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뽀르노 보다 더 진한, 그들...(1)

사실 바쁘오. 정말 바쁘오. 요즘. 한때 여기에 글을 올리고, 남의 글을 훔쳐보는 재미로 살았던 그 날들이 참으로 그립기만 하오. 가끔씩 글을 올리고 싶을 때면 몇 시간이고 고민해서 쓰기도 하고, 그냥 갈겨대기도 했지만 요즘에는 글 쓰는 것도 신통하지 않아 남의 글이나 잠시 빌려 읽으며 보낸 시간이 벌써 몇 해 째가 되는 구려.

 

여튼 각설하고. 이건 좀 남겨 둬야 겠다는 생각에 여길 들어오고 나니, 사실 다시 의욕이 사라지는 터라. 어찌할까를 고민하다, 결국 한글에서 한참을 쓰다 지우다를 반복하고 여기에 다시 올려보오. 씨바, 이거 누가 봐달라는 것도 아닌데, 왜 올리고 지랄인지는 모르나. 뭔가 이렇게 올려두면 누군가 공감하는 건 둘째치고 나 혼자 이 공간에서 떠들고 소리치고 나면 속이 좀 후련해질까봐.

 

요즘은 힘이 없어 보지 않으나, 중학교 2학년 때 처음 뽀르노 잡지를 접하게 되었오. 그때 우리 동네는 배타는 아버지를 둔 아이들이 많았다오. 근데 걔네들 집구석에 놀라가면 그런 잡지 한 두 개, 비디오 테이프 한 두 개 쯤은 무슨 손님 접대용으로 다들 장롱 옥상이나 화장대 바닥에 꽂아두고 있었던 터라.

 

여튼 그 때 처음으로 뽀르노 잡지를 보고 난, 남자 아이치고는 굉장한 충격을 받은 걸로 기억되오. 친구는 나에게 호감의 표시로 그걸 보여줬지만, 난 그 때 솔직히 뭔가 모를 죄책감과 동시에 그 죄책감 속에서 피어나는 욕망 사이의 혼란스러운 감정들. 도대체 뭔가. 찝찝한 기분, 너무 조카튼 기분, 보고 싶지 않음과 다시 보고 싶음 속의 이중적이고 복합적인 말로 설명이 안되는.

 

그것도 계속 보면 중독도 되고 무감각해진다면서도...그 시절 그 패닉상태와 같은 마음 속 개떡같은 감정들이 뭔가와 계속 중첩되어 나타나냐 이것이 내 얘기의 핵심이오. 들뢰즈도 모르고, 가타리도 모르고, 보드리야도, 바티이유도 모르는 내가 이걸 휘황찬란하게 야부리까기는 불가능하고. 여튼 다이렉트로 첫 뽀르노 기억 이후 연결되는 유사 찝찝함으로 바로 넘어가오.

 

대학교 3학년때로 기억하오. 총학생회 선거에 관여하게 되면서 우리 선본에 치명적인 악재들이 쏟아지는 가운데, 결국 더러운 꼴 다보고 개망신 당해가며 완주는 했으나. 선거가 끝나고 선본 사무실로 썼던 동아리방에 신문지 깔고 모여 앉아 족발을 시켜놓고 술을 마시며, 남은 감정들을 정리할 때쯤. 같은 과 NL 후배가 우리쪽 선본으로 와서, 여러 어려움이 많았음에도 선거 잘 치러서 고생했다고 그러면서 술을 한 잔 얻어먹고 있었으나.

 

내 기억으로 공대 선배로 기억하노라. 우리 선본방에, 아마도 새벽 2시쯤, 그 개새끼가 똑똑 한 뒤 그냥 들어와 그 후배님의 목덜미를 잡아채 밖으로 데려간 것이 아니오. 화들짝 놀라 우리가 밖으로 나가니, 내가 아직도 정확히 기억하외다.

 

“시팔새꺄, 니가 뭐라구 저기 기웃대고 지랄이야. 선배들 부를때까지 나오지 말랬지?”

 

대답할 겨를도 없이, 순식간 무릎으로 그 후배의 안면을 강타하고 코구멍에서 김치국물이 주르르 흐르니까, 무슨 광주항쟁 진압때가 기억나더이다. 그리고 내가 항의하며 왜 사람을 때리고 그러느냐, 우리 과 후배가 찾아온게 무슨 문제냐, 이러고 그 새끼에게 지랄을 하니, 그 개새끼 하는 얘기가 걸작이라.

 

“입다물어”

 

무서웠소. 정말. 대여섯이 찾아온 선본방에 고요함만 가득했다오. 그리고 어정쩡하게 취한 상태에서 난 집으로 돌아갔다오. 선본방 밖엔 여전히 선혈이 낭자해 있더이다. 한 참 지나 그 후배를 만난 뒤, 약수터에서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그런 매질이 여러 차례라, 걱정하지 말라며 나를 오히려 안심을 시키더이다.

 

그리고 소인 이제 선거판에서 기웃거리지 않겠다, 다짐했었오. 그리고 휴학하고 시민단체에서 들어갔소. 다시 학교에 복학하니, 단과대 선거한답시고 염병들을 하고 있는지라, 그저 학교가면 술이나 처먹고 취해서 돌아오는게 일과라, 별로, 아니 아예 신경도 쓰지 않고 있었다오. 근데 후배 놈 둘이 찾아와서, 선거를 꼭 좀 도와달라고 하는 것이 아니오. 씨바, 내 진짜 선거 안하고 싶은-이미 한 해 전 우리 아버지도 선거(정치와는 무관하오)같은 걸 하게 되었는데, 그걸 도왔으나 결국 패배-맘 굴뚝 같았으나, 마지막 한 번이려니, 하며 목장갑을 끼게 되었오. 마지막 한 번이라. -계속(솔직히 한 번에 다쓰려니, 너무 힘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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