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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3/03
    전임자 문제....모 교수의 말
    공돌
  2. 2007/01/03
    최대노조
    공돌
  3. 2006/08/02
    [펌글]프랑스 청년들 이겼음, 아니 지켰음
    공돌
  4. 2006/08/02
    노사간의 형평
    공돌
  5. 2006/08/02
    노동조합 위기-하나
    공돌
  6. 2006/08/02
    성모자애병원에 대한 하종강의 글
    공돌
  7. 2006/08/02
    노조가 사탄인가 - 성모자애병원
    공돌
  8. 2006/08/02
    조종사 파업에 대한 짧은 생각
    공돌
  9. 2006/08/02
    촛불 아래 죽은 소녀
    공돌

전임자 문제....모 교수의 말

"법조문을 자세히 분석을 해보면 굉장히 문제가 많더라.

 

첫 번째 문제는 근로시간면제심의위원회의 위상이 어떻게 되는가, 거기서 결정한 근로시간 면제한도의 효력이 어떻게 되는가에 관한 규정이 없다. 큰 문제가 발생될 것이다.

이는 시행령에 규정할 수 있는 사항이 아니고 법률의 규정에 있어야 하는데 그 효력이 규정된 바가 없으니까 사법부에서는 그냥 지침이라고 판단할 가능성이 훨씬 높다. 행정명령으로, 단순한 훈시적으로 규정이지 강행적 효력을 가진 것이 아니다. 이것을 위반한 단체협약이 무효가 아니다. 그것이 법의 맹점이다. 정부의 입장에서도 이 제도는 최악의 제도다.

 

우리나라 역사상 군사독재 시절을 포함하여 정부가 노사관계에 직접 개입하는 위원회는 없었다. 이게 처음으로 만들어진 위원회다. 노동위원회도 아니고 노동부 산하에 집단적 노사관계에 국가가 직접 개입한 전례도 없는데 왜 이렇게 했냐라고 하니, 최저임금심의위원회도 정부에 있고. 그런데 최저심의위원회는 전혀 성격이 다르다. 근로자 보호이기 때문에, 이건 집단적 노사관계이므로 그런 측면에서 국가가 직접적으로 노사관계에 개입하는 성격을 가지고 있고, 그렇다면 이것은 가능한 한 제한적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고, 법적 효력에 관한 규정도 없고 처벌규정도 없기 때문에 이를 위반한 단체협약이 무효라는 해석을 할 근거가 없다.

 

유일하게 남는 것이 부당노동행위로 처벌하는 것인데, 근로감독관들을 동원해서, 나에게 중노위 사건이 오면 부당노동행위로 판단할 수 없다. 그것은 부당노동행위가 되려면 지배·개입의사가 있어야 하는데, 노사 간 합의로 한 것을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지배·개입이라고 판단하기 어렵다.

 

이것은 노동부가 마음대로 할 수 있으면 통제가 가능하겠지만 결국은 법원이나 노동위원회에서 판단하는 사항이므로 이것으로 인해 전임자가 줄어들 것이라는 예상은 지나치게 성급한 것이다. 구체적인 법해석과 법률투쟁으로 들어가면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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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대노조

세계 자본주의 권력에 대항하기 위해 미국, 영국, 독일의 노조들이 국경을 넘어 노조원 수 6백만 명의 거대 노조로 통합된다.
  
12월 31일자 <가디언> 인터넷 판은 영국의 제조업부문 최대 노조인 아미쿠스(Amicus)가 독일금속노조(IG-Metall)와 미국의 전미금속노조(USW) 및 전미기계공노조(IAM)와 조직을 통합하는 합의서에 서명했으며 이를 이번 주에 공식 발표한다고 전했다.
 
<가디언>은 국경을 초월한 거대 단일노조의 출현이 노조 지도자들에게는 다국적기업에 맞선 노동자의 연대 전선이라는 의미를 가진다고 풀이했다.
  
데렉 심슨 아미쿠스 사무총장은 “우리의 목표는 세계적 자본의 힘에 대항하기 위해 국경을 뛰어넘는 강력한 단일 노조를 만드는 것이며, 느슨한 연맹체의 성격을 가질 경우 향후 십년 안에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오는 5월 영국의 운수일반노조(TGWU)와 통합하여 2백만 규모의 거대 노조로 탈바꿈하는 아미쿠스가 노조원 240만명인 독일금속노조와 노조원이 각각 120만명과 73만명인 전미금속노조 및 전미기계공노조와 통합할 경우, 노조원 수가 630만명에 달하는 다국적 거대 노조가 출현할 것으로 전망된다.
  
세계화 국면에서 날로 영향력이 커지고 있는 다국적기업에 맞서는 세계 노동조합운동의 전략적 선택이라는 의미를 갖는 영국-독일-미국을 잇는 거대 노조의 출현이 다국적노조의 출현이라는 새로운 노동운동 흐름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 주목된다.

 

레디앙 http://www.redian.org/news/articleView.html?idxno=4544

 

p.s 덩어리만  커지는 것이 아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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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글]프랑스 청년들 이겼음, 아니 지켰음

 

프랑스를 ‘거대한 시위장’으로 만들었던 최초고용계약(CPE)이 10일 결국 철폐됨에 따라 프랑스 정국은 일단 안정을 되찾을 전망이다. 학생·노동계로서는 안정적 고용제도 유지에 성공했지만 실업률 23%에 달하는 청년실업 문제는 숙제로 남게 됐다.

CPE를 주도했던 도미니크 드 빌팽 총리와 레임덕에 빠진 자크 시라크 대통령은 이번 사태로 치명적인 상처를 안게 됐다. 반면 학생·노동계와 물밑협상을 벌여온 집권 대중운동연합(UMP) 니콜라 사르코지 총재는 더욱 부상하게 됐다.

◆백기 든 정부=프랑스 정부는 노동시장 유연화를 이유로 내세운 CPE가 거센 반발을 사는데도 한동안 강행 방침을 고수했다. ‘검은 화요일’로 불리는 총파업으로 공공기능까지 마비되고, 지난해 10월 이민자 소요와 같은 폭력 사태가 재연되자 시라크 대통령은 뒤늦게 수정안을 제시했다.

그러나 학생과 노동계가 CPE가 완전히 철폐될 때까지 시위와 파업을 계속하겠다며 강경하게 맞서자 정부는 백기를 들고 말았다. CPE 철폐는 있을 수 없다고 버티던 빌팽 총리도 “노동법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던 점을 사과한다”고 한발 물러섰다.

CPE 철폐 발표 직후 프랑스 전국학생연합(UNEF)과 노동총동맹(CGT) 대표들은 회동을 갖고 ‘시민의 승리’라며 환영의 뜻을 표하고 오는 17일로 예고했던 총파업은 취소하기로 잠정 합의했다. 그러나 대학생과 고등학생 대표들은 새 고용법이 나올 때까지 정부를 압박하기 위해 11일 파리에서 시위를 하는 등 산발적인 시위를 계속하겠다고 밝혔다.

◆사르코지 독주체제 열리나=이번 사태로 가장 상처를 입은 것은 빌팽 총리다. 지난해 6월 총리가 된 빌팽은 엘리트 이미지로 인기를 끌면서 유력한 차기 대권주자로 주목받아 왔다. 그러나 CPE를 밀어붙이는 과정에서 지지도가 사상 최저인 25%까지 곤두박질쳤다.

시라크 대통령 역시 결정타를 맞았다. CPE를 고집하는 빌팽 총리에게 아무런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해 무능력하다는 질타를 받은 데다가 대통령 직권으로 CPE를 철폐하라는 여론조차 수용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새 노동법은=UMP는 일단 청년 근로자 고용 업체에 대한 정부 지원 증가, 레스토랑 등 일자리가 많은 분야의 인턴제 증가 조치 등을 담은 대안을 이날 의회에 제출했다. 르몽드 등 프랑스 언론은 새 고용법이 만성적 실업사태에 직면한 젊은이, 특히 자격증이나 기술이 없이 졸업한 18∼25세의 구직자에게 초점을 맞출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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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사간의 형평

1..........

 

현대하이스코 비정규직 노동자들,

20미터의 고공 작업로에서 인간의 중력과 몇 방울의 가연성 물질을 담보로 자신들의 처절하고도 지극히 단순한 요구를 11일간 주장했다. 아니 그 요구를 같이 얘기해보자고 했다. 그리고 헌법상에 보장된 권리는 인정해 달라고 했다.

 

2.........

 

그러나 사측은 이러한 요구와는 무관하게 모르쇠로 일관하고, 경찰은 어떻게든 사회의 안정을 위해서 방패와 곤봉, 도끼로 무장하고 언제든지 위태로운 저들의 투쟁을 진압하기 위해서 대기 중이었다. 나는 미시적으로 사측과 경찰을 원망하지 않는다. 다만 그들이 최소한 지킬 것만 지켜주면 나머지의 것은 우리가 책임지기 마련이다.

 

 

나는 사측이 인간적인 욕구를 담보로 농성에 들어간 노동자들에게 인도적 배려는 커녕 사회단체들과 민주노동당의 방문까지도 깡그리 무시한 것도 현대와 동종업계의 자본의 이해가 달려있는 사안에 대해 "협상의 벼랑끝 전술"이라 이해하면 백번 만번 양보해서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문제는 그것이 아니다. 현대하이스코 자본의 벼랑끝 전술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벼랑끝 전술은 물리적 위치에서도 차이가 났다.

 

3. 의문발생

 

과연 일부 학자들이 주장하는 바와 같이 이제는 노동조합과 사용자가 대등한 관계이기 때문에 노동조합에게 시혜적으로 베풀었던 것들을 철회하라고 한다. 그리고 노동조합에게 실력을 쌓으라 한다. 그만큼의 힘을 가졌으니, 법이 더이상 후견적으로 보호할 필요가 없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이런 짱구들이 도대체 어떤 사고방식 속에서 어떠한 관념으로 이러한 문제를 바라보는지 잘 이해되지 않는다.

 

일부 학자들의 시선에는 대기업 노조와 오버랩되는 총파업에 대해서만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리고 기업들의 막대한 손실만, 그것도 정확히 계산되지 않은 추정치에 불과한 손해만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래서 그런지 노동조합이 파업에 들어가게 되면 입는 노동자 개인의 손실과 노동조합의 손실, 그리고 사회적 비난에 따른 손실 등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을 수 밖에 없다.

 

또한 노동조합이 힘을 가졌다고 치자, 그래서 국가의 후견을 더이상 기대하는 것은 노사의 힘의 균형에 반한다고 하자. 그러면 헌법까지 무시하면서 노동조합의 요구가 노동조합의 인정이라는 구호가 등장하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또한 힘의 균형은 힘으로 싸울만한 상대가 되어야 하는데, 하나는 목숨을 담보로 싸우고 있고, 하나는 사무실에서 음식 배달해가며 버티고 있는데 이 둘이 결과적으로 대화에 성공했다고 해서 양자는 대등하니깐 국가의 후견은 필요없다고 할 수는 없다.

 

더군다나 노동조합의 위기논쟁과 관련해서도 일부 학자들이 노동조합의 공공성과 사회운동적 노동조합운동에 대한 방향성을 제시한다. 나는 그것을 노동조합이 꼭 해야하는 시대적 사명이라고 생각한다.

 

노동조합이 영원히 근로조건 개선투쟁에 천착해서는 안되지만 근로조건이 도저히 조건이라기 보다는 족쇄에 가까우면 일단 먹고살기 위한 투쟁을 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리고 조금 살만해지면 주변에 있는 사람들도 챙겨가면서 투쟁도 하고 밥도 같이 먹고 술도 한 잔 사고, 노동단체나 시민단체에 가입도 하고 기부도 좀 하고, 이게 규모가 커지면 노동조합 차원에서 공공성 투쟁을 통해 민중의 삶을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조금씩 전진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드는 것이 아닌가?

 

이 따위 얘기는 나같은 돌머리도 하는데, 문제는 노동조합만 책임을 묻고 왜 사용자에게는 사회적 책임을 묻지않는지 궁금하다. 물론 학자가 아닌 활동가는 문제가 다르다. 학자는 적어도 노동조합과 자본가 양자에게 동일한 무게의 질책과 동시에 동일한 양의 책임과 숙제를 부과해야 한다. 그러나 이건 솔직히 노조만 하구잽이인냥 이리치이고 저리 치이니 나도 한 숨 밖에 안나온다. 솔직히 이건 노동조합이 이제껏 책임을 그리 많이 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단발적 이익에 집착했다는 것이다. 솔직히!

 

현대하이스코 정규직 노동조합. 노동조합의 꼬리표에 씨팔 무슨 정규직 비정규직 이 따위를 언제부터 달았는지 모르지만, 일단 얘기가 딴 쪽으로 샐까봐 입을 틀어막는다. 나는 또 백번 천번 양보해서 정규직 노동조합이 "고용불안"때문에 아무런 투쟁을 하지 못했다는 그들을 이해할 수 있다. 같이 나서서 싸우면 자기 일도 아닌데 내가 피해볼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이 같은 상상은 결국 두 가지의 사고가 전제되어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하나는 같이 투쟁하면 같이 죽는다는 것이고, 둘째는 자기 일이 아니면 나서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건 상식인 듯 보이지만, 상식과 거리가 멀다. 이는 같이 투쟁하기 위해 노동조합을 만든 정규직 노조의 근거를 부인하는 것이 되고, 노동조합은 자기 일에 대해서만, 자기의 이익을 위해 투쟁하는 이익집단에 불과하게 된다. 어처구니가 없는 얘기이다. 고용안정을 어떻게 단단히 약속받았는지는 몰라도 나는 고용안정이 이 땅의 노동운동을 강고하게 만들어 줄거라고 생각치 않는다. 문제는 차별이다. 차별없는 것이 단단한 고용안정보다 낫다고 생각한다. 노동조합이 차별에 대하여 아무런 문제의식이 없는 것은 결과적으로 평등 프로젝트는 안하겠다는 것이지 뭔가!

 

이처럼 모든 것은 형평성의 기술없이는 어느 하나의 비판은 정당하지 못하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목청에서 나오는 금속성의 카랑진 목소리는 한 때 정규직 노동자들이 자신의 근로조건을 위해 투쟁하였던 과거의 목소리와 크게 다르지 않지만, 같이 투쟁할 동지가 있었던 과거에 비해 지금은 같이할 동지가 없다는 것이 너무나 한탄스럽다.

 

파업을 지원하는 100명의 학생들도 고맙지만, 정규직 노동조합이 1명이라도 나와서 그들에게 빵과 우유를 지원하고, 경총에서 1명이라도 나와서 이 문제에 대해서 진정 원만하게 풀어가기 위한 방화수를 준비해 왔다면 오늘날 남한 사회의 저거들 잘묵고 잘살기 이데올로기 공세에서 조금이나마 숨통은 틔일 거라는 볼멘소리를 해본다.

 

2005.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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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조합 위기-하나

노동조합의 위기, 노동운동의 위기..누구는 개소리하지마라, 누구는 위기다 준비하자 등등 많은 얘기들이 나온다. 물론 술자리에서는 더욱 이러한 얘기들은 극에 달한다. 내가 보기에 위기라고 하는 소리나 위기가 아니라고 하는 소리나 별반 다르지 않다. 아무 것도 안하는 것은 둘다 똑같으니깐....말이다.

 

먼저 노동조합은 자본주의 헌법이 보장하는 유일무이한 변혁단체가 될 수 있다. 그러나 그렇게 못하니 나도 어쩔 수는 없다. 다만, 머리 속의 지식도 아이디어도 고갈되어 가니 별 수 없는 모양이다. 사실 과거 10년 전, 우리 노동조합이 근로조건 개선투쟁을 부르짖는 것만큼 사회보장을 함께 외치고, 하청구조의 개선을 위한 투쟁을 조금이라도 했다면 지금의 상황이 조금이라도 나아졌을 지도 모른다. 이것도 개소리다.

 

여하간 나 또한 이런 개소리를 하고 있고, 닭짓을 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내 생각에는 미래에 대한 구상이 전제되지 않는 현재의 비판과 반성을 한마디로 개소리다. 반대로 현재의 비판과 반성은 미래를 위해서 존재하는 보험이라는 얘기다. 비판과 논쟁은 무조건 필요하나, 무슨 이익에 의해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목소리만 큰 놈들이 악악대면 결국 게임오바니 무슨 미래가 있겠는가. 이 소리도 노래를 불러봐도, 시를 써봐도 아무런....아무런 힘이 없는 걸 어쩌겠는가.  

 

그래서 미래를 고민하면서 나는 과감하게 민주노총이 비정규기금으로 모으고 있는 50억의 기금을 다른 곳에 투자하라고 말하고 싶다. 그것이 바로 지금, 미래에 대한 도전이고 준비이기도 하다. 그것을 어디에 투자하라고 하면 또 거품 무는 사람이 많기에 투자한 이후의 효과를 설명하는 것이 나을 듯하다. 그래야 나를 몽상가로 판단하고 딴지 걸지 않으리..

 

뒤에 이어서....

 

2005.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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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모자애병원에 대한 하종강의 글

병원에는 염분을 섭취하면 건강에 해로운 ‘저염 식이 환자’들이 있다. 한 병원에서 저염 식이 환자용 물김치에 누가 소금을 집어넣는 일이 벌어졌다. 실수였는지 고의였는지 아무도 알 수 없는 일이지만, 대부분 경력 10년이 넘은 식당 아줌마들은 “우리들은 그런 실수를 절대로 할 리가 없다. 아무래도 식당 일을 외주로 돌리기 위한 핑계거리를 만들기 위해 누군가 고의로 소금을 집어넣은 것 같다.”고 했다.

아줌마 노동자들은 “실제로 상당히 의심이 되는 사람도 있으니 경찰에 정식으로 수사를 맡기자.”고 했지만, 병원 측에서는 이상하게도 받아들이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아줌마들에게 '살인자'라고 협박을 하더니, 결국 그것이 빌미가 돼 식당 운영은 외주 용역으로 전환됐고 30명 가까이 되는 식당 아줌마 노동자들은 모두 해고당했다. 환자들에게는 약이나 다름없는 치료식을 이윤에 집착할 수밖에 없는 용역업체에 맡긴 것이다.

그 아줌마 노동자들이 복직시켜 달라고 싸운 지 벌써 100일이 넘었다. 수녀님이 원장을 맡고 있는 그 병원 정문 앞에서 피켓을 들고 시위를 할 때마다 아줌마 노동자들은 펑펑 눈물을 흘리며 운다. 수학여행 가야 한다고 손을 내밀던 아이들이 생각나 눈시울이 붉어진다. 식당 일을 해 온 10여년 세월의 서러움이 한꺼번에 복받쳐서 눈물을 뚝뚝 흘리며 일인시위를 한다.  

아줌마 노동자들이 밤 새 병원 담벼락에 붙인 대자보들을 아침마다 수녀들이 나와서 모두 떼어버리면 아줌마 노동자들은 또 다음날 밤 새 대자보를 붙이고 수녀님들은 아침에 또 모두 떼어내는 일이 몇 번이나 되풀이 됐다.

아줌마 노동자들은 점심시간마다 식당 앞에서 선전전을 벌인다. 그분들께 미안하다고 식당을 이용하지 않는 조합원들이 대부분이지만, 관리자들과 의사들은 줄을 서서 밥을 타 먹는다. 병원이 법원으로부터 받아낸 접근금지가처분 때문에 자신의 일터였던 식당 문을 잡아보지도 못한 채, 유리문 너머에서 일하는 용역직원들을 바라보고 있는 아줌마들은 가슴이 찢어진다.

가톨릭 내에서 웬만한 사업장들의 경영 책임자를 두루 거쳤다는, 자타가 인정하는 유능한 CEO인 원장 수녀는 이미 상당한 저명인사가 된 사람이다. 정치권과 검찰과 정부와 청와대 곳곳에 원장 수녀가 동원할 수 있는 막강한 ‘인력 풀’을 갖추고 있다. 가톨릭 신자인 당 대표급 국회의원들, 검찰 수뇌부 간부들, 청와대 요직 인사들과 직접 통화하는 사이라고 소문이 자자한 원장 수녀는 지방노동사무소장이나 경찰서장급 정도는 잘 상대하지도 않는다. 사건을 처리하는 검찰, 경찰, 노동부의 공무원들은 위의 높은 분들 눈치를 보는 기색이 역력하다. 아줌마 노동자들은 흡사 거대한 대한민국 국가권력 전체와 맞서고 있는 형국이다.

노동부 본청의 높은 관리가 원장 수녀를 만나 “노동조합과 좀 협상을 해 보시지요.”라고 권유했을 때, 원장 수녀는 얼굴 표정 하나 흩뜨리지 않은 채, 이렇게 말했다.

“예수님도 마귀와 협상하지 않았습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은 이런 때 하는 말이다. 노동문제에 대한 천박한 인식이 보수적 신앙과 결합하면, 그때에는 정말 대책이 없다. 노동문제를 올바로 이해할 수 있는 공부를 제도권 교육에서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했을 뿐 아니라, 수십 년 세월동안 언론의 그릇된 보도를 통해 얻은 자신의 노동문제 이해 능력이 얼마나 천박한 수준인지 알지 못하는 인사들이 지도자로 행세하는 사회에서는 헌법상의 권리인 노동조합을 부인하는 것을 일류기업의 경영철학인 양 아무런 부끄러움도 없이 자랑하고, 그 경영자에게 대학교에서는 명예철학박사학위를 수여하는 코미디가 벌어질 수밖에 없다.

예수님도 마귀와 협상하지 않았기 때문에 원장 수녀도 노동조합과는 협상할 수 없다? 그 말을 예수님이 들었다면 뭐라고 하셨을까? 종교 지도자들에게 “독사의 자식들아!”라고 외치셨던 예수님의 마음이 이해가 된다.

노동조합에 대한 이해가 이 정도 수준인 나라에서 "맞아 죽을 각오로 하는 친조종사노조 선언"을 했으니, 맞아 죽을 만한 일을 하기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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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가 사탄인가 - 성모자애병원

한 번 물어보자. 지난 청구성심병원 이후, 성심이든 성모든 이런 성(聖)자가 들어가는 거룩하신 자본은 얼마나 잘났는지 모르겠다.

나는 병원 파업에 주목하기 보다는 병원이라는 자본조직 내에서 가장 힘없는 약자가 주님의 보호 아래서 탄압받는 노동자로 전락하는 현실을 주목하고 있다. 결국 수녀도 신부도, 사람을 사람으로 대접하지 않는다면 결국 시발놈에 시발년일 수 밖에 없다.

 

예수님도 마귀와 협상하지 않았다고 하는 성모자애병원 병원장 수녀 시발년은 아무리 생각해도 조지기에는 너무나 큰 권력을 가지고 있다. 모르는 국회의원이 없고, 모르는 부자가 없다. 자기 자신도 막대한 권력을 가지고 있는데, 당연히 노동자는 질 수 밖에 없다. 그러나 노동자 개인은 질 수 있어도 노동자들, 노동조합은 결코 질 수 없는 싸움을 하고 있다.

 

동영상을 보는데, 아무런 자극적이지도 않은 이 동영상을 보는데, 눈알이 찢어지는 고통 속에서 눈물이 비집고 나오는데, 그 안압을 견디자니 분노를 참을 수가 없었다. 너무나 힘들고 아픈 사람은 들은 정작 내가 아닌데, 왜이렇게 감정이 이입되는지 모르겠다. 청구성심 이후 또 여지없이 내가 생각한 노동정책이든, 노동법이든 간에 상식없이는, 인간에 대한 기본적인 배려없이는 다 쓰레기에 불과하다.

 

내 어머니라고 생각해보라. 내 이모, 고모라고 생각해보라. 내 누이라고 생각해보라. 투쟁이라는 낯선 글자를 주먹에 움켜지고 그들이 벽보를 붙이고 시발 수녀들은 떼고. 이런 일상이 반복되는 한 아직도 우리 노동의 희망은 없다. 결국 루신이 말한 것과 같이 희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셈이다. 다만 그것은 땅위의 길과 같이 걸어가면 생기는 것이고 걸어가지 않으면 생기지 않는 것이다.

 

그들은 이미 걸어가고 있다. 노동자들도 이제는 더이상 마귀와 협상하지 않는다. 다만 투쟁으로 돌파할 뿐이다.

 

뱀발: 관련 동영상이 아직도 살아있다.

        mms://media.cast.or.kr/kndic/movie/05_0809_cmc100.wmv

 

        이 사건은 이후 인천지노위에서 부당해고 판정을 받게된다. 그러나 아니나 다를까

        투쟁은 끝이 나지 않게 된다.

 

2005.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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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종사 파업에 대한 짧은 생각

조종사들은 연봉을 많이 받는다.

그래서 연봉이 적은 노동자, 비정규직 노동자, 여성 노동자, 이주 노동자들은 기분이 나쁘다. 그러나 노동기본권은 돈을 많이 벌든, 적게 벌든 간에 평등하게 주어지는 권리이고, 그것을 우리 헌법이 기분상하지만 보장하고 있다.

사회양극화 문제가 조종사들이 파업을 하지 않는다고 양극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그러나 조종사들도 파업이라는 선택에 먼저 우선해야 할 것도 있다는 사실을 간과한 것도 있다. 적어도 바베큐를 먹어도 가려가면서 먹어야 했다. 사실 바베큐 그거 비싼 것도 아니다. 파업이 노동자의 학교고, 사회변혁을 위한 축제가 되기 위해서는 바베큐 이전에 함께 나눠 먹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고민했어야 했다.

같은 직원의 불만이 터져나오는 것은 승객들이 불만을 토로하는 것보다 그 파괴력에 있어 더욱 강하다. 강한 파괴력 만큼 그것을 연대의 힘으로 이용하면 더욱 강했을 것을 나는 너무 안타깝기 그지없다. 하이만이 말했듯이, 노조는 결국 두개의 칼을 가지고 있다. 그 중 '정의 칼'은 결국 불의에 대항하여 이용되어야 한다. 그러나 과연 평등하지 않은 불의를, 이 사회의 노동을 평등하게 하는 정의의 칼로 다스릴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안타깝다.

파업에서는 승리해야 한다. 그러나 파업의 승리는 조종사들이 이긴다고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항공 노동자가 승리해야 진정으로 이기는 것이다. 그래서 이미 이 싸움은 진 싸움이 될 수 밖에 없다. 왜냐면 연대라는 것은 눈을 씻고 찾아 볼 수 없어 그렇다. 냉정하게 말하면 그렇다. 그들의 노동조건의 개선이 승객의 안전을 책임진다는 별 것 아닌 얘기를 왜 공론화하지 못하는지, 나는 그게 안타깝다.

제3자가 되어 바라 볼 수 없는 현실이 안타깝기 그지 없지만, 파업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함께 일하는 노동자들이 지지를 유도하지 못한다면 그들만의 파업에, 그들만의 이기주의에 불과하다. 나는 그러한 이기주의라는 비난이 무섭다.

그렇지만 조종사들의 파업이 정당하지 않다는 주장이 아니라는 것을 밝혀둔다. 그들의 주장이 정당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정당한 주장이 정당하게 받아지려면 그 만큼의 설득력이 있어야 하는데, 그러한 설득력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안타깝다는 것이다.

2005. 7.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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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 아래 죽은 소녀

한전이 원망스럽다. 전력노조가 더 원망스럽다. 발전노조도 원망스럽다. 어짜피 촛불켜놓고 죽을 목숨이라면 이미 죽었어야 했다. 그러나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촛불을 산 그녀가 가엽지도 않은가?

예전에 내가 누차 얘기한 적이 있었다. 한전과 노조가 함께 단전된 생계빈곤형 가정에 전력을 공급하자고 말이다. 이제 회사도, 노조도 같이 사는 기본 전제라고 했다. 특히, 전력은 우리나라 산업의 기간산업자 동시에 필수공익사업이다. 이만큼 공익을 위해 앞장서야 할 사람들이 더 공격을 받게 되었으니 안타깝기 그지없다.

프랑스는 에너지에 대한 기본권을 인정한다. 내용은 이렇다.

'곤궁 상태로 특별한 곤란에 직면해 있는 이들은 국가로부터 가스, 수도, 전기, 전화 서비스를 받고 있는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보조를 받을 권리를 가진다'

이런 이유로 프랑스는 전력 회사, 가스 회사, 수도 공급 회사 등과 협정을 체결하여 '에너지 연대 기금'으로 빈곤층에게 전력을 공급한다.
그런데 사실 이것을 사례들 필요도 없다. 법적 근거를 찾으려면 프랑스에서 찾을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 찾으면 된다. 그리고 산자부 돌망치들은 별로 신경쓰지 않았으면 한다. 우리만 개소리하지 않으면 된다.

우리 헌법 10조는 기본적인 인권과 그것을 누릴 수 있도록 보장하고 있고, 인간답게 살게끔 국가가 보장해주도록 의무 짓고 있다. 이건 좀 추상적이라면, 헌법 34조는 아예 더 구체화된다. 1항부터 5항까지는 인간답게 살게끔 해주겠다. 바로 이소리다.

3, 4항의 경우 사회보장, 사회복지를 증진하고, 노인과 청소년의 복지를 보장하겠다고 한다. 누가? 국가가. 헌법 35조도 인간이 건강하게, 쾌적하게 살 권리를 보장한다. 헌법 37조 1항은 이외에도 열거되지 않는 권리를 보장한다. 그렇다면 에너지를 보장하는 근거는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가?

산자부는 없다고 한다. 돌탱크들이다. 상식적으로 봐라. 못사는 사람 사회부조하고, 국민기초생활보장하고, 빈곤층 지원하고. 이게 전부 자원봉사활동인가? 소위 우리가 맨날 이 나라 조선을 좆같이 안되어 잇는 것 중에 하나를 꼽는 바로 '사회보장'이다. 사회를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가 보장해주겠다는 거다. 물론 세금내면 말이다.

다만 조건이 있다. 세금 낼 형편이 안되면 갂아주거나 면제해주기도 한다. 일정한 나이에 이르거나 돈이 생긴다 싶으면 세금을 얄전없이 거두기 때문이다.

또 한가지, 민주노동당에 의문이 있다. 이게 정당이니깐 법안발의를 하는 것 같은데. 적어도 법안 발의를 하려면 가능성이 있어야 한다. 그러면 한전과 노조 불러놓고 기금조성하자, 안그러면 국정감사때 한 번 보자, 이렇게 조져야 먼저 시스템을 만들 조건을 완성시킬 것이고 그에 따라서 법제도로 온전히 정립될 수 있다. 그런데 될 지 안될지 모르는 법안 던져놓고 사람이 죽었다, 이렇게 하면 결국 선동밖에 안되는 것이고, 선동도 제대로 안되는 것이다.

여하간 오늘 여중생의 안타까운 죽음을 접하고, 나는 눈물이 난다. 너무나 슬프다. 룸쌀롱에서 돈지랄하는 인간들이 뒤지는 것은 그랬구나 해도, 이건 도저히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일이다.

한전의 올해 전기요금 체납액이 340억 정도다. 이건 큰 액수가 아니다. 제발 다른 것에 비교하지 않도록 해달라. 나는 이것이 더 갑갑하다. 참고로 내 개인적으로 볼 때 방법이 있다. 도저히 안되면 이 방법을 쓸수는 있다.

"로또 기금을 활용하라."

2005.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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