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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 먹고 있는 다수의 대학생을 바라보며...

4.30 건대사태를 기점으로 다수의 대학생이 욕을 먹고 있다.

멍청하다고, 대학생의 본분을 망각하고서 자본의 논리를 따르고 있다고,

앞으로 졸업하면 자신들도 노동자가 될 터인데 자기 존재를 기만하고 있다고...

 

사실 욕 먹어 싸다고 생각하면서도 맘이 편치 않은 것은

욕 먹는 다수의 대학생을 통해서 나의 무능력을 다시금 새삼 바라보게 되었기 때문이다.

 

4.30문화제 때 어떤 사람은 나에게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나에게 말했다.

- 애들 교육을 어떻게 시킨 거요!

그냥 미안하고 무안해서 어쩔 줄 몰랐다.

이건 내가 무슨 교육을 잘못 시켜서 이런 사태가 벌어졌다고 생각해서 그런 것이 아니다.

 

왜 다수의 학생들이 저렇게 될 수밖에 없었을까 생각해 볼 때

뭐랄까 일종의 자괴감 같은 것을 느꼈다.

양쪽 다에 대해서 현실적으로 어떤 도움도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양쪽 다에 도움이 될 만한 것을 찾아서 함께 하자고 제안을 할 수 있다면

양쪽 모두가 함께, 학교 안에서 당당하고 빵빵하게 문화제를 치를 수 있을 것이다.

 

다수의 대학생들은 자신을 인식하지 못할 정도로 멍청한가?

사실 멍청하다.

그들은 진득하게 생각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대단히 즉흥적이다.

 

왜 그들은 진득하게 생각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걸까?

그들은 태어날 때부터 생각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유전인자를 가지고 태어나서일까?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이다!

그들에겐 그럴 짬이 없다.

일단 그들이 1학기 동안 들어야 하는 학점이 평균적으로 18학점 이상이다.

대학원을 다녀본 사람은 1학기에 18학점을 공부한다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말이다.

대학원에서 1학기에 9학점을 꽉 채워서 듣는다면 그 학기는 그냥 죽었다 해야 한다.

1주일에 4~5일은 밤을 새야 하니까 말이다.

그렇게 공부해도 공부할 게 천지인데...

다시 말하자면 1학기에 평균 18점 공부하라는 것은 아예 공부를 하지 말라는 말과 똑같다.

공부를 한다는 것은 생각을 한다는 것인데, 공부를 하지 말라는 것은 생각을 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고 저항하게 되면(한 번도 이러한 것에 대해서 이의제기해 본 적이 없다!)

대학교를 그만 다녀야 하고, 대학교를 그만 다녀야 한다는 것은 우리나라 현실에서

장시간 저임금에 시달려서 골병 들며 시름시름 앓다가 죽던가, 아니면 아예 굶어 죽어야 한다는 의미다.

 

대학생들에게 공부할 수 있는 시간을,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돌려 주어야 한다.

그들에게 시간을 돌려 주는 투쟁이 즉각적으로 전개되지 않는다면 앞으로 이런 사태는 계속 일어날 것이다.

그 투쟁은 먼저 일단 140~150 졸업 학점을 70학점으로 낮추는 투쟁이어야 한다.

그런 후에 학습 평가를 현행 A~F로 되어 있는 것을 패스-논패스로 바꾸는 투쟁을 전개해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모든 취직 시험 제도를 전 사회적으로 폐지하는 쪽으로 투쟁을 전개해야 한다.

그리고 이 투쟁을 통하여 모두가 정규직으로 취업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만약 자본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취업 거부 투쟁을 벌여 나가야 한다.

이렇게 될 때 모든 노동자가 정규직화를 쟁취할 수 있는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본다.

  

또한 전에 행인이 말씀하셨듯이 생각하고 생각한 것을 나누고 공유할 수 있는 의사소통 체계가

거의 전무하다.

학생들의 생각을 진득하게 들어주고 같이 고민하며 연구하고 실천할 수 선생도 거의 전무하다시피 하며,

대학교의 학생-교수 사이의 관계 구조가 중세 시대 길드의 장인-도제 관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들의 삶에 대해 거의 관심이 없을 뿐더러 관심을 가질 여유조차 가지기 힘든 상황이다.

다들 먹고 살기 바쁘기 때문이다.

 

학생들 사이에서의 의사소통 관계 또한 거의 부재하다고 본다.

특히 운동권 학생들과 일반 학생들 사이의 의사소통 관계가 단절되다시피한 상태는 이미 오래 전이다.

운동권은 운동권 나름대로 자기 조직 추스리기도 벅차서 조직원 이외의 삶에 거의

신경을 쓸 여유가 없다.

또한 이제 남남이 되어 버렸기에 일반 학우를 보는 운동권 학생의 시각은 싸늘하기만 하다.

자신의 도덕적 우월성과 함께...

일반 학생들 역시 운동권 보기를 돌 같이 한다.

이러한 의사소통 부재가 4.30 건대 사태를 일으킨 주범이라고 할 수 있으며,

학교 측에서는 학생들을 관리하기 편해지며,

틈 날 때마다 학생들 사이를 이간질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의사소통 관계의 복원은 위에서 제시한 투쟁을 통해서 복원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같이 하는 투쟁 속에서 머리를 맞대고 논지를 모으는 과정(예전엔 이것을 사상투쟁(사투)이라고 했다)을 통해서 소통의 관계가 복원될 것이다.

이 속에서 대학의 새로운 민주주의 문화를 형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앞에서 대학생들이 멍청하다고 했다.

그런데 그렇게 멍청한 이유는 그들이 너무 똑똑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세상이 어떻게 굴러가는지를 이론적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본능적으로, 직감적으로 너무 잘 알고 있다.

세상이 얼마나 먹고살기 힘든가를 말이다.

그 세상에서 살아 남기 위한 과정에는 오로지 혼자만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어느 누구도 그것을 대신해 줄 수 없다는 것을 말이다.

노동 운동도, 진보 운동도 결국은 자신의 생존을 위해 싸우는 것이라는 것을,

뭉쳐서 싸워봐야 결국 남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아니 결국 일자리를 잃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자본에게 게겨서는, 자본을 쌩까서는 결코 살아 남을 수 없다는 것을

아주 어릴 때부터 봐 왔고 세뇌되어 왔다.

이러한 사실에 대한 증명을 그들은 '자본의 현실'을 통해 보아왔다.

그러나 운동권의 새로운 세상에 대한 세상이 온다는 '사실'에 대한,

단결 투쟁하면 승리할 수 있으며 그리하여 자유롭게 자기가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는 세상이 온다는

'사실'에 대한 증명을 그들은 '노동의 현실'을 통해 한번도 보지 못했다.

그들은 '사실'과 '현실'에 충실한 합리주의자들이다.

그들의 그러한 합리성이 곧 그들을 멍청하게 만들어 버린 것이다.

 

그들에게 돌을 던질 수는 있다.

그러나 그 돌이 백만 배가 되어서 '우리'에게 되던져져 온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들에게는 돌파구가 필요하다.

그들은 이러한 사실 또한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그들이 그러한 돌파구를 하나의 유토피아처럼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 누구도 증명하지 못한 비현실적인 것인 것으로...

그들에게 필요한 돌파구는

사실상 우리에게 너무나도 필요한 돌파구이지 않을까?

그들과 우리는 하나의 목적을 가지고 있다고 봐야 한다.

그 목적을 어떻게 현실화시킬 것인가, 그리하여 우리 자신과 그들에게 증명해 보인다는 것이

정말로 중요한 것이라고 본다.

 

대학과 대학생이 문제라고 얘기하는 게 어제 오늘 일은 아니다.

그리고 그런 얘기 맨날 얘기해 봐야 죽은 자식 뭐 만지기이다.

 이제 무엇을 할 것인가?

이것이 우리의 당면 과제이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운동의 위기를 극복하는 길이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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