, 노동자․민중들을 그러한 권력이동에 동원하는 신자유주의 정치세력의 성공시대가 열린 것이다. 그렇지만 노동자․민중들이 신자유주의 원조세력을 전략적으로 선택하게 된 측면들을 한국정치의 구조적인 특성과 연계시켜서 분석해야만 할 주요 이유이다.
신자유주의 개혁세력의 실패로 말미암아, 신자유주의 원조세력은 역사적으로 존재했던 지지기반의 응집력을 강화시킬 수 있었다. 그러한 응집력의 기제는 한국정치의 구조적 특성을 활용하는 것이었다. ‘인물 중심, 대중 중심’의 전략을 극대화하는 반면 ‘지역 중심, 남북관계 중심’을 극소화하는 전략이었다. 반면에 반신자유주의 세력은 한국정치의 구조적 특성을 극복하는데 많은 한계를 드러냈다. 즉 2004년 민주노동당이 원내에 진입하고 난 이후, 민주노동당은 노동자․민중의 정치세력화를 추구하는 주체로서의 정체성을 형성하는데 실패한 것이다. 민주노동당의 조직 내적인 측면에서 볼 때, 한편으로는 ‘인물 중심, 대중 중심, 남북관계 중심’의 전략을 추구하였고, 다른 한편으로 ‘탈지역적이고 탈대중적인 계급 중심’의 전략을 추구하기도 하였다. 민주노동당의 원내외 정치활동의 측면에서 볼 때, 한편으로는 노동자․민중들에 대해 ‘고립화 전략’을 추구하고 있는 신자유주의 개혁세력과 정책적으로 연합하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러한 세력을 부정하면서 진보적인 정치세력으로서의 정체성을 제도권 밖에서 형성하려 하였다. 노동자․민중들은 민주노동당을 대안의 정치세력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한국정치의 구조적 특성에 중독되어 있는 노동자․민중들의 입장에서 볼 때, 민주노동당은 지역을 중심으로 하는 정치활동의 과정에서 실질적인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였다는 것이고, 노동자․민중들로부터 권리를 위임받을만한 지도자들을 양성하지 못하였다는 것이다. 소위 보수적인 정치세력으로 규정되어 왔던 신자유주의 정치세력과 차별화된 정치활동의 미비, 예를 들면, 의회에서나 자치단체의 정치활동이 기존의 신자유주의 정치구조를 극복하지 못하였다는 의미이다. 또한 민주노동당은 한국정치의 구조적 특성을 인정할 것인가 인정하지 않을 것인가에 대한 전략적 선택이 부재하였거나 혼돈의 상태를 지속시켰다.
2) 신자유주의 원조세력과 노동자․민중의 전략적 선택
신자유주의 원조세력은 신자유주의 개혁세력을 비판하면서 이탈한 노동자․민중들의 지지를 바탕으로 정권교체를 일구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러한 이러한 평가는 적지 않은 문제점들을 드러낼 수 있다. 2007년 대선의 결과를 보면, 신자유주의 개혁세력에서 이탈한 노동자․민중들이 대거 신자유주의 원조세력을 지지하였다고 할 수 없고, 노동자․민중의 정치세력화를 추구하는 민주노동당에 대한 지지기반의 변화가 발생하지 않았다. 최근의 각종 선거결과에서 알 수 있듯이, 신자유주의 원조세력과 신자유주의 개혁세력은 그 동안 노동자․민중들로부터 탄탄한 지지를 받아왔다.
<표1> 각종 전국선거의 정당별 득표(비율)
대통령 선거 |
||||||
16대 득표 (비율) |
한나라당 |
|
민주당 |
|
민주노동당 |
합계 |
11,443,297 (46.6) |
12,014,277 (48.9) |
|
957,148 (3.9) |
24,561,916 |
||
15대 득표 (비율) |
한나라당 |
국민회의 |
|
국민승리21 |
합계 |
|
9,935,718 (38.7) |
10,326,275 (40.3) |
|
306,026 (1.2) |
25,642,438 |
||
국회의원 선거 |
||||||
17대 득표 (비율) |
한나라당 |
민주당 |
우리당 |
자민련 |
민주노동당 |
합계 |
8,083,609 (37.9) |
1,698,368 (8.0) |
8,957,665 (42.0) |
569,083 (2.7) |
920,229 (4.3) |
21,330,770 |
|
17대 비례득표 (비율) |
한나라당 |
민주당 |
우리당 |
자민련 |
민주노동당 |
합계 |
7,613,660 (35.8) |
1,510,178 (7.1) |
8,145,824 (38.3) |
600,462 (2.8) |
2,774,061 (13.0) |
21,285,984 |
|
17대 광역비례득표(비율) |
한나라당 |
|
민주당 |
자민련 |
민주노동당 |
합계 |
8,595,174 (52.1) |
4,796,391 (29.1) |
1,072,782 (6.5) |
1,340,376 (8.1) |
16,482,559 |
||
16대 득표 (비율) |
한나라당 |
민주당 |
자민련 |
민주노동당 |
합계 |
|
7,365,359 (38.9) |
6,780,625 (35.9) |
1,859,331 (9.8) |
223,261 (1.2) |
18,904,740 |
||
광역단체장 선거 |
||||||
제3회 득표 (비율) |
한나라당 |
|
민주당 |
자민련 |
민주노동당 |
합계 |
8,820,102 (52.9) |
4,874,653 (29.2) |
870,475 (5.2) |
782,490 (4.7) |
16,683,072 |
||
제2회 득표 (비율) |
한나라당 |
국민회의 |
자민련 |
|
합계 |
|
6,784,348 (40.6) |
5,768,126 (34.5) |
2,549,537 (15.3) |
16,710,763 |
|||
제1회 득표 (비율) |
민자당 |
민주당 |
자민련 |
합계 |
||
6,876,733 (33.3) |
6,223,015 (30.1) |
3,577,696 (17.3) |
20,646,858 |
|||
평균 득표비율 (%) |
41.9 |
7.6 |
36.5 |
8.5 |
5.2 |
99.7 |
17대 대선득표 (비율) |
한나라당 |
민주당 |
통합신당 |
|
민주노동당 |
합계 |
10,983,363 (48.5) |
155,402 (0.7) |
5,965,793 (26.3) |
|
681,067 (3.0) |
23,690,385 |
* 참조1 : 군소정당이나 무소속의 득표율을 합산하지 않은 상태에서 계산하였기 때문에, 실질적인 득표율과 아주 미세한 차이가 발생할 수 있다.
* 참조2 : 대선, 총선, 그리고 지자체선거에서 나타나는 투표행태의 차별성이 존재한다는 점을 고려해야만 한다. 지자체 선거의 투표율이 다른 선거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다.
* 참조 3 : 17대 대선의 결과는 96.1% 개표현황이다.
위의 <표1>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최근 약 10년 동안의 대표적인 선거결과를 중심으로 본다면, 한나라당을 중심으로 하는 신자유주의 원조세력은 평균 41.9%의 지지율을 확보하고 있었다. 만약 자민련을 지지한 세력까지 포함한다면, 한나라당을 중심으로 하는 수구․보수세력을 지지하는 기반의 비율은 평균 50.4%이다. 17대 대선에서 한나라당의 이명박 후보가 48.5%의 지지율로 당선이 되었고, 이회창 무소속 후보가 15.1%의 지지율을 획득하였다. 두 후보의 지지율은 63.6%이다. 수구․보수세력에 대한 지지율이 기존 선거의 평균 지지율에 비해 약 13% 증가한 것이다. 그러나 수구․보수세력들은 제16대 대선에서 한나라당을 중심으로 11,443,297표를 획득하였는데, 이번 대선에서는 이명박과 이회창의 득표수를 모두 합쳐서 14,402,512표를 획득하였다. 제16대 대선에 비해 약 300만 표 이상을 더 획득하였지만, 만19세의 유권자들이 더 늘어났다는 점을 고려하면, 투표에서 나타나는 지지기반의 변화가 그리 크지 않다고 보아야 한다.
신자유주의 개혁세력의 대표적 정당에 대한 평균 지지율은 평균 36.5%였고, 역사적으로 하나의 정당에서 함께 정치활동을 하였던 민주당의 평균 지지율인 7.6%를 합산한다면, 44.1%의 지지기반을 확보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민주당이 이번 대선에서 독자적으로 출마하였기 때문에, 통합신당은 기존의 평균 지지율인 36.5%에 비해 이번 대선에서 약 10%가 부족한 26.3%의 득표율을 기록하였다. 신자유주의 개혁세력으로 분류할 수 있는 문국현 후보와 이인제 후보의 득표율을 합한다면, 32.8%인데, 이는 기존의 평균 지지율에 비해 3.7%가 부족한 결과이다. 신자유주의 개혁세력은 한나라당에 정권을 넘겨주었지만, 신자유주의 개혁세력의 지지기반이 무너진 것으로 보기 어렵다. 투표에 참여하는 유권자 중에서 신자유주의 세력에 대한 지지기반이 전체 유권자의 약 90%이상인데, 이는 한국정치의 구조적인 특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노동자․민중들은 그 동안 신자유주의의 고통을 당하면서도 신자유주의 원조세력과 신자유주의 개혁세력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지 않았다.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한 반신자유주의 대중투쟁, 민주노동당을 중심으로 하는 반신자유주의 정치활동 등이 존재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노동자․민중들은 선거정치에서 신자유주의 세력의 강력한 지지기반으로 존재하였다.
3) 민주노동당에 대한 노동자․민중의 전략적 선택
노동운동의 주체들은 1987년 이후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추구하였음에도 불구하고, 2004년에 이르러서야 민주노동당의 의회진출을 이루어냈다. 그런데 이번 대선에서 나타난 민주노동당의 결과를 놓고 볼 때, 민주노동당이 의회에 진출한지 3년 만에, 20년에 걸친 노동자․민중의 정치세력화가 수포로 돌아가는 것 아닌가라는 의문을 자아내고 있다. 민주노동당은 제16대 대선에서 3.9%의 지지율을 획득하였고, 이번 대선에서는 3.0%의 지지율밖에 획득하지 못하였다. 득표수에 있어서도 지난 대선에 비해 276,081표가 부족하다. 이번 대선에서 10% 이상의 득표율을 획득하려 했던 민주노동당의 입장에서 보면, 단 한명의 국회의원조차 보유하지 않은 문국현 후보보다 낮은 득표율을 기록하였다는 측면에서 보면, 민주노동당은 이번 대선의 최대 패배세력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의 주요 원인은 정치세력화를 추구하는 정치활동의 방식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첫째로는 민주노총은 민주노동당을 배타적으로 지지하면서 노동자․민중의 정치세력화를 추구하고 있지만, 정치활동을 전개하는 과정에서는 민주노동당을 실질적으로 지원하거나 지지하지 못하였다. 오히려 ‘신자유주의 개혁세력이나 반신자유주의 세력’을 놓고서, ‘다차원적 대응’이라는 전략적 선택을 고수하였다. 민주노총은 민주노동당과 각종의 선거정치나 정책협의 등의 연대관계를 형성한 상태에서 정치활동을 전개하였지만, 민주노총 중앙의 정치활동과 지역․현장의 정치활동이 서로 분리된 채 전개되는 경향성을 드러냈고, 정치활동과 관련된 중앙 지도부들의 의사결정이 지역․현장에서는 실질적으로 집행되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민주노총은 의회공간을 확보하기 위한 정치활동에 주력하여 선거와 관련되는 권력자원을 조금이나마 강화시켰지만, 정치적 대중투쟁에 필요한 권력자원을 형성․강화시키지 못하였다. 따라서 조합원들도 자신의 이해나 계급적 이해를 정치적 대중투쟁으로 관철시키려 하기보다 의회에 진출한 민주노동당에 의존하는 방식으로 관철시키려 하고 있다. 조합원들의 정치적 투쟁공간이 의회라는 공간으로 협소해지고, 조합원 스스로 정치적 대중투쟁을 정치활동으로 간주하지 않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둘째로는 신자유주의 개혁세력을 상대로 투쟁했던 민주노동당의 정치활동에 대한 노동자․민중들의 판단이다. 물론 민주노동당은 신자유주의 정치구조 하에서 기본적으로 반신자유주의 전략이라는 정책적 패러다임을 유지하였지만, 노동자․민중들은 신자유주의 개혁세력과의 ‘선택적 연합전략’을 추구하는 민주노동당의 정체성에 대해 혼란스러워하지 않을 수 없었다. 노동자․민중의 입장에서 볼 때, 민주노동당의 정체성이 혼란스러운 것은 곧 반신자유주의 정치에 대한 노동자․민중의 신뢰를 구축하지 못하는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① 노동자․민중정치의 통일성이 강화되지 못하였다. 노동자․민중정치가 반신자유주의 전략으로 통일되는 것이 아니라 ‘쓰레기통9) 속의 신자유주의 개혁전략’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 채, 신자유주의적 개혁을 민주주의적 개혁으로 포괄하려는 전략적 선택의 오류라고 할 수 있다. ② 노동자․민중정치의 적대전선이 희석되었다. 신자유주의 개혁세력은 민주노동당 및 민주노총과의 선택적 연합전략을 동시에 추구하면서 민주노동당 및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하는 반신자유주의 적대전선을 희석시킬 수 있었다. ③ 노동자․민중정치가 부르주아 정치의 제도적 공간으로 압축되었다. 민주노동당이 제도권으로 진출한 이후, 민주노동당은 정치적 투쟁을 비제도적이고 탈법적인 공간으로 확장시키지 못하였다. 각종의 선거투쟁도 선거법을 준수하지 않으면 안되는 조건을 만들어 냈으며, 노동자․민중들의 정치적 대중투쟁들을 조직하기보다 정치적 대중투쟁이 존재하는 공간에 ‘깃발과 연설’만을 제공하는 ‘서비스 정치활동’에 주력하였다.
셋째로는 민주노동당의 조합주의적 정치활동에서 그 원인을 규명하지 않을 수 없다. 민주노총은 민주노동당을 배타적으로 지지하면서 노동자․민중의 정치세력화를 추구하는 주체로 존재한다. 노동자․민중들은 이러한 관계를 바탕으로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 간의 관계를 ‘배타적 등가관계’로 규정해버린다. 민주노총의 부패는 곧 민주노동당의 부패로 인식되거나, 민주노총의 투쟁은 곧 민주노동당의 투쟁으로 인식된다. 이러한 ‘배타적 등가관계’에서 볼 때, 민주노동당의 성패는 곧 민주노총에 조직되어 있는 조합원들의 정치의식과 궤를 같이 하지 않을 수 없다. 조합원들의 정치의식을 판단하는 최소한의 지표를 당원가입, 정치기금 모금, 그리고 계급투표로 설정한다면, 민주노동당은 그 동안 민주노총과 함께 조합원들의 정치의식을 고양시키는데 실패하였다. 2007년 1월 현재, 민주노동당의 당원은 약 80,000명이고, 이 중에서 약 38,000명이 민주노총 조합원이다. 2004년 3월 30일에 비해 약 19,500여 명의 조합원이 당원으로 가입하였고, 전체 당원의 47.5%를 차지하고 있다. 문제는 2007년 1월 현재 당권을 가진 민주노총 당원은 22,382명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당권을 가지고 있는 조합원은 민주노총 전체 조합원 대비 3.44%에 불과하다. 그리고 민주노동당은 2002년 지방선거부터 2006년 지방선거까지 네 번의 전국선거에 참여하였다. 후보자에 대한 평균 지지율은 선거에 참여한 전체 유권자의 3.11%이고, 정당에 대한 평균 지지율은 10.84%이다. 후보자에 대한 득표율은 지속적으로 약간씩 상승하고 있지만, 정당 지지율은 2006년 지방선거에서 오히려 감소하였다. 또한 민주노총은 2002년 대선에서 연맹별로 일정액을 중앙정치기금으로 납부(조합원 1인당 1000원)하여 총연맹의 선거지원 및 당 대선지원금으로 사용하기로 하였다. 모금 목표 총액은 약 60억 2천 만 원 정도(민주노총 조합원 수에 상응)였다. 그러나 모금된 총액은 약 2억 3천 만 원 정도(23,186명의 조합원)였다.10)목표액 대비 모금액의 비율은 고작 3.82%에 불과하다. 민주노총 중앙은 정치활동과 관련된 각종의 선전 및 교육활동, 조직활동, 재정모금활동 등을 지역이나 노동현장의 간부들에게 요구지만, 지역이나 현장에서는 이러한 활동들이 거의 활성화되지 않는다. 지역이나 현장의 노조간부들은 개인적인 정치적 성향, 즉 부르주아 계급의 개혁적인 정당에 대한 지원·지지를 조합원들에게 강요하거나 조합원의 개인적인 판단에 맡긴다. 오히려 민주노총의 간부들을 개별적인 정치적 성향을 내세우면서 신자유주의 개혁세력을 지지하거나, 조합원으로 하여금 신자유주의 개혁세력을 지지하게 한다. 민주노총은 조합원들의 정치의식 수준을 다음과 같이 평가하고 있다. “우리 조합원들은 ‘노동자 정치세력화, 또는 민주노동당’에 대해 그다지 관심이 없고 또 잘 모르는 것이 솔직한 우리의 현실이다.”11)
4) 부르주아 정치를 거부하는 노동자․민중의 전략적 선택
만약 노동자․민중들이 신자유주의 개혁세력으로부터 이탈하였을지라도, 그들 모두가 신자유주의 원조세력을 선택하지 않고 정치적 방관세력으로 남아 있다면, 노동자․민중들은 신자유주의 원조세력과 신자유주의 개혁세력, 그리고 민주노동당을 중심으로 하는 반신자유주의 세력을 동시에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노동자․민중들이 전략적으로 선택한 것은 선거불참이었다. 이러한 현상은 투표를 통한 노동자․민중들의 전통적인 선택으로 설명할 수밖에 없다. 즉 노동자․민중들은 신자유주의 세력에 대한 전략적 선택이나, 민주노동당을 중심으로 한 반신자유주의 세력에 대한 전략적 선택에서 큰 변화를 보이지 않고 있다. 단지 신자유주의 원조세력에 대한 지지기반의 응집력이 강화된 반면에 신자유주의 개혁세력에 대한 지지기반은 이완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 문제는 선거에 참여하지 않은 약 37%의 노동자․민중들이다.
신자유주의 개혁세력에서 이탈한 노동자․민중들은 신자유주의 원조세력의 지지기반으로 이탈한 것이 아니라 정치적 방관세력으로 남아 있다고 보아야 한다. 이러한 방관세력들은 현존하는 신자유주의 정치세력이나 반신자유주의 정치세력 모두를 불신한다고 할 수 있다.
<표2> 1987년 이후 전국적 선거 참여율
년도 |
지방선거 |
대통령선거 |
국회의원선거 |
1987 |
|
89.2% |
|
1988 |
|
|
75.8% |
1992 |
|
81.9% |
|
1995 |
65.8% |
|
|
1996 |
|
|
63.9% |
1997 |
|
80.7% |
|
1998 |
52.7% |
|
|
2000 |
|
|
57.2% |
2002 |
48.9% |
70.8% |
|
2004 |
|
|
60.6% |
2007 |
|
62.9% |
|
자료 : 중앙선거관리위원회(2004)
1987년 이후, 노동자․민중들의 투표 참여율은 지속적으로 낮아지고 있다. 2002년 지방선거의 경우, 50% 이하의 노동자․민중들만이 투표에 참여하였다. 특히 정치적 관심도가 높을 수밖에 없는 대통령선거와 국회의원선거의 투표율이 1987년 이후에 지속적으로 낮아지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번 대선에서는 62.9%로 낮아졌다. 정치에 무관심하거나 방관하고 있는 노동자․민중들의 비율이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약 1400만 명의 유권자들이 투표에 참여하지 않았는데, 이는 이명박 후보와 이회창 후보가 모두 획득한 표와 거의 유사하다.
이처럼 정치적 방관세력이 증가하고 있는 현상을 보다 적극적으로 평가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현상이 내포하고 있는 의미는 다음과 같다. ① 부르주아 정치세력의 정치에 대한 노동자․민중들의 관심이 약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단순히 정치적 이슈의 부재에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부르주아 정치에 대한 불신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 ② 정치에 대한 관심을 갖기에는 노동자․민중의 생활조건이 너무나 여유롭지 못하거나 고통스럽다는 사실이다. 노동자․민중들이 자신의 생활조건의 문제를 정치의 문제로 쉽게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생활의 직접적인 이해를 둘러싼 고통을 극복하는 문제만으로도 벅찰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③ 부르주아 정치세력은 노동자․민중을 대상화하거나 소외시키기 위한 최적의 수단을 확보하였다는 점이다. 부르주아 정치세력은 선거전문가 정당으로서 활동만을 하다가, 선거 시기에 소수의 노동자․민중들로부터 권력을 위임받아 국가권력을 확보하면 되는 것이다. ④ 노동자․민중들은 부르주아 정치에 대해 무관심하거나 방관하면서도 또 다른 형태의 정치를 희망한다는 점이다. 노동자․민중들은 유신체제나 군부독재 하에서 정치적 관심을 거의 가지고 있지 않다가, 1987년 6월항쟁 이후 정치적 주체로 등장한 한국사회의 역사를 보더라도, 중남미 지역을 중심으로 한 좌파동맹의 토대를 제공하고 있는 현실의 역사를 보더라도, 노동자․민중들은 부르주아 정치를 방관한다고 해서 정치의 주체성조차 상실하였다고 할 수 없다.
5. 신자유주의 정치세력의 완승과 노동자․민중
1) 노동자․민중과 신자유주의적 개혁실패
노동자․민중들은 신자유주의 카르텔의 희생양으로 존재하면서 더 이상의 고통을 감수할 수 없게 되었고,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희망’이라는 명약을 ‘국가 주도의 성장’에서 찾기 시작한 것이다. 수년 전의 ‘박정희 향수’는 독재자 개인에 대한 향수라기보다는 신자유주의의 고통을 경제성장의 꿀맛으로 해소하려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현상들은 유럽동맹의 주요 국가들에서도 나타난다. 전통적으로 사민주의 정당을 지지했던 프랑스와 독일의 노동자․민중들은 신자유주의 세력을 지지하게 되었고, 스페인에서도 프랑코의 개발독재에 대한 향수가 사회적으로 범람하고 있다. 이탈리아 노동자․민중들도 신자유주의 세력을 지지하는 경향성으로 변화되고 있다. 자본주의적 ‘저성장 장기불황’ 구조에 들어선 선진 자본주의 국가의 노동자․민중들은 ‘국가 주도의 성장’을 반신자유주의 세력에게 의지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신자유주의 세력, 특히 1970년대 경제성장의 한복판에서 일익을 담당했던 한나라당과 이명박에게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단지 노동자․민중들은 이미 한국경제가 ‘저성장 장기불황’구조를 21세기의 새로운 국가주의로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할 뿐이다.
첫째, 한국의 노동자․민중들은 1997년에서 1998에 밀어닥친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국가적 차원의 경제위기로 인해 받아야만 할 고통을 경험하였다. 신자유주의 개혁세력은 이러한 고통을 완화시킨 것이 아니라 본격적으로 강화시켰다. 그런데 노동자․민중들은 자본주의 체제의 ‘저성장 장기불황’ 구조의 문제보다 자신의 생존에 직접 위협을 가하는 문제에 관심을 갖는다. 수구․보수세력들은 신자유주의적 개혁세력과의 정치적 경쟁에서 노동자․민중들의 인식수준을 자극하기 위한 전략을 선택하였다. 한편으로는 신자유주의적 개혁정책의 ‘꿀단지’를 긁어모으는 대신, 다른 한편으로는 특정 대기업이나 국가경제의 위기가 곧 노동자․민중의 생존에 직접적으로 위협을 가한다는 이데올로기 전략을 추구하였다. 소위 민주주의적 신자유주의 개혁에 대해서는 신자유주의 개혁세력을 무능한 의사(pseudo) 좌파로 몰아붙이면서, 좌파 세력에 의한 국가파멸론을 제기하였던 것이다. 노동자․민중들은 ‘국가’라는 ‘두려움에 중독’된 상태에서, 자신의 생존위기를 국가에 의존하는 현상이 전면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한 것이다. 신자유주의 개혁세력은 국가발전의 토대를 강화시키지 못한 것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자본에 대한 각종의 개혁적 규제들이 곧 국가발전의 저해요인이었다는 것이다. 반신자유주의 경쟁정치세력은 국가위기를 조장, 즉 ‘무상의료 및 무상교육, FTA반대’ 등의 정치행위를 하는 반국가적인 세력으로 인식되었다.
둘째, 한국의 노동자․민중들은 그 동안 남북통일의 필요성을 거부하지 않은 상태에서, 탈군부 정권을 중심으로 하는 통일담론을 수용해 왔다. 그래서 노동자․민중들은 특정한 국면에서 제기되어 왔던 남북관계의 변화조치로 인해 자신의 정치적 선택을 변화시키곤 하였으며, 북한을 적대시하는 남한 정치세력들의 이데올로기적 담론을 부정하는 의식의 변화를 일으키곤 하였다. 그렇지만 노동자․민중들은 신자유주의적 개혁세력을 중심으로 하는 통일정책의 집행과정에서 남북관계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경험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같은 민족이라는 의식뿐만 아니라 하나의 독립국가라는 인식을 동시에 하게 되었을 것이고, 미국이 주도하는 ‘북한봉쇄정책’에 대해 동일한 민족의 문제라기보다는 미국과 북한이라는 국가 간의 문제로 인식하게 되었을 것이다. 이러한 인식의 변화는 곧 남북관계에 대한 노동자․민중들의 무감각성을 증폭시키는 주요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이제는 더 이상 남북관계의 문제는 한국 노동자․민중들의 정치적 선택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요소로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아야 한다.
2) 신자유주의 정책블록의 정책과제
신자유주의 정치세력은 정책카르텔을 형성하고 있을지라도, 동일한 수준의 신자유주의 정책을 집행하지 않을 것이다. YS정부가 신자유주의 도입하는 정책에 집중하였다면, DJ정부는 도입된 신자유주의 정책을 하드웨어 수준에서 집행하였고, NO정부는 소프트웨어 수준에서 집행하였다. 이처럼 신자유주의 정책블록을 형성한 신자유주의 경쟁정치세력은 신자유주의 정책의 대상과 범위, 속도와 강도 등에 있어서 편차를 두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편차가 그 동안 상호 간의 경쟁과 대립으로 표상되어 왔다. 만약 한나라당과 이명박 후보가 정권을 장악했을 경우, 신자유주의 정책은 이전의 정부들과는 다른 차원에서 추진되지 않을 수 없다. 노동자․민중들이 원하고 있는 ‘국가주의적 발전전략’ 및 ‘자본주의 중심부 진입전략’에 조응할 수 있는 통치전략을 구사하는 것인데, 그것은 다차원적 고강도 구조조정정책, 노동조합운동에 대한 분할통치정책, 국가주의 이데올로기 강화정책, 그리고 자유주의적 양당정치 고착화 정책 등이다.
첫째, 다차원적 고강도 구조조정 시스템(Multiple Software System)과 노동조합운동에 대한 분할통치전략이 구축될 것이다. 한국 정치가 대통령을 중심으로 하는 ‘일괴암적 상의하달형’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이명박의 리더십은 ‘실용적 국가권위주의 리더십’으로 표상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국가주의’ 이데올로기는 근대화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주요하게 사용된 권위주의적 리더십의 토대였기 때문에, 사회구성원들은 ‘사회계약’을 통해 국가의 성원으로 생활하게 된 이상, 국가의 존재를 위해 자신의 법·제도적 권리뿐만이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천부적인 권리조차 양보하지 않으면 안되는 권위주의적 리더십의 희생양이 될 것이다. 다차원적 고강도 구조조정 시스템을 작동시키기 위한 리더십이 작동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신자유주의 정책블록은 이미 1994년 YS정부 이후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지만, ‘저성장 장기불황’ 구조를 극복하는데 있어서 한계상황에 직면해 있기 때문이다.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은 사회구조의 제반 영역을 강도높게 구조조정하는 차원에서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이전의 신자유주의 개혁세력들이 공공부문에 대한 구조조정을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을 후퇴시키거나 내부 노동시장의 유연화를 추구하는 방식이었다면, 2008년부터 공공부문의 모든 구성원, 즉 임원뿐만 아니라 노동자들까지 포함하는 구조조정이 추진될 것이다. 또한 민간부문에 대한 구조조정은 각종의 규제완화 및 내․외부 노동시장의 유연화를 극대화하는 차원의 구조조정을 단행할 것이다. ‘다차원적 고강도 구조조정 시스템’은 곧 노동조합운동과 정면충돌을 감안하면서 추진할 것인데, 한나라당과 이명박은 이 과정에서 노동조합운동에 대한 ‘분할통치’를 극대화할 것이다. 특히 노동조합운동의 ‘정치화’에 대해서는 전면적으로 억압하는 대신, 노동조합운동의 경제화에 대해서는 제한적인 유연성을 발휘할 것이다. 특히 이명박 후보가 한 토론회에서 밝혔듯이, 국가의 정치적 권위에 도전하면서 국가경제의 발전에 저해가 되는 노조운동을 쉽게 허용하지 않을 것이다. 이는 곧 정규직 중심의 조직화된 대기업 노조들을 집중적으로 관리하겠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즉 노동조합의 경제주의적 권한을 국가경제에 위협되지 않는 수준에서 허용하는 노동정책을 추구하면서, 노동조합을 노사상생을 통한 국가경제의 발전에 기여하는 운동의 사회적 주체로 유인할 것이다. 그것의 주요한 수단은 노동조합운동의 자주적인 활동조차 관리하고 통제하는 전략, 즉 1990년대 초반 전노협 와해공작의 일환으로 추진된 ‘전노협 가입 사업장 노동조합 업무조사’ 형태의 통제․관리정책도 본격화될 수 있다.
둘째, 한국의 노동자․민중들은 자유주의적 정치질서 재편의 서막을 열고 있다. 역사적으로 한국정치의 탈군부화 과정이 노동자․민중들의 피를 요구했다면, 이제는 노동자․민중들의 전략적 선택만으로도 정치질서를 재편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1987년 이후, 이러한 자유주의적 정치질서 재편이 이루어져 왔지만, 2002년 대통령선거까지는 탈군부화 과정으로 간주될 수 있다. 그런데 2007년 대선에서는 수구․보수세력이자 군사정권의 잔존세력으로 간주되어 왔던 한나라당이 새로운 정권의 주체로 부활하였다. 한국의 노동자․민중들은 자유권이 보장되는 한국정치, 즉 ‘선거게임’의 심판자로 참여하여 정치질서를 자신의 의지대로 재편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은 곧 신자유주의 경쟁정치세력을 중심으로 한 ‘양당제도’의 토대를 실질적으로 고착화하는 계기이다. 만약 2007년 대통령선거에서 한나라당이 정권을 장악한 이상, 신자유주의 개혁세력들은 정치공학적 분할운동과 통합운동을 활발하게 전개하면서, 신자유주의 정치세력에 대한 노동자․민중들의 지지기반을 확고하게 구축하려 할 것이다. 2008년 총선은 다양한 정당의 ‘선거게임’으로 진행될 것이다. 한국정치의 역사적인 특수성을 고려하면, 노동자․민중들의 전략적 선택의 가능성은 두 가지로 구분될 수 있다. 하나는 노동자․민중들이 신자유주의 원조세력으로 하여금 ‘신자유주의적 국가발전 패러다임’을 관철시켜 나갈 수 있도록 거대 여당의 의회를 만들어 줄 가능성이다. 다른 하나는 신자유주의 야당세력들로 하여금 정권을 견제할 수 있도록 ‘여소야대’의 의회를 만들어 줄 가능성이다. 문제는 어떠한 형태의 의회를 만든다 하더라도, 모두 신자유주의 세력들이 주도하는 실질적 양당제도가 구축된다는 점이다. 신자유주의 세력들은 현상적으로는 다당제라 할지라도 실질적인 양당제도를 통해 자유로운 ‘권력이동 체계’를 구축하거나, 혹은 의회라는 ‘경쟁장치’를 이용하여 연립정권을 통한 권력분점의 가능성을 모색할 것이다. 전자의 가능성이 실현된다면, 반한나라당 연합전선의 필요성이 제기될 것이고, 후자의 가능성이 실현된다면, 권력분점을 위한 상호 경쟁관계가 강화될 것이다. 이러한 실질적 양당체제의 가장 큰 문제점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신자유주의 정치세력을 중심으로 한 사회질서의 재편이 노동자․민중의 의지와 무관하게 진행된다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양당제도를 부정하는 정치세력들이 노동자․민중들의 정치적 지원과 지지를 획득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양당제도를 고착화한 정치세력들은 국가권력의 힘을 ‘경쟁적으로 분점’하면서 새로운 정치세력의 등장을 가로막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양당제도는 노동자․민중들의 잠재화된 정치행태, 즉 광범위한 정치적 대중투쟁을 유발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셋째, 한국의 노동자․민중들이 한나라당과 이명박 후보를 전략적으로 선택한 이상, 한나라당과 이명박 후보는 국가발전에 의존하면서 노동자․민중들의 생존위기의 강도를 약화시키고자 노력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의 주요한 수단은 국가발전 이데올로기, 즉 ‘국가의 선진화 전략’ 혹은 ‘국가의 중심부 진입’ 이데올로기가 기승을 부릴 것이다. 노동자․민중들은 이러한 이데올로기를 ‘의구심과 호기심의 눈초리’로 수용하면서, 한나라당과 이명박의 정책을 어느 정도 수용하는 태도를 보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는 정치적 노동조합운동을 백안시하거나 도외시하는 주요 동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 국가경제의 발전을 저해할 수 있는 모든 노동조합운동을 고립화하는 사회적 역량으로 존재할 수 있다. 최근 비정규 노동자들이 목숨을 걸고 투쟁하고 있지만, 그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연대가 미미한 수준에 머무는 것도 유사한 현상으로 볼 수 있다. 물론 이러한 이데올로기는 1987년 체제가 수립된 이후 지속적으로 동원해왔던 통치전략이었지만, 2008년부터는 사회구성원들의 ‘자발적인 참여와 동원’의 구조 속에서 그 힘을 발휘할 수 있다.
이러한 국가주의 전략은 남북관계에서도 힘을 발휘할 것이다. 한국의 노동자․민중들은 2008년부터 남북관계에 대한 ‘통일 패러다임’의 변화, 즉 ‘국가지원 패러다임’을 ‘국가발전 패러다임’으로 변화시킬 것을 요구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한나라당은 그 동안 신자유주의 개혁세력들이 구축해 놓은 ‘남북평화경협관계’를 유지․강화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관계가 곧 ‘국가발전 패러다임’과 조응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고, 또한 장기불황구조를 타개하기 위한 하나의 방책, 특히 중국을 상대로 하는 미국의 ‘대북한 저강도 유연화 전략’에 부응하는 수준에서 남북평화경협체제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북한을 상대로 한 한미관계의 공조체계 및 한일관계의 공조체계의 복원도 이러한 구조적 틀 내에서 이루어질 것이다. 다만 그 형식과 내용이 변화된다는 것이다. 남북관계에서 국가 중심의 일방적인 지원형식이 아니라 시장 중심의 교환형식, 즉 ‘수평적 주고받기 형식’이 강화될 것이다. 북한도 역시 미국의 변화된 전략에 부응하기 위해서라도 남한과의 관계를 시장 중심의 수평적 교환관계를 적극적으로 고려하지 않을 수 없고, 북한 노동자․민중들의 생활조건을 개선시키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은 신자유주의 개혁세력의 대북관계를 변화시키겠다는 이명박 후보의 표상과 달리, 오히려 신자유주의 개혁세력의 대북관계를 다차원적으로 활용할 것이다. 예를 들면, 한나라당은 DMZ지역의 환경을 국제적인 수준에서 보호하기 위한 공약을 제시하고 있는데, 이 공약은 곧 경제적인 문제만이 아니라 환경문제까지도 남북 간의 수평적인 관계에서 해결해 나가겠다는 의지로 볼 수 있다.
만약 한나라당의 남북관계가 이런 차원에서 형성․강화된다면, 남북관계는 실용주의적 상호발전전략의 차원으로 고착화될 수 있다. 북한도 역시 실용주의적 발전전략을 거부하기에는 한계상황에 직면해 있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남북관계가 이러한 차원으로 유지된다면, 소위 친북한적인 노동자․민중의 진보정치세력들은 시민운동세력과 함께 반한나라당 전선을 형성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실용주의적 남북관계를 유지하는 ‘한나라당 활용론’이나 ‘민족 동반발전론’이 지속적으로 제기될 것이기 때문이다.12)
6. 노동자․민중정치의 과제
한나라당은 권력이동의 종지부를 찍기 위해 2008년 총선에서 거대여당으로 등극하기 위한 전략들을 모색할 것이다. 가장 확실하게 추진할 수 있는 전략은 노동자․민중들의 ‘두려움의 중독’과 ‘허상의 국가희망’을 자극하는 것이다. 즉 ‘21세기의 새로운 국가주의’를 형성하는 전략은 노동자․민중들에게 ‘당근과 채찍’을 주는 것인데, 당근으로는 초국적 자본의 유입을 통한 한국경제의 ‘신버블화’이고, 채찍으로는 소위 신자유주의적 ‘구조개편 완료정책’에 저항하는 노동자․민중들을 탄압하는 것이다. 노동시장의 전면적 유연화 정책, 자본에 대한 규제완화 정책, 공공부문에 대한 신자유주의적 재편정책 등이 다차원적으로 추진될 것이다. 이러한 당근과 채찍은 이중적인 효과를 불러일으킬 것이다. 한편으로는 노동자․민중의 계층적 분할이 가속화될 수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노동자․민중의 전면적 저항이 강화될 것이다. 두 가지의 ‘효과요인’들이 곧 2008년 지배세력과 노동자․민중세력 간의 ‘힘 관계’를 결정하게 된다. 계층적 분할의 효과가 클 경우에는 노동자․민중들의 저항이 사회적으로 고립된 상태에서 전개될 수밖에 없고, 전면적 저항의 효과가 클 경우에는 부르주아 정치의 무관심층으로 이탈한 노동자․민중들과 함께 새로운 노동자․민중정치의 전형들이 만들어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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