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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야디파라고 불리는 사나이

그의 얼굴은 거무죽죽하고, 체격은 깡말라 저기~어디고? 베트남에서 온 인민당수처럼 해가지고, 학회로고가 새겨진 촌스러운 면티에, 메뚜기처럼 커다란 안경을 쓰고 어수룩한 말투로 뭉뚱그렇게 내놓는 한 마디 한 마디가 바위에서 떨어지는 폭포수와 같았던 한 선배의 이야기다.

나와 그는 너무나 큰 차이가 났지만 그는 항상 나를 치기어린 어린 후배로 생각하기 보다는 진실한 상담자와 같이 편하게 대해주었다. 그것도 그럴것이 그 당시의 선배들이야 대부분 군대를 갔다온 아저씨들이었고, 나는 따끈따끈한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후배 중에 후배였으니 당연히 어리게 보인 것은 당연했고 나도 그들을 대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그러나 내가 대학을 입학한 시기 이미 그는 시대의 광풍을 온 몸으로 막아보려고 깃발을 들었지만 그의 정신에는 상처와 덜 나은 흉터들이 군데군데 남아있었다.

어느 날 모 선배의 결혼식에 가게 되었는데, 그 때 공교롭게 그와 함께 택시를 타게 되었다. 그 때 나와 성희선밴가? (성희선배는 곧잘 병산아, 병산아 하고 그의 이름을 여러번 불렀다.)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대충 맞는거 같다. 여하간 그때 앞자리에 앉아있던 그는 남방불교 어쩌고 상좌불교가 어쩌고 하면서 불교에 대한 해박함을 보여줬다. 물론 나도 그 쪽으로는 일가견하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이 그의 결정적인 선택을 하기위한 하나의 복선적 장치였던 것이다.

하기야 그것도 그럴 것이 우리에게는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혁명'이라는 단어가 주는 늬앙스를 처음에는 하나의 포비아적으로 사고하다가 결국 무관심에서 혁명 자체를 다른 언어로 거세시키는 과정을 밟아나가는데, 이미 그는 그 과정을 애초부터 지나지 않을 사람이었다. 이미 뭔가의 목마름에 대한 중요한 단서를 찾아낸 것이다.

결국 오아시스를 찾기보다는 목마름 자체를 제거하는 작업.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수 있는 것에 대한 동경과 설레임. 그리고 그것이 주는 강렬한 매력에 도취된 듯, 살쾡이처럼 쾡한 눈에는 이미 엷은 미소가 배여들고 있었다.

그와 보낸 시간은 길지 않았지만 항상 그와 나는 - 특히 나는 그와는 사주팔자의 원리를 통해 알아본 결과 - 인연이 별로 되지 않는 것 같다. 만나려고, 찾아가려고 해도 뭔가 일이 생기고 문제가 생기니 말이다. 그런데 지금 돌아와 생각해 보니 이런 것일 수 있다는 생각이 대굴빡을 스치고 지나간다. 이게 돈오인가?

그를 만나기전에 생기는 일들. 그리고 뭔가 버려야 할 상황들..그러나 그것이 시간이 지나면 아무것도 아닌 것들. 그러나 너무나 많이 집착하고 그것에 아쉬워하면서도....지속되는 자극에 익숙한 것들. 바로 이런 것들과 함께 그는 선택의 외줄에서 이리오라 손짓하고 있었을 것이다. 나는 위태로운 그 외줄에서 오직 짧디 짧은 인간관계와 날이 빠진 무기를 부채삼아 겨우 중심을 잡으며 그런 선택을 지리하게 계산하고 또 계산하고 있었던 것이다.

대학교 2학년. 이제 막 학생운동에 물이 오르고 중진 선배(배후까지는 아직까지 길은 멀지만 이 시기가 나의 운명에 -50과 +50을 동시에 가지게 한 시기였다.)로서, 웃빵도 좀 잡고 큰소리도 좀 치고할 때 그와 내가 고기집에서 만나게 되었다.
한창 그때는 이론을 가지고, 특히 아나키즘을 한창 읽을 때였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일방향으로만 맑스를 추종하는 꼴통들은 아나키즘이 聆洋求?바가 무엇인지 한 번은 귀를 기울일 필요는 있다. 여하간!

그때가 분명히 무슨 날이긴 날인데(대학교때 고기집가는 것은 무슨 행사나 생일일때가 분명한데...), 여하간 그때 하재필 선배, 차민석 선배, 그리고 노땅선배들이 좀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니깐 아마도 구좌파모임이나 노땅들 취업대책위 정도였을 것이다. (혹시 내가 하재필 선배에게 체불된 임금을 받으러 간 것일수도?^^)

그날 사람들이 거나하게 술이 취하면서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가 그가 내옆에 앉게 되었다. 사람들도 점점 술이 취하다 보니 언성도 커지고 방안은 거의 담배연기로 앞사람의 얼굴이 안보일 정도의 거짓말을 해도 믿을 분위기였다. 어떤 분위기인지 알겠지?

"형, 도저히 맑스를 읽어도 맑스 이후의 좌파 경제학은 지나치게 세계의 가치를 물리적 노동의 양으로만 계산하는데 익숙해있다는 생각인데. 그것을 어떻게 풀어야 할지..막막해요 "

"어느 부분이 말야?" 그는 씩하니 웃으다가 콧마루에 흘러내린 안경을 집어올리면서 "그러면 다시 읽어봐. 근데 없는 답을 그곳에서 찾는 건 어리석은 거야."라고 말했다.

나는 그 말이 그가 나름대로 생각이 있거나 혹은 아예 맑스를 포기했을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함께 교차했다. 그래서 대답이 끝나기도 전에 냉큼 다시 물었다.

"어짜피 맑스에는 도덕성이나 그런 것들을 다그치는 장치가 없잖아요? 그리고 맑스가 19세기의 현실과 혁명을 말했다면 지금은 20세기의 현실과 혁명은 엄연히 다른거잖아요? 그 사이있는 갭들이 너무 크고 설명하기가 너무 곤란하고 난해하기도하고...."

그가 뒷주며니있는 쫄깃하게 구겨진 담배를 펴서 쭉쭉 바르게 펴면서 조금 뜸을 들이며 말했다.

"그건 그런데. 맑스는 직접적으로 그런 것을 언급할 필요가 없었어. 당장에 필요한 건 스패너를 든 노동자의 모습이지,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노동자는 아니었던 거야."

"그러면 결국 그 부분은 다시 새로이 맑스를 재구성하는..."

"그렇지. 근데 그게 맑스를 벗어난 범주에서 가능하다고 생각하는데. 그게 지금 내 고민이냐."

그 말을 남기고 한 참 뒤에, 진짜 많은 시간이 지났고 그가 인도로 갔다는 이야기만 들었다. 어설프게 말이다. 그리고 같이 활동했던 후배들이 그를 찾아 김해의 한 선원으로 갔다가 그와 함께 사진을 찍어서 보여주었다. 그 사진을 받아든 순간 뭐라고 그를 이야기 해야 할지 모를 정도로 당혹스러웠다. 그의 면면에 흘러내리던 몇 가지 수식어들은 사라지고 오직 남은 것은 전형적인 수행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안병산(근대 초기의 사회주의 혁명가의 이름같은)이라는 한 사나이가, '병산당'이라는 우리들의 당서기가 이제는 부처님의 뜻을 전하러 인도에서 달마가 온 수천만리의 길을 거쳐 이곳, 그가 바꾸어 보겠다고 붉은 깃발을 이 나라의 심장에 꽂아보겠다고 한 그 나라에 붉은 깃발이 아니라 그보다 조금 엷고 깊은 갈색 노을빛이 나는 가사를 두르고 나타났다.

그는 내던진 맑스에서 얻지 못한 것을 싯달타에게서 얻었다면 그는 90%의 행복을 다 얻은 것과 마찬가지 일 것이다.
그가 행복을 말하고 행복하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너무나도 고통스러운 댓가를 지불하고 얻어진 정말 무엇과도 비견할 수 없는 숭고한 아름다움이다.

그는 모든 것을 버렸고, 그러면서 모든 것을 얻으려고 한다. 그리고 그 얻어진 모든 것을 또 모두에게 나누고 또 나누고 다시 그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곳으로 떠나고 다시 나타날 것이다. 그가 실천하는 모습의 삶은 결국 우리가 얼마나 세속적 가치에 익숙해져가는지를, 얼마나 많은 것에 익숙해지고 그것을 누리려고 하는지를, 서로의 영역에 아무런 관심도 없이 방치했던가를 깨닫게 하는 바로미터가 될 것이다.

교리는 달라도, 어짜피 싯달타의 가르침도 근본적으로 전세계의 인민을 해방시키기위한 해탈의 길에 모든 것이 있는 거니깐 분명 새로운 길에 스님이 계획하는 아주 '느릿한, 그렇지만 너무나 가슴벅찬' 혁명이 순조롭게 진행되리라고 믿는다.
이제는 나도 안병산이라는 이름은 가슴에 묻어두고, 그를 나직하게 불러본다. 그리고 새로운 존재로서 그를 생각하고 다시 만나기를 희망한다. 스님 반야디빠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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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래는 2001년 동아일보 6월 14일자 기사에 나온 반야디파 스님과 기자의 짧은 대화..

이곳에서 수행 중인 한국 출신 비구인 반야디파 스님(32)은 “나의 미세한 움직임을 놓치지 않고 관찰하다보면 실제 움직이는 것이 나와는 다른 무엇이라는 느낌을 갖게 된다”며 “이런 식으로 ‘무아(無我)’를 말로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체험해보도록 하는 것이 위파사나 수행”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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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말한 것이 위빠사나를 말하는 거였구나.

싯달타의 수행법인 남방의 위파사나가 화두선(한국의 전통 불교의 수행형태)을 은근히 부정하고 화두선 역시 위파사나 수행법을 소승 불교라며 부정하는데, 흠....어짜피 적신성불! 자기에게 맞는 수행법을 고르게 가장 중요하는 법이니라.~

뱀발: 그이가 수행하는 곳은 http://www.pannarama.net/main.php

 

2003.08.12 22: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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