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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게릴라전 연구> 3.

 

(88쪽) 

** (나치 독일군의 반 게릴라전에서 얻은 게릴라의 특성)

“두 가지 사례, 즉 카민스키의 민병대와 차이코비치 분대 그 어느 것도 게릴라 운동에 대한 결정적인 승리는 아니었다. 그렇지만 이 사례들은 상당히 중요한 하나의 사실, 즉 게릴라들은 식량보급과 활동의 자유를 박탈당한 지역에서는 생존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입증해 주었으며, 이 사실은 주로 서방의 침략군대에 의해 악용되었다. 즉 침략지의 비애국적인 주민들을 매수하여 괴뢰적인 지역민병대를 조직하거나 그에 유사한 방식으로 반(反) 게릴라전을 벌이는 것이었다.”

(92쪽) 

** (효과적인 반게릴라 작전)

“효과적인 반게릴라 운동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침략군대 지휘관들이 적군의 물리적 측면에 정통해야만 하며 또 그 고장 주민의 심리를 충분히 이해해야만 한다는 사실은 필수적인 것이다. 이러한 인식을 기초로 그 지휘관들은 주민들을 최대한 활용하여 게릴라들의 민중적 기초를 빼앗아야 하는 것이다.” 

--> 구사대


@ 제 4장 모택동의 혁명 전략 @


(97쪽) 

** (모택동이 전쟁을 보는 관점)

“그는 하나의 시각, 즉 전쟁은 혁명의 산파이고 혁명과 마찬가지로 <과학적으로 확인 가능한> 과정을 따른다는 관념을 빌어온 것이다.”

--> 그는 맑스, 엥겔스, 레닌, 클라우제비츠, 손자 등의 영향을 받으면서도 자신과 중국의 고유한 경험을 바탕으로 이들의 영향을 종합한(물론 일관되게 맑스주의 틀을 유지하면서) 전술론(또는 3단계 법칙)을 이룩하였다는 점에서 과학적이다. 이 3단계는 한편으로 맑스주의의 과학적 방법론인 구체-추상-구체의 방법을, 다른 한편으로 클라우제비츠의 방어 전쟁(적의 공격을 아군 진영 종심으로 깊숙이 끌어들임-적의 예봉을 꺾고 적의 보급로를 차단, 적의 전투력을 급속하게 약화시킴-최후의 공세를 펼침) 단계를 원형으로 하고 있다. 앞으로 나올 모택동의 전투의 삼 단계와 비교해 보자.

(99쪽) 

** (모택동의 전쟁에 관한 첫 번째 원칙)

“모택동이 초기 시절 1927년 중국 남부에서 농민조직가 및 선동가로 싸우면서 전쟁을 할 때 세운 첫 번째 원칙은 단순한 생존 그 자체였다. 모택동은 시간에 대한 정치․혁명적인 감각을 군사작전 계획의 초석으로 여겼다. 서양의 군사가들이 거의 일생을 두고 제때에 병력을 집중시키는 문제에 골몰하였던 반면, 모는 어떻게 시간을 벌 것인가 하는 문제에 일생을 보냈다.”

-->이것은 모의 군사적 시간 개념이 서양 제국주의(자본주의)의 군사적 시간 개념과 어떻게 다른지를 단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모는 생존을 위해 시간을 질질 끄는 방식을 취했다면, 자본주의에서 시간을 질질 끈다는 것은 낭비이며, 비효율적인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모는 시간을 공간으로 바꾸는 반면에, 자본주의는 공간을 시간으로 바꾸려 한다는 데 있다. 그렇다면 모의 시간론을 노동운동 진영에서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까? 임금을 낮추더라도 시간적으로 자본의 생산성을 낮추면서, 낮추어진 자본의 생산성만큼 공간적으로 노동자의 자기 생산성을 높이는 것이 될 것이다. 사용가치의 공동구매와 공동소비, 이를 통한 여성의 가사노동으로부터 해방, 그리하여 하나의 공동 생활권을 만들 수 있는 물질적 기초를 확립하는 것이다. 이것이 일종의 진지전 개념이라 할 수 있다.

(99쪽) 

** (서양 자본주의의 시간 개념)

“서양에서 시간 개념은 시간이나 날, 달, 년 수의 관점에서 파악된다. 이러한 용어 중에서, 특별히 비축되지 않은 시간은 낭비된 시간으로 간주된다. 특히 미국의 군사적 관점에서 시간을 절약한다는 것은 교범에 제시된 원칙, 즉 병력의 절약보다 훨씬 중요하게 여겨진다. 다시 말하면, 미국식의 군사계획에 있어서 병력을 증강시키는 경우, 군사적으로 최소로 필요한 만큼이 가장 바람직한 것으로 여겨져 왔다. 이것은 남북전쟁 이후 현재까지 지녀온 작전상의 원칙이었다. 소모전-다시 말해서 시간이 아니라 병력을 절약해야 하는 원칙이 우선시되는 전쟁-은 이제까지 전쟁의 한 보조형태로밖에 여겨지지 않았다.”

(100쪽) 

** (모의 시간 개념)

“모는 시간이 기술을 격파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그리고 무한정의 시간은 무엇보다도 무제한의 공간에 달려 있다. 서양의 저자와 달리 모는 하나의 전쟁을 빨리 종식시키는 문제에 중점을 두지 않는다. 그의 문제는 전쟁을 지속시키는 일이다. 그는 거듭 이 주제로 되돌아온다 : “우리의 저항 전쟁은 단시일 내에 결판날 수 없다. 단지 지구전이 될 수 있을 뿐이다.” “장거리 여행을 통해서 말(馬)의 능역을 시험해 볼 수 있고, 장기간의 업무를 통해서 사람의 성격을 증명할 수 있듯이, 게릴라전은 장기간의 험난한 전쟁을 통해서 그 무한한 힘을 심증할 것이다.””

“모의 중요한 군사 저작들이 씌어졌던 1930년대에 서양의 군사적 관심은 산업문제, 즉 산업의 동원 및 그 전환 또는 산업의 파괴 등에 관한 문제였다. 서양의 모든 연구가들은 산업화가 전략에 미치는 충격에 대해 관심을 보였다. 두에(Douhet)와 미첼(Mitchell) 같은 몇몇 연구가들은 산업의 심장부를 폭격함으로써 산업을 파괴시키는 문제에 관심을 기울였다. 다른 사람들, 드골(De Gaulle)이나 풀러(Fuller), 그리고 구더리안(Guderian)과 같은 전차병들은 도로나 철도, 또는 산업국가의 동맥을 차단함으로써 동일한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해군의 경우 많은 전쟁의 문제는 수로를 봉쇄함으로써 천연자원이 산업적으로 유입되는 것을 차단시키는 데에 있었다. 그러나 이들 모두는 심지어 해군까지도, 제한된 공간의 관점에서 생각하였다. 반면 모택동만은 그렇지 않았다.”

(100~101쪽) 

** (군사적인 용어로서 <공간> 개념)

“군사적인 용어로서 <공간>은 사용 가능한 통신망을 제외한 사방면적에 장애물들을 합한 것이다. 그러므로 사방 10마일의 산악 정글지역은 사방 수백 마일의 기복진 평야에 해당되며, 이것은 또 도로와 철도로 누벼진 사방 수천 마일의 면적과 동일한 것이다. 중국에서의 바로 그러한 공간이 시간, 혁명조직, 정치적인 응집력, 그리고 승리를 낳게 할 수 있었고 이 점은 모가 지닌 낙관론의 근거였다.

군사적인 측면에서, 그러면 어떻게 모는 공간이 시간을 창조해 낼 수 있다고 생각했을까?”

(101쪽) 

** (모의 전쟁철학 : 물질보다는 인간 우선론)

“모는 힘의 비율을 재평가해 본 것을 근거로 처음으로 전쟁철학을 창출하였다. 투쟁의 초기에 총은 거의 없었다. 그래서 모는 어쩔 수 없이 ‘혁명에서 무기만이 효과적인 도구는 아니다’라는 명제를 설정하였다. 그는 “무기는 전쟁에서 중요한 요소이다. 하지만 결정적인 요소는 되지 못한다; 중요한 것은 인간이지 물질이 아니다”라고 쓰고 있다. 군사적이거나 경제적인 수단이 없던 모는 “<힘의 비율>(the ratio of strength)이라는 것이 군사적․경제적인 힘의 비교뿐만 아니라 인력이나 인간의 정신을 비교하는 것”임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었다.”             

(102쪽) 

** (모의 <대체이론>)

“모의 이론은 본질적으로 <대체이론>이다. 총은 선전으로 대체하고, 공군력은 파괴로, 기계는 인간으로 대체하며, 기계화는 공간으로, 산업의 동원은 정치적인 동원으로 대체한다는 것이다. 이 이론은 매일 매일의 실행 속에서 직관적으로 형성되며, 나아가 반성을 통해 전쟁이론으로 성숙된다.”

(102~103쪽) 

** (모의 이론의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동원의 중요성)

“모는 초기의 발표를 통해서 두 가지 점을 강조했다. 첫째는 정치교육의 필요성이고, 둘째는 <민주적인> 군대의 필요성이다. (……) 모가 믿기에 정치적인 동원은 전쟁을 이기기 위한 가장 필수적인 조건이다 : “인민은 물과 같고 군대는 물고기와 같다. 평범한 인민을 전국적으로 동원해서 우리는 인간으로 이루어진 커다란 바다를 만들 수 있고 적을 그 속에 익사시킬 수 있다.” 모는 진정한 이데올로기적인 의미의 정치적 전환의 동반물로서 군사적인 구원을 일관되게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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