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법원 비판

세계는 어떠한 관점에 따라서 보느냐에 따라 그 대상이 달라 보이는
법입니다. 그러나 관점의 문제가 첨예하게 대립되는 '법학'이라는 사회과학은 다른 여타의 학문과 달리 '규범학'이기에 더욱더 지배와 종속, 국가와 개인의 대립지점이 명확하다는 것이겠지요.

그러나 사회적 합의이든 뭐든 간에 일단 현실 속에는 엄연하게 '법'이 있고 그 법은 정의와 평등을 잣대로 사회 속의 법현상을 평가하고 판단합니다. 여러분도 잘 알다시피 희랍신화에 등장하는 '디케'를 잘 아실껍니다. 정의의 여신상이라고도 불리는 이 여신은 한 손에 천징을,다른 한 손에는 날카로운 칼을 쥐고 있습니다.

법을 평등하게 적용하고, 그 적용의 결과에 대한 단호한 판단을 하는 것 또한 중요합니다. 그러나 디케의 눈에는 안대가 가려져 있습니다. 그건 왜일까요? 왜 눈을 가려 놓았을까요?

지난 2월에도 "정리해고나 사업조직의 통폐합 등 기업의 구조조정의 실시 여부는 경영주체에 의한 고도의 경영상 결단에 속하는 사항으로서 이는 원칙적으로 단체교섭의 대상이 될 수 없다"며,'정리해고를 저지 하기 위한 파업은 불법'으로 규정한 대법원 판례뿐만 아니라 이번 헌법재판소의 '직권중재 합헌'이라는 판결도 우울하기 짝이 없습니다.

미국의 페니미스트이자 평론가인 풀러는 '법률은 인간을 지배하고 이성은 법률을 지배한다'고 하였습니다. 지금은 법률이 인간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법률은 약자를 지배하고 판사가 법률을 지배하는 것 같습니다. 도대체 노동자를 위한 법원의 판단은 이제 기대하다는 것 자체가 신파조입니다. 날씨는 맑은데 우울하군요.

어떤 것이 공정한 판결이든 간에 판결 또한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고 그 변화에 따라 사람들의 의식도 변화합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 변화가 일방의 변화만 의식한 나머지 배부른 변화를 기준으로 배고픈현실은 안중에도 없다는 말씀이죠.

특히 이런 상태에서 차후에 노동법원이 만들어지기라도 한다면 더 절망적일 것 같습니다. 노동법원이라고 개업했는데 노동자들 먹을 거라고는 하나도 없다는 말씀입니다. 모두들 자기들 실속 챙기기에 더 여념이 없을게 뻔합니다. '안돼 못줘'이러면 정말 답 없습니다. 대법원판사들이 너무 편중된 인사라 노동법원 만들자는 건데....

차라리 노동자들이 법률이라는 객관적 심판대보다는 정부와 맞짱떠서 조금씩 얻어내는 게 더욱더 합리적일 겁니다. 언론의 비난에 집중포화되고 국민에게 또다른 '붉은 머리띠 컴플렉스'를 심어주는 것이 차라리 법원에 기대하는 일련의 판단보다는 나을 거라는 생각입니다.

그리고...
이번 화물연대 파업...신문과 뉴스를 보고 거의 절망적이었습니다.
노동자는 요구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 너무나 많다는 것. 오직 못살아갈 권리만을 가져야 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우리 국민의 절반이 노동잡니다. 기업가라고 경영자라고 말하는 인간들은 몇 안됩니다. 누구의 표현을 빌리면 '한줌'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모두 기업가의 관점과 사고에서 모든 것을 주입받고 그에 따라 생각하는 것 아닐까요? 하종강의 말대로 초등학교 교실에, 중학교 교실에 고등학교 교실에, 한 반 50명 정도의 학생 중에 40명이상은 노동자가 될것이고 노동자의 아내가 될 것이며, 노동자의 남편이 될 사람들인데도 누구도 노동자의 권리와 노동자가 어떠한 존재인지 말해주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아버지가 급박한 현실에 파업을 해도, 아들은 그것을 말리고. 아들이 파업을 한다면 아버지가 어머니가 그것을 말리는 현실....물론 회사의 협박과 회유의 시나리오가 있겠지만. 꼭 시나리오 대로만 되라는 법도 없습니다.

오늘은 너무 답답해서 주저리 주저리 여기다 글을 올려봅니다. 아~답답합니다.

2003/05/24 19:38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