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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운동가 김형률 활동 일지

* 김형률 활동 일지(2002년~2005년)

 

♢ 2002년 3월 22일

- 한국 최초로 원폭2세 환우임을 기자회견을 통해 밝힘. <대구 KYC>(대구 남구 봉덕3동) 사무실에서 부친과 함께 기자회견을 열어 자신이 원폭후유증을 앓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원폭2세피해자 문제에 대한 대책마련을 촉구함.

 

- <한국원폭2세한우회>결성. 한국원폭2세 환우카페(http://cafe.daum.net/KABV2PO)를 만들어 자신의 처지와 조건을 알리고자 노력함.

 

♢ 2002년 5월

 

- 일본 히로시마 원폭건강센터에서 한국원폭2세로는 처음으로 형식적이나마 건강검진을 받음. 담당 의사가 정밀 검진을 권유함.

 

♢ 2002년 8월

 

- <대구전교조>와 <히로시마일교조>와의 역사교류회 참가. 한국가 일본의 역사 교사들에게 한국원폭2세환우의 문제해결을 호소함.

 

♢ 2002년 12월

 

- 부산에서 아오야기 준이치(부산대), 조석현(전교조) 등이 주축이 되어 <한국원폭2세환우회를 지원하는 모임> 결성.

 

♢ 2003년 5월

 

- <한국원폭2세환우회를 지원하는 모임>에서 한국원폭피해자와 한국원폭2세환우의 생존권 보장을 위한 <국가인권위원회> 진정 결의, 서울의 관련 시민단체들과 연대 추진함.

 

♢ 2003년 6월 28일

 

- 서울에서 ‘한국원폭2세환우 문제해결을 위한 간담회’ 개최 및 <원폭2세환우 문제해결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이하 공대위) 구성 결의함.

 

- 8월 5일 <국가인권위원회> 긴정 및 기자회견 가지기로 함.

 

 

 

 

♢ 2003년 7월 26일

 

-부산에서 ‘한일원폭2세회 심포지움’ 참가. 공대위 심포지움 참관 및 공대위 2차 회의 개최

 

♢ 2003년 8월 5일

 

- ‘원폭2세 환우 문제 해결을 위한 공동대책위 발족 및 국가인권위 진정’ 기자회견 개최함.

 

- 8개 시민단체와 함께 <원폭2세환우 문제해결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를 결성함.

 

- 정부 차원의 실태조사와 진상규명을 골자로 하는 진정서를 <국가인권위원회>에 제출함.

 

♢ 2004년 8월

 

- <국가인권위원회>, ‘원폭피해자 2세의 기초현황과 건강실태’ 조사 실시

(2004년 8월~12월, 5개월간)

 

♢ 2005년 2월 14일

 

- <국가인권위원회>, 국가기관 최초로 1세, 2세 실태조사결과를 발표함. 조사결과 원폭피해자 1세와 2세 모두 일반인들에 배해 질병발생 위험도가 매우 높은 것으로 나타남.

 

♢ 2005년 4월 12일

 

- <공대위>와 함께 원폭피해자 진상규명과 지원대책 촉구 및 특별법 제정을 위한 의견청원 기자회견 개최. 원폭피해자 단체(한국원폭2세환우회와 한국원폭피해자협회) 외 시민사회단체 대표들이 연명하여 국회에 특별법 제정촉구를 골자로 하는 청원서 제출.(소개의원 : 민주노동당 조승수 의원)

 

♢ 2005년 5월

 

- <공대위> 확대 개편 결정, 따라서 공대위 명칭을 <원폭피해자 및 원폭2세환우문제해결을 위한 공대대책위원회>로 변경(소속단체: 한국원폭피해자협회, 한국원폭2세환우회 포함 8개 단체)

 

- 5월 18일, 국회에서 개최한 ‘원자폭탄 피해자 문제해결을 위한 입법 방향’ 토론회 참가

 

- 공대위와 함께 원폭피해자 및 원폭2세피해자를 대상으로 평택의 <한국원폭피해자협회> 기호지부의 사무실과 합천의 <합천원폭피해자복지회관>에서 ‘한국인원폭피해자 진상규명과 인권 및 명예회복을 위한 특별법 제정에 관한 설명회’ 개최

 

- 5월 19일~26일, 일본 도쿄에서 <일본의 과거청산을 위한 국제연대협의회> 주최로 열리는 심포지움 참여

 

- 5월 27일, <원폭피해자 및 원폭2세환우문제해결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15차 회의에 건강악화로 불참

 

- 5월 29일, 오전9시 5분경, 부산시 동구 수정4동 수정 아파트에서 끝내 숨지다.

 

- 5월 31일, 부산대병원에서 장례식을 마치고 부산 영락공원에 유골이 안치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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