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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스 개념의 해소의 계기들 2

<맑스 개념의 해소의 계기들 1>에 이어 계속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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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포이어바흐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맑스는 포이어바흐의 이론에서 공산주의의 “철학적 기초”를 보았다고 강조하였다.(주56-)

물론 맑스는 이후 몇 개월 동안 앞에서 말했던 비판에 착수하지 않았다. 8월 말 맑스는 엥겔스를 통해 파리를 방문하게 되었는데, 그곳에서 두 사람은 자신들의 견해를 계속해서 일치시켜 나갔다. 그들은 공동으로 브루노 바우어에 대한 비판 작업에 착수하기로 결정하고 나서, 『신성가족 또는 브루노 바우어와 그 동료들에 대한 비판적 비판의 비판』을 썼다.

바우어는 그 사이에 자신의 “자기의식의 철학”을 추상적이고 “순수한 비판”으로 발전시켜 나갔다. 바우어에게서는 더 이상 민족과 통치권력이 대립하였던 것이 아니라, (바우어가 비판하고 있는 형태인) “정신”과 바우어 자신의 정치적 이념의 실패에 대한 책임 전가 대상이었던 무지몽매한 “대중”이 대립하였다. 그러나 맑스와 엥겔스는 바로 “대중”(프롤레타리아트)을 미래의 혁명 담지자로 보았다. 따라서 맑스와 엥겔스가 바우어와 그에게 여전히 항상 지적으로 영향을 받고 있는 추종자들을 비판의 대상으로 삼고자 했던 사실은 명백한 것이었다.

비로소 이렇게 청년헤겔학파와 결별하면서(결별을 나타내는 대부분의 글들을 맑스가 썼다) 맑스는 자신의 지금까지의 연구 성과 중의 일부분, 따라서 바우어를 둘러싼 영역에서 여전히 발견되고 있는 헤겔의 자립화된 추상에 대한 비판을 총괄하였다. 맑스는 또한 국민경제학의 관점을 여전히 버리지 못하고 있는 비판으로서의 프루동의 비판을 비판하며, 『경제학-철학 수고』에서의 자신의 경제 연구의 결과물의 가치를 비판한다.

새로운 요소는 이념적이고 물질적인 이해관계의 관련성에 대한 분석 속에서 비로소 나타난다. 역사를 앞으로 이끌어가는 “역사”와 “이념”의 관념적인 자립화에 대하여, 맑스는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

 

“‘이념’은 자신이 ‘이해관계’와 구별되는 한 항상 자신을 욕되게 한다. 다른 한편 대부분 역사적으로 자신을 관철시켜 나가는 모든 ‘이해관계’가 처음으로 세계무대에 들어서게 될 때, ‘이념’이나 ‘표상’ 속에서 자신의 현실적 한계를 완전히 넘어서서 인간적인 이해관계와 완전히 혼동되고 있다는 사실을 파악하는 것은 쉽다.”(2/85)

 

프랑스 유물론의 발전에 근거해서 이념과 이해관계를 이론적이고 실천적인 운동으로 연관시키는 일은 일반화된다 :

 

“17세기 형이상학의 붕괴가 18세기의 유물론으로부터만 해명될 수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론적 운동 자체가 그 당시의 프랑스인들의 삶의 실천적 형태로부터 해명되는 한에서이다.”(2/134)

 

그런데 이념의 생산과 실천적인 사회적 삶 사이의 연관성이 인식되면, 이념은 결코 더 이상 이성적 본질인식으로서 현실성과 대립할 수 없게 된다. 참된 존재와 현실적 현존재 사이의 모순이라는 문제틀(Die Problematik), 즉 지금까지 맑스 담론 구조 틀을 형성해 온 문제틀은 이러한 새로운 표상과 양립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유적 존재의 역사성과 더불어 인간학적인 본질철학에 두 번째 폭약이 장전된 셈이다. 물론 맑스와 엥겔스는 이에 관해서 결코 알지 못했다. 포이어바흐는 『신성가족』 여러 곳에서 여전히 열광적으로 환영받고 있다.(주57-) 그러나 포이어바흐의 의식적 비판은 이후에 비-인간학적이고 비-본질철학적인 새로운 개념을 형성하는 매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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