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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06/27
    김종태의 꿈(2)
    금금
  2. 2004/12/19
    <한사람>
    금금

김종태의 꿈

* 예전 하니리포터를 잠깐 하던 시절 쓴 글을 인터넷에서 발견했다.

 

 

1980년 6월9일의 어린왕자

"과거의 고통을 잊는 것은 고통을 야기한 세력과 싸우지 않고 그러한 세력을 용서하는 것이다...."

[사진]김종태 열사 자화상

1980년 6월 9일 오후 5시경 한 젊은이가 신촌사거리를 걷고 있었다.뜬눈으로 밤을 샌 듯 수척해 보이는 얼굴에서 오직 두 눈만이 빛을 발하고 있었다.길을 걷는 사람들은 머리를 숙이고, 더운 날씨에도 바삐 길을 걷고 있었다.

날씨는 후덥지근했으나 거리와 사람들은 을씨년스러울 정도로 고요했다.청년은 잠시 가던 길을 멈춰 서서 사람들을 바라보았다.무기력한 도시와 사람들 그의 눈에서 언뜻 물기가 고이는 가 싶더니 어금니를 지긋이 깨물고 다시 걸음을 재촉했다.

신촌 역 앞에서 청년의 발걸음이 멈춰 섰다. 몇 사람이 역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보였다.문뜩 여행을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벗들과 함께 광주로 떠나는 자신의 모습을 그려보았다.구수한 남도의 말투와 넉넉한 인심. 넉살 좋은 사람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그가 떠나고자 하는 여행은 그곳이었다.".... 하느님, ...... 어머니 ........"

불길이 올랐다.1980년 6월 9일 오후 5시 50분이었다.

다큐멘터리 제작공동체인 푸른영상에서는 1980년 6월 9일 광주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 분신한 김종태 열사의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고 있다.연출을 맡은 김성환 감독(32세)은 조금씩 잊혀져가고 있는 광주의 의미와 열사의 정신을 알리기 위해 다큐를 제작하게 됐다고 밝혔다.

올해 완성 예정인 다큐는 촬영이 90% 이상 완료 됐으나 중요한 촬영이 진행되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

김성환 감독은 김종태 열사의 분신을 목격하고 소화기로 불을 꺼준 근처의 약국 약사와 세탁소 주인 그리고 병원으로 열사를 옮긴, 해병대 상병(병원 기록)과 교통경찰(동생 기억) 혹은 방범(열사 어머님 기억)을 찾고 있다.

또한 당시 열사를 간호했던 간호사 중 한명을 찾고 있는데, 성은 이씨이며 이름은 알 수 없다고 한다.

1987년경 고대 집회에 참석했던 열사의 어머니는 자신이 80년 당시 열사를 간호했던 간호사며, 열사로 인해 병원을 그만두고 노동운동을 시작하게 됐다고 밝힌 여자를 만나게 된다.

어머니는 연락처를 받으려 했지만 갑자기 들이친 경찰의 진압으로 헤어진 후 아직까지 소식을 모르고 있다.

'망각을 거부하고 광주의 의미와 열사의 정신을 알리는 것은 우리가 해야 하는 사명'이라고 말하는 김성환 감독은 열사에게 어린왕자라는 별명을 붙였다고 한다.

'어린왕자 김종태'

"......나라안에서 자기나라 군인들한테 어린 학생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수백 수 천명이 피를 흘리고 쓰러지며 죽어 가는 데 나만, 우리 식구만 무사하면 된다는 생각들은 어디서부터 온 것입니까?

...... 내 작은 몸뚱이를 불 질러서 국민 몇 사람이라도 용기를 얻을 수 있게 된다면 저는 몸을 던지겠습니다. 내 작은 몸뚱이를 불 사 질러 광주시민, 학생들의 의로운 넋을 위로해 드리고 싶습니다.

아무 대가없이 이 민족을 위하여 몸을 던진다는 생각을 해보지 않았습니다.너무 과분한, 너무 거룩한 말이기에 가까이 할 수도 없지만 도저히 이 의분을 진정할 힘이 없어 몸을 던집니다." = (김종태 열사의 유서, 광주시민, 학생들의 넋을 위로하며........)

김종태 = 1958. 6. 7. 부산 초량동 출생/80. 6. 9. 신촌역 부근에서 분신/80. 6. 14. 새벽 4시 30분 세브란스 병원에서 눈을 감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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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사람>

다큐멘터리!
우리는 방송에서 많은 다큐멘터리를 본다.
늦은 시간에, 자주 시간대가 바뀌고, 결방 되기도 하고.....

무겁고, 신경 쓰기 싫고, 답답하고, 재미없고......

다큐멘터리는 그런 모습일까?

'한사람' 이라는 작품이 있다.

푸른영상이라는 독립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곳에서 만든 이
다큐멘터리는 한마디로 말해서 재미없다.

서 로베르또 스위니라는 '한사람'이 있었다.
아일랜드계 미국인으로 성골롬반선교회의 신부였던 이분은
자신의 삶을 이땅에 묻었다.

소록도의 나환자, 상계동의 철거민, 당진에서 농민들과 보낸
10여 년의 세월 그리고 매향리에서 보낸 생의 마지막까지.

차별 받고, 소외 당한 사람들과 함께한 '한사람'의 이야기가
담겨져 있는 것이 '한사람'이라는 다큐멘터리이다.

이 다큐멘터리를 볼 수 있는 방법은 구입을 하든가, 푸른영상에
회원으로 가입하는 것밖에 없다.

하지만 이 다큐멘터리는 재미없다. 정말 재미없다.

www.docupurn.org (푸른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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