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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공공부문은 넓고 짜를 건 많다

 

공공부문은 넓고 짜를 건 많다

- 대법원 2008. 6. 12. 2006두16328.

전임계약직공무원(나급)재계약거부처분및감봉처분취소 -


 

 

‘공공부문 비정규직 종합대책’. 비정규직 확산이 사회적 문제로 고개를 치켜들게 되면서 공공부문부터 비정규직 남용을 자제하겠노라, 정부가 먼저 ‘모범적 사용자’가 되겠노라고 이 대책을 만들었단다. 모범적 사용자? 웃기고 자빠지셨다.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마그나카르타(Magna Carta)’가 되는 건 기대도 안했다. 하지만 ‘카노사’도 울고 갈 ‘굴욕의 칙서’가 된 이 대책. 이 대책이 천국과 지옥 사이의 연옥(煉獄)에서 무기계약직이라는 이름의 중생들과 재계약거절과 계약해지라는 위협적인 불길이 치솟는 24시 불가마에서 몸을 웅크린 비정규직들에게 염라대왕 장부로 둔갑할 것이라고는 어찌 상상이나 했겠는가.


사건의 쟁점

원고와 피고는 ‘전임계약직 공무원(나급)’과 ‘서울특별시’. 먼저 ‘전임계약직’은 상근이고, 상근하지 않는 경우에는 비전임 계약직으로 구분한다(지방계약직공무원규정 제2조). 다음으로 ‘나’급. 나급 정도면 보통 ‘가방끈’이 긴 분들이 되시겠다. ‘급’이 된다는 말씀. 박사학위 소지자, 석사학위일 경우에는 2년 이상 해당분야의 경력자 등이 이에 해당한다.

이 사건 고갱이는 두 가지로 압축된다. 첫째는 계약직 공무원에 대한 ‘재계약거절’이 정당한가의 여부. 둘째는 근무실적이 불량한 계약직 공무원에 대해 ‘보수를 삭감’한 것이 정당한지의 여부.

특히 이 사건은 행정소송이라, 계약직 공무원에 대한 재계약 거부나 보수삭감이 민간기업과 달리 ‘처분’인가 하는 점에서 행정법적 기본소양을 요구한다. 그러나 애초부터 소양, 운운하기가 어렵겠다. 이 사건 판결문만 보면 ‘안구 건강’에 위협이 될 만한 소지, 다분하다. 판결문 첫 문장이 15줄에 글자 수만 518개가, 막 뽑아낸 가래떡 마냥 한 문장으로 늘어져 판결문 서두에 똬리를 틀고 있다. 망막과 홍채에 경련이 오는 문장이 이 뿐만은 아니지만. 좀 먹기 좋게 썰어주시면 안되나.


원심과 대법원의 판단

행정소송에서 위법․무효를 다투기 전, 먼저 판단하는 것이 ‘법률상 이익’이 있는지의 여부다. 소송남발 때문인데, 법률상 이익이 없으면 판사들은 ‘기각’이라는 카드를 내민다. 첫 번째 쟁점에서 원심과 대법원은 계약만료 이전 계약해지 등의 불이익을 받은 뒤, 계약기간이 만료되었다고 하더라도 ‘법률상 이익은 없다’고 판단했다. 왜? 계약기간이 만료되는 계약직 공무원에 대해 ‘재계약의무’를 부여하는 근거규정이 없으므로, 계약만료로 신분이 상실되면 다시 회복할 수 없다는 것. 그래서 이 부분에 대해 행정소송을 제기해 봐야 별 볼일 없다, 이거다. 여하간 대법원은 이 사건 공무원에 대한 구제의 길을 친절(?)하게 옵션으로 던져주시고 있다(판결문 중 1. 참조).


두 번째 쟁점. 이 사건 공무원이 이유가 어떻게 되었든 간에 보수가 삭감되었는데. 이에 대해 원심과 대법원은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다. 원심은 「지방계약직공무원규정」․「서울시지방계약직공무원인사관리규칙」(이하 규정․규칙)에 의해 근무실적 평가결과 근무실적이 불량할 경우, 봉급액을 조정할 수 있으므로 보수삭감은 ‘징계’가 아니라 ‘계약의 변경(「규정」 제8조)’이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근로기준법상 공무원도 ‘근로자’이므로 임금에 관한 일반원칙을 비껴갈 수 없음을 못박았다. 그런 다음, 위 「규정․규칙」의 ‘상위법’인 「지방공무원법」뿐만 아니라 「지방공무원 보수규정」을 뒤져봐도 ‘보수삭감’의 직접적 근거가 없다는 점을 지적했다. 다만 보수삭감과 관련된 법적 근거는 「지방공무원법」의 징계규정 중 ‘감봉’에서 찾을 수 있기 때문에, 보수삭감 조치는 ‘징계’라고 보았다. 결국 징계라면 적법한 절차를 거쳐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위법하다. 또한 위 「규정․규칙」은 보수삭감에 대한 당사자의 절차적 권리나 구제수단도 마련하고 있지 않아 법률에 의한 위임의 근거나 그 범위를 벗어난 것으로써 ‘무효’라고 판단한 것이다.

결국 서울시장이 위 「규정․규칙」에 근거하여 계약직 공무원의 보수를 삭감할 권한을 사실상 부정했다. 너무 복잡한가. 그렇다면 엑기스만 뽑자. ‘법률에 의한 명확한 위임이 없는 시행령이나 시행규칙으로는 공무원의 보수를 삭감할 수는 없다’에 형광펜으로 밑줄. 


재계약을 부여하는 근거규정이 없다?

다시 첫 번째 쟁점으로. 대법원은 이 사건의 재계약거부에 대해 법률상 이익이 없어 재계약거절의 정당성을 심사하지 않았다. 왜냐, 재계약의무를 부여하는 근거규정이 없기 때문이란다. 궁색하다. 노동법에 재계약의무를 부여하는 규정이 있는가. 좋다, 몰라도 된다고 치자. 재계약의무, 이런 게 있으면 기간의 정함이 있는 계약은 왜 체결하는가. 가만히 있어도 사용자가 재계약을 해야 할 의무가 있는데 말이다. 넌센스다.

재계약의무를 규정하는 법률이 있든 말든 간에, 재계약을 거절한 경우 그 거절이 정당하지 않다면 ‘해고제한의 법리가 유추 적용(서울행판 2008. 3.26. 2007구합37629; 最高裁 1974. 7. 22. 東芝柳町工場 사건)’되어 부당해고로 인정된다. 그러면 당연히 이러한 법리가 계약직 공무원에게는 적용되지 않는가. 안될 이유, 없다. 앞서 대법원도 공무원이 ‘근로자’임을 전제하지 않았나. 그러나 안된다. ‘정원과 예산’이라는 ‘티오와 돈줄’, 특히 정부가 영구버전으로 ‘예산음~따’라고 하면, 더 이상 법적으로 다투고 자시고 할 것도 없다. 이건 삼척동자 사촌 동생의 옆 집 친구도 다 아시는 바고.


불합리한 기준과 원칙들은 제거해야

지난 해 6월 공공부문 비정규직 ‘대책’이 나왔을 때다. 무기계약 전환을 둘러싸고 공공기관들은 골머리를 앓기 시작했다. 정부는 공공기관들에게 이 대책에 따른 추진경과를 제출하라고 닦달했고, 기관들은 머리를 싸매고 ‘묘수’를 찾는데 여념이 없었다. 그리고 내놓은 묘수라는 게 가관이었다. 심지어 행정수도 지방이전 때까지 ‘개기면 되지 않겠나’라는 입장까지 내비치는 건, 단연 압권이었다. 정부가 비정규직 문제에 있어 현재 위치와 향후 방향을 가늠할 육분의와 나침반이 되겠다고 했음에도 실상 그것들은 자침(磁針)도, 눈금도 없었다.

이 사건의 경우에도, 계약직 공무원에 대한 「규정․규칙」중에는 ‘업무를 태만히 하거나 업무수행 능력이 부족한 때’, ‘기타 채용계약상의 해지조건에 해당될 때’ 등 애매한 조항들로 계약해지의 길을 열어놓고 있었다. 더구나 무기계약으로 전환된 공무원이든, 공공기관의 근로자든 간에 이들에 대한 별도의 인사관리규정을 두고 근무평가를 실시하여 계약해지 등의 조치를 할 수 있도록 하는 건 고용에 있어 분명 차별적 소지가 있다.

그런데 이건 일도 아니다. 심각한 건, 정권 바뀌면서 위아래 좌우 구분 없이 정부․위원회․공공기관을 불문하고 말단의 비정규직부터 꼭대기의 기관장까지 댕강댕강 짤라내고 있다는 점이다. 더욱 골 때리는 건, 이런 일들이 일단 화끈하게 법전을 덮고 시작된다는 점이다. 심히 걱정된다. ‘잃어버린 10년’ 동안 ‘놓아버린 정신’을 한시라도 빨리 찾기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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