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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선...가시다.

진보넷 블로그. 한 동안 발길을 끊었었다. 그 이유가 무엇이 되든간에, 여유가 없었다.

사실 지난 7월 17일, 밤 전화가 왔었다. 이소선에게서.

 

"잘 있냐? 보고 싶다. 색시도 잘있지? 내가 너무 보고 싶어서 가고 싶지만 꼭 안부만은 전해라. 아이가 나오면 꼭 안겨달라. 몸조리 잘 해라."

"걱정마시라. 근데 몸은 좀 어떤가?"

"몸이 별로 좋진 않아도 괘안타. 걱정마라. 근데 발목이 아프다. 걷지를 못한다."

"걷지 말고 쉬시라. 저번처럼 뜸 같은 놓고 그러지 마라. 병원으로 데려갈테니 내일 내가 휴가 내고 가겠다."

"알았다. 기다리겠다."

"내일 오전에 전순옥과 연락해서 한일병원으로 가자"

 

그렇게 근 30분 가깝게 통화를 하고 다음 날, 난 바쁜 일로 인해서 이소선을 병원에 데리고 가지 못했다. 다행히도, 전순옥이 병원에 데려갔고 발목에 물이 찬 것을 빼고 아침도 잘 자셨단다. 그리고 그날 밤, 전화가 왔다.

 

"쓰러지셨다. 의식이 없다."

 

그리고 병원으로 달려갔고, 이소선은 삶과의 사투를 시작했다. 의식과 무의식과의 경계가 없었다. 응급실에서 심장이상이 있는지 여부를 확인하고 수술을 시작했다. 다행히 심장은 문제가 없었다. 원인을 찾기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이소선은 살아있었다. 다시 응급중환자실로 옮겨져 저체온요법을 시작했다. 담당 의사는 우리에게 그랬다.

 

"워낙 고생을 많이 하신데다 고령이시라 지금 상황이 그리 좋지 않다. 기대는 하지 마라. 하지만 의료진 최선을 다하고 있다."

 

그리고 새벽까지 체온을 앗아가는 치료를 시작했고, 이틀이 지난 후 어머니는 혈색이 돌아오고 장기손상도 많이 호전되었다. 2주가 지나 온몸을 비틀기 시작했고, 꼬집으며 싫은 티를 낼 정도로 의식을 찾으려는 본능적 움직임이 많아졌다. 의사 또한 희망고문이 되지 않을 정도의 조심스런 낙관을, 재활이라는 단어를 썼었다. 그렇게 좋아지려나 싶었다.

 

서울대병원에서 보낸 시간을 정리하고 한일병원으로 옮기기 전, 이소선은 힘주어 스스로 70% 가까이 스스로의 호흡을 시작했고, 난 믿었다. 의식 따윈 버려도 살아만 있어라고. 우리 약속하지 않았나, 이 정권 하에서는 죽지 말자고. 김진숙이도 지금 죽으면 안된다. 우리 모두 이 순간에 살아서 싸워야 하지 않나. 그래서 나, 지금은 안죽는다. 약속한다고. 그래서 그 약속, 믿었다.

 

8월 30일. 나는 첫딸을 낳았다. 그리고 이소선이 가장 먼저 생각났다. 우선 전순옥에게 전화했다.

 

"병원 옮기고 나서 한일병원에서 공격적으로 시술하고 있다. 엄마를 잘 알고 있으니까 엄마도 잘 견디실 거다. 외와 폐에 물은 다 뺐다. 그리고 자기호흡을 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걱정마라. 잘 될거다."

 

그리고 9월 3일. 소식이 왔다. 이제 모든 걸, 정리하고 가볍게 떠나는 날을 정하신 거다. 천만 노동자의 어머니 같은 거 하지 말고, 그저 전태일 만나러 가셨다. 나오는 울음도 결국은 이소선을 질투해서다. 그리도 보고 싶어하는 아들보러 가는데, 우린 너무 오래동안 엄마를 붙잡고 있었다고 생각할게다. 어짜피 병원도 싫어하지 않았나.

 

몇 년전 몸이 좋지 않아 한일병원에 입원 시킨 적이 있었다. 그 때, 엄마는 못견디고 병원복을 입고서 그대로 탈출했지 않나. 얼마나 찾았나. 그때. 그리고 또 한일병원에 입원했을 때, 내게 할 얘기가 있다며 병원 밖으로 나가 병원복 안아꼬깃하게 말아둔 담배를 꺼내, "불 있제?"라고 하며 담배 하나 꺼내 피며, 내게 그러지 않았나.

 

"병원은 너무 갑갑하고 싫다. 담배도 못피게 하고. 또 도망갈까"

 

싫어하는 병원, 떠나는 게 그리도 좋으면 그렇게라도 가야된다면 붙잡지 않을테니, 천천히 가도 되는데. 터져나오는 눈물이 그치지 않아도, 그렇게 가야 된다면 잠시 눈을 뜨고, "가께" 한마디만 해도 되는데. 여하간 4일 뒤면 전태일 만나러 간다. 엄마 좋아하던 문목사도 만난다. 참 고마워하던 조변호사도 만난다. 좋겠다. 엄마는. 슬픈 농담이 살아있는 사람을 더욱 아리게 만들어도, 엄마가 좋다는 거라면 이제는 그렇게 하셔도 된다는 그 말만 하게 된다.

 

-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9월 7일까지. 담담하게 소식을 전합니다. 부의금은 받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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