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이제는계급정치이다(jh)

 

이제는 계급, 그리고 계급정치이다!

- 진보정당운동의 위기와 변혁적 정당운동의 전망


이종회(진보전략회의(준))



한국에서 자유주의 정치가 한껏 풍미하던 시대는 지나가는 것으로 보인다. 지역의 영향은 아직 여전하다손 치더라도 민주개혁의 문제를 기준으로 나뉘었던 투표행태는 2007년 대선을 기점으로 무너져 내린 것으로 보인다. 지난 10년간의 자유주의 정치가 반공과 분단이 만들어 낸 억압적, 병영적 체제에 대한 역사적, 사회적 부담을 덜어낸 데 기인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이로서 자유주의 정치의 역사적 소임은 김대중, 노무현과 함께 뒷전으로 물러나고 있다.


자유주의 정치의 가장 주요한 역사적 소임은, 국가가 주도하고 재벌을 중심으로 하는 자본발전전략을 해체하고 지구적으로 전면화하고 있는 ‘보이지 않는 손’을 불러들이고 전일화하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청년실업, 비정규직으로부터 실업이라는 불안정노동을 일상화하고 빈곤과 양극화를 낳았다. 결과적으로 자유주의 정치는 형식적, 절차적 민주주의의 문제를 일정하게 해소했지만 무엇보다 노동자대중의 생존권 문제가 중심을 이루는 사회적 민주주의의 문제를 부각시키면서 퇴장하고 있다. ‘민주화’의 문제는 부차적 문제로 되고 이제는 ‘계급’과 계급문제와 뒤얽혀 있는 제반 사회적 억압-차별의 문제가 중심적인 문제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진보정당운동 10년의 평가, 민주노동당의 파산


87년 민중항쟁, 노동자대투쟁의 도도한 흐름을 정치적으로 모아냈던 백기완 선본 이후, 새로이 시작한 지금까지의 한국사회 노동자 정치세력화, 진보정당운동은 96,7년 노동법 안기부법 총파업투쟁의 성과와 한계를 안고 출발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87년 노동자대투쟁의 성과로서 전노협, 민주노총을 세워냄으로서 가능했던 노동자의 전국적인 투쟁과 강고한 파업투쟁의 성과가 있었기에 새로운 진보정당운동이 출현할 수 있었다. 동시에 투쟁의 물꼬를 ‘국민과 함께 하는 노동운동’으로 전화시키면서 ‘국회에서 우리를 대변하는 세력’을 만들어내기 위해 시작함으로써 진보정당운동의 한계 역시 출발과 더불어 고스란히 나타났다.


자본은 97년 외환위기를 호기로 하여 축적체제를 완전히 바꾸는데 성공했다. 그간 한 시대를 구가하던 재벌은 초국적 자본으로 몸을 바꾸는 데 성공했다. 세계시장과 연동되면서 수출과 내수는 분리되었고, 비정규직으로부터 실업에 이르기까지 불안정노동이 만연한 사회가 되었다. 급기야 세계금융체제에 편입하기 위한 절차를 밟아나가고 있으며, 이로 인해 빈곤과 양극화는 더 극단화될 것으로 보인다.


자본은 이미 새로운 축적체제로의 전환을 성공적으로 이뤄냈을 뿐 만 아니라 노동자에 대한 분할 통제에도 성공을 거두고 있다. 한국노총이야 두말할 나위도 없지만, 소속 넥타이부대 노동자는 말할 것도 없고 이미 소득이 상위 20%안에 속하는 대공장, 남성, 정규직 노동자들이 중심을 이루고 있는 민주노총조차도 자본의 갈 길에 걸림돌이 되고 있지 못하다. 이미 초토화되어버린 유럽의 계급타협체제를 모방한, 자본운동이 양산했지만 결국은 자본에게 비수를 갖다 댈 비정규직과 실업을 진정으로 포괄하지 못하는 시대착오적인 산별체제 구축에 집중하는 한 그러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2003년 말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노동자들의 자살정국을 거치고 최근에는 노동자들의 분신 자결이 발생하는 상황에서도 민주노총이 현장대장정 이후 산별대장정에 돌입하고 있는 것은 민주노총이 현 시기에 요구되는 민주노조운동의 방향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하겠다.


배타적 지지로 민주노동당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어온 민주노총이 민주노동당에게 부담이 되고 있음이 민주노동당 내에서도 내놓고 거론되고 있다. 선거 전에는 비례대표 2번을 비정규직에 할당하는 것을 부랴부랴 결정하더니 이제는 노동부문 중앙위원을 민주노총에만 할당할 것이 아니라 비정규직으로 넓혀야 한다는 얘기를 던지고 있다. 이렇게 볼 때 민주노동당이 자기 한계가 무엇인지를 알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정규직을 포괄하지 못하는 민주노총의 산별과 이에 조응한 민주노동당의 전략을 바꾸고 폐기하지 않는 이상 발본적인 해결책은 못된다. 비정규직 철폐를 아무리 소리 높여 외쳐도 정규직의 소득을 비정규직과 나누어가짐으로써 해결되지 않음을 누구나 알고 있기에 그러하다.


진보정당운동은 애초에 대중적으로 많은 공감을 일으켰다. 지난 총선에서 예상치도 않게 1석의 지역구와 8석의 비례대표를 획득하여 제 3당이 되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오히려 운동을 뒷걸음치게 했다. 국회의원 사무실은 고충처리실이 되었고 국회가 열릴라치면 그나마 양치기 파업조차 없이 이러저러한 요구를 내 건 천막들이 끝없이 이어졌다. 이제는 투쟁 없이 청원에 매달려 국회의원 개인적인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는 어느 의원의 하소연 그대로 의회주의, 대리주의는 체계적으로 그리고 대중적으로 자리 잡았다. 의회주의가 체제화된 속에서의 배타적 지지야말로 노동조합운동, 농민운동의 지도자가 국회로 가는 안정적 길목의 역할을 할 것이며 동시에 의회주의를 더욱 강화시키는 역할을 할 것이다.


아무리 배타적 지지라는 굴레를 쳐도 조합원에게는 위계로 작동할지언정 노동조합 간부들에게는 더 이상 굴레가 되지 않음은 지난 대선에서 극명하게 보였다. 민주노조진영 내부에서손학규, 이해찬, 정동영 지지선언은 둘째라 치더라도 이명박 지지선언까지 나왔다. 노동자 밀집지구에서 당선되어 그 상징성만으로도 민주노동당의 중심이 되어야 할 자가 손학규를 지지하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일어나기도 하지만 그 개인적 한계로 치부하기에는 상처가 너무나 크다. 노동자대투쟁의 상징이고 전노협의 사무총장을 했던 자는 뉴라이트 노동운동으로 이명박의 핵심부대가 되었고, 배타적 지지를 소리 높여 외치며 민주노총의 사무총장을 하던 이는 통합신당의 의원 뱃지를 달고 있다. 한국노총만이 아니라 민주노총를 포함하여 노동조합 간부직이 재수좋으면 뱃지를 달 수 있는 자리가 되고 있음을 반증한다. 관료주의는 여기에 아주 깊게 뿌리내리고 있다. 그리고 지난 총선에 “길 지나가다 지갑을 주웠다”는 어느 의원의 표현 그대로 지갑 주우려고 줄을 서는 자가 늘어날수록 관료주의와 패권주의는 극에 달할 것이다. 민주노동당에서의 작금의 패권주의 논쟁도 이와 전혀 무관하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97년 외환위기를 맞이할 당시의 대선에서, ‘일어나라 코리아’라는 애국주의, 민족주의적 구호로 내홍을 맞이한 것을 시작으로 ‘코리아연방공화국’이라는 또 다른 민족주의, 아니 그들의 표현대로 종북주의적 구호로 내홍을 거친 것이야말로 가장 상징적이다. 궁극적으로 경제위기를 이데올로기로 하여 IMF 구조조정 프로그램을 받아들이고 이를 통하여 위기를 돌파하고자 하는 자본을 도와주는, 당시 할머니의 금비녀 애들의 돌 반지를 뽑아낸 실업극복 국민운동과 다르지 않은 국민동원 이데올로기를 스스로의 구호로 내걸려다 내홍에 빠졌던 것이다. 북한은 이윤율 저하를 넘어서기 위한, 과잉자본의 해소를 위한 공간으로 남한 자본에 하위 배치되고 있다. 이는 분단의 벽을 허문 자유주의 정치의 역할이었다. ‘코리아연방공화국’으로 내홍을 거친 민주노동당이 그야말로 자유주의 정치와 운명을 같이 한 배경이 아닌가.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가속화되는 세계화의 경쟁체제에서 민족의 이름으로 애국의 이름으로 국민을 동원하는 기제가 되지나 않을까 하는 것이다.


딱따구리가 제 죽을 줄 모르고 자기 나무를 쪼아댄다고 했던가. 정치적 자유주의자들은 그들이 놓은 덧에 스스로 걸려 넘어졌다. 그들이 그토록 염원하던 자본의 무한 자유주의가 창궐하면서 더 이상 그들의 자리가 없어졌다. 시대적 소명을 다한 것이다. 민주노동당 역시 정치적 자유주의와 함께 수명을 다했다. 자본의 무한 자유주의로부터 비롯된 비정규직으로부터 실업에 이르기까지 고통 받는 자들에게 정치세력화의 바통을 넘겨야 할 때다. 이제는 노동자계급정당이다. 이것이 시대적 요청이다.


다가오는 시련의 시절 그리고 노동자계급운동의 과제


소위 이명박시대. 항상 찬바람을 맞아온 비정규직은 두말할 것도 없고 금융부문, 공공부문 노동자들 그리고 공무원에게도 시련의 시절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명박정권이 의도하는 바 노무현정권의 작품에 기초한다. 한미FTA로 드라이브를 건 노무현정권이 임기 말에 내놓은 자본시장통합법은 한국사회를 금융화체제로 변화시키는 회심작이었다. 이에 이명박정권은 그 후속으로 자본의 상호출자를 허용하여 자본을 강화시키는 한편 금산분리법을 완화하여 산업자본의 금융자본 지배를 허용하려고 한다. 그리고 산업은행, 우리은행의 민영화, 심지어는 우체국의 민영화까지 들먹이면서 투자은행을 주도적으로 창설하고 거대금융자본을 구축하기 위한 은행, 보험, 증권회사 등의 자본통합을 부채질하면서 금융적 재편을 서두를 것으로 판단된다. 소위 연금개혁으로 금융화에 자금을 조달하고 공공부문을 민영화함으로금융화를 위한 시장을 확장하려고 하고 있다. 한편 기업에 대한 규제를 축소 또는 폐지함으로서 정부 기능을 축소할 것을 의도하고 있다. 아울러 그나마 있었던 부동산투기에 대한 규제를 축소하고, 고등학교 입시조차도 경쟁으로 몰아넣음으로서 사교육을 확대하고, MBC를 민영화하고 신문과 방송 겸업을 허용함으로서 언론의 공공성으로서 사회견제기능을 말살하려고 하고 있다. 그리고 비정규법안에 대한 또 한 차례의 개악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 결과 재벌지배는 강화되고 금융 및 불로소득자가 늘어나는 반면 빈곤과 양극화는 심화될 것은 자명하다. 한편 이중의 고통에 시달리는 여성은 외면당하고, 대운하를 둘러싼 논쟁이 환경의 이름으로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른 사회 불안정성에 대처하기 위하여 집회, 시위 및 표현의 자유를 극도로 제한하고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민주주의를 억압할 것이다.


작년 비정규법안 통과 이후 이랜드 뉴코아노동자들의 투쟁은 해고반대, 정규직쟁취라는 그들만의 투쟁 그 이상이었다. 감히 투쟁의 초점을 단순히 이랜드 자본에 한정하고자 해도 다른 자본들이 해고를 하는데 눈치를 보게 만들었고, 비정규법안이 지닌 본질적인 문제에 대한 제기로 이어졌다. 여기에 더하여 올해 7월 1일이면 100인 이하 사업장에도 비정규법안이 적용되게 된다. 7월 이전에 수많은 비정규노동자들이 해고될 것이라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이러한 환경으로 정권과 자본은 내년 또 다른 7월이 돌아오기 이전 계약기간을 연장하든 어찌되었든 비정규법안을 손보고자 할 것이다. 이제는 암묵적 묵인도, 양치기 파업도 아닌 실질적인 대응과 투쟁이 이루어져야 할 때다. 아울러 이러한 투쟁의 성과가 2010년으로 미루어진 기업단위 수준에서의 복수노조 허용을 요구하는 투쟁으로 이어져야 한다. 비정규, 실업과 같은 불안정 노동의 투쟁과 조직화가 최소수준이라도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는 법적 장치가 마련되어야 함을 의미하고, 어디에도 막혀있는 그들의 조직을 건설할 단결권을 보장받아야 함을 의미한다. 한국노총이 차단막을 치고 민주노총은 어쩔 수없이 인정해 온 지난 두 차례의 사례를 이제는 넘어야 한다. 이제는 민주노총이 앞장서서 복수노조를 허용하는 운동으로 나아가야 하고 그 한가운데서 민주노총은 거듭나야 한다.


지난 대선은 노동조합운동이 이념적 운동으로 재편될 가능성을 가장 뚜렷이 보였다. 선거 이전부터 한나라당의 정책과 조직동원체계를 형성해 왔던 뉴라이트 노동운동이 그러했고, 한국노총의 이명박 지지와 정책연대 선언이 그러했다. 이제 민주노총이 단순히 혁신을 넘어 계급성을 회복하고 재정립되는 것이야말로 향후 계급운동의 주요한 관건이 될 것이다. 지난 민주노총 위원장 선거에서 이미 업종산별이냐 지역산별이냐가 쟁점이 되었다. 이에 따라 사회연대전략 및 민주노동당과 한국진보연대와의 관계 정립 문제가 동시에 핵심적 쟁점이었다. 민주노조운동의 진로에 관련되는 주요 이슈들이 민주노총 내부에서 문제된 것이다. 비정규직과 실업을 포괄하는 산별과 계급정당의 이름으로 그리고 사회화의 깃발아래, 대중적인 공론의 장을 형성하고 계급적으로 재정립하는 것이야말로 계급정치의 중요한 토양이 될 것이다.


변혁적 정치운동, 노동자계급정당 건설로 나아가자!


민주노동당은 파산선고를 받았다. 미봉책을 동원하여 다시 숨 쉰다 해도, 심지어는 총선에서는 대선보다 더 나은 표수를 받는다 해도 노동자대중의 계급적 이해를 대변하지 못한다. 대선의 평가를 아무리 종북주의, 패권주의로 눈을 돌린다 해도 그들은 현실 자본주의를 넘어서려는 계급적 전망을 가지고 있지 못하기에 그러하다. 지난 10년간의 실패한 진보정당운동을 넘어서 노동자 계급정당 운동을 새로이 시작할 때이다. 이는 민주노동당의 내홍을 틈타서 제기하는 것도 아니고 종북주의와 패권주의와의 투쟁으로 민주노동당을 탈당하는 그들을 쳐다보고 제기하는 것도 아니다. 신자유주의와 자본의 모순과 한계를 넘어설 정당을 건설하는 것은 더 이상 늦춰져서는 안 되기에 그러하다. 


노동자계급정당은 삶의 기로에 놓인 노동자들과 함께 투쟁을 통하여 건설해 나가야 할 것이다. 공적기금을 투여하여 살려놓은 우리은행은 물론 산업은행, 기업은행 등을 민영화하겠다는, 그리고 금산분리정책을 허물겠다는 이명박의 정책에 대해, 기존의 국유은행은 유지하고 민영화된 은행조차 국유화해서 산업을 통제하고 시장중심체제를 바꾸지 않고서야 금융노동자는 물론 전체 노동자계급의 미래는 없다.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 등으로 어느 누구나 문제가 있음을 알고 있는 투기적 금융자본과 다국적 기업의 권리를 제한하자는 제안은 투쟁에서 자연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국민연금을 비롯한 제반연금이 금융부문으로 흘러들어가는 것을 반대하고 연금개혁을 가로막고 서야한다. 무상의료, 무상교육을 제기하는 것과 다를 바 없이, 물, 전기, 통신, 도로, 철도와 같은 국가의 필수서비스를 국가가 유지하는 것은 단지 공무원의 밥그릇을 지키기 위한 투쟁이 아닌 노동자 민중이 숨 쉴 수 있는 토양이다. 그리고 경쟁이 아닌 호혜와 연대에 기반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비정규직을 포함한 불안정노동을 철폐하는 것만이 현실의 모순을 넘어서는 길이라는 점은 누구나 알고 있다. 사회화, 사회적 통제를 무기로 억압의 현실을, 아니 자본주의를 넘어서기 위해 계급정당이 요구받고 있는 시점이다.  나아가 이 새로운 계급정당은 동시에 환경 문제는 물론 계급문제로 모두 환원되지 않은 제반 사회적 억압과 차별을 없애기 위해 앞장서서 투쟁하는 정당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제 노동자계급정당은 활동가, 지식인의 테두리를 넘어 대중적으로 제기되고 있으며, 따라서 노동자계급 대중 그들이 중심이 되어 나서야 한다. 따라서 지역과 부문을 포괄하는 노동자들에게 노동자계급정당 건설에 나설 것을 호명하는 것으로 시작하자. 아울러 노동자계급과 연대하는 사회운동과 지식인 운동의 진보적 부분들에게 새로운 변혁적 계급정당의 주체로 나설 것을 호소하자. 사회주의적 변혁을 염원하는 모든 이들이 함께 할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