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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사간의 형평

1..........

 

현대하이스코 비정규직 노동자들,

20미터의 고공 작업로에서 인간의 중력과 몇 방울의 가연성 물질을 담보로 자신들의 처절하고도 지극히 단순한 요구를 11일간 주장했다. 아니 그 요구를 같이 얘기해보자고 했다. 그리고 헌법상에 보장된 권리는 인정해 달라고 했다.

 

2.........

 

그러나 사측은 이러한 요구와는 무관하게 모르쇠로 일관하고, 경찰은 어떻게든 사회의 안정을 위해서 방패와 곤봉, 도끼로 무장하고 언제든지 위태로운 저들의 투쟁을 진압하기 위해서 대기 중이었다. 나는 미시적으로 사측과 경찰을 원망하지 않는다. 다만 그들이 최소한 지킬 것만 지켜주면 나머지의 것은 우리가 책임지기 마련이다.

 

 

나는 사측이 인간적인 욕구를 담보로 농성에 들어간 노동자들에게 인도적 배려는 커녕 사회단체들과 민주노동당의 방문까지도 깡그리 무시한 것도 현대와 동종업계의 자본의 이해가 달려있는 사안에 대해 "협상의 벼랑끝 전술"이라 이해하면 백번 만번 양보해서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문제는 그것이 아니다. 현대하이스코 자본의 벼랑끝 전술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벼랑끝 전술은 물리적 위치에서도 차이가 났다.

 

3. 의문발생

 

과연 일부 학자들이 주장하는 바와 같이 이제는 노동조합과 사용자가 대등한 관계이기 때문에 노동조합에게 시혜적으로 베풀었던 것들을 철회하라고 한다. 그리고 노동조합에게 실력을 쌓으라 한다. 그만큼의 힘을 가졌으니, 법이 더이상 후견적으로 보호할 필요가 없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이런 짱구들이 도대체 어떤 사고방식 속에서 어떠한 관념으로 이러한 문제를 바라보는지 잘 이해되지 않는다.

 

일부 학자들의 시선에는 대기업 노조와 오버랩되는 총파업에 대해서만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리고 기업들의 막대한 손실만, 그것도 정확히 계산되지 않은 추정치에 불과한 손해만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래서 그런지 노동조합이 파업에 들어가게 되면 입는 노동자 개인의 손실과 노동조합의 손실, 그리고 사회적 비난에 따른 손실 등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을 수 밖에 없다.

 

또한 노동조합이 힘을 가졌다고 치자, 그래서 국가의 후견을 더이상 기대하는 것은 노사의 힘의 균형에 반한다고 하자. 그러면 헌법까지 무시하면서 노동조합의 요구가 노동조합의 인정이라는 구호가 등장하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또한 힘의 균형은 힘으로 싸울만한 상대가 되어야 하는데, 하나는 목숨을 담보로 싸우고 있고, 하나는 사무실에서 음식 배달해가며 버티고 있는데 이 둘이 결과적으로 대화에 성공했다고 해서 양자는 대등하니깐 국가의 후견은 필요없다고 할 수는 없다.

 

더군다나 노동조합의 위기논쟁과 관련해서도 일부 학자들이 노동조합의 공공성과 사회운동적 노동조합운동에 대한 방향성을 제시한다. 나는 그것을 노동조합이 꼭 해야하는 시대적 사명이라고 생각한다.

 

노동조합이 영원히 근로조건 개선투쟁에 천착해서는 안되지만 근로조건이 도저히 조건이라기 보다는 족쇄에 가까우면 일단 먹고살기 위한 투쟁을 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리고 조금 살만해지면 주변에 있는 사람들도 챙겨가면서 투쟁도 하고 밥도 같이 먹고 술도 한 잔 사고, 노동단체나 시민단체에 가입도 하고 기부도 좀 하고, 이게 규모가 커지면 노동조합 차원에서 공공성 투쟁을 통해 민중의 삶을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조금씩 전진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드는 것이 아닌가?

 

이 따위 얘기는 나같은 돌머리도 하는데, 문제는 노동조합만 책임을 묻고 왜 사용자에게는 사회적 책임을 묻지않는지 궁금하다. 물론 학자가 아닌 활동가는 문제가 다르다. 학자는 적어도 노동조합과 자본가 양자에게 동일한 무게의 질책과 동시에 동일한 양의 책임과 숙제를 부과해야 한다. 그러나 이건 솔직히 노조만 하구잽이인냥 이리치이고 저리 치이니 나도 한 숨 밖에 안나온다. 솔직히 이건 노동조합이 이제껏 책임을 그리 많이 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단발적 이익에 집착했다는 것이다. 솔직히!

 

현대하이스코 정규직 노동조합. 노동조합의 꼬리표에 씨팔 무슨 정규직 비정규직 이 따위를 언제부터 달았는지 모르지만, 일단 얘기가 딴 쪽으로 샐까봐 입을 틀어막는다. 나는 또 백번 천번 양보해서 정규직 노동조합이 "고용불안"때문에 아무런 투쟁을 하지 못했다는 그들을 이해할 수 있다. 같이 나서서 싸우면 자기 일도 아닌데 내가 피해볼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이 같은 상상은 결국 두 가지의 사고가 전제되어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하나는 같이 투쟁하면 같이 죽는다는 것이고, 둘째는 자기 일이 아니면 나서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건 상식인 듯 보이지만, 상식과 거리가 멀다. 이는 같이 투쟁하기 위해 노동조합을 만든 정규직 노조의 근거를 부인하는 것이 되고, 노동조합은 자기 일에 대해서만, 자기의 이익을 위해 투쟁하는 이익집단에 불과하게 된다. 어처구니가 없는 얘기이다. 고용안정을 어떻게 단단히 약속받았는지는 몰라도 나는 고용안정이 이 땅의 노동운동을 강고하게 만들어 줄거라고 생각치 않는다. 문제는 차별이다. 차별없는 것이 단단한 고용안정보다 낫다고 생각한다. 노동조합이 차별에 대하여 아무런 문제의식이 없는 것은 결과적으로 평등 프로젝트는 안하겠다는 것이지 뭔가!

 

이처럼 모든 것은 형평성의 기술없이는 어느 하나의 비판은 정당하지 못하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목청에서 나오는 금속성의 카랑진 목소리는 한 때 정규직 노동자들이 자신의 근로조건을 위해 투쟁하였던 과거의 목소리와 크게 다르지 않지만, 같이 투쟁할 동지가 있었던 과거에 비해 지금은 같이할 동지가 없다는 것이 너무나 한탄스럽다.

 

파업을 지원하는 100명의 학생들도 고맙지만, 정규직 노동조합이 1명이라도 나와서 그들에게 빵과 우유를 지원하고, 경총에서 1명이라도 나와서 이 문제에 대해서 진정 원만하게 풀어가기 위한 방화수를 준비해 왔다면 오늘날 남한 사회의 저거들 잘묵고 잘살기 이데올로기 공세에서 조금이나마 숨통은 틔일 거라는 볼멘소리를 해본다.

 

2005.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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