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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2/08 09년 현장활동가 맞춤교육 마쳐 (1)
  2. 2009/03/02 6기 현장활동가 맞춤교육 드디어 마무리...
  3. 2008/02/25 충북 현장활동가 맞춤교육 6개월의 대장정 마쳐 (1)

09년 현장활동가 맞춤교육 마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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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세상은 가능하다!

 

09년 현장활동가 맞춤교육 마쳐

 

 

08년 9월 13일 미국에서 시작된 세계공황에 따라 신자유주의가 끝나고 다른 세상이 가능한지에 대한 논란이 전세계를 달구고 있다. 민주노총 충북지역본부는 09년 현장활동가 맞춤교육을 임승수씨의 ‘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을 교제로 자본주의 세상을 해부해 보고, ‘다른 세상이 가능한지’에 대한 심도 깊은 교육과 토론을 9월 중순부터 시작했다. 금속노조의 선거로 인해 일정이 혼잡한 가운데 5개월여 진행된 맞춤교육은 LG화학, 정식품, 농협노조, 제천지역, 금속노조 캄코, 코스모링크지회 등 총 6개팀(7개노조) 60여명이 시작, 6개노조 50여명이 총 8강을 진행, 수료했다.

 

 

사업장별로 뿔뿔이 힘든 맞춤교육을 마친 이들은 처음으로 한자리에 모여 2월 6일 - 7일 졸업여행을 떠났다. 이번 졸업여행은 전태일 열사 40주기에 맞춰 마석모란공원 참배 등으로 진행됐다.

서울로 가는 차안에서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아니 전 노동자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의 삶과 투쟁을 담은 비디로를 시청하며 참가자들은 눈시울을 붉혔다.

 

 

오전 11시 전국민족민주열사유가족협의회 사무실인 한울삶에 도착하니, 전태일 열사의 이소선 어머님, 87년 대투쟁의 주역 박종철 열사의 박정기 아버님, 이한열 열사의 배은심 어머님, 신호수 열사의 신정학 아버님들이 맞이해 주셨다.

이소선 어머님은 “태일이를 잊지 않고 찾아줘 고맙다. 노동자들이 단결하고 하나가 돼야 이긴다. 꼭 하나가 돼라”며 당부를 하셨고, 배은심 어머님은 “요즘 우리 열사들을 생각하고 방문해 주는 이들이 많이 줄어들었는데 이렇게 많이 참여해 줘서 정말 고맙다”며 연신 눈시울을 붉히셨다. 신정학 아버님은 “노동자들의 의문사에 민주노총이 나 몰라라 한다. 의문사 한 노동자들은 누구하나 진상규명이 되지 않고 있다”며 의문사 진상규명에 민주노총이 나서줄 것을 요구했다.

전태일재단의 박해일 사무총장은 “전태일 정신은 풀빵이다”라며 “30원 차비를 아껴 풀빵 30개를 시다 6명과 나눠먹은 전태일은 동정심이 아니라 함께 하고자 하는 연대의 정신였다. 전태일이 살아있다면 비정규직 투쟁에 다시 온몸을 던졌을 것”이라며 비정규직 투쟁에 앞장서 줄 것을 당부했다.

평생을 이소선, 박정기, 배은심, 신정학으로 살지 못하고, 전태일의 어머니, 박종철의 아버지, 이한열의 아버지, 신호수의 아버지로 살아오셨던 이들이 참가자들에게 전했다. "이제 우리는 나이가 먹어 잘 돌아다니지도 못해. 이제 당신들, 노동자들이 우리 아이들이 이루려고 했던 세상, 우리가 이루지 못한 세상을 이뤄줘야 해"

 

참가자들은 자신들이 직접 현장에서 생산한 선물과 차안에서 모금한 후원금을 전달하고 함께 점심식사를 한 후 어머님 아버님의 건강을 당부하며 아쉬운 발걸음을 옮겼다.

 

 

마석모란공원으로 자리를 옮긴 참가자들은 제일 먼저 전태일 열사의 묘지를 찾았다. 이땅 모든 노동자의 친구이자 동지인 전태일 열사. 참가자들은 전태일 열사가 이소선 어머님에게 남겨주었던 짐, 암흑의 세상에 열사가 찍은 밝은 빛 한점을, 온세상이 비추도록 활짝 열어나가야 할 그 짐을 이어 받을 것을 다짐했다.

이어 민주노총 박석민 교육국장이 모란공원 곳곳을 돌며 열사들의 삶과 투쟁을 상세히 설명해 주며 참가들을 이끌었다. 용산참사로 돌아가신 철거민 양회성, 윤용헌, 이상림, 이성수, 한대성 열사, 통일운동가 문익환 목사, 산재노동자 문송면 열사, 79년 박정희 정권의 몰락을 이끈 YH무역의 김경숙 열사, 87년 투쟁을 연 박종철 열사, 민주노총 지도위원이셨던 김진균 선생, 91년 투쟁중 산화하신 김기설, 김귀정 열사, 민주노총 조직부장이었던 최명아 열사, 한미FTA 투쟁으로 산화하신 허세욱 열사, 한전 민주화를 위해 산화하신 김시자 열사, 우리 사회의 양심이셨던 계훈제 선생의 묘를 돌며 열사들의 뜻을 반드시 계승 할 것을 다짐했다.

 

 

추운날씨속에 두시간 넘게 열사들의 삶을 돌아보았던 참가자들은 가평 유명산 아래 숙소로 이동, 서로 서로를 확인하며 새로운 세상을 건설할 것을 다짐하는 단결의 밤을 보냈다.

 

 

다음날 아침 참가자들은 눈쌓인 유명산을 아이젠도 없이 과감하게 올랐다. 주야 맞교대, 잔업, 특근에 찌든 몸은 연신 웃옷을 벗어던지게 만들었고, 도저히 오르지 못할 것 같은 체력의 한계를 절감하며, 노동자의 끈기로 정상에 서 환호성으로 힘찬 투쟁을 결의했다.

 

 

4개월여의 맞춤교육. 참가자들은 자본주의 모순을 절감하며, 자본주의가 가져온 노동의 소외, 비정규직, 빈부격차, 환경파괴, 전쟁, 공황, 이 모든 것을 뒤집을 새로운 세상이 가능함을, 그 새로운 세상은 노동자들이 중심에 설 때만 가능함을 알았다. 남은 것은 실천이다.

 

5개월여 진행한 현장활동가 맞춤교육 강의록을 정리했다. 현장노동자의 시각으로 쉽게 자본주의를 풀어본다.

[쉽게 읽는 자본론]

 

유가협의 부모님들이 함께 생활하시는 한울삶

유가족들이 한데 모여 환영해 주시고 있다.

빼곡히 모인 참가자들 뒤로 열사들의 영정이 걸려있다.

전태일 열사의 묘지 앞에 결의를 하고 있다.

좌측 박석민 교육국장이 추운날씨에 함께 해 주었다.

때마침 김진균 선생의 추모제라서 충북 유초하 선생, 서원대 서관모 선생을 만났다.

유명산 정상에서 바라본 광경. 참 이쁘다.

정상에서 다른 세상은 가능함을 외쳐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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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08 13:56 2010/02/08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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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기 현장활동가 맞춤교육 드디어 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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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기 현장활동가 맞춤교육 드디어 마무리...

 

현장활동가! 우리가 앞장서서 새로운 세상을 맞이하자!

 

 

현장이 운동의 중심이고, 변혁의 시작이다.

2월 28일과 3월 1일, 이틀에 걸친 노동역사기행을 마지막으로 4개월간의 현장활동가 맞춤교육이 대장정이 마무리 됐다. 현장활동가 맞춤교육이란 일회성, 동원식, 주입식 교육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2003년부터 본부 주관으로 진행되어 온 대표적인 교육사업이다. 맞춤교육은 상호 교류를 통해 현장활동가들의 학습 수준에 맞게 교제를 선정, 활동가들이 직접 교제를 미리 읽고 발제를 진행하고, 강의와 토론으로 진행되는 등 활동가들의 직접 참여를 적극 유도하여 왔다.

 

08년 현장활동가 맞춤교육은 예년보다 다소 늦은 10월 14일 입학식을 진행, 11월부터 본격적인 교육을 진행하여 왔다. 금속노조에서 발행한 금속노동자를 위한 철학과 경제학을 일괄 교제로 채택, 7개 사업장, 83명이 시작했다. 강의식 교육이 아닌 참여식 교육이라는 부담감, 4개월이 넘는 강도높은 교육으로 일부 사업장이 중도 탈락, 최종 4개 사업장 40여명만이 수료했다.

 

2월 28일. 두달전부터 예정되었던 졸업여행 겸 노동역사기행이 난관에 부딪혔다. 노동자 대회가 급박하게 결정되면서 연기 등이 논의 되었으나, 일정변경이 불가능하다는 판단하에 일부 나누어서라도 강행하기로 결정하였다.

 

한국네슬레 동지들을 필두로, 금속노조 엔텍, 유성영동, 코스모링크 등 현장 맞춤교육을 수료한 30여명이 마무리 졸업여행을 위해 본부로 모여 들었다.

 

오늘 우리는 전두환, 노태우. 두 살인자의 당당한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첫 목적지는 광주였다. 미완의 혁명. 5.18 광주민중항쟁. 죽은자에겐 돈 몇푼으로 잊으라하고, 죽인자는 화합이라는 명분하에 모든 죄를 사해주고 용서하란다. 집단 학살을 하고 온갖 비리를 저질렀던 이들이 전직대통령이라는 우대속에 뻔뻔히 세상을 활보하는 기가막힌 세상을 살고 있다.

일행은 민주의 문을 지나 참배광장에 모여 향을 태우고, 가신 님들을 위해 임을위한행진곡을 부르며 그날의 참상을 가슴아파 하며 죽은자들을 위로했다아  "계엄군이 쳐들어옵니다. 시민 여러분, 우리를 도와주십시오. 우리를 잊지말아 주십시오" 한 여성의 애절한 시내 가두방송의 메아리가 들리는 듯 하다.

 

이어 정진동 목사님의 묘소를 찾는다. 정목사님은 환한 미소를 일행에게 자신의 뜻을, 자신이 이루고자 했던 세상을 꼭 이루어 달라고 당부했다. 매년 찾아뵐때마다 우리를 죄스럽게 만드시는 분이다. 아! 다시금 흘러나오는 눈물을 참으며 어금니를 투깨물며 투쟁을 결의하게 하는 분이다.

구묘역을 거쳐 추모관에서 그날의 참상을 직접 보고 들으며 새로운 세상에 꿈꿨던 광주민중들과 하나가 되어 본다.

 

충북지역 노동운동의 아버지 정진동 목사님 묘역 사진제공 한국네슬레 법규부장 신일호

△일행들이 구묘역에서 참배를 하고 있다. 사진제공 한국네슬레 법규부장 신일호

△ 시민여러분 우리를 잊지 말아주십시오. 우리는 최후까지 싸울 것입니다.

 

아무 조건없이 민초들을 안아주는 지리산!

구례 화엄사다. 웅장하지만 민중의 한을 고스란히 품은 지리산. 산적, 화적, 반란군, 빨치산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우지만 지배세력의 압제에 항거한 수많은 민초들의 마지막 목적지이자 피난처였던, 아직도 평등세상, 인간다운 삶을 꿈꾸는 자들의 재충전지가 바로 지리산이다. 세상에 맞서 투쟁하다 지친 몸으로 오른 지리산. 지리산은 그런 민초들에게 자신의 정기를 아낌없이 나누어 준다. 자신의 정기를 받아 새로운 저항을 조직하라고...

오늘 바로 그 지리산 밑자락에 둥지를 튼다.

 

사방에 흩어져 교육을 받고 처음으로 한자리에 모인 일행은 서로를 소개 하는 자리를 갖는다. 이 자리에서 이정훈 본부장은 "배우는 것에 만족하지 말고 투쟁으로 화답하라"고 주문을 했다.

마지막 강의가 시작됐다. 핵심은 '망해가는 신자유주의에 목을 매는 이명박 정권이 물러나지 않으면 노동자의 미래는 없다는 것. 조직된 노동자가 실업 등 신빈곤층과 함께 연대해서 신자유주의, 자본주의를 대신할 새로운 세상을 쟁취'하자는 내용이다. 너무 뻔한 교육이었다.

 

이어진 뒷풀이에서는 참가자들은 4개월여의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교육을 끝냈다는 자부심 과 함께,  서울 집회소식이 알려지자 우렁찬 구호로 지리산 영령들에게 민초들의 한을 풀 것을 결의했다. 지리산 토종돼지와 토종닭이 대나무 숯에서 익어가며, 입으로 입으로 전해지며, 서먹 서먹 했던 일행은 어느새 하나가 되고 있었다.

 

 

 

△ 정상에 다 올라 왔다. 한명도 빠짐없이... 사진제공 한국네슬레 법규부장 신일호

 

해장에는 제첩국이 최고. 구수한 전라도 음식솜씨에 산나물이 뒤엉킨 아침으로 속을 풀고 성삼재 휴게소로 올라간다. 최고령 엔텍 대의원동지가 오른다. 술이 안깬 일행들이 죽을 상으로 뒤를 따른다. 작년 온갖 핑계를 대서 오르지 않았던 이정훈 본부장이 제일 마지막에 죽을 상을 하고 오른다. 가뭄이라더니 작년 이맘때는 아이젠이 없어 한참을 고생했는데 눈이 하나도 없다. 다행이다.

다행히 단 한명의 낙오도 없이 노고단 정상에 오른다. 정상주로 두부김치에 구례막걸리를 한잔 걸치려는데 산림감시원이 안된다 한다. 규정이 어디있는냐 옥신각신하는데 이 인간 과태료를 끊는단다. 50만원의 아픈 기억속에 모두 살짝 꼬리를 내리고 중턱에서 판을 벌인다. 중턱은 되고 정상은 음식물이 반입이 안된다니 참 이해가 되지 않는 산림행정이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남원 추어탕으로 점심을 때운다. 광한루라도 들어가려고 했으나 야간근무를 들어가야하는 동지들이 있단다. 아쉬움을 뒤로한체 집으로 향한다.

 

4개월의 학습. 새로운 시작을 위한 충전의 시간이었다. 민중의 한을, 서러움을 가슴깊이 새기고 새로운 투쟁을 결의한 짧은 1박 2일 이었다. 이제는 실천만이 남아있다.

경제위기의 모든 책임을 노동자 민중에게 전가하고 있는 이명박정권과 한판 전쟁을 조직해야 하는 자. 바로 그대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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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3/02 15:28 2009/03/02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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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현장활동가 맞춤교육 6개월의 대장정 마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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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활동가 맞춤교육 6개월의 대장정 마쳐

 

 

 

현장활동가 맞춤교육이 마무리 됐다. 작년 8월 31일 입학식을 시작으로 3권의 교제를 가지고 심층 집중교육이 8개노조 9개팀으로 진행 되어왔으며, 총 9강을 진행하였다. 시작시 100여명에 달하던 교육생이 너무나 빡빡한 일정에 절반이 탈락, 마지막은 40여명만이 교육을 사수할 정도로 힘든, 현장에서 밤낮없이 일하고도 틈을 내어 잘 이해가 되지도 않는 교제를 꺼내들고 졸음과 싸워가며 함께한 6개월이었다.

 

 

 

특히나 채만수선생의 '노동자교양경제학'은 압권이었다. 경제학이란 생소한 학문을, 그것도 딱 베고 자기에 알맞은 두께를 가진, 무슨 말을 하는지도 도통 모르는, 불가능 할 것 같은 노동자교양경제학을 다 끝낸 후 참가자들은 가능성과 희망을 느꼈을까?

 

2월 23일 충북 각지에서 떨어져 서로 얼굴도 못본 체 똑같은 교육을 진행했던 현장 맞춤교육생 등 5개 노조 20여명이 마무리 졸업여행을 위해 본부로 모여 들었다. 1박 2일의 일정인지라 소박한 참가인원 이었다. 간부, 활동가라지만 집회에서 스치듯 만나 서로 서로 안면만 있지 잘 알지 못해 서먹서먹한 분위기에서 첫 목적지 광주로 향했다. 광주로 향하는 동안 작년 히트를 쳤던 영화 '화려한 휴가'를 시청하며 광주의 참상을 어렵게 추측해 나갔다.

 

△참가자들이 광주항쟁의 참상을 사진으로 나마 지켜보고 있다.

 

첫 목적지 광주 망월동 5.18 묘역. 모두들 광주항쟁은 마무리가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죽은 자는 있는데 죽인 자를 아직도 밝혀내지 못하는 희안한 역사의 아이러니를 아직도 간직한 광주항쟁이 어떻게 마무리 되었다는 것인지 어찌 이해해야 한단 말인가? 참가자들은 마무리 되지 못한 광주의 한을 풀 것을 결의하고, 항쟁의 참상을 비록 글과 영상으로나마 접하며 치를 떨어야만 했다. 또한 그 자리에 광주민중항쟁으로 인해 옥고를 치르시고, 충북지역 노동자 민중운동을 이끄셨던 정진동 목사님의 묘역을 참배하며 이후 충북지역 노동운동은 참가자들이 당당히 이끌어 나갈 것을 결의하였다.

 

두 번째 목적지는 민족의 영산이자 민족의 아픔을  고스란히 간직한 지리산으로 향했다. 시간 상 등반은 다음날로 미루고 지리산 자락의 화엄사를 찾았다. 8.15 해방이후 친일파 척결, 농지개혁, 공장 자주관리 등 민중의 요구를 외면하고 탄압으로 일관한 미군정과 이승만 정권에 대항해 무장투쟁을 벌여야만 했던 빨치산. 한가족이 군경과 산사람으로 나뉘어 서로 피를 흘려야만 했던, 민족 최대의 아픔을 간직한 지리산. 그 소용돌이 속에서도 화엄사는 묵묵히 참선을 할 수 있었을까?

 

저녁 서로 처음으로 각자 소개를 하고 맞춤교육을 간략히 평가하는 자리가 열렸다. 강사가 앞에 있어서 인지 대략적인 평가는 "우리가 정말 해냈다"라는 대견함이었고, "이런 교육이 좀더 체계적으로 진행되었으면" 하는 바램이었다.

역시 압권은 뒷풀이다. 지리산 토종돼지 삼겹살이 대나무 숯에서 각자의 입으로 쉬지 않고 들어간다. 소주 역시 뒤따라 들어간다. 생전 무게만 잡고 있던 이정훈 본부장이 흥에 겨워 한자락 노래를 한다. 젊은이 최고라고 중년은 적당한 시기가 되자 슬그머니 사라지고, 다시 끌려 나오고를 반복하며 어느 새 형, 누나 하며 서로 하나가 되며 지리산의 정기속에 푹 빠졌다.

 

△언제나 즐거운 뒷풀이 자리. 뒷풀이를 통해 사업장을 넘어 하나가 되고 있다.

 

다음날 술에 쪄든 몸을 이끌고 콩나물 해장국으로 속을 푼다. 역시 음식은 전라도라고 정말 속이 확 풀린다. (절대 지역감정 아님)

꼬불 꼬불 아찔한 도로를 누비며 성삼재로 향한다. 옆은 별로 보고 싶지 않다. 정말 아찔했다. 성삼재에 도착, 술이 덜깨어 도저히 올라갈 수 없다는 일부 참가자들을 동네 뒷산 같아서 한시간이면 갔다온다고 꼬셔대는 작년 지리산 종주자의 유혹에 넘어가서, 또는 강압에 못이겨 노고단으로 기어 올라간다. 등산로는 눈으로 온통 덮여있고 숨은 턱까지 올라온다. 어제 먹은 소주가 머리위에서 김이 되어 모락모락 올라간다.

다행히 단 한명의 낙오도 없이 노고단 정상에 오른 참가자들은 못올라온다고 툴툴되던 장면을 모두 깡그리 잊고, 이리 저리 사진찍느라 바쁘다. 정상주로 묵무침에 구례막걸리를 한잔 걸치고, 지리산의 정기를 흠뻑 받으며 하산, 모든 일정을 마무리 했다.

 

참가자들은 이번 졸업여행을 통해 지역 노동운동의 중심에 설것과 이후 낮은 곳으로의 강력한 연대를 결의했다.

 

△노고단 정상. 얼굴없는 사람은 전날 술이 과했던 동지들이다. 그런데 앞줄 멋진 사람은 누구? 동지들 고생 많았습니다.

 

 

 

민주노총 충북지역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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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2/25 21:03 2008/02/25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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