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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7/04/27
    햇살
    공돌
  2. 2007/04/25
    기도
    공돌
  3. 2007/04/25
    본능
    공돌
  4. 2007/04/24
    The Pursuit of Happyn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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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2007/04/23
    국기에 대한 맹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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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2007/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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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2007/04/13
    노조혐오증 그리고 자기만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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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2007/04/13
    진보넷 테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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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2007/04/12
    운동선수
    공돌
  10. 2007/04/12
    활동가
    공돌

햇살

한겨레 18도에 소개된 두권의 책, 공교롭게 두 면을 가득채운 책 소개의 공통점.

 

"반야"라는 책의 주인공 무녀(巫女) 반야.

 

"빼어난 외모의 소유자인 그에게는 숱한 사내들이 부나방처럼 찾아든다. 전생에 한결같이 악연으로 맺어졌던 그 사내들과 반야는 현생에서도 사랑과 증오의 아슬아슬한 곡예를..."

 

"에르미타"에서 주인공 에르미타.

 

"(어머니)코시타는 미군장교와 결혼하여 필리핀으로 떠난다. 홀로 남겨진 에르미타는...집안의 하인들과 다를 바 없다.....가난과 외로움 속에서 놀라울 만큼 아름다운 숙녀로 성장한 에르미타는 결국 '고급창녀'의 길로 접어든다.....에르미타가 자신의 몸를 무기로 돈과 권력을 획득....친어머니 콘시타와 이모 펠리시타스, 외삼촌 호셀리토 삼형제에게 가하는 복수극..."

여기서 드는 궁금증. 미모가 없으면 복수를 못하는가. 미모는 다양하게 생길 수 있는 조합 중에 하나일 뿐인데. 복수활극이라도 대부분 통속적일 수 밖에 없지만, 뭔가 치밀하게 준비해서 그러한 복수의 늪에 어쩔 수 없이 빨려가는 설정보다 미모 한 방으로 모든게 끝나는 건 뭔가 부족하다는 느낌이다.

 

차라리 타고난 미모를 성형수술로 제거하고, 낯선 얼굴로 복수를 준비하는, 결국 복수하는 이의 실체를 알아가는 과정을 묘사하는 편이 나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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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하느님도 웃어버린 아이들의 기도.

하느님, 아이에게 엄마와 아빠가 한 사람씩 있다는 건 참 다행스러운 일이에요. 그걸 생각해 내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셨나요? - 미셸 ㅡ

하느님, 돈이 많으신 분이세요? 아니면 그냥 유명하기만 하신 건가요? - 스티븐 ㅡ

사랑하는 하느님, 오른쪽 뺨을 맞으면 왼쪽 뺨을 대라는 건 알겠어요. 그런데 하느님은 여동생이 눈을 찌르면 어떻게 하시겠어요? - 사랑을 담아서 데레사 ㅡ

하느님, 우리 옆집 사람들은 맨날 소리를 지르며 싸움만 해요. 아주 사이가 좋은 친구끼리만 결혼하게 해주세요. - 난 -

눈이 너무 많이 와서 학교에 못 갔던 날 있잖아요. 기억하세요? 한 번만 더 그랬으면 좋겠어요. - 가이 ㅡ

하느님 하느님은 천사들에게 일을 전부 시키시나요? 우리 엄마는 우리들이 엄마의 천사래요. 그래서 우리들한테 심부름을 다 시키나봐요. - 사랑을 담아서 마리아 -

하느님이 무슨 일을 하시는지 주일학교에서 배웠어요. 그런데 쉬는 날엔 누가 그 일들을 하나요? - 제인 ㅡ

하느님, 남동생이 태어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데 제가 정말 갖고 싶다고 기도한 건 강아지예요. - 죠이스 -

사랑하는 하느님, 왜 새로운 동물을 만들지 않으세요? 지금 있는 동물들은 너무 오래된 것 뿐이에요. - 죠니 -

하느님, 저번 주에는 비가 삼일 동안이나 계속 내렸어요. 노아의 방주처럼 될까 봐 걱정했었어요. 하느님은 노아의 방주 안에 뭐든지 두 마리씩만 넣으라고 하셨지요? 우리 집에는 고양이가 세 마리 있거든요. - 도나로부터 -

하느님, 사람을 죽게 하고 또 사람을 만드는 대신, 지금 있는 사람을 그대로 놔두는 건 어떻겠어요? - 제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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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능

술을 먹고도 다시 먹고 싶은 귀주본능...

놈들이 집에 보내도 다시 술집으로 찾아가 끝을 보려는 귀주본능...

 

그게 요즘 잘 살아나지 않는다. 요즘 몸땡이가 별로 착하지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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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ursuit of Happyness

 

행복을 찾아서...

 

윌스미스가 주연인 그 영화..오늘은 너무 우울해서 그 영화를 봤다. 50분이 넘어가는 순간까지 확 꺼버릴까 생각했다. 너무 불행해 보였기 때문이다. 물론 그 영화가 예상하는 미국식의 행복의 결말도 싫었다.

 

그러나 그러나 영화가 손짓하는 대로 따라 갔다. 그 영화에서 난 두 가지를 생각하게 된다. 하나는 영화 속에 등장하는 내용이고, 하나는 생각하기 싫은 것이다.

 

1. 행복을 찾아서...극중 크리스 가드너(윌스미스)의 린다(마누라, 이름 모름)가 자길 떠나겠다는 마지막 인사를 비오는 날 전화부스에서 듣게 되는 장면. 그리고 제퍼슨이 그려진 동전을 본다. 그가 초안했던 "행복추구권". 그렇다. 행복은 누구도 가질 수 없기 때문에 추구하는 것일 뿐.

 

행복은 빼앗아 가기도 하지만, 쉽게 주어지지도 않는 것이다. 그러나 행복은 행운이라는 것과 달라서 자신의 노력에 따라 얻게 되는 그 무엇이 될 수도 있다. 문제는 정신이다. 그냥 자신의 삶에 안주하는 것을 자위하면서 살아도 행복이 될 수도는 있지만, 그건 착각이다. 행복이라는 것은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조건을 최대한 활용할 때, 그 이상의 가치가 주어질 때 붙여질 수 있는 이름이다.

 

생각이 달라져야, 행복도 온다. 한대수의 책을 읽으며 느꼈다. 음악으로 무언가를 표현하는 이는 뭔가가 부족했기 때문에 음악을 통한 행복을 얻을 수 있다고 말이다. 레논도 엄마없는 설움이, 한대수도 옆에 아빠가 없었던 기억 때문에....그래서 행복은 느리게 찾아온다. 아주 느리게. 노력하며 기다려야 하는 법이다.

 

2. 진보도 마찬가지다. 서두를 때, 과오를 범하고 서로 싸우게 된다. 정말 말하고 싶지 않다. 김주익 열사 이후, 난 내 부모님의 집인 영도의 한진중공업이라는 회사만 보면 오금이 저린다. 아직도 그의 육성과 그이를 추모하는 음성을 들으면 이성으로 조절할 수 없는 상태에서 눈구멍에서 눈물이 흐른다.

얼마전 허세욱씨도 마찬가지다. 난 그의 진보를 믿는다. 원래 진보는 느리고 천천히 가는 것이다. 짜증날 정도로 천천히 가면서 갑자기 뒤로 밀려나기도 한다. 그러나 진보는 앞으로 간다는 믿음으로 간다. 그러나 허세욱씨는 왜 혼자만 빨리가려고 했는지...안타깝기 그지없다.

 

그런 이들을 이제는 막아야 하고, 내가 할 수 있는 한 막고 싶다. 신영복은 석과불식(碩果不食)이라고 했다. 진보의 씨앗이 살아야 진보가 성장한다. 마지막 남은 씨앗까지 태울 때 남는 것은 재밖에 없다. 타버린 재 속에는 생명이 없다. 그들이 가버리면 나 같은 사람은 부끄러워서, 못견뎌서 어떻게 살란 말인가.  

 

그래도 마지막에 그가 거친 숨을, 전태일이 거친 숨을, 김주익이 거친 숨을 내 쉬며 마지막 한 숨을 내쉴 때 마지막으로 가진 한 알의 씨앗을 건네고 갔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아무리 그렇게 생각해도 나는  그런 건 이제는 싫다. 살아라. 살아라. 한 알씩 살아남는 진보의 씨앗이 아니라 풍성하게 민들레처럼, 억세처럼, 수만개의 씨앗을 뿌리며 살아라.

 

나와 나의 동지들을 위해, 그 행복을 위해 자신의 행복을 뿌린 그들을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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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기에 대한 맹세

하지말자.

 

http://www.hani.co.kr/section-021106000/2007/04/021106000200704120655084.html

 

이거 1년에 몇 번 할 일이 생기기도 하는데, 나는 하지 않는다. 불편하기 때문이다.

깃발에 대고, 느끼한 아저씨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왼쪽 가슴팍에 손을 올려두는 일 자체가 짜증난다.

뭐야. 동상도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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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온다

비가 오는 날은 늘 기분이 좋은데, 오늘은 되려 차분해 진다.

금요일인데, 기분이 더 처지는 이유는 뭘까? 그래서 after hour를 듣고 있다.

 

http://blog.naver.com/soul0229?Redirect=Log&logNo=19136022

 

요즘 내 자신을 객관하기가 어렵다. 특히 한 몇 일 감기몸살 이후에 더욱 그런 것 같다. 자신을 객관한다는 것은 적어도 자신이 균형점에서 이탈하는 것을 방지한다. 그리고 그럴 때 즈음에는 경고음을 보내는 등의 약간은 긴장상태를 유지하게끔 한다.

 

또한 사물을 대하는 태도에 있어서도 전략이나 전술보다는 본질에 가까운 것을 생각하려고 노력하고, 또한 논리와 직관을 병행하면서 사물의 내면을 나의 통찰로 꿰뚫어 보게끔 한다. 그러한 일들은 공부를 통해서 가능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공부는 늘 덜 달궈지고 연마된 상태의 무기이며, 그렇다고 해서 최종적인 완성된 무기가 될 때까지 숨기고 있을 필요는 없는 것이다. 그냥 들고 나와 여기저기 칼질하라는 것이 아니라 우선 미흡하나마 만든 무기를 바윗돌에라도 힘꼿 내리쳐 봐야 할 것이다. 현실이라는 바윗돌에 나의 미흡한 무기가 깨어지면 다시 시작하고, 또 다시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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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혐오증 그리고 자기만족

이력서 따위에 해고경력까지 써넣으라는 이야기는 입사를 포기하고, 장난삼아 입사지원해보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회사와 법원은 그 까지도 요구하고 있다.

 

이해가 가지 않으나, 심증으로는 충분히 왜 그런지 추적할 수 있을 듯하다. 이력서, 그거 별거 없다. 법원은 신뢰관계의 징표로 보지만 사실 그것도 개소리다. 사장이 이력서를 제본해서 형광펜으로 그어가는 이력서의 고고학자가 아닌 이상, 이력서는 입사시 제출하면 끝이다. 그러나 이력서를 제 아무리 쪼대로 휘갈겨도 결국 그의 행동이 노조와 관련이 있을 때에야 제 위력을 가진다. 대학졸업을 빼버린, 최종학력을 기재하지 않은 이력서는 '사칭'이라는 이유로 그의 발목을 붙들고, 공장 담너머로 멀리 던져버린다.

 

결국 이력서에서 최종학력을 빼버린 노동자, 소위 위장취업자들을 검색하고 회사 밖으로 쫓아내는 일이 아직도 비일비재하다. 회사와 법원의 이러한 의식 근간에는 노조혐오증이라는 똬리가 봄 철 뱀새끼들이 동면에서 깨어낼 때 처럼 뒤엉켜있다.

 

아직도 회사와 법원은 "노조혐오증"이라는 반공주의의 적자를 안고 젖을 먹이고 있다.

 

그러나 한편, 학생운동 물 좀 드셨다는 분들이 '노동해방'이니 하면서 공장에 들어가려 안간힘을 쓰는 것을 보면 참으로 안타깝기 그지없다. 10년전에는 불가피했으나, 지금은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된다. 현장에는 아직도 의견이 많고, 그 의견으로 똘똘 뭉친 집단이 충분하다. 하나의 의견을 보태는 일은 공장 안의 노동이 아니더라도 집에서도, 사무실에서도, 1달에 한 번 이주노동자의 집에서도 가능한 일이다.

 

학생운동의 열정과 이상만으로 세계를 바꿀 수는 없다. 머리 속에는 계몽으로 가득찬 채, 몸만 회사잠바와 노조조끼를 걸쳐서는 희망을 찾을 수 없다. 그건 자기만족의 또다른 표현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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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넷 테러

 

불로그에 오만잡다한 쓰레기 같은 내용들이 엄습하고 있다. 거의 테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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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선수

http://www.hani.co.kr/arti/international/china/202430.html

 

그들이 금빛 메달을 손에 쥐었다는 사실로 남들보다 잘 살아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더군다나 노점상을 한다는 자체도 문제되지 않는다. 다만 한겨레의 기사를 보면서 무엇보다 착찹한 것은,  운동을 업으로 삼아온 이들의 미래가 보장되지 못한다는 사실과 더불어 그들이 늘 '사기'와 '강박'에 놓여있다는 사실이다.

 

메달 한 번 걸어본 사람 치고 무난하게 사는 사람 몇이나 있을까. 마누라 도망가고, 돈 떼이고, 여기저기 돈 빌려 갚지 못하다 다시 늙은 몸을 이끌고 거리의 링으로, 삶의 격투장으로 전전하는 이들을 생각해봐야 되지 않겠는가.

 

열광할 때는 언제이고, 길바닥에 주저앉으면 혀를 차대는 것이 현실이다. 그들 덕분에 뭔가 열광했다면, 그들이 제대로 살 수 있는 제도를 보장할 길을 열어 주어야 한다.

 

'마린 보이'도 평생 물 속에서 명예만 찾을 수 없고, '봉달이'도 아스팔트 바닥에만 몸을 올려둘 수는 없을 것이다. 국민과 국가가 열광했다면 그 댓가를 치루는 것이 옳다. 노동자도 산업의 역군이니 뭐니 하지만, 제도적 보장없이는 이 현실에서 살아남기가 어려웠다는 점, 운동선수도 자신의 노동력으로 열광이라는 산물을 생산해냈다는 것. 기억하자.

 

아래 글은 예전에 잡지사에 넘기려다 그만 둔 글인데, 생각이 나서 갈무리해 둔다.

 

류승완 감독의 ‘주먹이 운다’.

먼저 살펴볼 영화. 류승완 감독의 ‘주먹이 운다(2005)’.

아마도 류승완 감독의 영화 중에 유일하게 ‘발차기’가 없는 영화일 것이다. 그렇다고 이 영화, 물론 권투는 하지만 권투영화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권투경기 장면이 썩 재미있는 것도 아니다. 최민식의 몸이 무거워 보이기까지 한다. ‘올드보이’에서 만두를 15년간 먹어서 그런가.

 

여하간 이 영화는 신인왕전이라는 계기를 인생의 터닝 포인트로 삼고 새로운 인생역전을 꿈꾸는 두 남자의 이야기가 중심이다.

 

중심인물로 등장하는 태식(최민식)과 상환(류승범). 영화가 끝나도 그들의 인생에는 몇 번의 터닝 포인트가 더 있을지 모른다. 영화 속 134분의 삶은 끝을 맺지만 현실의 삶은 계속되기 때문이다. 영상언어가 현실의 삶에 던져주는 메시지. 이 영화에서는 관객의 아가미를 끝까지 틀어쥐고 호흡을 곤란케 하기도 한다.   

 


강태식

43살 태식이는 북경아시안게임 복싱 은메달리스트다. 허나 도박 좋아해서 돈 다잃고 무허가 부지에 세운 공장마저 불나서 빈털터리 신세가 된 강태식. 결국 길거리에서 자영업자로 나선다. 태식의 사업아이템.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다. 만원에 ‘남자는 1분, 여자는 2분’ 동안 인간샌드백 되기. 자기 실력 믿고서 하는 건 말릴 수 없다. 그러나 말려야 한다. 실연당한 ‘최홍만’같은 이가 태식에게 만원을 건네는 순간 사업은 자동적으로 접히게 마련이다. 물론 인생도 자연스레 접힐 수 있다. 더군다나 남의 집 가게 앞에서 그런 장사하면 누가 좋아하겠나. 자, 여기서부터 영화 속의 인물을 현실로 끄집어 내보자. 나의 친구라고 생각하고 영화 속의 인물을 만나보자.

 

태식은 일단 빚으로 인해 압류를 당한 상황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빚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정 사정이 여의치 못하면 ‘파산신청’을 할 수도 있다. 돈 안드는 법률구조공단에 가서 일단 상담을 좀 받을 필요가 있다. 특히 도박빚. 요거요거 문제다. 그러나 걱정말라. 도박빚이야 민법 제746조에 의해 ‘불법원인급여’로 인정될 수 있기 때문에 잃은 돈을 받을 수는 없지만 진 빚을 갚을 필요도 없다.

 

다음으로 태식이 고용보험에 가입을 했더라면 실업급여라도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보아하니 실업급여는 물건너 간 것 같다. 실업급여를 받으려면 퇴직전 18개월 중에 180일 이상 고용보험에 가입했어야 하는데. 지금 상황에서는 실업급여는 물건너 간 것 같고.

 

일반적으로 운동선수들이 세계대회 등을 출전해서 메달을 목에 걸게 되면 대회의 규모와 메달색깔에 따라서 연금액이 달라진다. 휴, 태식이는 지질이도 복이 없다. 올림픽 동메달이면 20점으로 간주해서 한 달에 약 30만 정도의 연금이 지급된다. 근데 아시안 게임의 경우 동메달이면 1점으로 간주한다. 따라서 연금혜택 없다. 아시안 게임에서 동메달만 20개는 따야 겨우 한 달에 30만원 받는다. 인생, 꼬여도 어떻게 이렇게 꼬이냐.

 

태식은 직장을 구해야 한다. 물론 신인왕전 끝나고 좀 쉬어야 된다. 쥐어 터진 얼굴하고 일터로 나갈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우선 실업자 태식은 가까운 ‘고용지원센터’에 가서 상담을 받고 직업훈련을 받아야 하겠다. 기술이 있어야 뭐든 먹고 산다. 주변의 친구들은 태식과 같은 친구를 돕기 위해 소주 한 잔 사주는 것보다 고용지원센터에 데려가는 편이 낫다. 몸뚱아리 하나 잘 보전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알려주자. 매맞고 돈버는 것, 태식이를 인권의 사각지대에 몰아넣는 것임을 명심하자.

 


유상환

소년원 화장실에서 우유와 빵을 허겁지겁 입 속에다 쑤셔넣으며 아버지(기주봉)의 편지를 든 장면. “애비 군대있을 때 생각나서 단 것 좀 보낸다”는 편지의 한 구절. 그리고 눈치보며 빵과 우유를 먹을 것을 예언이라도 한 듯이 ‘소화제’까지 보낸 아비의 사랑. 부모의 사랑이 이런 것일까. 천방지축 날 뛰는 자식를 제대로 교육시키는 것이 우선해야 할 사랑이지만 어쩌면 이렇게 소년원까지 내몬 부모의 왜곡된 사랑도 가슴을 휘젓는다. 그리고 상환의 아비는 건설현장에서 거푸집널 덩이에 압사당해 목숨을 잃는다.

 

상환이도 정신적 공황상태에서 신인왕전이 죽은 아비를 만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으로 생각하였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에게 권투는 하나의 돌파구이자 자기치료의 과정이지 않을까. ‘투사(projection)’의 과정일 것이다. 프로이드(Freud)의 말을 빌려보면 공격성이 강한 사람을 권투를 통해 그 공격성을 합법적으로 완화한다던가, 관음증이 있는 사람에게 누드그림을 그리게 하여 관음증을 다른 욕구로 승화시키는 등을 ‘투사’라고 한다. 상환이의 신인왕전 등장에 대해 한 스포츠 신문에서도 ‘링 위에서 쓴 참회록’이라는 헤드라인은 굵게 뽑아낸 이유도 이런 의미가 아닌가 싶다.

 

게다가 쓰러지셔서 수술비까지 마련해야하는 할머니를 생각한다면 우선 아버지의 산재처리를 고려해야 한다. 말은 선뜻 꺼내기 힘들겠지만 말이다. 그래도 해야 한다.

 

감방에 있는 몸이라고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행형법 제44조에 의해 직계존속이 사망한 경우에는 외출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참, 이 영화에서는 상환은 19세이므로 소년원에 수감되어 있다. 그래도 외출이 가능하다. 소년원법 제19조에서도 직계존속이 위독하거나 사망한 경우에는 외출이 허락된다. 다만 외출기간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빠르게 사건을 진행해야 할 것이다. 구비서류는 유족보상청구서, 사망진단서 또는 사체검안서, 사체부검소견서(사인 미상인 경우), 주민등록등본 1통, 호적등본 1통 등 준비해야 할 것이 많다. 또 시간도 없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할까.

 

상환의 아버지는 산재사망이 명확하므로 공인노무사의 도움을 얻어 일을 처리하는 것이 좋다. 한국공인노무사회 홈페이지(www.kcplaa.or.kr)에는 당직노무사가 정해져 있으니 상담을 받아서 일을 처리하자. 그리고 상환아, 이번 신인왕전이 끝나고 출소하면 제발 사고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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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가

이미 내 친구는 담배와 술을 끊었다.

 

이 모든 건 결혼 덕분인 것 같다. 김규항의 글에서 읽었던 구절.

활동가라는 제목의 글,

 

"활동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직업"

 

난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http://www.redian.org/news/articleView.html?idxno=5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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