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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조

 

화요일 밤

열광의 도가니의 뜨거운 현장을 보러 아이들과 광화문에 갔다.

아이들이 역사(?)의 현장에서 직접 부대끼고 느끼는 게 중요하다 생각하여.


아이들은 대~한민국을 외치며 즐거워하고 감동하고 열광했다.

그러나 감동하고 열광할 준비가 부족한 날 발견한다.

여전히 장조를 벗어난 단조의 영역에 머물고 있다.


“그게 바로 너야?”...글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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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가치

"생활도 중요하고, 가치도 중요하다.

생활하고 아이 기르고 가정을 꾸리는  것과 의미와 가치를 삶의 장에서 실현하는 것

모두 중요했다.  둘 다 포기할 수 없었다"

 

어제 점심 먹으러 가는 길에 갑자기 폭우가 쏟아져서

10분이면 걸어갈 거리를 택시를 타고 가서 만난 후배님의 말씀이다.

 

가치 속에 삶을 몽땅 밀어넣으려는 시도는

어쩌면

구체적인 삶 속에 존재가 있지 않을 때

또는 내공이 무지 높을 때 가능하지 않을까?

 

필부인 난,

둘의 조화로움을 추구하는 이들이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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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으름&모심기


 

한북정맥 이어가기에 내리 3번이나 빠졌다.

삼진아웃이다. ^^

비도 온다하고...일요일 아침 6시부터 집을 나서야하는 부담도 있고 

늦잠을 청하는 아이를 기다리다가 나도 게으름을 부리며 또 결석을 했다.

 

대신

주말농장의 전통 모심기 행사에 갔다.

난, 모심기에도 참여하지 않고...

고추, 토마토, 오이를 위한 지주를 박고...밭을 정리하는 일을 했지만.

 

전통 모심기라...^^

이앙기가 도입되면서...

이제 저런 풍경을 보기 힘들게 되었으니...희귀한 풍경이고 체험장임에 틀림없다.

난 아직도 시골풍경을 보면 팔이 저릿거리고...허리가 빠지는 고통이 먼저 떠오른다.

 

물논을 쟁기와 써레로 갈고 평평하게 하거나 논두렁을 붙이는 일은 그런대로 할만하다.

못군들이 20명이 넘는 못줄을 팽팽하게 잡는 일은 만만치 않은 장정의 일이었다.

모판에서 모를 바지게에 지고 중심을 잡고 물논에 골고루 배비하는 일도 힘든 일이었다.

그 중 제일 힘든 일은 종일 허리를 구부리고 인내심을 갖고 모를 심는 일이었다.

 

먼먼 추억이 되고 말았지만.

농부와 소가 힘을 합쳐 쟁기질과 써레질로 죽처럼 곱게...곱게

부드러운 알갱이로 변한 발바닥을 간지럽히는 흙의 감촉과 내음이...

그 논두렁에서 가난하지만 풍성했던 왁자지껄한 목소리들의 어울림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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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



 

유기농을 고집하는 농장 주인의 철학처럼...화학비료나 농약 없이도

상추, 쑥갓, 부추...는 무럭무럭 자라서 벌써 수확(?)을 두 차례나 했고

토마토와 참외는 5그루가 병들어 말라 죽었다.

 

...아이들도 이제 자신들의 세계를 만들며 키워나가고 있다.

비판적인 눈과 넓고 따뜻한 가슴 그리고 역량을 갖추기를 바라는 데.

환경과 조건을 탓하기 전에 풍부한 자양분과 생활 속에서 가능한 사랑을 주고 있는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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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

 

오월 어느 날

트럭 2대 가득 각목으로 무장(?)한 시위대를 만났다.

그들의 열정적인 연설을...시골고딩인 나는 그 의미를 알아채지 못했다.


유리창이 깨진 채 커튼을 휘날리며 질주하던 버스와

초록으로 일렁이는 보리밭 위를 날던 시커먼 헬리콥터가

항복을 명령하는 삐라를 까마귀떼처럼 흩뿌릴 때에도 깔깔거리며 내달리곤 했다.


며칠이 지났을까...긴장한 표정으로 소곤거리던 동네사람들의 말도 들리지 않았다.

그러던 84년 무더운 여름 날 굽이굽이  황토길 걸어 망월동에...그리고

무등산에 오르던 날 광주는 내게로 왔다.


그리곤 더 이상

아무도 아무것도 돌려 세우지 못하게 했던 광주는

그런 거스를 수 없는 어떤 힘!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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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






 

감똥(감꽃)이 떨어진 자리에 감이 맺히고

살구꽃 피었던 자리에도 토실한 살구가 달리고

키조개 '하트'모양 속살에 윤기 돌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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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아침을

 

김세진-이재호 열사의 20주기!

1986년 그 아침을

단지,

자신을 빛나게 포장하는 화장품으로, 값싼 훈장으로 팔아먹지 말았으면.

 

 

 

<김세진-이재호 열사 관련 오마이 기사>

http://ohmynews.com/articleview/article_view.asp?at_code=327186&ar_seq=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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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통(?)

고이즈미-아베-아소 3인방의 혈통사를 일목요연하게 알려 준 

중앙일보에 실린 김영희 대기자의 칼럼을 읽으며...

 

전범들의 유전자가 생물학적으로 전해지는 것은 부인할 수 없겠지만,

그 유전자를 넘어 그들의 업보를 자신들의 신념으로 각인시키고 더욱 발전시키고 있으니

 

혈통-연좌 등으로부터 자유롭게 단지 그 사람 자체만을 보고 싶어하나 

역사적이고 문화적인 배경에 눈을 돌리지 않을 수 없게 하니 슬픈 일이다.



 

[김영희칼럼] 일본 외교 3인방의 혈통이 말한다.


한·일 관계의 앞날이 시계(視界) 제로에 가깝다. 독도에 관한 노무현 대통령의 담화에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는 그래 봐야 손해 보는 쪽은 한국이라는 조롱 섞인 반응을 보였다. 일본 외무성 주변에서는 노 대통령 임기 중에는 한.일 관계가 집행유예 상태에 들어갈 수밖에 없다는 탄식이 들린다고 한다. 노 대통령이 일본이 잘못된 역사를 미화하고 그에 근거한 권리를 주장하는 한 한.일 간의 우호 관계는 결코 바로 설 수 없다고 배수진을 쳐 버렸으니 그럴 수밖에 없다.


노 대통령이 "내 임기 중에는 일본과의 과거사 문제를 제기하지 않겠다"고 말한 2004년 7월의 한.일 관계는 흔적도 없이 증발된 느낌이다. 일의대수(一衣帶水)의 한.일 관계가 어쩌다가 이런 파국을 맞았는가. 지금 일본의 대외정책, 그중에서도 한반도정책을 주도하는 고이즈미 총리-아베 신조(安倍晋三) 관방장관-아소 다로(生太郞) 외상 3인방의 혈통을 보면 "그럴 수도 있겠구나" 하는 정도의 답은 얻을 수 있다고 생각된다.


고이즈미의 할아버지 고이즈미 마타지로(小泉又次郞)는 1920년대에서 45년 종전(終戰)까지 중의원 부의장과 체신대신(大臣)을 지냈다. 그는 태평양전쟁의 원흉인 도조 히데키(東條英機)가 의회를 무력화하기 위해 만든 익찬(翼贊)정치연맹 소속으로 도조의 전쟁 수행을 적극 지원했다. 익찬정치는 일본형 전체주의와 포퓰리즘 정치의 핵심이었다. 고이즈미 마타지로는 쇼와(昭和) 파시즘의 중심에서 활동한 정객이다. 고이즈미 총리의 아버지 고이즈미 준야(小泉純也) 역시 익찬회 소속 중의원 의원이었다. 종전과 함께 마타지로와 준야 부자는 공직에서 추방됐지만 준야는 곧 정계에 복귀해 방위청 장관까지 지냈다.


아베의 외할아버지는 유명한 기시 노부스케(岸信介)다. 기시는 30년대 일본의 괴뢰국가였던 만주국을 지배하던 "2키 3스케"의 한 사람이다. 2키는 관동군 사령관 도조 히데키와 만주국 총무장관 호시노 나오키(星野直樹)이고, 3스케는 기시 노부스케 만주국 총무처 차장과 아이카와 요시스케(鮎川義介) 만주 중공업 사장과 마쓰오카 요스케(松岡洋右) 남만(南滿)철도 사장을 말한다. 조슈(長州) 출신 동향인 3스케는 "만주 3각 동맹"으로도 불렸다. 태평양전쟁 때 도조내각의 상공대신을 지낸 기시는 A급 전범으로 복역했지만 출옥한 뒤에는 정계에 복귀해 총리가 됐다.


아소는 제2차 세계대전 중 조선인 근로자 학대로 악명 높은 규슈(九州) 이즈카(飯塚)의 아소탄광 가문 출신이다. 일본 후생성 자료에 따르면 아소탄광에서 혹사당한 노무자는 1600명이 넘고, 그중 절반이 작업 중의 사고와 감독관의 구타, 굶주림으로 죽거나 도주했다. 지금은 그의 동생이 아소탄광 사장이다. 아소 외상은 전후 일본의 초대 총리 요시다 시게루(吉田茂)의 외손자로 더 유명하다. 요시다는 일본 군부가 만주를 장악한 30년대 펑톈(奉天.지금의 선양(瀋陽)임) 총영사를 지낸 사람이다.


우연히도 고이즈미-아베-아소 3인방은 30년대 군국주의 일본의 대륙 침략에서 핵심적 역할을 한 정치인들의 후예들로 국가주의.민족주의의 유전자를 타고났다. 신사 참배와 역사 문제에 대한 그들의 발언을 보면 그들은 선대의 '업적'에 긍지를 갖고 일본이 아시아를 호령하던 시절에 향수를 느끼는 것 같다. 2003년 아버지의 고향 가고시마의 지란(知覽)에 있는 가미카제 특공대 기념관에서 눈물을 뿌린 고이즈미에게 신사 참배를 중단하라는 요구가 통하겠는가. 그들에게 대륙 침략에 적극 가담한 선대의 비인도적.반인류적 행위를 인정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애당초 비현실적이다. 그들은 정신적.도덕적으로 선대(先代)를 뛰어넘는 데 필요한 세계관과 지성, 국제 감각을 갖춘 인물들이 아니다. 고이즈미가 총리 자리를 떠나도 아베가 후임이 될 가능성이 크다. 노무현 독트린의 실천전략에는 이 3인방 같은 일본 정치인들에 대한 역사심리학적(Psycho-historical) 연구가 따라야 한다.


김영희 국제문제 대기자

2006.04.27 21:13 입력 / 2006.04.27 21:13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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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우연히 식탁에 앉으면 잘 보이는 위치에 '샴'의 사진이 놓였다.

아름다운가게에서 파는 커피 상자에서 나온 것이다.

사진을 어느 위치에서 보더라도 우릴 빤히 쳐다보는 느낌이 든다.

 

또 하나의 식구가 식탁을 들여다 보고 있으니...

 

야채류를 즐기지 않는  아이들은 

'샴'의 사진을 아빠 쪽으로 돌려 두면서

매번 곤혹스러워하는 진풍경이 생기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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쓴나물

 

야생초 편지의 저자처럼

야생초들을 즐길 미각과 여유 그리고 지식이 없지만

추억의 옛맛만큼은 그리워서...

자유로변 논두렁에서 장난삼아 캔 쓴바귀를 

데친 후 된장과 참기름을 넣고 나물로 무쳐 놓으니

그 쌉싸름한 맛이 가히 일품이더군.

 

쓴나물의

깊고 은은한 쓴맛에 질색을 하는

아그들도

언젠가는

봄이 무르익는 길목에서

나처럼 엄니아부지와 얽힌 봄나물의 쓴 맛을 추억할까?

 

 

<***쓴나물 자세히 알기>http://healer.pe.kr/flora/ixeris_dentata.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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