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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 자유, 평등, 공평함...

자유, 평등, 공평함은 근대사회의 산물이다.

즉 근대사회 인간관계의 출발점이며, 또한 도착지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자유, 평등, 공평함은 근대사회의 이념이 된다.

 

자유란 인간관계를 맺기 위한 의사소통에 제한을 받지 않는 것이다.

인간은 인간관계를 통해 인간으로서 자기 자신을 확증할 수 있으며,

자신의 정체성을 형성해 나간다.

그런데 이 인간관계는 인간 자신의 행위, 활동(이것을 맑스는 대상적 활동으로서 노동이라고 부른다)과 그 활동의 산물의 공유 또는 교환을 통해 이루어진다.

이때 자신의 만들어 낸 생산물은 사회의 부가 되며 공유된다.

그러므로 자유란 이러한 생산물들(사회적 부)의 공유를 통해 의사소통하며

관계를 맺어 나가는 것, 그리하여 자신을 인간으로 완성시켜 나가는 끊임없는 과정이다.

 

그런데 이때 인간관계는 지배-피지배라는 계급관계로서의 관계가 아니라

서로 연대, 협력하는 상호 수평적이며 민주적인 관계, 즉 평등한 관계이다.  

그러므로 평등이란 이러한 자유로운 인간관계의 상태를 뜻한다.

평등은 수적으로 평등한, 즉 누구나가 다 똑같이 분배 받는 공산주의 식

(학생들 대부분은 어렸을 때부터 공산주의를 이렇게 배워 와서 머리속에 깊이 각인되어 있다)의

수량적 평등이 아니다.

평등은 각 개인의 발전이 사회 발전의 조건이 되는 상태를 뜻한다.

예를 들어 누군가가 음악을 미친 듯이 하고 싶고 이를 통해 사람들과 의사소통을 하고자 할 때,

그가 미친 듯이 음악에 몰두할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이 곧 사회가 발전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공평함이란 누구나가 자유와 평등의 상태를 유지하도록 만드는 것이고,

그 기준은 각자의 필요에 따라 사회적 배분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반해 부자유란 의사소통을 제한함으로써 인간관계를 제한하는 것이다.

자본주의는 이러한 부자유를 기초로 하고 있다.

왜냐하면 자본주의의 사적 소유, 사유 재산제는 자신이 만들어 낸 생산물에 대한

배타적인 독점을 바탕으로 하고 있으며, 이러한 배타적 독점은 의사소통의 부재를

뜻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의사소통의 부재, 제한에 따른 부자유는 곧바로 불평등으로 이어진다.

그러므로 자본주의 사회는 처음부터 부자유와 불평등, 그리고 불공평함을 기초로 한다.

 

인간답게 산다는 것은 자유, 평등, 공평함을 끊임없이 지속시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어떻게 하면 인간답게 살 수 있을까?

 

(수업 들어간다. 다시 이어서 쓰도록 하자.)

 

 

그것은 자본주의 사회의 관계맺음과는 질적으로 전혀 다른 관계맺음을 스스로 생산해 내는 것이다.

이러한 질적으로 새로운 관계맺음을 코뮌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새로운 관계맺음의 형태는 어떤 방향의 것일까?

그것은 각각의 개별적 개인들이 전적으로 혼자서 자신의 생존을 책임지게끔 하는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이나 구조를 해체해야 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한다.

이렇게 될 때 우리는 타인들과 무한한 적대경쟁의 관계로부터 벗어날 수 있으며,

취직만을 위해 목을 맬 필요도 없게 될 수 있다. 

 

새로운 관계맺음 방식, 비경쟁적인 관계맺음 방식은 소수자를 늘 의식적으로

다수자로 만드는 것에 기초한다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하자면 사회적 약자로 지칭되는 소수자,

즉 여성, 장애인, 어린이, 청소년, 노인, 동성애, 빈민 등의 문제를 사회가 해결해야 될

주요의제로 상정하며, 그 문제를 같이 풀어나가는 것이다.

 

이것이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이라는 공리주의 이념과 윤리를 넘어서서,

최대소수의 최대행복이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의 필요충분조건의 사회주의 이념이라고 할 수 있다.

 

각 개인의 자유로운 발전이 사회 발전의 조건이 되는 사회가 바로 코뮨이며,

이 코뮨은 우리 스스로 만들어 가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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