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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붉은 깃발이 꺾이었을 때 - <카탈로니아 찬가>

오랫동안 독서희망목록에 적혀만 있었던 조지 오웰의 <카탈로니아 찬가>를 사 읽었다. <중국의 붉은 별>, <세계를 뒤흔든 10일>과 함께 최고의 혁명기록문학으로 꼽히는 이 작품을, 산 지 이틀만에 탈탈 털어 읽어버렸다.

 

<카탈로니아 찬가>는 무엇보다도 혁명 스페인의 분위기와 상황을 생생하게 전달해준다는 데 그 미덕이 있다. 역사책의 무미건조한 문장으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그 생동감, 벅참, 불안감, 그리고 좌절. 바르셀로나 시가전의 결과로 전화교환국에서 아나키스트들의 검붉은 깃발이 내려지고, 부르주아 공화국의 깃발만이 펄럭였을 때, 그 때를 맞이한 투사의 정서를 오웰은 특유의 정리된 문체로 잘 전달해주고 있다.

 

공산주의자이길 자처하는 사람으로서, 이 책을 읽으며 든 가장 큰 생각은 소위 '공산주의자'들의 역사적 오류와, 그에 있어서 아나키스트들에게 진 부채감 같은 것이었다. 오웰이 '그 철학적 기초가 상반'되었으나 '그 실천적 목표는 동일'하다고 표현한 두 운동은, 결국 스페인에선 한 쪽이 한 쪽을 압살하는 것으로 끝이 났다.

 

스탈린주의적 오류에 책임을 돌릴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러한 책임 회피는 역사적 교훈에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는다. 효율적 중앙집중과 자본주의에 대한 조직적/집중적 타격을 통해 혁명을 완수한다는 공산주의자들의 기획은, 역사적으로 중앙집중을 통한 관료주의적 타락으로 이어졌다. 스페인의 '진짜 노동계급'으로서, 끝까지 혁명을 완수하고자 하는 열망에 불타던 무장한 아나키스트들은 '파시스트 2중대'라는 비난을 들으며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과연 이에 대한 역사적 부채를 부정할 수 있을까.

 

관료주의와 아나키즘 사이의 긴장은 내가 최근 겪고 있는 가장 큰 딜레마 중의 하나였기 때문에, 이 작품은 지금의 나에게 더 크게 다가왔다. 과연 이 세상을 변혁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둘 중의 하나만을 선택해야만 할까. 그 역사적 오류가 만천하에 드러나고, 자본주의의 앞잡이와 참세상을 바라는 이들 둘 모두에 의해 악명과 오명을 덮어쓰게 된 공산주의자들은, 아직도 자신들의 역사적 오류를 해결할 길을 찾지 못했다.

 

그렇다고 오웰이 이 글에서 아나키즘을 무작정 미화하고 있지는 않다. 그가 묘사하는 아나키스트들은 대체로 인간성은 좋지만, 어떤 일을 효율적으로 달성해내는 데는 거의 무용한 사람들이다. 바르셀로나 전투에서도 오웰은 아나키스트들에게 공세와 적절한 전술을 지도할 지도부가 존재하지 않았다는 점을 한탄스럽게 표현한다. 또 그가 직접적으로 아쉬움을 토로하지는 않았지만, 바르셀로나 시가전이 장기화되던 때, 상부의 명령과 보급이 받쳐주고 있었기 때문에 계속 전선을 지키고 앉아 있을 수 있었던 치안대와, 오로지 혁명적 자발성 하나에만 의존하여 뛰쳐나왔기 때문에 이제 입에 풀칠하기 위해 바리케이트를 떠나야 했던 의용군(그리고 그걸 막을 수 있는 조직도 없었던 의용군)이 대비되고 있다.

 

그러나 공산주의자들에 의해 널리 정당화된 정치적 숙청, <파시스트 2중대> 혹은 <트로츠키주의자>라는 꼬리표, 대의를 위해선 정당화될 수 있는 억압과 압살에 대한 책임은, 온전히 그 붉은 깃발 아래 있다.

 

이 책은 그런 점 외에도, 혁명 자체의 좌절과 퇴조를 잘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도 흥미롭다. 전선으로 나가기 전 오웰이 보았던 스페인과, 전선에서 돌아온 후 오웰이 본 스페인은 너무나도 다르다. 거리의 상점에는 의용군이 필요한 군용물품이 가득하고, 웨이터와 이발사는 팁을 받지 않고 허리를 굽히지도 않으며, 여성이 총을 들고 뛴다고 비웃는 남성들도 없고, 담벼락마다 <통일노동자당 만세!!> <혁명을 완수하라!!> 등의 낙서와 포스터들이 붙어 있었던 바르셀로나는, 몇 개월 후 없어져 버렸다. 부르주아들도 살아남기 위해 프롤레타리아 행세를 해야 했던 몇 달 전과는 달리, 오웰이 탈출할 때 쯤 해선 오히려 살아남기 위해 최대한 부르주아인 척 해야 했다. 매음굴이 돌아오고, 자가용이 돌아오고, 배불뚝이 부자들과 임금격차가 돌아왔다. 사람들은 서서히 지쳐갔고, 전선의 상태나 혁명의 완수에 점점 무감각해져간다. 전선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그 곳에서 사람들은 다시 혁명 전의 일상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공산주의자들과 부르주아들의 이상한 협력 속에서 더 이상 전진할 길을 잃은 '혁명'을 대중들이 폐기처분한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일 지도 모른다. 아니면 소위 '개혁피로증'처럼, 스페인 대중들도 일종의 '혁명피로증'에 걸렸던 것인지 모르겠다. 여튼 혁명 스페인은 그렇게 자신의 테르미도르를 허용했다. 오웰이 날카롭게 예언하고 있듯이(이 책은 스페인 내전이 종결되기 전에 쓰여졌다), 내전 종식 이후의 스페인의 정치체제는 파시즘 혹은 그와 유사한 어떤 것이었다. 아마 프랑코가 패배하고 인민전선 정부가 유지되었다 해도 그랬을 것이라는 점은 거의 명백한 듯 하다.

 

이렇게 우울할 뿐인 스페인 내전, 우울할 뿐인 기록이지만, 분명 이 기록엔 '찬가(Homage)'라는 제목을 헌정할 수 있을 듯 하다. 그 우울한 기록 속에는 분명 그 때 스페인에서 혁명을 꿈꾸고, 자신이 부여잡은 소총 한 자루에 노동계급에 대한 충성(loyalty)을 담아냈던 사람들이 있다. 그 속에는 오직 파시스트들과 싸우고 노동계급 권력을 쟁취하기 위해 그 서투른 손으로 수류탄을 움켜쥐었던 소년 의용군이 숨쉬고 있다. 또한 내려지고 꺾이었지만, 혁명의 승리로 나아가고자 했던 수많은 사람들의 가슴속에 펄럭인 검붉은 깃발이 있다. 과연 이러한 스틸컷들을, 역사적 오류와 우울한 현실이 지워버릴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분명히 한 때 카탈로니아의 대지에서 살아 숨쉬었던 그 사람들과 장면들에게, 이 기록과 이 기록의 독자들 모두가 찬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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